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31

거칠고 투박한 내 손

입력 2026-05-31 06:00

[‘나의 브라보! 순간’ 공모전 당선작 | 행복상]

(일러스트 윤민철)
(일러스트 윤민철)


나는 지금 손을 내려다보고 있다.

주름진 손등 위로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간 흔적이 보인다. 군데군데 박힌 검버섯은 마치 오래된 지도의 점처럼 흩어져 있고, 마디마디 굵어진 관절은 수십 년간 쇠를 쥐고 놓지 않았던 증거다. 젊은 시절에는 이 투박한 손이 부끄러웠다. 양복 입은 사람들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손을 등 뒤로 감추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손이 내 삶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증거다.

손가락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왼손 검지의 흉터는 스물두 살 때 공장에서 프레스에 찍힌 자국이다. 오른손 엄지의 굳은살은 사십 년간 용접 토치와 망치를 쥐었던 흔적이다.

이 손으로 세 아이를 키웠다. 이 손으로 아내의 마지막 손을 잡았다. 이 손으로 마흔다섯 평짜리 아파트의 모든 가구를 직접 짰고, 이 손으로 손자의 첫 자전거 보조 바퀴를 만들어줬다. 이 손의 역사가 곧 나의 역사다.


1973년 봄, 서울역에 내렸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들의 발이었다. 구두, 운동화, 하이힐, 샌들. 경상북도 경산 시골에서 고무신만 신고 살던 열다섯 살 소년에게 그 수많은 신발은 충격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발을 내려다보았다. 형이 물려준, 뒤축이 닳아 기울어진 검정 고무신이었다.

어머니가 쥐어준 천 원짜리 다섯 장이 바지 주머니에서 땀에 젖어가고 있었다. 짐이라고는 보자기 하나뿐이었다. 속에는 내복 두 벌, 양말 세 켤레, 그리고 어머니가 새벽에 싸준 보리밥 주먹밥이 들어 있었다.

“야, 비켜!”

뒤에서 누군가 나를 밀쳤다.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는 사이 사람들이 물처럼 흘러갔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수천 명의 사람 속에서 나는 완전히 이방인이었다.

종로 어딘가에 큰외삼촌 친구가 운영하는 철공소가 있다고 했다. 쪽지에 적힌 주소를 펴 들었다.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127-3번지.’ 글자는 읽을 수 있었지만, 그 글자가 가리키는 곳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두 시간을 헤맸다. 다리가 아팠다. 배가 고팠지만, 주먹밥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 잘 차려입은 사람들 앞에서 차마 보리밥을 꺼내 먹을 수는 없었다.

창신동 골목은 좁고 가팔랐다. 양쪽으로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어디선가 연탄 냄새가 났다. 고향 냄새와 비슷해서 조금 안심이 됐다.

‘동양철공소’라는 녹슨 간판을 발견했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문을 열자 쇳가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임 사장이 내 손을 잡고 뒤집어봤다.

“손이 고와. 일 안 해본 손이여.”

부끄러웠다.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 눈에는 내 손이 아무것도 안 한 손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석 달 안에 손이 거칠어지면 정식으로 쓰고, 아니면 고향 가. 알겠어?”

그날 밤 나는 철공소 한쪽 구석에 깔린 거적때기 위에서 잠을 잤다. 쇳가루가 코로 들어와 재채기가 났다. 천장의 갈라진 틈으로 별이 보였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장남이니까.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하니까.

철공소 일은 상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여섯 시에 아침밥을 짓고, 일곱 시부터 작업이 시작됐다. 처음 맡은 일은 쇠 운반이었다. 트럭에서 철판을 내려 창고로 옮기고, 가공된 제품을 다시 트럭에 싣는 일. 철판 한 장이 수십 킬로그램이었다. 하루 종일 나르고 나면 손에 피가 맺혔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손바닥에 굳은살이 잡히기 시작했다. 물집이 터지고, 딱지가 앉고, 다시 터지고를 반복하더니 어느 순간 피부가 두꺼워졌다.

“손 봐봐.” 임 사장이 어느 날 불쑥 내 손을 잡았다.

“제법 일꾼 손이 돼가네.”

그 한마디가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첫 월급은 삼천 원이었다. 숙식비를 빼고 내 손에 남은 것은 천오백 원. 그 돈을 가슴에 품고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어머니께. 첫 월급 드립니다. 많지 않지만 받아주세요.”

