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길이 닫혔다. 매년 당연하게 떠났던 해외여행은 잠정 중단되어 여행 일상에 제동이 걸렸다. 방구석 세계 탐방을 몸풀기로 시작했다. ‘부루마블’ 보드게임에서 아무리 많은 도시에 호텔을 사도 없어지지 않는 현장감을 채우고 싶었다. 안전상 멀리 떠날 수 없어 선택한 여행지는 ‘서울’. 이 도시에 뿌리내린 다른 나라를 찾아 나섰다. 거미줄 망처럼 펼쳐진 지하철을 이용해, 술 빚는 여행작가가 추천하는 서울 속 세계 음식점을 탐방해보자.
사직동 그 가게
아는 작가 동생이 이곳에서 일한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원활동가이며 ‘지기’라 불린다. 사직동 그 가게는 록빠(티베트 난민구호 단체, 티베트어로 ‘돕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출발했다. 이 공간은 지기들의 재능기부와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사직동 그 가게. 구어체 느낌의 상호다. 사직공원을 돌아 들어오면 약간 외따로 떨어진 가게가 보인다. 오른편은 티베트 관련 물품을 판매하는 소품 가게이며, 왼쪽 붉은 벽돌 문으로 들어오면 카페와 식당이 보인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그 흔적들을 찾는 재미도 있다. 이 가게는 인도 짜이, 라씨 그리고 커리를 판매한다. 커리를 주문하는 손님들은 주로 새우커리와 치킨커리를 선호한다. 두부커리, 시금치커리 같은 비건 메뉴도 있다. 인도 전통의 맛을 최대한 재현할 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아늑해 아지트에 머문 기분이 든다.
주소 서울 종로구 사직로9길 18
지하철역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454m
영업시간 매일 12:00~20:00 (Last order 19:30)
이스탄불그릴
공덕역 인근 노후한 건물들이 헐리고 새로운 마천루가 세워졌다. 자영 업장들이 서서히 건물 1층을 채웠다. 이스탄불그릴(Istanbul grilll)은 터줏대감 가게 중 하나다. 터키 사장님이 직접 구워주는 터키식 양갈비 그릴이 주요 메뉴다. 이스탄불그릴 사장님은 한국어에 능통하다. 벽면에는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사장님의 캡처 사진이 붙어 있다. 보통 두 명이 오면, 가장 무난한 메뉴가 이스탄불그릴(2인분)이다. 터키 빵+오늘의 수프+메인메뉴(그릴)로 취향에 맞게 6가지 종류로 세팅돼 있다. 식후에는 터키식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백범로 152
지하철역 5·6호선, 공항철도, 경의중앙선 공덕역 1번 출구에서 312m
영업시간 매일 11:00~15:00, 17:00~22:00, 주말 11:00~22:00 (명절 휴무)
레스쁘아 뒤 이부
지갑을 잃어버렸다. 함께 있던 친구는 내 행적을 물으며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도로 옆 우거진 쥐똥나무 속을 뒤지더니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다. 그 답례는 레스쁘아 뒤 이부(L'Espoir du Hibou)에서 이뤄졌다. 레스쁘아 뒤 이부는 청담동 속 작은 프랑스를 연상케 한다. 임기학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12년 차 프랑스 정통 레스토랑이다. 그는 뉴욕 미슐랭 레스토랑인 다니엘(Daniel)에서 근무한 이후 이곳에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미슐랭 2020 가이드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높은 인지도만큼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한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오면 볕 좋은 오후, 테라스에 앉아 유유자적 프렌치 요리와 와인을 즐기기에 탁월한 공간이 나타난다. 5만 원에 제공되는 런치 메뉴는 애피타이저부터 본 요리까지 순서대로 맛볼 수 있다. 하우스 스페셜 메뉴인 ‘오리 다리 콩피’는 이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다. 콩피는 염장한 오리를 기름에 넣어 낮은 온도에서 오랫동안 삶은 뒤 굽는 프랑스 정통 조리 방식이다. 그밖에 킹크랩과 엔다이브샐러드, 양파수프, 광어파스타, 에스카르고(달팽이요리)를 추천한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52길 33
지하철역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4번 출구에서 456m
영업시간 매일 12:00~15:00, 18:00~22:00 (명절 휴무)
파르투내
색이 바랜 만국기가 펄럭인다. 여기는 동대문과 맞닿은 광희동. 만국기 아래 터를 잡은 몽골인들. 몽골타운 옆에는 중앙아시아 거리가 있다. 러시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를 기점으로 접경 지역에 있는 나라의 동포들이 이곳에 모여 살면서 상점을 형성했다. 여기는 ‘서울의 실크로드’다. 그 중심에는 파르투내(Restaurant Fortune)가 있다. ‘Fortune’는 러시아어로 ‘파르투내’이고, 영어로는 ‘포춘’이라 명명한다. 우즈베키스탄 남편과 러시아 아내가 9년째 운영 중이며, 건물 1층은 케이크 등을 판매하는 카페, 2층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본격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이다. 얼마 전, 맞은편에 식품 마트를 새로 오픈해 총 3개의 업장을 보유하고 있다. 현지인과 우리나라 손님 모두에게 인지도가 높다. 메뉴 책은 두껍고 무거워서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수프, 샤슬릭, 차가 기본 조합이다. 샤슬릭은 양, 닭, 소고기를 구운 러시아식 꼬치 요리인데, 평소 우리가 흔히 아는 꼬치보다 3배 정도 크다. 우즈베키스탄식 누들수프인 라그만은 기름진 우육면과 비슷한 식감이다. 감자샐러드 속에 당근과 비트 그리고 청어가 들어 있는 독특한 청어샐러드도 있다. 러시아 맥주 발티카와의 페어링이 무난하나, 러시아산 보드카에 도전해보자. 후식으로는 꿀 케이크인 메도빅과 러시아 차를 권해본다.
주소 서울 중구 마른내로 154
지하철역 2·4·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6번 출구에서 121m
영업시간 매일 10:00~23:00, 일요일 09:00~22:00 (첫째, 셋째 주 월요일 휴무)
페트라
페트라(PETRA)는 서울 지부 중동 음식 순례지 중 0순위로 꼽힌다. 한국에서 중동 요리를 처음으로 선보인 음식점이기 때문이다. 레스토랑 대표 야서 가나옘은 순수 요르단 출신이다. 폭넓은 중동 음식 중 동지중해 부근의 레반트(Levant) 지역 음식을 선보인다. 특히 대부분의 재료를 요르단에서 공수해온다. 음식점 내부 문양만 봐도 이슬람 사원 속 어딘가에 온 듯하다. 페트라는 할랄 의식을 치른 고기로만 요리하는 할랄 레스토랑이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별도의 메뉴도 있다. 병아리콩을 삶아 각종 채소와 섞어 동그랗게 튀긴 팔라펠이 대표 메뉴이며 홈머스, 타볼리샐러드, 캅사, 쿠스쿠스 등 요르단 가정식을 맛볼 수 있다.
주소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40길 33
지하철역 6호선 녹사평역 1번 출구에서 181m
영업시간 매일 11:00~22:00
울프하운드
펍(Pub)은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의 준말로 ‘공공장소’란 뜻이며, 맥주의 동력으로 이야기를 생산하는 곳이다. 펍이 유래한 영국뿐만 아니라 그 옆 나라 아일랜드에도 아이리시 펍이 성행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만 해도 1000개에 가까운 펍이 존재한다. 아일랜드 문호인 제임스 조이스가 “펍을 피해 더블린을 걷는다는 건 마치 퍼즐게임을 벌이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다. 서울에 현지 아이리시 펍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 있다. 바로 울프하운드(The Wolfhound) 펍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외국인(특히 영어권 국가) 손님 비율이 높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중요한 아일랜드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이면 대형 모니터 앞에 모여 맥주를 들고 응원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아일랜드 대표 맥주인 기네스와 크림 에일 맥주 킬케니를 생맥주로 주문할 수 있다. 시그니처 메뉴는 달콤하면서 매콤한 치킨윙과 피시앤칩스다.
주소 서울 용산구 보광로59길 10
지하철역 6호선 이태원역 4번 출구에서 95m
영업시간 매일 16:00~02:00
하노이102
성수동 주택가에 붉은 벽돌로 된 2층 주택 앞에서 머뭇거렸다.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흰색 바탕 족자에 세피아 톤으로 그려진, 베트남 여성으로 추정되는 그림만이 이 건물의 힌트였다(현재는 이 그림 아래 한글로 상호가 새겨짐).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특유의 베트남 쌀국수 향이 코끝을 자극하면서 의문이 해소됐다. 하노이102(Hanoi102)는 근처에 위치한 ‘할머니의 레시피’를 운영하는 대표가 베트남을 콘셉트로 오픈한 레스토랑이다. 대표는 약 7년 동안 하노이에서 생활하면서 하노이 가정식을 섭렵했다. 가구, 테이블 등 작은 소품까지 베트남에서 공수해와 레스토랑을 꾸몄다고 한다. 베트남은 프랑스 지배하에 있던 나라다. 그래서일까. 레스토랑 내부는 프랑스 느낌이 물씬 난다. 같이 온 친구들과 소품의 디테일을 감상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는 쌀국수, 철판 분짜, 쌈에 싸 먹을 수 있는 튀긴 만두 넴 등이 있다. 느끼함 없이 담백하고 깔끔하게 맛이 떨어졌다. 식후에도 인증 사진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을 정도로 내부 디자인에 감탄했다.
주소 서울 성동구 서울숲6길 18
지하철역 2호선 뚝섬역 8번 출구에서 356m
영업시간 매일 11:30~22:00, 18:00~22:00 (Last order 15:00, 21:00, 화요일 휴무)
땅끝마을은 그 이름만으로도 아득하게 먼 느낌이다. 그래서 한 번 다녀오고 나면 언제쯤에나 또다시 가보나 늘 그래 왔던 곳이었다. 아주 오래전 무덥던 여름날 어린 아들 손에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한 권 들려서 삐질삐질 땀 흘리며 남도 땅을 누비며 다녔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의 감흥을 다시 얻기는 어렵겠지만 땅끝마을 해남은 언제나 기대를 품게 하는 곳이다.
