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직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들어서 행복하다”
- 1935년에 태어난 박종규 씨는 무슨 일을 하든 올인했다. 중도에 포기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정도(正道)와 성실(誠實)을 깊게 뿌리 내린 그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두 번의 암 선고 앞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고 “까짓것 죽어주지” 하며 담담하게 쳐내는 의연한 어른을 만났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알짜’이자 숨겨진 강자로 불리는 기업들을 강소기업이라고 부른다. KSS해운은 해운업계에서 강소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박종규 바른경제동인회 고문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그 KSS해운을 창업한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리에서 물러나 고문 역할만 하고 있는 그는 KSS해운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로 투명경영을 꼽는다. 자신이 세운 기준을 평생 추구했고, 그 결과로서의 기쁨을 오롯이 누리는 중인 그는 제주도에서 칩거하며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KSS해운은 해운 운송 전문업체로서 가스, 석유, 화학제품의 운송을 전문적으로 맡는다. 현재 초대형가스선(VLGC) 선단으로는 국내 최고, 세계 9위의 규모를 자랑하며 2018년 매출 2025억 원에 영업이익 실적이 471억 원에 이르는 견실한 강소기업인 KSS해운은 올해로부터 50년 전인 1969년, 박종규 고문이 맨손으로 세운 회사다. 난생처음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는 만연했던 선원들의 밀수를 근절하며 회사를 정직하게 경영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의 근저에는 독립군 출신이며 민족자본 형성을 위해 유한양행을 세워 윤리경영의 대명사가 된 유일한 박사가 있었다. “꿈도 없이 막연하게 월급쟁이 생활을 10년 했거든. 그때도 유한양행의 유일한 씨를 존경해서 내가 만약 사업을 하게 된다면 유일한 씨처럼 해야겠다는 게 꿈이었어. 어떻게 하다 보니 사업을 하고 성공도 했는데, 그저 유일한 씨처럼 한 것뿐이야.(웃음)” KSS해운, 스스로 떠나다 밀수를 근절하자 사고가 안 생겼고 화물 하역과 인도가 차질 없이 이뤄졌다. 그러면서 회사에 대한 신뢰는 자연스럽게 쌓였다. 그렇게 KSS해운의 성장이 지속되던 25년 차, 박 고문은 수장 자리에서 내려와 회사의 고문이 되었다. 그렇다면 KSS해운은 그의 자식들이 맡게 되었을까? 아니다. 정도경영, 윤리경영이라는 그의 철학과는 맞지 않는 일. 회사는 그의 아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후배 전문 경영인이 맡았다. “아들들은 각자 자기의 길을 갔죠. 지금 서울에 한 명, 미국에 두 명 있는데 미국에 간 두 명은 과학자예요. 서울에 있는 아들은 사업가고. 다들 나한테 원조 받은 일도 없고, 원조 줄 아버지도 아니고…. 다만 독립심을 길러줘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 ‘각자 자기 살길을 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서로 신세지지 말자. 나도 아무것도 없는 무일푼에서 이렇게 됐으니까’라는 생각이었죠. 유산 많이 남겨야 소용없어요. 독립적인 정신을 갖게 하는 게 정말로 중요한 유산이야.” 제2의 인생, 바른경제동인회 그러나 박 고문이 KSS해운의 대표 자리를 물러날 즈음은 또 다른 제2의 인생이 펼쳐지고 있던 때였다. 1993년에 바른경제동인회를 창설했다. “1990년대 초는 노동조합운동이 아주 격화되어 혼란한 시대였죠. 불법파업도 많았고. 그때 ‘회사를 노사 공동의 파트너십으로 생각하자, 사용자와 피고용인의 구분을 떠나서 함께 가자’는 생각에 바른경제동인회를 만들었죠.” 바른경제동인회에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투명성이었다. 경영을 투명하게 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았다. “그러려면 CEO의 의지가 있어야 하죠. 그런데 참여하는 사람 찾기가 어려웠어요. 현실은 돈을 갖다 줘야 일이 됐으니까. 그래도 투명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과 함께했지만, 사회 전체가 워낙 불투명하니까 힘들었죠.” 박 고문이 바라본 당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지하자금이었다. 세무 신고를 하는 음식점이 30%도 안 되던 때였다. 나머지는 다 탈세였던 셈이다. 그러니 지하자금도, 뇌물도 엄청나게 돌았다. 그런 현실을 보다가 그는 마침내 세상을 바꿀 해법을 찾았다. 지하자금 줄인 ‘신의 한 수’ “지하자금을 정리해야겠다, 그래야 투명경영이 가능해진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런데 지하자금을 줄이는 방법으로 뭐가 있을까? 바로 신용카드를 많이 쓰도록 활성화하는 거였어요.” 사람들이 신용카드를 쓰도록 해서 신용사회를 만들자는 바른경제동인회의 아이디어는 지하자금의 양성화, 경제의 투명화와 함께 내수시장의 양적 증가와 자금 유동성 활성화를 이끌 방법이기도 했다. 때마침 IMF 체제를 돌파해야 했던 정부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나은 선택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바른경제동인회의 솔루션이 채택되어 1999년부터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 지하자금의 축적은 줄어들고 전자화된 세금 징수와 보다 투명화된 재정 운영이 가능해진 국가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 박 회장이 만든 대한민국 역사의 변곡점이었던 셈이다. 2004년이 되자 그에게 또다시 큰일이 맡겨졌다.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이 된 것이다. 박 고문을 그 자리에 올린 사람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1년 후배인 고건 전 총리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해 직무 정지가 되자 고건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되었고, 그전까지 한사코 거절하던 그를 결국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에 앉혔다. 그는 위원장 일을 하며 정부와 많이 싸웠다고 회고한다. 정치 논리로 새로운 안을 만들어서 규제를 하려는 걸 막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는 2006년까지 위원장 일을 했다. 그런데 그 시기에 그가 싸워야 했던 대상은 또 있었다. 2006년 그는 서울을 떠나 본격적으로 제주도에 정착했다. 그는 그 일에 대해 담담하게 이유를 밝혔다. “죽으러 간 거지. 위암에 걸렸거든.” 죽기 위해 제주도로 가다 박 고문은 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받을 때 의학 책을 보게 됐다. 책에는 “위암 4기는 수술을 하든 안 하든 사망률이 90%에 달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놀라진 않았어. 나이 71세에 암에 걸린 거니 죽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지. ‘젊은 사람도 많이 죽는데 70년 이상 살았으면 많이 산 거다’ 싶었지. 그런데 죽을 때 서울에서 죽고 싶진 않더라고. 왜냐하면 사는 데는 아파트, 밖을 나가면 아스팔트잖아요. 사람이 흙을 밟지도 못하고 시멘트 안에서 아스팔트를 걸으며 살았는데, 마지막에라도 자연 속에서 죽고 싶었지.” 그는 병원에서 권한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아내와 함께 제주도로 떠났다. 죽을 장소를 찾아간 셈이었다. 그리고 아무 치료도 받지 않고 한라산을 왔다 갔다 하며 생활했다. 그러다 보니 암이 자연스럽게 나았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사람에게 자연치유 능력이란 게 있는 거지. 항암 치료를 받았으면 아마 죽었을 거야. 거절한 바람에 살았어. 역설적이지.” 자서전을 반드시 써야 했다 그러나 박 고문의 시련은 위암으로 끝나지 않았다. 2017년이 되자 또 다른 암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방광암이었다. “괴로웠죠. 소변이 안 나오니까. 이건 항암 치료를 안 하면 죽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따랐는데… 그런데 못하겠어. 치료받다가 죽을 거 같았지. 여섯 번 하고 안 하겠다고 하니까, 병원에서 방사능 치료로 바꿔주더라고.” 그의 몸에는 아무래도 방사능 치료가 맞았나보다. 그는 다시 한 번 기적처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이때 그의 책 ‘직원이 주인인 회사’가 쓰였다. “자서전을 하나 내보라고 해서 쓸까 말까 하다가 방광암에 걸렸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못 살 거 같았지. 그러니까 좀 섭섭하더라고. 내가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죽으면 안 되겠다, 책 한 권 남겨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항암주사를 맞으며 썼죠. 쉬었다가 조금 쓰고… 힘들었지. 