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에 걸친 오랜 회사 생활. 규율과 답답함으로 채워진 오랜 시간을 보낸 끝에 마침내 은퇴한 남자는 그동안 품었던 꿈과 모험을 즐기기 위해 과감한 도전을 시도한다. 소설과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다. 꿈과 모험과 도전의 이야기가 예술작품의 소재로 끊임없이 사용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길 그토록 열망하지만 막상 실현시킨 사람들은 그만큼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문광수(文光洙·72)씨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래서 68세의 나이에 바이크 면허를 땄다. 그가 향한 곳은 유라시아. 일흔이 넘어 스스로 ‘철이 들었다’고 말하는 이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바이크 면허는 많이 떨어졌어요. 처음에는 배우다가 다리를 다쳐서 집에서 난리가 났고 일 년을 쉬어야 했죠. 몸이 나았을 때 아내 몰래 다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멀쩡한 양반이 별 약속도 없는 거 같은데 아침 일찍 어딘가로 가니까 아내가 수상하게 여겼어요. 그것도 한 번에 합격했으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자꾸 떨어지니까(웃음).”
새한정보 대표이사로 은퇴한 후 문광수씨가 바이크 면허를 딴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바로 바이크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고 싶어서였다.
바이크 면허를 따기 위한 좌충우돌
“꿈은 이뤄지든 이뤄지지 않든 갖는 거니까. 면허 합격이 되자마자 바이크를 몰래 중고로 하나 샀어요. 집에는 가져가기가 뭐하니까 바이크 가게에 일 년간 보관하면서 연습할 때 썼죠. 그러고 보니 면허 취득부터 계산하면 바이크를 제대로 타는 데 한 삼 년 걸렸네요.”
마침내 바이크를 집으로 가져 오게 됐을 때 아내에게 들키는 게 두려웠다. 할 수 없이 옆 동에 세워놓고 경비에게 막걸리를 사주면서 잘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바이크를 집 근처에 갖다놓으니 자꾸 보고 싶은 마음이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일주일 만에 들켰어요. 매일 사라졌다가 한 시간 있다가 들어오곤 하니까 아내가 의심한 거죠. 참 여자의 육감은 대단해.”
어느 날 바이크 덮개가 벗겨져 있었다. 누가 바이크를 건드렸나 해서 경비실 CCTV 영상을 확인해보니 그의 아내가 바이크 쪽으로 가까이 가더니 덮개를 탁 하고 벗겨내는 게 보였다. 별 수 없었다. 이실직고하는 수밖에.
계획, 예약, 기약 없는 유라시아 횡단의 시작
문씨는 얼마 전 바이크로 유라시아 횡단을 마쳤다. 장장 3개월에 걸친 여행이었고, EBS에서 촬영을 마친 상태라고 했다(인터뷰를 한 시점에는 10월 17일 프로그램에서 4일간 방영 예정이라고 했다).
“연습하고 훈련하고…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갈 예정이었는데, 처음 가보는 길이라서 계획이란 건 있을 수 없었고, 얼마만큼 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 뭔가를 예약할 수도 없었고, 직접 가봐야 모든 걸 알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가 어떠한 계획도 없이 오로지 바이크에 의지해 유라시아를 횡단하겠다는 엄청난 계획을 세운 것은 자신의 신념 때문이었다.
“바이크 자체가 자유니까, 아주 자유롭고 낭만적인 여행을 해야겠다 싶었어요. 아무 계획 없이, 예약 없이, 기약 없이 홀로 유럽으로 떠나자는 거였죠.”
바이크 여행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베이스캠프는 있어야 했으므로 세이브칠드런에 있는 친구에게만 베이스캠프를 맡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고등학교 모임에서 그 얘기를 터뜨려버렸다.
“처음에는 저 혼자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나도 따라가면 안 되나’ 하면서 두 명의 동창이 적극 관심을 보였어요. 바이크 탈 줄 아냐고 물어봤지요. 탈 줄 모르면 못 간다 했죠. 그랬더니 당장 배우겠다더군요. 그 친구들은 2개월 만에 면허를 땄어요.”
여행 중에 닥쳤던 위기들
아무 계획 없이 떠난 바이크 여행. 당연히 아무 사건 없이 진행될 리 없었다. 한 열흘쯤 지났을까 친구 한 명이 어깨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어쩔 수 없이 친구를 비행기로 귀국시키고 남은 두 사람만 바이크에 몸을 실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바이크가 고장이 났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문씨가 운영하는 블로그 이웃이 크로아티아에 살고 있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여성분이었는데, 슬로베니아에 살고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마침 이분 남편이 슬로베니아 현지인이었는데 엔지니어였죠. 그분이 도와주셔서 바이크를 다시 탈 수 있게 됐어요.”
언어의 문제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 나라 말을 잘하면 좋겠죠. 안 그래도 걱정을 했는데, 여행을 시작하기 전 호주에서 한 부부를 만났어요. 그들도 바이크를 모는 부부였죠. 영어를 잘해서 부럽다고 했더니 ‘너는 한국말을 잘하지 않냐, 러시아에 가면 너나나나 말 안 통한다, 보디랭귀지가 최고다, 언어는 하다 보면 느는 거니 일단 가봐라’ 하면서 용기를 주더군요. 많은 위안이 됐습니다. 여행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은 한계가 있어요. 결국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니까요. ‘어디서 왔니? 어디로 가니? 가족은 어떻게 되니?’ 그 정도예요. 질문들이 비슷비슷하니까 나중에는 제가 먼저 묻게 됐어요(웃음).”
바이크 여행은 자유와 낭만이다
문씨는 자신이 숨기는 게 없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자신의 성격이 인간적인 매력을 덜 느끼게 만든다고 안타까워했지만, 여행지와 같은 낯선 장소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특별한 강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에게 보통의 여행과 바이크 여행의 차이를 물어봤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여행은 안방 여행이라고 봐요. 그에 비하면 바이크 여행은 아웃도어죠.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놓는다는 점에서 자연친화적이고, 그야말로 자유롭고 낭만적인 여행입니다. 제가 원래 체질이 좀 야생이어서 제 성향에 잘 맞는 거 같아요.”
그는 바이크 여행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두려워하지도 말고 주저하지도 말라고 충고했다. 그의 신념은 ‘무작정 출발해라’다.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다 똑같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바이크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저는 바이크 전문가는 아니지만 바이크를 타고 여행하면서 매스컴이 올바른 정보를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바이크만큼 훌륭한 스토리를 가질 수 있는 여행이 없어요. 유럽에서는 바이크 뒤에 부인을 태우고 다닙니다. 뉘엿뉘엿 해가 지는 시골길을 바이크를 타고 천천히 감상하는 일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바이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해요. 낭만과 자유의 상징으로서 바이크의 좋은 점들을 알려줬으면 해요.”
이제 파미르 고원을 달려보고 싶다
문씨의 기질은 역시 야생이 맞는 것 같다. 바이크뿐만 아니라 암벽등반에서도 화려한 흔적을 남겼다.
“저는 삼성에서 30년 동안 쉬지 않고 일만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정말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늘 가슴에 차 있었어요. 일곱 시까지 정확히 출근해야 하고 넥타이를 맨 정장을 반드시 입어야 하는 게 직장생활의 기본이죠. 그런 생활을 30년 가까이 했으니 얼마나 자유가 그리웠겠습니까. 은퇴 후 예순의 나이에 뭘 할까 고민하다가 대학 때 잠깐 해봤던 암벽등반이 생각나서 입문하게 됐죠. 암벽 전문가인 박준규 클라이머를 찾아가서 사사받았어요. 5년간 굉장히 열심히 했죠.”
설악산에는 암벽등반가를 위한 대표적인 바위가 두 개 있다. 바로 인수봉과 적벽이다. 그중 적벽에서 등반할 수 있는 루트 중 하나는 문광수씨가 개척한 길이다. 이름은 777. 2007년 7월 7일에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박준규씨를 통해 국내 정상급 클라이머로 인정받은 그는 65세의 나이에 국내 최고의 전문 등산학교 익스트림라이더의 교장으로 초빙됐다. 바이크로 유라시아를 횡단한 것이 전혀 놀랍지 않을 전적이다.
“요즘은 중앙아시아가 매력적이에요. 특히 지구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파미르 고원을 가고 싶습니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키스탄, 중국, 파키스탄이 맞닿는 곳이고 과거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했던 곳이죠. 신라시대 때 혜초 스님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게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친구와 함께 뛰었으면 좋았을 텐데”
“보통 사람들처럼 열심히 살아왔고 나름대로 잘살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행을 하고 보니 그리 잘살아온 것 같지 않더군요.”
문씨는 한국 최고의 대기업에서 임원 자리에까지 오른 비교적 괜찮은 삶을 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평가해주는 인생이지만, 정작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풍경들을 경험하면서부터다. 오직 하나의 틀에만 맞춘 삶을 살다가 무한히 열려 있는 존재로서의 가능성을 경험하면서 그의 생각은 많이 달라진 듯했다.
“여행하면서 나름대로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돼요. 밤에는 철저히 혼자잖아요.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그러다가 자기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반성도 하게 되고… 제가 너무 건방진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거에 그토록 정신없이 뛸 때, 친구의 손목도 잡고 함께 뛰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남은 여생은 정말 겸손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이 들면서 이제야 철이 드나 싶어요.”
