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분량의 문제다. 쓸 수 있는 만큼, 쓰고 싶은 만큼 쓰면 못 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문제는 정해진 분량만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원고지 10매 분량을 써야 한다고 가정하면, 어떤 이는 원고지 10매가 너무 많아 부담스러울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하고 싶은 말에 비해 분량이 너무 적어 글을 쓰기 어려울 수 있다. 주제에 따라 어떤 내용은 길게 쓰는 게 쉬울 수 있고, 또 어떤 내용은 짧게 쓰고 싶으나 분량에 맞춰 써야 한다.
분량과 관련하여 글 쓰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많이 쓰고 줄이는 것이다. 쓰고 싶은 만큼 몽땅 쓰고 정해진 분량이 될 때까지 줄인다. 다른 하나는 쓸 수 있을 만큼 쓰고 조금씩 늘리는 것이다.
요약으로 쓰기
우선 많이 쓰고 줄이는 방법부터 알아보자. 많이 쓰고 줄이는 걸 ‘요약’이라고 한다. 요약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쓸거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글쓰기 강의를 하며 만나본 사람 중에는 ‘내가 안 써서 그렇지 쓰기로 마음만 먹으면 책 열 권 분량도 쓸 수 있다’고 자신하는 분들이 있다. 이건 빈말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분은 막상 쓰기 시작하면 거미가 엉덩이에서 실을 뽑아 그물을 치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글을 써 내려간다. 하지만 이렇게 쓸거리가 풍부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할 필요 없다. 자기 안에 쓸거리가 없는 사람은 밖에서 찾으면 된다. 자료 검색을 통해 쓸거리를 끌어모으면 되는 것이다. 자기 안에 쓸거리가 있든, 검색으로 그러모았든, 다음 할 일은 요약이다. 그러니까 쓸거리 아니면 검색 능력, 그리고 요약하는 역량만 있으면 줄이기로 글을 쓸 수 있다.
요약하는 게 뭐 대수냐고 큰소리치는 분들이 간혹 있다. 학교 다닐 적 선생님 말씀 받아 적고, 교과서나 참고서의 중요한 곳에 밑줄 긋는 등 늘 하던 게 요약 아니냐고 말이다. 맞다. 요약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많이 한 작업 중 하나다. 가장 단순한 요약은 발췌다. 바로 밑줄 긋기와 별표 치기. 다음은 불필요한 걸 버리는 요약이 있다. 중복되거나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걸 버리고 남는 것으로 요약하는 방식이다. 버리는 요약 방식과 반대로 중요한 걸 뽑아내는 요약도 있다. 글을 읽을 때도 어떤 사람은 불필요한 걸 삭제하며 읽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중요한 걸 추출하면서 읽는다. 가장 어려운 요약은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다. 주제를 파악한다는 건 글의 배경과 맥락을 통해 글쓴이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이처럼 요약에도 발췌하기, 버리기, 뽑아내기, 주제 찾기 등의 방식이 있다.
손쉬운 요약 요령
청와대에 들어간 2000년, 상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글쓰기는 요약의 역순이다. 요약이 줄이기라면 글쓰기는 늘리기다. 잘 줄이는 사람이 잘 늘릴 수 있다. 군대에서 총기 분해를 잘하는 사람이 조립도 잘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글을 잘 쓰려면 요약 능력부터 키워라.” 그러면서 칼럼을 서른 개 뽑아오라고 한 후 다섯 가지 숙제를 주었다. 첫째, 각 칼럼의 가장 중요한 한 문장에 밑줄을 그어라. 둘째, 각 칼럼을 세 문장 이내로 압축해라. 셋째, 각 칼럼에 중간 제목을 달아라. 넷째, 각 칼럼의 주제문을 파악해라. 다섯째, 파악한 주제문으로 글을 써라. 이렇게 다섯 단계의 요약 훈련을 한 후 글쓰기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자, 이렇게 요약 능력을 키웠다면 이제 실전 요약 글쓰기를 할 차례다. 요약 글쓰기 1단계는 쓸 수 있는 만큼 쓰는 것이다. 2단계는 써둔 것과 관련 있는 내용을 이곳저곳에서 찾아 붙인다. 이때 최대한 양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글쓰기는 ‘생각하기’가 아니라 ‘행동하기’다. 행동으로 양을 늘려라. 양을 늘리는 데는 재능이 필요 없다. 늘어난 양이 재능으로 둔갑하도록 하라. 양은 많을수록, 주제와 관련성이 높을수록, 흔하지 않은 최신 것일수록, 무엇보다 정확하고 믿을 만한 것일수록 바람직하다. 3단계는 요약하는 것이다. 4단계는 요약한 것을 비슷한 내용끼리 분류한다. 5단계는 분류한 덩어리 하나하나를 갖고 글을 쓴다. 6단계는 덩어리를 배열한다.
첫 문장으로 쓰기
많이 써서 줄이는 글쓰기가 있다면, 적게 써서 늘리는 방식도 있다. 이렇게 늘려서 쓰는 방식은 다시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첫 문장부터 쓰기다. 첫 문장을 쓴 후 계속 이어나가는 글쓰기다. 글을 써본 사람은 알듯이, 좋은 첫 문장이 떠오르면 그 문장이 다음 문장을 물고 오고, 그다음 문장은 또 다른 문장을 낳으면서 줄줄이 글이 써진다. 문제는 첫 문장을 떠올리는 일이다. 글에서 첫 번째 문장을 찾는 일은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에서 실마리를 찾는 일과 같다.
내가 처음 글을 쓸 때 하던 방식이 있다. 신문 칼럼 100개에서 첫 문장만 긁어다 빈 문서에 붙인 후, 유형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그랬더니 첫 문장으로 쓰인 내용이 10여 개 남짓으로 정리됐다. 질문으로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을 인용한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 사고나 최신 트렌드 등을 소개한다, 무언가의 정의를 내린다, 필자가 겪은 일화나 경험을 언급한다, 글의 주제를 밝힌다 등등. 첫 문장은 짧으면서도 전체 내용을 암시하거나 함축해야 한다. 또 그러면서도 글의 내용에 관해 궁금증을 자아내야 한다. 글쓰기는 이런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연결하는 일이다. 좋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생각나면 글을 상당 부분 완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 작가 조앤 디디온이 그랬다. “첫 문장은 대단한 문장일 필요가 없다. 조잡한 문장이어도 좋다. 일단 첫 문장을 써라. 그 문장의 마침표를 찍기 무섭게 다음 문장을 써라. 그러면 된다.” 나는 여기에 한마디를 보태고 싶다. 글을 다 쓴 후엔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 반드시 첫 문장을 손봐라. 그만큼 첫 문장은 중요하다.
보태기로 쓰기
적게 써서 늘리는 두 번째 방법은 야금야금 보태기다. 눈덩이 굴리듯 조금씩 살을 붙여나가는 식이다. 이 방식은 처음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으나, 계속 해나가면 속도가 붙는다는 장점이 있다. 나는 이 방식으로 글을 쓸 때는 노트북 화면 정중앙에 내가 써야 할 문서를 갖다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침에 들어갔을 땐 아무 생각도 안 나다가 오후에 들어가면 불현듯 떠오른다. 길을 걷다가, 차를 마시다가도 보탤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보태기로 글을 쓸 때 중요한 건 몰입이다. 써야 할 주제에 몰입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 주제에 관한 책을 읽고, 유튜브 영상을 보고, 누군가를 만났을 때도 이 주제에 관해 말해본다. 그러다 보면 불쑥불쑥 보탤 내용이 추가된다.
먼저 아무거나 생각나는 것으로 글쓰기에 착수한다. 이렇게 시동을 걸어놓으면 우리 뇌는 여기에 살을 붙이고 여백을 채우려고 힘을 쓴다. 이를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한다. 러시아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이 동네 식당에 갔는데, 종업원들이 계산이 끝난 주문 내용은 잘 기억하지 못했지만 아직 서빙하지 않은 주문 내용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처럼 우리 뇌는 끝나지 않거나 진행하고 있는 임무는 그것이 끝날 때까지 잊지 않고 기억한다. 보태 쓰기는 이런 뇌의 특징을 활용하는 글쓰기인 셈이다.
정리하면 보태기로 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글을 쓰는 시간과 시간 사이에 인터벌을 두어 머릿속에 고여 있던 추가할 내용이 그 시간 동안 숙성 발효되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읽기와 듣기 등으로 외부에서 자극을 줌으로써 보탤 내용을 떠올리는 것이다.