제목을 뭐로 할까 했는데, 적당한 게 없어서 직원들에게 책을 보내 ‘자네들이 읽고 정해 달라’고 했어요. 그때 제일 많이 추천한 게 이 제목이었죠.” 직원들이 제목을 지어준 책. 어떻게 보면 그 과정 자체가 자기들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지금 사장은 내 의견이 들어간 사람이 아냐. 되려 내가 모르는 사람이지.(웃음) 내가 그만둘 때 지금 사장이 대리급이었으니까 특별히 만난 일도 없어요. 그런데 경영을 너무 잘해. 투표해서 뽑힌 사람이 더 잘한다는 증거죠.” 그가 행복한 이유 창립자이지만 박 고문은 회사 경영에 일체 간섭을 안 한다. 당연히 보고도 안 받는다. “‘이익 배당만 잘해다오’ 그러지.(웃음) 대신 투명한 회사야. 그러니까 맡길 수 있어.” 인터뷰 말미로 갈수록 박 고문 목소리에는 웃음이 많이 더해졌다. 자신이 이뤄낸 것들을 복기하면서 즐거워진 것일까. 그는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사람이다. 암에 두 번이나 걸리면서도 겁을 안 냈고, 되려 ‘까짓것 죽어주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 무조건적인 긍정성은 자신의 삶을 후회 없이 살아왔고 그를 통해 이뤄낸 성과들을 확인했기에 가질 수 있는 마음일 것이다. 그의 정도경영, 투명경영이 사회적 의미와 더불어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다. “회사를 세웠는데 직원들이 주인처럼 하니까 기업인으로서 성공한 거지. 부의 창조만이 아니라 사회에 부가가치를 남긴 것 같아 그게 가장 행복해.(웃음)”
- 2020-01-02 08:27
-
- 1월 즐길 만한 전시ㆍ공연ㆍ영화ㆍ도서
- ◇ Exhibition #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 일정 5월 31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비디오 아트의 30여 년을 재조명한다. ‘시간 이미지 장치’를 부제로 하는 이번 기획전은 국내 비디오 작가 60여 명의 작품 130여 점을 선보인다. 시간성, 행위, 과정의 개념을 실험한 1970년대 작품에서 시작해, 1980~90년대의 장치적인 비디오 조각과 싱글채널 비디오까지 아우르며 한국 비디오 아트의 전개 양상을 입체적으로 해석했다. ‘한국 초기 비디오 아트와 실험 미술’, ‘탈장르 실험과 테크놀로지’ 등 크게 7개의 주제로 나뉜다. 기술과 영상 문화, 과학과 예술, 장치와 서사 등 이미지와 개념의 문맥을 오가며 진화해온 한국 비디오 아트의 역사를 다각도로 살펴볼 기회다. # 매그넘 인 파리 일정 2월 9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프랑스 파리를 주제로 한 사진전으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등 20세기 사진의 신화로 불리는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 소속 작가 40명의 작품 400여 점이 공개됐다. 2014년 오텔 드 빌(파리 시청)에서 처음 개최됐던 이번 전시는 2017년 일본 교토문화박물관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앞서 열린 파리와 교토 전시에서는 선보이지 않았던 엘리어트 어윗의 사진 40여 점으로 구성된 특별 섹션 ‘Paris’와, 파리의 패션 세계를 담은 작품 41점을 추가로 만날 수 있다. 파리의 풍경이 담긴 옛 지도와 희귀도서, 앤틱가구 등으로 꾸며진 ‘파리 살롱’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풍성하다. #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일정 3월 1일까지 장소 마이아트뮤지엄 체코를 대표하는 화가 알폰스 무하의 판화, 유화, 드로잉 등 오리지널 작품 230여 점을 작가의 삶과 여정에 따라 총 5부로 나눠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는 체코 출신의 테니스 선수 이반 렌들의 개인 소장품을 주축으로 기획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일명 ‘무하 스타일’이라 알려진 넝쿨 같은 여인의 머리카락, 독특한 서체 등 매혹적인 아르누보 스타일의 포스터에서 작가가 고국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작품까지 총망라한다. 도슨트 운영과 더불어 체코문화원과 함께하는 미술사 강연 및 시즌 이벤트, 키즈 아틀리에 등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도 제공할 예정이다. # 고향 gohyang: home 일정 3월 8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서울시립미술관 비서구권 전시 시리즈의 세 번째 프로젝트로, 복잡한 사회·역사적 배경을 가진 중동 지역의 현대 미술을 살펴본다. 중동에서 발생한 다양한 미술적 활동을 통해 고향을 잃거나 빼앗긴, 또는 고향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민족’이라는 관념적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기억의 구조’, ‘감각으로서의 우리’ 등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며 이미지, 사운드 설치, 드로잉, 비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아우른다. 전시기간에는 할리드 쇼만 컬렉션의 영상 작품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시네마테크 컬렉션으로 구성된 스크리닝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 Stage # 뮤지컬 '레베카' 일정 3월 15일까지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엄기준, 신성록, 옥주현 등 ‘엘리자벳’, ‘마리 앙투아네트’ 등으로 잘 알려진 뮤지컬계 콤비 미하엘 쿤체(대본·작사)와 실베스터 르베이(작곡)의 대표작. 영국 대표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동명 소설 ‘레베카’와 알프레드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 ‘레베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됐다. 원작 소설과 영화를 뛰어넘는 감동적인 로맨스, 반전을 거듭하는 서스펜스, 강렬한 음악으로 전 세계 1900만 관객을 마음을 사로잡으며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라이선스 공연의 상징이 된 회전하는 발코니 신은 관객이 꼽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관전 포인트다. # 마당놀이그 '춘풍이 온다' 일정 1월 26일까지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 연출 손진책 출연 김준수, 서정금, 김미진 등 판소리계 소설 ‘이춘풍전’을 바탕으로 한 마당놀이극이다. 34명의 배우와 20명의 연주자가 풍성한 무대를 꾸민다. 기생의 유혹에 넘어가 가산을 탕진한 한량 춘풍을 그의 어머니와 몸종이 혼쭐내고 가정을 되살린다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다. 마당놀이 특유의 세태를 꼬집는 풍자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 2020 신년음악회 일정 1월 4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 정명훈 출연 서울시립교향악단, 클라라 주미 강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은 경자년을 맞아 새해 첫 주 토요일 신년음악회를 개최한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끈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4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며 의미를 더한다. 실력파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협연으로, ‘브람스 교향곡 제1번’을 비롯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고 사랑받아온 곡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 Movie # 피아니스트의 전설 개봉 1월 1일 장르 드라마·판타지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 출연 팀 로스, 프루이트 테일러 빈스 등 ‘시네마 천국’, ‘베스트 오퍼’에 이은 주세페 토르나토레와 감독과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 감독이 함께한 ‘예술과 사랑’ 3부작 마지막 편이다. 2002년 12월 개봉 이후, 22년 만에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국내 첫 정식 개봉을 확정했다. 이탈리아 작가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소설 ‘노베첸토’가 원작. 평생 바다 위에서 살며 한 번도 땅을 밟아본 적 없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라는 설정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여기에 아름다운 영상과 황홀한 선율이 조화를 이루며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개봉 1월 16일 장르 드라마 감독 셀린 시아마 출연 아델 하에넬, 노에미 메를랑 등 제72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2관왕에 이어 토론토, 뉴욕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여인과 그녀의 결혼식 초상화 의뢰를 받은 화가 마리안느의 미묘한 관계를 그린다. # 몽마르트 파파 개봉 1월 9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민병우 출연 민형식, 이운숙, 민병우 아버지의 인생 2막을 담은 아들의 다큐멘터리. 