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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창업] 전직성공, 앙코르 커리어에서 찾다
- 시니어 전직지원 전문 ‘앙코르 브라보노 협동조합(이사장 신창용)을 찾았다. 충정로 소재 이동교육장을 살피고 궁금한 점은 정운관 이사에게 질문하였다. 창업을 준비하는 이재동(73) 교육생에게 궁금점 몇개를 물어왔다. △참가동기와 희망은 무엇인가. “100세 장수시대라지만 50대 초반이면 은퇴가 시작되는 것이 현실이다. 70대 중반에 이르렀지만, 인생 재설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터득한 귀중한 경험을 후세대와 공유하며 보람차게 살고 싶다. 청장년 일자리창출에 기여하는 창업을 하고자 한다.” 앙코르 브라보노협동조합은 2015년 10월 13일 설립하였다. 조합원 11명은 20~30년 금융, IT, 제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40~60대 중장년으로 구성되었다. 사회적 경제, 전직지원, 상담 및 코칭 등 협업도 전문화 되었다. △조합의 사업목적은 무엇인가? “장년 퇴직(예정)자 및 경력단절 여성에게 인생후반 수입 뿐 아니라 개인적 의미, 사회적 가치를 만족하는 앙코르 커리어를 제공하고, 사회적 경제 기업에 진정성과 지식을 갖춘 앙코르 인재를 육성, 연결하는 것이다.” △사업모델 및 상품, 서비스는 어떻게 특화되었는가? “앙코르 커리어로의 전직지원, 전직지원 코치, 상담, 전문가 양성 및 커리어 전환을 위한 컨텐츠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현장중심 커리큘럼을 운영한다.“ 조합은 2015년 사회연대은행 KDB 시니어브리지를 시작으로 신나는조합, 사회적기업진흥원, 동부여성발전센터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사회적기업가 육성, 취업과 전직지원전문가 과정을 운영한다. 전직지원 성공요인은 어디에 있는가? “조합원은 열정과 시간을 가진 퇴직자가 중심이다. 신나는 조합, 사회연대은행 등 사회적 기업 중간관리기관과의 협약을 통한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교육과 전직을 연계하는 사업이 주효하다.” △교육생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영리 기업에서의 오랜 경륜은 살리되 새로운 일터, 사회적 기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을 지시하던 과거와 달리 많은 것을 직접 해야 하므로 자기 역량 강화에 노력하여야 한다.” 정운관 이사는 장래 계획을 “한국의 선도적 사회적 기업으로서 특히 베이비부머의 안정적인 앙코르 일거리 찾기에 주력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80년 만의 초여름 더위가 대지를 달구고 있다. 건강에 유의하면서 시니어의 전직지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바라며, 정운관 이사의 보충설명에 감사한다. 홈페이지: www.encorebravono.com
- 2016-06-0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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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창업] 시니어, 취·창업연계교육에서 길을 찾다
-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사)한국마이크로크레디트 신나는 조합’(정명기 이사장)이 주최한 ‘시니어 취·창업연계교육’에 참가하였다. 시니어가 땀을 흘리면서 길을 찾는 교육현장을 살폈다. 서류심사, 면접을 거쳐 소수정예 교육생을 선발하였다. 민성삼(54) 수강생은 “2년 전 명예퇴직하고 한창 나이이기에 취·창업이 쉬울 줄 알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교육을 잘 받고 귀중한 체험을 활용하여 취업에 꼭 성공하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에 공헌하는 창업을 할 예정이다.” 자기소개 때 명쾌하게 포부를 말하였다. 신나는 조합은 저소득층 및 사회적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적 금융과 사회적 기업·협동조합 지원활동을 한다. 2012년도 부처형 예비사회적기업 지원기관, 2013년도 서울권역사회적기업 통합지원기관으로 선정되어 현재까지 사회적 기업 교육과 경영지원, 지역별 네트워크 구축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교육총괄 김진호 과장은 오리엔테이션 때 교육계획을 설명하였다. “3월부터 오리엔테이션과 공통교육, 심화교육을 진행한다. 5월부터 창업팀은 전문적인 추가교육과 멘토링을 거쳐 10월부터 법인설립을 진행하고, 취업팀은 사회적 경제조직에서 약 3개월간 인턴십 과정을 거쳐 취업을 성사시킬 예정이다.” 현재 강의교육 마치고 교육 후 사업 진행 중이다. 공통교육은 사회혁신센터, 성미산 마을 방문 등 현장체험 중심으로 진행하고 심화교육은 실무에 활용 가능한 사례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창업희망자는 경험이 없는 고차원적인 사업모델보다는 자신이 직접 경험을 해보았거나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연계자원이 풍부한 창업아이템을 선정하는 것이 성공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강사가 힘주어 강조하였다. 취업희망자는 어떻게 취업절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신입직원의 자세로 새로운 조직에서의 적응능력을 키우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취업희망자와 구인기업을 1:1 연결하여 취업이 성사되도록 꾸준히 지도한다. 이점이 교육으로만 끝내는 것과 다른 방법이다.“ 취·창업 성공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하였다. “한국의 전통차와 차문화 예절에 대해 오랫동안 종사해 오신 분을 여러 창업지원 공모사업에 참여토록 지도하였다. 덕분으로 2016년 사회적 기업가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고 창업을 준비 중에 있다. 취업의 경우 비영리조직에서 다양한 자원봉사 경력이 있던 분을 경영지원을 돕는 사회적 기업으로 재취업을 도왔고 매출향상에 기여하였다.“ 취·창업 준비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영리에서처럼 나 혼자 잘 살겠다는 마음으로는 이 분야에서 어떠한 응원이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근무환경도 어렵고 보수도 적지만 새로운 인생 2막을 사회적으로 유익한 활동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분들에게 사회적 경제영역은 다양한 역할과 일할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시니어의 취·창업이 성공적으로 성사되기 바라며, 김진호 과장의 보충설명에 감사한다. 연락처: 070-7600-0510 홈페이지: www.joyfulunion.or.kr
- 2016-05-2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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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 근로·자녀장려금 제도의 이해와 변동사항
- 일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로·자녀장려금 제도의 이해와 변동사항’에 대해 시니어 강의를 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 근로·자녀장려금은 국세청의 주관하에 근로소득 및 사업소득이 있는 저소득 장·노년가구의 근로의욕을 높이고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제도이다. 물론 재산이 많고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제도이다.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 분들을 위해 올해에 변동된 내용과 신청자격, 신청절차 및 신청 시 유의사항을 간략하게 요약해 알려드린다; 1. 2016년 변동내용 1) 종전 60세 이상이었던 단독가구 수급연령을 50세 이상으로 확대하였다. 2) 형제·자매를 가구원 범위에서 제외함으로써 실질적 수급가구가 늘어나게 조정하였다. 3) 올해부터는 세무서 방문 없이 인터넷으로 신청할 수 있도록 국세청 홈택스에 신청전용 화면을 신설하였다. 4) 홈택스 간편 신청서비스를 도입하여 연락처와 계좌번호 등만 입력하면 신청이 완료되도록 전자신청 방법을 개선하였다. 반면에 일반신청은 인적사항, 소득명세, 전세보증금 등을 상세하게 입력해야 한다. 2. 신청자격 1) 가족 가구: 2015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배우자가 있거나, 만 18세 미만(97년 1월 2일 이후 출생)의 부양자녀가 있는 50세 이상(65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의 장·노년 가구. 2) 단독가구는 배우자와 부양자녀가 없는 50세 이상 가구. 3) 근로장려금의 소득 기준: 총소득 기준금액과 최대지급액은 다음과 같다; - 단독가구: 1,300만 원/년 미만 총소득의 경우, 최대 70만 원 지급. - 홑벌이 가족 가구: 2,100만 원/년 미만 총소득의 경우, 최대 170만 원 지급. - 맞벌이 가족 가구: 2,500만 원/년 미만 총소득의 경우, 최대 210만 원 지급. 4) 자녀장려금의 자격과 소득 기준: 자녀장려금은 만 18세 미만 부양자녀가 있는 경우만 해당. - 부양자녀 있는 가구: 4,000만 원/년 미만 총소득의 경우, 자녀 1인당 최대 50만 원 지급. 5) 재산: 가구원 전원의 재산합계액(15년 6월 1일 기준)이 1억4천만 원 미만의 경우. 단, 1억 원 이상 1억4천만 원 미만의 경우, 산정된 장려금의 50%만 지급. 6) 주택: 15년 6월 1일 기준 가구원 전원이 무주택이거나 1주택만 소유한 경우. 3. 신청절차 1) 국세청 홈택스 접속, 첫 화면에 신청화면이 나타남. 2) 새미래 콜센터 상담: 전화 126 –2) -4) 번 또는 126- 6) -2) 번으로 접속 문의. 3) 담당세무소 민원실 문의 또는 직접 방문 신청도 가능. 4) 자동응답시스템(ARS) 1544-9944 이용. 4. 신청 시 유의 사항 1) 맞벌이 가족 가구는 배우자의 전년도 총 급여액 등이 300만 원 이상인 가구. 2) 총소득 기준금액은 신청자와 배우자의 연간 총소득(근로, 사업, 이자, 배당, 연금, 기타소득) 합계액임. 3) 신청 기간은 16년 5월 1일~5월 31일이나, 신청기한이 지나 6월 1일~ 11월 30일까지 신청할 경우 산정액의 90%만 지급됨. 4) 장려금은 총급여액( 근로소득 총급여액+ 사업소득 조정액) 등에 따른 에 따라 지급됨. 필요하면, 조세특례제한법 100조 참조. 5) 국세 체납액이 있는 경우는 지급할 장려금 산정액의 30% 한도 내에서 충당하고 지급됨. 6) 장려금의 지급은 9월로 예정되어 있으나, 신청자격 추가심사가 필요한 경우, 또는 기한 후 신청한 경우에는 10월 이후에 지급됨. 7) 신청자는 근로소득 또는 사업소득이 있는 거주자로 신청자격을 모두 갖추어야 함. 8) 본인이나 배우자가 종합소득세 확정신고 의무가 있는 경우 종합소득세 확정신고를 반드시 해야 함. 다만, 단순경비율 대상자로 종합소득 금액 150만 원 이하의 소규모 자영업자는 종합소득세 신고 없이 지급 받을 수 있음. 9) 지급금액 감액 및 충당의 경우; - 소득세 부녀자 공제와 근로장려금을 중복으로 신청한 경우, 지급액에서 부녀자 공제 관련 세액 차감. - 소득세 자녀 세액공제와 중복으로 신청한 경우, 지급액에서 자녀 세액공제 금액 차감. 국세청에 의하면, 장려금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총 254만 가구에 안내장을 발송하였다 함; - 근로장려금 대상 : 199만 가구 - 자녀장려금 대상 : 112만 가구 - 중복 통보 대상 : 57만 가구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일 경우, 주변에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주시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료는 국세청 공고와 네이버 등 인터넷 정보와 자료를 참고하였습니다.
