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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1만4000봉을 향해 오늘도 산을 오르는 70대 산사나이 문정남
- 취재를 위해 전화를 걸 때마다 그는 늘 산, 아니면 제주 오름에 있었다. 매일같이 산에 오르고, 등산했던 기록을 정리하면서 일과를 마무리하는 문정남(文政男·75)씨. 이제 그만 올라도 될 텐데, 70대 산사나이는 아침이 되면 또 새로운 산봉우리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선생님, 시내 가까운 산으로 가면 안 될까요?” 한 TV 프로그램에서
- 2016-05-2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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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국남 뉴컬처 키워드] OTT에 푹~ TV 시대 막내리다
- ‘제로 TV’ ‘코드 커팅’ ‘N 스크린’…전통적 TV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용어들이다. 1995년 1~2월 시청률 60%대를 돌파한 방송 시간에는 거리가 텅텅 비었다. 를 보기 위해 TV가 있는 집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는 ‘귀가시계’”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그리고 20여 년이 흐른 2016년 4월. 한국과 중국 동시에 방송돼 양국에서 신드
- 2016-05-2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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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家和만사성의 조건Part 4]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윤종민 박사 부자
- 윤무부(尹茂夫·75) 경희대 명예교수는 1990년대 TV 톱스타였다. 에 나와 조근조근 새 이야기를 해주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연예인도 아니고 스포츠 스타도 아닌데 지금도 ‘새 박사님’하면 떠오르니 대단한 인기인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런 그에게 최고의 팬은 아마 아들 윤종민(尹鍾旻·42) 박사가 아닐까? 다른 공부를 해도 됐을 텐데 아버지를 따라
- 2016-05-1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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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그림으로 세 번째 삶 사는 하효순씨
- 남편을 잃은 지 7년째 되는 해였다. 두 딸과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살고 있던 그때 집 안에서 그녀를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은 그림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의 빈정거림을 참아가며 모았던 그 그림들. 그리고 자녀들이 모두 출가한 뒤 다시 찾아온 인생의 위기에서 그림은 또다시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판교에서 만난 하효순(河孝順·66)씨의 이야기
- 2016-05-1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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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 자서전] 나의 삶 나의 길, 사느라고 살았다
- 몇 시간을 달려왔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부모님을 따라 청량리역에 내린 시각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었다. 청량리역을 나서면서 필자 입에서 나온 일성은 ‘아부지! 하늘에 호롱불이 좍 걸려 삣네요’였다. 그때가 필자 나이 9세이던 1966년 가을이었다. 필자는 경주 인근 작은 산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었다. 초등
- 2016-05-1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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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건강]나의 버킷리스트 하나 헌혈금장을 받다
-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헌혈 50회를 달성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로부터 금장까지 받았다. 이 소원을 달성하면서 필자를 건강하게 낳아주시고 별 탈 없이 길러주신 부모님께 제일 고마웠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그까짓 것을 감히 버킷리스트에 올리나’ 하고 콧방귀 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적혈구인 헤모글로빈이 적게 생성돼 전혈비중이 낮은(?) 필
- 2016-05-1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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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년기자 칼럼] 노인 특화형 일자리가 필요하다
- 법으로 정년을 보장한 60세까지 근무한 뒤 박수받고 정년퇴직해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앞으로 10여 년은 너끈히 더 현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다들 생각한다. 그냥 해보는 큰소리가 아니고 건강관리를 원만히 한 사람은 실제도 그렇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다 알고 있는 진실이다. 그래서 막대한 국가 예산을 들여서 인생이모작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액
- 2016-05-1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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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세대 이야기] 1959년生, 감출 수 없는 부끄러움 - 김애양 은혜산부인과 원장·수필가
- 나는 안경 대신에 콘택트렌즈를 착용하여 눈이 나쁘단 사실을 한동안 숨겨왔다. 우리 시절엔 여자가 안경을 쓰는 걸 터부시했었으니까. 예를 들어 택시기사도 안경 쓴 여자를 첫손님으로 받으면 온종일 재수가 없단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믿기나 할까? 맞선 보는 자리에 안경을 쓴 색싯감은 일순위로 딱지를 맞았다는 일화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근시의
- 2016-05-1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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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6월] 만약, 슬픔에 무게가 있다면
- 필자에게 외할머니에 대한 아련한 기억은 안방 한편 하얀 창호지를 바른 창살 한 부분에 한 뼘 정도의 작은 유리 조각을 덧대어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 앞에 앉아 계셨던 모습이다. 할머니의 쇠약한 손에는 항상 갈색의 묵주가 들려 있었고 시선은 우물이 있는 마당과 함께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을 향해 있었다. 한옥이라 대문이 열릴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라도 나면
- 2016-05-1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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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을 맞으며]슬픈 가족사
- 나에게는 슬픈 가족사가 있다. 아버지는 뭇매를 맞았다. 아버지는 오봉산 꼭대기에 숨어 있었으며, 거기는 증조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곳이다.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어서 의지가 된다고 생각했을까. 아버지는 외아들이었고, 북으로 도망치는 인민군에게 발각돼 아버지는 혼쭐이 났다. 우리 집은 인민군의 숙소가 됐고 주인인 아버지는 눈치를 보느라 산 속에서 지냈다.
- 2016-05-12 1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