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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 안 노트에 담긴 인생의 희로애락 "오늘도 편지 한 줄 부탁드려요!"
- “시간 괜찮으시면 편지 한 줄 써주시겠어요?” 2019년 가을, 그렇게 ‘길 위에서 쓰는 편지’가 시작됐다. 삭막한 도시, 바쁜 일상을 오가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택시 안에서 말이다. 기사가 건넨 노트 안에는 그동안 택시를 드나든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사각사각 쓰여나갔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따스한 한 줄에 위로를 주고받는 승객들, 그리고 그들의 메신저를 자처한 택시 기사 명업식(62) 씨. 오늘은 또 누가, 어떤 사연으로 노트를 채워나갈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그는 오늘도 운전대를 잡는다. Q. 뒤늦게 택시 운전 일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해오셨고, 지금의 일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택시 운전을 한 지는 1년 8개월 정도 됐어요. 과거에 축협중앙회의 경제 파트에서 수입 소고기 관련 업무를 했었죠. 그 경험으로 수입 소고기 유통업을 해오다가 일이 좀 잘못돼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마냥 쉬기보다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택시 운전을 시작했죠. 처음 1년은 퇴사를 생각할 만큼 일이 힘들었습니다. 손님들과의 마찰도 스트레스였고, 아무래도 좀 위험부담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더 해보자, 마음을 붙잡으면서 ‘다른 택시와는 다른 손님들을 위한 서비스가 뭐 없을까?’ 고민하게 된 거죠. Q. 손님들에게 노트를 건네 편지를 쓰게 하실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앞서 말한 차별화된 서비스로 낸 아이디어였죠. 노트를 준비해서 손님들에게 글을 쓰게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은 예전부터 해오긴 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손님 중에 문학을 전공하신 것 같은 분이 타셨어요. 그래서 제 계획을 살짝 말씀드렸더니, 좋다고 하시더군요. 마침 노트의 제목을 정하지 못하던 차라, 그분께 좀 지어주셨으면 하고 부탁드렸죠. 그렇게 강서구에서 종로구까지 가시는 동안 한참 생각하시더니, ‘길 위에서 쓰는 편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 알고 보니 그분이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지으신 박준 시인이시더군요. 덕분에 계기가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됐네요. Q. 요즘 사람들은 낯선 이와의 만남을 다소 부담스러워하기도 하죠. 손님들에게 노트를 건네실 때 반응들은 어떤가요? 무조건 노트를 건네기보다는 상황을 살펴보고 응해주실 것 같은 손님에게 몇 분 정도 후에 권유 드려요. 그러면 처음엔 ‘뭐지?’ 하며 망설이다가 앞서 다른 분들이 써놓은 글을 읽으시곤 자신도 쓰겠다고 하시죠. 한 70~80% 정도는 써주십니다. 어떤 분은 짧은 거리를 가시는데 시간이 부족해 글을 못 쓰셨다고 제 번호를 물어 가져가셨어요. 일주일 뒤에 연락이 와서 개포동에서 마곡동을 택시 타고 가시며 글을 써주셨죠. 요금이 계속 올라가는데도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펜을 놓지 않는 분들도 있답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다면요? 한 손님이 생각나네요. 오빠가 둘이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모두 돌아가신 거예요. 택시를 탄 그날이 제삿날이라 산소를 가신다고 했는데, 편지를 쓰시면서 펑펑 우시더라고요. 사실 그분뿐만 아니라 글을 쓰다가 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항상 뒷좌석에는 휴지를 비치해둬요.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권고사직 당하신 분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죠. 특히나 요즘은 경기가 많이 어렵잖아요. 저도 그렇고, 다른 손님들도 서로의 사연을 나누며 공감하고, 안쓰러워하고 그런 것 같아요. Q. 손님들의 편지를 통해 얻은 긍정적인 변화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택시 운전을 시작하고 처음 1년에 비해 마음도 여유로워지고, 스트레스도 덜 받게 됐다는 거예요. 편지를 쓰는 분마다 감사 인사를 마다치 않고, 이렇게 생각할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들 하시는데, 그게 또 저는 감사하고, 보람을 느껴요. 