미술교사로 평생을 산 아버지는 은퇴 후 ‘몽마르트 거리 화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파리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도전기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 Book # 55년생 우리 엄마 현자씨 (키만소리 저·책들의정원) 엄마는 해외로 떠난 딸을 그리워하며 자신도 영어공부를 해서 혼자 해외여행을 가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엄마, 아내,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거부한 그녀는 ‘현자 씨’라 불러 달라며 가족들에게 선포한다. 환갑을 훌쩍 넘겼지만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며 ‘나다운 나’로 살고 있는 현자 씨의 홀로서기 에피소드를 웹툰과 에세이로 담았다. 자신의 이름 석 자로 인생 2막을 살며 못다 한 꿈을 이뤄가는 당당한 꽃중년의 모습을 그린다. # 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신정근 저ㆍ21세기북스) 베스트셀러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에 이은 신정근 교수의 신작. ‘중용’의 원문 중 신중년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60개의 명문장을 엄선해 인생의 무게 중심을 잡는 법을 일러준다. #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수지 홉킨스 저ㆍ에프) 자신이 죽은 뒤 남겨질 딸에게 전하는 엄마의 사랑과 조언을 담은 그림 에세이다. 엄마가 떠나고 딸이 홀로 할 일들을 날짜별, 단계별로 보여주고, 행복한 삶을 위한 처방전도 제시한다. # 굿모닝 미드나이트 (릴리 브룩스돌턴 저ㆍ시공사) 북극에 고립된 78세 천문학자와 지구로 귀환 중인 우주비행사가 생의 마지막 순간 느낀 지난날의 사랑과 회한을 그린 소설. 극한 상황 속 인간의 고독과 복잡한 내면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 어반 우즈맨 (맥스 베인브리지 저ㆍ목요일) 우드 카빙으로 숟가락, 주걱, 도마 등 일상에서 쓰이는 물건을 손수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다. 목재 구하기부터 도구 사용법, 관리법 등 초보자를 위한 목공 매뉴얼이 자세히 실려 있다.
- 2020-01-02 08:26
-
- 4차 산업혁명 시대, 자녀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 주민을 위한 작은 복지관 커뮤니티 센터 지난 12월 23(월) 오후 7시부터 서울시 송파구 위례 신도시 안의 도심형 요양원인 KB 골든라이프케어 위례 빌리지 커뮤니티 센터(주민 사랑방)에서 지역주민을 위한 특강이 있었다. 올해 9월에 개관한 커뮤니티 센터는 1층에 위치한 넓고 채광이 좋은 공간으로 지역사회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개관 후 주민들을 위한 첫 번째 강좌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초, 중, 고생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포커스를 맞추고 초빙 강의를 준비했다. 초빙 강사는 강남대학교 입학 사정관으로 활동 중인 박주용 강사였다. 맞벌이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사는 지역 특성상 주민들의 자녀교육에 관한 관심과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강좌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주민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란? 우리는 지금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정보혁명 시대, 제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부른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의 바람직한 교육은 과연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의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월스트리트 증권가에서 트레이더들의 대량 해고 사건이 있었다. 평균 연봉이 4억~5억을 호가하는 트레이더들이 하는 영역을 ‘캔쇼’라는 인공지능에 맡겨놓으니 인간 600명이 한 달 걸리는 일을 켄쇼는 혼자서 3시간 20분 만에 끝내버렸다. ‘켄쇼’는 인간보다 더 계산을 빠르게 처리하는 한편 그만큼 비용도 절감되는 효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바둑에서 알파고, 한돌 같은 인공지능이 나타나 한순간에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향후, 전문적인 분야로까지 인공지능이 확대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즉 의사보다 인공지능 로봇이 더욱 정확하게 병을 찾아내고 치료 방법까지 제시할 수 있는 시대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학교 교육의 진짜 문제는 상대평가 서열화이다 우리 교육의 현실은 시험점수를 잘 받고 수능을 잘 보기 위해서 학생들이 무한경쟁에 노출되어 있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통해 모든 문제에는 답이 정해져 있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인생에 있어서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즉,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중요시해야 한다. 부모가 이 문제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세상에 답이 정해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답이 정해져 있다고 배우지만 현실에서는 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고 가르쳐 줘야 한다. 그리고 진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진짜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 독서다. 인간의 내면적 가치를 위해서 다양한 독서를 통해서 ‘희망’을 찾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내면적 가치를 위한 공부는 독서이다 독서가 왜 좋은가? 독서를 통해서 깊은 사고와 문제의 연결방식을 알아갈 수가 있다. 첫째, 독서는 두뇌의 전 영역을 자극해서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다. 워싱턴 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독서는 뇌의 17개 영역을 활성화’ 시킨다고 한다. 둘째, 간접경험을 통해 다양한 관점 ➀ 뇌의 측두엽은 언어의 습득 및 1차 감각을 감지한다. 즉 뇌의 신경세포는 실제 일어나지 않아도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➁ 소설을 읽고 마치 주인공의 마음을 느끼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공감할 수 있다. ➂ 단순히 공감을 넘어,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셋째, 언어발달과 사고의 틀이 형성된다. ➀ 독해력 향상 : 글자가 아닌 글을 읽는 능력을 키워주고 의미 있는 언어를 습득 함으로써 그만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 상호 질문 및 토론시간 위례신도시 내에서 자그마한 도서관 관장을 하고 있으며 고2 자녀를 둔 학부모인 김경이씨는 “위례신도시는 아이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신도시임에도 젊은 맞벌이 부부들이 많이 살고 있어 자녀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다”고 하였다. 아이가 좋아하는 바둑을 허락하면서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IT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는 초등학교 3, 5학년 자녀를 둔 직장인 김동희 씨는 IT 기술의 가장 핫한 분야는 딥 러닝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아이들이 어떤 쪽으로 공부를 해야 보다, 좋은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6학년 딸이 책을 너무 안 봐서 걱정이라는 김경아씨 부부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독서를 권유했지만 별 효과가 없어 그 방법이 궁금했다고 질문했다. 박주용 강사는 답변을 통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인 ‘해리포터’를 같이 읽으면서 중간중간 궁금증을 유발할 만한 대목에서 멈추면서 호기심을 유발하는 방법”도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제시했다. 저녁 7시에 시작한 강의와 토론은 9시까지 분위기가 후끈할 정도로 가열되어 토론이 이어졌다. 이구동성으로 모두가 유익한 강의였다고 말하면서 앞으로도 유익한 강좌가 주민 사랑방에서 이어지기를 희망했다.