장석주(張錫周·62) 시인의 트위터 자기 소개란에는 ‘산책자 겸 문장노동자’라고 쓰여 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내는 두 단어라고 이야기한다. 장 시인의 하루는 매일 걷고, 읽고, 쓰고, 단순하지만 풍요로운 사색으로 채워진다. 산문집 은 그런 그의 일상에 온유한 자극을 준 책이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매일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신간을 살펴본다는 그는 1년에 주문하는 책만 1000권에 달하는 독서광이다. 포털사이트에 그의 이름으로 된 책을 검색하면 100여 권이 나올 정도로 집필 작업도 충실히 하고 있다. ‘문장노동자’라는 별명이 꼭 들어맞는다. 그런 그가 추천한 도서 에는 영미 작가들의 아름다운 산문 32편이 담겨 있다.
“최근 읽은 산문집인데 자연이나 인생에 대한 성찰이 잘 녹아 있어요.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의 글들인데, 훨씬 여유가 느껴지고 글맛이 깊더라고요. 이런 책이 두루 많이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에 추천하게 됐죠. 저도 천천히 음미하면서 다시 읽고 있어요.”
길어진 중년, 적당한 긴장감이 필요하다
여러 주제의 산문 중에서도 그는 알도 레오폴드의 ‘산처럼 생각하기’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소나무의 죽음’ 등 자연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글이 인상 깊다고 했다. 평소 자연을 바라보는 풍부한 시선을 따뜻하고 지적인 언어로 표현해온 장 시인다웠다.
“인간의 평안과 안위 때문에 자연이 훼손되고 있잖아요. 그런 데서 오는 생태계 불균형이 결국 고스란히 우리에게 오게 될 텐데, 인간은 너무나 무관심하죠. 글에도 늑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제가 1960년대 서울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늑대 울음소리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런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돼버렸잖아요. 책을 읽고 그런 문제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중년 이후 꽃, 나무 등 자연에 관심을 두는 이가 많다. 그는 “자연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나이 들었다는 증거”라며 “생존 경쟁에서 물러나 삶에 여유가 생긴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에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다소 느슨해지는 중년의 삶을 묘사한 ‘오버롤스 작업복’이라는 글이 나온다. 소작농들이 입는 작업복인 오버롤스 세 벌을 각각 초기 중년, 중년, 후기 중년 단계로 설명했는데, 장 시인은 비유가 아주 탁월하다며 감탄했다.
“예전에는 30대 후반만 돼도 중년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마흔이 훌쩍 넘어도 중년이라는 생각을 잘 안 해요.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인데, 그래서 중·장년기가 상대적으로 더 길어졌죠. 그런 중년의 삶을 세 단계로 나눠 옷에 빗대 설명했는데 정말 참신하더라고요. 새 옷은 솔기도 살아있고 옷감도 견고한데, 시간이 흐를수록 단추도 헐거워지고 천도 닳아서 얇아지죠. 처음에는 깨끗하지만 빳빳해서 불편했던 작업복이 삶의 흔적대로 때가 묻기도 하고 해지기도 하면서 내 몸에 점점 익숙하고 편안해져요. 그런 은유가 중년의 삶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인생도 세월이 더해질수록 오버롤스처럼 부드럽고 느슨해지니까요.”
저자 제임스 에이지는 후기 중년 오버롤스를 ‘여전히 제구실을 완전히 해내며 최고로 편안한 단계’라고 설명했다. 장 시인은 나이가 들며 누리는 편안함은 양면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삶이 여유로워졌다는 면에서는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권태롭고 의욕이 떨어지기도 하죠. 꿈이나 생의 약동에서 멀어지는데 그러다 보면 아무렇게나 막 살아버릴 수 있거든요. 그러면 삶의 질이나 자기존중감도 떨어지죠. 중년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가장 활동적으로 살아야 할 시기이거든요. 뭔가를 이뤄낼 수 있는 나이에 느슨해지고 희미해지면 안 되죠. 적당한 긴장감을 느끼고 삶을 탄력적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길어진 중년의 삶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책 읽기는 뇌의 유산소 운동
그는 삶의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자기성찰을 하라는 말인데, 이를 실천하고 도울 방법으로 ‘책 읽기’와 ‘미니멀라이프’를 제시했다.
“책 읽기는 뇌의 유산소 운동과 같아요. 뇌에도 근육이 있는데, 책을 읽지 않으면 뇌의 유연성이 떨어지죠. 시집과 철학책은 뇌에 좋은 자극을 주고,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줘요. 인간에게는 세 가지 기억이 있어요. 절차기억, 학습기억, 신념기억. 절차기억은 아기가 엄마 젖을 빠는 것과 같은 선천적인 기억이고, 학습기억은 책 읽기나 경험을 통해 얻는 것, 신념기억은 정치나 종교적인 기억을 뜻해요. 그런데 책을 읽지 않으면 학습기억이 줄고 그 자리를 신념기억이 차지하거든요. 그러면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융통성이 없어지죠. 그렇기 때문에 나이 들수록 책을 읽고 학습기억을 키워 균형을 맞춰야 해요. 그래야 다른 세대와 원활히 소통할 수 있습니다.”
책은 많이 읽는 것이 삶에 이롭지만, 그 외의 것들은 최대한 적게, 단순하게 하는 것이 현상의 본질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다는 그는 적게 소유할수록 크게 생각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쌓여 있으면 그 물건의 진가가 잘 안 보여요. 겉으로는 풍족해 보일지라도 그 하나하나의 가치는 희석돼버리고 말죠. 불필요한 요소들을 걷어내고 꼭 필요한 것만 남겼을 때,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어요. 물건뿐만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욕심이나 사심을 비워냈을 때 본인의 가치를 발견하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죠.”
비울수록 충만해지는 행복을 경험하고 싶지만, 막상 물건이든 마음이든 비워내려고 하면 쉽지 않다. 수긍이 가는 말들이지만 결국은 실천이 문제다.
“버리는 삶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아요. 무언가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안심하고, 움켜쥐려는 성향이 강하거든요. 옷장을 열면 옷이 가득한데도 입을 옷이 없다고 하죠. 몇 년째 입지 않은 옷들이 걸려 있으니까요. 그러면 버리거나 누구에게 주거나 해야 하는데, ‘언젠가는 입을 거야’라는 생각에 그대로 걸어두죠. 하지만 그 ‘언젠가’는 오지 않을 확률이 높아요. 특히 나이 들어서 갖는 그런 욕망을 노욕이라고 하는데 남들이 볼 때 굉장히 추합니다. 불편하고 쉽지 않겠지만 실천적 결단이 필요하죠. 우리는 단호해질 필요가 있어요.”
삶의 단순화에 대한 장 시인의 시각은 그의 산문집 에 잘 나타나 있다. 모든 군더더기를 없애고 최소화하려 하지만, 독서와 산책만큼은 충분히 즐긴다. 글을 쓰는 게 그의 일이기에 육체보다는 정신적 노동에 과부하가 걸리곤 한다. 그럴 때 산책을 하면 어지럽혀져 있던 생각을 정리하고 비울 수 있기 때문에 정신적 피로를 푸는 데는 효과만점이라고.
“걷다 보면 사유가 깊어지고 자기성찰에 몰입할 수 있어요. 잡념은 사라지고 내면의 기쁨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죠. 물론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요. 무엇보다 걷는 동안 내가 살아 있다는 행복을 오롯이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자서전은 지나온 삶을 성찰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훌륭한 자기계발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때론 가슴을 적시는 소설이 되기도 하고, 희로애락이 한껏 버무려진 희곡이 되기도 한다. ‘내 이야기’ 즉, 직접 겪은 일을 자기 감정을 토대로 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내가 직접 쓰는 게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자서전을 만들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한 이들을 위한 방법을 정리했다.
민경호 세계로미디어 대표· 저자
>>STEP 1 준비 단계
자서전에는 소소한 일상부터 가치관이나 사상, 인생관, 국가적·사회적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 등 나와 관계된 모든 것이 들어갈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일반적으로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 목차를 구성한다. 오래전부터 써 온 다이어리 등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억력’과의 싸움이 된다. 과거를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방법을 실행해 가며 토막글을 쓰거나 메모해 두는 것이 좋다.
◇ 과거를 떠올리는 방법
➊ 연대별 주요 사회 사건과 내 기억을 연관 짓기
10년 단위로 그 시대의 주요 사건들을 정리한다. 각 사건이 일어날 당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일이 생겼는지 떠올려 보자. 큼지막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시간 순서대로 떠오르는 기억을 정리해 나갈 수 있다.
➋ 편지·사진 모으기& 추억의 장소 찾아가기
막연히 떠올리는 것보다 편지·사진을 보거나 고향 집, 학교, 직장 등을 다녀오면 새로운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온다. 직접 찾아가기 어렵다면 예전에 살던 동네나 이사 다닌 집, 사무실 등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➌ 질문지 활용하기
인터뷰를 하듯 세세하게 질문지를 만들어 시기별로 나누어 답을 적어 본다. 아동기·청소년기·청년기·결혼생활기·중년기·노년기 등으로 분류하고, 몇 가지 키워드를 활용해 질문을 이어간다. (예: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학창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나 선생님은? 첫 직장상사와 관계는? 신혼여행은? 중년기 공휴일에는 무엇을 했는가? 등등)
>>STEP 2 글감 만들기&구성하기
기억을 떠올리며 메모를 하거나 토막글을 써두었다면, 소주제를 정하고 여러 개의 토막글을 엮어서 서술해 보자. 소주제를 정하기 어렵다면 유명인의 자서전 몇 권을 읽어 보고 참고하는 것도 좋다. 다른 책의 목차나 구성을 활용해 글감을 마련하고, 얼추 윤곽이 잡히면 원하는 대로 재구성해 보는 것도 괜찮다.
