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할 시간(A time to leave)
네 딸을 둔 어머니는 말기 암으로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한다. 그리고 네 명의 다 큰 딸들을 불러 모아 함께하는 마지막 삼 일 간의 시간을 갖는다. 젊은 딸들은 여전히 현실의 벽에 갇혀 티격태격하며 어머니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행복이 그렇게 모여 오순도순 사는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며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한다. 어머니는 3일째 되던 날 안락사 전문가들을 불러 딸 들 앞에서 편안히 죽는다. 이미 재산도 변호사를 시켜 분배해 놓은 상태이다. 가족이 모두 동의하고 말기 암이므로 그렇게 죽어도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이다.
맥주집 아가씨(A lady at the bar)
긴 머리가 치렁치렁한 아름다운 맥주 집 아르바이트 아가씨가 있다. 거기 온 남자 손님들은 저마다 찝쩍거려 본다. 어떤 남자는 애 둘 낳고 휴가철이면 가족끼리 여행이나 다니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여자는 평범한 삶이 그리 쉬운 게 아니란다. 한 지적장애인은 자신이 외모만 다르지 진지한 사람이라고 애소한다. 아가씨는 맥주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며 끝나면 또 학원으로 달려가는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중이라 남자 만날 처지가 아니라며 무시한다. 사람마다 처지가 다르다. 편하게 술이나 마시는 수컷들은 아름다운 아르바이트 아가씨를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 너무 쌀쌀하면 손님 떨어질 일이고 받아주자니 한이 없는 일이다.
남은 시간(A remaining time)
서로 사랑하는 두 젊은 남녀가 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점쟁이는 그들에게 연인의 시간이 100일 밖에 남지 않았다고 전한다. 100일 후에 둘 다 죽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남은 100일을 보낼까? 남자는 둘이 100일간 후회 없는 삶을 살자며 같이 죽자고 한다. 그러나 여자는 굵고 짧게 살기 싫다며 시간을 연장하자고 한다. 결국 일 년에 이틀을 보며 50년 동안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 정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나라면 다른 점쟁이에게도 가서 확인을 했을 것이다.
프랑스 영화처럼(Like a French film)
4편의 옴니버스 중 제목으로 택한 테마이다.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빈 구석이 많은 착한 남자이다. 그녀는 그때그때 감정대로 하며 산다. 그녀가 새벽 시간이라도 오라면 가고, 갔는데 졸린다며 다음에 연락하자면 무거운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다른 남자랑 만취하고는 늦은 시간에 이 남자에게 전화해서 돈 3만원을 갖고 오라기도 한다. 그 3만원을 어디에 썼는지 궁금하다. 끝내 모른다. 이 여자는 다른 남자에게는 지성을 들이며 이 남자에게는 제 마음대로 한다. 남자는 어망에 걸린 고기처럼 편한 친구사이이다. 여자들이 보기에는 이 여자는 본능적으로 남자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프랑스영화는 여러 가지 복선이 깔려, 보고나서도 도대체 아리송했던 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