- 2019-12-26 17:02
-
-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사는 은둔형 외톨이
- 일본어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는 ‘집에 틀어박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사회 문제 관련 기관에서는 이미 국제 학술어로 정착된 ‘히키코모리’와 우리말로 풀어쓴 ‘은둔형 외톨이’라는 두 용어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히키코모리’에 관한 우려가 우리나라에서도 확산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큰 사회 문제로 등장해 이에 대한 정부와 학계의 관심도 큽니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입니다. 일본 총무청은 1990년에 ‘청소년백서’를 발표해 청소년의 장기 등교거부와 ‘히키코모리’ 문제를 보고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히키코모리’를 청소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3월에 일본 내각부(內閣府)가 발표한 보고는 40~64세의 중고년(中高年) ‘히키코모리’가 추정치로 약 61만 명에 달한다고 했습니다. 2016년에 발표한 15~39세의 청소년 ‘히키코모리’ 추정수 약 54만 명을 합치면 115만 명이나 돼 국민을 놀라게 했습니다. ‘히키코모리’가 문제인 나라들 ‘히키코모리’ 문제를 20여 년 연구해온 일본 쓰쿠바(筑波)대학교 사이토 타마키(齊藤環) 교수는 정부 당국의 추정수의 약 2배인 200만 명 이상이 ‘히키코모리’ 해당자이며 이 중 반 이상이 중고년일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키코모리’에 관한 여러 권의 책도 낸 사이토 교수에 의하면, 일본 다음으로 ‘히키코모리’가 인구비례로 한국에 많고 중국, 타이완, 홍콩 등 유교문화국으로 경제발전을 어느 정도 달성한 국가들에 ‘히키코모리’ 문제가 크다고 했습니다. 성인이 되어도 가족과 동거하는 문화를 가진 나라에 이 문제가 많다고 말한 사이토 교수는, 서구문화의 나라에서 이 문제가 비교적 적은 것은 성인이 되면 독립해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유럽 국가 중에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히키코모리’가 비교적 많은데 일본, 한국, 스페인, 이탈리아 네 나라의 공통점은 청년이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이 인구의 70%를 넘는다는 데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또 이런 이유로 일본에는 ‘히키코모리’ 수가 선진국 중 가장 많은 반면 홈리스(homeless) 수는 가장 적어 정부 통계에서도 5000명 미만이고, 개인주의가 우선하는 영국에는 26만 명, 미국에는 100만 명 이상의 홈리스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히키코모리’ 문제는 가족주의 대 개인주의 구도에서 관찰해야 하며 젊은이의 거처가 ‘집 안이냐 노상(路上)이냐’의 차이에서 문제 해결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홈리스는 생활환경이 나빠 평균수명이 50세 정도인 데 비해 ‘히키코모리’는 주거환경이 좋아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을 것이라고, 사이토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올해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문제가 특히 화제에 오른 것은 지난봄에 나흘 간격으로 ‘히키코모리’와 관련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76세의 전직 농수산성 차관이 44세의 ‘히키코모리’ 아들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은 평화스럽던 가정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매스컴의 대대적인 취재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 교양 있는 아버지가 ‘히키코모리’ 아들이 근처 초등학교 운동회의 확성기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불평하면서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흘 전 ‘히키코모리’의 ‘묻지마’ 살인사건을 연상해 타인에게 일어날지도 모를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 이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로 많은 사람의 동정을 샀습니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이 아이도 그와 같은 끔찍한 사건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강박감에서 자기 아들을 죽였다는 이 사건 이후 많은 사람이 전직 정부 고관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전 오사카(大阪) 시장이며 인권변호사인 하시모토 토루(橋下徹) 씨도 트위터에 “나도 같은 입장이 되면 그와 같은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 나흘 전에 일어난 일은 51세의 ‘히키코모리’가 등교하는 초등학생이 탄 스쿨버스를 습격해 두 사람을 죽이고 10여 명의 다른 아이와 보호자에게 부상을 입히고 자신은 자살한 사건이었습니다. ‘히키코모리’ 반 이상이 중고년 이처럼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가 이제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미 중고년을 포함한 모든 연령층의 문제로 확산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8050’이라는 유행어도 생겼습니다. 즉 “80대의 노부모가 50대의 ‘히키코모리’ 자식을 돌봐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히키코모리’의 일반적 정의는 ‘집에만 틀어박혀 외부와의 연락을 6개월 이상 단절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인터넷과 휴대전화, 텔레비전 등이 발달한 오늘날, 이 낡은 생각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사이토 교수는 말합니다.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古市憲壽) 씨는 잡지 ‘분게이 주(文藝春秋)’에 쓴 글에서 일부 ‘히키코모리’ 관련 범죄가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매년 3500명 이상 사망하는 교통사고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말하며, ‘히키코모리’는 결코 범죄예비군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히키코모리’ 중 인터넷을 통해 언론활동을 하거나, 소설이나 음악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가정에 있으면서도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8050’ 문제에 약간의 희망을 준다고도 했습니다. 지금 사이토 교수가 우려하는 것은, ‘히키코모리’의 범죄사건이 아니라 머지않은 장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들의 대량 고독사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2030년쯤 일본이 ‘히키코모리’ 장수사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지금 50대 중반의 ‘히키코모리’ 수만 명이 연금 수급자가 될 것인데, 수많은 사람이 연금 수급신청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의 ‘히키코모리’ 지원 대책이 더 확충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통계청 추산이라면서 우리나라의 ‘히키코모리’ 인구수가 약 31만 명이라고 쓴 글을 본 적은 있습니다. 이웃 나라의 심각한 ‘히키코모리’ 실상과 이에 대처하는 정부와 사회의 대응을 ‘타산의석(他山의石)’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황경춘 칼럼니스트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 2019-12-24 09:54
-
- [카드뉴스]나를 발견하게 하는 추천 도서들
- 단편소설 ‘어떤 갠 날’로 등단한 후 집필 활동과 더불어 수십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겨온 부희령 작가. 나를 발견하게 하는 추천 도서들 - by 부희령 ◇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존 쿳시 저) 도스토옙스키가 소설 ‘악령’을 집필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뤘다. 작가에게 창작이란 배반이고, 영감이란 악마의 선물과 같다고 비유하며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쾌락과 고통을 넘나드는 작가의 근원적 욕구에 대해 말한다. ◇ 주기율표(프리모 레비 저) 주기율표상의 원소 하나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상되는 이야기들을 원소 이름을 딴 21개의 장으로 나눠 설명했다. 유년 시절의 추억과 역사적, 윤리적 성찰을 관통하는 주제와 저자의 꿈 또는 환상의 허구 세계까지 아우른다. ◇ 빼앗긴 자들 (어슐러 르 귄 저) SF 작가 어슐러 르 귄의 장편소설로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이다. 쌍둥이 행성인 우라스와 아나레스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사회를 지배하는 제도의 모순, 남녀차별과 종교, 과학의 문제 등을 투영한다. ◇ 붓다 브레인 (릭 핸슨, 리처드 멘디우스 저) 마음 훈련을 통한 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이 일상에서 느끼는 연민, 공감 등의 감정이 실제 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과학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했다. 나아가 명상수련을 통해 지혜롭게 사는 방법도 제시한다.
