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기사입력 2016-08-29 12:29 기사수정 2016-08-30 09:03

경기도 남양주시에는 다산 정약용의 유적지가 있다. 유적지 내에는 그의 생가인 여유당과 선생의 묘가 있고 다산 문화 관, 다산 기념관등이 있다. 참다운 지식인을 대표로 하는 남양주시가 교육의 도시로 거듭난다.

다산 정약용, 한국학의 바다라 일컫는 조선후기 최고 ‘실학의 집대성자’라고도 한다. 19세기초 실학파의 철학적인 입장을 확립한 다산은 ‘다산 학’이라는 거대한 실학의 봉우리인 자신만의 독창적인 학문을 완성한다. 또한 천연두 예방법에 대한 체계적인 글을 썼던 의사이기도 하지만 르네상스적인 인물 이었다고 한다. 그의 관심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영역과 주제들에 이르렀다.

민중의 편에 섰던 그는 선구적인 사상가이며 저술가였으며 법학 가였다. 시인이면서 음악학자 또한 조선의 차 문화에 활력을 일으킨 조선 차의 연구자로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다산은 단지 꿈꾸는 자만이 아니고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했다. 결국 오랜 세월 속에서 각고의 노력과 탐색으로 독창적이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이 탄생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남양주시의 다산 문화 관에는 그에 대한 많은 저서들로 간단한 소개가 있으며 직접 체험 가능한 체험학습도 있다. 다산 기념관에는 수원 성 축조 과정에 쓰였던 거중기, 녹로 그리고 유배생활을 했던 강진, 다산 초당의 축소 모형 등이 전시되어 그의 위대한 업적들을 한눈에 볼 수가 있다.

그는 출세가도를 달리던 명문가의 고위관료였지만 반대파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남녘의 외진 곳에 유배를 간다. 그러나 신세한탄이나 절망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떠한 굴욕과 탄압 속에서도 용모를 단정히 하고 의로움에 기 죽지 않으며 마음만은 자유를 만끽하며 당당하게 살아간다.

산수를 벗삼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거나, 때로는 핍박을 받는 백성들을 향한 한없는 사랑으로 펼쳐낸 국가의 총체적 개혁서인 ‘경세유표’와 ‘목민심서’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익숙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부패하고 썩어가는 국가의 현실을 새롭게 바꾸고, 허물어진 주춧돌을 단단히 하는데 평생을 바친 다산에게 돌아온 것은 18년동안의 혹독한 유배생활뿐이었다.

그는 고향에서는 죽기 전까지 ‘먼 미래를 기다린다’는 사암(俟菴)이라는 호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끔찍이 사랑했던 두 아들에게 보냈던 편지의 내용을 기술해본다.

“지식인이 세상에 전하려고 책을 펴내는 일은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책의 값어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해서이다. 나머지 욕하는 사람들이야 신경 쓸 것 없다. 만약 내 책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너희들은 그가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면 아버지처럼 섬기고, 설령 적대시하던 사람이라도 그와 결의형제를 맺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이 근간이 되어 남양주시가 교육의 도시, 문화의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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