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가끔 영화를 본다. 서둘러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집근처에 있는 영화관을 찾는다. 조조영화는 거의 반값이다. 한 사람 표값이면 둘이 볼 수있다. 영화를 보고 커피를 한 잔 하며 이리저리 쇼핑도 하고 여유를 즐긴다. 평소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여 TV 채널 돌려가며 좀 보다보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된다. 아내와 제대로 시간을 갖기도 어려워 언젠가
지난 23일, 서울시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단행본 출간 기념회가 있었다.
20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에어비앤비는 자기 집, 혹은 집의 일부분을 숙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또 찾는 일종의 ‘인터넷 장터’다. 특히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일상생활도 하면서 자신의 집 남는 공간을 빌려주는 형식이기 때문에 은퇴 뒤 제2의 인생을 사는 시니
대전의 보문산(寶文山) 사정(沙亭)공원에는 시비(詩碑)들이 있어, 언제 가도 느리고 깊은 산책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1879~1944)의 이란 시가 발길을 붙잡는다. ‘출세의 해탈도 꿈입니다.’ 가슴에 꽂히는 구절을 새기며 추수 김관식(秋水 金冠植·1934~1980)의 를 읽는다. ‘저는 항상 꽃잎처럼 겹겹이 에워싸인 마음의 푸
친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재혼하셨다. 벌써 30년 전 일이다. 아버지가 유난히 주사가 심하고 권위주의적이라 우리 형제들은 멀리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아버지가 재혼하셨으니 큰 짐을 던 셈이다. 20년을 같이 사시다가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다. 새 어미니가 혼자가 되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당연히 집안 행사 때마다 찾아 갔었지만 보통 때
나는 1952년 경남 합천군 초계면의 한 시골 마을 방앗간 집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우리 집은 아들만 여섯인 아들 부자 집이다. 원래 어머니는 아들만 일곱을 나으셨는데 첫 째는 돌도 못 넘기고 잃었다고 한다. 그 후 집안의 귀한 첫 아들로 태어난 나는 태어난 후 사흘 동안 눈을 뜨지 않아 부모님의 애를 태웠고, 어릴 때 비행기만 떠도 놀라서 경기가 드는
나는 수원이란 작은 동네 서둔동에서 살았다. 초등 1학년부터 결혼할 때 까지 이사 한 번 안 하고 컸다. 서둔동에는 서울 농과대학과 진흥청이라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곳이 자리하고 있는 관계로 오랫동안 수원의 교육열이나 교육관계의 문제라면 모두 통계로는 전국 1위권이었단다. 수원에서 자라는 동안 연습림이라는 하늘이 안
다음날 두 아이는 등교했다. 집에 세시정도면 온다고 했으니 기다렸다. 말도 못하고 친구들도 처음 만나니 얼마나 가지가지 호기심을 만나고 올까 기다렸다. 이상하게 큰 아이가 먼저 왔는데 모리모토상이라는 친구를 데리고 들어 왔다. 아주 얌전한 일본인 특유의 깍듯한 차림으로 들어오면서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며 입으로는 ‘오쟈마시마스~’ 라고 크게 말을 했다. 오늘
1. 가락지를 낀 용의 꿈
필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나의 할아버지는 용꿈을 꾸셨단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그런데 자세히 보니 용의 다리에 가락지가 끼어 있어 그것이 무엇인지 걱정스러웠다고 하셨다. 그 덕택에 필자가 양자로 가서 잘 살 수 있었음에도 할아버지는 당신 손자를 남겨 두는 결심을 하고 나의 사촌 형을 양자로 보내셨다고 한다. 필자는
1915년 5월 27일생이신 아버지와 1922년 11월 1일생이신 어머니 사이에서 1946년 1월 4일 8시께 1942년 8월 13일 누님에 이어 둘째로 태어났다. 2년 뒤 여동생, 4년 뒤 또 여동생이 태어났고 막내 남동생과는 9살 터울이다
어릴 적 기억은 4세 때 한국은행 돌계단을 오르면서 엄마 손 잡고 명동 가던 것뿐이다. 누나는 공부를 잘해 늘
나른한 휴일, 집에 놀러 온 아들네가 점심을 마친 후 심심하니 드라이브나 가자고 했다.
집 안에서 귀여운 손녀, 손자 뒤꽁무니만 쫓아 다녀도 좋지만, 어딘가로 출발! 한다는 게 기분을 들뜨게 해주니 신이 난다.
한편으론 혹시 아들 며느리가 자기 식구끼리만 나가고 싶지는 않을까 잠시 우려되었지만 모른 척 따라나서기로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