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구치매안심센터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치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치매를 겪고 있어도 사회 구성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치매안심센터 풍경과 관련 활동을 통해 치매에 맞서는 노인들을 중심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1 금천구치매안심센터에서는 노인들을 ‘정상군’, ‘고위험군’, ‘치매군’으로 단계를 구분하고 맞춤형 수업을 제공한다. 작업치료사, 운동처방사와 함께 기억력 훈련, 작업치료, 운동치료, 미술치료 등 인지 기능 향상과 우울감 감소를 위한 활동을 유도한다. 운동치료 시간, 노인들이 가수 장윤정의 ‘꽃’ 노래를 들으며 박자에 맞게 전신 재활 운동기구(보디 스파이더)를 움직인다. 인지 기능 및 신경자극 동작으로 뇌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오른쪽 줄을 당기면서 왼쪽 다리를 함께 들어보세요”라는 작업치료사의 목소리에 수업에 참여한 노인들은 우왕좌왕이다. 여러 동작이 복합적으로 섞이면 정확하게 해내기가 더 어렵다. 동작이 맞는지 옆에 앉은 서로를 살피거나, “선생님, 이거 맞지요?”라며 적극적으로 질문한다. 작업치료사는 “아버지! 오른쪽!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근육이 놀랄 수 있으니 천천히 호흡하면서 해보세요”라며 조언한다. 운동의 마지막에는 스트레칭이 빠질 수 없다. 온몸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던 근육을 달래준다. 몸이 피로해졌을 수 있으니 귀가 후 쌍화탕이나 따뜻한 차를 드시라는 말을 끝으로 수업이 마무리됐다.
#2 “어르신들, 이제 공부하러 가요!” 작업치료사의 안내에 따라 노인들이 일제히 책상이 마련된 교실로 들어간다. 오늘 수업은 주어진 한 페이지짜리 글에서 시옷이 몇 개인지 15분 동안 찾는 게 목표다. 쌍시옷은 시옷 두 개로 간주한다. 쌍시옷과 시옷, 시옷과 지읒을 구별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예컨대 ‘오늘 날씨가 맑아서 온 가족이 나들이를 나왔어요. 다들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따스한 바람이 불고, 벚꽃이 흩날리는 날 다 함께 다시 봄 내음을 맡을 날을 기다립니다’라는 글에는 총 7개의 시옷이 포함돼 있다. 어르신들은 연필을 꼭 쥐고 차분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사뭇 진지한 태도로 수업에 임한다. 작업치료사는 “어머니, 더 찾아보세요. 우리가 지금 뭘 찾고 있는 거였죠? 시옷이죠? 규칙은 뭐였을까요?”라며 끊임없이 문제를 상기시킨다. “선생님, 혹시 네 개인가요? 제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요?”라는 질문에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로 응원한다. “조금만 더 힘내볼까요?”
#3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이 나올 수도 있고, 조금 늦게 나올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이해해주세요’라는 문구를 내세우는 조금은 낯선 카페가 있다.금천구치매안심센터 안에 있는 기억다방이다. 이곳은 경증치매 또는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어르신들이 바리스타로 참여하고 있다. 주문 내용을 재차 확인하거나 실수를 해도 손님들은 짜증을 내거나 직원을 탓하지 않는다. 주 고객은 치매 검진 및 상담자, 기억키움학교 학생 등 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 모 씨는 메뉴 주문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기도 하고, 음료를 챙겨 나가는 길까지 직접 배웅한다. “언니 오늘은 조금 늦게 오셨네! 지난번에 목이 칼칼하다더니, 몸은 좀 어떠셔?”라며 치매안심센터를 찾은 사람들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상담소’ 역할도 자처한다. 그는 주문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뭘 주문했는지 잊거나, 이미 만들어둔 음료의 종류를 헷갈리기도 한다. 커피 머신이 갑자기 말썽을 부리면 당황해서 전에 배워뒀던 조작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대신 모양이나 생김새, 위치를 중심으로 기억하려 하고, 힘들 때는 종이에 바로바로 적는다. “우엉차랑 오미자차를 탔다가도 분명 왼쪽이 오미자인 걸 알았는데 돌아서는 순간 잊어버려요. 그래서 나름 공부를 해요. 오미자는 알맹이가 있고, 모과는 나무를 부숴놓은 것처럼 입자가 굵어요. 국화는 말린 꽃잎을 빻아놓은 모양새죠. 어떻게 하면 안 잊어버릴 수 있을지 고민해요.”
과거에는 당신이 치매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혹은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늙어서 망령이 들었다’고 부르는 치매에 걸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을 정도다. 치매를 지난 세상의 악업으로 인한 ‘업병’으로 여기는 오랜 편견과 치매 노인 부양의 어려움을 고려하면 오히려 더 무서운 것은 ‘치매 공포증’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치매가 왔든 오지 않았든, 맞설 용기만 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치매와 싸우는 사람들이 당신과 함께할 테니 말이다.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이 나올 수도, 조금 늦게 나올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이해해주세요’라는 문구를 내세우는 카페가 있다. 주문 내용을 재차 확인하거나 실수를 해도 손님들은 짜증을 내 거나 직원을 탓하지 않는다. 경도인지장애(치매 전 단계) 또는 경증 치매 진단을 받은 어르신이 바리스타로 활동하는 카페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서울 금천구 치매안심센터 안에 있는 ‘기억다방(기억을 지키는 다양한 방법)’이다. 기억다방은 앞서 2018~2019년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시내 대학가와 공원 등에서 푸드트럭을 활용한 이동형 카페로 운영됐다. 이후 지난 3월 시범운영을 거쳐 금천구와 서대문구 치매안심센터 2곳에 설치됐다. 카페는 구 치매안심센터 검진 및 상담 이용자, 프로그램 이용자 등 센터 방문객이라면 무료로 쿠폰을 받아 이용할 수 있다. 운영 시간은 매주 화요일 오전 9~12시, 목요일 오후 1~4시다.
기억다방은 치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치매가 있어도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기획됐다. 실제로 기억다방에서 바리스타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례(69) 씨는 60대 초반,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는 “당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함께 겪어 집 밖으로 나가기조차 쉽지 않았다”며 “그때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말도 제대로 못 했고, 말을 하는 중에도 ‘내가 이 말을 왜 했었더라?’ 하면서 잊어버리기 일쑤였다”고 회상했다.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는 현재 기억다방의 든든한 바리스타다. 메뉴 주문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기도 하고, 음료를 챙겨 나가는 길까지 직접 배웅한다. 치매안심센터를 찾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상담소’ 역할도 자처한다.
물론 한꺼번에 주문이 들어오면 뭘 주문했는지 잊거나, 우엉차와 오미자차를 헷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씨는 “생긴 모양을 기억하거나 종이에 바로바로 적으면서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며 “늘 우울하고 힘들었던 지난날보다 이곳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음료를 만들면서 삶의 활력을 찾고 있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표했다.
이처럼 치매안심센터의 기억다방은 치매에 맞서고자 하는 어르신에게 사회 참여의 창구를 제공하고 있다. 박지영 금천구 치매안심센터 총괄팀장은 “치매는 누가 돌보느냐에 따라 상태가 호전되기도, 악화되기도 한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이 빨리 알아차릴 수 있으면 좋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이를 감정적으로 대처하거나 방치하면 상태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치매 증상을 초기에 발견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 기관을 찾아 조기 검진을 진행해 치매를 예방하고, 인지 강화 교육을 통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박 팀장은 “치매(癡呆)라는 단어 자체가 어리석다는 뜻을 지녀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하다”며 “치매는 주변 사람은 물론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꾸준한 관심이 중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