이 땅의 끄트머리 해남엔 바다를 내다보며 세상을 품은 듯이 장엄하게 우뚝 선 달마산(達摩山)이 있다. 그 장대한 산세에 천년고찰 미황사(美黃寺)를 있게 했다. 신라 경덕왕 8년에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싣고 온 돌배가 닿은 곳이 이곳 갈두항이다. 이때 경전과 불상을 싣고 앞서가던 소가 누운 곳에 절집 미황사를 창건했다는 설화가 있다.
절 입구부터 위로 올려다보면서 한참을 걸어서 닿은 미황사는 산에 스며있는 절이라는 인상을 준다. 산이 감싸 안은 안온함이 느껴진다. 산을 다듬어서 평지에 지어진 모습이 아니다. 높낮이가 다른 산에 그대로 맞추어 각각 앉혀졌다. 건물마다 비탈길이나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하는 높낮이가 있다. 그래서 아래서 올려다보는 절의 처마나 기둥,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 내는 풍경소리가 남다르다.
비탈진 길을 따라 달마선원 뜰에 올라서 비로소 적요한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간, 눈앞에 바다를 펼쳐 놓았고 남도의 들녘에 바람을 담아두었다. 그리고 저 멀리 매일 달라지는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매월당 김시습은 일출은 낙산사, 일몰은 해남 미황사를 꼽았다고 한다.
이번 여행길에는 늘 하고 싶었던 템플스테이 일정이 있다. 비록 하루 머무는 짧은 프로그램이지만 깊은 산사에서 보냈던 그 시간은 깊은 힐링이었다. 방 배정과 함께 사찰 안내와 예절, 예불, 저녁 공양 후 참여했던 남도 문화체험은 해남 여행을 실감시킨다. 구수한 남도 소리를 바로 눈앞에서 들으며 함께 추임새도 넣어보는 시간, 비로소 우리 문화에 다가가 보았던 산사의 밤이었다. 이 모든 것들을 수행하면서 내 머릿속이 정돈되고 살짝 기분 좋은 긴장감에 뿌듯하다.
꾸밈없이 정갈한 텅 빈 방에서 지낸 하룻밤. 새벽녘 정적을 울리는 목탁 소리에 잠을 깼다. 문을 여니 어둠이 가득한 절 마당으로 가만히 오가는 발자국 소리들이 들린다. 조용히 일어나 내다본 산속의 사찰도 세수한 듯 신선하고 상쾌하다.
아침 공양 후 달마 선원의 찻방에서 금강 스님과 함께한 다도 시간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안경 너머로 느껴지는 스님의 눈빛이 엄격한 듯 따뜻하다. 스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차를 두 손에 감싼다. “스님, 은은한 향이....이게 무슨 차인가요?”빙그레 웃으시며 스님이 말씀하신다. “차 이름은‘미황사 차’입니다.”이 무슨 바보 같은 물음이었는지.‘미황사 차’를 마시며 우리가 함께해야 하는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들려주신다.
“매일매일 살아있는 숲을 순례하는 마음으로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산길을 걸은 후 기운이 충만해지길 바라요. 그리고 이 길이 천 년이 지나도 반가운 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자연을 그대로 두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중장비나 기계가 아닌 호미와 삽, 괭이와 지게를 이용한 순수 인력으로 있는 그대로의 길을 내었다. 해마다 쌓이는 낙엽이 스며들고 그 길을 걷는 발아래 편안함이 있도록 자연 속의 흙과 돌을 그대로 고집했다. 길 가다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걷는 도중에 큼직한 돌들이 쏟아져 내린듯한 너덜길을 몇 번쯤 만난다.
미황사를 둘러싼 뒤편의 달마산에 달마고도(達磨古道) 길이 차분히 열려 있다. 총 17.74km의 4개 코스다. 그중에 한 코스를 걷기로 했다.
달마 고도는 각 4코스가 있다. 총 17.74km / 약 6시간 30분 거리. 제1코스 2.7km 미황사~큰 바람재, / 제2코스 4.37km 큰 바람재~노지랑골,/ 제3코스 5.63km 노지랑 골~몰고리재, / 제4코스 5.03km 몰고리재~인길~미황사
땅끝마을에 명품 둘레길 달마고도(達磨古道). 그 길을 세 시간여 걸었다. 땅끝에서 산길을 걷고 돌길을 걸으며 속세의 고단함도 함께 한다. 태고의 매력 속에서 자연의 기운을 듬뿍 받는다. 힐링 트래킹이다. 걸으며 사색과 명상을 하며 미약하게나마 성찰의 시간이 된다면 더 바랄 게 무엇일지.
달마산의 숲에 난 조붓한 길은 적당히 걷기 좋았고 숲을 이룬 나무 사이로 햇살이 눈 부시다. 이렇게 걷는 행복을 만끽한다. 심신이 정돈되는 느낌이다. 평소에 운동하지 않는 편이다 보니 때로 숨차서 헉헉거리면서도 그리 어렵지 않다. 걸을수록 그 길을 걸어나갈 힘이 생겨난다. 언제라도 찾아와 걸어보고 싶은 길이 또 하나 생겼다.
생각만으로 막연히 멀다 했다. 이젠 언제라도 한반도 끄트머리 땅끝마을 해남으로 훌쩍 떠나볼 만하다. 그곳엔 붉은 동백이 피고 지고 있었고 애끓는 남도 창이 고단한 마음을 달래준다. 푸근한 인심과 맛있는 밥상엔 인정이 넘치던 곳, 지금 거기엔 싱그럽게 일렁이던 청보리가 누렇게 패고 있겠다.
*해남 미황사 가는 길 - 자동차로 약 6시간 정도 // *대중교통: 강남고속버스터미널(호남선)출발-해남터미널-미황사행 버스 // * 미황사. 달마고도(達磨古道)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해남군은 신종 코로나19 확산으로 나 홀로 여행자를 위한 한적하고 안전한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6월 27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30분 미황사 일주문 앞에서 트레킹 가이드와 함께 출발한다.)
△ 주변에 더 가 볼 곳 & 맛집
*해남 청보리밭 - 두 눈이 시원하다. 황산 연호 보리밭은 바라만 보아도 싱그럽다. 구릉의 높낮이를 그대로 살린 완만한 지형이 자연스럽다. 고두심 주연의 영화 '엄마'의 한 장면이 이 청보리밭에서 연출되어 화제가 된 곳이기도 하다. 지금쯤 보리가 패어 누런 황금 물결이겠다. 전남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 482-2
*해남 공룡박물관 - 세계 최초로 익룡, 공룡, 새 발자국이 동일 지층에서 발견된 지역이 바로 해남이다. 그 앞으로 펼쳐진 바다처럼 넓은 호수를 보며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은 마냥 평화롭다. 전남 해남군 황산면 공룡박물관 길 234
*대흥사-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있는 두륜산(頭崙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대흥사(大興寺)는 땅끝마을 해남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특히 천불전 남쪽의 동국 선원은 1978년 문재인 대통령이 머물며 사법 시험공부를 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곳이다. 소박한 방에서 누군가의 큰 꿈을 이루어가던 시간이 거기 있었다.
입구에 있는 100년 전통의 한옥 구조인 '유선관 여관'과 그 뜰의 누렁이가 유명하다. 이제 그 누렁이는 간데없고 근래엔 TV 예능 알쓸신잡의 잡학박사들이 이곳에서 토론을 하던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376
*녹우당(綠雨堂)- 고산 윤선도의 산중신곡의 무대 비자림 숲.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입구에서 든든히 지키고 있다. 바람이 불 때 정말 녹우(綠雨) 소리가 날까 귀 기울여 보라.
*땅끝마을- 한반도 육지의 남쪽 끝 43.5km 지점에 있는‘땅끝마을’. 마을 입구에 땅끝 표지석이 서 있다. 156m 갈두산 정상에 전망대가 있다.(모노레일 이용 가능)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보리향기 - 음식점도 자그마하고 가족 느낌의 보리밥 정식. 고소하고 찰진 차조밥과 '자줏빛의 작은 새우'라는 뜻의 '자하젓'이 맛깔스럽다. 막걸리 한 잔이 잘 어울리는 남도의 밥상.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158-1 보리향기
*원조장수통닭 - 닭 한 마리로 다양하게 먹는 닭 코스 요리가 있다. 해남군 해남읍 고산로 295
*미황사(美黃寺)에서 하룻밤 템플스테이 하면서 먹은 특별했던 ‘공양’. 단 한 가지도 나무랄 것 없이 모두 맛있다. 채식의 사찰요리여서 먹은 후 속도 편하다. 그리고 미황사 금강스님이 만들어주신 '미황사 차 한 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으뜸의 맛 기억이다.
여수엑스포역은 관광지 철도역으로는 만점짜리 자리에 있다. 열차에서 내려 역 구내를 빠져나오자마자 엑스포 전시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 왼쪽에서는 쪽빛 바닷물이 넘실댄다. 일정이 바쁜 사람들은 열차 도착 시각에 맞춰 역 앞에 긴 줄로 늘어서 있는 택시를 바로 잡아탄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끌리듯 엑스포 전시장으로 직진한다. 높낮이 없이 평평하게 설계된 전시장 길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걸어도 걸리는 곳이 없다. 시니어들에겐 맞춤 산책길이다. 자기도 모르게 왼쪽에 있는 바다 쪽으로 접근해 걷게 된다.
조금 걷다 보면 왼편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조그만 섬 하나가 눈에 잡힌다. 소문 난 오동도다. 전시장 끝자락에서 이어지는 다리가 있으니 그 섬에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만만한 섬! 천천히 걸어도 30분가량이면 다 돌 수 있다. 이 섬이 소문난 건 동백꽃 덕분이다. 동백꽃은 한창 피어나는 겨울보다는 지기 시작하는 초봄에 장관을 이룬다. 바닥에 무리를 이뤄 떨어져 있는 빨간 꽃송이와 꽃잎들은 처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우리 인간들에게도 질 때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라고 충고하는 듯하다! 그 교훈을 실감
나게 체득하려면 동백꽃이 떨어지는 3~4월께 오동도를 다시 찾아야 한다.
실비로 먹는 ‘시골밥상...’ 식당
오동도 구경을 마치고 나올 때쯤이면 뱃속에서 신호가 오게 마련이다. 더욱이 이곳이 맛의 고장 여수임에랴! 오동도 앞에서 돌산으로 가는 해상 케이블카 탑승장 바로 밑에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다.
