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800m 고지에 덩그러니 농장 하나 있다. 높고 외지고 고요한 곳이다. 속세가 아스라이 멀어지는 산간이다. 사위로 펼쳐지는 풍광은 콘테스트에서 뽑은 귀재처럼 잡티 없이 빼어나다. 손에 잡힐 듯 구름은 가깝고, 정적에 휩싸인 숲은 청신한 기운을 뿜는다. 환경이 이러니 사로잡힐 수밖에. 김영혜(58, 놀숲치유농원 대표)는 한동안 남편과 함께 귀농지 물색을 위해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김천시 증산면 고지대의 수려한 풍광에 꽂혀 낙점하고 귀농했다. 순수한 자연과 함께 평온한 여생을 누리기에 이보다 나은 곳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서.
귀농 전 김영혜는 부산에서 영어학원 강사 겸 원장으로 뛰었다. 잘나가는 학원이었다. 규모를 늘릴 필요성이 대두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마음은 다른 데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에겐 남편과 공유한 오래된 꿈이 있었다. 적당한 시점을 골라 산골로 들어가자는 소망을 지니고 살았던 것인데, 50대에 접어들 즈음 소망의 농도가 짙어져 더 미룰 수 없었다. 유한한 인생을 도시에서 미적거리며 소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쯤에서 더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산골로 들어가자!’ 부부는 그렇게 의기투합했다. 산골의 자연과 동행하며 부부만의 유토피아를 일구는 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일이야말로 삶을 낭비하지 않는 길이라 본 것 같다. 주변 지인들은 귀농을 뜯어말렸다지. 그러나 그의 내심엔 이미 산골이 꽉 박혀 더 고려할 이유가 없었다.
“망설이다가 꿈을 이룰 기회를 영영 놓칠 수 있다고 봤다.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시골 생활을 시작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좋은 터를 찾아낸 것이다. 맨 처음 한 건 집짓기였다. 남편이 먼저 이곳에 들어와 1년여 동안 토목공사를 하고 건축을 완료했다. 남편은 건축 감리사다. 그래 모든 공사를 직접 주도했다. 공사를 마친 뒤인 2012년엔 나도 들어와 합류했다.”
귀농인들은 흔히 조언한다. 집을 짓기 전에 가령 셋집을 빌려 한동안 살면서 농촌과 농사의 물정을 미리 익혀두라고. 그게 차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영리한 방법이라고.
“우리는 아무런 사전 준비도 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다. 상당히 무모한 도전을 한 셈이다.(웃음) 귀농교육도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 받기 시작했다. 농업기술센터나 농민사관학교 등을 통해 부지런히 공부했다. 하지만 ‘무작정 귀농’엔 어쩔 수 없는 누수가 발생하더라.”
귀농을 쉽게 생각했다?
“그렇다. 철저한 준비를 해도 시행착오가 발생하는 게 귀농인들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우리는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일단 성공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원했던 경관이 있는 곳에서 원했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원하는 이에게 이곳은 이상적인 공간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도 날마다 바라보다 보면 질린다.(웃음)
“처음엔 자연 풍경에 벅찬 만족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그건 잠시 맛본 행복감에 불과했다. 지금 돌아보면 초기엔 자주 우울했던 것 같다. 난 도시에서 매우 활동적으로 살았다. 그런데 아는 이 없지, 얘기할 사람 없지, 마을과 동떨어진 외딴집에서 여러모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직 남편을 괴롭히는 게 일이었다.(웃음)”
남편은 구미시로 출퇴근해
산 절반, 하늘 절반으로 이루어진 이곳의 훤칠한 경관은 가히 압권이다. 외진 암자처럼 고즈넉해 은자를 선망하는 사람에겐 더 적격이리라. 세상의 아귀다툼과 소음이 침범 못 할 곳이니 마음 하나 온전히 다스리며 한 그루 나무처럼 조용히 살기에 적당한 장소다. 터를 고른 부부의 눈썰미가 평범치 않다. 김영혜는 남편과 함께 도시에서 오랫동안 명상 수련을 했다. 그 내공으로 삶터와 풍경을 보는 안목이 열렸나? 그러나 어디에 살든 돈 문제가 따개비처럼 들러붙는 법. 자연과 교제하며 명상이 있는 소박한 생활을 추구하더라도 경제가 뒷받침돼야 지속 가능하다. 그래 그는 농사로 소득을 얻기로 하고 귀농을 한 게 아닌가. 그런데 막연히 생각했던 농사라는 경기장에 걸린 허들이 한둘이 아닌 걸 그는 뒤늦게 알았다.
