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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초 만에 미술품 구입 여부를 결정한다
- 구하우스는 CI(Corporate Identity) 디자인 회사 ‘디자인 포커스’ 구정순 대표(70)가 설립한 미술관이다. ‘CI 디자인’이란 특정 기업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장르. 그는 단연코 이 분야의 실력자다. 미술의 인근에 있는 직업을 가졌으니 미술품 수집을 하고, 마침내 컬렉션을 기반으로 미술관을 개관한 내력이 자연스럽다. 특별하기론 ‘집 같은 미술관’을 창안했다는 것.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다. 집처럼 편한 분위기에서 미술품을 친근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나아가 집 안을 디스플레이하는 요령을 얻어갈 수 있기를, 미술품 수집 안목을 키울 수 있기를 바라는 의도도 컸다.” 반응은 어떤가?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분위기인데. “영리를 목적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관람객 수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대체로 처음 예상한 수준의 호응은 있는 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미술관의 문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술관보다 인근 카페들에 주로 사람들이 몰리더라.” 미술품을 수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똘똘한 컬렉트 방법을 조언한다면? “미술품도 잘 사면 돈이 된다는 생각에 과도하게 쏠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품의 투자 가치와 작품 가격에 치중하는 건 좀 엉뚱하다. 순수하게 미술을 향유하는 방법으로서의 수집이 옳다고 보는 거다.” 언제부터 컬렉션을 시작했나? “23세 때. 첫 직장에서 받은 상당 액수의 보너스를 털어 박수근의 작품을 구입한 게 출발점이었다. 당시 권옥연 화백의 작품에도 호감이 있었는데, 한 달간이나 뜸 들여 숙고해 박수근의 작품을 선택했다. 요즘은 그런 초심이 없다. 5초 만에 구입 여부를 결정하거든.(웃음)” 거의 전광석화처럼? 그래도 뭔가 기준이 있겠지? “취향이 뚜렷해진 셈이다. 내 생각에 작가는 두 부류가 있다.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는 작가와 창의성을 갖고 늘 새로운 작품을 하는 작가로 나누어 본다. 내 취향엔 후자가 좋다. 그게 미술관의 목적에도 부합하고.” 그는 반백 년 경력의 컬렉터다. 이미 고수다. 거품을 걷어내고 작품성을 가늠하는 눈매가 날렵할 수밖에. 미술관의 스케일과 디테일의 조화로운 배합에서도 구 관장의 내공이 읽힌다. 미술관에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특히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이건 어떤 경로로 구입했나? “런던의 크리스티 옥션에서 샀다. 초현실주의 작가인 에른스트는 외국에서도 전문가들에게 가장 인기 많은 화가다. 삶도 작품도 워낙 재미있는 사람이라서.” 제임스 터렐의 ‘빛 아트’도 매우 인상적이다. 작년에 구입, 설치했다지? “구하우스를 다녀간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힐링’이라는 단어가 빈번하더군. 명상이랄까, 관람객에게 힐링의 기회를 부여하고 싶어 설치했다.” 구하우스의 미술품 감상은 사실 쉽지 않다. 개념주의 미술 작품이 주류여서다. 구 관장은 작품에 붙인 설명문을 읽길 권한다. 흔히 묘하게도 작품보다 난해한 게 설명문이지만, 이곳의 설명문은 간명하고 구체적이다.
- 2021-08-0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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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미술관은 매우 다르다…양평 구하우스
- 어떻게 해야 관람객을 더 끌어들일 수 있을까? 이는 미술관 운영자들의 공통 관심사다. 정성껏 성찬을 차렸으나 풍미를 즐겨줄 객이 드물다? 이건 참 난처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머리를 쥐어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해야 한다. 다양한 맥락을 살펴 개발한 매력적인 콘셉트로 미술관의 흡입력을 키워야 하는데, 구하우스(Koo House)는 특별한 대안을 찾아냈다. 여느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흥미로운 게 이 미술관에 있다. 책 안 읽고 그림 감상 안 하는 스마트한 무뇌 사회. 이렇게 사이버 세상의 풍속을 야박하게 깎아내리는 관점이 흔하다. 이를 무모한 견해라 할 수 있으랴. 그러나 감성과 감각의 충전 기회를 갖지 못해 목말라하는 이들이 많다. 미술 작품은 어렵다는, 심지어 괴롭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쉽고 편한 미술관을 찾지 못해 불만인 이들도 많을 것이다. 구하우스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을 표방하며 2016년에 개관한 사립미술관이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냇가에 있다. 냇물 저 건너로는 시퍼런 산야가 넘실거린다. 자연에 슬쩍 한 자락 걸친 미술관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은 사실 모든 미술관이 추구하는 이상적 방식이다. 편리와 안락감을 좋아하는 고객의 니즈를 모를 바보가 어디 있겠나. 그러나 다분히 정형화된 관습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구하우스는 흔한 틀을 깼다. 