문단으로 쓰기
적게 써서 늘리는 세 번째 방법은 문단 쓰기다. 문단은 하나의 짧은 글이다. 글쓰기는 어휘에서 시작해 문장으로, 문장이 모여 문단으로, 문단이 쌓여서 완성된다. 긴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문단 수준의 짧은 글을 쓰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한 쪽짜리 글을 쓰려면 네댓 개의 문단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한 쪽을 쓴다고 생각하지 말고 각각의 짧은 글, 문단 네댓 개를 쓴 후, 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자는 얘기다. 네댓 개의 글을 생각나는 대로 쓴 후 순서를 부여하면 된다. 통상 우리는 글을 쓸 때 다음에 나올 내용까지 염두에 둔다. 그래서 글쓰기가 힘들다. 그러니 짧은 글 하나만 완성하자는 생각으로 문단을 만들자.
단 문단은 갖춰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문단은 하나의 완성된 글이어야 한다. 그 문단만 따로 떼어냈을 때 홀로서기가 가능한 글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문단의 완결성’이라고 한다. 둘째, 문단은 하나의 메시지를 갖고 있어, 제목을 붙일 수 있어야 한다. 그 하나의 메시지와 관련 없는 내용은 모두 빼야 하며, 한 문단에 메시지가 두 개면 두 문단으로 쪼개야 한다. 그러니까 한 문단은 하나의 주제를 향해야 하고, 모든 문장이 그 주제와 일맥상통해야 한다. 이를 ‘문단의 통일성’이라고 한다. 셋째, 문단 안에 있는 문장들의 관계가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를 ‘문단의 연결성’이라고 한다. 나는 주로 주제 문장을 문단의 맨 앞에 배치한다. 결론부터 내놓고 다음 문장을 쓴다. 두괄식으로 쓰는 것이다. 그게 쓰기도 쉽고, 읽기도 편하다.
개별 문단을 다 쓰고 나면 문단과 문단을 연결해야 하는데 시간 순이나 공간 순으로 할 수도 있고, 인과관계 순으로 할 수도 있다. 개연성 있게, 논리적으로 연결하면 된다. 다만 비슷한 내용의 문단이 중복되거나, 문단과 문단 사이에 내용 비약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람마다 짧게 쓰기가 편한 사람이 있고, 길게 쓰는 게 쉬운 사람이 있다. 나는 길게 쓰기가 어렵다. 아마도 머릿속에 쓸 말이 많지 않고 자료를 찾는 데도 서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경우엔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짧게 쓰기가 어려운 사람은 요약 훈련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와 함께 시나 광고 카피 등 함축적 문장과 친해지길 권한다.
아무튼 글을 쓰려는 사람은 반드시 두 가지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많이 써서 줄이거나, 조금 써서 늘리거나. 이 두 가지만 할 수 있다면 못 쓸 글은 없다.
베이비붐 세대, X세대, MZ세대 등 직장 내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요즘, 세대 갈등 이슈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한 대립 양상은 기업 문화를 흩트리고 업무 성과를 저해하는 등 악영향을 불러오곤 한다. 기업에서는 세대 간 화합과 소통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최근 각광받는 솔루션 중 하나가 ‘리버스 멘토링’이다. 단순히 나이와 직급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세대 간 고정관념이나 생활방식을 뒤집어보는 기회로도 작용하고 있다. 사진 제공 및 도움말 금천구청
‘불치하문’(不恥下問)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배움에는 나이가 따로 없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기존의 ‘멘토링’과 반대 개념인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 역멘토링) 또한 멘토(시니어)와 멘티(주니어)의 역할을 바꿔봄으로써 세대 간 학습과 이해를 도모하는 방식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고령화 흐름에 따라 리버스 멘토링의 필요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내 한 논문(‘기업 내 세대 교류의 가능성: 국내외 리버스 멘토링 프로그램 도입 및 성공요소 사례연구’, 2021)에서는 “한국 사회가 고령사회에 진입하며 노동 현장에서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상황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리버스 멘토링이 노동 현장에서 고령 세대와 신세대를 연결하는 새로운 도구로 부상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단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측면뿐 아니라 일자리 다양성, 삶에 대한 가치관, 글로벌 감각 등 신세대의 감각과 관점을 접하고 배우는 측면까지 포괄한다. 이를 통해 기업 내 임직원과 각 세대가 서로 분리되거나 소외되지 않고 조직 내에서 적극적으로 통합되는 효과가 기대된다”며 리버스 멘토링의 장점과 효과를 내다봤다.
시니어도 원하는 리버스 멘토링
이러한 이점들에 대해서는 기성세대도 인지하고 리버스 멘토링을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 채용 포털 ‘인크루트’가 2021년 직장인 102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베이비붐 세대 및 X세대 등 기성세대 직장인의 92.4%가 ‘회사에 리버스 멘토링 제도가 도입된다면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28.9%), ‘세대 간 소통할 수단이 필요해서’(25.3%) 등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기업 내 리버스 멘토링의 시초로 알려진 건 글로벌 제조사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GE의 잭 웰치 회장이 젊은 엔지니어에게 인터넷의 중요성에 대해 배우면서, 500명 넘는 고위 간부들에게 젊은 사원과 1대1로 팀을 이뤄 리버스 멘토링을 실천한 사례다. 이러한 일화가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을 통해 전파되며 IBM, 구찌, 에스티로더 등 해외 유수 기업에서도 리버스 멘토링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도 2010년대 후반부터 상당수 기업이 이러한 효과에 착안해 관련 프로그램을 시도해나가고 있다. 해외와 비교해 나이와 연공서열 중심으로 수직적인 구조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는 좀 더 수평적이고 탈권위적인 조직문화 개선을 목표로 진행되는 상황이다.
최근 매스컴을 통해 공공기관 및 기업 등에서 조직 내 ‘리버스 멘토링’ 사례가 알려지고 있다. 그 예로 서울에서는 금천구와 강서구, 지방에서는 안양시·포천시·제천시 등이 있고, 한국해양공사·경기도성남교육지원청·경기주택도시공사 및 삼성생명·KB라이프생명·유진그룹·동양 등이 리버스 멘토링을 실천했다. 특히 정부 조직인 인사혁신처와 법제처는 조직 내 기관장을 포함한 국·과장급 이상 간부들과 MZ세대 공무원들이 소통하는 ‘역으로 조언하기’(리버스 멘토링) 프로그램을 수년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조직은 기존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지난해 최초로 기관 간 리버스 멘토링을 위한 ‘거꾸로 학교’를 시행했다. 이는 후배 공무원이 다른 기관 선배 공무원의 멘토가 되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형식적으로는 상하관계를 역전한다고 하지만, 젊은 세대의 솔직한 생각을 기성세대에게 전달하는 것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이러한 부담을 덜기 위해 직접적인 연관성이 적은 타 기관 선후배 간 역멘토링을 진행함으로써 더욱 허물없는 교류를 꾀한 것이다.
경직된 조직문화 풀어주는 윤활유 역할 톡톡히
올해 초 금천구는 국장급 공무원(4급)과 과장급 공무원(5급) 등을 대상으로 ‘리버스 멘토링’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세대 간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와 수평적인 업무 환경을 조성해 업무 효율과 성과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진행됐다. 앞서 금천구는 당해 행정혁신 과제 중 하나로 탄소배출 절감을 위한 ‘종이 없는 회의’를 도입했다. 이에 주요 회의 자료를 종이에서 전자 문서로 대체하면서 태블릿 PC를 도입했는데, 이러한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간부 공무원을 위한 적응 교육 차원에서 리버스 멘토링을 활용하게 됐단다.
프로그램을 기획‧담당한 금천구 기획예산과 조성익 주무관은 “종이 없는 회의를 실현하려면 태블릿 PC 사용이 필수였다. 하지만 최신 디지털 장비를 도입하는 데 조직 구성원, 특히 간부 공무원의 거부감이 상당했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우려와 반감을 넘어설 방법이 필요했다”며 리버스 멘토링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태블릿 PC 사용에 익숙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거리낌 없는 신규 직원들(7급 이하 직원 7명)이 모였다. 이들 리버스 멘토끼리 여러 상황을 가정하여 운영 방안을 마련한 후, 간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리버스 멘토링을 실행했다.