◇ 자서전 내용을 독특하게 구성하는 방법
➊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 이름을 목차에 활용: 피터 드러커 자서전의 예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 목차를 보면 아주 독특하다. ‘할머니-인간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준유쾌한 사람’, ‘엘자와 소피-교육의 길을 제시한 노처녀 자매 선생님’, ‘폴라니 가-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흥미로운 가족’ 등 자신에게 영향을 준 주변 인물 또는 유명인의 이름을 소주제로 해 자서전을 꾸몄다.
➋ 시간 순서가 아닌 중요한 사건 순으로: 러셀 베이커 자서전의 예
미국 언론인 러셀 베이커의 자서전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흥미로운 구성이 눈에 띈다. 어린 시절부터 순차적으로 시작하는 일반 자서전과 다르게 그는 맨 처음 ‘제1장 어머니의 타임머신’이라는 소주제로 문을 연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와의 대화를 서두에 넣는 등 기억에 남는 사건을 먼저 이야기하고 당시 관련된 에피소드를 풀어 나가는 형식이다.
>>STEP 3 글다듬기&견적 의뢰
그동안 써 놓은 글감을 모아 자서전의 두께나 형태를 가늠해야 한다. 완성도를 높이려면 글쓰기나 스토리텔링 강좌 등을 참고해 글을 세련되게 다듬는다. 가능하다면 간단한 문법을 익혀 틀린 문장이나 단어는 없는지 확인한다. 인터넷으로 ‘맞춤법 검사’ 프로그램을 찾아 활용해 보는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자료가 정리됐다면 출판사 등에 자서전의 페이지 수나 크기, 레이아웃에 따른 견적을 의뢰한다.
인생에서 가장 좋을 때는 언제일까? 순진무구하고 혈기왕성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인문학자 김경집(金京執·57)은 “지금 내 나이가 가장 좋다”고 말한다. 그는 중년 이후의 삶은 ‘의무의 삶’을 지나 ‘권리의 삶’을 사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기에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라는 것. 그런 생각을 담아낸 책이 바로 이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책을 쓸 때 그는 40대 후반이었다. ‘나이듦’에 관해 이야기하기엔 덜 늙은(?) 게 아닌가 싶지만, 10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한다. 제목에 쓴 ‘나이듦’이란, ‘늙어감’이 아닌 ‘제 나이를 사는 즐거움’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 그가 이야기하는 ‘제 나이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려서는 어른처럼 성숙해 보이려 하고, 반대로 어른이 되면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이고 싶어 하죠. 그러니 정작 제 나이를 살아본 적이 없는 거예요. 오히려 자기 나이를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죠. 그렇게 힘들일 것 없이 제 나이에 맞춰 자연스럽게 즐기며 사는 편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늙는 것을 막을 수도 없잖아요. 그렇다면 자기 삶의 결대로 즐겨 보자는 거죠. 그런 마음으로 제 나이를 인식하고 누릴 방법을 찾다 보면 진정으로 내 나이가 좋아져요.”
그가 나이 들어 좋은 것 중 하나는 ‘자유로운 삶’이다. 의무감으로 바쁘게 살아왔던 지난날 못해 본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기쁨이 크다고 한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 역시 나이가 들어 얻게 된 것이니, 지금의 나이가 고마울 수밖에.
5차선 곡선도로를 달리며 음미하는 풍경
그는 40대에서 50대로의 변화를 도로가 4차선에서 5차선으로 확장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동안 달려온 4차선 도로는 직선이었지만, 현재의 5차선 도로는 자유로운 곡선형이라고 한다. 바뀐 것은 도로만이 아니었다.
“운전할 때 속도를 올리는 것만 신경 쓰면 주변 풍경을 놓쳐 버려요. 풍경을 감상하면서 가려면 속도는 떨어지고요. 초보 운전 때(젊은 시절)는 노련하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이제는 적당히 속도를 내면서 동시에 풍경도 볼 수 있는 나이가 됐죠. 직선도로의 속도와 곡선의 여유로움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어요.”
차선이 하나 더 늘어나며 생긴 변화도 있지만, 그의 인생에 가장 큰 변곡점은 교수로 지내던 가톨릭대학교를 떠났을 때다. 당시 그의 나이 쉰넷이었다. 정년까지 10년은 더 남았기에 그의 행동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도 용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시절 그려 보았던 인생 계획을 실천해 내기 위함이었다.
“서른 살 무렵에 막연히 ‘나는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마음껏 책 읽고 글 쓰며 문화운동에 뜻을 두고 살겠다’는 꿈을 꿨었어요. 누구에게 말한 적도 없고 혼자 괜히 무게를 잡은 건데, 살다 보니 잊고 지냈었죠. 근데 쉰이 넘어서 갑자기 떠오른 거예요. 한편으론 두렵더라고요. ‘이걸 정말 해, 말아?’ 결국 하자고 결심했고, 교수생활 딱 25년을 채우고 미련 없이 학교를 나왔어요.”
‘나였던 그 아이’와 ‘나인 그 아이’가 만나는 시간
계획대로 세 번째 25년을 살고 있는 그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꿈들을 되새겨 보곤 한다. 일하느라 바빠 잊힌 꿈도 있고, 이룰 수 없기에 애써 잊은 꿈도 있었다. 그는 삶의 무게를 한 꺼풀 덜어 낸 지금이야말로 꿈을 되찾고 이뤄 나가기 좋은 때라고 했다.
“젊어서는 능력도 부족하고 여유가 없어 하기 어려운 일이 많죠. 나이가 들면 그동안 형성한 네트워크나 삶의 노하우가 더해져 꿈을 실현할 가능성이 커져요. 오래전 꿈을 자꾸 돌이켜보고 새로운 꿈도 꾸며 작게나마 이뤄갈 수 있는 것도 나이 들어 즐거운 일 중 하나죠.”
그는 “꿈을 실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라며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에 나오는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라는 문장을 인용했다.
“사람들에게 ‘행복하세요?’라고 물으면 흔히들 ‘그렇다’고 해요. 돈은 많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고, 아이들 건강하게 잘 컸으니 이만하면 행복하다는 거죠. 그런 분들에게 ‘그럼 지금의 삶이 어렸을 적 꿈꾸던 그 삶입니까?’라고 되물어요. 그러면 대답을 잘 못 해요. 그 이유가 ‘나였던 그 아이’하고 ‘나인 그 아이’를 만나게 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해요. 꿈은 ‘나였던 그 아이’가 꾸는 게 아니라 ‘나였던 그 아이’가 꾼 꿈을 ‘나인 그 아이’가 지금 실현하는 거예요. 꿈이 없다는 건 ‘나인 그 아이’가 없거나, ‘나였던 그 아이’를 잊은 거죠.”
이 두 아이가 대화하고 서로 격려하며 때론 갈등도 하면서 자주 만나야 내적인 삶이 더 풍부해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그는 꿈을 잘 이뤄가며 사는지 궁금했다.
“‘꿈을 이룬다’보다는 ‘꿈을 누리다’라는 말이 더 좋더라고요. 꿈은 성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리고 있는 현실 자체가 즐거운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획득하려고만 하죠. 젊어서의 꿈은 목표지향적일 수 있지만, 나이 들어서의 꿈은 과정을 즐기는 데 의미가 있어요.”
그는 현재의 삶이 과거 꿈꾸었던 삶과 어느 정도 맞는 편이라고 했다. 30대 때 이루고자 했던 25년 단위 인생 계획도 잘 지켜가고 있다. 그러나 100세 시대라 불리는 요즘, 네 번째 25년에 대한 계획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는 10년쯤 후에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지만, 어느 정도 밑그림은 그려 놓은 듯 했다.
“75세쯤 되면 무언가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이어 주고, 다음 세대를 격려해 주는 일을 해야겠죠. 문화공동체운동 같은 걸 계속해 나가려고 해요. 아무리 좋은 뜻으로 만나는 모임이라도 부딪히는 일이 생기죠. 그런 갈등을 풀어 주고, 다시 연결하는 ‘매개 점’ 역할을 하는 게 어른의 몫이라 생각해요. 꿈은 혼자 이루는 것도 있고, 함께 해 나가는 것도 있죠. 혼자 악악거리며 사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꿈에 벽돌 한 장 쌓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새해 첫날 쓰는 인생의 끝자락
매사 꿈을 꾸라고 조언하면서도 그는 해마다 1월 1일이면 유서를 쓴다. 지난해 서랍에 넣어두었던 유서를 꺼내 읽고 새 유서를 쓰는데, 그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 남다르다고 한다.
“열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예닐곱 살쯤 아버지랑 산에 갔다가 못 내려오게 됐는데 밤하늘의 별을 보며 이런 말씀을 하셨죠. ‘저 별이 아무리 예뻐도 너만큼 사랑스럽고 아름답지는 않아. 아버지는 널 제일 사랑해’라고요. 조금 오글거릴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그 말이 살아서 마음이 흔들리고 어려울 때마다 생각나요. 그 한마디가 나를 지켜 준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도 인생을 사는 데 좌표가 될 만한 이야기를 남겨야 하잖아요. 언젠가 제가 떠나고 나면 서랍 속에 담아 뒀던 유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겠죠.”
매년 쓰는 유서는 일종의 인생 계획서이자 지침서가 된다. 다음 해 유서를 풍요롭게 채우기 위해 올 한해도 허투루 살지 않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고, 자기 성찰도 하며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 의미 있는 유서이지만 모아 두지는 않는다. 그런 행동도 집착이고 결국 얽매이게 된다는 것이다.
“새 유서를 쓰기 전에 한 번 읽으면서 ‘올해 결산 괜찮네!’ 하고 탁 태워 버려요. 그러고 깔끔하게 잊어버리죠. 내가 정해 놓은 거지만 가끔은 쓰기 싫을 때도 있어요. 그럴 땐 ‘그럼 음력설에 쓰지 뭐’ 그래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남의 눈치 봐야 하는 일도 아닌 내 자유니까요.”