8000원짜리 여수 가정식 백반을 파는 ‘뚱땡이 할머니의 밥상 시골밥상’ 집은 언제나 손님이 차고 넘쳐 끼니때는 이용이 쉽지 않다. 칠순을 넘긴 뚱땡이 할머니와 마흔도 채 안 돼 아이를 넷이나 출산한 ‘애국자’ 따님이 운영한다. 맞은편 엠블 호텔 투숙객들도 이 식당을 많이 찾는단다.
특별한 반찬은 없지만, 하나하나 간을 잘 맞춘 맛깔스러운 반찬들과 매일 바뀌는 국 종류 때문에 밥 한 그릇을 더 시키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 식사를 끝낸 자리엔 종업원이 큰 통을 들고 가서 남은 ‘아까운’ 반찬들을 모두 담는다. 음식 재활용을 않는다는 걸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좁은 자리가 꽉 차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아 사진도 못 찍고 문전에서 아쉬운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아쉽기는 뚱땡이 할머니와 따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문 앞에 서서 손님을 그냥 보내는 눈빛에 미안함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진남관 앞 ‘서울해장국’ 식당
그렇다고 애써 맛집을 다시 찾아야 한다면 여수가 아니지.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진남관. 그 오른쪽 앞과 길 건너편 거리에 여수의 오래된 먹자골목이 있다. 모두 다 소개하고 싶은 맛집들이다. 그중에서도 시민들이 많이 찾는 ‘서울해장국’이 있다.
아니, 맛집 고장 여수에서 엉뚱하게 옥호를 ‘서울~~’로 쓰다니! 그러나 사실 이상할 게 없다. 수십 년 전 여수가 관광지로 채 발돋움하기 전에 개업했으며 그 당시만 해도 서울은 대단한 동경의 대상이었기에. 마치 50, 60년대 서울의 빵집과 양복점 등의 이름으로 뉴욕, 파리, 런던 등을 많이 썼던 것처럼.
이 식당은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영업한다. 바싹 말린 우거지를 장어로 국물 맛 낸 된장국에 넣어 푹 끓여낸 우거지국, 바삭바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는 콩나물국, 두툼한 선지국은 모두 한 그릇에 6500원, 돼지고기를 아낌없이 넣은 김치찌개(8천 원) 등이 하나같이 별미다. 이 식당은 특히 밑반찬에 들이는 정성이 남다르다. 그 때 그 때 구워주는 생김을 찍어 먹게 집간장과 양념간장을 함께 내주고 갓 만들어 내오는 숙주나물, 고추멸치볶음, 계란부침 등도 모두 싱싱하고 맛깔스럽다.
주인 할머니와 따님이 조그만 식당을 무려 종업원 10명가량을 쓰며 운영한다. 김 굽는 직원, 식재료 다듬는 직원, 우거짓국 끓이는 직원, 김치찌개 끓이는 직원 등이 제각각이다. 맛집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불친절은 찾아볼 수 없고 직원들이 손님상을 수시로 체크하며 모자란 반찬은 알아서 채워주는 친절함까지 보인다. 손님들이 저마다 이 식당 칭찬하기에 바쁘다. 팔순이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 선짓국을 들고 계신다. 궁금해서 말을 붙여보았다. “40년 단골이지. 맛도 맛이지만 정성이 들어간 건강식이고 배고프던 시절 추억을 떠올려 더 좋지.” 여러모로 완벽한 맛집인 셈이다.
그 밖에도 복춘식당, 조롱박 등 여수의 별미를 즐길 수 있는 맛집들이 이 일대에 많다. 서대회, 아귀찜, 아귀탕, 생선 내장탕, 돌게장, 삼치회 등이 주메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일대의 많은 아귀찜 식당과는 비교도 안 되게 풍부한 아귀를 넣은 아귀탕이 1만 원. 둘이서 다 먹기 부담스러운 양의 아귀찜도 2만 원 미만이다. 마산 일대가 주산지로 알려진 아귀는 여수에서 더 풍족하게 요리된다. 여수 앞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삼치의 선어회는 여수의 특징적인 음식 중 하나다. 처음 접하면 물컹한 식감에 다소 거부감을 느끼지만 익숙해지면 삼치회만 찾을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구이로 먹는 삼치 머리는 클수록 맛이 좋다.
진남관. 이순신광장. 장군섬
식사를 마치고 여수의 상징인 진남관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는 이순신 광장을 ‘참배’ 할 차례다. 여수를 하루만 둘러봐도 곳곳에 있는 이순신의 흔적을 발견하곤 새삼 놀라게 된다. 심지어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거처했던 곳까지 여수에 있고, 거북선을 건조하고 수리하던 ‘선소’도 세 곳이나 있다. 어머니 처소는 보존작업이 마쳐져 관광객들의 발길이 띄엄띄엄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는 그 앞에 새로 이순신 공원 조성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심지어 실재하지 않은 소설 속 인물까지 끄집어내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데 ‘점잖은’ 여수 시민들은 ‘이순신 자원’을 그리 요란하게 활용하지 않는다. 기자도 여수를 몇 번 찾기 전까지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전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부임해 곳곳에 이렇게 많은 흔적을 남긴 줄은 알지 못했다.
이순신 장군은 사후에도 여수민들을 여러모로 ‘살려주고 있는’ 중이다. 거북선 빵집, 이순신 햄버거 등 여수 상가의 옥호 중 이순신과 거북선이 가장 많이 활용된다. 여수민들의 충무공에 대한 애정과 충성도 역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생전에도 사후에도 나라와 국민을 위한 충정이 한없는 불멸의 영웅은 여수에서 그 숨결이 가장 생생하게 느껴진다.
진남관은 2020년 봄까지 보수 일정이 잡혀있어 내부 관람이 금지돼 있다. 광장의 장군 동상 앞에 실물 크기로 지어졌다는 거북선도 기자 일행이 찾았을 때는 수리 중이어서 입장을 할 수 없었다. 관람객이 너무 많아 수시로 보수를 해야 한단다.
진남관 입구와 장군 동상 너머 장군섬에 이르는 곳까지 장군의 위세가 당당하게 뻗쳐져 있는 일대를 보는 것만으로 성웅 충무공에 대한 참배를 대신해야 했다. 참고로 해방 즈음까지는 장군 동상 앞에까지 바닷물이 들어차 있었단다.
종포공원 거쳐 오동도 가는 길
이순신 광장에서 오동도 방향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자산공원이 있는 방향으로 나지막한 언덕길을 거쳐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몇 해 전부터 여수의 포장마차 촌으로 유명해진 종포공원을 거쳐 바다를 끼고 가는 길이다. 우선 종포공원부터 걸어보기로 한다.
이 일대는 여수의 오래된 바닷가 놀이터 중 하나다. 지금은 공원으로 명칭이 붙여져 있지만, 낚시꾼이 모여들고 고기잡이배가 들락날락하던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바로 옆에 새벽마다 경매가 열리고 종일 생선 판매가 이뤄지는 선어 시장이 있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낚시꾼들도 간간이 모습을 보인다.
몇 년 동안 성시를 이루던 포장마차 촌은 인근 하멜기념관 옆으로 옮겨졌다. 정비 차원이었던 모양인데 아직은 포장마차 촌의 모습으로 보기엔 익숙하지 않다. 행정력도 자연스러움에 초점이 맞춰져야 바람직한데...
종포 공원 일대에 펜션 서너 곳이 있고 펜션 부근에 맛집이 꽤 늘어서 있다. 포장마차와는 구분되는 식당들이다. 여수 특산물 중의 하나인 돌문어 식당이 많다. 돌문어삼합, 돌문어라면 등등. 진화한 여수 음식 종류 중 하나는 해산물을 활용한 라면 요리다. 이 돌문어 식당엔 점심때부터 줄이 늘어서 있다. 젊은 층이 많다. 돌문어라면 뿐만 아니라 해물라면, 돌문어삼합 등 새로운 메뉴가 계속 개발되고 있다. 돌문어라면 1만 원, 네 사람이 먹어도 남을 정도의 푸짐한 돌문어삼합은 3만9000원.
기자도 몇 년 전 여수에 와서 라면 요리를 ‘개발’했었다. ‘꼴뚜기 라면’. 시장 아지매한테 1만 원만 주면 한 접시 가득 주는 꼬록(여수에선 꼴뚜기를 꼬록이라고 부른다)을 특별한 레시피 없이 라면과 함께 끓여주면 색다른 국물 맛을 내는 아주 맛깔스러운 라면이 완성된다. 강추!!!
몰포 나비와 나비 반도 여수
자산공원은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공원이다.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걸어 올라가기에 좀 힘이 들기 때문이다. 관광버스들도 코스로 잘 잡지 않는다. 그러나 노인 체력으로도 천천히 걸어 올라갈 만 하다. 아침저녁으로 산이 아름다운 자색으로 물든다 하여 자산으로 이름 붙여진 그 산속 공원엔 여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또 생뚱맞은 이름의 전시관이 하나 있다.
곤충체험관인데 이름하여 ‘빠삐용(나비) 전시관’이란다. 여수에 빠삐용 전시관이라니.. 입구에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 역을 맡았던 미국 배우 ‘스티브 맥퀸’의 사진이 걸려 있다. 여수에 빠삐용? 생각해보고 거듭 생각해 봐도 생뚱맞다!
전시관에 들어가 설명을 들어봤다. 여수시의 전직 공무원 한 분이 현직에 있을 때부터 집념으로 나비를 채집해 개인적으로 만든 전시관이다. 시에 기증해 지금은 시가 운영하고 있다. 수많은 나비 표본 중에서 대표적인 전시물이 저 멀리 중남미 원산의 몰포나비. 푸른 금속성 광택이 나는 아름다운 몰포나비와 그 나비 모양을 빼닮은 여수반도 그림이 나란히 전시돼있다.
아하! 그제야 조금 몰포나비 채집자의 의도가 이해될 듯했다. 그는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폈음 직하다.
“지구 저편에서 몰포나비가 너울너울 날아와 한반도 끝자락에 앉았다. 여수반도다!”
여수의 강남이라는 웅천에서
여수에서는 걷다가 가끔 시내버스도 타볼 만하다. 2층 관광버스도 좋지만 무작정 시내버스를 타고 한가롭게 시내를 돌다 보면 대충 여수 시내의 윤곽이 들어와 다음날 일정에 참고하기에도 좋다.