- 2016-05-2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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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아련한 추억 담은 블루그래스 밴드 ‘실버그래스’
- 경력 35년 이상의 신인 밴드가 데뷔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 같지만 어찌 됐든 사실이다. 이 경력 넘치는 밴드는 컨트리음악의 한 장르인 블루그래스(Bluegrass) 음악 밴드인 ‘실버그래스’. 나 와 같은 이름난 경연은 아니지만, 당당히 오디션을 통해 경쟁을 물리치고 정식 데뷔를 할 기회를 잡았다. 이 실버그래스의 다섯 멤버인 김구(金口·60), 김원섭(金元燮·60), 이웅일(李雄逸·60), 임영란(林永蘭·55), 장광천(張光天·56) 시니어 뮤지션을 만나봤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노년반격(老年反擊)’. 시니어 입장에선 좀 언짢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다소 발칙하기도 한, 아니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픈 의욕을 불러일으킬 것 같은 이름의 행사가 얼마 전 열렸다. 노년반격은 아마추어 시니어 음악인을 발굴해 육성하기 위한 행사로, 전국 55세 이상의 시니어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서울 우리마포복지관과 글로벌 제약사 한국에자이가 공동 주최하고 신노년연합과 한국음악발전소,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가 공동 후원했는데, 1차 사전 심사를 거쳐 7팀이 2차 오디션에 올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렇게 발탁돼 데뷔의 기회를 얻은 두 팀 중 한 팀이 바로 실버그래스다. 실버그래스의 데뷔곡 ‘첫 번째 가출’의 녹음 현장에서 이들을 만났다. 낯설지만 친숙한 블루그래스 이들이 사랑하는 블루그래스 음악은 18세기 무렵 미국 애팔래치아에 정착한 영국 이주민들의 전통음악이 토대가 됐다고 알려져 있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등에서 온 발라드나 무곡을 기반으로 현악단의 음악과 북미 민속음악이 결합되며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다. 명칭은 빌 먼로가 이끌었던 밴드 ‘빌 먼로 앤드 히즈 블루 그래스 보이즈(Bill Monroe & His Blue Grass Boys)’에서 유래했으며 이들이 활동한 1950년대 후반부터 생겨났다고 한다. 대부분 곡이 피들(바이올린의 일종), 벤조, 만돌린, 어쿠스틱 기타, 더블베이스 등으로 구성된 밴드에 의해 연주된다. 실버그래스 역시 이런 블루그래스 밴드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멤버 중 김구씨가 만돌린을, 김원섭씨는 콘트라베이스, 이웅일씨와 장광천씨는 어쿠스틱 기타, 임영란씨는 벤조를 담당한다. 다른 블루그래스 밴드와 마찬가지로 모든 멤버가 악기 연주와 노래에 참여한다. 한국인에게 블루그래스란 음악은 단어부터 생소하지만, 일단 대표적인 한두 곡을 들어보면 어떤 음악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노래 중 하나는 1976년 조영남에 의해 발표된 ‘내고향 충청도’다. 올리비아 뉴튼존이 발표한 ‘Banks Of The Ohio’를 번안한 이 곡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가사 내용이나 멜로디 구성 등으로 인해 전형적인 블루그래스로 평가받는다. 이 곡 이외에도 다양한 블루그래스 음악이 번안되어 1970년대 이후 한국인들에게 사랑받아왔다. 동호회 덕분에 의기투합 하지만 한국에서 정식으로 블루그래스란 음악의 저변이 확대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동호인들은 1981년 의정부 장호원 캠프장에서 ‘한국 블루그래스 협회’를 창립한 것을 ‘역사적 사건’으로 꼽는다. 이때 실버그래스의 멤버이자 오랜 친구 사이이기도 한 이웅일, 김구씨도 그 현장에 있었다. 실버그래스는 2006년 개설된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한국 블루그래스 음악 클럽(cafe.daum.net/KBMA)’의 회원들로 구성됐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는 그때 의정부 모임의 출신들이기도 하다. 사실 실버그래스의 노년반격 출전 계기는 이랬다. 오디션 공고를 본 클럽 운영자가 참가 제한자격인 만 55세 이상인 회원 중 적당한 멤버들에게 추천을 한 것. 그렇게 의기투합하여 준비 없이 경연에 나서게 됐다. 이웅일씨는 그래도 큰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사실 대부분 멤버가 클럽 설립 초창기 때부터 함께한 멤버이기도 하고, 여러 무대위에서 함께 즉석 공연을 많이 했던 사이라 화음을 맞추는 데는 문제없었습니다. 또 워낙에 블루그래스 음악이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특징이 있기도 하고요. 덕분에 오디션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연주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웅일씨는 1970년대 말 라디오 방송에서 블루그래스 음악을 접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벤조를 배우게 된 것도 이 즈음이었다고. “그 후 일 때문에 사우디에 1년간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곳에선 외국으로 송금하는 것이 자유롭더라고요. 그래서 국내에선 구하지 못했던 블루그래스 악보들을 영국이나 호주의 서점을 통해서 사 모았어요. 그렇게 확보한 악보들을 동호인들과 공유하기도 했고요. 아마 국내 보급된 악보 중 상당수는 저를 통한 것일 겁니다.(웃음)” 인력개발 분야 연구원인 이웅일씨의 ‘절친’ 김구씨는 20대 후반부터 귀금속 관련 일을 해 온 사업가. 실버그래스 안에서는 만돌린을 담당하고 있다. “만돌린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해서였어요.(웃음) 아무래도 기타나 벤조보다 인기가 없었거든요. 가볍기도 하고, 독특한 음색 때문에 지금은 매력에 빠져 있습니다. 만돌린은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악기지만, 바이올린과 유사한 음역의 소리가 마음을 치유해 주는 힘이 있는 것이 특징이지요.” 김구씨는 서울 약수동 자신의 매장 인근에 지하 연습실을 만들어놓고, 음악연습뿐만 아니라 지역 어르신들을 초대해 봉사활동 차원에서 무료로 기타와 우쿨렐레 강습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각기 다른 악기마다의 매력이 원동력 김원섭씨 역시 ‘이 바닥’에서 꽤 오랜 이력의 소유자다. 블루그래스 클럽에는 음악적 뿌리가 같은 요들음악을 하다 전향한 이들이 많은데, 김원섭씨 역시 그런 사례다. 대학 시절 ‘한국 바젤 요들 클럽’을 통해 음악을 시작해, 지금까지 식지 않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자랑하는 블루그래스 애호가 중 한 명이다. 사실 노년반격에는 솔로로 지원해 최종 예선까지 올랐다가 콘트라베이스가 부족한 실버그래스에 합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합류하게 됐다. “콘트라베이스를 시작한 건 10년 정도 됐는데, 각각의 다른 악기들 소리를 감싸안으며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매력이죠. 음악은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보다는 정식으로 익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대학생에게 레슨을 받았고, 노래에도 관심이 많아 성악을 개인지도 받기도 했습니다. 음악은 자기관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해줘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나갈 겁니다.” 실버그래스의 홍일점인 임영란씨는 얼마 전까지 숙명여자대학원에서 음악치료를 가르쳤던 음악 전문가. 그 역시 요들을 거쳐 블루그래스를 즐기게 되었는데, 특히 벤조 특유의 음색에 빠져 본격적으로 악기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피아노와 기타는 조금씩 다룰 줄 알았지만,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벤조가 처음이었어요. 처음 시작할 땐 음악이 아닌 소음에 가족들의 볼멘소리도 있었지만, 50대 여성이 겪는 변화를 음악으로 극복할 테니 감수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그때부터는 잘 협조해 주더라고요. 딸은 클래식 기타 전공자이고 남편도 취미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으니 어렵지 않았습니다.” 훤칠한 체형에 카우보이모자가 인상적인 장광천씨는 현재 부천에서 활동 중인 교회 전도사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한 강좌에 참석했던 것이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당시 강단에 서 있던 이는 1970년대 유명했던 블루그래스 마니아인 요들 전도사 김흥철씨. 그때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음악을 하게 될지는 몰랐다고 했다. “블루그래스 가스펠을 부르며 교회 내에서 활동을 계속했었죠. 군부대 방문이나 봉사활동 등 한 해에 70~80회 정도 공연도 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의 뿌리는 대부분 이 블루그래스 음악에서 왔다고 추측돼요. 실제로 미국에는 블루그래스 찬송 음반도 많고요. 그래서 저도 블루그래스 가스펠 앨범을 준비 중이고, 곧 선보일 예정입니다.” 시니어들의 ‘희망’ 됐으면 물론 이들의 활동은 오디션 입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난달 27일에 그들의 데뷔곡 ‘첫 번째 가출’이 공개됐다. 전형적인 블루그래스 곡의 형태를 띠는 이 노래는 노년반격의 프로듀서인 가수 이한철이 작곡했고, 작사는 멤버 중 김원섭씨의 가사 초안을 뼈대로 다른 멤버들이 살을 붙였다. 가사 내용은 시니어들의 어린 시절 추억을 그대로 담고 있다. 강냉이 장수를 보고 사달라고 조르다 부모님께 혼이 나 가출을 한 주인공이 결국 아버지에게 ‘아프지 않은’ 매를 맞는다는 내용이다. 