추석을 전후해 매년 시대극이 흥행에 성공하는 것이 과거를 기리는 명절의 후광효과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마치 성묘하러 나서는 분위기로 영화 을 보러 온 가족이 나섰다. 개봉 전부터 요란한 홍보로 이미 영화의 반쯤은 알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 극장 문을 들어섰다.
사실이 그랬다. 이미 김지운 감독의 특징부터 의열단과 실재 인물인 황옥 경부의 실화라든가, 송강호의 연기에 주목하라는 등 사전 지식으로 무장한 채 영화를 보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영화의 전개도 초장의 충격적인 시퀀스라든가 열차 속의 액션 신 등 흥행 영화의 익숙한 공식을 잘 따르고 있다.
줄거리는 의열단원인 김우진(공유)이 조선총독부와 일본군 관계자들을 폭살할 목적으로 폭탄을 들여오기 위해 경성 경시청 경부 이정출(송강호)과 접촉한다. 그는 과거 초창기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다 배신하고 의열단에 관한 정보를 총독부에 제공하고 일본 경찰의 간부로 출세한 인물이다.
한편 일본 경찰은 의열단의 정체를 파악하고 일망타진하기 위해 이정출에게 의열단과의 접촉을 지시한다. 의열단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거꾸로 이용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그를 의열단 본거지인 상해로 부른 것이다. 이른바 반간계다. 이정출은 엉거주춤한 상태로 임하지만, 어느새 상황에 휘말린다.
영화는 기차가 달리면서 격랑에 빠져든다. 폭탄을 실은 열차 속에서 이정출은 마치 의열단원이라도 된 듯 자신을 감시하는 하시모토와 그의 부하들을 죽이고 열차를 탈출한다. 열차가 경성역에 도착하면서 운송 정보를 알고 기다리던 일본 경찰들에게 의열단원들은 무자비하게 죽거나 체포된다.
그 사이사이 무기 운송의 정보가 일본 경찰에 노출된다거나 함께 움직이는 의열단원이 배신자임이 밝혀지는 등 상황은 긴박하게 흐른다. 결국, 무사히 은닉된 폭탄을 이정출이 경시청 고위 간부들의 연회장에서 터트리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그렇다면 이정출은 다시 개과천선한 것인가?
그러나 그게 애매모호하다. 마지막의 법정신은 영화 에서 이정재가 열연한 법정신에 버금갈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이정출은 법정에서 자신은 의열단이 아니며 그동안 일본을 위해 충성을 다했다는 최후진술을 하고 풀려난다. 영화 속에는 그가 의열단을 진심으로 돕는 증거도, 그들이 일망타진되도록 작전에 임한 증거도 다 있다.
그렇다면 그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송강호는 자유자재로 표정을 바꾸어가며 모호한 경계인을 연기한다. 그래서 진실은 끝내 오리무중이다. 다만 마지막 의열단원 중 단장의 여인인 연계순(한지민)의 주검을 보며 오열하는 장면에서 안소니퀸의 영화 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회색 지대의 삶은 어떤 것일까? 이정출이 어느 편인가보다 그의 실존이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그가 삶에 집착했다기엔 그의 처신이 너무 위험했다. 단선적인 캐릭터인 김우진 역의 공유보다 송강호가 칭송받는 것은 이정출이라는 인물에 힘입은 바 크다.
김지운은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진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독특한 미장센은 시각적 쾌감을 주며, 루이 암스트롱이나 볼레로 등 상황을 역설로 들려주는 음악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스파이 극처럼 스릴을 주면서도 심리극으로 끌고 가 철학적인 성찰을 제공한 것은 그의 또 다른 성취이다.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실패가 쌓이고 우리는 그 실패를 딛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의 대사가 귀에 남는다. 어쩌면 이 말은 가혹한 시대를 살아냈던 극 중 모든 사람에게 바치는 헌사일지도 모른다.
혼자가 좋다. 때로는 갇힌 공간 속에서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있다. 외로움도 고독도 함께 즐기다 보면 생각을 넘어 긍정의 삶으로 충전되기도 한다.
*힐링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오늘날 온갖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다. 그 몰려오는 힘겨운 것들을 버텨나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적절한 힐링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또 다른 삶의 고갯길을 넘어야 하는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의 쉼터, 자신만의 아지트가 될 수도 있다. 하나하나 극복해간다는 것은 삶의 성숙이기도 하다.
필자에게도 살아가면서 숱한 고통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그때마다 자신의 차를 운전하며 어디론가 달려가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달래준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지나온 역경의 시간들이 어느덧 옛말같이 들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었던 순간도 지내왔고 견뎌왔기에 웃음 섞인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고, 또 감사하기만 하다.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자신만의 공간은 생각만 해도 필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곳에서는 저 한쪽 구석에 잠자코 웅크리고 앉아있던 엔돌핀들을 마구 흔들어 깨워놓는다. 무거웠던 가슴에는 다시 삶의 활기가 솟아나고, 모든 것들은 나 자신으로부터라는 조용한 성찰의 시간으로 만들어준다. 그 혼자만의 사랑스러운 시간에는 참회의 감정이 흘러내려 더없이 좋다.
필자의 신혼시절에는 참으로 힘든 혼란기간이 있었다. 성격이 다른 두 남녀가 만나 서로 어울려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한참 좋았던 시절에야 그리 다툴 일이 많지 않았지만, 짧은 달콤한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은 시작되었다. 남편과 언쟁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어느 날에는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달리는 차 안에서
갈 곳이 없다. 필자의 승용차에 올라타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의자를 뒤로 재치고 화끈하게 달아오른 몸을 눕힌다. 그래도 화가 다스려지지 않아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음악과 함께 치솟은 감정이 출렁대며 얼굴에 서러움이 흘러내렸다. 참아왔던 삶에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이다. 실컷 복받친 마음을 맘껏 쏟아내고 나면, 뒤틀렸던 감정들이 서서히 녹아내리며 머릿속에서는 선한 기운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또 살아야 했다. 여자가 아닌 아내, 두 딸의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그저 참고 인내하며 견뎌야 한다고, 음악의 선율들이 조용히 귓가에 충고를 해준다. 두 눈을 감고 달아오른 자신을 조용히 내려놓을 때 벅찬 가슴이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다시 쭈그러졌던 감정에는 긍정의 힘으로 새로운 활기가 솟아난다. 필자는 시동을 걸고 어디론가 정처 없이 달려간다.
어쩌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음악소리는 묵직하게 내려앉은 잿빛 하늘위로 분위기를 타고 흐른다. 그 기운 속에서 필자의 얼굴에도 어쩔 수 없는 삶의 속죄가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되는 순간이다. 모든 아픔들을 그렇게 털고 나면 머릿속은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비와 음악과 자신의 회한이 어우러지는 낭만으로 가득한 곳, 그곳이 바로 멋진 ‘달리는 차 안’이다.
도종환(都鍾煥·62)의 는 그가 교사직을 그만두고 깊은 산 속 황토 집에 머물며 쓴 산문집이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그는 가슴 따뜻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시인으로 불렸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라는 수식어가 덧붙었다. 그동안 세상도 참 많이 변했고, 그를 향한 몇몇 대중의 눈길도 달라졌지만 그는 여전히 들국화를 좋아하고, 연민의 눈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자 한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10여 년 전, ‘자율신경 실조증’이라는 희귀병을 앓던 그는 깊은 산골의 한 외딴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거북처럼 오래 그리고 느리게 살고 싶어 ‘구구(龜龜)산방’이라 이름 지은 그곳에서의 성찰을 담은 책이 바로 이다.
“그곳은 나에게 ‘영혼이 성숙하는 집’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은 비싸고 넓은 집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는 동안 영혼이 성숙해질 수 있는 집이죠. 거기서는 몸도 아팠고, 아주 쓸쓸하고 외로웠어요. 그러나 쓸쓸하지만 평화롭고, 외롭지만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죠. 내 생에 가장 깊어질 수 있었던 시절에 쓴 책인데, 당시 출판사가 단행본 사업을 중단하면서 책이 절판됐어요. 찾는 독자도 많고 나도 이 책을 그렇게 죽게 두긴 너무 아까워서 다시 내게 됐죠.”
그는 책 제목처럼 누구나 저마다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꽃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고 했다. ‘깨달음이란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닌,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라는 이현주 목사의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장미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봐요. 하지만 사람마다 끌리는 꽃이 다르죠. 누군가는 목련, 또 누군가는 라일락, 코스모스 등. 자기 내면에 그 꽃과 같은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끌리게 되는 거예요. 백합에 끌리는 사람은 백합 같은 마음으로 사는 게 중요한데 ‘왜 나는 장미가 되지 못했을까’라고 생각하지 말자는 거죠. 장미처럼 아름다운 사람도 있지만, 국화처럼 우아한 사람도 있고 저마다 자신이 본래 지닌 빛깔과 향기를 알고 아름답게 사는 게 중요해요.”
그런 그가 좋아하는 꽃은 무엇일까? 그는 오래전부터 들국화를 좋아했고, 들국화 같은 인생을 살고 있노라고 답했다.
“벚꽃은 진달래를 보고 질투하지 않아요. 개나리가 산수유 꽃을 보고 뒤에서 험담하지 않을 거고요. 그게 자연의 이치니까요. 그러나 사람은 다른 이와 비교하고, 미워하거나 선망하기도 하죠. 들국화는 봄꽃이 사람들의 관심과 박수를 받을 때 그 주변에 눈에 띄지 않고 머물러 있에요. 그러다 먼저 핀 꽃들이 지고 황량하고 쓸쓸해진 들에 피어나잖아요. 나는 그런 들국화 같은 존재입니다. 다른 친구들이 인정받고 두각을 나타낼 때 흔적도 없었지만, 언제고 피어날 것을 알기에 초조하거나 애타지 않았어요. 언제 피느냐보다 자신이 언제 핀다는 것을 믿고 사랑하면서 사는 게 중요한 거죠. 그러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어요.”