“농사로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농사에 문외한이라 재배 기술도 서툴렀다. 따라서 초기엔 수입이라는 게 아예 없었다. 들어오는 돈은 없고 나가는 돈만 있어 고민이 많았다. 무슨 수를 찾지 않으면 상황이 매우 나빠질 수 있어 불안했다. 그래 귀농 2년이 지날 즈음 남편이 구미시에 사무실을 내고 감리사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이곳에서 출퇴근하면서. 불가피한 대안이었다. 상황이 개선되면 곧바로 농사에 복귀하기로 했으나 남편은 지금도 구미로 출퇴근한다.(웃음)”
농사 작목은 어떤 걸 선택했나?
“고추, 들깨, 두릅 등을 재배했지만 소소한 텃밭 농사 수준에 그쳤다. 주 작목은 오미자다. 현재도 오미자 농사를 계속하고 있다.”
오미자를 선택한 이유가 있겠지?
“귀농교육을 통해 초심자도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게 오미자 농사라는 걸 알고 시작했다. 마침 집 뒤편에 야생 오미자밭이 있어 그걸 기반으로 삼았다. 오미자 농사는 초기 자본과 인력도 덜 든다. 오미자 넝쿨이 타고 올라갈 수 있는 망을 설치해주고, 풀을 잡기 위한 차광막이나 부직포를 설치하면 되기 때문이다.”
재배 기술을 숙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첫해 농사에선 거둔 게 없었다. 모종이 죽거나 순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고전했다. 이듬해엔 다소 나아졌지만 여전히 작황이 저조했다. 해결책은 재배 실력을 키우는 데 있다는 걸 깨닫고 멘토를 모셔 도움을 받았다. 순을 관리하는 요령, 효율적으로 물과 거름을 공급하는 방법 등 재배에 따른 모든 기법을 공부했다. 흙의 과학을 배우기도 했고, 토질 개선을 위해 토양검사도 했다.”
비로소 실력을 갖춘 농부 대열에 올라선 셈이었겠다.
“프로 농부들에게 농법을 익히면서 작황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오미자 농사 3년 차부터 비로소 튼실하게 달린 결실을 거둘 수 있었으니까. 이후 10여 년 차에 이른 현재까지 고품질 오미자를 무난하게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소득 효과는 여전히 미미하다.”
연평균 매출이 얼마나 되기에?
“500평 규모의 오미자밭에서 2000만 원 정도 올린다. 이건 재배 면적 대비 최대치 매출이다. 그러나 안정적인 수입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오미자 수익 외에 농장에서 발생하는 다른 소득은 없나?
“민박업을 하고 있다. 힐링 또는 치유를 테마로 한 민박이다. 그런데 이 역시 아직 궤도에 올라서지 못했다. 결국 남편이 도시에 나가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부족한 수익 구조를 보완하고 있다. 농장 수입으로만 따지면 지난 10여 년간 연속적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도시에서보다 생활비가 한결 덜 드는 게 시골 생활이라고 한다. 정말 그렇던가?
“귀촌의 경우엔 생활비 절감이 가능할 테지만, 귀농엔 이모저모 비용 지출이 많다. 이를테면 농사 장비와 시설 설치 등에 드는 재투자 자금이 필수적이다.”