멤버들은 노래를 작사하는 과정이 서로의 추억담을 꺼내놓는 작업 같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30년 넘게 각자의 음악을 해 온 이들이지만, 정식 데뷔는 처음인지라 모든 과정이 새롭고 떨릴 수밖에 없다. 실버그래스 멤버들은 “노년반격을 통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설렙니다. 어릴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우리의 노래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시니어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블루그래스 음악이 보급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우리를 통해 많은 시니어들이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실버그래스 밴드 구성은 즉흥적인 면이 있었지만, 앞으로 오랜 기간 활동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관객들 앞에 많이 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라며, “나이가 많아도 두려움을 가질 필요 없고, 우리도 늦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라고 전했다. 이들은 5월부터 노년반격을 통해 함께 합격한 부산 출신의 시니어 그룹 ‘바야흐로’와 함께 콘서트를 갖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 2016-05-0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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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의 窓 사진 촬영 가이드①] 싱그러운 봄 카메라 들고 떠나볼까?
- 스마트폰이 대세인 세상, 구태여 ‘사진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구식이라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술적인 이야기를 모두 차치하더라도 나들이를 떠나면서 어깨 한 쪽에 혹은 목걸이처럼 카메라가 한 대 걸려 있지 않다면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지는 것 아닐까? 나들이가 잦아지는 계절이 찾아온 지금 배우자를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멋진 사진 한 장을 위한 준비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보면 간혹 “요즘 세상에 사진을 누가 카메라로 찍느냐?”며 핀잔을 듣기도 한다. 힘들지만 묵묵히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에게는 야유나 조롱 섞인 이야기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틀리지 않은 이야기다. 이미 대부분의 스마트폰에서는 값비싼 카메라가 제공하는 대부분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카메라 꼭 있어야 하나? 그럼에도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DSLR(일안반사식 디지털카메라)이나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미러리스(광학 뷰 파인더가 없는 렌즈교환식 디지털카메라)가 스마트폰 카메라에 비해 갖는 장점은 물리적인 크기에 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스마트폰은 물리적인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가장 많은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광학적인 표현의 문제다. DSLR이나 미러리스는 렌즈 교환이 가능해, 소위 이야기하는 ‘흐려지는 사진’ 즉, 피사계 심도가 얕아 선명하게 보이는 범위가 적은 사진 등의 표현이 가능하다. 반면에 스마트폰 카메라는 거의 모든 기종이 광학 줌이 아닌 디지털 줌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인 사용 환경에선 그 차이점을 느끼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인 화질의 차이도 있다. 최근 출시되는 스마트폰은 대부분 1000만 화소 이상의 고해상도의 센서를 장착하고 있지만, 물리적으로 좁은 센서 안에 많은 화소를 몰아넣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화소가 같더라도 스마트폰 카메라와 일반 카메라는 화질의 수준차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카메라를 선택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사진을 취미로 갖거나 다양한 장면의 사진을 촬영하고 싶다면 렌즈가 교환 가능한 기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전문가들은 많게는 10가지 이상의 렌즈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3~4가지 렌즈만 있어도 거의 모든 사진 촬영은 가능하다. 최근 카메라를 선택하는 또 하나의 기준은 wifi(무선인터넷)나 스마트폰을 지원하는지 여부이다. SNS의 활용이 늘어나면서 야외에서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재빨리 페이스북이나 네이버 밴드, 카카오톡 등을 통해 공유하고자 하는 사용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wifi나 스마트폰을 지원하는 기종들은 야외에서 바로 업로드나 공유가 가능하다. 시니어들의 경우 눈여겨봐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무게’다. 아무래도 체력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기자들이 사용하는 전문가용 기종의 경우 본체만 1kg이 넘고, 렌즈 하나의 무게도 보통 800g이상이다. 카메라 본체와 렌즈 몇 개를 챙기면 자칫 여행이 행군으로 바뀔 위험에 빠진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온라인 등을 통해 적당한 기종 몇 가지를 고르고 나서, 매장 등을 방문에 직접 만져보고, 내 손에 잘 맞는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DSLR은 니콘이나 캐논, 미러리스는 올림푸스, 소니, 삼성 등이 최근 사용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있다. 카메라를 구매하지 않고 즐긴다? 최근에는 다른 방식으로 사진촬영을 즐기거나 카메라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렌털족(族)’의 등장이다. 사실 이 렌털족은 연예인들을 따라다니는 극성팬들이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연예인은 좋아하지만 경제적 여력이 없는 학생들이 카메라 장비 대여업체를 통해 고가의 망원렌즈와 카메라를 임차하기 시작하면서 렌털족의 시초가 됐다. 그러다 최근에는 카메라 사용 빈도가 낮은 직장인이나 다양한 장비를 사용해보고자 하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대여업체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대중화하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에 운영 중인 카메라 장비 대여업체는 약 20여 곳. 그 중 대부분이 서울에 몰려 있지만, 지방 주요 도시에도 한두 군데씩 성업 중이다. 대표적 대여업체 중 한 곳인 ‘PLAY SLR’의 김현기 팀장은 대여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촬영 갈 때 빈손으로 오시는 고객들도 꽤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리 카메라와 렌즈, 삼각대, 가방까지, 여기에 메모리카드 같은 소품까지 통으로 빌려 가시는 고객들이 적지 않습니다. 구매 자체를 부담으로 여기는 고객들도 많지만, 최근에는 구매 전 비교체험을 위해 빌려가는 경우도 많죠. 아무래도 대여 전문 업체들은 판매업자와 달리 장비에 대한 문의에 객관적으로 답변해 드릴 수 있어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디지털 카메라 어렵지 않을까? 시니어들의 디지털 카메라 사용을 가로막는 장벽 중 하나는 ‘디지털 장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전문적인 촬영 기법은 고사하고, 사진을 찍고 나서 그 사진을 PC나 스마트폰으로 옮기는 과정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촬영이나 공유가 상대적으로 편한 스마트폰을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사용자들을 위해 각 브랜드는 사진학교나 강좌를 운영하고 있는데, 완전 초보에서부터 전문가를 위한 과정까지 그 교육내용도 다양하다. 니콘이나 캐논 등 주요 카메라 제작사들은 온라인, 오프라인 강의를 운영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가입절차나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들 제조사가 운영하는 사진학교는 사용하는 기종에 맞는 최적화된 내용을 소개하고 있어, 사진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들에게 유익하다. 이론적인 교육과 함께 야외촬영 수업도 참여할 수 있다. 올림푸스 한국 영상사업부의 윤은경 차장은 “사용자들을 위한 사후 서비스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각 제조사들의 교육지원 노력도 점차 강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라고 설명하고, “올림푸스의 경우 지난해 시니어 사용자들을 위한 강좌를 별도로 운영한 바 있으며, 올해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라고 말했다. 사진은 어떻게 즐기는 것이 좋을까? 최근 사진을 즐기는 추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이 개방적인 SNS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과 네이버 밴드나 카카오스토리와 같은 폐쇄적 SNS를 통해 끼리끼리 작품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특히 폐쇄적 SNS를 검색하면 중년들의 사진모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이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이버 밴드의 한 모임에서 만난 조이례씨(53)는 “남편의 카메라 선물이 사진 취미의 계기가 됐어요. 인생 후반에 무언가 집중하고 공부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해서 너무 좋습니다”라며, “힘든 갱년기 여성으로서 우울하지 않고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는 친구가 됐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정귀원씨(57)는 “지난해 명퇴하고 나서 생긴 여유 속에서 여행하며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계기를 사진이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사진을 계기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만나 인맥을 넓힐 수 있는 것도 사진의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 2016-04-2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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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살것인가 PART6]박동현 더 클래식 500 대표, 상위 1%를 위한 프라이빗 시니어타운의 신세계를 열다
