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홍어 맛

기사입력 2017-08-09 10:59 기사수정 2017-08-09 10:59

“홍어회 드실 줄 아세요?”

새 친구를 만나면 필자가 꼭 해보는 질문이다. 홍어도 음식이니까 다들 잘 먹을 줄 알았는데 홍어회를 못 먹는 사람이 많았고 그 냄새가 싫다는 사람도 있었다. 필자가 홍어회를 좋아한다면 여자가 그런 걸 어떻게 먹느냐며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홍어회를 진짜 좋아한다. 한 입 물었을 때 알싸하게 퍼지는 맛과 식감이 너무 좋다. 네모로 가지런하게 썰어서 내온 홍어회와 막걸리 한 사발은 굳이 삼합이 아니어도 필자를 황홀하게 만든다. 심하게 삭힌 것은 입천장이 까지고 숨을 못 쉴 정도로 톡 쏜다는데 그런 홍어는 아직까지 맛보지 못해 서운하다. 홍어 파는 음식점에서는 매번 많이 삭힌 거라고 했지만 기회가 되면 좀 더 푹 삭힌 걸 먹어보고 싶다.

홍어는 전라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TV에서 전라도에 사는 할머니가 큰 장독에 짚으로 넣고 홍어를 삭히는 것을 보았다.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흑산도 홍어가 제일 맛있고 귀하다는데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이 더 선호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전라도 사람도 아닌데 왜 그렇게 홍어를 좋아하게 됐을까? 어릴 때부터 그 맛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친정엄마는 특히 홍어찜을 자주 해주셨다. 푹 쪄낸 홍어찜을 대나무 채반에 담아 상 위에 올려놓고 온 식구가 양념간장에 찍어 먹곤 했는데 부드럽게 결대로 찢어지는 살도 맛있었지만 오독거리는 뼈도 너무 맛났다.

결혼한 후에는 시어머니가 홍어회무침을 자주 만들어주셨다. 친정에서 먹었던 찜보다 더 맛이 좋았다. 새빨간 홍어회무침은 매우면서도 쫄깃하고 부드럽고 새콤달콤했다. 필자는 그 맛에 푹 빠져버렸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요리법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아니, 살림에 취미가 없었던 필자가 먹을 줄만 알았지 요리법 배울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곁눈질로 보니 식초에 절였다가 꼭 짜서 고춧가루 등 갖은 양념에 무치셨던 것 같은데 후에 홍어를 사다가 어림짐작으로 만들어보았지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물도 흥건하게 생기고 고춧가루를 아무리 넣어도 시어머니가 해주셨던 것처럼 색이 곱지도 않았으며 꼬들꼬들한 식감도 없었다. 그때 요리법을 배워놓지 않은 걸 몹시 후회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홍어로 알고 먹는 것들은 대부분 가오리라는 생선이란다. 흑산도 근해에서 잡히는 진짜 홍어는 귀해서 그 값이 엄청 비싸다고 하는데 그래도 물량이 없단다. 가오리면 어때? 홍어랑 비슷한 맛이니 굳이 그런 걸 따지고 싶지 않다. 우리나라 홍어가 한 마리에 수십 만원 한다고 하니 비슷한 맛을 값싸게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가오리가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경동시장에 갔더니 홍어가 있다. 아니 가오리이겠지만 반쪽을 사와 어릴 때 엄마가 해주셨던 홍어찜을 해봤다. 양념장을 만들어 쪄낸 가오리찜을 한입 맛보았는데 이것도 예전 맛이 아니었다. 결대로 살이 찢어지기는 했지만 부드러운 맛이 나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홍어회처럼 손맛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 맛이 안 나는 걸까?

이제부터라도 정말 필요한 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홍어찜을 했는데 엄마가 해준 맛이 안 난다 했더니 팔순이 넘으신 엄마는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하게 “왜 그렇지?”라고만 하셔서 필자 마음이 슬펐다. 두 분께 홍어찜과 홍어회무침 요리법을 배워놓지 않은 게 영 아쉽다.

홍어찜도 좋고 매우면서도 새콤달콤한 홍어회무침도 좋지만, 날씨 좋은 날 마음 맞는 친구랑 네모반듯하게 썰어진 홍어회에 막걸리 한잔 하러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필자를 기분 좋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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