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 잡아서 결혼 날짜 정하던 일은 까마득한 옛이야기다. 결혼식장을 준비하지 못하면 좋은 배필감이 있어도 결혼식은 말짱 헛일이 된다. 이것저것생각하지 않고, 결혼 예정일 불과 한두 달 전에야 선심 쓰듯 부모에게 알리는 것이 지금의 세태다.
10여 년 전 아들이 결혼할 때다. “아이 잘 부탁드립니다. 며느리를 딸같이 생각하고 잘 살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삼포세대’, ‘비혼’, ‘1인 가구’ 등의 유행어는 전통적 가족 형태의 붕괴가 급속하게 진행됨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말조차 시대와 트렌드에 뒤처진 박제된 구호로 전락한 지 오래다. 취업난과 치솟는 집값 등으로 초래된 경제적 어려움이 고조되고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꺼리는 ‘관태기(인간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의 사람들
책상 위에 놓은 휴대폰이 윙윙대더니 친구가 왔다.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친구는 아파트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다며 툴툴거린다. 시내에 커다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친구가 뜬금없이 왜 아파트 타령일까. 알고 보니 딸이 결혼을 한단다. 필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왜? 아파트 사주려고?” “응.” 예상외의 답변이었다. 친구가 돈이 좀 있는 것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해 졸업한 딸이 당연히 유학을 갈 줄 알았는데 안 가겠다고 선언을 했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 공부를 시작해 대충 한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열공을 해 수상 경력도 많고 어려서부터 유명세를 탄 딸이었다.
딸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유학을 포기하겠다고 선언을 할까. 그 마음 헤아려 얼마 동안 하고 싶은 대로 놔뒀다. 그러는 동
세상 모든 길에 사람이 지나다닌다. 이들 중에는 길과의 추억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다. 추억이란 살아온 시간, 함께했던 사람, 그날의 날씨와 감정이 잘 섞이고 버무려져 예쁘게 포장된 것이다. 박미령 동년기자와 함께 오래전 기억과 감정을 더듬으며 종로 길을 걸었다. 흑백사진 속 전차가 살아나고 서울시민회관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행복한 발견.
작년 초, 딸아이의 남자 친구가 인사를 오겠다고 해서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2주 후 현대미술관 그릴에서 마주 앉았다. 어색하고 기분이 묘했다. 노트북을 펼쳐 몇 컷으로 정리한 자신의 풀 스토리를 전하는 예비사위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래도 비교적 차분하고 진솔하게 35년의 이야기를 전하는 표정이 진지했다.
만나서 심문하듯 묻고 답하는 자리보다는 온전하게
18년 전 아내와 이혼하게 되었을 때 아내가 재산분배에 대한 계산서를 내밀었다. 지금 회고해보면, 아내나 필자가 이혼 얘기는 많이 했지만, 실제로 이혼할 생각이 확고했던 것은 아니었다. 졸지에 퇴직을 하게 된 충격으로 필자는 다른 일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잘못해서 이혼 당할 유책 배우자도 아니니 이혼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가 얼
필자가 사는 동네는 서울 변두리 산 밑이다. 이 동네에서 꽤 오래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동네에 아는 사람이 많다. 필자는 같은 아파트 사람 이외는 친분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는데 남편은 같이 산에 물이라도 뜨러 갈 때면 언제 사귀었는지 온 동네 사람과 다 인사를 나눈다. 그런 남편이 참 생소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필자보다는
5년 전 겨울이었다.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아들의 결혼식 날짜가 정해져서인지 하루하루가 더디게 갔다. 12월 30일에 하는 결혼식 초청장은 다 보낸 상태였다. 사돈댁과의 혼사에 관한 모든 절차와 격식도 예법에 따라 잘 타협이 되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 예비 신부인 며늘아기도 참석했다. 새 식구가 곧 가족이 됨을 확인하는 자리이
“요즘 어때?”
“설렘을 잃어버렸어.”
결혼을 앞둔 딸의 기분을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둘이 마음을 맞춰 원하는 방향으로 잘 진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정에 앞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너무 많아 쉽지 않다고 했다. 게다가 이직하랴, 방 구하랴, 이사하랴 쉴 사이가 없었으니 힘들기도 했을 것이다.
결혼하겠다는 말을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