조 주무관은 “태블릿 PC 사용 능력은 간부 공무원 간에도 개인 편차가 존재했다. 그러나 단순히 디지털 기기의 사용 방법을 교육하는 것을 넘어 종이 없는 회의라는 정책을 수용하는 측면에서 멘토-멘티 간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며 “간부 공무원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리버스 멘토링이 긍정적 수단이 됐다. 아울러 상명하복 관계라는 관료제의 분위기를 탈피하고, 평등한 분위기에서 새로운 지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리버스 멘토링은 경직된 조직문화를 유연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천구 멘토·멘티의 후일담 “리버스 멘토링 직접 해보니”
“당시 일을 시작한 지 고작 6개월밖에 안 된 때였습니다. 새내기 어린 공무원이 간부급 공무원을 가르치는 상황은 이례적이기에, 멘토링 전 긴장을 꽤나 했습니다. ‘시간도 없는데 뭐하러 이런 걸 하냐’라는 분위기이면 어쩌나 걱정도 앞섰습니다. 그런데 우려와 달리 멘티로 나온 국장님들은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교육에 응해주셨습니다. 알려드리는 것 외의 기능에 대해서도 물어보시면서 적극적으로 배움에 임하셨습니다. 그동안 선배들에게 물어가며 일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완전히 뒤바뀐 위치에서 국장님들의 질문에 답해드린 경험이 신기하고 새로웠습니다. 이후 진행되는 회의에서는 국장님들이 적극적으로 태블릿 PC를 활용하려는 의지도 자주 보여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조금 뿌듯함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익히 들어왔던 경직된 공직사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많이 보았습니다. 시니어 멘티들의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 적극적인 참여가 뒤따른다면 오랜 시간 굳어졌던 체계도 바꿀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행정은 법령과 규칙에 따라 공정하고 정확하게 추진해야 하므로, 역할과 기능상 경직성을 띠게 됩니다. 더욱이 공직사회는 연공서열로 이루어진 큰 조직이라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곤 합니다. 하지만 민간의 변화에 따라 행정에도 변화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공직사회에도 사회 변화에 맞추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졌습니다. 그동안 우리 구에서는 사회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행정 혁신을 일상적으로 수용하도록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중 한 사례가 ‘리버스 멘토링’입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선배’의 지식이라도 모두 유용한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후배’가 아는 것이 없다고 외면하기엔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 중 값진 것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연령이나 직급과 무관하게 조직 구성원은 누구에게든 배우고 공유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과 경험을 나눌 수 있도록 리버스 멘토링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겠습니다.”
지구 서른 바퀴 넘는 길을 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여행가 김찬삼은 ‘동양의 마르코 폴로’라 불릴 만큼 한국 해외여행의 선구자라고 일컫는다. 1958년부터 시작한 세계여행으로 그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160여 개국 1000여 개 도시에 이른다. 당시는 해외에 나가는 것이 어려웠던 때일 뿐 아니라 세계여행이란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인 걸 생각하면 가히 혁명적이기까지 하다. 예나 지금이나 두말이 필요 없는 독보적인 여행의 아이콘이다. 하늘도시 영종에 그가 있다.
여신(旅神)이 내게 있어 내게 무슨 특혜를 베풀어준 것은 아니지만 매양 새로운 것을 보는 기쁨이 둘도 없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런 수난은 인간 수업에 있어서 고귀한 경험들이었습니다. -김찬삼의 ‘끝없는 여로’ 18쪽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을 기억하다
여행가 김찬삼 교수(1926~2003)는 인천인이며 세계인이다. 황해도에서 태어났지만 본적인 인천시 중구에서 성장하고 생을 마쳤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 지리 교사와 대학에서 지리학과 교수를 지내면서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죽은 지식”이라며 세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열망을 키웠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김찬삼 교수의 여행 이야기를 인천의 하늘도시 영종에서 만날 수 있다.
바다와 공원이 어우러진 영종역사관은 봄을 코앞에 둔 계절에 여행가의 기획전시를 보여주는 중이다. 영종역사관 3층에서 열리는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 특별기획전’은 3부로 나뉘어 전시된다.
1부는 ‘세계를 꿈꾸다’ 편으로 김찬삼 교수가 세계인의 꿈을 키웠던 인천에서의 성장 과정을 담았다. 학자와 저술가로서의 면모와 여행가로서 세계를 향한 도전 정신이 피부로 느껴진다. 2부는 ‘한국 최초의 세계여행가’ 편. 세계여행의 경로와 여정이 담긴 기록들을 귀한 자료들과 함께 소개했다. 세계일주의 첫 여행지 알래스카를 시작으로 40여 년 동안의 여행 이야기가 펼쳐진다. 3부는 ‘만인의 스승 김찬삼’으로 세계의 현장을 바탕으로 교육자로서 직접 보고 느낀 여정을 보여준다. 또한 그가 성장해온 인천과 후반기의 안식처였던 영종과 영종인으로서의 인연을 조명했다.
전시품 중 김 교수와 늘 함께했던 낡은 배낭과 모자와 신발은 특히 보는 이들에게 여행을 향한 강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마르코 폴로와 슈바이처를 사랑한 그는 여정 중에 슈바이처 박사도 만났다. 여행 중 굶주리다시피 해도 무한한 힘이 솟구치는 것은 매양 새로운 나라 사람들과 자연을 보는 기쁨이 둘도 없는 영양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출간되었던 책과 포스터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하다. 카메라와 낡은 지도, 꼼꼼히 기록한 여행일지와 수만 장의 슬라이드 필름. 그중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몰았던 빨간색 딱정벌레차도 인상적이다. 1970년 독일 여행 중 독일인 친구에게 선물받았다는 폭스바겐이다. 또한 지도가방은 지도를 고정하는 형태의 캔버스 가방으로, 아크릴 덮개가 있어 비나 눈이 오는 경우에도 지도를 확인할 수 있다. 여행가에게 지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1960년대 중남미와 아프리카 여행 전에 친구에게 맡긴 유서는 여행가로서, 가장으로서 진중하다. “내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고난도 기쁘게 받으련다. 설령 내가 무슨 사고로 죽더라도 서러워 말고, 운명이라고 체념하고 부모에게 위로하여 줄 것이며 애들의 교육을 잘 부탁한다.”
그는 말한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인간 수업에 있어 여행처럼 좋은 것은 없다고 보인다. 세계 언어는 2000여 종, 이를 다 배우는 것보다는 소박하고 어진 미소가 무엇보다도 고귀한 것이 아닐까.” 전시장의 모든 사진마다 밝은 얼굴로 환하게 웃는 김찬삼 교수는 진정 세계의 나그네였다. (전시 기간 5월 31일까지)
하늘도시 영종과 김찬삼
우리에게 영종도는 듣기만 해도 먼 곳을 향한 그리움으로 짜릿해지는 곳이다. 그곳 어디쯤에서든 머리 위로 비행기가 날고 여행의 열망이 솟구친다. 그 옛날부터 영종도는 공항터가 될 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이야기가 있다. 기록에 따르면 영종도의 옛 이름은 자연도(紫燕島)였다. 섬에 제비가 많이 날아 붙여진, 문자 그대로 자줏빛 제비섬이다. 제비는 그렇다 치고 자줏빛은 해 저무는 영종섬의 붉다 못해 자줏빛이었던 하늘을 말함이라. 일몰에 물든 자줏빛 제비의 모습으로 명명된 자연도라 하니, 옛사람들의 지명 정하기의 기지와 운치는 멋스럽기 그지없다. 영종 또한 긴 마루를 가진 섬이란 뜻으로, 오늘날 활주로가 펼쳐진 공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현재 그곳엔 몇 분 간격으로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영종도는 김찬삼 교수에게 특별한 곳이다. 세계여행가 김찬삼 교수의 여행 책은 당시 손꼽히는 베스트셀러였다. 그 시절 웬만한 집의 책꽂이에는 김찬삼의 세계여행 전집이 있었다. 인천인인 그는 책의 인세로 영종도 구읍나루터 인근 바다 언덕에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휴식을 하고 여행 원고 집필에 몰두했다. 또한 여행문화원과 여행도서관을 개관하기에 이른다. 더 많은 이들에게 세계여행의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픈 마음이었다. 하지만 영종국제도시가 생기면서 터를 잃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부근에 세계로 통하는 첫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이 자리 잡았고 이곳에 영종역사관이 들어섰다.
영종역사관 밖으로
영종역사관은 영종도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공간이다. 실내는 물론이고 외부에서 유적과 유물을 만나볼 수 있는 전통정원이 앞마당이다. 정원을 몇 걸음 거닐다 보면 숲을 이룬 메타세쿼이아가 빽빽하다. 영종진공원은 운요호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일본의 급습으로 마을이 불바다가 되었던 아픔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 역사적 상징물인 전몰영령추모비와 태평루라는 누각을 설치해서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메모리얼 정원으로 조성했다.
바다 옆으로 난 영종둘레길을 따라 건강백년길, 치유하늘길, 힐링바닷길의 산책 코스 또한 자연스럽다. 영종역사관을 둘러싼 시사이드파크는 영종하늘도시 인근의 공원으로 8㎞의 해변공원이 일품이다. 해변길을 따라 조성된 왕복 5.6㎞의 레일바이크도 신나고, 캠핑장과 하늘구름광장, 스카이데크 등을 두루 갖추고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저녁 무렵이면 갯벌 풍경과 어우러지는 일몰이 신비롭다.