- 2019-12-20 10:50
-
- “가수는 꿈에도 없었는데, 운명이란 게 있는 듯해요”
- 1955년생, 베이비붐 세대로서 1978년에 데뷔해 올해로 예순다섯 살. 그러나 이치현의 모습에서 그 세월을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 1980년대를 휘어잡던 순간의 ‘이치현과 벗님들’ 리더 이치현이 세월을 뛰어넘어 그대로 내 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여전한 젊음과 변치 않은 감미로운 목소리,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더 성숙하고 테크니컬해진 그의 라이브를 보면 시간을 거꾸로 먹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다. 심지어 신곡을 준비하면서 내년부터는 ‘전투를 치르듯’ 전국 라이브 투어를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그를 만나 그의 음악과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얘기를 나눠봤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로 올해로 벌써 41년째 롱런 중인 이치현과 벗님들은 흔히 ‘한국의 비지스’라 불린다. ‘당신만이’, ‘사랑의 슬픔’, ‘다 가기 전에’, ‘집시여인’ 등의 히트곡들은 이국적이면서도 세련된 밴드 사운드의 진가를 보여주는 곡들이며 여전히 애청되고 애창되는, 시대를 초월한 명곡들이다. 이치현과 벗님들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치현에게는 여전한 젊음과 특유의 우수가 있었다. 그 말을 듣자 그는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수에 젖었다기보다 ‘이 일이 내가 맞는 건가,(웃음) 어쩌다 이렇게 됐지?’ 하며 생각이 많아서 그런 표정이 나오는 거죠.” 반쯤은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그는 사실 가수가 될 꿈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만든 명곡들과 그의 감미로운 음색을 생각하면 의외의 얘기였다. 어쩌다 가수가 된 기타리스트 “내가 음악을 시작한 것은 순전히 산타나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연주자가 활동하기가 어렵잖아요? 더구나 유명하지도 않았으니 누구에게 곡을 줄 수도 없었고. 그럼 어쩔 수 없이 내가 불러야지.(웃음)” 산타나는 1960년대부터 활동한 라틴 록 기타리스트의 전설이다. 사실 잘 살펴보면 이치현이 그에게 영향을 받은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탁월한 기타리스트로서 여전한 실력을 유지하고 있는 점, 대표 히트곡 ‘집시여인’, 그리고 그의 최근 라이브에서 들려주는 노래들이 라틴 스타일로 더욱 세련되게 편곡됐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라틴 록과 밴드 사운드에 기반을 뒀지만 그가 한 가지 장르만 했던 것은 아니다. 팝 발라드에서부터 신스 팝, 로큰롤까지 다양한 음악적 접근을 해왔다. 그룹사운드를 하면 한 장르를 계속 파야 하지만, 그보다는 음악적 변화를 시대에 따라 맞춰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음악 그만둘까’ 싶었던 순간들 그렇게 대중가요 가수이지만 밴드 사운드에 기반하고 있는 그가 끊임없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밴드를 뚝심 있게 이끌어간다는 것은 외국처럼 장수하는 밴드가 없다는 점을 봐서도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위기는 자기 자신과의 갈등에서 와요. 경제적인 위기는 능숙해요. 워낙 바닥을 치며 올라갔고 무명생활도 오래해서.(웃음) 가장 힘든 게 ‘내 스타일의 음악을 계속해야 하나? 그만둘까?’ 하면서 내 음악에 한계를 느낄 때죠.” 그가 자신의 음악에 한계를 느끼는 것은 시대적인 문제와도 결부된다. 라이브 밴드를 추구하는 음악인들이 설 자리가 많이 사라졌고 가요계의 주류도 밴드 사운드를 유지하기에는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변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얼마 전 7080세대에게 논란이 됐던 KBS의 ‘콘서트 7080’ 폐지 건이 그렇다. 그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콘서트 7080’이 폐지된 데는 물론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죠. 7080시절 음악했던 사람들을 막상 찾아보면 지금 음악을 안 하는 사람들이 더 많거든. 새 앨범을 내지 않고 ‘추억팔기’만을 하는 가수들이 출연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시청률이 떨어지게 됐고요. 음악은 추억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어야 하고 뮤지션은 신곡 활동도 꾸준히 병행해야 하잖아요.” 지나친 쏠림 현상 안타까워 요즘 사회나 기업체들을 보면 7080세대가 주류가 됐다. 이치현과 같은 시대의 가수들이 각광받는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스트롯’의 성공으로 트로트가 7080세대의 음악적 대세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 물결이 너무 거세다 보니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라이브 밴드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현실에 그는 더욱 힘들어하고 있었다.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근본적인 차원, 음악적 현실에 대한 고통이었다. “시대의 변화이겠지만, 요즘 가수들은 거의 탤런트가 돼야 해요. 사람들에게 어필해야 하고. 난 그러고 싶진 않거든요. 내 음악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꾸준히 하고 싶은 거니까요. 그래서 억지로 비즈니스를 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러다 보니 이 모양이지.(웃음)” 변화된 음악 현실에 방황도 깊어졌다. 그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2년간 계속 방황했다. “작년 가을과 겨울 사이 미국을 네 번 왔다 갔다 했어요. 한국에 있기 싫어서 미국에서 공연하려고요. 환경이 안 변하면 내가 못 살겠기에. 곡은 안 써지니 밤마다 괴롭고…. 내가 해야 할 음악의 장르를 못 잡는 거예요. 안 그랬거든요.” 소극장 투어로 팬 저변을 넓히다 그래도 그는 마침내 결론을 냈다. ‘좋은 경치를 봤다고 좋은 곡이 나오는 건 아니다’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내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2016년에 내놓은 정규 앨범 14집 이후 오랜만에 싱글 앨범을 제대로 준비해 선보일 계획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도전에 나섰다. 바로 소극장 공연 투어다. “한 해가 끝날 때 되면 ‘올해 잘 보냈나?’ 싶죠. 나이가 드니 비보도 많이 듣게 되고, 시간도 확 가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버킷리스트는 아니더라도 머릿속에 있는 걸 실행하자고 결심했어요. 그게 내년 3월부터 시작할 전국 소극장 공연이죠. 깨질 때도 있고 힘든 상황도 있겠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부딪쳐볼 거예요.” 그는 이미 1984년부터 5~6년간 무려 1000회가 넘는 소극장 공연을 가진 바 있다. 즉, 소극장 무대의 맛과 즐거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사실 그래서 작년에는 그런 소극장 무대를 다시 한 번 부활시킨 적도 있다. “관객들이 예전에는 학생들이었는데 이젠 다들 어른이 되어 주차장이 없어서 힘들어했는데(웃음) 공연은 꽉 차서 끝났어요. 그분들이 말하길 불편해도 시간이 지나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더라고요. 소극장에서 얼굴 표정을 다 읽고 땀 흘리고 그러는 걸 보면서 함께 공연하는 거니까요.” 음악은 밥 먹고 숨 쉬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본 그의 성정에 대해 생각해보면 짐작 가능하겠지만, 그는 앞으로 나와서 ‘나대는’ 성격이 전혀 아니다. 자신의 성향과 다르게 행동하는 걸 너무 싫어하는 쪽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성향이 남아 있기에, 그의 젊은 시절은 지금보다 더했을 수밖에 없다. “가수는 꿈에도 없었는데, 운명이란 게 있는 듯해요. 제게 음악은 밥 먹고 숨 쉬는 것처럼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었어요. 원래 남 앞에 못 서는 성격인데도 한 거니까요. 그래서 1984년에 4집 앨범 녹음하며 방송을 접고 대학로에 들어갔죠.” 그의 소극장 공연은 대박이 났다. 그리고 가수로서의 즐거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가 인간적으로 변화하게 된 계기였다. “물론 여대생들 앞에서 1000회를 공연한다는 게,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런데 그때 성격이 변했어요. 대화하는 법을 억지로 힘들게 익힌 거예요. 지금도 저는 제가 봐도 어색해요. 그래서 방송 녹화한 게 있으면 가족들하고 안 보죠. 나 혼자만 보면서 반성할 게 뭐 있나, 왜 저랬을까 합니다. 그게 본 성격인 거 같아요.” 무대와 객석은 구분되는 게 품격 그는 프로답게 자신이 대중음악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자각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인터뷰 내내 계속해서 ‘음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말한 것과도 관련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느리긴 해도 끊임없이 자신을 대중과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 노정이 어쩌면 이치현이 지속적으로 발전한 근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저는 좀 까다로워서 무대 같지 않으면 안 올라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후배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라이브 카페 같은 데서 공연하기도 했죠. 당연히 환경이 열악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좋아하고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 잘되는 걸 보니 거기서 매력이 느껴지더라고요. 