봉투에 천 원을 넣었다. 오백 원은 남겼다. 다음 달 편지지를 사야 하니까.

그해 겨울 나는 용접을 배웠다. 마스크 안으로 들여다보는 불꽃은 눈이 멀 듯 밝았다. 처음에는 직선도 제대로 못 그었다. 비드가 울퉁불퉁 튀어나오고, 구멍이 뚫리고, 쇳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밤마다 연습했다. 선배들이 퇴근하고 나면 버려진 철판 조각을 모아 용접 연습을 했다. 어느 순간 비드가 일직선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스물두 살에 사고가 났다. 프레스 작업 중이었다. 철판을 넣고 버튼을 누르는 단순한 일이었는데, 그날따라 기계가 이상했다.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 프레스가 내려왔다. 반사적으로 손을 빼다가 검지가 찍혔다.

고통은 나중에 왔다. 처음에는 멍했다. 검지 끝이 눌린 것을 보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피가 튀었다. 빨간 피가 철판 위로 흘러내렸다.

병원에서 검지를 다시 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아, 이제 끝이구나. 용접공으로서 내 인생은 끝이구나.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검지 감각이 둔해지자 토치 잡는 법을 바꿨다. 중지로 힘을 주고, 검지는 보조로만 썼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비드가 흔들렸다. 예전 같은 정밀함이 나오지 않았다.

매일 밤 연습했다. 다시 처음부터 배우는 심정이었다. 반년 뒤 기능경기대회에 나갔다. 이번에는 은상, 2등이었다.

시상식에서 심사위원이 내 손을 잡았다, 감각이 둔해진 검지를.

“자네, 대단하네. 이 손으로 이 수준을 냈다는 게 믿기지 않아.”

그 순간 깨달았다. 나의 결점이 나의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검지의 감각을 잃었기에 더 집중했고, 더 연습했고, 더 성장했다.


스물다섯 살에 순이를 만났다.

그녀는 구로공단의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여공이었다. 공단 앞 분식집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녀가 떡볶이를 먹고 있었는데, 소스가 입가에 묻어 있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그녀가 휴지로 닦고는 해맑게 웃었다. 그 웃음에 반했다.

석 달간 분식집에서 만났다. 같이 떡볶이를 먹고, 같이 걸어서 공단까지 갔다가, 각자의 공장으로 헤어졌다.

어느 날 용기를 내 그녀 앞에 손을 내밀었다.

“저… 내 손 좀 봐요. 검지에 감각이 없어요. 사고를 당했어요.”

숨기고 사귀는 게 비겁하다고 느꼈다. 결점을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도 괜찮으면 사귀고, 싫으면 이쯤에서 끝내려고.

순이가 내 손을 잡았다. 감각이 없는 검지, 그 손을.

“열심히 일하다가 다친 건데, 그게 뭐가 싫어요?”

그 말에 눈물이 날 뻔했다.

이듬해 우리는 결혼했다. 구로공단 근처의 작은 예식장이었고, 신혼여행은 없었다. 돈이 없었으니까. 첫날밤 월세 단칸방에서 순이가 말했다.

“우리, 열심히 살아요.”

그 약속을 평생 지켜왔다.

아들 민호가 태어난 건 결혼 이듬해였다. 병원에서 아들을 안았을 때, 손이 떨렸다. 갓난아기가 내 손바닥 위에 쏙 들어왔다. 거칠고, 검고, 손가락 하나가 불완전한 이 손 위에.

그 순간 맹세했다. 이 손으로 이 아이를 지키겠다고.

딸 은지, 막내 준서까지. 세 아이가 태어나고, 단칸방은 좁아졌다. 달동네 꼭대기 셋방으로 이사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서른두 살에 독립을 결심했다. 모은 돈으로 경기도 시흥에 작은 철공소를 차렸다. 간판도 제대로 못 달고 페인트로 ‘현대철공소’라고 썼다.

첫 달 매출은 칠십만 원. 재료비와 임대료를 빼면 남는 게 없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 손으로 내 운명을 개척하고 싶었다.


1997년에 위기가 찾아왔다. IMF가 터진 것이다. 건설 경기가 얼어붙고, 주문이 끊겼다. 열두 명의 직원, 열두 가족의 생계가 내 어깨에 달려 있었다.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보며 계산을 했다. 어떻게 해도 반년을 넘기기 어려웠다.

어느 날 순이가 봉투를 내밀었다. 열어보니 적금 통장이었다.

“결혼 전부터 모은 거야. 아이들 대학 등록금 하려고 했는데… 지금 쓰자.”