다시 고요한 강물이 되어 만나리
스스로는 남과 비교하며 살지 않지만, 그의 모습을 두고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달라진 점은 많지만,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1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죠. 구구산방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지금은 실천으로 옮기고 행동해야 하는 자리에 와있어요. 물론 권력에 눈이 멀었다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죠. 고요했던 강물이 돌길을 지나면 격류가 생기기도 하고, 낭떠러지를 만나면 거세지기도 하잖아요. 그러나 강물은 그대로 강물이죠. 저 역시 그래요. 내가 산속에 있는지, 정치 한복판에 있는지에 따라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 거예요. ‘너는 원래 고요한 물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거세질 수가 있느냐’며 말이죠. 그러나 그 외형만 변했을 뿐, 내가 강물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어요.”
돌길을 지나고, 낭떠러지를 만나며 폭포처럼 거친 모습을 지닐 때도 있지만, 그는 여전히 강물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시를 쓸 때도, 그리고 정치를 하는 현재에도 변함없는 마음속 연결고리는 ‘연민’이다.
“길에 핀 꽃 한 송이에도 걸음을 멈추고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게 시를 만나는 거거든요. 교육도 그래요. 어렵고 힘든 아이를 보면 연민을 느끼고 사랑하게 되죠. 정치도 마찬가지예요. 제대로 된 정치는 연민의 눈으로 국민을 바라보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해온 일들의 공통분모를 찾자면 바로 ‘연민’이라 할 수 있어요. 연민으로 바라보다가 사랑하기도 하고, 사랑하다가 연민이 생기기도 하죠. 때론 상처도 받아요. 시가 잘 안 써져 고통스럽기도 하고, 아이들 때문에 마음 아플 때도 있고, 국민의 혐오를 감당해야 하기도 하죠. 그러면서도 다시 또 사랑하게 되는 것, 그런 일을 하는 게 내 운명이라 생각해요.”
결국 가슴속 사랑이 남는다
상처 입고 고단한 삶에도 그가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그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자, 존재 이유와도 같았다.
“국회에서 정치하는 거 사실 굉장히 힘들거든요.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반대하고 욕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도 이런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를 고민해 보면, 결국 내가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준 게 남는 거라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남는 것이 바로 사랑 아닐까요? 내가 죽고 나면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지겠지만, 내가 준 사랑이 누군가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동안 나는 살아 있는 셈이죠. 내가 진정 연민의 마음으로 누군가의 가슴에 남는 사랑을 주고, 그런 시를 쓸 수 있다면 좋겠어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펜을 놓지 않는 그다. 자신을 강물에 비유했던 것처럼 글을 쓰는 본질은 같지만, 평지의 고요함에서 느껴지는 성찰보다는 돌밭의 거친 돌들이나 진흙탕을 지나며 느끼는 아비규환, 낭떠러지에서의 분노와 환멸 등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시 고요했던 강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지 궁금했다.
“폭포로만 이어진 강물은 없죠. 언젠가는 저절로 다시 잔잔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될 거예요. 강물이 흐르면 본래보다 더 깊고 넓어지는 것처럼,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끝으로, 그는 결국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자 하는가에 대해 물었다.
“‘좋은 시를 쓰던 사람’ 그리고 ‘정의롭게 살려고 애쓰던 사람’으로 남길 바랍니다.”
시니어의 삶과 우정을 주제로 한 tvN 드라마 . 고두심, 김혜자, 나문희, 박원숙, 신구, 윤여정, 주현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우리 주변에 한 명쯤은 있을 법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인물 간 갈등이나 사건을 통해 그들만의 우정을 진솔하게 그려낸 점이 돋보인다. 드라마 속 주인공과 에피소드를 통해 친구유형에 대해 알아봤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김동철 ㈜김동철 심리케어 대표원장·표현심리 박사
tvN 제공
◇ 시니어 친구유형
김동철 원장은 왼쪽 페이지의 드라마 속 캐릭터 성격을 참고해 각각의 인물을 동물, 색깔, 도형(모양)으로 표현했다. 나와 가장 비슷한 캐릭터는 어떤 유형인지 알아보자.
△오충남(윤여정)
정이 많고 오지랖도 넓어 손해 보는 스타일. 결혼, 연애 경험 없는 골드미스. 학력 콤플렉스가 있어 젊은 지성인들과 어울리려 한다.
Dr. Say: 코끼리/노랑/뒤집힌 하트
독신자들을 보면 자신은 자아성찰이 잘됐기 때문에 혼자 살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그렇지 않아 솔로인 경우가 많다. 커다란 코끼리처럼 아무도 덤비지는 못하지만 알고 보면 여린 존재. 애정이 필요하지만 결핍된 상황(뒤집힌 하트). 노랑은 콤플렉스의 상징.
△이성재(주현)
여자에게 다정다감한 현직 변호사. 학벌, 경제력을 갖췄지만, 아내와 사별 후 뭐든 후회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루라도 더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
Dr. Say: 버팔로/검정/사각형
재미있게 살려고 해도 관계는 사건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평안할 수 없다. 편안한 사람일수록 주변에서 갈등을 안고 찾아올 확률이 높다. 중후한 멋의 검정과 버팔로, 안정을 유지하려는 사각형.
△조희자(김혜자)
순수하고 얌전하지만 때론 집착이 심하다. 남편이 죽고 홀로서기를 다짐하지만, 막상 혼자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자살 시도 경험이 있고, 망상성치매를 앓고 있다.
Dr. Say: 나이 든 강아지/연분홍/타원형
늙은 강아지처럼 보호와 손길이 필요하다. 타원형이라는 것은 완벽하지 않다는 뜻. 삼각형이나 별 같은 반대 성향 또는 빨강, 파랑처럼 색이 확실한 친구를 두는 게 좋다.
△장난희(고두심)
생활력이 강하고, 화끈한 성격. 10년 전 남편이 죽고 ‘무조건 즐기자’가 인생 모토다. 사람들을 모으고 즐겁게 해주려고 하는 총무스타일.
Dr. Say: 치타/빨강/별모양
치타처럼 거침없다. ‘무조건 즐긴다’ 스타일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지만, 많은 사건에 휘말릴 위험이 커 절제가 필요하다. 리더·총무 역할을 잘하는 열정적인(빨강) 별 성향.
△이영원(박원숙)
화내거나 짜증 내는 법이 없는 쿨한 성격. 남자와 스캔들이 많은 화려한 배우로 살며 하는 사업마다 승승장구.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고독하다.
Dr. Say: 카멜레온/보라/스프링
다양한 매력의 카멜레온. 자기를 꾸미기 위해 무언가를 발산하지만 알고 보면 경계심도 많고 외롭다. 빨강도 파랑도 아니지만 분명히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보라색. 누구와도 잘 어울리며 유기적인 스프링 같은 사람.
△문정아(나문희)
검소하고, 매사 긍정적이며 쾌활하다. 친구들 중에 유일하게 남편이 있지만, 구두쇠에 고지식한 남편에게 억눌려 산다. 늘 자유를 꿈꾼다.
Dr. Say: 수달/초록/마름모
남편에게 억눌려 도전의식이 강해진 타입. 그녀에겐 현재가 청년기와 다름없다. 에너지가 충만하고 노련한 수달과. 에너지를 뜻하는 초록, 쾌활한 느낌의 마름모가 어울린다.
△김석균(신구)
꼰대 중의 꼰대, 남녀차별이 심하고, 짠돌이에 불 같은 성격. 중졸 콤플렉스가 있어 학벌과 관련해 자기 방어를 심하게 하는 편. 거칠고 화도 잘 내지만, 속정은 깊다.
Dr. Say: 말/군청/높은 원기둥
겉으론 험해도 아이가 자면 몰래 이불 덮어줄 사람. 삐죽삐죽한 도형이 어울릴 것 같지만, 마음은 동그라미. 가끔 야생마처럼 뒷발질도 하지만, 일 잘하고 묵묵한 말 유형.
◇ 가장 좋은 친구 유형: 장난희
나이가 들면 ‘소진 증후군’을 겪게 된다. 예전에 많은 것을 가졌고, 활동도 많이 했는데 늙으니 다 소진했다고 느끼며 우울해 하는 증상이다. 활발한 사람 곁에 있으면 활발해지고, 우울한 사람 곁에 있으면 우울해지는데, 노년기일수록 후자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장난희처럼 사람을 이끌고 활달한 친구를 만나는 것이 유익하다. 즐겁게 살려는 목표의식이 뚜렷해 곁에 두면 긍정적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 궁합이 잘 맞는 친구 사이
△문정아 & 김석균
고집이 세고 까칠한 배우자와 헤어졌다면, 부드러운 성격의 이성 친구를 만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전 배우자와 비슷한 유형을 만나 더 잘해주게 된다. 이미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훨씬 유연한 관계가 형성된다.
△이성재 & 이영원
가능하다면 사회적 지위나 지적 수준, 경제력이 맞는 친구를 만나는 것이 좋다. 인물 중에서 그런 조건이 가장 잘 맞는 것은 이성재와 이영원이다.
◇ 에피소드를 통해 본 갈등 사례&솔루션
△이성재 vs 김석균
중졸 콤플렉스를 가진 석균은 잘 나가는 변호사 성재에게 묘한 질투를 느낀다. 베풀고도 욕먹는 성재와 계속 자존감이 떨어지는 석균.