“끝까지 달려 꽃피어보고 싶다”
김영혜는 귀농 10여 년을 이렇게 결산한다.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 비록 농업소득은 아직 시원치 않지만 애초 원했던 삶의 토대를 구축했으며, 원했던 자연과의 동행을 지속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생태환경 속에 살고 있음에 안도하는 것 같다. 아쉬운 건 남편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도시에 직장을 두게 한 점이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이는 이상적인 분업의 형태다. 똘똘한 전략이다. 하지만 그는 부부가 함께 농장일 하나에 몰두할 수 있길 바란다. 귀농의 목적이 애초 거기에 있었으며, 그래야만 진정한 만족을 구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고, 따라서 농업소득을 안정적인 궤도 위에 올려놓아야만 하는 것이다.
파도에 시달리고서야 튼튼한 뱃사공으로 자란다. 시련이 성숙의 효모인 건 농사도 마찬가지. 그는 막연히 뛰어든 농사의 경험을 통해 한결 냉정한 눈을 얻었다. 지나온 날들을 점검해 한결 당차고 실속 있게 행진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찾아냈다. 바로 치유농업이다. 치유농업은 농산물만이 아니라 농가가 보유한 경관과 문화까지 자원으로 삼아 심신의 교정이 필요한 이들에게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산업이다. 요사이 등장한 신종 트렌드다. 그는 이미 치유농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치유농업에 필요한 여건을 더 보완할 참이지만 기본 틀은 잡혔다. 숙소, 심신단련실, 체험교육장이 있으며, 산책로와 숲속의 명상 공간도 구비했으니까. 부부가 오랫동안 해온 명상 수련 경력도 자산이다. 무엇보다 유능한 자산은 자연환경 그 자체라 할 수 있고.”
널찍한 농원 전역이 매우 정갈하다. 얼마나 많은 땀을 쏟아야 이런 모습이 나올까. 너무 과도한 근로에 얽매여 사는 건 아닌가?
“일이 버거울 때도 있다. 풀을 뽑다가 연골이 찢어지기도 했다.(웃음)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시간을 낭비한 감이 있다. 사실 귀농 생활에 탄력이 붙은 건 5년 전부터다. 이제 도약할 시점이다. 나에겐 성취욕이라는 게 있다. 현재에 눌러앉는 성격이 아니다. 치유농업을 중심에 둔 개성적인 농원으로 키워나갈 참이다.”
이 농원은 매력적인 자연 풍경만으로도 호감을 준다. 치유농업을 위해 어떤 점을 보완할 계획인가?
“해발고도가 높아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는 약점이지만 오히려 장점으로 어필할 수도 있겠지. 관건은 홍보에 달려 있다고 보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귀농을 통해 뭔가 변한 건 없나? 내면의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MBTI(성격 유형 검사)로 보니까 ‘사고형 인간’에서 ‘감정형 인간’으로 바뀌었더라. 이 깊은 산골에 들어온 건 외부와 심리적 거리를 두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귀농이 주는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외향성이 강화된 것 같다. 한번 뜻을 크게 펼쳐보고 싶다는 열망, 끝까지 달려 완전하게 활짝 꽃피어보고 싶다는 심리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고나 할까.”
단지 일에 파묻히기만 하면 ‘노잼’이다. 방향이 뚜렷하고 행보엔 격한 구석이 있어야 생동한다. 그는 질주하고 싶은 것이다.
김영혜가 주는 귀농 Tip
•사전에 귀농의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라. 대충 내려와서 대충 농사에 뛰어들었다간 쓴맛을 볼 수 있다. 농사 작목, 규모, 자금 능력, 유통 문제 등에 관한 구상은 물론 실행 방안을 미리 마련해두자.
•귀농교육을 미리 충분히 받아도 현장에선 헤맬 수 있다. 하물며 사전 귀농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귀농이라면? 이건 귀농 필패 비결에 속한다.
•원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면 고독해질 수 있다. 그러나 깊은 관계는 가능치 않다. 시골 정서와 도시 정서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미리 전제하면 소소한 상처 정도는 가볍게 넘어설 수 있다.