- 투박하지만 솔직한 화법. 박동현(朴東炫·60) ‘더 클래식 500’ 대표의 말투가 그렇다. 그러나 그러한 순박한 인상 속에는 맡은 지 2년여 만에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킨 수완 좋은 경영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신라호텔, 조선호텔 등을 거치며 호텔업계의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다가 만년을 맞이하여 시니어타운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몸담은 박 대표는 최근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의 회장으로도 취임했다. 해야 할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한 그의 행보에는 시니어 주거공간의 필요성과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꿈꾸는 의지마저 담겨 있었다. 박동현 더 클래식 500 대표는 “시니어업계의 삼성전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아직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시니어 사업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입장에 어울릴 법한 야심이라면 야심이다. 하지만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도심형 시니어타운 더 클래식 500의 성공적인 런칭과 운영을 보면 그의 말이 단순한 홍보용 문구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즐겁고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는 특별한 공간, 시니어타운의 적절한 입소 시기를 물었다. 나이가 많아 건강이 나빠진 후에 들어가려면 건강 문제로 입주가 허락되지 않아 요양원으로 가야 할 수도 있다. 몸이 건강하지 못한데 골프연습장, 당구장, 헬스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서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즐기고 누리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도심형 시니어타운이라는 신세계 1990년대 시니어타운 초창기에는 전원 속 '나홀로 단지'의 성격이 강했지만 요즘은 도심형이 대세다. 도심형의 특징은 1차원적 주거공간이 아닌 호텔, 종합병원, 백화점 등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복합형’이다. 건국대학교가 운영하는 도심형 노인주거복지시설인 더 클래식 500은 실버타운이 아닌 ‘시니어타운’으로 명칭지어져 있다. 실버라는 말보다는 시니어라는 말이 더 듣기가 좋더라는 박 대표의 생각 때문이다. “지금까지 실버타운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산골짜기로 들어가는 느낌이었거든요. 그와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실버타운으로 각광받는 게 도시형입니다. 처음에 실버타운 개념이 나왔을 때 삼성도 뛰어들었었는데 결과적으론 실패했습니다. 아는 것, 깨닫는 것, 실행하는 것은 다르다고 하죠. 아는 것만으로 실행했던 게 문제였습니다. 단순히 ‘자연 속에서 깨끗한 공기와 함께 지낸다’는 게 시니어타운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심신이 멀쩡하고 건강한 사람 입장에서, 사회로부터 은둔된 실버타운으로 가면 고립된 느낌을 받게 되고 생활 면에서 안 좋을 수밖에 없어요.” 박 대표는 과거 실버타운들의 실패 사례를 토대로 더 클래식 500을 ‘액티브 시니어들이 사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콘셉트로 방향을 정했다. 그래서 광진구에 위치함으로써 가지게 된 교통, 쇼핑, 문화시설 등 주변의 인프라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도시 생활과의 연계점들을 마련하여 사회와 동떨어진 느낌을 받지 않도록 고려했다. “외국은 시니어타운이 대학교 주변에 많아요.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게 시니어들의 멘탈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 합니다. 우리도 그런 시도를 해서 다행스럽게 성공하고 있는 중이라고 봐요.” 그 무엇보다도 차별화를 추구한다 더 클래식 500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하자면 하우스키핑, 컨시어지 서비스와 같은 생활 지원 서비스, 건국대학교 병원과 연계한 체계적인 의료 지원 서비스, 문화 및 여가 생활을 위한 커뮤니티 여가 지원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주거 단지 내 시니어들을 위한 모든 생활 편의 환경이 갖춰져 있으며 일주일에 두 번씩 청소, 빨래, 설거지 등의 서비스가 이뤄져서 여성층의 만족도가 높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체력이 약한 시니어는 건국대학교 병원과 연계된 전문 메디컬 서비스를 받으며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 데 어려움이 없게끔 했다. 또한 29개의 동호회 및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서로 소통하며 배움의 열의를 갖게끔 설정했다. “그런 것들을 운영하지 않는다면 여타 실버타운과 다를 게 없죠.”라는 박 대표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90세가 넘으셨는데도 건강한 분이 정말 많아요. 그리고 우리 직원들의 친절성과 정직도도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입니다. 저희는 핵심가치가 네 가지인데 합쳐서 ‘HEAD’라고 불러요. Honesty(정직), Excellence(탁월함), Accuracy(정확), Differences(차이)가 그것입니다. 병원도 호텔도 우리보다 나은 데들이 있는데 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시니어 사업, 연륜의 힘이 필요하다 신라호텔과 조선호텔 등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며 호텔 산업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박동현 대표는 시니어 사업의 CEO로 일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깨닫는 점이 많았다고 말한다. “제가 올해로 60인데, 부모님이 돌아가셨지만 옛날에 불효했던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시니어 사업의 CEO는 인생을 경험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봐요. 남자가 출산의 고통을 안다고 말해도 실은 몰라요. 여자가 아니고 겪어보질 못했으니까. 마찬가지로 연세 드신 분들과 함께하려면 아무리 유능하다 하더라도 젊은 경영자라면 해결하기 어려운 게 있습니다.” 그는 얼마 전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의 회장으로도 취임했다. 점차 늘어나고 있는 노인 주거복지시설의 운영에 있어 보다 안정적이고 발전적인 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설립된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는 약 50여 회원 기관들이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상호간 정보를 공유하고 발전하는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더 클래식 500 취임 후 2년 여만에 사업을 흑자로 전환시키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한 것이야말로 그가 회장으로 뽑힌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우리 사회는 완전한 고령화 추세입니다. 우리 협회가 사회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인식을 바꾸고 사회 제도를 바꾸는 일 말이죠. 최근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는 중인데 현실을 너무 몰라요. 정책은 너무 획일화되어 있어요. 안타깝습니다.” 박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노인복지법에 노인 주거복지시설이 주거복지시설과 복지주택의 두 종류로 나뉘어 있다. 그렇게 분류되어 있는 이유는 노인복지법에 의한 노인복지시설은 요양보호사 등의 필요 법적인원이 있기 때문이다. 주거복지시설은 그런 필요 법적인원을 요구하는 반면 복지주택은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주거복지시설로 신청하여 사업을 시작했다가 주택복지로 바꿔서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사실상 둘은 같은 것인데, 법제가 이원화되어 불필요한 행정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현장에 있는 입장에서는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는 문제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정책에 답답함 느껴 박 대표는 요우커(遊客) 유입에 따른 대기업들의 호텔 건축도 문제라고 보고 있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현재 호텔은 포화 상태예요. 재앙이 될 겁니다.” 흔히 관광업에서는 요우커의 증가 추세를 객실 수로 나누어 계산한다. 그러나 그것만 따지는 건 잘못된 것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요우커들은 하이 클래스에는 안 들어가요. 십만 원 안쪽 비즈니스 호텔에 주로 들어가죠. 그리고 그들은 일단 도착한 다음에는 쇼핑하느라 바빠요.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호텔 점유율이 80% 이상이었으나 요즘은 50% 안팎밖에 안 됩니다. 많아야 60% 내외예요. 그런데 또 짓는다고 하니….” 박 대표는 직접 통계를 보이며 설명을 이었다. 2014년에 내한한 요우커는 약 613만 명이고 2015년에는 598만 명으로 20여만 명가량이 줄었다. 