그분들을 통해 용기와 위로도 정말 많이 얻었고요. 무엇보다 세상이 각박하다고들 하는데, 이렇게 정을 나누는 속에서 아직은 좋은 분들이 훨씬 많다는 걸 발견하고 살죠. Q. 입장을 바꿔 만약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편지를 부탁한다면 어떤 내용을 적으시겠어요? 저도 어느덧 환갑이 지났으니, 내가 살아온 경험담이나 생각을 쓸 것 같아요. 살아보니 욕심을 버리는 게 참 중요하더군요.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고요. 어제 열심히 살았으니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도 쓰고 싶네요. Q. 앞으로도 편지를 계속해나가시겠죠? 또 다른 계획이 있나요? 벌써 노트가 7권째입니다. 지금 5권을 엮어 ‘길 위에서 쓰는 편지’가 나왔는데, 아마 그 뒤로 쌓이는 편지들로 또 책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렇게 택시를 하다가 그만두게 되면 그동안 미뤄뒀던 서예도 좀 배우고,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싶네요. 그동안 일하느라 친구가 화선지를 한 박스를 선물해줬는데, 여태 한 장도 못 썼어요. 그동안 한 장 한 장 채워나간 ‘길 위에서 쓰는 편지’처럼, 은퇴 후에는 그 화선지를 나 장 한 장 채워나가야죠. Q. 끝으로 그동안 편지를 보내주셨던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물론 편지를 써주시면 그때그때 표현은 하지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내 인생에 큰 도움을 주신 분들이에요. 덕분에 제 이름 석 자가 실린 책도 나왔으니 얼마나 영광인가요. 제게 이런 행운을 주신 손님들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으니 살펴봐 주시고, 또 언제고 다시 모시게 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 2020-10-0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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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공원 옆 행복한 우동가게의 그녀
- 우동집 앞에는 공원이 있었다. 11월의 찬바람에 느티나무 잎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벗어던져야 할 지난날의 안락했던 생활의 옷처럼 그렇게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공원 안에는 낡은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고, 수북하게 쌓인 나뭇잎 위에 소주병이 몇 개 던져져 있었다. 낭만을 말하기에는 현실감의 무게가 너무 큰 풍경이었다. 누군가 먹고 버린 소주병이 낙엽 위에서 뒹굴었다. ‘공원이 있어서 다행이야. 이제 이 공원의 느티나무와 사귀어 친구가 되어야지. 내가 가는 곳마다 다행히도 나무들이 늘 있었어.’ - '행복한 우동가게' 중에서. 비로소 평범함이 좋다 소설 '행복한 우동가게'의 강순희 작가는 전남 강진에서 평범하고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며 성장했다. 문학소녀였던 작가가 결혼과 함께 충주 땅에 살면서 안정적이고 평온한 일상은 여전히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 오지게 고단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평범치 않은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중학교 때 가출도 해봤어요. 별다른 이유는 아니고 늘 살던 곳이 지루했고, 엄마랑 아버지랑 늘 같이 사는 평범함이 싫었어요. 그러나 보름 만에 돌아왔죠. 쬐끄만한 아이의 머릿속에 평범함이 싫다 해서 달라지는 건 불편함인걸 알았나 봐요. 하하... 이젠 미래에 대한 반전을 기대할 생각도 없고. 비로소 지금의 평범함이 너무 좋아요. 내 인생에 더 이상의 반전이 없길 바라요." 느닷없는 파도에 실리다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애환이 서린 IMF는 강순희 작가의 일상에도 태풍처럼 덮쳐왔다. 그리하여 세상 어려움 모르고 살던 그녀는 어느 날 밀가루 풀풀 날리는 주방에서 더딘 손으로 반죽을 하고 우동을 끓여내기 시작했다. "느닷없는 우여곡절로 마주한 세상은 녹록지 않았죠. 남들이 보기에 열심히 살아온 것 같지만 그러나 지금까지 내 힘으로 산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힘이 날 이끌고 온 겁니다. 우동 먹으러 오는 분들, 그리고 글 쓰는 이들의 모임이나 성당의 신부님 말씀을 비롯해서 늘 좋은 말들을 많이 들어요. 듣는 것만이 내 할 일이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나 보고도 말을 좀 해보라고 해요. 