물어물어 버스 몇 번 갈아타고 여수의 강남이라는 웅천지역으로 갔다. 고급 아파트촌이 있고 인공 해변이 조성돼있으며 입구 상가엔 여수답지 않게 주차난이 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서울 사람들에겐 식상한 풍경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구원은 ‘예울마루’다. 전시회와 음악회를 수시로 여는 이 건물은 여수 산단에서 매출을 많이 올리는 어느 대기업이 외국인 건축가에 설계를 맡겨 지어서 시에 기부한 것이다. 건물 외벽 없이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 건축물 문외한이 보기에도 시원하다. 건물 바깥쪽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있는 것도 특이한 모습이다.
예울마루 관람을 마치고 15분가량 옆의 산길을 돌아 걸어가면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짓고 수리했다는 선소가 나온다.
이순신 장군의 또 다른 작품 ‘선소’
이 선소는 여수반도를 에워싼 바다의 ‘골목길’ 맨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적군에게 노출되지 않는 장소를 고른 것이다. 실제로 가까운 웅천 쪽에서도 선소는 보이지 않고 웅천의 바다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촌에서도 이곳이 보이지 않는다. 입지 선택이 탁월했던 셈이다. 그러니 여유롭게 안정적으로 거북선을 짓고 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북선과 수전의 각종 전략 외에도 이순신 장군의 지모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순신 장군은 영국의 넬슨 제독과 함께 세계 해전사에서 최고의 명장으로 기록된다. 러일전쟁을 일본의 승리로 이끈 일본의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 장군에게 존경을 표한 것도 거북선 뿐만 아니라 해전 전술, 주민 친화력, 그리고 선소 운영 능력 등을 보았기 때문이다. 충무공께 새삼스러운 존경의 묵례를 보내고 이번엔 선소 길 건너의 그 유명한 보리굴비 식당으로.
명사들이 찾는 여수의 보리굴비 식당 ‘석정’
굴비 하면 영광 굴비, 법성포 굴비다. 그런데 여수에 명사들도 즐겨 찾는 보리굴비 전문식당이 하나 있다. 옛 여천 지역, 여수 시청 부근에 있는 석정 식당이다.
이 식당도 덕장은 법성포에 두고 있다. 법성포에서 굴비를 말려 여수로 가져와 조리한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굴비 정식엔 굴비와 함께 해물 보쌈김치, 여수산 각종 나물 등 17가지의 반찬을 내놓고 직원이 각 테이블을 돌면서 먹기 좋은 크기로 굴비를 찢어 준다. 기름기 잘잘 흐르는 보리굴비 속살, 군침이 돈다. 보리굴비 정식 2만 원. 여수엑스포 준비위원장을 지낸 전 건설교통부 장관 강동석 씨, 지금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윤정희, 백건우 씨 부부 등 명사들이 오래된 단골이란다.
여수에서 11월에 열렸던 세계한상대회 때의 에피소드 한 토막. 대회기간 중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온 참가자들이 각자 이 식당을 찾았다가 우연히 만나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단다. 각국 한인들에게까지 이 식당 소문이 났다는 식당 측의 자화자찬이다.
식당 판매보다는 전국에 보내는 택배 영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선물 포장된 다섯 마리에 택배비 포함하여 6만5,000원, 10마리 세트는 12만5,000원.
구여수와 신여수
여수시청이 있는 구 여천지역과 구 여수를 잇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내륙 쪽 버스들이 다니는 길과 바닷가로 이어지는 길이다. 웅천지역을 지나 구 여수로 가는 길목 왼쪽에 한국화약 소유 대지가, 있으며 그 건너편엔 여수반도에서 가장 탁 트인 넓은 바다가 있다. 트레킹 코스로 개발하든지 아니면 대단위 리조트로 개발할 만한데, 웬일인지 방치되고 있다. 띄엄띄엄 바닷가 길을 둘러 가면 구 여수의 전통 항인 국동항이 나온다. 옛 여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국동항엔 항상 낚싯배들이 수백 척 정박해있고 경매장에선 새벽마다 활발하게 경매가 이뤄진다. 바로 앞 경도엔 미래에셋이 경도 리조트 재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경도는 골프장과 함께 여름 한 철 먹거리인 하모(갯장어의 일본말)의 주산지이다. 경도와 고흥 일대의 하모를 최고의 갯장어로 꼽는다. 경도 안엔 하모를 회와 샤부샤부(일본말. 유비끼라고도 함)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있다. 혹자는 일본사람들처럼 갯장어에 기름이 끼는 7월 이후엔 맛이 별로라고도 하고 혹자는 그때의 하모 맛이 일품이라고도 한다. 정답은 없고 각자 취향에 따르면 될 일이다.
자매식당 등 국동항의 맛집들
그러나 여름철이건 겨울철이건 바닷장어 요리를 꾸준히 하는 식당들이 여수에 많다. 특히 국동항 주변엔 갯장어를 통째로 끓여 내놓는 통장어탕 식당이 몇 곳 있다. 그중에서 여수 시민들 사이에서도 소문 난 자매식당을 찾았다.
장어를 잘라서 국 끓이는 게 아니라 통째로 넣어 끓인 후 손님상에 내와서 종업원이 국자로 장어를 으깨서 먹기 좋은 크기로 나눠준다. 된장 국물에 우거지를 넣어 장어 맛과 함께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일반적으로는 토막 낸 장어를 숙주나물을 넣어 함께 끓여 내놓는다. 통장어탕 14000원, 장어 소금구이 2만 원을 받는다.
여수에 가장 많은 식당이 장어탕 식당과 돌게 간장게장 식당이다. 장어탕 식당은 수산시장 안, 시청 주변, 시내 곳곳에 있다. 그중 자매식당이 가장 생명력이 있다는 여수 지인들의 전언이다. 이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내놓는 멍게 젓갈이 또 일품이다. 자꾸 더 달라는 손님이 늘어나 포장 판매를 시작했단다. 한 통(3kg)에 3만 5000 원, 택배비 4000원이란다.
여수의 수산시장
여수에는 수산시장이 몇 곳 있다. 수산시장, 특화시장, 교동시장, 선어시장. 그중 수산시장이 중앙시장 격이다. 몇 년 전에 이 시장에 큰불이 나서 시장이 완전히 전소했었다. 주변의 지원과 상인들의 복구 노력에 힘입어 업그레이드된 새 시장 모습으로 태어났다.
시장 내 수십 곳 되는 활어 판매대에서 펄펄 뛰는 생선을 잡는 활발한 모습은 장관이다. 생선 잡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매우 좋다는 어느 보고서에 전폭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물새횟집 아지매. 수십 년간 온 가족이 이 업에 종사해왔단다. 종포공원 옆에 자그마한 건물도 소유하고 있다. 재빠르고 시원시원하게 생선을 잡고, 손님과 흥정도 시원시원하게 하며, 횟감은 그야말로 맛깔스럽게 썰어낸다. 전문가가 따로 없다. 일본 시장 상인들과 일 합을 겨루게 해봤으면 좋겠다. 여기서 회를 떠 가져갈 수도 있으나,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2층 식당으로 올라가 상차림 값으로 한 사람당 4,000원과 매운탕값 5,000원을 주고 식사를 한다. 서울의 가락시장, 노량진 시장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실비다. 생선 산지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세 명이 싱싱한 돔, 갑오징어, 농어, 삼치 등 각종 회를 남길 정도로 푸짐하게 먹고도 6만 원 미만을 냈다.
시내의 실비식당 ‘와사비’
게장 골목 소개는 생략한다. 여수의 전통적인 먹거리 중의 하나인 간장게장 식당들은 이제 시설과 메뉴에서 한 등급 더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신 시내의 횟집 한 군데를 더 소개하고 여수의 맛집 소개를 마친다. 여서동 네거리 근처의 ‘와사비’식당. 옥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름 때문에 최근 곤욕을 치렀단다. 얼마 전부터 보는 시선들이 좀 누그러지더란다.
옥호를 ‘고추냉이’로 바꿀 생각은? 이제 겨우 정착단계인데요... 이 식당은 문 연 지가 몇 해 되지 않았다. 6년 전께 문을 열자마자 여수에서 오래된 횟집들을 제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유는 초간단. 남자 사장이 새벽에 바다에 나가 직접 생선을 잡아 오고 여수 주변에서 구하기 어려운 건 통영 등지로 달려가 구해와서 오후부터 바쁘게 회를 만든다. 혼자서 몇 사람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게 몇 년을 일해 얼굴이 수척해졌을 정도다. 부인은 서비스 메뉴를 개발하고 상차림을 연구하는 한편 수시로 주방에 들어가 남편과 주방 보조 여인을 돕기도 한다. 이들의 노력은 상차림과 회접시에 그대로 반영된다. 이 식당도 갈치회, 삼치회가 일품이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회 한 접시에 4만 원에서 6만 원이면 세 사람이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맛집 몇 곳을 소개했지만, 여수의 장점은 어느 식당에 가든 다른 지방에 비해 만족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식당마다 자부심이 대단하고 음식에 들이는 정성이 손님들 눈에도 보일 정도다. 전통인지, 요즘의 트렌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특히 엑스포 이후 시설과 함께 식당들의 자세가 확 달라졌다는 평가가 많다. 먹방과 인터넷에서 칭찬은 많이 받고 악평은 덜 받는 곳, 여수가 됐다.
오동도 입구의 일출
여수에서 일출을 보는 장소로는 돌산섬 일대를 많이 꼽는다. 그중에서도 섬 끄트머리의 향일암(向日庵)은 일출로 유명해진 곳이다. 정동진과 함께 일출 사진이 워낙 많이 나돌아다녀 우리는 다른 곳에서 일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여수 현지의 정보로는 요즘 오동도 입구의 일출이 장관이란다.
새벽에 일어나 이틀을 기다렸다. 해는 우리의 애를 태우면서, 햇살만 내려보내 고기잡이배들을 비춰줄 뿐이었다. 붉게 솟아오르는 태양 대신에 빛줄기만 담았다. 일정상 일출 장면 촬영을 포기하고 서울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철수하면서 여수 지인에게 일출 촬영을 간곡히 당부했다. 간곡히 간곡히 거듭 부탁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일출 사진이 메일로 왔다.
쌩큐 오 선생!
쌩큐 여수!