인천의 작은 올레길 예단포둘레길
영종도의 예단포항 둘레길은 작은 올레길이라 할 만큼 예쁘다. 기왕 영종도에 갔다면 한 번쯤 가볍게 걸어보는 것도 좋다. 선착장에 주차하고 출발하면 입구의 대나무숲과 잠깐 쉴 수 있는 정자를 만난다. 언덕을 오르면 눈앞에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물이 빠졌을 때는 갯벌이 진득하다. 길 옆으로 손톱만 한 야생화가 반짝이고, 오래된 나무가 여름이면 울창한 숲을 이룬다. 바다와 산이 공존하는 시원한 풍경으로 가슴이 탁 트인다. 왕복 30분 정도 길이어서 가뿐히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영종도의 해변과 공항전망대
서해에 왔으면 바다를 따라 한 바퀴 달려보자. 마시안해변과 선녀바위해수욕장, 을왕리해수욕장과 왕산해변이 멀지 않은 간격으로 이어져 있으니 시원하게 돌아보면 된다. 해변가 주변으로 출렁다리와 숲도 있어서 시간이 여유롭다면 차분히 숲길을 걸어보는 맛도 운치 있다.
영종도 나들이길에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면 좋을 듯하다. 공항 서쪽 오성산 자락에 인천공항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의 해발고도는 172m지만 막상 올라보면 높은 느낌은 아니다. 오성산과 공항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활주로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발아래로 공항철도가 지나가는 풍경은 덤이다.
그의 산중 살림이 어언 30여 년째. 이력이 길어 쌓인 내공도 겹겹일 터다. 따라서 번듯한 집과 농장을 갖추었을 성싶지만 웬걸, 거처의 모습에 애써 다듬거나 꾸민 흔적이 거의 없다. 원래 화전민이 살았다는 집부터 옛 모습 그대로다. 1000평 규모의 농장 역시 야생 초원에 가깝다. 그렇다면 천하태평 게으름뱅이들이 사는 집? 또는 못 말릴 자연주의자의 거처? 후자가 정답이다. 즉 안희상(76, 다락골 구름밭 농장)과 아내 정선희(71)는 외진 산골에서 자연과 동행한다. 자연에 순응하고 동화하는 데에서 건강한 삶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고수해왔다. 농사도 유기농보다 한층 진보적인 자연농법을 구사한다. 자연의 생태 그대로를 존중하는 천연농법으로 자급자족을 도모하고, 나아가 삶과 생각의 대부분을 자연으로 채워 만족스러운 나날을 누린다.
서울에서 살았던 안희상은 대형 건설사 직원이었다. 그는 수시로 해외 근무를 했는데 45세 때의 어느 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폐암 선고를 받았다. 그게 산골로 이주한 계기였다. 폐 하나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고 산이라는 요양소에 입소했다. 무너진 건강을 산에서 회복하기 위해 귀농을 했던 것. 그리고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마침내 암을 물리쳐 안정적인 건강상태에 이르렀다는 진단을 받았고, 지난 30여 년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는 게 아닌가. 만약 산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에 대한 안희상의 답은 이렇다.
“도시 생활을 지속했다면 일찍 세상과 이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도시의 복잡한 일상과 식습관에서 벗어나는 게 살 길이라고 봤는데, 그게 입증된 셈이다. 자연이 주는 산나물 중심의 음식을 먹고, 번잡한 문화생활을 배제하자 좋은 결과가 나타났다. 단조로운 생활을 반복하면서 뇌가 편해졌는데, 이 역시 치유 효과를 가져왔다. 아내가 정성껏 만들어준 제철 식단의 힘도 컸다.”
집이 인상적이다. 작고 낡아 불편해 보이지만 고색창연해 정겹다. 옛날 집을 원형 그대로 두고 사는 이유가 있겠지?
“100여 년 전에 화전민이 지은 토담집이다. 요즘처럼 흙이 오염되기 이전 시대에 지어진 황토집인데, 헐어내고 새로 짓기엔 아까웠다. 8평짜리 본채에 툇마루를 보탰을 뿐 본래의 구조를 유지한 채 살고 있다. 난방은 아궁이에 군불을 때 해결한다.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있지만 우리는 원래 있는 조건 그대로를 수용하며 살기로 했다. 이 집에서 살았던 화전민들의 원시적인 생활 방식을 따르자, 도시에서 익숙해진 습관과 사고를 싹 바꾸자, 그러면 병이 낫겠지, 그런 생각을 했던 거다.”
반듯한 냉장고가 없는 대신 작은 김치냉장고 하나만 가지고 산다지?
“최대치의 간소한 생활을 한다. 적은 소유로 적은 소비를 하기 위해서다. 쓰레기 배출에 따른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도 적은 소비는 당연한 거라 봤다. 우리는 계곡물을 호스로 끌어들여 생활용수로 쓴다. 세탁기 없이 사시사철 손빨래를 하며, 원초적인 형태의 생태 화장실을 집 밖에 설치해 배설물을 퇴비로 바꾼다. 농사용 장비는 기계톱이 유일하다. 호미와 괭이로 모든 농사일을 감당해온 셈인데, 그러한 육체노동이 암을 낫게 한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건전한 노동은 떳떳해서 아름답다. 그런데 부인을 너무 혹사시키는 건 아닌지?(웃음)
“아내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품고 산다. 다행히 그의 기질은 강인하고 투철하다. 때로 파이터로 변한다.(웃음) 한편 아내 역시 불편하고 간소한 산중 살림의 긍정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이라 매사 쾌활하게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산에 살면서 산을 오염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대해서도 부부가 공감대를 갖고 실천해왔다.”
야생 조수는 산골의 원주민
2월 말의 산중을 채운 공기는 차갑지만 봄기운이 이미 흥건하다. 여기저기 수선화 새잎들이 소복이 올라와 솔바람에 설레어 살랑거린다. 머잖아 온갖 봄꽃들이 다투어 우르르 피어나면 숫제 야생 화원으로 바뀔 거란다. 다종다양한 약초, 야생화, 꽃나무 등속이 어울려 꽃 정원을 연출하는 것인데, 이 가상한 꽃밭이 바로 안희상 부부의 농토이자 일터다. 고구마, 마늘, 고추 등 일반 농작물은 물론, 갖가지 산나물이 산재한 채 마음껏 활개 치는 식의 자유로운 성장을 해 결실을 맺는다. 농약을 치거나 비닐 멀칭을 해주는 식의 요령은 전혀 동원되지 않는다. 그래 자연농법이다.
안희상은 자연의 생리와 기법을 존중하는 한편 인위와 간섭을 배제하는 농사를 짓는 것이야말로 농부가 해야 할 진정한 업무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런 농부라야 비로소 이상적인 먹거리로 밥상을 차릴 수 있으며, 나아가 식물들이 성황리에 펼치는 순수한 생명 이벤트를 즐겁게 관람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사가 동화나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즐겁기만 하랴. 농장이 자리 잡기까지 고생도 적지 않았으리라.
“구체적 계획 없이 산에 들어온 탓에 처음엔 막막하고 힘들었다. 그러나 무질서한 주거 환경에서 하나하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사실은 즐거웠다. 남들이 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을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는 더 큰 재미를 느꼈다. 건강 문제를 잊을 정도로.”
초보 농부로서 겪은 애로점은?
“돌이 많은 밭이라 돌을 캐내는 작업부터 만만치 않았다. 초기부터 시도한 유기농법 역시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잘 자라는 건 산나물들이었다. 결국 농장의 절반을 산약초로 채웠고, 유기농법을 자연농법으로 전환했다. 이렇게 해서 야생에 가까운 농원이 형성됐다. 문제는 실로 낮은 소출 수준이었다. 따라서 잠시 실망도 했지만 적은 생산일망정 자연이 베푸는 선물임을 자각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됐다.”
소출이 적다면 소득도 적을 텐데 생활비는 어떻게 조달하나?
“산에 들어올 때 가져온 자금에 여유가 있어 한동안 문제가 없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궁색해지더라. 해법은 소비를 줄이는 데 있었다. 도시에 사는 아들의 도움도 받았다. 이건 사실 30여 년의 산중 생활 중 유일하게 낭패스러운 대목이다. 자급자족을 추구했지만 뜻대로 풀려나가지 않았으니까.”