그런데 서울만 봤을 때 2012년도의 호텔 수는 151개에 객실 수가 2만 5710개였는데 2015년에는 295개 호텔에 4만 2444개의 객실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더군다나 이 통계에는 일반 숙박업인 모텔이나 여관, 게스트하우스 등의 시설들은 빠져 있다. 소비 대비 공급 과잉의 이러한 현실에서 실제적으로 호텔을 이용하는 수치는 올라갈 수가 없는 게 당연하다. 고령화는 심각한 사회 문제, 위기감 느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서울시의 사업 수행 계획을 보면 호텔 184개를 추가함으로써 객실 수는 2만 8926개가 늘어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대로 하면 2019년에 서울에는 479개 호텔에 7만 1370개의 객실이 생기게 된다. 가히 ‘호텔 공화국’이라고 불러도 될 막대한 숫자다. “그러다 보니 가격 인하 정책을 남발하게 되고, 당일 ‘땡처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되는 거죠.” 지나친 호텔 포화 상태에 대한 대안으로 박 대표는 호텔 건축에 있어 객실을 150실 정도로 줄이고 시니어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 자체로 사회적 기여도 되고 새로운 수요도 창출할 수 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데 정치인들은 싸우고만 있어서…. 사람이 없으면 소비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고령화 문제는 국가 존립의 문제로 생각해야 합니다. 모두가 다 연결되는 문제인데, 답답합니다.” 박 대표는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회장으로서 3년 임기동안 반드시 하고 싶은 4가지 일을 강조했다. “첫째, 시니어 세대가 검증된 노인 주거복지시설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증제도를 도입하고자 합니다. 둘째, 현 시대의 흐름에 맞는 노인 주거복지시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비효율적, 비현실적인 규제를 발굴하여 개선하겠습니다. 셋째, 한국의 첨단 IT기술과 접목한 노인 주거관리시스템 및 고령친화 IOT 개발에 발판을 마련하겠습니다. 넷째, 국내 노인 주거복지시설들의 해외 시장 교류 확대와 발전을 위해 주력하겠습니다.” 이외에도 시니어 세대들의 주거복지 향상에 기여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의 삶을 위해 전문기관 및 단체와 협력하여 초고령화 사회를 대비할 수 있는 복지 정책을 제시하고 실행하고자 주력하겠다고 한다. 또한 입주 100%·만족도 200%·재입주 94%를 달성한 더 클래식 500 시니어 타운에서 쌓아온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행복한 ‘인생 2막을 위한 시니어 라이프 트렌드’를 리드하는 삶의 동반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라이프 케어를 넘어 체계적 라이프 사이클 서비스로 이처럼 고령화사회로 인한 문제 발생, 그리고 수요 발생에 대비하여 더 클래식 500은 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저희 나름대로의 비즈니스 벨트를 만들면 어떨까 싶어요. 수평적으로는 부산, 인천, 대구, 울산, 대전 등등 일곱 군데 정도에 수평적 벨트를 구축하는 겁니다. 수직적으로는 여기 계신 분들이 몸이 더 안 좋아지시면 갈 수 있는 다음 장소를 마련하여 그야말로 라이프 사이클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노년의 삶이 불행한 것만은 아니구나’라는 인식의 변화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시니어타운 사업을 하면서 부족하거나 아쉬운 점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서비스는 항상 어제보다 나아지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도 항상 계속적으로 나아지는 서비스를 위해 아이디어 생산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려면 끊임없는 관심과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지요.”
- 2016-04-2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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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조동성 안중근 의사 기념관장의 멈추지 않는 미래 탐색기
- 조동성 안중근의사기념관장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로 무려 35년 반을 재직한 대한민국 경영학계의 대표 학자다. 디자인 경영 개념을 제시하여 경영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던 그는 2011년 남산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교수로서의 성공적인 생활에 이어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있는 조동성(趙東成·67) 관장의 목소리를 통해 ‘인생 본고사에’ 도전하는 의미를 짚어봤다. 조동성 안중근의사기념관장은 인터뷰 내내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아마도 입가에 가시지 않는 웃음기가 그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몇 년 전 서울대학교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젊음이 새삼 느껴졌다. 그는 안중근 의사를 ‘로맨티스트’라고 표현했다. 원칙에 살고 원칙에 죽었던 이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도 안중근 의사에 대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며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아직 안중근 의사에 대해 모르는 점 많아 “대략 1년에 10만 명 정도 기념관을 찾고 있어요. 저는 경영학을 한 사람이다 보니 마케팅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좌상이 아니라 보부상이 되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안중근 의사 기념관 홍보대사란 직함을 만들었습니다. 500여 명을 홍보대사로 양성 및 위임하여 전국의 각 초중고에 가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카데미를 만들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안중근아카데미는 지난 5년 동안 1년에 두 기수씩 진행됐다. 50대, 60대로 학교 교사, 대학 교수로 은퇴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국민의 혈세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돈을 벌 수 있으면 자체 수입을 만들어서 정부 지원을 되도록 안 받는 쪽으로 가자는 생각이 있어요. 혈세는 받을 만큼만 받자는 거죠. 마침 여기가 위치가 좋아요. 서울역이나 남대문에서 5분 거리입니다. 직장인들도 많이 다니구요. 그래서 찻집을 하나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돈도 벌고 사람도 오게끔 하려는 생각이에요.” 조 관장은 그에 더해 ‘의류 사업’(?) 진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캐릭터가 미키마우스입니다. 그 다음이 체 게바라라고 해요. 체 게바라는 티셔츠로 그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죠. 안중근 의사도 그렇게 해보고자 합니다. 돈을 버는 것과 함께 사회적 역할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찔레이자 장미다 조 관장은 2014년 2월 서울대학교에서의 35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마치게 됐다.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덕분이었다. “어머니에게 서울대에서 일을 시작한다고 알려드린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날 저에게 ‘무릎 꿇고 앉아라. 나하고 약속을 하자’라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어머니는 저에게 ‘정년 퇴임할 때까지 서울대를 떠날 생각을 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가 1978년이었죠.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살게 됐어요. 사실 학교를 떠날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의 말씀이 저를 붙잡았죠.”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 모이는 곳에서 보낸,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렇게 한 우물을 팠을 때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한 우물을 파야 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성이 확실하게 있다고 생각이 들면 성공할 때까지 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조 관장의 저서 중에는 라는 공저가 있다. 그렇다면 그는 장미의 삶이었을까 아니면 찔레의 삶이었을까? “장미는 축적하는 삶입니다. 반면 찔레는 처음부터 가진 걸 즐기는 삶이죠. 큰 조직의 일원으로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삶은 장미입니다. 군대나 대기업이 대표적인 장미의 삶이죠. 장미는 자기 삶이 없고 50, 60대가 되면 힘들어집니다. 그에 비하면 교수는 찔레의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찔레도 한 길만 계속 파다 보면 장미처럼 돼요. 그러니까 제 삶은 장미와 찔레로 굳이 구분 짓는다기보다는 일정한 궤적으로서의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서울대라는 조직은 조직 구성원이 갖고 있는 능력을 확장해줄 수 있는 곳이라는 특성이 있음을 잊지 않았다. 같은 말이라도 서울대 교수가 말한다고 하면 좀 더 믿음이 갈 수밖에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는 그 현실에 혜택을 받으면 받았지 자신이 희생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교수 생활의 마지막 봉사 조 관장은 서울대 교수 생활의 마지막 해에 경영학 교수로서 사회에 어떤 봉사를 할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서울대가 아닌 대학교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는 게 자신이 할 수 있는 확실한 봉사라고 판단했다. “제가 지도한 학생들이 전국 70여 개 대학에 교수로 있어요. 그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두 시간 정도 특강 시간을 주면 내가 가서 특강을 진행하겠다, 향토음식을 사주면 맛있게 먹고 돌아오겠다라고(웃음).” 