강물에 패이고 풍파를 이겨내며 살아온 세월. 아팠던 일은 아프지 않게 마음 속에 저장한다. 잊고 싶은 순간은… 담담하게 그 자리에 내려놓는다. 과거는 낭만으로 포장돼 기억되기 마련. 그게 나이 듦의 특권일 수도 있다. 평양식 맛집으로 소문 자자한 봉화전 주인장 김봉화(金鳳華) 씨를 만났다. 고운 얼굴 수줍은 미소가 기억하는 옛 추억 속으로 시간여행을 해봤다.
서울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에 내려 멀지 않은 거리에 봉화전이 있다. 강남이라고 해서 멋들어진 건물 자태 운운하면 곤란하다. 건물만 똑 떼어 어느 시골 마을 장터에 갖다 놔도 어색함이 없을 만큼 정감 가는 분위기를 뽐내는 곳이 봉화전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저 온 사진작가를 앞에 두고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김봉화 씨. 주제는 전쟁이었다.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6·25전쟁 때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적인 상황과 드라마보다 더 무거운 옛일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열심히 들려줬다. 직장인들이 시끌벅적 점심을 먹고 돌아간 후, 피곤할 만도 할 텐데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이제 좀 끝내는가 싶더니 음식 솜씨에 대한 수다가 이어진다.
“저희 집안이 경주 김 씨 왕손 집안입니다. 평양에서 피란 내려왔어도 음식은 고급스럽게 먹었어요. 어머니가 저를 잡아두고 요리를 가르친 건 아닌데 결혼하고 나서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 가져다 먹고 또 나이가 들다 보니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저 남편과 아이들을 위한 요리나 하면서 지금까지 살았어요. 정말 우연하게 봉화전을 열었습니다.”
평양식 온반과 어복쟁반, 특히 부침 전이 맛있기로 소문난 봉화전. 이곳에 처음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봉화전이 ‘경북 봉화 지역의 전’을 말하나보다 하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김봉화(봉화)가 전하는 이야기[傳]’란 의미다. 광고기획사 다니던 큰아들이 가르치던 학생들과 고민해서 만들었다.
“한 학생이 그러더래. ‘봉화전’ 어떠냐고요. 처음에는 싫다고 했어.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 나는 싫었거든요. 어쨌든 봉화전이 식당 이름이 된 거예요.”
평양 양반댁 요리의 정갈함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인의 취향과 입맛에 맞췄기에 그녀 스스로도 전통이라는 말로 봉화전의 요리를 표현하지 않는다.
“요즘 스타일이에요. 옛날 잔칫집에서는 고기를 꼬치에 크게 꼽고 전을 부쳐냈는데 그렇게 안 합니다. 음식은 그저 먹기 좋게 내놓습니다. 그리고 이북식 배추김치는 여기처럼 배추 전체에 양념을 치대지 않아요. 이파리 속에다 단정하게 넣어요. 그 상태로 자르면 정말 꽃 같아요. 예쁠 뿐만 아니라 아삭아삭하고 맛있어요. 그런데 싱겁죠. 평안도 사람 입맛에는 맞겠지만 여기 사람들에게는 아닐 수도 있잖아요? 초창기에는 전 부칠 때 전통식대로 돼지기름도 써봤지만 제가 직접 기른 돼지도 아니고 못 믿죠. 지금은 콩기름에 부쳐요. 최대한 평양 맛을 고수하되 요즘 사람들의 입맛과 취향을 많이 고려합니다.”
요즘은 봄철이라 두릅전을 계절 음식으로 내놓는데 인기가 좋아서 금방 동날 정도란다. 그녀는 매일 시장에 가고, 전과 함께 먹을 반찬도 그날그날 바꾼다.
“젊은 사람들 입맛에 맞아야 하잖아요. 촌 음식 그대로 해주면 안 먹어. 내가 여기에 오면 이것저것 신경 쓰고 고민하게 돼요. 젊은 사람들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거 같아요. 고맙죠. 잘해주고 싶고 과일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요. 이 나이에 돈만 벌겠다고 나와 있는 건 아니에요.”
어느 날 찾아온 인생 일탈 ‘봉화전’
봉화전을 열기 전까지는 가족들 뒷바라지하며 사는 우리 시대의 평범한 어머니였다. 생업 전선(?)에 뛰어든 것은 막내아들 때문이었다며 또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이 자리가 원래는 곰장어 집 자리였대요. 2011년에 막내아들이 ‘엄마 나 조그마한 가게 두 개 계약해놨는데 한번 봐주실래요?’ 그러는 거야. 여기 와서 보니까 엉터리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아들한테는 표시 안 했어요. 그런 얘기하면 실망하잖아요. 이미 돈도 다 줬더라고요. 여기서 식당했던 사람마다 망했다는 얘기도 들렸어요. 일단 다른 가게는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했지만 포기했어요. 이것만 남겼죠. 아무 경험도 없는데 자신감이 있었겠어요?”
자리만 봐주고 발을 빼도 되나 싶었는데 아들이 다시 부탁을 해왔다.
“아들이 ‘엄마, 3일만 봐주세요. 여기 일하시는 분들한테 요리하는 방법 좀 가르쳐주셔요’ 그러는 거야. 내가 속으로 3일 가르쳐서 되면 뭐든지 잘되게?(웃음) 그랬어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아들이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투자했는데 잘못되면 큰일이었다. 약속한 3일이 문제가 아니었다.
“장사할 준비도 제대로 못했는데 손님들이 문 두드리고 들어오는 거예요. 잠깐 동안 80만 원어치 팔았어. 막 음식을 해 달라는데 어쩌겠어.”
정작 일을 벌인 아들은 개업 한 달 만에 사업하겠다며 중국으로 가버렸다. 첫날부터 대박식당으로 소문이 나더니 문 연 지 얼마 안 돼 방송사에서 촬영까지 해갔다. 맛집 프로그램으로 정평이 난 ‘수요미식회’(tvN)에 소개되면서 대한민국 맛집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어느 날 가수 이현우가 왔다는 거야. 누군가 하고 봤더니 여기서 먹고 가곤 했대요. 그 사람이 ‘수요미식회’에 소개한 거예요. MC인 신동엽 씨랑 전현무 씨도 와서 우리 음식 먹어보더니 정말 맛있다는 거야. ‘우리 아들 망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내가 이 집을 떠나면 안 되겠구나’ 합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요리하다
봉화전을 열 때 아들이 그녀에게 알려 달라는 요리는 단 한 가지였다.
“내가 집에서 노상 해주던 음식이었어요. 그게 가장 맛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제가 요리에 관심이 좀 있었어요. 젊었을 때는 남편을 위해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음식연구원을 다녔어요. 남편이 방산사업을 했는데 외국 바이어들을 저희 집에 자주 데리고 왔습니다. 호텔에 가봤자 별 볼일 없잖아요. 그때마다 남편 생각해서 정성을 다해 우리나라 요리를 만들어 대접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사업도 잘 풀렸습니다. 방부제 들어가지 않은 빵을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어서 오븐을 사서 빵도 구웠습니다. 제빵사 자격 이런 건 없었는데 정말 잘 만들었어요. 몇 년 전 오랜만에 아들 친구를 만났는데 제가 만든 빵을 기억하더라고요.”
좋은 집안에 태어나 피란 통에도 좋은 것 먹고 곱게 자란 그녀였지만 과감한 면이 있었다. 좋은 선 자리 마다하고 연애결혼을 한 것이다.
“어머니는 제가 잘사는 집안으로 시집가기를 바랐어요. 서너 군데서 선도 들어왔고요. 그때는 스무 살만 넘어도 빨리 시집가라는 분위기였잖아요. 근데 제가 꿈에서 어떤 키 큰 남자를 봤는데 누군가가 ‘저 사람이 네 신랑감’이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그 꿈을 꾸고 나서 한 일주일 됐나? 키 큰 공군사병이 저를 따라오는 거예요. 그리고 3년 동안 저를 쫓아다녔어요. 제 남편이요.”
열두대문집 손자였으나 가세가 기울어 경제적으로 내세울 것 없었던 남편을 어느 날 어머니에게 보여드렸다. 내심 걱정했지만 어머니의 한마디는 “사람 괜찮구나”였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다. 큰 회사의 커리어우먼이었던 김봉화 씨는 남자 친구이던 남편이 군 제대를 하고 취업하기 전까지 데이트 비용에 용돈까지 줘가며 연애에 푹 빠져 살았다. 결혼식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엄앵란, 신성일 부부가 생각날 정도.
“결혼식은 워커힐에서 했어요. 앙드레 김 웨딩드레스를 입었어요. 오드리 헵번이 입었던 짧은 드레스였습니다. 훗날 남편에게 들었는데 돈 엄청 썼더라고요. 다 늙어가지고 얘기하더군요.”
사실 그녀는 돈에 대해 신경 쓰고 살아온 적이 없었다. 남편도 가족들이 부족한 것 없이 살 수 있게 해주려 늘 최선을 다하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남편은 살아 계신가요?”
기자의 질문에 김봉화 씨는 순간 멈칫했다. 왼쪽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다 포물선을 그리며 손을 내렸다. 눈가가 촉촉해지기에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외국에 가 있어요.(웃음) LA에 몸 관리하느라고요, 늙어빠져가지고서는. 거기 사촌들이 다 있어요. 나는 어딜 가도 남편하고 같이 갔어요. 여자는 밖에 나가면 안 된다고 해서 친정에서도 못 자봤고요.”
어디든 함께 다녔던 남편은 환갑을 넘기고 몇 년 뒤 지병으로 세상과 작별했다. LA는 남편 살아생전 함께 다녀온 마지막 여행지.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상상하며 사는 것이 그녀가 선택한 속 편한 방법이리라.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준 존재가 봉화전이다. 홀로 남아 방황하는 그녀를 위해 아들딸들도 발 벗고 나선다. 매일 추억을 다듬고 고향 음식과 벗하며 하루하루 예쁜 모습 유지하며 살아가길 자식들은 바란다.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물었다.
“나? 죽고 싶지 않아요.(웃음) 시장에 갔을때 새로 나온 봄나물 보면 손님들에게 해주고 싶어요. 매일 여기에 나와서 메뉴 개발하고요.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제 인생이 아까워서 될 수 있으면 오래 살아야겠어요. 젊은 마음으로 살면서 아들딸하고 같이 지내고 싶습니다.”