•무엇보다 내 몸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 쓰자. 몸 망가지기 쉬운 게 농사니까. 특히 풀 뽑기를 하다 관절염을 얻을 수 있다. 풀을 뽑을 땐 쪼그려 앉지 말고 퍼질러 앉아라.
•자력으로 수준 높은 농사 기술을 터득하기 어렵다. 반드시 멘토를 만들어 도움을 청하자.
코로나19 유행이 주춤해지면서 소비자 맞춤 여행 상품이 곳곳 출시되고 있다. 이 가운데 농촌진흥청은 국내 여행 활성화와 농촌체험 여행 참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농촌으로 떠나는 작은 여행’ 상품인 ‘농촌체험 여행지 8선’을 지난 6월 소개했다.
이번 여행상품은 소모임 단위 여행객이 농촌교육농장, 농촌체험농장에서 1박 2일 동안 체험·관광·식사·숙박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일정으로 설계됐다. 각 농촌교육농장, 농촌체험농장은 지난 4월에 실시한 ‘농촌체험·관광 활성화 프로그램’ 공모에서 선정된 곳이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농촌문화, 자연경관, 지역 먹거리 등을 소재로 한 농촌체험 여행에 관심이 높은 40~60대 여성 취향에 맞춰진 점이 특징이다”고 설명했다.
여행지 8곳은 △강원 강릉 ‘해품달’ 농장 △강원 횡성 ‘횡성 예다원’ △전북 고창 ‘책마을 해리’ △전남 화순 ‘화순허브뜨락’ △경북 김천 ‘송알송알 산골이야기’ △경북 안동 ‘토락(土樂)토닥’ △경남 고성 ‘콩이랑 농원’ △제주 서귀포 ‘폴개 협동조합’이다.
△강원 강릉 ‘해품달’ 농장
강원 강릉 ‘해품달’ 농장은 4만 여권의 책으로 꾸며진 실내장식과 야외 조형물이 인상적인 곳이다. 2~4인이 머물 수 있는 쾌적한 숙소와 대형버스를 개조해 만든 이색 숙소도 마련되어 있다.
맷돌로 직접 커피콩을 갈아 마시는 체험과 뗏목 타기, 농장 산책 등을 할 수 있으며 야간에는 모닥불을 피우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잔디밭에서 밤하늘의 별을 관측할 수 있다. 둘째 날 조식으로 초당순두부가 제공된다. 또한 오죽헌, 주문진 수산시장 등 지역 명소와 가까워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강원 횡성 ‘횡성 예다원’
강원 횡성 ‘횡성 예다원’은 해발 300m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예절교육 지도사이자 차(茶) 연구가인 농장주에게 다도(茶道)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찻잎을 덖어 차를 만드는 제다(製茶)체험, 계절별 전통음식 만들기, 둘레길 걷기 등 체험 거리가 풍성하다. 또한 찜질방 이용, 별 보기 등 심신 힐링을 할 수 있다. 주변 볼거리로는 횡성호수가 있어 산책하기 좋다.
△전북 고창 ‘책마을 해리’
전북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고창 ‘책마을 해리’는 폐교된 초등학교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된 곳이다. 이색적인 도서관들이 많고, ‘읽고 쓰고 펴내는 인생 책 농사’를 주제로 나만의 책을 만들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지역 명소인 선운사, 고창읍성, 상하농원 등과 연계하면 1박 2일 일정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전남 화순 ‘화순허브뜨락’
전남 화순 ‘화순허브뜨락’ 농장은 약 4000평에 달하는 정원에 꽃과 허브가 가득한 곳으로 안온한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다. 둘레길 걷기나 허브 오일·허브 소금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로 만든 향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숙소는 편백나무방, 황토방으로 나뉘어 있다.