뭐 근사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딱히 할 말이 없어요. 다만 '사는 게 내 힘대로 안되더라, 다만 남아있는 내 인생도 평범하게 살 수 있다면 최고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런 말만 하고 돌아왔어요." 해탈한 듯 편안하게 소리 내어 웃는다. 강순희 작가는 소설가의 꿈을 키우던 시절을 보내고 1996년 평화신문 평화문학상과 1997년 문예사조 '이발사는 가위로 가지치기를 한다'로 등단했다. 그 후 소설 '백합 편지' 등 차분히 창작활동을 하던 중 예기치 않은 삶의 풍파에 떠밀려 시작한 우동가게가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내 삶이 지극히 소설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다양한 말들을 남기고 간 사람들의 하나하나의 삶 또한 소설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안 쓰곤 못 배기는 이상한 우동가게 아줌마는 어느 날인가부터 우동을 끓이다 조금만 짬이 나면 글을 쓰게 되었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우동소설을 쓰다 "이전에는 소설을 썼죠. 문학 소설을 썼는데 내 취향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나만의 글을 써요. 문학 장르의 틀에 맞는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나만의 우동소설을 씁니다. 정석이나 기본을 배제하지는 않으니 반란은 아니겠죠. 한때 난(蘭)을 그렸어요. 선생님께서 '난이라는 식물의 기본이나 속성을 알고 쳐야지 난이 나오지' 말하셨어요. 그렇게 우동소설을 쓰고 있어요." 문학과 생활의 구분이 없는 나날 속에서 틈틈이 적어둔 우동 가게의 단상이 '행복한 우동가게' 라는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우동가락을 뽑아내며 함께 부대끼고 삶의 애환을 나누던 주방 여인들의 고된 삶의 체취를 순한 눈으로 풀어놓은 두 번째 이야기, 이어서 우동 가게에서 내다보이는 작은 공원의 느티나무와 소통하며 나눈 위안의 시간을 글로 빚은 세 번째 이야기, 이른바 그녀의 우동소설이다. "우동소설이 언뜻 수필 같지만 소재와 주제가 거의 똑같아요. 조각보처럼 이것저것 옴니버스로 엮어서 책을 만든 것입니다. 이젠 기회가 되면 펴내려고 한 사람을 배경으로 써 놓은 또 다른 장편소설이 있어요. 우동을 끓이면서 소설 쓰는 일은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해서 어려움은 있어요. 제겐 책이 나오고 나면 이어질 책을 또 준비해 두어야 하는 숙제 의식 같은 게 있어요. 요즘도 원고 청탁이 오면 그제야 써보려고 머리를 짜내며 집중하려 하면 진전이 잘 안돼요. 시간에 쫓기며 책임을 완수하고 싶지 않아서 가능한 미리 준비해 두는 편이죠. 나만의 고질적인 준비성이나 책임감도 한 몫 한다고 할 수 있어요. 습작이 되고 말지도 모르겠지만 숙제를 잘하고 싶은 거죠." "그러나 써내고 나면 잊어버리려 합니다. 써낸 후엔 독자의 몫이니까요. 전에 책 나오고 출판기념 모임이 있었어요. 진짜 하고 싶지 않았어요. 자칫하면 내 자랑이 될 수 있고 책과 내 모습에서 현실감이 떨어지는 시간이니까요." 지금은 충주에서 활동하는 시인이나 여류 등단 작가들과 '문향회‘ 활동을 하며 소통을 한다. 연수동 우동가게 옆 느티나무가 만들어낸 시인의 공원에서 시 낭송회도 하고 문향회의 밤을 열기도 한다. 우동집을 향해 손을 내민 소박한 사람들의 악수 작가의 우동가게에 들어서면 놀라운 풍경에 멈칫하게 된다. 가게 내부의 모든 벽에는 덕지덕지 붙어있는 메모들로 도배되어 있다. 우동을 먹고 가는 사람들이 털어놓은 고단한 삶과 넋두리가 빼곡히 적혀있어서 다가가 읽는 맛이 특별하다. 무명 시인의 가슴 저미는 속 깊은 이야기, 아픔과 슬픔 가득한 몇 줄 글의 애잔함, 누군가의 사랑의 언어, 또는 반짝이는 축하의 말이나 행복한 재잘거림들이 줄줄이 겹쳐서 펄럭인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내 이웃들의 이야기다. "우동을 먹고 메모쪽지를 남기고 가면 한 장 한 장 찬찬히 읽어봐요. 사람에 대한 진정성을 봅니다. 이웃 사람이거나 또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나 글을 쓰는 사람 등 다 자기의 말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일필휘지 써낸 글에선 자칫 자신감만 엿보일 수도 있어요. 눈물로 쓴 듯 마음 저린 몇 줄도 있고요. 휘갈겨 썼거나 마음 담아 꼭꼭 눌러 쓴 것이나 그 분들이 한 장씩 써 놓고 간 것이 그 사람의 대표작이 될 수도 있기에 소중합니다. 내게 힘을 주는 이유죠. 우동, 사람, 느티나무, 강 작가의 행복의 쓰리콤보 그래서 책 속에는 시원한 우동국물을 우려내고 우동가락을 뽑아내던 사람들과 함께 나누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시간을 견디며 살았던 날에도 다녀가신 분들이 두고 간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속 깊이 그 진심을 담아 두었다. 