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인데도 바다 위에 띄워진 고깃배는 정지화면처럼 가만히 멈춰 있다. 바위섬 저편으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시선을 고정한 채 바다를 향한 낚시꾼의 뒷모습이 한가롭다. 물때에 맞춰 바닷길이 열리면 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서 당도하는 작은 섬의 기적을 날마다 마주한다.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그저 적요하기만 한 카페는 감성을 품었다.
섬이라는 음절이 전하는 서정성은 쓸쓸함과 평온함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런 섬 안으로 찾아드는 자발적 고립이 주는 진정한 휴식, 더 볼 것 없다. 섬의 군락 고군산군도로 떠난다.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다섯 개의 섬이 내륙과 다리로 연결된 고군산군도는 새만금방조제를 관통하며 섬으로 향한다. 시원하게 뚫린 30km가 넘는 방조제 도로가 바다를 가로질렀다. 길목마다 전망대와 쉼터가 마련돼 있고, 그중에 해넘이 휴게소는 신비로운 일출과 일몰을 보여주는 곳이다. 고군산군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고즈넉한 섬마을 야미도의 평온함도 스쳐 지나간다. 고군산군도에 닿기 전부터 가슴 확 뚫리는 풍광이 반기는 새만금방조제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다도해 절경을 한눈에, 신시도
전북 군산시 남서쪽에 위치한 고군산군도는 60여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옛 군산의 섬 무리’라는 뜻의 고군산군도는 그 옛날 중국 사신 서긍이 고려 방문기를 남긴 견문록 ‘고려도경’에서 무리 지어 있는 섬을 보며 ‘바다 위의 성’이라고 표현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천혜의 경관과 생태자원으로 고군산 8경으로 불리며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중에 가장 먼저 신시도에 닿는다. 새만금방조제와 곧바로 연결된 고군산군도의 관문이며, 군도 중에서 큰 규모에 속하는 섬이다. 섬을 둘러싼 199봉에서 월령봉과 대각산으로 이어지는 신시도 산행은 산과 바다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코스라서 찾는 사람이 제법 많다. 계절이 무르익을 때면 고운 단풍이 달빛 그림자와 함께 바다에 비친다는 월영단풍은 고군산 8경에 속한다.
섬 속의 국립신시도자연휴양림은 우리나라 최초로 바닷가에 지어진 친환경 휴양림으로 매월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숙박과 상관없이 입장료만 내면 휴양림 주변 탐방이 가능해서 평소에도 산책이나 트레킹을 위한 방문객들이 찾아든다. 산책로를 걸으며 만나는 달맞이 화원이나 전망대를 지나면서 마주하는 숲과 탁 트인 바다는 복잡한 도시를 떠나온 이들에게 해방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상쾌한 공기 속에서 내다보는 저 멀리 고군산대교의 주탑과 섬들이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원시적 풍광과 SNS 감성 품은 무녀도
신시도에서 곧바로 무녀도로 건너오면 따스한 섬마을 풍광이 맞아준다. 섬에 들면서 무녀도라는 지명이 혹시 김동리 소설 ‘무녀도’와 관련 있을까 생각했지만 섬 이름의 유래는 따로 있었다. 섬의 형태가 마치 장구와 술잔을 놓고 춤을 추는 무당의 모습처럼 보여 무녀도라 불렸다고 한다.
무녀도에서는 단연 쥐똥섬이 볼거리다. 섬마을 앞바다 저편으로 몇 걸음도 안 된다. 물때에 따라 바닷길이 열리면 질펀한 갯벌 사이로 섬까지 걸어가는 풍경은 그림처럼 아련하다. 쥐똥섬 해안길을 따라 조금만 더 걸으면 나타나는 똥섬 역시 독특하다. 약 9000만 년 전의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무녀도의 똥섬은 시간이 만들어낸 지질구조를 보여준다. 똥섬을 옆에 두고 자리 잡은 펜션 아래로 연결된 데크를 따라 걸어가면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근래 들어 사람들이 무녀도를 찾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섬 앞에 시선을 끄는 노란 버스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이 스쿨버스를 개조한 것이다. 무녀 2구 마을버스라는 버스 카페는 서해 오션뷰가 끝내준다. 청량한 바다와 푸른 하늘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만들어내는 섬 풍광은 비길 데 없이 아름답다. 이뿐 아니라 젊은 층에게 무녀도가 핫플로 소문난 데는 이국적인 버스 옆에 자리한 방탄소년단의 RM 벽화도 한몫한다. 오래된 바닷가 마을의 원시적 풍광과 함께하는 무녀도는 지금 SNS 감성이 풀풀 나는 매력 또한 품고 있다.