미술관을 아예 ‘집’처럼 구성했으니까. 건물부터 그다지 튀는 것 없이 평범한 편이다. 설계자는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건축가 조민석 씨. 그는 개성과 품격을 겸비한 구하우스 건물을 지었다. 그러나 기발하거나 묘한 미감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 건축은 아니다. 전시실의 구색도 색다르다. 휑한 화이트 큐브 일색에서 벗어나 가정집 분위기를 애써 돋우었다. 전시실에 붙은 이름도 대담하다. 리빙룸, 다이닝룸, 라이브러리, 베드룸, 패밀리룸 등으로 명명했으니 말이다. 이름만 집처럼 달고 있는 게 아니다. 전시장의 꾸밈새 역시 이름에 걸맞은 내용물로 채웠다. 한마디로 내 집 안을 술렁술렁 편하게 돌아다니는 기분으로 작품 감상의 용무를 볼 수 있는 미술관이다. 곳곳에 놓인 의자나 소파는 대부분 작가들의 창작품이지만 편하게 앉아 쉴 수 있다. 괜히 사람 기죽이는 근엄한 미술관과 딴판이니 흥미롭다. 그렇다면 전시 작품의 질도 가정적이라서 소박할까? 아니다. 별 감흥 없는 범작들이 내걸린 전시장처럼 섭섭한 게 없는데, 이 미술관의 작품들은 흔히 격조가 넘친다. 최현진 학예실장의 얘기는 이렇다. “집처럼 편한 분위기와 자연스러운 전시 방식을 도모했다. 관람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문턱 낮은 미술관! 이게 우리의 콘셉트다. 그런데 작품의 내용에는 다들 놀란다. 의외로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많아서다.” 이름난 작가들의 작품이 흔하다 그림을 볼까. 1층 전시장의 절반쯤 되는 공간에서 현재 특별한 기획전이 펼쳐지고 있다. 구하우스의 12회 기획전 ‘데미안 허스트-새로운 종교’전이다.(11월 21일까지) 데미안 허스트는 1991년 첫 개인전에서 상어의 시체를 유리관에 담은 기괴한 작품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작가다. 현재 허스트의 작품 가격은 피카소의 작품 값을 뺨칠 기세로 맹위를 떨친다. 구하우스의 이번 전시회에서는 의약품을 소재로 한 그의 연작을 만날 수 있다. 의학이 종교의 아성을 딛고 ‘새로운 종교’로 기능하는 추세를 은유한 작품들이다. 대리석으로 조각한 거대한 해열진통제엔 ‘성체’(聖體)라는 제목을 붙였다. 미사 전례에 쓰이는 면병(麪餠)을 연상시키는 이 발칙한(?) 조각은 현대 의약품이 예수의 피와 살에 육박하는 성물임을 암시한다. 의약에의 과도한 의존을 풍자한 반어법일 수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의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도로 기획한 전시회다. 구하우스는 설립자인 구정순 관장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삼은 미술관이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수십 년간 모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 400여 점으로 구하우스를 세웠다. 데미안 허스트의 기획전에 나온 작품들 외의 모든 작품이 그의 소장품이다. 재미있는 건 이름난 작가들의 작품이 흔하다는 점이다. 주로 현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컬렉션이기도 하다. 찻잔이나 인테리어 장식물 등 소소한 공예품도 양념으로 곳곳에 진열해 디테일을 완결했다. 볼 것 많고 즐길 것 풍성한 미술관이니, 무심코 왔다가 팔짝 뛸 듯이 반색하는 관람객들이 많다는 학예실장의 얘기가 그럴싸하다. 관람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전시장은 라이브러리라고 한다.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옆에 있는 이곳엔 프랑스의 조각가 자비에 베이앙의 작품 ‘모빌’이 있다. 근대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라이브러리의 구색이 완연해 ‘집 같은 미술관’을 표방한 구하우스의 지향을 직감할 수 있는 이 전시장의 안짝엔 침대와 화장실을 설치한 소공간이 있다. 이 역시 유명 작가의 작품이다. 1층 벽면 하나를 통째로 채우다시피 한 대형 작품 ‘Pictures at an Exhibition’은 이 시대 최고 작가의 하나로 꼽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사진 드로잉 작품이다. 미술관의 작품을 볼 때 작가 이름표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는 건 옹졸한 짓일 수 있다. 작가의 이름을 몰라도 감흥의 파장은 일렁거리기 때문이다. 내 취향과 안목으로 고른 작품이면 걸작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대가가 괜히 대가이랴. 영혼까지 뒤흔드는 그 뭔가를 그리고서야 대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구하우스에서 데이비드 호크니를 만난 즐거움이 크다. 2층 전시장에도 거장들의 작품이 즐비하다. 피카소, 앤디 워홀, 백남준, 줄리안 오피, 막스 에른스트 등의 작품을 보느라 숨이 차다. 눈을 들이박고 봐야 할 작품들이다. 능란한 화가의 솜씨는 마법을 닮아 손바닥만 한 그림에도 백 가지 세계를 담는다. 좁쌀 한 알에 만화경을 후벼 넣는다. 그걸 주마간산 격으로 볼 수밖에 없는 짧은 안목에 속이 켕긴다. 전시장의 가지런한 동선은 고즈넉한 정원으로 이어진다. 막판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설치한 별관에 닿는다. 터렐은 ‘빛의 예술가’다. 빛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빛을 ‘사용해’ 만든 작품으로 명성을 날린 화가다. 빛을 버무린 몽환적인 동영상으로 관객을 명상에 빠트린다. 터렐의 작품을 막바지에 보게 한 건 기똥찬 한 수다. 관람객에게 자신의 내면을 그림처럼 바라보게 하는 명상의 시간을 제공하니까. 전시장 그림들을 포식한 뒤 나오는 디저트가 이렇게 맛있다.
- 2021-08-06 0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