Solution: 콤플렉스로 인해 생긴 갈등은 과거에 형성돼 현재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좋은 대학을 나온 성재와 중졸인 석균의 경쟁은 나중에 자녀들 사이의 경쟁으로 번질 수 있다. 두 사람은 자녀의 학벌이나 직업을 두고도 콤플렉스로 괴로워할 수 있다. 성재보다 석균의 자녀가 우월하다면 콤플렉스는 해결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석균을 모임의 리더로 세우는 것도 방법이다. 석균처럼 갖은 고생을 한 사람들은 잔재주가 많다. 그런 강점을 부각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고, 성재가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해주면 석균의 자존감은 올라간다.
△장난희 vs 이영원
절친한 친구 사이였지만, 난희의 남편 외도 문제에 영원이 오해를 받아 사이가 틀어진다. 20년도 더 지난 일로 다투는 두 사람 때문에 친구들도 난감하다.
Solution: 사실 두 사람은 속으로는 오해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했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책임 지려고 하는 심리가 있다. ‘책임 강박증’이라고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 증상이 심해진다. 오해라는 것을 알지만, 그 상황을 인정해버리면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인생이나 소신 등이 모두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먼저 화해하지 않는 것. 제삼자가 중간에서 해결해 줘야 하는데, 이때 누군가에 편에 서거나 잘못을 따지면 오히려 싸움이 커질 수 있다. “얘는 이거를 잘했어”라는 식으로 서로 칭찬을 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자.
77세 현역 극작가 윤대성의 신작 (이윤택 연출·연희단거리패)가 부산 초연에 이어 서울 공연도 성황리에 마쳤다. 이 연극은 치매요양병원에서 벌어지는 치매 노인들의 사랑이야기로, 독자들이 공감할 만한 연극이다. 이에 독자들을 대신해 동년기자단 11명이 서울 공연 첫날이던 지난달 7일 공연장을 찾았다. 연극 관람 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치매 환자, 가족, 현실과 연극에서 느꼈던 치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녹취정리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동년기자단 김종억, 김진옥, 박혜경, 백외섭, 성경애, 양복희, 육미승, 이인숙, 장영희, 장원일, 조왕래
-연출가 이윤택이 말하는 연극
는 100% 하고 싶었던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이 극을 쓰신 윤대성 선생님은 지금 요양원에 계십니다. 공연 팸플릿에 쓴 ‘작가의 글’을 보면 ‘내가 지금 요양원에 있고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나이든 노부부가 스스로 요양원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쓰신 글입니다. 그리고 아버님이 치매로 돌아가신 연극계 여성의 구술 증언과 윤대성 선생님이 보내주신 ‘제3병동’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연극입니다.
-고령화 사회, 시니어 세대에 접어들었지만 치매 소재 연극은 처음
저도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지만 부끄러운 게 이 소재를 가지고 공연해본 적이 없습니다. 막상 해보니까 이게 사실적으로 표현하면 정말 심각한 비극이 될 것 같더라고요. 사실적으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나이 든 분들의 진실과 관련된 문제인데 또 가볍게 갈 수도 없었습니다. 굉장히 힘든 작품이었죠. 조심스럽게 사례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본 검증을 치매관련 기관에서 받았습니다.
“치매에 대한 예방책이 있을 거 아닙니까?”라고 했을 때 원래 대사는 “없다, 끝이다”였습니다. 사실 여러 가지 예방책을 얘기하지만 인간의 의지로서는 이겨낼 수 없는 것이 치매입니다. 그래서 “이제 남은 것은 투쟁이다. 투쟁!”으로 바꿨습니다. “없다”는 말을 “투쟁”으로요. 연극을 만드는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치매에 걸린 당사자들이 이 작품을 봤을 때 불쾌하거나 나쁜 기억을 가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것도 연극인데 너무 한 쪽만을 보여서 연극을 재미없게 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현실과 연극, 양쪽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만든다는 게 힘든 작업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을 공연하자마자 전국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한 백화점에서는 작품도 보지 않고 전국 순회공연을 제안했습니다. 내용이 고령화 사회이고, 백화점에 오시는 분들이 연세가 있는 분들이 많고 또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죠. 많은 지원은 하지 못하겠지만 전국 순회공연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동년기자단도 오늘 단체 관람을 오셨지만 시니어들의 단체 관람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 이런 연극을 해야겠구나. 정말 시니어를 위한 연극이 없었구나! 문화가 없었구나! 시니어들에게 어떤 공연 문화가 필요할까’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해피앤딩 대신 따뜻한 이별
이 공연을 하면서 극단과 저의 전략은 ‘없는 희망을 가질 수는 없다. 해피앤드로 끝날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극 중에서 어르신이 치매로 죽습니다. 죽더라도 아름답게 죽자. 마지막에 여주인공이 “할 말 없지요? 그냥 가세요.”라고 말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 삶의 의욕에 ‘사랑’이라고 하는 묘약을 던져서 기분 좋게 돌아가시도록 하는 정도가 목적이었습니다. 공연을 하면서 제일 두려웠던 것이 실제 시니어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연극은 나이 드신 분이 보아야 할 게 아니라 치매 노인을 모시는 며느리나 아들, 손자가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 연극은 창작극입니다. 그것도 77세 현역 극작가가 진짜 자신의 기억을 갉아 먹어가면서 쓰신 작품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우리는 막을 올려야 했습니다. 좀 거칠지만 우리 창작극의 역사가 100년밖에 안 되지만 창작극이 가지고 있는 감정적인 동기, 실제로 받아드릴 수 있는 것이 창작극의 매력이 아닌가 하는 심정으로 작품을 올렸습니다. 오늘 저는 보통 서성거리지 않는데 자신이 없어서 문 뒤에 서서 연극을 본 게 아니고 관객을 봤습니다. 관객을 봤는데 모르겠어요. 고등학생에서부터 시니어까지 다양하게 오셨는데 어떻게 재미있게 볼 만 했습니까?
김진옥 치매라는 주제를 가지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다뤄주신 것 같아서 아주 좋았습니다.
이윤택 그렇게 보셨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장영희 이라는 단편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가 최고상을 받았다고 해서 본 적이 있는데 이 작품과 비슷하게 사랑이 찾아오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연극이 전달하는 의미가 훨씬 가슴이 와 닿았고요, 굉장히 좋았습니다. 선생님께 묻고 싶은 것은 극중 여주인공이 전혀 기억이 전혀 안 나다가 기억이 돌아온 것인가요?
이윤택 마지막에 긴 독백을 하지 않습니까? 그건 본인의 기억이에요. 그런데 그게 여주인공의 기억이기는 하지만 재창조한 거죠. 기억의 재구성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사실 이 작품이 쉬운 작품이 아닙니다. 구조적으로요. 이게 의식과 무의식을 왔다 갔다 하죠.특히 이 할머니 역할이 굉장히 어려운 역할입니다. 쓰러졌다 울다, 웃다를 반복하죠.할머니의 고향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기본이 되고 그 기억을 밑천으로 남자 주인공이 원하는 기억 속으로 재창조해서 들어간 것입니다. 상상력, 그러니까 창조죠. 그 장면이 이 연극의 압권입니다.
양복희 스토리가 사실은 아니잖아요. 치매 환자는 과거의 기억들을 영롱하게 기억할 수 없잖아요.
이윤택 보통 치매 환자들은 확인해 본 결과 현재 기억이나 현실적인 기억은 잊어버리는 대 신 기억 하는 패턴은 있어요. 그런데 너무나 명확하게 기억한다는 것이죠. 치매라는 것이 제 일 안타까운 것은 치매 환자들의 정신이 이중적으로 갈린다고 해요.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을 자신이 안답니다. 기억이 안 나는구나 하는 것을 본인이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표정이 너무 힘들어서 연극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라고 하죠. 이성이 살아있지만 한편으로는 모르는 거죠. 이 이중적 거리 때문에 힘들다더라고요.
육미승 그 흥미를 위해서 현실적으로 기억을 되살린 것으로 보였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치매 환자가 잠깐 알아볼 수는 있지만 그렇게 길게 알아보지는 못한다고 들었는데 극적인 흥미를 위해서 그렇게 표현하신 건가요?
이윤택 아까 잠깐 잠깐이라고 하셨는데 남자 주인공의 어머니가 지금 치매입니다. 어머님이 이 연극을 보셨어요. 쉽게 말해서 어머님이 이 연극을 이해를 못하세요. 그런데 또 어떤 부분은 이해하세요. 인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연극이 아닙니다. 있어야 하는 현실, 우리가 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적인 모델을 만든 것이 연극입니다. 대부분의 치매 환자들이 기억을 망각하고 뭘 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들에게 이런 꿈이 있다, 상상할 수 있고 창조할 수 있다는 가설을 만들어내는 것이 연극이라는 거죠.
장영희 호스피스 병동 이야기를 다룬 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 들어가면 평균 21일 안에 사람이 죽기 마련인데 어떤 사람이 살아서 나왔다더라고요. 그래서 영화 초반에 나오다 왜 그 사람 이야기를 후반에 쓰지 않았냐고 영화감독에게 물었더니 “쓸데없는 희망을 갖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분을 배제했다”고 답했습니다. 선생님은 치매 환자를 몇 번씩 살리고 기억도 살리셨잖아요?
이윤택 두 가지 개입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는 것도 하나의 판단 선택일 수 있죠. 우리 연극에서 기적이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우리는 기 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술의 기능이라는 게 어느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앞에서 말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아주 현실적인 사고겠죠? 나는 그래도 기적을 만들어내겠다는 상당히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접근 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고가 다른 것 같습니다.