연세를 물으니 “아직 백 살 되려면 한참은 남았다”며 한사코 나이 공개를 하지 않는 그녀. 과거를 추억하기보다 이제는 미래를 꿈꾸며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 마음 변하지 않기를 응원한다.
봉화전이 자랑하는 메뉴
깻잎전, 육전, 돼지고기전, 고추전
봉화전 인기 메뉴. 깻잎전과 고추전에는 소고기가 들어간다. 비결은 두껍지 않게 부치는 것. 평안도식 돼기고기전도 인기가 좋다. 삶은 돼기고기를 알맞은 크기로 잘라 사용한다. 원래 평안도 잔칫상에는 더 크게 꼬치에 꽂아서 내놓던 요리다.
평양식 온반
이북에서 잔칫날 먹는 대표 음식으로 원래는 꿩고기가 들어가야 하는데 구하기 쉽지 않아 소고기를 쓴다. 육수는 삶은 양지머리와 꼬리뼈를 우려서 낸다. 삶은 소고기를 손으로 찢은 후 소금, 참기름, 파, 마늘, 깨소금, 후춧가루로 간을 한다. 대접에 밥을 퍼 담고 그 위에 소고기와 알맞은 크기로 부쳐낸 녹두전, 지단을 순서대로 올린다. 여기에 맑게 끓인 뜨끈한 온반육수를 부어 먹는다.
올해는 꼭 살을 빼리라! 영양 만점 샐러드로 살도 빼고 건강도 챙기자. 샐러드라고 다 똑같지 않다. 개성 있는 샐러드 전문점을 소개한다.
아보카도 전문 샐러드바 아보
합정역에서 약 5분 거리에 위치한 아보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아보카도를 주재료로 사용한 샐러드바다. 전문 트레이너의 자문 아래 메뉴들을 개발해 필수영양소를 갖춘 건강식을 제공한다. 아보카도를 활용한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포인트. 바 형태의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 혼자 식사하기에도 부담이 없다.
위치 서울 마포구 양화로 78-9
영업시간 평일 8:00~21:00 토요일 10:00~16:00 일요일 휴무
대표 메뉴 트러플치킨볼 1만1000원, 토푸볼 1만1000원
지중해식 샐러드 위샐러듀 프레시
장수국가인 지중해 나라의 식문화를 모티브로 한 위샐러듀 프레시는 유기농 채소만을 사용한다. 천연 향신료를 사용해 재료 본연의 맛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건강까지 신경 썼다. 한상차림을 주문하면 샐러드 외에도 홈메이드 스프, 피타빵, 와인워터, 제철과일 등이 함께 나오며 모든 메뉴는 어플을 통해 배달 주문이 가능하다.
위치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31
영업시간 평일 11:00~21:00 토요일 11:00~21:00 일요일 휴무
대표 메뉴 징거 1만3500원, 솔로몬 1만1500원
숟가락으로 먹는 샐러드 왓어샐러드
채소와 토핑을 모두 잘게 잘라 한 숟가락에 모든 재료가 담길 수 있도록 만든 촙(chop) 샐러드를 선보인다. 대표 메뉴로 4가지의 채소에 닭가슴살, 아보카도, 사과 등의 토핑과 매장에서 직접 바질 패스토와 트러플오일을 섞어 만든 드레싱을 얹은 ‘왓어샐러드’와 그라브락스 숙성법을 이용해 탱탱한 연어의 식감을 맛볼 수 있는 ‘노르웨이 오메가’가 있다.
위치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100 지하 1층
영업시간 평일 8:00~20:00 주말 11:00~20:00
대표 메뉴 왓어샐러드 1만3200원, 노르웨이 오메가 1만4800원
건강으로 가득 채운 샐러드볼 배드파머스
가로수길에서 가장 핫한 샐러드 맛집이라는 배드파머스는 ‘생명연장’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자연 그대로의 음식 문화 만들기에 노력한다. 사람의 손을 최소한으로 거친 자연의 재료야 말로 가장 건강한 음식이라는 주장. 샐러드 한 그릇에 신선한 야채는 물론 양질의 단백질이 들어가 균형 잡힌 식사가 가능하다.
위치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4길 31
영업시간 월~목 11:30~20:00 금~토 11:30~21:30 일요일 11:30~20:00
대표 메뉴 배드파머스 1만2500원, 아보콥 1만3800원
때로 심란한 일상일 때가 있다. 그럴 때 조용히 혼자 떠나거나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가볍게 길을 나선다면 기분 전환이 될 것이다. 소소한 당일 여행으로 알맞은 도시 청주가 있다. 넓은 도시가 아니어서 발길 닿는 대로 하루를 여행하기 딱 좋은 곳이다. 강남고속터미널을 출발해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한다.
핫플레이스 성안길
청주 도심에 성안길이 있다. 청주의 명동이라 불리는 곳이다. 입구부터 시네마 거리다. 영사기 조형물과 영화 ‘박하사탕’의 철길, ‘국가대표’, ‘타이타닉’, ‘007’의 제임스 본드 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워진 조형물들이 있다. 배우들의 핸드프린팅과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과 레드카펫도 마련돼 있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또한 ‘짝패’를 비롯해 ‘베테랑’, ‘닥터스’ 등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주변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세 군데나 있다.
그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삼겹살 거리도 있다. 전국 유일의 삼겹살 특화거리인데 3월 3일 삼겹살 데이를 전후해 삼겹살 축제도 연다.
중앙공원
성안길 중간 지점쯤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중앙공원이 있다. 900년 수령의 은행나무와 임진왜란 당시의 전적비, 유형문화재 망선루, 척화비, 독립기념비 등이 가득하다.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장소다. 시민들의 쉼터로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공원으로 청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여름의 신록이나 가을의 단풍철엔 계절의 색감을 충분히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도심의 국보와 맛집
공원 골목에는 50여 년 전통의 가락국수집 공원당이 있다. 6000원짜리 가락국수를 비롯해 판모밀, 돈가스가 유명하다. 청주의 명물인 쫄쫄호떡 하나 사 먹으며 거리를 걷는 재미도 있다. 골목을 벗어나면 도심에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이 있으니 빠뜨릴 수 없다. 고려시대 때 용두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터에서 발견된 것이 ‘용두사지 철당간’이다. 국보 41호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전국에 철로 만들어진 당간은 공주 갑사의 철당간, 칠장사의 철당간, 그리고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세 군데뿐이다.
100년의 역사를 지닌 전국 최대의 육거리 시장
성안길을 따라 끝까지 쭉 가다 보면 우리나라 전통시장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역사가 깊은 육거리 시장이 있다.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넘친다. 지나가면서 한 가지씩 사 먹기도 하고 신기한 물건을 보고 물어보면 구수한 말투로 친절하게 알려준다. 품질도 좋고 인심도 후하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시장이다.
옛 연초제조창의 화려한 변신, 청주 문화산업단지
아주 오래전 청주에는 연초제조창이 있었다. 청주와 인근에 사는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져온, 청주를 대표하는 산업체였다. 1946년 11월 1일 건립된 옛 청주 연초제조창은 3000여 명이 넘는 근로자가 근무하던 곳이었다. 이곳이 창고의 원형을 유지한 채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되어 많은 이의 관심 속에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입구부터 켜켜이 세월의 연륜이 느껴진다. 아련하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담뱃잎을 보관하던 연초제조창이 지금은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동부창고로 변신한 것이다. 매해, 매월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지는데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그 주제들이 새롭고 따뜻하다. 현재 37동, 38동, 6동, 8동, 36동, 35동, 34동으로 되어 있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힐링의 공간이다.
청주 국립현대미술관
지난해 말 개관한 청주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 덕수궁, 서울에 이은 네 번째 분관이다.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첫 지방 분관이다. 개방 수장고와 기획전시실 등을 갖추고 미술품들이 전시, 보관되어 있다. 5층 기획전시실에서는 6월 16일까지 개관 특별전인 '별 헤는 날: 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열리고 있다.
수암골
수암골 마을은 10년 전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촬영지로 이름을 알렸다. '영광의 재인', ‘카인과 아벨' 등 유명 드라마와 영화 촬영이 이어지며 명소가 되었다. 원래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만들어진 달동네다. 또한 과거 청주 제일의 인쇄골목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인데, 지역 예술가들이 ‘추억의 골목길 여행’이라는 주제로 서민들의 생활을 담은 벽화를 그려 애환과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동네로 재탄생됐다. 높은 지대에 위치한 팔봉빵집 주변의 찻집이나 카페에서 다리를 쉬며 청주를 조망하면서 차 한 잔 할 수 있는 장소다.
그리운 도시, 청주
발길 닿는 대로 아늑한 청주 도심을 걷다 보면 저절로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택시기사의 순박한 이야기, 육거리 시장통 아주머니의 정감 어린 인심, 새롭게 만난 문화 예술의 면면들, 추억을 소환하는 골목길의 벽화, 소박한 맛집의 편안함, 조용한 찻집에 푹 파묻혀 일상을 이야기하고 세월을 이야기하던 시간들이 가슴을 훈훈하게 할 것이다. 청주는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주는 도시다.
올해는 전라도(全羅道)라는 명칭이 정해진 지 1000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인 1018년, 즉 고려 현종 9년에 중앙관제와 함께 지방행정제도를 정비했었다. 당시 전국을 5도 양계(서해도·교주도·양광도·전라도·경상도, 북계·동계)로 편제하면서 강남도(금강이남의 전북)와 해양도(전남, 광주)를 합쳐 전라도라 명했다. 해당 지역의 큰 고을이었던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이름을 딴 것이다.
나주는 고려 성종 2년(983)에 전국에 12목(牧)을 설치할 때 나주목(牧)이 된 이래 조선 말까지 900년 남짓한 기간 전남지역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다. 광주도 그때까지는 나주에 딸린 군에 불과하였다. 더구나 나주는 고려 태조 왕건이 주둔하고 있을 때 만난 두 번째 부인 장화왕후 오 씨의 고향이니 고려 2대 임금 혜종의 외가인 셈이다. 고려 현종 2년(1011) 거란군의 2차 침입 때는 왕이 나주로 피난을 가며 열흘 남짓 임시 수도가 되기도 했다.