△경북 김천 ‘송알송알 산골이야기’
경북 김천 ‘송알송알 산골이야기’ 농장은 500미터 고지의 호젓한 산골에 있다. 산세가 수려해 야영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곳이다. 천연염색 스카프 만들기, 숲속 걷기 후 새송이버섯 수확 체험을 할 수 있다. 김천을 대표하는 수도산 자작나무숲, 사찰 청암사, 용추폭포 같은 지역 명소와 연계하면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경북 안동 ‘토락(土樂)토닥’
경북 안동 ‘토락(土樂)토닥’ 농장은 ‘카페형 치유농장’을 지향하는 곳으로 도자기 공예를 체험하며 나만의 접시를 만들 수 있다. 농장주가 요리한 ‘안동한우불고기’에 텃밭에서 딴 쌈 채소를 곁들이는 저녁 식사가 별미다. 밤에는 사과나무 장작으로 만든 모닥불 주위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도보로 낙동강 산책길, 마애솔숲공원을 갈 수 있고, 차로 15분만 이동하면 하회마을, 병산서원 등 지역명소에 갈 수 있다.
△경남 고성 ‘콩이랑 농원’
경남 고성 ‘콩이랑농원’은 1000개가 넘는 항아리가 길게 늘어선 모습이 진풍경인 곳이다. 콩으로 만든 다양한 전통 장류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고, 고추장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농장 인근에는 영부저수지 산책길, 민간정원인 그레이스 정원 수목원, 상족암 군립공원 등 다양한 걷기 여행길이 있다.
△제주 서귀포 ‘폴개 협동조합’
제주 서귀포 ‘폴개(뻘이 있는 갯벌이라는 제주 방언) 협동조합’은 제주 귀농인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다. 제주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한 이들의 제주살이 이야기를 도움말 삼아 농장에서 머무는 동안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유기농 블루베리 수확, 생화로 꽃다발 또는 꽃모자 만들기, 농장 주변 산책길 걷기, 잔디밭에서 밤하늘 보기 등을 할 수 있다. 아침 식사는 농장에서 준비한 소풍 도시락을 가지고 정원에 나가 먹을 수 있다.
각 여행상품 예약은 여행플랫폼 ‘노는법(nonunbub.com)’ 누리집이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할 수 있다. 올해 11월 말까지 상품가격의 약 50퍼센트를 할인하는 특가 행사를 진행한다.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과 박정화 과장은 “코로나19 이후 삼삼오오 모여 자연 속에서 휴식과 여유를 누리고 싶은 소비자들의 경향을 반영해 농촌여행 상품을 공모하게 됐다”라며 “상품개발은 지방자치단체, 예약은 새싹기업 여행플랫폼에서 맡아 진행하는 이번 여행상품이 정부-지자체-민간이 협력해 만든 농촌여행 우수사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전국~ 노래자랑” 약 70년 동안 일요일 아침 시청자와 만나던 ‘국민 MC’ 송해(95·송복희)가 방송계 동료들과 국민들의 추모 속에 영면에 들었다.
고(故) 송해의 영결식이 10일 오전 4시 30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유족과 지인, 연예계 후배들 80여 명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영결식의 사회는 개그맨 김학래가 맡았다. 장례위원장인 엄영수(개명 전 엄용수) 방송코미디언협회장은 조사를. 개그맨 이용식과 이자연 가수협회 회장은 추도사를 각각 낭독했다. 또한, 코미디언 유재석, 강호동, 조세호, 이수근 등과 가수 설운도, 현숙, 문희옥 등이 참석했다.
송해가 각별히 아낀 후배 이용식은 추도사에서 “이곳에서는 ‘전국노래자랑’을 많은 사람들과 힘차게 외쳤지만 이제 수많은 별들 앞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외쳐달라”면서 "선생님이 다니시던 국밥집, 언제나 앉으시던 의자가 이제 우리 모두의 의자가 됐다. 안녕히 가시라"라고 작별인사를 전했다.