정원일 질문 하나하고 소감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까 뒤에서 보셨다고 했잖아요. 관객들의 반응에서 일치된 면과 가장 안 맞아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윤택 안 맞아 떨어진 것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관객들에게 원했던 것은 딴 것은 없고 집중력이었습니다. 관객들이 하품하거나 졸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중이란 면에서 확실했습니다. 그리고 더 알맞았던 점은 조금 웃어줘야 할 때 다 웃어주셨고 조 금 긴장해야할 때 다 긴장했고요. 저는 오늘 관객에 대해서 상당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원일 소감을 말씀드리자면 남녀 주인공이 대화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갈 때 가장 재밌었습니다. 다른 배우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그렇게 가볍게 장치를 안 해 놓으셔도 두 분이 치고받는 대사들이 집중력 있고 재밌었다.
조왕래 치매관련 연극이라기에 전철로 2시간 거리인 파주 월롱에서 왔습니다. 치매 전문 봉사자 활동을 5년째 하고 있는데 수많은 치매 환자들을 만나고 있어요. 주로 치매 환 자들 중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연극을 통해 일반인들이 치매라는 병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 늘어나게 되면 치 매 환자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텐데 건강한 노인이 덜 건강한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 어(老老Care)가 될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합니다. 다음에 그런 내용을 연극에 넣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윤택 치매의 원인은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은 가족에서 온다는 게 있습니다. 연극에서 가족 이 재구성되잖아요. “이 사람이 네 아버지다”라고 하는데 실제 아버지는 아니지만 실질적인 가족보다도 진짜 진실이 통할 수 있는 가족인 것이죠. ‘외로움이 치매의 원인이다, 치매를 사랑으로 극복해야 한다’가 애초의 주제였습니다.
성경애 많이 울었어요. 엄마가 생각나서요. 엄마가 그렇게 돌아가셨거든요. 너무 생각이 많이 나고 웃다가 울다가 배우 여러분 너무 감사하고요. 오늘 여기 오기를 너무 잘한 거 같아요. 그냥 저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나이거든요. 너무 애쓰셨습니다. 다 하 나하나 소중하게 다 잘해주셨습니다.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이윤택 오늘 주연 배우 두 명이 다 울었어요. 아까 김철영씨도 울었고 김미숙씨도 통곡을 하는데 연습할 때 평소 보지 못했는데 막 울더라고요. 오히려 울어야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진옥 그런데 실제 치매 환자는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이중인격처럼 극과 극을 치달아요. 편안하게 살았던 사람도 치매가 되면 폭발을 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 이 되는 것을 많이 봤어요. 정말 인품 좋던 분이 정말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뀌는 것도 봤습니다. 너무 잔잔한 것 같은 느낌?
이윤택 그 부분에 대해서 예술적인 동기를 말씀드리면 치매에 대해 불편하게 갈 것인가 하 는 개념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 개념에서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1915~1980)의 결핍에 대한 결핍을 채우는 쪽으로 갈 것이냐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오스트리아)로 갈 것이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프로이트적인 것은 ‘치매의 원인’을 밝혀야 한다. 파헤쳐서 환자가 그 원인을 알아야 낫는다’는 게 프로이트적인 심리치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원래 넌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알아버리면 안 된다는 거죠. 오히려 프로이트적인 심리치료가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 났어요. 롤랑 바르트의 방법은 환자들에게 아름다운 것, 환자들에게 결핍된 부분을 계속 이야기하는 거죠.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나쁜 점, 추악한 점은 모르게 해라, 계속 좋은 것만 이야기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결핍되고 나쁜 것들이 순화된다고 하는 게 롤랑 바르트의 이론이에요. 많은 분들이 치매 환자가 연극에서처럼 곱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정말 리얼하게 보여준다면 치매 환자들은 더 나빠진다는 것이죠. 저 희가 치매병원에 가서 이 공연을 해야 하는데 가서 우리가 이런 공연을 할 때 치매 환자들이 실제로는 막 이러는 사람들도 본인들도 얌전하게 볼 겁니다. 아까 말한 대 로 연극은 현실 그대로가 아닙니다. 연극을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것은 연극 만드는 사람들의 장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뭐 저나 우리극단이의 입장은 너무 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약간 조금은 버전 업 시키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박혜경 저는요 사실 크게 잘 모르고 왔어요. 굉장히 무거우면서도 슬프면서도 자신을 성찰 하는 시간이었어요. 저도 시니어 초년생인데 앞길에 대한 생각 자식 생각도 했어요. 어린아이들이 와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공연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도 느꼈습니다. 의사선생님도 치매에 걸린 건가요?
이윤택 치매 사례 중에 ’오동추 목사’라는 것을 봤습니다. 의사가 치매 많이 걸립니다. 의사 가 치매 환자라는 설정, 정신과 의사들이 많이 정신병에 걸립니다. 현실을 정신병자 시각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아버님부터 치매로 죽었고, 실제로 ’오 주여’하다가 오동추가 튀어나고는 것이고. 실제 사례였습니다. 결국 치매는 하나님도 도울 수 없는 문 제라는 뜻이었습니다. 극 중에서 의사는 치매요양병원을 자가 운영하던 사람이고 60 대였고 또 딸은 50대였잖아요. 유전이 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관 객 마지막 장면에 의사나 딸 또한 치매에 걸리면서 끝나는데 젊은 사람들도 안전할 수 없다, 남의 일이 아니란 뜻을 보여준 건가요?
이윤택 작가 선생님이 마지막 장면을 중요하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치매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을 주고 싶었다 하더군요. 서로를 이해하는 세대 간 소통 연극이 돼야 하지 않나. 고령화 사회와 아들 세대, 손자 세대 3세대가 봐야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치매협회 전문가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고쳐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치매에 대한 두려움과 불쾌감 혐오를 가지시는 분들에게 이 연극을 통해서 ‘너무 그러지 마라. 불쾌하게 꺼리지 마라. 인간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라고 인식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 효과를 노리는 것이죠.
장영희 저는 웰 다잉 차원에서 아름다운 마무리, 마침표에 접근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에 “아 무 걱정 말고 가세요”하는 부분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좋은 말로 보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이윤택 이왕 죽는 데 “편하게 갑시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외 동년 기단 의견
김종억 동년기자
대개의 사람들은 치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다. 연극 는 무거운 주제를 약간은 극적으로 구성해 무겁지 않게 했다. 실상 치매 환자가 극처럼 전개되지는 않는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있을 수가 없다. 실생활에서 한두 번쯤은 치매환자를 겪어보았거나, 현재진행형일 수 있기에 더욱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 소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출자의 말대로 너무 무겁게 전개한다면, 현실적일 수 있으나 보는 이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보다는 너무 가혹한 현실을 인지시키는 일’ 일 수 있다. 는 조금은 밝게 터치해 나가면서 잔잔한 마음의 울림을 가져오기에 괜찮았다. 치매와 관련된 당사자나 가족들이 드러내 놓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기에 그 상황을 직면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안으로 삭이면서 자신의 현상을 괴로워하고 속상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누구든지 나이가 들면, 올 수 있는 현상으로 자각하고 사회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예방하고 관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백외섭 동년기자
좋은 주제로 열정적인 연기를 한 출연진과 공연준비를 한 제작진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남달리 관심이 많은 것은 치매 10년차 노모가 노인요양원에 계시기 때문이다. 한 달에 2번 이상 문안드리면서 어머님을 비롯한 다른 환자의 발병 원인과 병증세가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발병 원인은 연극에서처럼 유전도 있지만, 사고가 의외로 많다. 필자의 모친께서는 낙상에 따른 고관절 수술 후 치매가 천천히 진행되었다. 고령자는 자기가 의식하지 못하는 조그만 사고가 치매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주위에서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고령이나 유전으로 치부하고 있다. 다양한 발병 원인을 연극에 가미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증상도 기억력 상실만이 아니다. 이상발작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때는 정상인보다 더 힘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치매를 불치병으로 여기는 현재의 의료 환경에 가슴이 미어진다. 시니어는 부지불식간에 닥치는 낙상이나 상처를 특히 조심하는 등 치매예방 노력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표도로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1821~81)는 러시아 모스크바 근교 빈민구제병원 관사에서 7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3세 때 기숙학교에 다녔고 이후 상트 페테르부르크 공병사관학교를 다녔고, 16세 때 어머니가 사망하였으며, 18세 때 폭군이나 다름없었던 아버지는 농노들에 의해서 살해당했다.
1847년 28세 때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페트라셰프시키 집에서 매주 한번씩 모이는 문학모임에 참가하여 문학 철학 정치 등 광범위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벌이다 비밀서클조직 가담 죄로 체포되고 조사를 마치고 4달 후 총살을 받기 위해 처형장에 끌려나왔다. 그러나 황제의 특명으로 목숨만은 건졌으나 시베리아 옴스크로 유배되어 4년 동안 강제노역을 당하게 되는데, 니콜라이 1세가 국가전복 기도를 방지하려는 차원에서 기획된 사건으로 추정된다.
그는 석방된 후 4년간 국경수비대 사병으로 일했고, 이 무렵 하급관리의 미망인 「마리아 드미트리 예브나이사예바」를 만나 결혼하였으나 그녀와는 폐결핵으로 사별하고, 그 후 대학생 「아폴리나리야 수슬로바」를 만나 사랑에 빠져 함께 유럽여행과 룰렛 도박 등을 즐기지만 수슬로바와 헤어진 후 돈이 필요한 나머지 악덕출판업자를 만나 불공정계약(1개월에 소설 1권을 못쓸 경우 모든 판권을 넘긴다)을 체결하였다가, 계약을 지키기 위해 20세의 속기타이프 ‘안나 스니트키나’를 고용하게 되는데 곧 정이 들어 부부가 된다. 그는 ‘안나’의 헌신적 내조에 힘입어 죽을 때까지 큰 정신적 위안을 받는데, 소설 속의 ‘소냐’는 부인 ‘안나’를 닮았다.