근래의 기후 변동으로 농부들의 애환이 많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기후위기에 따른 자연재해를 불러들이는 건 건 결국 인간이다.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생활습관의 변화가 대안일 테고. 농사 역시 자연의 순환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농법으로 가는 게 옳다. 독성을 품은 화학농약에 의존하는 농사는 결국 몸에 좋지 않은 먹거리를 양산할 뿐이며, 동시에 토질을 망쳐 자연 생태를 깨트린다. 관행농법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환경을 생각하는 귀농인이라면 마땅히 자연농업을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야생 조수에 의한 농사 피해를 호소하는 농부들도 흔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우리는 초기에 부엌도 없이 살았는데, 어느 날 보니 천장에 걸어둔 냄비에 뱀이 들어앉아 있더라.(웃음) 이걸 어쩌나. 죽여? 그럴 순 없는 일이었다. 알고 보면 원래 이 산골에 자리 잡고 산 건 사람보다 짐승들이 먼저였다. 야생 조수들이 이 땅의 주인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새를 내쫓고, 개구리를 잡아먹고, 멧돼지를 죽인다. 원주민을 이렇게 대접해도 되나? 야생 조수들이 자연 속에서 하는 선한 몫까지 고려하면 해결 방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상생이 답이라는 얘기다.”
상생의 가치는 귀하지만 자신하고도 불화하며 사는 게 사람이다. 상생을 염두에 두고 내려온 귀농인조차 마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해 고심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웃과의 갈등. 이 문제는 사실 우리에게도 만만치 않은 사안이다. 불합리한 정도가 지나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태와 맞닥뜨리곤 했다. 완고하고 이기적인 사람에겐 사실 대책이 없다. 그런데 이건 있다. 도시 사람들의 큰 이기심에 비할 때 시골 사람들의 작고 단순한 욕심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그럼에도 갈등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부족하고, 재주 없고, 부끄럽지만
소소한 난항은 어쩌면 순항으로 데려가는 징검돌이다. 안희상은 초기의 개척시대를 통과한 탄력으로 산중의 삶을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운항, 일찌감치 안도할 만한 궤도에 올라섰다. 불편하고 낯설고 거친 생존 조건조차 ‘자연스럽게,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하는 걸 보면 원래 야생의 기질을 타고났을 수도 있겠다. 아무려나 그는 굳이 이를 악물고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스펀지에 스며드는 물처럼 자연의 감화력에 흡수되었고, 자연농법 삼매경을 경험했으며, 건강을 회복했고, 결핍과 불만이 없는 영일(寧日)을 누린다.
“불편한 환경이 오히려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걸 느끼며 살았다. 어떤 논문에 이런 게 있더라. 윤택한 밭과 거친 밭에 시금치 씨앗을 나누어 심었는데, 나중에 수확해 분석한 결과 거친 환경에서 자란 시금치의 약성이 더 뛰어났다는 거다. 사람의 경우도 비슷한 게 아닐까? 산속에서 검소하고 단순하게 사는 게 힘들 것 같지만 안분지족(安分知足)할 경우엔 삶의 질이 높아진다.”
자연의 모든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실제의 삶은 반자연적이거나 부자연스럽다. 어쩌면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산속에 살면서 나는 자연에 대해 외경과 감사를 느끼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러면서 더 온전한 삶을 지속할 수 있었다.”
어떨 때 외경의 감정이 일어나나?
“가령 밭에 뿌린 씨앗에서 싹이 틀 때, 작은 싹이 자라 열매를 맺을 때 경이롭다. 뇌우가 쏟아지는 밤, 마루에 앉은 나의 옷깃에 날아와 앉아 비를 피하는 개똥벌레를 바라볼 때도 환희를 느낀다. 이럴 때면 성찰의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꽉 막힌 산골에서 원초적인 스타일의 삶을 구현하는 일. 적게 먹고 담백하게 사는 일. 그걸 30년째 즐겁게 지속하다니.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다. 삶의 관성을 넘어선 안희상의 ‘도발’이 놀라워서.
안희상이 주는 귀농 Tip
•자연은 예술을 뛰어넘는다. 자연을 향유하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고 귀농하는 게 현명하다. 도시에서 몸에 밴 놀이 문화를 싹 버리고 시골 생활에 입문하는 게 좋다는 얘기다. 자연에 관한 감수성이 철저하게 결여된 사람이라면 귀농을 아예 하지 않는 게 옳다.
•도시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귀농귀촌을 하면 원주민들의 문화와 충돌하게 마련이다.
•재능이나 자금력보다 자연에 의지하자. 자연 생태에 관한 안목과 사랑이 생기면 도시에서보다 수준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
•강도 높은 노동이 요구되는 게 농사다. 따라서 50세 이전에 귀농하는 게 좋다. 무릎 관절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귀농을 삼가라.
•집을 크게 짓지 말자. 철수할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매도가 어려워 진퇴양난에 빠지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는 걸 유념하자.
•몸에 좋은 먹거리를 거둘 수 있는 자연농법을 하라. 그러면 오지 산골에 살더라도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자연농법을 위해서는 생태 화장실이 필수품이다. 배설물로 거름을 만들어야 하니까.
태국 북부의 문화와 역사의 중심지인 치앙마이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온화한 기후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고대 란나 왕국의 수도였으며, 오늘날에도 태국에서 중요한 문화적 유산으로 간주된다.
치앙마이는 수백 년 된 사원과 전통적인 태국 문화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관광객은 이곳에서 공예품 시장, 놀라운 거리 음식, 다양한 문화 행사와 축제를 경험할 수 있다.
치앙마이는 뛰어난 자연환경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도시 주변에 울창한 산림, 폭포, 하이킹 트레일이 있어 모험을 즐기는 이들에게 이상적인 장소다. 이 지역의 독특한 지리적 위치는 매력적인 기후를 제공하는데, 특히 태국의 다른 지역보다 시원한 겨울 날씨는 많은 방문객을 끌어들인다.
서밋 그린밸리 치앙마이CC는 이러한 치앙마이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한 골프장으로, 골프 애호가뿐만 아니라 자연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탁월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 골프장은 디자인과 환경 모두 고급스러움을 자랑하며, 뛰어난 유지 관리와 친절한 서비스로 유명하다. 골프장 설계는 자연 풍경을 최대한 살려내면서도 골프의 전략적 요소를 강조했다. 그 덕에 다양한 수준의 골퍼들이 도전과 즐거움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서밋 그린밸리 치앙마이CC의 각 홀은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골퍼들에게 다양한 전략적 접근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물로 둘러싸인 그린과 넓게 펼쳐진 페어웨이는 정확한 샷을 요구하며, 자연적인 장애물을 활용한 홀 디자인은 골프의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또한 야간 조명 시설을 갖추고 있어, 밤에도 골프를 즐길 수 있다.
서밋 그린밸리 치앙마이CC는 단순한 골프장이 아니라 태국 북부의 자연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고유한 명소다. 골프를 하는 동안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선선한 공기를 만끽할 수 있으며, 골프장 내 편의시설은 방문객들에게 휴식과 회복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골프 애호가는 물론, 자연과 평화를 찾는 이들에게도 완벽한 목적지가 된다.
4번 홀(파4, 418/375야드) 좌우로 야자수들이 펼쳐진 모습이다. 약간 오른쪽으로 굽어지는 활 모양의 레이아웃이며, 페어웨이 중간에는 폰드가 있어 티 샷 때 유의해야 한다.
9번 홀(파4, 416/384야드) 시그니처 홀이다. 티 박스에 시그니처 홀 표식이 있다. 페어웨이와 그린이 모두 물로 둘러싸인 멋진 홀이다. 완벽한 아일랜드 그린이며, 나름 길이가 있는 홀이어서 투 온이 만만치 않다.
12번 홀(파3, 181/155야드) 티 박스 오른쪽으로 멋진 여름용 데커레이션이 있다. 작은 폭포가 인상적이다. 11번 홀 그린에서 나무로 된 목재길을 따라 12번 홀로 내려오면 더욱 멋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12번 홀 그린은 좌우로 길게 누웠고, 앞뒤 폭이 20야드 미만으로 좁다.
13번 홀을 지나 14번 홀로 가면서 예쁜 폰드들이 이어진다. 이때 작은 다리들을 건너는 모습이 자주 연출된다. 주변 환경이 정원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치앙마이 골프 코스의 여왕’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18번 홀(파5, 536/500야드) 서드 샷을 할 때 오른쪽 도그레그다. 티 박스 오른쪽 작은 코끼리상에 ‘Thank you very much’라는 표식이 있다. 고객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9번 홀처럼 완벽한 아일랜드 그린을 갖추고 있다. 이 코스는 독특하게 두 개의 멋진 아일랜드 그린을 갖고 있다.
이 골프장은 워터 해저드와 아름다운 연못, 잘 정돈된 주변 환경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정원을 방불케 한다. 두 개의 아일랜드 그린과 야자수가 만들어내는 이국적인 분위기는 방문객들에게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처럼 서밋 그린밸리 치앙마이CC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골프 애호가라면 꼭 방문해야 할 명소로 손꼽힌다.