이자연 대한가수협회 회장도 “선생님은 지난 70년 동안 모든 사람에게 스승이었고, 아버지였고, 형, 오빠였다”라면서 “송해 선생님은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결식장에서는 다큐 ‘송해 1927’에서 발췌한 고인의 생전 육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영상에서 송해가 “전국”을 외치자 모든 참석자들은 “노래자랑”을 이어받으며, 마지막 ‘전국노래자랑’을 완성했다. 담담하게 영결식을 지켜보던 가족들은 고인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훔쳤고, 동료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이어 이자연, 설운도 외 5명의 대한가수협회 가수들이 송해의 주제곡 ‘나팔꽃 인생’을 열창했다. 송해의 막내딸은 “존재만으로 희망의 상징이었던 아버지의 삶을 기억할 것이고 사랑을 많이 주신 많은 분들의 일상도 행복하길 바란다”라며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이어 임하룡, 전유성, 최양락, 강호동, 유재석, 양상국 여섯 명의 코미디언 후배들이 고인을 운구하며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운구차는 서울 종로구 낙원동 송해길과 여의도 KBS 본관을 거쳐 경북 김천시 화장터로 향한다.
고인의 유해는 아내 석옥이씨(1934~2018)가 영면한 대구 달성군의 송해공원에 안장된다. 송해는 생전에 대구 달성군을 ‘제2의 고향’으로 여겼고, 명예군민이었다. 달성군은 송해의 이름을 따 송해공원으로 명칭했다.
앞서 송해는 지난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올해 들어 건강이 악화된 송해는 지난 1월과 5월 병원에 입원했으며, 3월에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또한 최근 KBS 2TV ‘전국노래자랑’의 야외 녹화가 2년 만에 재개됐으나 송해는 연이어 불참했다.
송해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희극인장으로 치러졌다. 애초 5일장을 논의했으나 유족의 요청에 3일장으로 변경됐다. 방송계 인사들은 물론 정부와 정치권 인사들도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
고인의 영정 앞에는 금관문화훈장이 놓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일 송해에게 한국 대중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1955년에 데뷔한 송 희극인은 반세기가 넘는 기간 다양한 분야에서 희극인 겸 방송인으로서 활동하며 재치 있는 입담과 편안한 진행으로 국민에게 진솔한 감동과 웃음을 선사해줬다”라고 추서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앞의 송해길에는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지난 9일 비가 오는 날씨에도 시민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송해의 동상 주변에는 근조 화환과 함께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꽃이 수북이 놓여있었다. ‘전국노래자랑’으로 시민과 호흡해온 송해였기에 그의 죽음에 많은 국민들이 슬퍼했다.
송해길에는 송해의 개인 사무실과 그가 생전 자주 이용했던 국밥집과 이발소, 사우나 등이 있다. 특히 ‘이천원 국밥집’은 송해의 생전 단골집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송해길에 가면 송해를 만날 가능성이 높았다.
이 지역은 오는 15일 송해가 참석하는 ‘송해길 선포 5주년 기념 주민화합 축제’가 예정되어 있었던 터라 안타까움을 더한다. 종로구의 최재형 의원은 “다음 주 송해길 선포 5주년 행사 때 뵙고, 좋은 말을 나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아프다“면서 “모든 국민들이 사랑하고 존경했던 어른”이라고 애도했다.
송해는 1927년 황해도 재령군에서 태어났다. 6·25 전쟁 당시 남한으로 피난 온 뒤 1955년 창공악극단의 단원으로 무대에 오르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특히 그는 1988년부터 34년간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으며 ‘국민 MC’에 등극했다. 최근 영국 기네스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에 이름을 올렸다.
꽃이 필 즈음의 이른 새벽, 쪽을 잘라내 하루이틀 물에 우려낸다. 자연산 굴 껍질을 구워 만든 석회를 섞고, 잿물을 부어 발효시켜야 준비가 끝난다. 손등이 파랗게 물들 때까지 커다란 천을 쪽물에 담갔다 빼는 과정은 고된 빨래를 연상시킨다. 지난한 과정이 꽃피운 쪽빛은 탄성을 자아낸다. 철 따라 탈바꿈하는 자연 풍광, 20년 넘게 이어지는 장인의 열정 앞에서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감탄 말이다. 쪽 염색에 대해 묻자 푸른 산에 흐르는 물(靑山流水)처럼 애정과 자부심이 쏟아졌다.