그렇게 15개 대학이 정해졌고 한 주에 한 번씩 특강을 나갔다. 2013년 9월부터 12월까지 2학기 내내 가졌던 강의 봉사 속에서 그는 많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강의를 똑같이 하려다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아서 그중에서 괜찮은 걸 골라 강의하자고 했어요. 질문들 중에 가장 많이 나온 게 두 개였어요. 첫 번째는 ‘좋아하는 걸 할까요, 잘하는 걸 할까요’였습니다.” 그는 그 문제에 대해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많이 나온 질문에 대해 답하다 보니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더란다. “두 번째로 많이 나온 질문은 ‘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꿈에 대한 질문은 즉답을 하는 순간 질문의 함정에 걸리는 거예요. 묻는 이가 스스로 선택하여 말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그가 본 꿈을 대하는 학생들의 유형은 다음 네 가지였다. 1.확실하게 꿈이 있고 그 꿈이 절대 안 변하는 사람 2.확실하게 꿈이 있는데 확실하게 바뀌는 꿈 3.꿈을 가지고 있느냐고 하면 적당히 내 꿈을 말하지만. 자신이 없고 확신이 없는 것. 4.아예 깨끗하게 꿈이 없는 것. 내 꿈이 아니라 가문의 영광, 부모의 꿈 등등. “1, 2는 그 사람의 꿈이 확실한 겁니다. 반면 3, 4는 꿈이 없거나 모르는 거죠. 되레 3, 4의 유형은 크게 부담이 없어요. 이들은 잘하는 걸 계속하면 됩니다. 그러나 1, 2는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좋아하는 걸 하라고 해야겠죠.” 자신의 첫 번째 스승, 아버지 조 관장은 자신의 삶이 평탄하기만 했던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가 안 나오거나 친구 관계가 틀어지거나 하는 소소하지만 심각한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해서 연연하지 않는 품성이 그러한 갈등이 큰 상처가 되는 걸 막았다. 그의 그런 기질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면이 있었다. “선친께서는 교수를 하다가 정부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국회의원에도 출마하셨죠. 그러나 당선은 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가 제가 막 대학생이 됐을 때였죠. 낙선한 그날 아버지께 깎은 사과를 드리기 위해 방에 들어갔는데 아버지께서는 거기서 책을 쌓아놓고 글을 쓰고 계시더군요. 뭐하시냐고 여쭤봤어요. 책들은 러시아로 된 책들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나라가 남북 분단이 되어 있고 통일이 가장 큰 과제인데 소련의 도움 없이 통일될 것 같지가 않다. 옛날에 러시아에 대해 배운 걸 정리해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패배한 선거날에 말이죠. 그런 분이셨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게 아버지의 철학이었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아버지 덕분이었다는 그는 그런 습관 덕분에 서울대 교수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제 비로소 인생 본고사를 시작한 셈 조 관장은 교수직 퇴임 이후의 가장 큰 변화로 중압감에서 벗어난 걸 들었다. 서울대학교라는 이름의 무게에서 그도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게 되더군요. 교수 사회에서도 최고여야 하고 표정, 행동, 매너 등등을 고민하게 돼요. 제 한마디가 서울대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면 더 그렇죠. 그런데 학교에서 월급 받을 때와 달리 지금은 명예교수니까. 명예교수는 한 푼도 안 받거든요(웃음).” 그는 인생 후반전이라는 말은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저는 제가 후반전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제가 고3일 때, 모의고사를 열 번 보고 본고사를 봤어요. 그래서 40대, 50대일 때는 모의고사를 7번 본 거 같았죠. 두세 번 더 보면 이제 진짜 인생의 본고사를 보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8번째, 9번째 모의고사를 봤고. 지금에 와선 모의고사는 다 봤고 이제야 본고사를 볼 시간이라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은퇴 후 인생이란 표현이 저에게는 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스승이 많으면 행복한 삶이라고 하던가. 그는 자신에게 인생의 가르침을 준 사람들을 하나하나 꼽았다. “첫 번째, 두 번째가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세 번째 분이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이에요. 그분께서는 ‘올림픽 기록은 지키라고 있는 게 아니라 깨라고 있는 거다. 역사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깨기 위해서 하는 거다. 하루하루를 과거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깨고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 살아라’라고 말씀하셨죠. 그 말씀이 지금도 생각나요. 그리고 서강대 경제학과를 맡고 계셨던 김덕중 교수님입니다. 그분께서 1975년께 제가 하버드대학을 마치고 막 귀국했을 때 말씀하셨죠. ‘하버드를 나왔으니 기고만장할 때다. 사회에서도 인정해줄 거다. 그거 딱 5년 간다. 하버드라는 이름이 깨질 때를 위해 지금 준비하고 능력을 쌓아라’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누구라도 세상에 도움이 될 능력을 갖고 있다 조 관장이 접한 경험, 그리고 그가 만난 스승들은 그에게 미래를 놓지 않는 힘을 갖게 만들었다. 그는 그러한 힘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접근하지 못했던 분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는 최근 ‘사람의 능력을 발견하는 작업’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자폐증인 사람들의 능력을 발굴하는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군대 시절, 고문관인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친구였죠. 그런데 그 친구가 어느 날 풀피리를 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소리에 모든 사람이 감동을 받았고, 저 또한 마찬가지였죠. 이 세상에 불필요한 사람은 없다는 걸 느끼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군대 시절의 기억은 그에게 사람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끔 만들었다. 그의 이 새로운 작업은 무엇보다도 그의 가족 중 한사람이 자폐증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요즘은 자폐증 부모들이 어떻게 자녀들의 능력을 찾아냈는가를 연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생각해보면 풀피리를 불었던 그 친구를 접한 경험에서 갖게 된 자세 같기도 해요. 누구에게라도 능력은 있다, 그러니 그걸 찾아내게 돕자는 겁니다.” 끊임없이 미래를 갈구하는 이가 이제 타인의 미래를 찾아주기 위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려 한다. 실로 아름다운 나비효과 아닌가. 이제 인생 본고사를 치르려 한다는 조 관장의 말이 실제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 2016-04-1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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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공간] '버려진 공간을 재발견하다' ②
- 배다리 생활사 박물관을 나와 오른쪽으로 열 걸음쯤 걸어가면 ‘요일가게 다 괜찮아’가 있다. 2014년 12월 문을 연 이곳은 요일마다 주인이 바뀐다고 해서 요일가게가 됐다. 뭐든 해도 다 괜찮기에 ‘多 괜찮아’라는 이름도 덧붙였다. 지난 2월에는 월요일 영화 관람, 수요일 기타교실, 토요일 ‘달 셰프’의 레스토랑이 상시 운영됐고 타로, 네일아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요일가게를 통해 손님을 맞았다. 요일가게 한쪽 벽면은 ‘숍인 숍’으로 꾸며져 있다. 도자기, 나무 공예품, 인형, 아동복, 반려동물 용품, 액세서리, 책 등이 전시돼 있다. 이 전시품들을 각 요일가게 주인들이 팔면 수익금 10%를 나눠 가지기 때문에 요일가게 주인들 또한 숍인 숍 물건들을 조금이나마 잘 관리하고 팔기 위해 노력한다고. 월세 5만원을 내고 들어오는 이곳 요일가게 주인들은 수익을 목적으로 이 공간을 사용하지 않는다. 주기적 만남을 위한 모임 장소 혹은 문화운동으로써 요일가게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공간이다. 수요일 기타 모임의 경우 장소를 물색하다 수요일 가게의 주인이 됐다. 토요일에 문을 여는 ‘달 셰프 레스토랑’은 전업주부를 선언한 박영달 셰프의 주부생활 해방공간(?). 친구나 친척, 예약한 손님들에 한해서만 재료를 준비해 고급 요리를 판매한다. 매일 다양한 모습과 이유 있는 변신이 요일가게에 있다. 요일가게는 1956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 건물 역시 조흥상회 건물처럼 사람들이 찾지 않던 낡고 오래된 창고였다. 내부에는 2층으로 된 구조물이 넘어질 듯 위태하게 서 있었고 쓰레기 또한 어마어마했다. 어두컴컴한 창고 안, 창 사이로 작은 빛이 들어오자 천장 멀리 붓으로 써내려간 상량문이 발견됐다. 건물 건축 연도도 상량문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버려질 뻔했던 공간이 대변신하게 된 계기를 준 것. 지저분하고 오래됐지만, 과거에는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튼튼하게 지은 건물이었다. 때마침 인천문화재단의 지역거점화지원사업 프로그램에 선정돼 사람들이 모이는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요일가게 운영자는 1년 동안 운영을 잘해보겠다던 목적은 달성했다고 한다. 이제 또 어떤 방식으로 1년을 꾸려나갈지 고민 중이란다. 3월부터 다시 문을 여는 요일가게는 이전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고 좋아하는 요일 가게는 하루 이상 가게를 열게 해줄 계획. 뭐든 다 괜찮은 곳이니까 언제든지 다양한 모습과 형태로 바뀔 수 있는 곳이 바로 요일가게다. 차가운 바람 가고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3월, 예스러움 가득한 배다리 생활사 전시관과 요일가게 다 괜찮아로 발길을 옮겨보라.