외국계 제약회사 영업부에서 24시간 발로 뛰는 영업사원이었던 다카하시 노부노리 (高橋伸典, 67) 씨. 아이 둘을 키우는 싱글 대디로 매일 아침 아이들의 도시락을 만들고, 왕복 5시간을 출퇴근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런 그가 조기 퇴직을 선언한 뒤 보육교사와 어린이집을 연결하는 헤드헌터를 시작하더니 시니어 컨설턴트, 작가라는 세 가지 업을 가지게 됐다. 정년 후 평생 현역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그의 스리 잡(Three Job) 이야기를 소개한다.
열정 넘치는 싱글 대디
다카하시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계 제약회사에 입사해 57세까지 근무했다. 그가 회사 다니던 시절은 회사원들이 온 마음을 바쳐 일하던 때였다. 그런 그의 회사 생활에서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입사 후 영업을 맡게 됐고, 적성에 맞아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해외연수 제도로 영국에 2년 동안 가기도 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본사가 다른 회사와 합병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돌아와 보니 저는 인사부로 발령을 받았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하게 된 거예요.”
두 회사가 기업 합병을 하면 다른 기업 문화로 여러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라지만, 좋아하던 영업 직무를 포기하고 갑자기 인사부로 이동해야 했으니 그도 당황했을 테다. 그런 데다 가사와 육아를 전적으로 책임지며 묵묵히 인내하던 아내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저는 일 중독자였어요. 온종일 회사에 있었고, 일을 마치면 동료나 거래처 사람과 술을 마시러 갔죠. 열심히 일해서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가정은 전혀 돌보지 않는 남편이었죠. 돌이켜보면 제가 오만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던 부엌에서 다음 날부터 두 아이를 위한 도시락을 싸야 했죠.”
TV의 건강음료 광고에서조차 ‘당신은 24시간 싸울 수 있습니까?’라는 곡이 흘러나오던 시대였다. 밤새워 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게 당연하던 시기, 어떻게 아이 둘을 키우며 일을 양립할 수 있었을까? 다카하시 씨는 먼저 서점으로 가서 요리책을 샀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갈 때까지 도시락 싸는 것이 일과가 됐다.
“아이 친구 엄마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거래처와 중요한 회의를 하다가도 아이가 열이 나면 어린이집으로 달려가야 했죠. 나중에는 회사에서 집과 가까운 영업소에서 다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습니다. 환경이 변하면 사람의 성격도 변한다는 걸 느꼈어요. 주변 사람들이 제가 아이들을 혼자 키우게 되면서 상냥한 사람으로 변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전에는 제가 좀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나 봐요. 집에서 육아를 전담하던 아내의 기분도 알 수 있었죠. 그동안 너무 가정을 돌보지 않았구나 싶어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오랜 세월 아이들 도시락을 싸다 보니 노하우가 생겨, 싱글 대디를 위한 요리 교실을 열어볼까 고민했다는 다카하시 씨는 본인 스스로도 그 변화에 놀랐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도와준 덕분인지,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상황을 헤쳐나간 덕분인지 아이들은 훌륭하게 성장해 사회인이 됐다.
조기 은퇴 후 쌓은 세컨드 커리어
다카하시 씨는 열정을 다해 다니던 제약회사를 57세에 조기 퇴직하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회사로 전직했다. 보통 은퇴 후 재취업을 한다면 경력을 살려서 가기 마련인데, 영업과 어린이집 운영이라니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다.
“어린이집 보육교사 채용 업무를 담당하는 직무로 재취업하게 됐습니다. 제약회사 인사부에 있었을 때 채용과 연구 관련 업무를 맡았는데요. 인사부에서 쌓은 채용 스킬과 지식을 바로 적용할 수 있었어요. 물론 영업을 했던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유아교육학과를 방문해 대학 교수나 학생들에게 어린이집을 홍보하기 위한 영업도 필요했거든요. 제약회사 다닐 때 병원을 방문해 어떤 의사에게 영업해야 할지 고민했던 것과 같은 맥락의 마케팅 업무였어요. 가장 도움이 된 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에요. 사람을 만나는 업무에 가장 필요한 능력이죠.”
그간 힘닿는 데까지 일한 결과 전직한 회사에서도 도움이 됐다는 의미다. 다카하시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점과 점의 연결, 즉 현재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하고 있는 노력(점)이 미래에 어떤 형식으로든 연결된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그는 어린이집 운영 회사를 8년 정도 다니다 독립해 개인사업자로 등록했다. 여전히 어린이집 보육교사 채용을 위해 대학교를 방문해 영업 활동을 한다. 보육교사와 어린이집을 연결하는 헤드헌터로 거듭난 것이다.
시니어 N잡러를 위한 지침서
거기에 세컨드 시니어 컨설턴트라는 또 다른 직업을 선택해 투잡을 시작했다. 그는 시니어의 두 번째 커리어 지원을 위한 전문 컨설턴트로서 세미나를 열고 있다. 두 번째 커리어를 찾는 시니어 5000여 명을 강사로서 만났다. 세미나에 참여하는 수강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물었다.
“정년을 앞둔 사람이 많죠. 100세 시대라면 향후에도 20~30년 동안 일해야 하는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는 분들이 오세요. 가본 적 없는 길을 처음 가는 거라 당황스러울 거라 생각합니다.”
은퇴 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던 다카하시 씨는 이들을 위한 지침이 필요하다고 여겨 ‘정년 1년째를 위한 교과서’라는 책을 출간했다. 퇴직 후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는 방법, 고독을 해소하는 방법, 정년 후 평생 현역을 실천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를 책에 담았다. 다카하시 씨는 ‘강점 시트’를 만들어 특기를 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점이 중요한 이유가 뭘까?
“정년을 앞두면 정년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을 가지게 돼요. 하지만 시니어들은 젊은 사람에 비해 많은 경험을 쌓았고, 실패 경험도 있어요. 이 안에 자신의 강점이 반드시 숨어 있기 마련입니다. 남들이 봤을 때 굉장한 것도 자신은 당연하게 여겨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나의 강점, 오리지널리티에 맞는 일을 찾는 건 시니어에게 더욱 유리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N잡러’라는 단어가 몇 년 전부터 나왔지만, 안타깝게도 고령자의 일자리는 대부분 단순 노무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는 정년 전·후를 불문하고 부업·겸업을 장려한다. 사원이 다양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도록 기업이 실시하는 부업·겸업 장려책을 자사 홈페이지에 공표하라고 추천할 정도다.
다카하시 씨는 보육교사를 어린이집 운영 회사에 소개하는 헤드헌터, 정년 후 커리어를 제안하는 세컨드 시니어 컨설턴트 강사, 출판을 통해 작가라는 스리 잡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정년 1년째를 위한 교과서’ 출간 이후에는 실제로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는 의견을 많이 받고 있다. 일본도 한국도 젊은이들처럼 정년 후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N잡러가 된다면, 시니어가 행복해질 가능성도 커지지 않을까. 시니어가 행복해지면 잔잔한 호수에 던진 조약돌로 물결무늬가 번지듯 사회의 행복 지수도 더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2일 한국문화원연합회(이하 연합회) 제32대 회장으로 취임한 김대진 신임회장을 만났다. 김대진 회장은 선대부터 성남지역에서 살아온 원주민으로 판교 낙생농협 조합장과 판교신도시개발추진위원장, 성남시의원, 성남시의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김대진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연합회가 우리 문화발전에 보다 기여할 수 있도록 ‘문화를 만드는 그릇’으로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전국 232개 지방문화원이 강력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정부와의 유대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정부와의 관계를 지목한 것은 연합회 예산 삭감의 여파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는 110억 원이 넘는 연합회 예산이 0원으로 전액 삭감된 것에 대한 지적이 있었고, 지역 소멸을 앞당길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후 올해 연합회 예산은 대폭 삭감된 54억 원 수준으로 확정됐다.
정치적 경험 연합회 발전에 활용하고파
그는 당면 과제 중 하나로 지역문화재단과의 역할 중첩 등으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각 지자체에서 지역문화재단을 앞다투어 설립하면서 지방문화원과의 사업영역 중복, 예산 배분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연합회 내부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현안으로 지목하는 부분이다.
특히 지역문화재단의 경우 선출직인 지자체장이 재단 이사장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예산 확보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에 반해 지방문화원은 별도의 ‘지방문화원 진흥법’까지 제정돼 근거가 분명함에도 되레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김 회장은 평가했다.