도스토옙스키는 보잘 것 없는 외모에 36세 무렵부터 간질병을 앓았고 도박의 광이기도 하였다. 친형 미하일이 창간한 월간지 「브레미아(Vremya) 시대」의 전속 작가로써 글을 쓰면서 법정사건을 탐색해나가다가, 살인을 하고도 뉘우침이 없고 오히려 성취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감방에서 문학 정치 종교 등에 관심을 보인 시인 「라스네르」라는 범죄자에 주목한다. 그는 시베리아 유배생활 속에서 이 범죄자로부터 영감을 받아 「죄와 벌」을 구상하게 되었다 한다.
소냐의 선(善)을 통해 라스콜리니코프의 악(惡)을 회개하게 만들다
「죄와 벌」은 1866년, 도스토옙스키의 나이 45세에 쓰여졌다. 소설의 주인공 「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리니코프」는 가정교사 일을 하는 젊은이였으나 그 일을 그만두고 집안에 머무르면서 무료함으로 미칠 것 같은 느낌을 받고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 비관적 성격의 '마르멜라도프' 라는 사람을 만난다. 그는 관리였으나 해고된 후 지인에게 고용되어 일을 하나 월급을 털어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의 딸 '소냐' 는 스스로 창녀가 되어 집안 생계를 꾸려간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그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허름한 사글세방에서 부인 카테리나는 폐병을 앓고 있었다. 마르멜라도프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월급을 어디에 썼느냐’며 처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욕설을 퍼붓는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그 집을 나와 생각에 잠긴다. 전부터 수전노에다 인간적으로 형편없는 돈 많은 전당포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죽이고 그 재산으로 좋은 일에 쓰자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를 실행에 옮기기로 한 것이다. 돈만 밝히는 그녀는 돈이 많아도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모았고, 리자베타라는 동생이 있는데 착하지만 순하고 겁 많은 그녀를 하인 부리듯 부려먹으면서도 유언서에는 동생의 몫이 없었다. 세상에 해만 까치고 도움될 일이 없는 악독한 노파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리자베타가 집을 비운 사이 전당포를 찾아가 물건을 저당 잡히는 척하며 노파가 방심하는 사이 도끼로 노파를 죽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때 리자베타가 들어오며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되자 함께 살해해버린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나 그 후 웬일인지 열병에 시달린다. 한편, 어머니가 보낸 편지에서 동생 '두냐'가 돈 많은 관리(표트르 페트로비치 루진)에게 시집가게 되었다는 글을 읽고 격분한다. 얼마 후 그 루진이 라스콜리니코프를 찾아오는데 돈 많은걸 이용해서 가난한 처자를 묶어두려는 속셈으로 판단하여 싸늘하게 대하자 화를 내며 떠나간다. 루진과의 약혼을 위해 페테르부르크를 찾은 어머니와 두냐는 열병을 앓는 라스콜리니코프를 간호하고, 라스콜리니코프와 루진의 다툼을 알고서 화해시키려고 같은 자리에 모이게 한다. 하지만 둘은 화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루진은 마치 결혼을 적선이라도 하듯이 거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보인다. 이에 어머니와 두냐도 화를 내고 그를 쫓아버린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라고 여겼지만 엉뚱하게도 루진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다른 일을 벌인다.
이후 라스콜리니코프는 이상한 행동을 하며 자기 범행을 농담식으로 수사중인 사람들에게 떠벌린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가 잠시 미쳤을 뿐이라 여기며 수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포르피리라는 영리한 예심판사는 그를 의심하고 집요하게 수사를 한다. 사건은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엉뚱한 사람이 체포되어 조사를 당하고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자백한다. 그럼에도 포르피리는 집요하게 라스콜리니코프를 의심하며 그를 떠보고, 라스콜리니코프는 아닌 체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휩싸인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어떤 사람이 마차에 치이는 광경을 목격하고 다가가보니 예전 주점에서 만난 마르멜라도프라는 사실을 알고 황급히 집으로 데려다주지만 그는 숨을 거둔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가진 돈을 모두 그의 장례비용으로 내놓는데, 그 후 마르멜라도프의 딸 '소냐' 가 찾아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에 닥친 불행에 도움을 준 라스콜리니코프의 은혜에 감사하며, 추도식을 할 것이니 찾아와달라고 부탁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라스콜리니코프의 불안은 점점 심해지고 그러던 어느 날 죽은 마르멜라도프의 장녀이자 창녀인 '소냐' 를 찾아간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녀에게 동정심을 품는다. 그러면서 창녀인 그녀가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것을 알고 어떻게 저런 고귀한 품성을 지닐 수 있는지 의심하면서 이런저런 악한 말로 그녀를 괴롭힌다. 무신론자인 그는 소냐의 신앙마저 괴롭히는데 그녀는 그의 이해할 수 없는 공격에 괴로워하지만 올곧은 마음은 오히려 라스콜리니코프를 괴롭게 한다. 그러다 그는 소냐에게 자신이 노파와 리자베타를 죽인 사실을 고백한다. 리자베타와 친했던 소냐는 충격을 받으며 그를 원망하면서도 죄인 라스콜리니코프를 위해 기도를 하고 그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따라 가겠다고 말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포르피리의 수사는 집요해서 드디어 혐의를 굳히고 최후의 협박을 한다. "이미 진상이 파악됐으니 2일안에 당신을 체포하겠다. 그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라는 내용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때가 됐음을 알고 정리를 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결국 소냐에게 향하고, 자신의 죄를 알게 된 소냐에게 자수하러 간다고 말을 한다. 소냐는 죄를 씻기 위해서라도 빨리 자수를 해야 하며, 자신은 그를 위해 어디든 따라가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결국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수를 하고, 포르피리는 그를 위해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는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여러 사람이 도와줘서 매우 유리한 재판을 받고 8년이라는 형벌로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고 소냐는 그를 따라간다.
「죄와 벌」은 인간의 신념을 심판하고 있다 '
흔히들 『죄와 벌』은 인간의 죄의식을 탐구한 소설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리고 선과 악의 2분법으로 소설의 모든 내용을 재단하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죄의식을 탐구한 소설이라기보다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죄가 아닌가를 묻는 인간의 신념을 생각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살인을 하고도 죄의식을 갖지 않는 신념,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고 종교적 신념이 강하지만 가정형편상 창녀생활을 통해 삶을 꾸려가는 소냐의 신념, 두냐의 약혼자였던 루진이 돈의 위력을 앞세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신념, 마르멜라도프의 추도식이 끝난 후 만찬을 여는 처 카테리나의 과시욕에 대한 신념, 장발장의 죄를 밝히기 위해 추적을 멈추지 안했던 자베르 경감처럼 라스콜리니코프의 죄를 의심하고 끝까지 수사를 한 포르피리의 신념 등이 그것이다.
누구나 나름대로 옳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신념을 갖지 못했다면 ‘남이 시장 가는데 시장갈 일이 없으면서 장바구니 매고 시장을 가는 인생’을 사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도 나름대로 자기 신념을 따라 시간적 공간적 상황에 맞춰 살아간다. 도스토옙스키에게 비밀서클조직 가담을 한 죄를 씌워 시베리아 유배를 보낸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신념이나 도스토옙스키가 수많은 좌절 방황 속에서도 「죄와 벌」을 완성시킨 신념 등도 같은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올바른 신념을 가진 것인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올바른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인지 그것을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의 대립, 기독교과 이슬람 종교 등의 대립,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신대륙 인디언들에 대한 몰살 등은 물론이고, 같은 나라에서도 종교 정치 경제 과학 문화 학문 환경 지역 체육 학교 등 갈등의 모순, 그리고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떠드는 종교적 믿음을 빙자한 협박 등도 같은 것이다.
올바른 것과 상대적으로 올바른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절대적 올바른 것을 알면 그 신념에 따라 살아가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것을 모르면 상대적 올바름이 절대의 것이나 되는 것처럼 잘못된 신념을 갖게 되어 그 눈 밖의 존재는 있어서는 아니 되는 존재로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빨간색 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이 온통 빨갛게 보이고 파란색 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이 온통 파랗게 보이는데, 절대 올바름을 모르면 지금까지 인류가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처럼 미래도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실 「죄와 벌」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가 2명의 살인을 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인류는 자신의 생각(사고, 사상, 종교, 신념, 이념 등)만 옳다고 생각한 나머지 수많은 사람을 집단적으로 학살해왔고 지금도 그것을 멈추지 않고 지금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평소 빨간색 안경이나 파란색 안경이나 노란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온 삶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지만, 색채와 형태가 없는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나 만물이 있는 그대로 보인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있는 그대로 보면 만물이 없어서는 아니 되는 존재가 되고 색채와 형태를 가진 눈으로 보면 만물은 편 가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것을 천성(天性)과 지성(地性)의 시각으로 설명을 한다. 지성이나 지성을 닮은 사고는 색채와 형태를 갖기 때문에 상대성을 가져 편 가름을 할 수 밖에 없고 천성이나 천성을 닮은 사고는 색채와 형태가 없기 때문에 절대성을 가져 편 가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인성(人性)이나 인성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인성교육을 시킬 것인지 정확하게 성찰할 수 있는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을 찾기 어렵다. 천성과 지성의 차이를 모르고 인성을 가르치면 또 다른 색채와 형태로 편 가름하는 사람 또는 편 가름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에 불과하다. 인성교육은 사람이 사람다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만드는데 있다. 그렇게 교육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죄와 벌」을 통해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