그런 '천년 목사 고을'이기에 나주를 첫 답사지로 정하고 나주읍성(사적 제337호)을 가장 먼저 찾아봤다. 아쉽게도 성벽 대부분이 훼철되어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동·서·남·북 4개소에 있던 성문은 북문을 제외하고 모두 복원된 상태다. 읍성의 중심인 목사가 집무하던 관아는 아직 복원되지 못한 채 관아문 정수루(正綏樓)만 남아 있었다. 그 옆으로 나주목의 객사인 금성관(錦城館)과 목사의 살림집인 내아(內衙) 금학헌(金鶴軒)이 오롯하다.
나주목 객사와 금성관
객사(客舍)란 고려~조선시대 때 매월 초하루와 보름 고을의 관리와 선비들이 모여 망궐례(望闕禮)를 올리며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을 양쪽의 익사(翼舍)에서 유숙하게 하던 곳이다. 지방궁실로써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 또는 궐패(闕牌)를 모신 공간이기도 하다.
나주 객사의 정청은 금성관(錦城館,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호)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데 정문에서부터 외삼문, 중삼문, 내삼문의 3개 문을 거쳐 들어간다. 현재는 금성관 좌우로 날개처럼 이어진 건물인 동익헌과 서익헌 그리고 중삼문과 정문인 망화루가 복원되어 있어 과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금성관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주심포 양식 건물이다. 전국의 객사 건물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웅장하다. 조선 성종 6~10년(1475~1479) 나주목사 이 유인이 정문 망화루와 함께 건립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선조 36년(1603) 목사 김개에 의하여 중수되었고 이후 고종 때 다시 중수되었다. 일제강점기 들어 군청 건물로 사용되면서 그 원형이 심하게 파괴됐는데, 1963년과 1977년 두 차례에 걸쳐 완전 해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익헌과 서익헌은 2004~2008년에 복원하였는데 동익헌은 서익헌에 비해 훨씬 규모가 크다. 전라도 관찰사 이행(1403~1404년 재임)이 벽오헌(碧梧軒)이라 이름지어 정청과는 별도의 현판을 달았다. 동익헌에서는 요즘 각종 공연이나 발표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공덕비와 비석군
나주 객사 담장 안쪽 한편으로는 수십 기의 비석들이 모여 있다. 역대 목사(牧使)나 관찰사들의 공덕을 칭송하는 비석들이다.
방방곡곡 면(面) 단위에만 가도 공덕비 한두 개는 서 있으니 천년 목사 고을 나주에 세운 비석들이 만만치는 않을 터.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석이나 귀부의 생김생김이 재미있는 것도 있고, 칭송받는 사람의 이름이 낯익어 반가운(?) 비석도 제법 보인다.
나주 금성관은 아직 부분적인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며, 추가적인 복원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무료입장이며, 30분 남짓이면 차분하게 둘러볼 수 있다. 수시로 전통공연이나 음악회 등이 열리니 나주 탐방 시 가장 먼저 들려 볼 것을 권한다. 금성관 앞으로는 그 유명한 나주 곰탕거리로 서울까지 알려진 맛집들이 즐비하다.
1981년. 어렵게 마련한 임대료를 손에 쥐고 며칠 영동(지금의 강남)을 헤맨 김옥란(80) 씨의 마음은 다급했다. 실패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한 달만 참으면 평생 먹고산다”고 호언장담하던 점쟁이 말도 큰 위안이 되진 못했다. 몫이 좋은 가게 터는 가진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복덕방에서 추천해준 곳은 번화가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몇 년의 고생과 실패로 날이 선 직감은 ‘이만하면 됐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은 강남 빌딩숲 속 명물이 된 교보타워사거리 ‘원주추어탕’의 시작이었다.
원주추어탕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막내아들 이남수(49) 사장은 지금 자리에서의 개업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원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왔을 때 첫 3년은 가족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었다. 미아리에 첫 번째 가게를 차렸지만 가게 자리를 고르는 일도, 식당을 운영하는 일도, 모두 처음이었던 이들 가족에게 손님들의 반응은 냉정했다. 때문에 강남에서의 새로운 시작은 온 가족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집으로 헐레벌떡 뛰어왔죠. 아직도 생생합니다. 가게 문을 급하게 열었는데 식탁 바닥에 입 닦은 휴지와 나무젓가락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첫날부터 손님이 밀려들어 부모님이 그것들을 치울 겨를이 없었던 거죠. 미아리에서 가게를 차렸을 때 3년간 그렇게 많은 손님을 대해본 적 없었어요. 그날 부모님은 꽤 지쳐 보였어요. 하지만 입가의 미소는 떠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날부터 손님은 점점 더 늘어났어요.”
원주식 추어탕 서울에 보급한 원조
원주에서 온 이 가족의 가업이 식당이 된 사유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전후 경제발전 과정에서 많은 가족의 선택처럼 이들도 가난을 피하기 위해 1977년 서울행을 결정했다. 아직도 매일같이 출근해 재료를 살피고, 맛을 확인하는 김옥란 씨는 원주추어탕의 시작을 이렇게 설명한다.
“동네 앞집 아저씨가 미꾸라지 잡는 데 선수였어. 양재기 한가득 잡아온 날이면 고추장을 휘휘 풀어 야채와 함께 끓여 동네잔치를 벌였거든. 미꾸라지도 잘 잡고 음식도 맛있으니 주변에서 식당을 해봐라 했는데, 차리고 나서 꽤 잘됐어. 손님이 많은 날이면 가끔 나도 가서 돕곤 했는데, 한 손님이 서울에서도 해봐라 하는 얘기에 내가 차려봐야겠다 싶었어. 식당 주인도 돕겠다 하고. 그래서 미아리에 자릴 잡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가 엉뚱한 데 식당을 냈으니 잘될 리 없었지.”
당시 이웃이었던 원주의 추어탕 집은 현재까지도 성업 중이다. 물론 서울의 원주추어탕과의 교류도 여전해서 이남수 사장은 그곳을 아직까지 ‘큰집’이라고 부른다.
“미아리에서 장사를 시작했을 때 추어탕 한 그릇에 1200원이었어. 처음엔 재래식 요리법을 고집해서 식탁 앞에서 살아 있는 미꾸라지를 냄비에 넣었는데, 손님 옷에 국물이 튀고 난리도 아니었지. 3년간 고군분투하다 안 되고 빚낸 돈 다 떨어지기 전에 다시 원주로 내려가야겠다 싶었는데, 이대로 내려가기엔 그간의 고생이 너무 아까웠어. 그러다 그 시기에 영동에 가게들이 들어선다는 얘기에 거기서 다시 시작해보자 했던 거지.”
강남 개발 광풍 속에서 지켜온 전통
모자는 가게가 자리 잡았던 1981년 강남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1976년 준공된, 길 건너 제일생명 건물은 당시 그 지역이 ‘제일생명 사거리’로 불릴 정도로 존재감이 대단했고, 그 옆에는 영흥자동차학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거리에서 영동시장까지는 목재상, 골재상 등 건축과 관련한 각종 장비와 자재를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강남은 정부 주도 개발의 핵심에 있었고, 그 시기는 강남의 개발이 막 시작된 참이었다.
이제 당시의 흔적은 찾기 어려워졌다. 위용을 자랑하던 제일생명 빌딩이 철거되고 2003년 교보타워가 들어섰으니 다른 건물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고집스레 당시 모습을 간직한 곳이 있다. 바로 원주추어탕이 운영 중인 건물이다. 1974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돌아보면 당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강남 제비’의 제비집도 여전히 처마 밑에 그대로다.
그중 모자가 가장 아끼는 것 중 하나는 여전히 현역으로 가게 앞을 지키고 있는 간판이다. ‘원조 고유의 음식’이라고 씌어 있는 간판은 이 사장의 선대가 직접 다듬어 제작한 것이다. 지금 위치에 자리 잡고 나서 2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식당은 잘 운영됐다. 당시 건물에 4개의 점포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하나씩 인수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넓혀갔다. 그런데 한창 장사가 잘될 무렵 건물주가 부도가 나 건물이 은행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결국 무리를 해서 건물을 샀고, 원래 1층이었던 건물은 증축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누구도 못 말린 재료 고집
이남수 사장이 경영을 맡게 된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원래 볼링선수였던 그는 서울시 대표로도 활약했고 실업팀에 입단할 정도의 실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어머니 김옥란 씨에게는 배부른 직업으로 보이지 않았다.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가게로 와 도와달라고 했지. 식당일이 워낙 힘드니까. 처음엔 대를 이어 식당을 맡기겠다는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손님도 늘고 할 일이 많아지면서 의지하게 되더라고.”
그렇게 아들 셋은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첫째는 성남시 서현동에 ‘원주추어탕’을 차리면서 독립했고, 둘째는 인근에서 번듯한 주점을 차렸다. 그리고 자연스레 막내인 이 사장이 원주추어탕을 이어받게 됐다. 어머니 김 씨는 이 사장이 가게에 합류했을 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았다고 기억했다.
“의욕이 넘쳤어. 나는 그동안 잘해왔으니까 잘해온 방식을 고수하고 싶은데, 자꾸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자는 거야. 처음엔 불안해서 혼내기도 하고 말리기도 했는데, 지내다 보니 제대로 된 의견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거지. 그래서 지금은 뭘 하자고 하면 잘 듣는 편이야.”
새로운 시도를 한 메뉴 중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메기불고기. 한 가지 메뉴로 사랑받는 맛집이 메뉴를 추가한다는 것은 꽤 부담스런 일이었다. 하지만 이 사장의 고집으로 탄생한 메기불고기는 이제 대표 메뉴가 됐다.
이 사장의 또 다른 고집은 추어탕의 가장 기본이 되는 미꾸라지와 고추장에 관한 것. 특히 손님에게 좋은 미꾸라지를 내놓는 일은 그의 평생 숙제 중 하나다.
“원래 미꾸리로 불리는 토종 미꾸라지를 썼어요. 몸통이 동그란 모양이라 동글이라고도 불리는데 성장 속도가 느려 양식에 적합하지 않아요. 또 자연산은 당연히 수급이 어렵죠. 그러다 보니 넙죽이라 불리는 중국산 미꾸라지가 대세가 됐죠. 저희도 어쩔 수 없이 그걸 쓰지만, 지금 동글이 양식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성공해서 더 맛있는 추어탕을 손님에게 내놓는 것이 꿈이에요.”