대중과 마주하되 자신의 격만 안 떨어뜨리면 되겠다 생각한 거죠. 물론 무대와 객석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게 품격이니까요.” 칠순이 다가오는 나이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을 고민하며 밤잠을 설치는 그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역시 팬들이다. 그의 팬클럽은 회원 수 1500여 명이 가입한 ‘늘벗회’다. 1980년대부터 꾸준히 그를 지지해준, 역사가 깊은 탄탄한 팬들로 그의 공연에 항상 힘이 되어주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즐거움이자 위안 아닐까. 다시 태어나면 건축가가 될 것 음악이 운명이라는 말처럼, 그의 딸 둘도 음악과 관련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딸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지 목소리가 바뀌었다. “첫째 딸은 플루트를 해요. 스위스에서 유학하고 와서 올해 동창하고 결혼했죠. 결혼 안 시키려 했어요. 들어간 돈이 얼만데.(웃음) 사실 재밌게 살고 있어요. 둘째도 원래는 음악하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해서 음악심리학으로 바꿨어요. 작은애는 지 편한 대로 자유롭게 살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과 가족들 모두가 음악과 관련이 있지만, 정작 다시 태어나면 음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음악은 본인과의 싸움이 너무 심해요. 다시 태어나면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 건축가라니, 의외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그는 중학교에서 미술 관련 상을 휩쓴 기대주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예고에 진학하지 못해 미술인으로서의 꿈은 접혔다. 하지만 아직 미련이 남아서 지금도 외국에 나가면 건물의 건축 재료를 살펴보고 두들겨본다고 한다. “음악은 사람을 너무 좁게 만들어요. 물론 음악의 세계는 굉장히 넓죠. 그러나 음악인으로서의 삶은 좁아요. 음악 대신 빌딩 하나 지어보고 싶고 그렇죠.(웃음)” 아름다운 황혼의 시간을 기다린다 이치현의 가족들 중 음악과 관련이 없는 사람은 그의 아내다. 교육학과를 나온 아내는 도서관에서 살며 자녀들 교육에 평생 매달렸다. 요즘 그는 부쩍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아내에게 못해준 게 너무 많아요. 젊었을 때는 같이 못 놀아줬고 ‘여보, 여보’ 하며 살갑게 다가가는 성격도 못 되고…. 우리나라 부부들이 나이를 먹으면 각자 놀잖아요? 그런데 유럽에 가보면 서로 목도리를 해주며 손잡고 다니면서 카페에 앉아 다정하게 대화하는 흰머리의 노부부가 많아요. 그래서 저도 칠십부터는 같이 손잡고 다니면서 외롭지 않게 해줘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음악은 같은 감성을 함께 느끼는 것이라는 확고한 철학을 가진 그는 감성과 추억으로 버무리고 채워질 소극장 라이브를 준비하면서 벌써부터 신이 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거듭 아내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아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그리는 듯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우선 그가 도달해야 할 음악적 성공의 지지자로 응원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할 일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가 아내와 함께 만들게 될 아름다운 황혼을 기대한다. 그 희망이 오늘 이치현을 또 설레게 할 것이다.
- 2019-12-19 10:01
-
- 자생의료재단 '자생 희망드림 장학금 전달식' 청소년 32명의 꿈 지원
- 자생의료재단은 17일 서울 강남구 자생한방병원 별관 JS타워에서 열린 ‘제6회 자생 희망드림 장학금 전달식’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금 3200만 원을 전달했다. '자생 희망드림 장학사업'은 어려운 여건에도 꿈을 키워가는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사회공헌활동이다. 이날 행사에서 자생의료재단 신민식 사회공헌위원장은 전국 각 지역 구청 및 학교, 사회복지기관 등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중·고등학생 32명에게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수여했다. 자생의료재단과 전국 자생봉사단의 기탁금, 올해 10월 열렸던 '자생 희망드림 자선 바자회'의 수익금으로 마련된 장학금이다. 자생의료재단은 2014년 자생 희망드림 장학사업을 실시, 올해까지 총 106명의 장학생을 배출했고 총 1억1750만 원의 장학금을 통해 청소년들의 꿈과 학업을 지지해왔다. 자생의료재단 박병모 이사장은 “경제적인 이유로 꿈을 좇는 학생들의 도전이 좌절되지 말아야 한다”며 “앞으로도 자생의료재단은 꿈이 있는 학생들이 인재로 커 나갈 수 있도록 장학금 전달을 비롯한 다양한 지원 활동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자생의료재단은 전국 20개 자생한방병원·자생한의원을 통해 척추·관절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의료사업 수익은 공익재단 목적사업인 학술연구 활동 및 저소득층·의료취약계층을 위한 의료봉사, 장학사업 등 사회공헌활동에 활용하고 있다.
- 2019-12-18 10:03
-
- 소득상위 10~30% "노후에도 일하고 싶다"
- 대한민국 대중부유층의 57%는 노후 예상소득으로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지만 은퇴 후에도 경제활동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중부유층은 중산층보다는 부유하면서 기존의 PB서비스 대상 고액자산가보다는 자산이 적은 계층을 의미한다. 우리금융그룹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자산관리 고객 분석 보고서 시리즈의 일환으로 발간한 ‘대중부유층의 희망 노후생활과 준비현황’, ‘대중부유층의 자산 포트폴리오와 자산관리 니즈’ 보고서에서 이 같은 조사결과를 17일 공개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가구 연소득 6800만~1억2000만 원(세전)인 가정을 대중부유층으로 정의하고 이 기준에 해당하는 전국 4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8~9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대상자의 평균 총자산은 6억5205만 원으로 이 중 77.3%(5억3295만 원)가 부동산자산이며 금융자산은 1억150만 원(19.4%)을 차지했다. 응답자의 57.0%는 노후 예상소득으로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대중부유층이 응답한 노후의 월 필수생활비는 가구 기준 225만원이다. 필수생활비를 포함한 여유생활비는 374만원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91.5%는 예상소득으로 필수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고 57.0%는 여유생활비까지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예상소득이 여유생활비보다 적은 응답자를 대상으로 노후준비가 부족한 사유를 조사한 결과 교육비 지출(23.8%), 높은 주택구입 비용(20.4%) 등이 답변으로 나왔다. 노후준비 정도를 자가평가한 ‘노후준비 스코어’는 5점 만점에 평균 3.5점으로 대중부유층은 노후가 ‘보통’ 정도 준비됐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사회적 관계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보인 반면 경제적 준비에는 낮은 점수를 부여했다. 경제, 관계, 건강, 자아실현 중 경제적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반면 스스로의 경제적 노후 준비 정도는 3.4점으로 4가지 요소 중 가장 낮게 평가했다. 가족·사회적 관계에 대한 준비 정도가 3.7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자아실현과 건강에 대한 준비 정도는 3.5점이었다. 대중부유층의 노년기 희망 라이프스타일은 경제형, 레저형, 자기개발형 순으로 응답자의 절대 다수는 공식적인 은퇴 후에도 능동적인 생활을 희망했다. ‘본격적인 은퇴 이후에도 여력이 닿는 한 경제활동을 지속하겠다’(경제형, 35.3%)는 응답자가 ‘취미나 문화생활을 즐기겠다’(레저형, 32.4%)는 응답자보다 많았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삶(자기계발형, 15.6%), 전원 등에서 편하게 쉬는 삶(안식형, 11.6%), 손자녀 양육이나 사회 봉사활동에 주력하는 삶(봉사형, 5.3%)은 다소 낮은 선호도를 보였다. 노후 예상 소득의 원천으로 연금(공적, 개인, 퇴직, 주택연금)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았으며 연금 중에서는 공적연금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공적연금 의존도 60.9%, 주택연금 15.3%, 개인연금 15.2%, 퇴직연금 8.7%를 차지했다. 44.9%의 응답자는 노후에 주거용 부동산을 주택연금에 가입해 활용하겠다고 답변했다. 응답자들은 3~5년 내에 부동산 비중을 줄이고 금융자산 비중을 높일 계획이라고 답했다. 금융자산 중에는 연금, 저축성보험 상품의 비중 증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대중부유층의 자산형성 목적은 노후준비와 현재의 여유 있는 소비, 자녀에 대한 지원이며 응답자의 77.6%가 연 3~7%의 수익률을 기대했다. 자산 관리의 목적으로 노후준비를 답한 비율이 31.4%로 가장 높았으며 생활비의 여유 있는 지출이 25.2%, 교육 등 자녀를 위한 지원이 21.0%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기대 수익률로 3~4%대를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38.9%, 5~7%대를 답한 응답자가 38.7%로 현재 금리 수준과 응답자들의 안전자산 위주 포트폴리오 고려 시 가능한 수준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경향을 보였다.
