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또 꽃 타령이다. 해가 새로 바뀌었는데도 꽃 얘기를 멈추기가 쉽지 않다. 아내에게 배운 삶의 현장에서 꽃이 내 생각을 바꾼 한 예다.
아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꽃을 사왔다. 채 일주일이 못 가는 꽃을 사고 또 사는 아내가 신기했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도,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어느 도시에서든 아내는 좋은 꽃시장을 잘도 찾아냈다
다사다난했던 2017년이 지나가고 새해가 온 지 벌써 며칠이 지나가고 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세월 가는 일이 그저 찰나처럼 느껴진다. 2018년 무술년(戊戌年)은 60년 만에 오는 ‘황금 개띠’의 해라고 한다. 개는 인간에게 충성스러운 동물이면서 친구이자 가족이기도 하다. 소설과 영화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플랜더스의 개(A Do
K는 기계 기술자이면서 시인이다. 기술자가 시를 쓴다는 것도 드문 일인데 그동안 시집도 두 권이나 펴냈다. 그는 젊어서부터 열사의 나라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지역 건설 현장을 두루 경험한 산업 전사였다. 능통한 영어 실력으로 큰소리를 치고 대우도 받으며 해외생활을 마쳤다. 그의 시집을 선물받아 읽어봤다. 이국의 색다른 풍경과 고국의 아내와 자식에 대한 그리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력의 한계를 자주 느낀다. 이를 보완하는 최선의 방법은 끝임 없이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을 쓸 수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별도의 메모장을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휴대폰 바탕에 깔려 있는 일정표 앱의 간단한 메모기능을 이용한다. 참 편리하고 효과도 좋다.
그런데 점점 메모 글자 수가 늘어간다. 짧게 적다 보면 무슨 내용인지
‘꽃잎은 바람결에 떨어져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데…’
나의 명동 쉘부르 입성 즈음 대한민국은 온통 전영 씨의 ‘어디쯤 가고 있을까’의 나라였다. 그 노래 하나로 모두가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때 ‘쉘부르’를 빛내던 전영 씨였기에 내 상업적인 무대의 시작은 이 노래와 함께 출발한다.
나와 비슷한 시절을 보낸 청춘들은 한 번쯤 다녀갔을 명동의 통기타 생맥주
최봉욱 센터장은 국내 창업보육에 관해 손꼽히는 현장 전문가 중 한 명이다. 2011년 수원시가 중소기업청의 시니어 특화 창업보육센터를 운영하게 되면서부터 지금까지 시니어들의 창업을 도와온 주인공이다.
“수원이 창업보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남문을 중심으로 한 수원의 중심 상권이 쇠락하면서부터죠. 시장골목의 상권을 살리고자 창업보육센터를 만들고 일자
몇 년 전이었더라. 베란다 창밖 난간에 매달린 선반에 기다란 화분이 두 개 있었다. 봄이면 베고니아처럼 자잘한 꽃들을 몇 포기씩 사다가 나란히 심었다. 아주 예쁘게 잘 자라 봄에서 가을까지 꽃을 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다. 가끔 고추나 체리토마토 모종도 몇 포기 심어봤는데 역시 잘 자랐다. 빨간 토마토가 앙증맞게 방울방울 달리고 크진 않았지만 고
올해도 여의도공원에 야외 스케이트장이 열렸다. 아들이 직장 바로 앞 여의도공원에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졌다며 가보자 해서 손녀를 데리고 갔었다. 어린 손녀는 처음 타는 스케이트가 신기한지 자꾸 넘어지면서도 재미있어 했다. 즐거워하는 손녀를 보는 필자 마음도 흐뭇하고 좋았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낭만적이고 멋지다. 전에는 잘
필자는 음악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재즈, 팝송, 칸초네, 클래식 등 외국 장르를 즐겼고 우리 가요나 국악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나이 들면 우리 노래가 좋아질 거라는 옛말이 있었지만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어른들 말씀에 그른 것이 하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 가요나 국악의 은은함이 너무 좋아졌기 때문이다.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을 울리
초등학교 시절, 필자의 부모는 할머니 집에 필자와 남동생만 남겨둔 채 동생들을 데리고 직장 근처로 이사 가 살았다. 필자는 7형제의 맏딸이다. 우리까지 데려가면 박봉에 굶어 죽을 것 같아서 떼어놓고 간 것이다. 부모와 어린 동생들이 떠난 후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다행히 친구 명희가 있어 학교 공부가 끝나면 그 집에 가서 놀았다. 서로 시간이 어긋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