홍루까 하늘물빛 전통천연염색연구소 대표는 20년 넘게 전통 천연 염색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쪽 염색을 활용한 회화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책 ‘한국 천연 염색 백서 2017’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인 쪽염 보존을 위해 힘썼다. 현재는 쪽 염색 체험, 천연 염색 자격증 강좌 및 전문가 양성 과정을 운영하며 쪽 염색의 전통과 미래를 잇고 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더라
처음부터 가업을 이으려던 건 아니었다. 여름 휴가철에 어머니인 조일순 전통매듭 장인이 매듭실 염색할 때 도와드렸을 뿐이다. 천연 염색에 대한 열정을 지핀 것은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형형색색의 천이 펄럭이는 장면이었다.
“염색이라는 게 빨래나 다름없어요. 색이 제대로 날 때까지 염색물에 넣었다가 꺼내서 헹구고, 다시 넣었다가 헹구는 과정의 반복이거든요. 그걸 다 도와드리고 쉬려고 평상에 누웠는데, 그날따라 천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그렇게 예쁘더라고요. 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도 어머니를 도와드렸지만 한 번도 예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도요.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나 봐요.”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자연 색만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1970년대 산업화와 함께 들어온 화학 염색이 제아무리 다양한 색을 뽑아낸대도, 자연의 빛에 견줄 수는 없었다. 길 따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에선 ‘와’ 하고 탄성이 터져 나오지만, 동대문 원단 시장을 가득 채운 원단들을 본다고 해서 감탄하는 사람은 없잖은가.
염색 경력만 스무 해를 훌쩍 넘는다. 한창 때 응했던 인터뷰 기사의 제목 ‘나는 아직도 미쳐 있다’가 과장이 아니었다. 자려고 누우면 바람에 날리는 천이 아른거렸다. 눈에 담는 모든 색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전통염색에 대한 책이 없었기 때문에 온갖 문헌을 뒤지며 전통을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때만큼 뜨겁지는 않아도, 열정은 여전히 그를 움직이게 한다.
그의 열정을 논할 때 어머니 조일순 장인을 빼놓을 수 없다. 화학 염색에 밀려나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춘 쪽을 다시 살려낸 데에는 조 장인의 역할이 컸다. 1년생 풀인 쪽은 염색에 쓰이지 않으면 잡초나 다름없었고, 1970년대 당시 쪽 염색을 할 줄 아는 이도 전무했다. 그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직접 구해온 쪽 씨앗을 전라남도 나주에 심었다. 현재 나주 문평읍, 당시 문평마을에서는 찬물염색이라 불리던 쪽염이 마을 단위로 행해지곤 했다. 그는 어머니가 윤병운 인간문화재와 쪽염을 재현해내기까지 갖은 노력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제대로 쪽염을 성공한 게 1980년대 초반이었어요. 어머니는 ‘이 기술을 무조건 살려야 한다. 꼭 살려내서 후대에 전달해야 한다’고 하셨죠. 윤병운 어르신이 염색 분야에서 최초 인간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당신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도우셨고요. 다른 사람들은 ‘최초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왜 남에게 주느냐고 아까워했는데, 어머니는 ‘나는 매듭 장인일 뿐, 염색 전문가는 아니다. 남의 것을 탐내면 안 된다’고 대답하셨어요. 확고한 면모가 정말 존경스럽죠.”