삼천만 원이었다. 십 년 넘게 순이가 푼푼이 모은 돈이었다. 생활비에서 조금씩 빼고, 명절 용돈을 모으고, 한 푼이라도 아끼며 모은 돈이었다.

그 돈을 받아 들었을 때 울었다. 순이 앞에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미안해, 여보. 미안해….”

“울지 마. 우리 같이 고비를 넘기자.”

그녀의 손이 내 등을 토닥였다. 설거지와 빨래와 아이들 뒤치다꺼리로 닳은 손. 내 손만큼이나 투박하고, 내 손만큼이나 아름다운 손이었다.

남은 직원들과 함께 버텼다. 월급을 반으로 줄이고, 공장을 줄이고, 아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았다. 새벽마다 조선소를 돌아다녔다. 문전박대당하는 일이 허다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반년 뒤 중형 조선소와의 계약을 따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순이가 말했다.

“당신 해냈네.”

“같이 해낸 거야.”


오래갈 것만 같았던 행복은 끝이 났다. 2012년 순이가 쓰러졌다. 대장암 3기였다.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했다. 순이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몸이 마르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는 공장 일을 줄였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순이를 돌봤다. 밥을 차리고, 약을 챙기고, 밤에는 옆에서 손을 잡고 잤다.

일 년간의 투병. 하지만 암은 재발했다. 순이가 말했다.

“집에 가고 싶어. 병원에서 죽기 싫어. 우리 집에서… 당신 옆에서….”

마흔다섯 평 아파트 안방에 병상 침대를 놓았다. 창밖으로 송도의 야경이 보였다.

“여보, 내가 먼저 가도… 너무 슬퍼하지 마.”

“무슨 소리야….”

“아이들 잘 챙기고, 손주들 이쁘게 봐주고, 건강하게 살아. 약속해.”

“…약속할게.”

2015년 봄, 순이가 세상을 떠났다. 내 손을 잡은 채로 눈을 감았다.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세상이 텅 빈 것 같았다. 마흔다섯 평이 그렇게 넓은 줄 몰랐다. 순이가 있을 때는 아늑했던 공간이, 혼자 남으니 공허하기만 했다.

한 달간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밥을 먹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있었다.

그러던 어느 새벽, 거울을 보았다. 누추한 행색이었다. 순이가 이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여보, 꼴이 말이 아냐. 밥 먹어. 씻어.’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날 아침, 밥을 지었다. 서툴렀다. 밥이 설익고, 국이 짰다. 하지만 먹었다. 먹으면서 울었다. 순이와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순이가 떠난 지 삼 년, 나는 공장 운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민호가 대표이사를 맡았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은 것이다. 나는 고문 직책을 달았지만,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없었다. 가끔 공장에 들러 직원들과 인사하고, 용접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다.

“아버지, 요새 뭐 하세요?”

딸 은지가 물었다.

“그냥… 지내지.”

“심심하지 않으세요?”

“심심하지.”

“그럼 손자 좀 봐주세요. 유치원 끝나고 데려와도 돼요?”

그렇게 손주 시윤이와의 시간이 시작됐다.

시윤이는 다섯 살이었다. 은지의 딸이다. 아빠를 닮아 눈이 크고, 엄마를 닮아 입이 작았다. 처음에는 낯을 가려 내 무릎에 앉지도 않았다.

“할아버지, 손이 무서워요.”

시윤이가 내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

“검은 것도 있고, 손가락이 거칠어서 그래.”

아이의 솔직함에 웃음이 났다.

“이건 말이야, 할아버지가 열심히 일해서 그래.”

“일하면 손이 이렇게 돼요?”

“응. 오래 일하면 돼.”

“시윤이도 나중에 이렇게 되나요?”

“글쎄, 시윤이가 뭘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시윤이가 내 손을 만졌다. 조심스럽게 다친 손가락을 쓰다듬었다.

“아프지 않아요?”

“지금은 안 아파.”

“다행이다.”

그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시윤이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유치원이 끝나면 데려와서 저녁까지 봐줬다. 공원에 가고, 그림을 그리고, 블록을 쌓았다. 늙은 할아버지가 어린 손녀와 바닥에 엎드려 레고를 조립하는 모습이 우스웠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했다.

“할아버지, 이거 만들어줘.”

시윤이가 레고 설명서를 가져왔다. 조선소 세트였다. 배와 크레인과 컨테이너가 들어 있었다.