신선이 노닐던 섬에서 한나절, 선유도
무녀도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선유도다. 예전부터 고군산군도의 섬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섬이다. 섬 북단의 봉우리 형태가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 선유도다. 이름조차 신선이 놀던 섬이라는 선유도(仙遊島)는 군도의 중심 섬이다.
겨울 끝자락인데도 해변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선유 8경 중 하나로 고운 모래가 10리나 깔려 있어서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 불리는 해변 너머로 망주봉이 듬직하다. 그 옛날 억울하게 유배된 충신이 북쪽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유래가 깃든,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3호인 망주봉이 물이 빠져나간 갯벌을 내려다보고 있다. 여름철엔 망주봉에서 떨어지는 빗줄기가 폭포수가 되어 시원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석양이 지는 바다가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루는 선유낙조(仙遊落照)는 선유 8경의 으뜸이다. 요즘은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바다 위에서 즐기는 짚라인이나 전기 스쿠터와 자전거, 섬 투어를 위한 유람선, 도보 산책이나 갯벌 체험 등의 재미거리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주변에 옥돌해수욕장의 선유봉 등산길과 명품 데크길도 찾아볼 만하다.
아니 온 듯 다녀가시오, 장자도와 대장봉
이제 선유도 맞은편의 장자도를 가기 위해 장자대교 위를 달려간다. 장자도는 대장도를 가기 위한 길목인데 장자도의 호떡마을이 유명해서 오가는 여행자들의 손에 호떡 하나씩 들린 걸 쉽게 본다. 장자도에 딸린 대장도는 선유도나 무녀도에 비해 작은 섬이지만 오밀조밀한 섬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섬 깊숙이에서 맛보는 자발적 고립의 행복을 누려볼 만한 포인트다.
고군산군도에 들어섰다면 대장도의 대장봉을 빼놓을 수 없다. 오르는 코스는 두 군데 길이 있는데, 우측 장자할머니 바위 쪽 계단길이 수월한 편이다. 비밀의 정원처럼 좁은 숲속을 걷는 듯하다가 정자 쉼터에 앉아 잠깐씩 숨을 고르고 올라야 한다. 해발 140m 정도지만 절대 만만치 않다. 정자 쉼터 기둥에 쓰인 ‘아니 온 듯 다녀가시오’ 글귀를 보면서 잠시 쉬었다가 구불길과 무섭게 경사진 계단을 다시 올라야 한다. 숲길 옆으로 바다를 향한 할머니바위는 아기를 업은 여자가 밥상을 든 모습이라고 한다.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간 남편이 급제하여 돌아오자 아내는 정성을 다해 상을 차려 내왔건만 남편이 데려온 소실을 보게 되었고, 서운한 마음에 그대로 굳어서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숨차게 가파른 길을 오르고 섬에 담긴 이야기를 마주한다. 아시아의 숨은 명소로 CNN에서도 소개했던 고군산군도의 대장봉이다. 이윽고 마주하는 잔잔한 서해의 아스라한 섬 무리들이 자아내는 기운을 선사받는다. 땀을 식히면서 일몰 속에 잠긴 신비로운 섬 무리를 바라볼 수 있다면 더없는 행운이다. 크고 작은 섬들이 어우러진 다도해의 평화로운 풍광에 차분하게 압도당하는 순간이다.
5월이면 이름조차 신선이 놀던 섬이라는 선유도로 향한다. 5월의 선유도는 신록과 바다가 봄의 색으로 붓칠을 한듯 선명하게 싱그럽다. 맑은 날에는 바닷가에서 일몰과 일출의 감동을 맞이할 수 있고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섬들이 흐려졌다가 가까이 왔다가 하면서 선유도의 이름값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선유도는 나에게 선망의 섬이다. 3월이면 신시도 초입에 있는 대각산을 찾곤 하였다. 산을 찾은 이유는 산자락에 피어나는 산자고, 보춘화를 보기 위해서다. 들꽃 너머로 펼쳐지는 고군산군도를 바라보며 바다, 섬, 꽃이 어우러진 풍경에 황홀해 하였다.
오전에 산을 올랐어도 산을 내려가는 시간은 해가 진 후였다. 대각산에서 맞이하는 일몰은 바다 위에 보석처럼 빛나던 섬들과 함께 남다른 풍경을 그려낸다. 기다림의 끝에 섬들 사이로 태양의 붉은 빛이 짙게 깔리다 빛이 사라진 뒤 어둑해져서야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는 어둠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길을 따라 신시도 입구까지 걸어 나왔다. 그것이 2년 전이니 다리가 개통되기 전이다.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를 잇는 다리가 2017년 12월에 개통되어 많은 사람들이 선유도를 찾고 있다. 섬까지 다리가 연결되었다 하나 섬의 매력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걷기의 즐거움을 안겨주고 섬 유람의 묘미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선유도는 5월 여행지로 제격이다. 자전거를 빌려 바닷바람을 느끼며 섬을 달려보아도 좋고 고군산군도 내를 도는 유람선을 타고 유람을 즐기는 것도 좋다.