마음이 심란할 땐 창밖으로 보이는 시인의 공원에 나가면 느티나무가 그녀의 말귀를 알아들었다. 이런 것들이 작가에겐 더없이 충분한 행복의 쓰리콤보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가 하고 있는 문학이나 그림이나 사진 등 예술은 어쩌면 사치일지 몰라요. 물론 그들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너무나 귀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지만요. 그렇지만 누군가를 위한 휴머니즘이라고 또는 약자를 위한 대변이라고 하면 자칫 오류가 될 듯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매체를 통해 굳이 표현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진정한 소설가고 멋진 사람이다 싶어요. 진실을 안고 가잖아요." 가게 안에 붙어있는 작가의 방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나지막한 앉은뱅이 책상 위에 노트북이 열려있었고 몇 권의 책과 필기도구들이 편하게 흩어져 있다. 사람들이 두고 간 이야기들이 그녀의 소설 속으로 저장되고 있는 중일 게다. 다 받아들일 수 있는 품 "이제는 조용히 살고 싶어서 이전의 우동 가게에서 떨어져 뒷골목으로 옮겨왔어요. 서른아홉에 시작한 첫 가게에서 다시 고요하게 이 골목으로 스며든 게 나이 육십이었어요. 이곳도 생각만큼 고요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조용하게 이 상황을 즐기려 합니다." 어느덧 시니어로서 넓어진 품도 생겼고 여유로움도 생긴 표정이다. 그 얼굴에서 치열함이나 조바심이 엿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내민 우동소설에 저자 사인을 해주며 그녀는 주방을 향해 파전과 막걸리를 청한다. "내게 힘든 시간이 있었다고 하지만 신은 너무도 평등해요. 나도 편하게 누리며 잘 살던 시절이 있었죠. 어느 날 갑자기 불어닥친 태풍의 여파로 어쩔 수 없이 한동안 가족들이 해체되고 생계를 위해 우동 가게를 시작한 게 서른아홉 살 때였어요. 하루하루가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죠. 그러나 젊었으니까 마흔 중반까지는 버틸만 했어요. 생계를 위해서 힘들게 일은 하지만 기운이 있고 젊고 이쁜 때였잖아요. 갱년기가 지나고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며 50이 넘으니까 여자라기보다는 비로소 사람으로 살겠다는 생각이 부쩍 들더라고요." 밤새 우려낸 깊은 우동국물의 담백함이 배인 그녀의 미소가 환하다. 이젠 그 품으로 예기치 않은 세월이 와락 다가온다 해도 두 팔 벌려 받아들일 여유가 생겼다. 세월이란 게 우리에게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것만이 아니란 걸 강 작가는 말한다. "이제 60이 넘었어요. 쉰의 아홉수를 지나고 60 초반엔 나이가 나를 위축시키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나이 먹는 게 차츰 나쁘지만은 않아요. 내 나이 63세. 이젠 누군가 객기를 부리고 무슨 말을 해도 잘 받아들여요. 나랑 다르다고 불편해서 우물쭈물하지 않고 그렇구나 이해하고 빨리빨리 받아들일 수 있어요. 이제는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 하하하..." △갬성 충만, 주변에 가볼 만한 곳 -카페 식물원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초록의 푸릇푸릇함과 유니크한 의자와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한 옆의 라운지로 나가보자. 바람이 통하는 야외 공간의 자연 속에서 건강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꽃을 피운 선인장과 높은 천정에 닿는 떡갈나무와 함께 편안함에 잠길 수 있는 힐링 포인트다. 커피, 녹차라떼 등의 다양한 음료가 있고 와플이 맛있는 충주의 감성 카페다. *주소:충주시 연수동 1154 -정봉기 아뜰리에 충주는 온천지역으로 알려진 수안보가 아주 가깝다. 충주 사람들은 수안보 온천물에 세수하러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충주에서 조금만 달리면 수안보에 조각가 정봉기 님의 작업실과 갤러리가 있다. 이탈리아 유학 후 수안보 숲 속에 자리 잡은 작가의 안목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입구의 마당에서부터 조소 작품이 가득하다. 뜰에서 바람 쐬며 구경하다가 카페에 들어가면 독특한 내부구조와 조각 작품들로 눈이 호강한다. 인체와 꽃을 오브제로 한 조소 작품들이 창을 통해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전시되어 있다. 2층 테라스 테이블에 앉으면 푸른 숲 속에 잠긴 채 계곡 물소리를 듣는 시간이 된다. *주소: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관동 길 74-1
- 2020-03-11 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