- 2016-03-3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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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가는 사람들] Part 3 신중년·꽃중년의 제2 인생설계 대학 가자 친구야! ⓶
- 귀촌 생활이 삶의 의미를 더해주는 가치의 수단 농협대학에서 귀농·귀촌의 풍요로운 삶을 가꾸다 시니어들이 귀농·귀촌 대학을 찾는 이유는 농촌에 가면 웰빙을 추구하는 삶의 질 향상이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귀농·귀촌인의 정착 실태 장기추적 조사’에 따르면 귀농·귀촌 이유로 ‘조용한 전원생활을 위해서’가 31.4%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껴서’가 24.8%, ‘은퇴후 여가생활을 위해서’가 24.3%, ‘새 일자리나 농업·농촌 관련 사업을 위해’가 22.2% 등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 ‘농사일이 좋아서’, ‘자신과 가족의 건강 때문’, ‘생태·공동체 등의 가치 추구’가 각각 18.4%를 차지했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건강, 은퇴 후 여가, 전원생활을 위해 농촌을 찾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고학력일수록 은퇴 후 여가나 전원생활을 위해 귀농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귀농·귀촌자가 농촌 정착과정 상에서 자금 문제, 영농기술문제, 농지구입의 문제, 생활여건의 불편, 토착주민과 갈등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귀농·귀촌자가 다시 도시로의 재이주 의향을 보이는 주 요인으로 작용한다. 경기농림진흥재단은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을 대상으로 현장 중심의 이론 및 실습형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성공적인 농촌 정착에 도움을 주고자 2009년에 개설하여 2015년까지 총 3000여명을 교육했다. 특히 경기농림진흥재단에서 위탁받아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농협대학의 귀농·귀촌 대학은 지난해 까지 7기 회원을 모집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매년 120명에서 140명 정도 귀농·귀촌을 꿈꾸는 시니어들이 7개월 동안 성공적인 귀농·귀촌 정착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생산·가공·유통·마케팅 전반에 걸친 폭넓은 교육으로 본인에게 적합한 귀농 형태를 결정짓는 역량을 강화했다. 교육비는 200만원이 넘는 전체 교육비에서 자부담 일부(50만원)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경기농림진흥재단에서 지원했다. 오전에는 귀농 설계교육과 영농기술 기초학습이, 오후에는 농협대학 교내, 귀농·귀촌 대학 실습장에서 실습 및 현장 견학이 이어진다. 1인당 약 20여 평의 땅이 주어지는데 기초 교육이 끝나는 즉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영농계획을 세우는 등 농촌 투어 등 다양한 경험과 실습이 이뤄진다. 경기농림진흥재단 귀농·귀촌 대학을 수료한 이석현(61)씨는 “농촌은 부부가 보다 심신의 여유를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이고 며느리, 아들 눈치 보지않고 좀 더 여유롭게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곳”이라며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영농 계획을 세웠고, 귀촌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큰 공부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공부하고 싶은 시니어들의 참교육場 '사이버대학' 본격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갈수록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살고자 하는 시니어 세대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재교육 차원에서 사이버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30대 학생 비율이 점차 줄어드는 것과 비교해 40대와 50대의 진학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5년 사이버대의 나이별 대학생 추이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30대의 입학이 매년 2.5% 정도씩 줄어드는 반면, 40대와 50대 이상 등록은 1%씩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50대 이상 입학은 전체 학생의 10.59%로 두 자릿수 평균율을 보였다. 사이버대학이란 정보통신기술, 멀티미디어 기술 및 관련 소프트웨어 등을 이용하여 형성된 가상의 공간(Cyber-Space) 안에서 교수자가 제공한 교육서비스를 학습자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학습하는 가상 학습 공간이다. 일정한 학점을 이수할 경우 학사학위 또는 전문학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도록 고등교육법 제2조 제5호에 규정된 교육부 인가 대학이다. 사이버대학은 언제, 어디서나 학습할 수 있고 모든 수업과 시험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도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이버대학은 매년 6월과 12월, 2차례에 걸쳐 신·편입생을 모집한다. 수능 입학을 거치지 않고 입학지원서와 함께 학업계획서와 인성검사를 통하여 지원할 수 있다. 학비는 학점당 6만~8만원 선이며 18학점 신청 시 학기당 100만~150만원 수준이다. 소득분위 기준으로 지급되는 한국장학재단(www.kosaf.go.kr)의 국가장학금 제도도 활용할 수 있다. 사이버대학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사이버대 종합정보사이트 CUinfo(www.cuinfo.net)를 참조하면 된다. 사이버대학은 2001년도에 총 9개 대학으로 시작했으며 현재 전국적으로 총 21개가 운영되고 있다. 10만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시니어가 몰리는 사이버대학 인기학과 F4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사회복지학과, 상담심리학과, 한국어문화학과는 학생의 1/4 정도가 50대 이상이다. 특히 미디어문예창작학과이 대한 60대 이상 시니어의 관심이 두드러진다. 미디어문예창작학과 미디어문예창작학과는 문예창작이론에 영상미디어를 접목한 학과다. 문학예술과 뉴-미디어에 대한 기본 소양을 배우고 폭넓은 시야와 깊이 있는 사유능력을 키워나가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계’에 실천적 문학인을 양성하는 것이 미디어문예창작학과의 목표다. 미디어문예창작학과에는 60대 이상 시니어들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경험한 것들을 글로 남기고 싶은 욕구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희사이버대학교에만 개설된 학과다. 한국어문화학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를 양성하는 학과다. 어느 정도 배움이 있는 시니어들이 ‘교사’에 관심이 있고 또 외국인을 대상으로 봉사 차원에서도 활용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고려, 영남사이버대학교 등 9개 사이버대학에 개설돼 있다. 국어기본법에서 정한 한국어 교원 자격 요건에 맞춘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글로벌 환경, 다문화 시대에 필요한 국내외 현장의 요구에 부합되는 인재를 양성한다. 영역별 필수 과목을 이수하면 한국어 교원 2급 자격증을 준다. 사회복지학과 사회복지학은 현대화, 산업화, 도시화 등 사회변화에 따른 삶의 질 향상과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실천적, 전문적 해결방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가족과 아동, 여성, 노인, 장애인, 청소년 등 다양한 대상들과 지역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사회복지적인 개입 방안을 학습하고 이를 현실 사회 속에 실천하는 것에 주력한다. 사회복지전공은 전반적인 사회복지이론 및 기술의 습득, 각 전문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무적 능력을 갖춘 복지전문가를 배양하는 데 교육의 목적을 두고 있다. 사회복지학과를 선호하는 시니어들은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거나 사회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봉사하는 시니어들이 많이 찾는다. 상담심리학과 최근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사회의 각 분야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행복한 삶과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이해, 인간의 성장과 발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상담심리학과의 경우 4년제 학위가 있는 시니어들이 선호한다. 이론과 실제가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룬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다양한 정신건강과 상담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실천적·통합적·전문적인 지식과 상담기술 등을 훈련하고 있다. 상담심리학과는 관련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교과목 운영은 물론, 기초단계의 상담심리 교육과정과 영역별 심화 및 응용 단계의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학생들은 졸업 후 다양한 휴먼서비스 영역에서 전문상담가로 활동할 수 있다.