뉴스를 보는데 새만금사업이 박차를 가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새만금은 원래 민간주도로 시작되었지만, 긴 시간이 지난 이번 문재인정부에서 공공주도로 진행하게 되어 관련 예산을 편성하고 내부개발이 진행될 것이며 새만금개발공사를 만들어 전담추진체계를 마련해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6월 필자는 새만금 노마드 축제에 다녀왔다.
그날 새만금 방조제를 따라 달리면서 보았던 느낌은 참으로 벅찼는데 바다를 메워 우리의 국토를 이렇게 확장했다는데 감동적이었다.
얼마나 큰 산업 일꾼들의 노력이 있었을지 새만금 홍보관에서 사진으로 영상으로 지켜보며 숙연했다.
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이쪽저쪽 바다와 호수의 물빛이 다른 점도 신기했다.
축제장의 광활한 대지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그러면서 이곳이 일회성의 이벤트가 아닌 후손들에게 길이 남겨줄 문화 인프라가 구축되기를 기대했다.
얼마 전에 종로의 랜드마크인 종로타워 20층 새만금개발청에서 새만금 토크콘서트가 있었다.
새만금투자전시관인 이곳은 투자유치 지원과 수도권 고객, 국내외 투자자들의 접근성과 편의성 제고, 서울에서 새만금을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새만금홍보 등 대외 협력강화를 위해 개관했다.
일본기업대상 투자 설명회, 글로벌금융사와 개도국 공무원 초청행사, 중학생 진로체험프로그램, 일반 방문객 대상으로 새만금홍보를 했다.
새만금은 바다를 메워 서울의 3분의 2에 달하는 넓은 땅을 만들어 우리나라 지도의 모습을 바꾸었고 방조제는 33.9km 길이로 세계에서 가장 길어서 기네스북에 올랐다.
새만금 프로젝트를 산업프로젝트로만 생각하지 않고 문화적인 측면을 더하고자 했고 선진문화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문화까지 함께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담당자의 인터뷰도 있었다.
새만금은 만경평야와 김제평야에서 한자씩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토크콘서트에 참석하신 사무관님의 말을 들어보니 새만금개발은 1991년에 시작되었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찾아보면 이곳은 303년 백제 시대 때부터 개발되었고 ‘벽골제’라는 길이 3km의 제방과 저수지가 있어 깊은 문화적 뿌리로, 개발될 수밖에 없는 여건을 가졌다고 한다.
조선왕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일대에서 나오는 곡식이었고 고군산군도는 모두 왕조의 터였다며 새만금이 만들어지고 있는 건 역사적 구조적으로 필연적이고 그래서 새만금지역이 중심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견해를 들려주었다.
원래 새만금은 민간주도로 이루어지도록 계획되었지만, 문재인정부에서 공공주도로 진행하게 되어 관련 예산을 편성하고 내부개발이 진행될 것이며 새만금개발공사를 만들어 전담추진체계를 마련하게 되었다.
2023년 열리는 세계 잼보리 대회를 이미 유치했고, 앞으로 세계 잼버리 대회를 비롯하여 여러 행사를 많이 유치하고 제3세계 국가를 방문해 대사관이나 민간단체를 이용 새만금을 홍보하며, 국내에서도 학교나 가족 단위로 야영을 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노마드축제 등 각종 축제를 개최하는 새만금을 개발하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토크 콘서트에서 새만금 주제곡을 만든 작곡가 스티브 바라캇의 이 음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았다.
스티븐 바라캇은 캐나다 출신 세계적인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 캘리포니아 바이브스(KTX 안내방송 배경음)과 럴러바이(유니세프 주제곡) 등을 작곡한 분으로 유니세프에서의 인연으로 새만금 주제곡을 작곡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이 음악가가 얼마나 새만금 주제곡을 완성하기까지 애정을 가지고 열정을 다 해 만들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이 기회를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했고 큰 책임도 느꼈다고 했다.
아무리 훌륭한 건물, 혹은 세계 최고의 시설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도시의 성공은 사람에 달려있다며 새만금 주제곡은 ‘사람‘ 에서 시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새만금 주제가 마지막 부분 우리 대금연주자의 피날레가 너무나 감동적이고 멋지게 들렸다.
아시아의 허브, 미래의 심장이라는 슬로건의 새만금이 큰 성공을 거두어 우리나라 발전에 한 획을 긋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토크 콘서트를 마쳤다.
무언가 기대한다는 건 가슴 벅차고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