- 2019-12-17 18:17
-
- 전문 강사를 꿈꾸는 취업동아리 ‘세듀50플러스’
- 젊음의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풋풋함과 설렘.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눈빛에서 간절함과 진지함이 묻어나는 사람들. 인생 중흥기를 준비하는 취업동아리 ‘세듀50플러스’를 만났다. 취업동아리 ‘세듀50플러스’를 만나러 간 곳은 노사발전재단 서울서부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이들이 모인 스터디 룸으로 들어가니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교육’과 관련해 임순열 씨의 시범 강의가 한창이었다. 임순열 씨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교육 분야’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전문 강사를 준비하고자 하는 회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교육 자료를 준비해왔다. 세듀50플러스는 지난 6월 말 노사발전재단과 사학연금재단이 공동으로 진행했던 전문강사양성과정에 교육생으로 참여했던 사람들로 구성된 취업동아리다. 이근희 6월 25일 시작해서 5일간 수업을 받았어요. 교육이 끝나고 난 뒤 노사발전재단에서 취업과 관련한 커뮤니티를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당분간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모이는 장소나 스터디에 필요한 것들을 논의했죠. 교육을 들었던 30명 중 25명이 동아리에 들어와 매달 만남을 이어갔다. 김현준 처음에는 별다른 명칭 없이 말 그대로 ‘취업동아리’였습니다. 그런데 50플러스남부캠퍼스에서 ‘단체설립지원프로젝트’ 공모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어차피 커뮤니티가 형성됐으니 우리도 전문적인 목적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지원하기로 했어요. 확실하게 함께할 사람만 모이자고 해서 15명이 모였습니다. 저희에게 맞는 단체명도 필요했어요. 그래서 시니어(Senior)의 ‘Se’와 교육(Education)의 ‘Edu’를 합친 ‘세듀’에 50세 이상을 뜻하는 ‘50플러스’를 붙여 시니어 강사를 준비하는 취업동아리 ‘세듀50플러스’가 됐습니다. 단체설립지원프로젝트에 힘을 쏟았지만 뚜렷한 활동 실적이 없어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대신 50플러스남부캠퍼스 커뮤니티지원단에 지난 9월에 선정됐다. 유남열 50플러스남부캠퍼스에서 50만 원을 지원해주셨습니다. 우리 멤버들의 발전을 위해 도서구입비로 사용했습니다. ‘회사생활예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90년생이 온다’를 함께 읽고 독서토론도 했어요. 책을 통해 미래의 교육생이나 수강생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전문강사 교육과정을 통해 만나기는 했지만 재취업, 창직 등도 실현하려고 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이들은 노사발전재단이나 50플러스남부캠퍼스에서 모인다. 멤버를 구성하고 보니 개개인 모두 전문성을 갖고 살아온 인물들이었다. 장필규 퇴직하고 나서 힘든 상황을 다 겪은 분들입니다. 그런데 전문성과 열정 하나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전문 인력들이 모인 만큼 공유할 수 있는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활동하는 분도 있고 아직 활동을 안 하는 분도 계십니다. 일단 어디에 나가든지 강의를 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것은 대단한 힘이죠. 무료라도 자꾸 해보다 보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해서 추진한 것이 콘텐츠 구축을 위한 4가지 프로젝트예요.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교육,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인성 교육 그리고 다문화 가정 교육입니다. 서미숙 주제마다 프로젝트 매니저가 있어요. 오늘 시범강의를 하신 임순열 선생님이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교육을 맡으셨고,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은 장필규 선생님, 인성 교육은 김석현 선생님이 담당자이십니다. 다문화 가정 교육은 정하지 않았어요. 권은경 자료 조사는 멤버들이 함께합니다. 동영상 편집이나 PPT 중 각자 잘하는 분야를 맡아서 제작하고 합쳐서 하나의 공동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어요. 제 생각에는 콘텐츠가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너무 다른 것 같아요. 일단 빨리 공동 콘텐츠를 만들어서 멤버들이 활용하도록 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임순열 선생님이 시강을 했어요. 이 교육 콘텐츠는 내부 공유만 가능합니다. 단, 기본 틀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 개인의 취향에 맞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박원규 오늘 회칙도 다 정했어요. 공유한 교육 콘텐츠를 가지고 강의 나갔을 때 수입이 발생할 경우 10%는 후원금으로 동호회에 내는 것으로 했어요. 각자의 전문성을 토대로 한 공동 콘텐츠를 항상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무료로 강의해도 좋고 멤버들이 제각각 그 결실이 당장은 보이지 않더라도 차근차근 단단하게 준비를 하는 중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세듀50플러스 활동을 하면서 점점 활동 영역을 넓히는 멤버가 늘어나고 있다. 총무 유남열 씨는 한 대학에서 청년 진로 상담을 시작했고, 임순열 씨도 강의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 장필규 씨는 사회복지사로 활동 영역을 넓혔고 이근희 대표의 경우 젊은 시절 본업이었던 영어 관련 강의 쪽으로 길을 열고 있다. 이들은 세듀50플러스 활동 외에 직무와 관련해 유익한 강의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찾아다닌다. 김석현 지금까지 각자 어떤 분야에 몸담아왔고 뭘 잘할 수 있는지 이야기 나눠왔습니다. 서로에게 어떤 인맥이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언제든 사람이 필요 할때 연결할 수 있는 저희만의 인맥 네트워크가 점차 형성되고 있어요. 사실 우리가 이렇게 만나 동아리를 만든 지 6개월 정도밖에 안 됐는데 꽤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서미숙 ‘천직 여행’이란 말이 참 좋아요. 젊을 때 만난 첫 번째 직업이 그냥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면, 그다음부터는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다니는 거래요. 잘할 수 있고, 즐겁고, 나한테 큰 무기가 되는 일이 천직인 거 같아요. 돈을 떠나서 진짜 내 일을 찾아가는 과정인 거죠. 장필규 시니어는 배워서 남 줘야 합니다. 그리고 죽기 살기가 아니라 즐기면서 살아야 해요. 일을 구하더라도 매일이 아닌, 유연하게 자기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죠. 중요한 것은 앞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일입니다. 영업도 하고 마케터도 되어야 합니다. 어디든 다니면서 도움도 받고 청하면서요. 다변적인 세일즈맨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준비된 강사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돕겠다는 것. 강사의 길을 넓히기 위해서 어떤 형태로든 모체를 키울 생각이다. 앞으로도 ‘세듀50플러스’의 성장은 물론,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가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 2019-12-17 10:57
-