- 2016-03-2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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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중년·꽃중년 새 바람, 학교 가는 사람들] Part 2-3. 미니인터뷰 - 이희범 aSSIST 총원우회 회장
- 아침 교육현장에서 열성 참석자를 만났다. 경제 관료로 엘리트 코스를 밟고, 경제 부분 전문성의 최고 자리라 할 수 있는 산업자원부 장관까지 지낸 이다. 그것도 모자라 경제 5단체 가운데 2개 단체의 수장을 지내고, 대기업 CEO도 두 번이나 맡는 진기록도 보유했다. 바로 현 LG상사 고문이자, 제8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이희범(李熙範·66) 회장의 이야기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그런 그가 평범한 화요일 새벽 조찬 포럼에 나타났다. 형식적인 참석도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포럼의 참석자 대표라 할 수 있는 총원우회 회장을 맡고, 이·취임식까지 가졌다.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aSSIST(서울과학종합대학원)의 CEO 포럼과의 인연을 묻자 그는 처음엔 입장이 달랐다고 했다. “이 포럼이 처음 생긴 것이 2005년이니까, 장관 재직시절이었어요. aSSIST측에서 요청이 와서 CEO 과정의 강사로써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좋은 분들과의 매력을 느껴 눌러앉게 되었고,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아마 현재 서울 시내에만 경영자 포럼이나 모임이 100개 이상 되겠지만, 여기가 교육과정이나 내용이 다양하다고 생각됩니다. 참석자들도 중견기업의 CEO나 공직자, 민간연구소 연구원 등 다양해서, 여러 입장에서의 다채로운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좋습니다. 이 안에서 비즈니스도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식견도 넓어지기도 하고 말이죠.”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 모임을 참석해 열의를 보인다는 것 자체가 형식적인 것과 거리가 있다. 그의 배움에 대한 진정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유독 국내에서 이렇게 조찬 모임이나 경영자 과정의 인기가 많은 것은 한국의 높은 교육열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한국의 높은 교육열을 칭찬한 적이 있잖아요. 제가 공직 시절 대통령을 보좌해서 헝가리를 방문했을 때, 현지 관계부처 장관과의 미팅을 조찬으로 추진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쪽에서 놀라더라고요. 아침은 가족과 함께 먹는 것 아니냐고. 아예 조찬회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는 것이죠. 결국 빠듯한 일정 탓에 무리하게 오전에 약속을 잡아서는, 수위도 출근 안 한 건물의 어두컴컴한 사무실에 그 장관과 단 둘이 마주앉아 회의를 진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다면 이런 현상이 꼭 우리만의 일일까? 이에 대해 이제 우리보다 더한 곳이 있다고 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에서도 우리와 같은 경영자 모임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6개월 과정의 비용이 4만달러 수준이니 가격은 국내 수준보다 훨씬 높은 편이죠. 게다가 모임도 오전에 잠깐 만나는 것이 아니라 주말에 베이징(北京)이나 상하이(上海), 선전(深?) 등을 돌며 1박 2일 일정으로 해요. 그들에게 힘들거나 비싸지 않으냐고 물어보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봐요. 이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상품 하나를 잘 만들게 되면 그를 통해 얻는 수익이 얼마인데 그런 소리를 하냐는 것이죠. 그들의 정보와 아이디어에 대한 가치 평가는 어떤지, 기업 경영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는 경험이었죠. 매일 빅데이터들이 계속 쌓이고 이를 활용하는 기업의 패러다임이 매일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경영자들에게 이런 모임들은 트렌드를 읽고, 도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행정가에서 기업가로 변화하는 동안 그는 다양한 기관, 다양한 조직에서 변화의 순간을 맞이했고, 그 과정에서 그는 이 모임을 놓지 않았다. CEO 포럼에 대한 애정도 있었지만, 의식을 변화시키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마 산업자원부 차관을 맡은 뒤 바로 장관에 임명됐으면 많은 어려움을 느꼈을 겁니다. 그 사이에 한국생산성본부 회장과 서울산업대학교 총장을 맡으면서 관료 시절엔 알 수 없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체득하게 됐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우문현답,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것도 이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산업부 후배들도 이제 1일(日) 1사(社) 방문을 유지하고, 현장의 요구사항을 경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또 경영자가 되고 나서는 그간 몰랐던 것들을 많이 배웠다고 했다. 공직과 기업 간 시각차가 분명히 존재하고, 공직자들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애정을 갖고 기업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에는 겸손이 섞여 있지만, 실제로 그는 현장을 찾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2000년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장 시절, 발전사업 분할 때 한국전력 노조가 전면 파업을 선언하자, 신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노조원들의 집결지를 찾아 사태 해결에 앞장선 일화는 유명하다. 또 장관 재임 시절에는 직원들과 정기적으로 ‘도시락 미팅’을 가지며, 일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수첩 사이에 노란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흔히 포스트잇으로 부르는 접착식 메모지다. 그는 미소지으며 “제가 가장 애용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창조의 노란 패드’라고 부르고 있어요. 작성한 정보가 완료되지 않고 계속 업데이트할 수 있어 애용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 수첩 안 메모지는 또 다른 별명이 있다. ‘공포의 노란 패드’. 사무관, 서기관 때부터 일벌레로 유명했던 그를 지칭한 별명이다. 수치 하나까지 틀림없이 기억하려는 철저한 그에 대한 평가가 아닐까. 따로 묻진 않았지만 또 다른 별명은 아마 그도 알고 있으리라. 그의 꼼꼼함을 알 수 있는 또다른 모습은 안주머니 가득 자리 잡고 있는 샤프들이다. 몽블랑 같은 명품이 자리 잡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다. 샤프 중에서도 흔히 우리가 ‘제도 샤프’라 부르는 흔하디 흔한 물건이다. 그는 “샤프로 작성하면 쓰고 지울 수 있으니까, 다양한 수치나 정보를 기억할 수 있어서 좋아요”라고 설명했다. 결국 두 가지 키워드다. 정보와 업데이트. 여러 가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총원우회 회장을 수락한 배경에 대해서는 이제 좀 한가해졌다고 대답하며 소탈한 웃음을 보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장에서 물러난 후 30개가 넘는 직함을 함께 내려놓았다. 한때는 국내뿐만 아니라 두바이 아부다비 왕립 연구소 자문위원이나, 에티오피아의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 참여 등 여러 활동에 참여했던 그다. “10기까지는 신입 기수 내에서 회장을 뽑았지만, 이제 모임이 성장한 만큼 본격적인 사업진행을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이 형성되면서 요청이 있었어요. 저도 나이나 신분과 상관없이 교류를 강화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단순 교류를 떠나 전체 790명 회원을 위해 소모임을 활성화하고, 문화예술 공연 지원이나 사회공헌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입니다.” 이희범 회장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정무직 공무원을 거친 뒤 기업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LG상사 고문을 맡고 있다. 서울대 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이공계 출신 최초의 행시 수석 합격자로도 잘 알려졌다. 상공자원부 사무관을 시작으로, 주EU사무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산업자원부 차관 등 경제 관료로 이름을 알렸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서울산업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2003년 12월부터 2006년 2월까지 제8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장관 퇴임 뒤에는 한국무역협회장을 역임하고, 2009년 STX그룹 에너지 부문 총괄 회장으로 영입되며 기업인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2013년 LG상사 고문으로 이직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 2016-03-25 1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