“한창 좋은 시절에 활동했던 동호회에서 열정을 다 바쳤던 것 같아요. 걷는 게 좋았던 아마추어가 길 전문가가 된 거죠.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나만의 길을 찾아다녔는데, 오늘 걸었던 길처럼 사람들이 많이 밟지 않은 길, 숲길, 오솔길을 좋아해요. 그런 길 위주로 사람들과 함께 많이 걸었어요. 정말 그때는 열정적으로 길을 안내했죠. 그 래서 제 길을 좋아하던
우리 동네 이름은 ‘숲속 마을’이다. 고양시에 속하지만 산과 들판에 둘러싸여 마치 시골 마을 같다. 나의 아침은 산책을 하면서 시작된다. 건강을 챙기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취미와 기술을 연마하는 장소로도 활용하면서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마을을 둘러싼 나지막한 동산 등성이를 따라 이어지는 좁고 구불구불한 숲속 길을 걸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흙
‘어라! 나 어느새 이렇게 나이 들었어? 이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도다!’ 우리는 흔히 그렇게 영탄한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흘러 흩어진 세월을 아쉬워한다. 그러고서도 정작 무한정한 시간을 움켜쥔 것처럼 하루하루를 허비한다. 시간이야말로 고귀한 재산이라는 걸 까먹는다. 이 양반을 보시라. 시간 누수 없이 은퇴 이후를 산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시
관악산 위로 먼동이 터오면 나는 창문을 열고 아침을 맞는다. 그리고 공기가 맑은지 살핀다. 해가 늦게 뜨는 동절기에는 ‘반딧불 손전등’을 손목에 차고 나만의 아침 산책을 위해 ‘미성 오솔길’로 나선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사회생활을 할 때부터 시작됐다. 젊을 때는 더러 늦잠이 달콤했지만 중년이 되면서부터 ‘5시 기상’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송광사 주차장에 차를 두고 무소유길을 오른다. 1km 남짓한 숲길이라 오르내리기 쉽다. 불일암에선 법정 스님의 수목장 묘를 놓치지 말자. 하산 뒤엔 조계산의 양대 거찰인 송광사와 선암사를 비교 답사한다. 풍경도 풍토도 서로 완연히 다르다.
얼씨구! 매화꽃 핀다. 조계산 기슭 곳곳에 매화가 지천이다. 이미 피었거나 피고 있거나 피어날 채비를 하거나,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올빼미족’이었다.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된 것은 가족들을 위해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이른 시간에 눈을 뜨는 습관을 들이고 나니, 이전에 잠자느라 놓쳐버린 시간들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었다.
‘올빼미족’이었을 때는 새벽까지 책도 읽고, 옷수선도 하고, 뜨개질이나 레이스뜨기도 하고, 음악도 들으면서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숲해설가 활동에서 가장 자랑이었던 곳. 4년을 공들여 가꾼 곳이었는데, 비는 한순간 모든 것을 쓸어가 버렸다. 2011년 7월 28일. 최악의 집중호우로 손꼽히는 그날 하루 내린 비의 양은 301mm. 그 자리엔 그도 있었다. 사고가 좀 더 일찍 일어났다면 다른 18명의 희생자에 포함될 수도 있었다. 비폭탄은 그렇게 우면
봄비[雨]가 내려 백곡(百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穀雨) 무렵. 음력으로 3월 중순, 양력으로는 4월 20일 즈음 백화(百花)가 만발(滿發)하며 봄은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이 시기 특히 제주도에는 고사리가 지천으로 돋아나 숱한 이들이 들판을 누비고 다닙니다. 바로 그즈음 한라산 기슭 중산간 지역에, 누구나 한 번 보면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유혹에
올겨울은 유독 미세먼지로 전 국민이 몸살을 앓았다. 어릴 때부터 아마추어 천문회에 참여해 별을 봐왔는데, 겨울 하늘이 가장 맑아서 별 관찰하기에 좋았다. 그런데 요즘은 겨울에도 별을 보기 힘들다. 20년 전과는 자연환경이 너무 많이 달라져 두려울 정도다. 겨울철에는 비타민D가 부족해지기 쉽다. 환자들에게 밖에 나가 햇볕을 많이 쬐라고 권하는데, 지금은 그런
예절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름답게 연결해주고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해주는 기본이다. 여러 예절 중에서도 말 예절은 특히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다. 남자는 하루에 대략 2만5000마디를 하고, 여자는 약 3만 마디의 말을 한다고 한다. 이렇게 수많은 말들을 하며 우리는 일상생활을 한다.
퇴직 후 숲 생태해설 교육을 받을 때, 도끼나 칼을 들고 나무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