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들어가기 전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해. 하나는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또 다른 하나는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는가.” 영화 ‘버킷리스트’ 속 대사다. 인생의 기쁨과 타인을 기쁘게 하는 지점이 같은 사람을 찾자면, 그이가 바로 배우 박인환(朴仁煥·73) 아닐까? 평생 연기를 통해 삶의 즐거움을 찾고,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하
강신장(60) (주)모네상스 대표는 지식 디자이너이자 창조 프로듀서다. 지식 속에 숨겨진
창조의 씨앗을 찾아내고 가치를 재해석해 창조의 영감을 생산해낸다. 삼성경제연구소 근무 시절, 대한민국 인문학 열풍을 일으키고, 1만 개에 달하는 5분 동영상 콘텐츠로 1만 명이 넘는 CEO들을 매혹시켰던 그가 2014년 모네상스를 창업, 고전 전도사로 나섰다. ‘누구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다. 주로 경남 중동부 해안에 밀집한 왜성 터들도 오랜 세월 허물어지고 지워져 갈수록 희미해져간다. 왜성이라
뉴스를 보는데 새만금사업이 박차를 가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새만금은 원래 민간주도로 시작되었지만, 긴 시간이 지난 이번 문재인정부에서 공공주도로 진행하게 되어 관련 예산을 편성하고 내부개발이 진행될 것이며 새만금개발공사를 만들어 전담추진체계를 마련해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6월 필자는 새만금 노마드 축제에 다녀왔다.
그날 새만
“방송이 너무 안되고 하는 일마다 자꾸 어긋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간절하게 기도했지요.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개그맨으로서 온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어요.”
한국 예능계의 최정상에 올라 예능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스타 유재석(45)의 말이다.
“칸 영화제에 오는 것은 배우로서 로망이다. 연기자로서 오래 일했지만, 칸에 온다는 생각은 꿈도 못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을 다섯 군데나 갖고 있는 올해 환갑을 지낸 K 사장은 나와 테니스 동호회원이다. 이분은 30대 초반부터 이런 피복장사를 해왔으니 이 방면에서는 알아주는 베테랑이다. 한때는 본사에서 매출을 가장 많이 올려주는 가맹점이라고 특별대우와 표창장도 받았다고 한다. 본사에서 경쟁브랜드사와 맞장 뜰 지역에는 K 사장에게 적극 지원을 전제로 점포를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
10월 마지막 화요일은 금융의 날이다. 원래는 1964년부터 저축의 날로 불리며 그 해의 저축왕도 선정하고 알뜰살뜰 저축을 많이 한 사람의 미담을 치하하는 행사가 있었다.
오랜 시간 내려오던 저축의 날은 경제성장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의미가 약해지고 다양한 금융상품과 금융의 역할 다변화, 세계적인 초저금리시대에서 저축의 개념을 확장해 2016년부터는 명칭을
한 시대를 풍미하고 아스라이 손 흔들며 사라졌던 대형 가수가 있었다. 화려한 드레스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와 198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던 가수, 바로 김연자(金蓮子·58)다. 오랜 시간 일본에서 ‘엔카(えんか)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그녀. 한국으로 돌아와 조용히 활동하는가 싶더니 8년 만에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트로트도 엔카도 아닌 강렬한 사운
1972년부터 1979년까지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디바 정미조가 오랜 우회로를 거쳐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개여울’과 ‘휘파람을 부세요’와 같은 다양한 히트곡들이 가수 정미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르겠지만, 사실 그녀는 가수로서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화가로서의 인생 2막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인생의 제3막에서 가수로 돌아온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