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기사를 뒤적거려봤다. 박시룡(朴是龍·65) 前 한국교원대학교 생물교육과 교수의 기사는 그저 황새복원의 역사다. 읽다 보면 ‘박시룡’이 아닌 ‘황시룡’으로 읽힐 정도다. 한국에서 멸종된 황새 복원을 위해 살아온 세월만 20년. 황새들의 안녕을 잠시 뒤로 하고 사회에서 허락한 현역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고별 강연 준비에 여념이 없던 1월의 어느 날,
나이 듦은 원숙일까, 낡음일까. 누군가에겐 연륜으로 작용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고집불통의
외통수를 만들기도 한다. ‘불로초’를 찾아 헤매는 ‘영원한 젊음에 대한 집착’도 안쓰럽다. 또 ‘너희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로 나이를 계급장인 양 밀어붙이며 유세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여기 밥 잘 사고 젊은이들과 무람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지덕체의 균형을 이루며
명동에 나갔다가 버스를 잘 못 타서 집까지 다른 코스로 돌게 되었다.
대학로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버스가 동대문 방향으로 직진하고 있었다.
버스 환승제가 있으니 적당한 정류장에서 갈아타면 되고 또 필자는 시간도 여유로워 뭐 그리 큰일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동대문을 지나 창신동 필자가 다닌 여고 앞을 지나고 있다.
꿈 많던 여중 고 시절 6년을 보낸 동네라
필자가 활동하는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창립 2주년 행사에서 댄스공연을 하기로 했었다. 필자가 이끌고 있는 댄스스쿨도 공연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일 년 전 도심권 50플러스센터 시절, 같은 무대에서 차차차로 공연을 한 적이 있어 이제는 그런 행사에는 당연히 댄스를 보여줘야 하는 것으로 인식된 모양이다.
그러나, 댄스스포츠는 커플댄스이므로 제약이 많다. 우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감격에 젖은 백전노장은 손을 번쩍 들어 객석과 무대를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정확히 27년 만의 커튼콜. 과천시민극장의 연극는 백발이 돼 돌아온 노배우의 재기와 시민들의 소망을 이루어준 ‘꿈의 무대’였다. 두려움을 떨치고 조명 앞에 당당하게 선 그들만의 이야기는 밤새도록 끊일 줄 몰랐다.
과천시민극장의 다섯 번째 연극
작년 12월
1977년 10월 24일 김포공항.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시기.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생이별을 앞둔 인파로 가득했다. 한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형제, 자매와 조카까지 모두 공항에 자리를 잡았다.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고, 힘줘 잡은 두 손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곧 먼 이국의 땅으로 떠날 파독(派獨)광부들을 환송하는 자리. 그 자리에는 만삭의
설날 음식을 위해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명절 며칠 전부터 만나서 준비하는 것은 이젠 그만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며느리를 맞이하고 첫 설날, 시어머니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어려운 음식을 해내고 싶은 마음과 그냥 편하게 보내자 하는 두 마음의 갈등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즈음 외부에서 할 일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명절 음식은 대부분 백화점에서 사고 몇
“우리의 영혼은 빈곤합니다.” 한 아이가 허공을 향해 내뱉었다. 열 명이 겨우 설 수 있는 작은 무대. 그리고 그것보다 더 보잘것없는 객석과 몇 명 되지 않는 관객. 그러나 이 외침은 초로를 지난 대배우의 가슴을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가 한 치의 주저함 없이 ‘국민 배우’라 부를 수 있는 최불암(崔佛岩). 교실에 있어야 할 나이의 이 아이들은 쫓
35년 지기 죽마고우 폴, 시몽, 막스에게 벌어진 유쾌한 하룻밤 소동을 그린 작품이다. 개성파 중년 배우들과 함께 관객의 웃음을 책임질 이대웅 연출가 이야기를 들어봤다.
연출을 맡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수현재(제작사)에서 레퍼토리 연극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읽어보라며 대본을 보내왔다. 대본을 보자마자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완벽한 대본이었다.
장사익 소리판 대전 공연이 있던 날. 대전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인터뷰에 앞서 도리였다. 노래가 전부라는 사람, 장사익(張思翼·68). 작년 초 자신의 인생을 걸고 성대결절 수술대에 올랐던 그는 8개월 뒤 불사조처럼 힘차게 일어섰다. 공연을 보지 않고서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나. 더욱 단단해지고 깊어진 소리가 가슴을 뒤흔들었다. 음악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