김 회장은 “지방문화원이 왕성한 활동을 하기 위해 지역 정치인들이나 단체와 관계를 형성하면 지방선거 과정에서 색깔론에 휘말리기도 하고, 당락 결과가 예산 확보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 말하고, “이러한 환경에 의한 결과는 지역문화재단에 비해 영세한 지방문화원 종사자들의 근무조건에서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제도적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진 회장은 또 “정부 포상 등 여러 부분에서 타 유사 단체와 비교했을 때 형평성을 갖추고, 위상이 뒤쳐지지 않도록 안팎으로 나설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자신감은 과거 이력에서 나온다. 1976년 일명 ‘5.4 조치’로 성남시의 남단녹지가 그린벨트 준용지역으로 묶여 지역주민들이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김 회장은 판교신도시개발추진위원회를 대표해서 지금의 판교 테크노벨리를 건립하는 물꼬를 텄다. 지역에서 아직까지 회자되는 ‘화형식’을 주도하기도 했고, 시의원 자격으로 정치적 협상까지 이끌었다. 강경책과 온건책을 두루 활용하며 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이끌었던 경험을 연합회의 위상 재고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방문화원 창의적 사업 활성화 할 것
김 회장은 그간 연합회가 진행해온 다양한 사업 중 지역 문화유산의 디지털 자료화 등을 중대한 성과로 꼽았다. 그는 “지역의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일은 지방문화원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며 디지털화를 통해 학자나 동호인 뿐만 아니라 K컬처를 즐기는 외국인들과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은 연합회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평가하고, “앞으로는 각 지방문화원이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다양한 세대가 동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방문화원의 위상과 활동 강화를 위한 동기부여를 위해 “지역 행사에 전면에 나서는 일은 가급적 없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주목은 지역에서 받도록 하고 김 회장은 살림에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김 회장은 “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인 여가문화 향상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고민하고, 지방문화원이 지역 간 문화 격차를 해소하는 중심이 되어 지역 소멸 위기의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불시에 찾아와 목숨을 위협하고 겨우 목숨을 건져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질환, 뇌졸중. 대비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말 그럴까. 우호걸 경희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는 전조증상을 기억하라고 강조한다. 모두 머릿속에 담아둘 수 없다면 ‘FAST 법칙’만이라도!
뇌졸중은 무엇인가요?
뇌혈관이 터져 출혈이 발생하는 뇌출혈과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 두 질환을 합쳐 뇌졸중이라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뇌가 망가져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건데요. 우리나라 뇌졸중 형태는 뇌경색 76.3%, 뇌내출혈 14.5%, 지주막하출혈 8.9%를 보입니다.
전조증상이 있다고요?
대표적으로 안면마비, 편측마비, 언어장애가 있습니다. 한쪽 혹은 양쪽 눈에 장애가 발생해 물체가 둘로 보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균형을 잡기 힘들고, 빙빙 도는 어지럼증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유 없이 심한 두통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증상을 기억하기 어렵다면 ‘FAST 법칙’을 떠올리고 빠르게 대처해야 합니다.
FAST 법칙
Face: 안면 떨림과 마비가 온다.
Arm: 한쪽 팔다리에 힘이 없고 감각이 무뎌진다.
Speech: 말할 때 발음이 이상하다.
Time: 증상이 발생하면 바로 119에 전화한다.
시간이 지나 괜찮아지면 뇌졸중이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미니 뇌졸중이라 불리는 일과성허혈발작일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뇌졸중 전조증상으로 48시간 이내 50%가 재발합니다. 재발하면 마비에서 풀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괜찮아졌다고 방심하지 말고 즉시 병원에 가야 합니다.
뇌졸중 증상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선 119에 전화해야 합니다. 가족이나 친지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즉시 병원에 가세요. 병원 중에서도 뇌졸중센터가 있는 병원에 가야 합니다. 근처 뇌졸중센터는 대한뇌졸중학회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119도 급성 뇌졸중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알고 있습니다.
치료는 어떻게 하나요?
약물치료와 시술이 있습니다. 약물치료는 혈전 용해제(주사제)를 투약하여 막힌 혈관을 뚫는 건데, 뇌경색 발병 후 4시간 30분 이내에만 할 수 있습니다. 기계적 혈전제거술은 뇌경색 발병 후 6시간 이내, 때에 따라 24시간까지 가능합니다. 이처럼 증상 발병 후 경과 시간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치료가 다르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빨리 병원에 가야 많은 선택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뇌졸중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대비할 수 없는 만큼 예방이 중요합니다. 고령, 가족력 등 어쩔 수 없는 위험요인도 있지만 고혈압, 흡연, 당뇨, 심장질환, 고지혈증, 비만, 과음 등은 고칠 수 있습니다. 야채, 저염식, 곡물, 생선 먹는 습관을 들이고 유산소운동, 근력운동, 코어운동 등 다양한 신체활동을 해야 합니다. 금주가 가장 좋지만 꼭 마셔야 한다면 1~2잔 이하로 해야 합니다. 담배는 금연보조제 도움을 받아 끊는 것이 좋습니다.
“FAST를 기억하세요. Face 얼굴 마비, Arm 한쪽 팔다리 마비, Speech 언어장애, Time 골든타임!“
에디터 조형애 취재 문혜진 도움말 우호걸 경희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 디자인 유영현
한국 문단의 어머니라 불리는 박완서 작가가 구리시 아치울에서 투병 끝에 타계한 뒤 13번째 봄날이 찾아왔다. 구리시에서는 올해도 그를 추모하는 낭독 공연을 열었다. 박완서 작가를 기리고 그의 문학을 잊지 않기 위해, 구리아트홀이 생기기 전 시청 한편에서부터 시작한 공연이 어느덧 12회 차를 맞았다.
구리아트홀 코스모스 대극장 앞은 공연 30분 전부터 중장년 관객들로 북적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포스터 앞에서 다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관객들은 대극장 1층은 물론이고 2층까지 객석을 가득 채웠다. 공연은 영상, 노래, 연주, 연기, 낭독까지 다채롭게 구성됐다. 관객들은 웃기도 울기도 하고, 박수를 보내기도 하며 공연을 즐겼다. 한 관객은 무대가 끝나자 “낭독 공연은 처음 보는데 색다르네”라고 평하기도 했다.
설교하지 않는, 그러나 여운 주는 동화
자전거를 갖고 달리면서 맛본 공포와 함께 까닭 모를 쾌감을 회상한다. 마치 참았던 오줌을 내갈길 때처럼 무거운 억압이 갑자기 풀리면서 전신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그 상쾌한 해방감. 한번 맛보면 도저히 잊힐 것 같지 않은 그 짙은 쾌감. 아 나는 도둑질을 하면서 죄책감보다 쾌감을 더 짙게 느꼈던 것이다.
-‘자전거 도둑’ 中
한국 문단의 어머니라 불리는 박완서 작가의 동화 ‘자전거 도둑’의 주인공 수남의 독백이다. 토실하니 붉은 볼과 깨끗한 눈을 가진, 청계천 세운상가 뒷길 전기용품 도매상의 열여섯 살 꼬마 점원 수남이. 꼬마의 고백은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변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자전거 도둑’은 1979년 동화집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에 들어 있던 작품이다. 이 중 아이들이 읽을 만한 것을 모아 1999년 다시 펴낼 때 책의 표제가 됐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작품이기에 한 번쯤 읽어봤을 내용이다.
박완서 작가는 소설, 수필 등 여러 분야의 글을 썼지만, 동화에 특히 애정을 담았다고 전해진다. 이야기꾼 할머니로 남고 싶었기 때문에 동화를 집필할 때는 특히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어느 한 작품을 꼽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화란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쓰기 마련인데, 그는 동화를 통해 설교하려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지만, 어른들도 읽었으면 했다. 박완서 작가의 맏딸인 호원숙 작가는 ‘자전거 도둑’을 오히려 어른을 위한 동화 같다고 했다.
이날 낭독 공연 사회를 맡은 최지애 소설가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16세에 이미 깨달은 수남이가 2024년 우리 곁에 있다면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텐데, 분명 좋은 어른으로 반듯한 삶을 살았으리라 믿는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책 ‘박완서의 말’을 인용해 “박완서 작가님은 문학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고민하고 갈등했지만, 고정관념이나 잘못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설교하려 하지 않았다. 교훈을 주려 하지 않는 동화는 참 드물다. 작품을 읽고 오래도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박완서 문학의 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완서 작가의 문장 따라 걷는 길
1년에 한 번 열리는 낭독 공연 외에도 언제든 박완서 작가를 추모할 방법이 있다. ‘박완서 자료실’에서 그의 문장을 음미해보는 것이다. 자료실은 구리시 인창도서관 2층에 있다. 구리시 아치울에서 생을 마감한 박완서 작가의 발자취를 담은 공간이다.