“아빠가 사줬어. 근데 어려워서 못 만들어.”

설명서를 펼쳤다. 부품이 수백 개였다. 눈이 어두워진 나에게는 작은 부품 구별이 힘들었다. 하지만 손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할아버지가 해볼게.”

그날부터 한 달간 시윤이와 함께 조선소를 만들었다. 부품이 작아서 검지가 불편한 내 손으로는 힘들었다. 핀셋을 사용하고, 돋보기를 쓰고, 그래도 안 되면 시윤이에게 부탁했다.

“시윤아, 할아버지 대신 이거 끼워봐.”

“이거요?”

“응. 여기에.”

“똑딱!”

“잘했어.”

시윤이가 좋아했다. 할아버지를 도와준다는 것이 기뻐서 눈이 초롱초롱했다.

한 달 뒤 조선소가 완성됐다. 거실 탁자 위에 올려놓고, 둘이 한참을 바라봤다.

“할아버지, 이거 진짜 멋있다.”

“그래?”

“응. 우리가 같이 만든 거잖아.”

“그래, 같이 만든 거야.”

그 순간 깨달았다. 이것이 자랑하고 싶은 순간이구나. 대기업을 세운 것도, 수상을 한 것도, 큰돈을 번 것도 아니다. 손녀와 함께 한 달간 레고를 조립한 것. 다친 손으로, 어린 손을 빌려, 함께 무언가를 완성한 것. 그것이 내 인생의 자랑이다.


요즘 나는 목공을 배우고 있다.

동네 문화센터에서 중장년층 대상 목공 교실을 한다. 매주 수요일, 나무를 깎고 조립해서 가구를 만든다. 지금까지 의자 두 개, 책꽂이 하나, 작은 탁자 하나를 만들었다.

쇠를 다루던 손으로 나무를 다루니 느낌이 다르다. 나무는 쇠보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살아 있는 것 같다. 대패질을 하면 나무 향이 난다. 사포질을 하면 결이 드러난다.

“어르신, 솜씨가 좋으시네요.”

강사가 칭찬했다.

“옛날에 철공소 했거든요.”

“아, 그래서 연장 다루는 게 익숙하시구나.”

“뭐든 손으로 하는 건 비슷해요.”

내가 만든 의자를 시윤이에게 주었다. 작은 의자다. 시윤이 키에 맞췄다. 시윤이가 의자에 앉아 엉덩이를 실룩거렸다.

“푹신해요.”

“쿠션 넣었거든.”

“할아버지 짱이야.”

그 말에 웃음이 났다. 예순여덟 살에 손녀에게 ‘짱’이라는 말을 듣다니.

“시윤아, 할아버지가 더 만들어줄까? 뭐 갖고 싶어?”

“음… 책상!”

“책상? 크기가 어느 정도?”

“이만큼!”

시윤이가 두 팔을 쭉 벌렸다. 꽤 큰 책상이다.

“알겠어. 만들어줄게.”

“진짜요? 약속!”

“약속.”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시윤이의 작은 새끼손가락이 내 굵은 손가락을 감았다.


예순여덟 해를 살았다.

열다섯에 서울에 올라와 고무신 신고 서울역에 섰던 소년이, 이제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됐다.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기쁜 일, 슬픈 일, 뼈아픈 일, 가슴 벅찬 일.

돌이켜보면 자랑할 만한 순간이 하나가 아니다.

첫 월급을 받아 어머니께 천 원을 보내던 날. 기능경기대회에서 다친 손으로 은상을 받던 날. 순이에게 청혼하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던 날. 아이들이 태어나던 날. IMF를 버텨내고 다시 일어서던 날. 마흔다섯 평 아파트 열쇠를 받아 들던 날.

하지만 가장 자랑하고 싶은 순간을 꼽으라면, 나는 조용한 일상의 순간들을 꼽겠다.

순이가 웃으며 내 손을 잡아주던 순간. 아이들이 식탁에 모여 밥을 먹던 순간. 손녀가 “할아버지 짱이야”라고 말하던 순간.

무엇보다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것은 투박한 내 손이다. 검버섯 박힌 손, 굳은살 박힌 손, 다친 검지손가락. 이 손의 역사가 내 자랑이다.

내일은 시윤이 책상을 만들러 목공 교실에 간다. 큰 책상이니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천천히, 정성껏 만들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또 자랑하고 싶은 순간이 생기겠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손이 움직이는 한, 자랑거리는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그게 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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