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정의가 필요치 않은 것은 기본이 충만할 때다.
스위스의 전 지역에 대한 평가는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 스위스는 가는 곳마다 ‘아! 너무 좋다’, ‘이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 아름다움 속에서 살아온 덕분일까? 스위스 사람들은 여행객들에게 한결
1990년대 중반 CF 스타였던 CEO가 있었다. 바로 신홍순 컬처마케팅그룹(CMG) 고문이 그 사람이다. 당시 LG패션 사장이었던 신 고문은 멜빵에 컬러풀한 셔츠를 입고 “패션으로 기억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말로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았다. 20여 년 동안 패션 업계에 몸담았던 경력, 재즈와 클래식 마니아이자 전문 공연 기획자, 미술 컬렉터, 패션
교량이 무너지는 사고는 외국에서도 종종 있었지만 성수대교는 전 세계 교량사고 역사에서 늘 주요사례로 언급된다. 국내 건설인에게는 영원히 불명예스러운 기억이다. 성수대교 사고조사위원으로도 참여했던 원로 토목공학자 김문겸 연세대 교수(대한토목학회장)에게 그날의 참사에 대해 물어 본다.글 유충현 기자 lamuziq@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
평범한 도서관이 지루해졌다면 여행 관련 도서가 있는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진선북카페’ 그리고 만화책이 가득한 편안한 쉼터 ‘놀숲’, ‘청춘문화싸롱’을 둘러보자.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 서가의 빈틈에서 발견하는 여행의 시작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일상에 영감을 주고(Inspiring), 광범위한 주
사례>> A씨와 B씨는 1981년 4월 25일 혼인신고를 마치고 함께 살다가 2007년 12월 18일 협의이혼 신고를 마쳤다. 둘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그러나 A씨에게는 다른 자녀 C씨와 D씨가 있었다. 1962년 4월 30일 혼인한 뒤 사망한 전처 E씨의 소생이다. A씨는 B씨와 협의이혼한 이듬해인 2008년 7월 9일 사망했다. C씨와 D씨는 각
1960년대 당시 유행하던 음악 중에는 미국 팝송같이 많지는 않았지만 샹송이나 칸초네, 그리고 라틴음악도 있었다. 필자가 샹송을 처음 접한 것은 1962년 9월쯤이었나, 당시 대한무역진흥공사 이사로 근무하시던 선친과 명동 국립극장(현 예술극장)에서 샹송가수 이베트 지로의 공연을 본 것이었다.
그녀는 당시 그녀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시인의 혼’, ‘
모든 발명이 그렇겠지만, 빠진 치아를 대신하는 인공치아, 즉 임플란트도 우연한 계기를 통해 발명됐다. 1952년 스웨덴의 정형외과 교수였던 브레네막(Per-Ingvar Branemark) 교수는 나사를 통한 뼈의 물리적 고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토끼 뼈에 박고 방치해 놓았던 티타늄 나사가 뼈와 엉겨 붙어 있음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뼈를 생성하는 조골세포와
#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K씨. 그녀에게는 세 딸이 있다. 첫째는 의사, 둘째는 법조인, 셋째는 교수를 꿈꾸는 재원이었다. 첫째 딸은 꿈을 이뤄 동료와 결혼했고, 둘째와 셋째 딸은 사법시험 준비와 박사과정이어서 결혼에 급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K씨는 김희경 팀장이 추천하는 남성을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했다.
몇 년 후, K씨의 두 딸은 각각 변호
1946년 양력으로 11월 3일에 태어났다. 경주 외곽에 있는 나원, 외갓집에서였다. 아버지는 나의 출생이 당신의 호르몬 작용의 산물이라 했고, 엄마는 운명이라고 했다. 1947년에 서울로 갔고 1950년 한국전쟁이 나서 다시 나원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는 아궁이에 검은색 토탄 가루를 뿌려가며 밥을 짓던 것과 고무줄 장사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김창렬(金昌烈·66) 한국자생식물원장은 식물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유명인이다. 토종 야생식물을 재배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업화했고 토종식물만을 소재로 식물원을 설립해 강원도 평창군의 명소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식물원이 3년째 문을 닫고 있다. 김 원장은 갑자기 전국일주 마라톤을 했다. 어떻게 된 사연일까. 그를 만나 얘기를 들어 봤다.글 유충현 기자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