- 소설가 부희령, 무정한 세상에서 말리는 내 안의 축축한 슬픔
- 단편소설 ‘어떤 갠 날’로 등단한 후 집필 활동과 더불어 수십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겨온 부희령(夫希玲·55) 작가. 최근 그녀는 소설과 번역서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모아 첫 산문집 ‘무정에세이’를 펴냈다. “소설이 그림이라면 에세이는 사진과 같다”고 비유하는 부 작가의 글은 민낯처럼 기교는 없지만, 그 밋밋함이 주는 위안이 퍽 살갑게 느껴졌다. 부 작가의 다정한 미소와는 대조되는 책 제목이었다. 까만 어둠으로 덮인 표지를 들춰 담담하게 쓰인 문장들을 읽어낸 한 독자의 평이 인상적이다. “일반 에세이처럼 긍정적 교훈을 주는 내용은 별로 없지만 읽는 내내 난롯불을 쬐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무정한 마음 붙들고, 참으로 유정해서, 무정한 세상을 건너간다.” 그들이 말한 ‘긍정 없이 따뜻한’, ‘유정해서 무정한’ 등 다소 모호했던 표현은 책을 읽은 뒤 제법 수긍이 갔다. “현대 사회는 정념이 들끓고 있죠. 때론 그런 정념이, 유정함이 누군가를 소외하고 차별한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을 사랑하면 다른 이는 사랑하지 않고, 특정 단체를 좋아하면 그 밖의 공동체는 배척하듯, 내가 어떤 감정을 갖는 일 외엔 무정하게 굴게 마련이죠. 평등이나 박애 등을 실현하려면, 어쩌면 그 사회가 무덤덤해져야 하지 않을까 해요. 치우침 없는 보편적인 사랑과 관심은 편애를 만들지 않을 테니까요. 이때의 사랑은 존중하는 마음이겠죠.” 부 작가는 내면의 자신에서 출발해 바깥의 공동체까지 나아가는 과정을 글쓰기의 길이라 일컬었다. 지난한 그 길에서 역시 독자를 향한 존중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그녀다. “자기 상황에 맞는 글에는 공감하지만, 그렇지 않은 글에선 소외를 느끼곤 하죠. 또 책은 작가의 일방적 소통이기 때문에 자칫 독자를 끊임없이 가르치려 들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배제되지 않게 글을 쓰려 했어요. 가령 ‘그런 사람이 돼야 해’라고 하는 대신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해’라거나, 내 처지를 통해 ‘그런 사람이 아닌 이런 사람도 충분히 자족하며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무외시를 실천하며 얻는 행복 자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외연을 넓히고자 했기에 책에는 일상의 경험과 사색이 주를 이룬다. 평범한 공간 속 마주하는 낯선 인연들을 향한 작가의 시선에서 무정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그녀는 책에서 ‘무외시(無畏施)’를 언급했는데, 이는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베풂을 뜻한다. 타인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미소 한 번이 곧 무외시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아울러 내가 베푼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베푸는 것이 가장 큰 보시(布施, 널리 베풂)라 칭했다. 부 작가는 이렇듯 보답을 바라지 않고, 보답할 부담 없이 이뤄지는 선행이야말로 온 세상을 향해 이뤄지는 보시라고 말한다. “몇 년 전 안나푸르나 트레킹 중에 높은 고개를 넘기 위해 작은 비행기를 탔어요. 근데 그 비행기가 일 년에 일곱 번은 추락한다는 거예요. 불현듯 내 목숨은 저 조종사 손에 달렸다 여기니, 평소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도 알게 모르게 내 삶을 타인에게 의탁하며 살아왔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한편으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뜻밖의 도움을 받기도 하죠. 그물망처럼 복잡한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끼치는 유기적 존재라는 사실이 와 닿았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개인적인 경험이 떠올랐다. 며칠 전 길을 지나던 아이가 떨어뜨린 허리띠를 주워준 일, 그다음 날 지하철에 두고 내린 휴대폰을 한 승객 덕분에 찾은 일. 마치 앞선 선행의 보답처럼 느끼기도 했지만, 실상 주고받는 이가 맞물리지 않는 오묘한 사이클이었다. 부 작가는 “도움을 준 이에게 은혜를 갚긴 어렵다”면서 “그런 엇갈림이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도울 때 그 상대보다 내가 더 힘을 얻는 경우가 많아요.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했을 때, 뭔가 1등 한 것처럼 자신을 훌륭하게 여기고 격려해주면 좋겠어요. 별거 아닌 일로 뿌듯해하긴 좀 그렇지 않냐 하겠지만, 때론 그런 유치함도 필요하다고 봐요. 저도 그냥 촌스러운 사람이 되겠다, 유치해지겠다고 방향을 바꾸니 자신감도 생기고 꽤 행복해지더라고요.” 달콤한 긍정은 기만이다 중년 이후 그녀는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며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표면적으로 여겨온 사회 문제를 체감하면서, 공적인 자아와 공동체를 위한 일에도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칼럼을 통해 사회를 들여다보며 개인이 공동체로부터 받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걸 느꼈어요. 어쩌면 개인의 삶이란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자아가 확장되면서 긍정적인 부분도 생기더군요. 자기 탓을 하지 않게 된 거죠. 내가 실수하고 형편없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바라보면 꼭 내 잘못도 아니고 나만 그렇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되니까요. 나아가 타인의 삶은 어떤가, 나는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고요.” 그녀는 작가답게 글로써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랐다. ‘무정에세이’ 역시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썼지만 혹자는 “글이 너무 건조하다”며 “좀 더 다독다독해야 위안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단다. 그러나 부 작가는 “그것은 기만”이라고 일축했다. “요즘 출간되는 수필집이나 자기계발서에는 긍정의 말이 넘쳐요. 그런데 세상에 내 의지대로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아요. 긍정적으로 열심히 하면 된다고 높이 띄웠다가 현실에서 내팽개쳐졌을 때, 그 아픔이 더 크리라 생각해요. 달콤한 말은 사탕처럼 잠깐의 위안일 뿐입니다. 결국 스스로 견뎌낼 힘을 찾아야죠.” 일시적 힐링과 위로는 결코 삶의 버팀목이 될 수 없다는 것. 그보단 자기 안의 불행과 고통을 마주하고 세상에 비춰볼 때, 또 그런 사회를 무정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진정한 위안을 얻는다고 조언했다. “어른이란 비바람 치는 들판을 혼자 걸어가야 하는 존재잖아요. 슬픔이나 괴로움을 삶의 디폴트(default, 기본값)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스스로 이겨낼 힘은 나오지 않아요. 또 자기 안에만 머무는 우울은 축축하고 잘 마르지 않죠. 밖으로 끄집어내 말려줘야 합니다. 주변을 보면 가엽지 않은 사람이 없잖아요. 나만 괴로운 건 아니라는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통을 안고 산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위안을 얻기도 하죠. 저 또한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다 똑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훌륭해져야 하는가?’ 등에 대해 글로 이야기하고 위안을 나누고 싶습니다.”
- 2019-12-17 1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