구할 길이 없어 자연산 미꾸라지를 1년 내내 재료로 쓸 수는 없지만 소량이라도 매수가 가능한 매년 7월과 8월에는 자연산을 확보해 특별 메뉴로 내놓는다. 단골들은 절대 놓치지 않는 연례행사다.
“다른 지역 추어탕과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고추장 역시 제가 신경 쓰는 재료예요. 3~4년에 한 번씩 담그던 고추장을 이젠 매년 만들고 있어요. 많이 만들어놔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제가 욕심을 부려요(요즘 손님용으로 사용 중인 고추장은 16년이나 묵은 것이다). 고추장 담글 때 어머니는 쉬셔도 된다 할 정도로 이제는 자신 있어요. 간장은 씨간장을 다양하게 만들어가면서 이런저런 실험을 하고 있어요. 고객들 입맛을 완벽하게 만족시켜줄 간장을 찾기 위해 계속 시도를 해보는 거죠.”
자리를 잘 잡아서 맛집이 되고 노포(老鋪)가 될 수 있었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강남은 수많은 식당이 생겼다 사라지는 중심 상권의 대표 지역이다. 원주추어탕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맛에 대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에는 미꾸라지가 난임부부에게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포장해가는 고객도 늘었다. 난임시술로 유명한 주변 병원의 환자들 사이에서 퍼진 속설 탓인지 ‘목적을 갖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실제로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간증과 함께 감사인사를 전하는 부부가 찾아오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다고 한다.
3대로 이어진 ‘고유의 음식’
이 사장에게는 최근 가슴 벅찬 사건이 하나 있었다. 올해 아들이 원주추어탕 3대 사장이 되겠다며 식품공학과를 선택해 대학을 갔기 때문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에 그에게는 ‘사건’으로 기억된다.
“제게는 그런 뜻을 내비친 적 없었거든요. 그런데 여동생하고 아이들끼리는 자주 이야기했던 모양이에요. 식당일을 하고 싶다고 말이죠. 어릴 때부터 식당에 자주 와 일을 돕곤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어요. 요즘엔 셰프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고, 또 대견하기도 해서 반대하진 않았습니다.”
입학원서 내는 날 할머니와 아버지, 아들 3대는 특별한 사진을 찍었다. 장소는 학교가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식당에 내건 ‘원조 고유의 음식’ 간판 앞에서였다. 이 사장은 이 사진을 계산대 앞 잘 보이는 곳에 세워뒀다.
“아이가 대를 이어준다고 하니 저도 꿈이 생겼어요. 좋은 식당 주인을 만들기 위해 제가 알아놓은 주변 식품기업, 제조시설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요. 본인은 힘들겠지만.(웃음) 저희 부모님은 가족을 위해 이 식당을 만드셨고, 제가 물려받은 다음부터는 모든 일을 손님을 위해서만 해왔어요. 하지만 아이가 이 식당을 3대째 운영하게 될 땐 사회를 위한 주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주변과 세상을 보살필 수 있는 원주추어탕이 되길 바랍니다.”
양고기가 생소한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양고기 맛을 보기가 어렵다. 양꼬치가 그나마 잘 알려져 있지만 양 특유의 누린내를 감추기 위해 잔뜩 뿌려진 향신료로 인해 본연의 맛을 느끼기엔 아쉽다. 양고기의 매력에 빠져보고 싶다면 ‘양빠’를 추천한다.
누린내, 양의 나이에 달렸다
압구정로데오역에서 걸어서 5분, 냉동하지 않은 양고기를 호주에서 수입, 판매하는 ‘양빠’에선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신선한 양고기를 맛볼 수 있다. 특히 10개월 미만의 양만 취급하는데 이는 양의 나이가 고기의 냄새와 식감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양은 생후 12개월 미만인 ‘램(lamb)’과 생후 12~20개월의 ‘머튼(mutton)’으로 나뉘는데 생후 1년이 넘으면 육질이 질겨지고 지방에 카프릴산, 페라르곤산이 쌓이게 된다. 이런 상태가 되면 많은 사람이 거부감을 느끼는 누린내가 나는 것이다. 따라서 램을 사용하는 이곳에선 냄새에 부담 없이 양고기를 즐길 수 있다.
양고기를 맛있게 먹고 싶다면
첫째, 어느 부위인지 알고 먹자. ‘양빠’에선 숄더랙(2만5000원)과 알등심(2만5000원) 두 가지 메인 메뉴와 더불어 프렌치랙(3만5000원)을 선보이고 있다. 모든 고기가 부위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듯이 양고기도 마찬가지다. 양의 목 부위로 올라가는 상단 쪽 갈비를 ‘숄더랙(Shoulder Rack)’, 등 쪽에 자리 잡은 갈비를 ‘랙(Rack)’이라 하는데 질기고 맛없는 부위를 제거한 ‘랙’을 ‘프렌치랙(Frenched Rack)’이라고 한다. 숄더랙은 양의 부위 중 가장 담백하고 쫄깃해 구이용으로 인기 있다. 반면 진한 고기의 풍미를 맛보고 싶다면 프렌치랙을 추천한다. 프렌치랙은 소고기 못지않게 부드럽기 때문에 치아가 좋지 않은 시니어에게도 부담이 없다. 다만 많이 먹을 경우 느끼할 수 있다. 알등심은 양의 목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숄더랙보단 부드럽지만 덜 쫄깃하다. 알등심을 취급하는 곳은 많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부위에 도전하고 싶다면 알등심을 먹어보는 것도 좋겠다.
둘째, 잘 굽자. 양고기는 너무 익히면 질겨지고 퍽퍽해지기 때문에 핏기가 어느 정도 있을 때 먹어야 가장 부드럽게 먹을 수 있다. 겉면이 노릇노릇해지면(1분~1분 30초) 후면도 동일하게 구워주고 가위로 뼈와 살을 분리해준다. 크기는 3~4cm 크기로 두껍게 잘라야 쫄깃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양빠’ 최윤정 대표는 “분리한 갈빗대를 불판 위에 바싹 익힌 후 냅킨으로 잡고 뜯어먹으면 하나의 별미로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셋째, 느끼할 땐 간장소스에 찍어먹자. 양고기 본연의 맛을 위해선 소금에 찍어먹는 게 가장 좋지만 자칫 느끼해질 수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양빠’에서 특별히 준비한 간장소스가 있다. 파와 고추를 간장소스에 원하는 만큼 넣고 찍어먹으면 짭짤한 간장의 맛과 고추의 매콤한 맛이 느끼함을 잡아준다. 자매품(?)으로 양배추와 오이피클도 있는데 이 또한 ‘양빠’에서 직접 담근다.
맛과 분위기 모두 잡은 ‘양빠’
예약제로 운영되는 양빠는 맛뿐만 아니라 멋에도 신경 썼다. 음식점에 들어가면 재즈 음악이 귀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한쪽에 놓여 있는 피아노와 오래된 TV 장식이 은은한 조명과 함께 분위기를 더한다. 최 대표는 “지인들과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 했다”며 “식사 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했다”고 말했다.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51길 40
예약 및 문의 02-515-6909
운영시간 18:00~01:00
입안 가득 퍼지는 바다의 향과 달큼하면서도 짭짤한 맛, 마지막에 느껴지는 쌉싸래한 여운까지. 멍게는 노화를 방지하는 타우린을 함유하고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켜주기 때문에 당뇨병에도 좋다. 특유의 비린내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멍게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아직 잘 모르겠다면 11년째 멍게 요리를 하며 이름을 알린 ‘목포명가’에서 그 진수를 확인해보자.
강남구 삼성동, 도심공항터미널 앞으로 쭉 펼쳐진 왕복 6차선 도로를 건너면 크고 작은 음식점이 모여 있는 먹자골목을 만난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피니 파란색 간판이 인상적인 ‘목포명가’ 건물이 눈에 띈다. 안으로 들어가자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한 ‘인증샷’ 액자가 맛집임을 증명하듯 벽에 걸려 있다. 이곳에서 음식을 시키면 본 메뉴가 나오기 전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밑반찬들이 제공된다. 멸치볶음, 어리굴젓, 홍어무침 등에서 목포가 고향인 주인의 손맛이 진하게 느껴진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멍게 껍질과 함께 끓여져 나온 미역국 또한 시원하고 맛이 깊다. ‘목포명가’에서 가장 사랑받는 메뉴는 멍게비빔밥(1만원)과 물회(1만5000원). 두 메뉴의 공통점은 멍게가 들어간다는 데 있다.
‘목포명가’는 멍게 맛이 가장 좋다는 5월에 살이 잘 오른 3년산 통영 멍게만 받아 사용한다. 잘게 다진 멍게 살에 된장과 고춧가루로 양념한 ‘멍게소스’는 이 집만의 특별한 요리 비법이다. 신선한 야채에 아낌없이 올린 멍게소스가 멍게비빔밥의 맛을 한층 풍부하게 만든다. 최정임 사장은 “비빔밥에 초장을 많이 넣으면 단맛만 강해져요. 저는 초장은 살짝 넣고 멍게소스만으로 감칠맛을 내지요. 돌김에 싸 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라며 자신 있게 멍게비빔밥을 추천한다. 물회는 바지락과 야채로 기본 육수를 내고 초장, 식초, 설탕을 가미한다. 마지막으로 멍게소스를 한 숟가락 넣어주면 ‘목포명가’만의 멍게 향이 은은하게 나는 물회 육수가 완성된다. 여기에 싱싱한 활어회, 문어, 해삼 등 각종 해산물과 함께 메밀국수가 들어가니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가을 바다의 주인공 전어의 귀환
제법 선선해진 가을바람과 함께 바다에서 군침 도는 풍어의 소식이 들려온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가을 전어 머리에는 참깨가 서 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어는 가을에 꼭 먹어봐야 할 별미다. 뼈째 먹으면 칼슘을 다량 섭취할 수 있고 DHA와 EPA 등 불포화지방산이 혈액을 맑게 해줘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
‘목포명가’도 가을을 맞이해 계절 메뉴로 전어세트(5만5000원)를 판매한다. 매일 아침 가락수산시장에서 공수해온 전어만 사용하기 때문에 신선한 전어요리를 맛볼 수 있다.
주소 서울 강남구 삼성로100길 23-22
예약 및 문의 02-558-9412
운영시간 11:30~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