자료실 입구에는 박 작가의 작품을 필사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돼 있다. ‘박완서 필사’ 코너를 지나 자료실로 가는 길 벽면에는 작가의 삶과 작품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마치 그의 삶을 따라가듯 걸으며 자료실로 들어서면 그의 등단작 ‘나목’부터 소설, 수필, 동화, 문학상 수상 작품 등 분야별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자료실 운영 시간 10:00~16:00)
올해는 ‘리멤버, 박완서’라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매주 토·일요일 하루에 네 번(가족 대상 : 10시·14시, 일반 대상 : 11시·15시) 구리시 문화관광해설사가 박완서 작가의 주요 작품과 일생을 연결 지어 해설한다. 주제는 △소녀, 박완서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여자, 박완서 : 나목 △엄마, 박완서 :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노인, 박완서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등 네 가지다. 해설 프로그램은 박완서 자료실에서 진행되며, 구리시 문화예술과(031-550-2565)로 전화 예약을 하거나 구리시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호원숙 작가
딱 알맞은 사랑 주신 어머니를 그리며
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 작가는 책 ‘박완서의 말’을 엮으면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리워지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책을 펼치면 살아 계실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와 생생한 목소리로 들릴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작품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매년 열리는 박완서 작가 추모 낭독 공연에 참석하며 호 작가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이번 13주기 추모 낭독 공연에도 참석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간 작품과 인터뷰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많이 보여주셨는데요. 13주기 추모 낭독 공연을 맞이하는 작가님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코로나19로 공연을 올리지 못했던 한 번을 제외하고 1주기부터 매년 공연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구리시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번 공연은 작품 ‘자전거 도둑’이 동화라는 점에서 조금 특별합니다. 어머니가 첫 손주를 보았을 때 쓴 작품이죠. 그야말로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예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정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자전거 도둑’에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어른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어머니를 보며 좋은 어른의 역할을 깨닫게 된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머니는 어른으로서 상대에게 알맞은 사랑을 주신 분이에요.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었죠. 누군가에게는 무관심이 사랑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북돋아주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거든요. 넘치도록 사랑을 붓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필요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아셨죠.
2023년 ‘어른의 부재’가 트렌드 키워드로 꼽혔어요. 그래서인지 박완서 작가님이 더 그립습니다. 그만큼 좋은 어른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요즘 쇼츠라는 게 유행이라면서요? 저도 어떤 짧은 메시지를 보면 ‘어머 진짜 옳은 소리다’ 싶은데 순간적으로 날아가 버리더라고요. 휴대폰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누구든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필요한 걸 배우면 좋겠어요. 가장 가까운 곳에 배울 게 많아요. 사실 70세가 다 된 제 나이에도 선택해야 할 때 무엇이 옳고 그른가 망설이거나 쉽게 판단이 안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배웁니다. 용기 내어 사랑을 주고, 받은 사랑에 책임지며 살면 좋겠습니다. 일상 속에서 그런 것들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런 면에서는 문학 작품 속에서도 어른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짧은 영상과 달리 작품 속 인물을 보며 생각하고 배울 수도 있으니까요. 어른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누군가에게 작품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요즘 고전을 봐요. 전에 읽었던 건데도 다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이런 게 있었구나!’ 싶어요. 그 시절 작가와 책을 통해 공감하고 교감하며 대화하는 거죠. 어머니 작품 중에서는 ‘미망’을 추천하고 싶어요. 구한말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로, 할아버지는 옛날 사람이지만 미래 주역이 될 손녀에게 꿈을 심어주는 모습이 나오는데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그냥 꿈을 심어주는 게 아니라 거기에는 사랑이 있어야 해요. 딱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사랑이요.
최강 피지컬이라 자부하는 100인이 벌이는 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피지컬: 100'의 두 번째 시즌이 최근 인기리에 종영했다. 시청자들의 운동 욕구를 자극했는데, 실제 프로그램의 퀘스트(단계별 미션)를 따라 달리기나 스쿼트를 하는 챌린지 영상을 SNS에 인증하는 이벤트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의욕만 앞서 참가자들을 무작정 따라 하다간 쉽게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강도현 자생한방병원 원장의 도움말로 부상 없이 강인한 육체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무동력 트레드밀 달리기…‘햄스트링’ 부상 주의해야
가장 화제가 된 퀘스트는 단연 ‘무동력 트레드밀 달리기’였다. 참가자들은 22분을 10분, 7분, 5분으로 총 3번에 나눠 달리며 심폐지구력을 경쟁했다. 그 결과 상위 10%에 들기 위해선 5km 이상을 달려야 했고 1등은 무려 5472m를 주파했다.
달리기는 심폐지구력을 측정하고 향상하는 데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운동 중 하나다. 비싼 장비나 특별한 훈련이 필요 없어 초심자에게도 추천된다. 하지만 달리기를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 달릴 때의 충격이 무릎과 발목으로 향하는 만큼 족부와 하체 부상이 잦기 때문이다. 특히 갑작스럽게 뛰거나 운동 강도가 높아질 경우 허벅지 뒤쪽에 위치한 근육인 햄스트링에 부담이 누적되기 쉬운데, 실제 프로그램에서도 햄스트링에 이상을 느껴 달리기를 포기한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햄스트링은 동작을 멈추거나 방향을 전환하는 역할을 하기에 손상될 경우 간단한 보행에도 통증을 유발한다. 따라서 운동 전·후로 햄스트링을 충분히 풀어 부상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자나 벤치 등 엉덩이를 걸칠 공간만 있다면 손쉽게 스트레칭이 가능하다. 앉은 상태에서 왼쪽 무릎은 90도, 오른 다리는 일자로 뻗은 뒤 발뒤꿈치로 바닥을 딛는다. 이후 상체를 숙여 햄스트링을 천천히 이완시킨다. 약 10초 동안 유지한 다음 원래 자세로 돌아와 다리를 바꾼다. 해당 동작을 좌우 3회씩 반복한다.
강도현 자생한방병원 원장은 “햄스트링 부상은 유명 스포츠 선수들도 장기간 결장시킬 만큼 심각하게 발전하기도 하는 질환”이라며 “허벅지 뒤쪽 통증과 함께 햄스트링 부위가 붓거나 저리지는 않는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중량 근력운동...’허리디스크’ 발생 위험 높여
심폐지구력이 높더라도 강한 근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이를 보여준 퀘스트는 ‘광산 운송 전’으로, 참가자들은 바퀴가 달린 광차에 40kg 모래주머니 수십 개를 싣고 목표 지점으로 돌아와야 했다. 전신의 근력을 순간적으로 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한 참가자는 한 번에 모래주머니 30개를 전부 실은 약 1.2t 무게의 광차를 밀어 주목받기도 했다.
경기 중 급한 마음에 허리와 팔 힘으로 모래주머니를 들어 올리며 힘들어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는데, 이처럼 무거운 물체를 반복적으로 어깨높이까지 올리는 일은 허리에 상당한 부담을 안기는 일이다. 척추에 순간적으로 강한 힘이 실려 ‘허리디스크’가 손상될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무거운 물건을 들 때는 무릎을 굽혀 몸쪽으로 끌어당긴 후에 허리를 들어올리기보다 무릎을 펴는 방식으로 일어서야 상대적으로 힘을 덜 사용하면서도 척추 건강을 지킬 수 있다.
만약 중량 운동 중 쑤시는 듯한 허리 통증과 엉덩이, 다리 등의 저림 증상이 동반된다면 즉시 운동을 멈추고 진료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좋다. 한의학에서는 추나요법을 중심으로 한 침·약침 치료, 한약 처방 등의 한의통합치료를 통해 척추의 기능 회복과 근본적인 치료에 집중한다. 특히 이달 말부터는 첩약(한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통해 허리디스크 한약에 대한 환자 본인 부담률이 최대 30%까지 낮아져 환자들의 치료 선택지가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무한 스쿼트’…올바른 방법 알아야 슬개골 부상 예방할 수 있어
결승전에서는 ‘무한 스쿼트’라는 퀘스트가 등장했다. 스쿼트는 많이 알려진 기본적인 운동 중 하나지만 무턱대고 주저앉는 운동이 절대 아니다. 앉을 때 무게 중심이 앞쪽으로 과하게 쏠리면 무릎으로 하중이 집중되는 탓에 연골에 손상을 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스쿼트로 인해 다발하는 근골격계 질환으로는 ‘슬개골연골연화증'을 꼽을 수 있다. 슬개골은 무릎 앞쪽에서 관절을 보호하는 동그란 뼈를 말하는데, 이곳을 덮고 있는 연골이 단단함을 잃고 약해지는 질환을 슬개골연골연화증이라 부른다. 무릎에 충격이 지속해 가해지는 운동 외에도 외부의 강한 충격, 무릎 꿇고 앉는 자세 습관 등이 슬개골 연골의 마모를 촉진하는 주요 원인이다. 만약 무릎을 굽히고 펼 때마다 ‘뚜둑’하는 소리와 함께 뻑뻑한 통증이 느껴지거나 무릎이 자주 붓는다면 해당 질환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강도현 자생한방병원 원장은 “어릴 적 TV 속 멋진 액션 장면들을 따라 하다 크게 다치거나 위험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라며 “참가자들의 강인한 모습은 절대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명심하고 건강 관리에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