염색 0.5세대의 열정
‘염색 0세대’ 어머니의 열정은 고스란히 아들에게 가 닿았다. 천연 염색 분야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없으면 서운할 지경이다. 그는 쪽염을 최초로 시작했고, 무늬를 내어 염색하는 문양염 기법을 최초로 개발한 염색 전문가이며, 찹쌀풀을 이용해 산수화를 최초로 그린 작가다. 자연에서 새로운 염색 재료를 발굴해내 소개하거나, 인도나 일본 등 해외 전문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알리는 역할도 기꺼이 맡았다. 1세대보다는 앞서 염색을 시작했기에 그는 스스로를 염색 0.5세대라고 칭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 년에 한 번씩 해외도 꼭 나갔어요. 원래 쪽빛, 즉 남색이 인도에서 온 푸른색이라 영어로는 Indigo Blue라고 불러요. 우리나라에는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건데, 세계 천연염색 심포지움(ISEND)이나 자연염색교류전으로 미국, 브라질, 호주, 일본, 한국 등지의 작가들이 모여서 교류하곤 했어요. 염색된 색상을 직접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3년째 모임을 못 갖고 있죠. 일본도 자주 갔어요. 쪽염이 마치 제 것인 양 특화를 잘 시켜뒀더라고요. 쪽은 독초과에 속하는데, 어떻게 한 건지 쪽으로 차도 만들고 쿠키도 만들더라니까요. 여러모로 빨리 하늘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열정으로 덮지 못하는 어려움도 분명 있었다. 지금은 연구소를 옮겼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서울 도심, 그것도 북촌 한가운데 한옥에 있다 보니 환경이 항상 아쉬웠다. 마당이나 밭이 있었다면 천도 널어놓고, 염료 식물도 매일 관리하며 다양하게 염색할 수 있었을 테니까. 특히 쪽이나 염료 식물을 재배할 때는 새벽에 잡초를 뽑아줘야 하는데, 그나마 가진 땅에 심자니 짬 내서 들러도 잡초만 어마무시하게 자라 관리하기 어려웠다. 쪽이 열대 식물인지라 나주나 김천에서 자리를 잡을까도 고민했다. 결국 상황이 여의치 않아 서울에서 버텨왔지만, 어려움을 견뎠기에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어렵게 연구를 이어나가면서도 그는 원칙을 고수했다. 전시회에 작가로 참여해 열 필의 천을 전시해두고 그 앞을 지킬 때였다. 관람객 서넛이 다가오더니 천 앞뒷면을 한참 번갈아 보더란다. 무얼 그리 뚫어져라 보느냐 묻자 색상이 어쩜 이렇게 균일하냐, 정말 천연 염색한 것이 맞냐고 도리어 되물었다. ‘천연 염색 작품이라고 플래카드 걸어두고 거짓말을 하겠나, 그러니 전문가가 아니겠느냐’ 하고 당당하게 받아쳤다.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열 번이든, 그 이상이든 반복하는 고집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스카프만 한 크기든 20m에 달하는 천을 염색하든 다르지 않다.
“처음 염색한 천을 보면 균염(均染)된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햇볕에 널어두고 보면 군데군데 물이 덜 들어서 빈 곳이 보이거든요. 그러면 염색 과정을 반복하는 거예요. 저는 기본 열 번은 해요. 그러니까 10년이 지나도 색이 안 바래고 그대로인 거죠. 물론 천연 염색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어머니만 해도 얼룩이 있어야 천연 염색이 아니겠느냐고 하셨고요. 주먹구구식이던 예전과는 염색 방법이 달라졌으니 그 영향도 있겠죠.”
이제는 원칙을 지켜야 할 때
쪽의 매력은 고운 빛깔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환경오염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화학 염색과 달리 친환경적인 천연 염색은 패션업계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천연 염색된 옷을 사거나 직접 염색을 배우는 등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쪽으로 염색된 천은 방충, 방균, 방염 성능을 지니고 있다. 쪽 염색된 옷을 걸치는 것만으로도 피부의 상처나 아토피 같은 질환이 완화되는 경우도 있더라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고 있다. 일본의 한 교수가 쪽 성분을 분석해, 여드름을 유발하는 포도상구균 항균 기능이 있다는 걸 밝혀내기도 했으니 검증까지 된 셈이다. 게다가 쪽염된 옷은 여름철 높아진 체온을 어느 정도 낮춰주는 ‘쿨링 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부르던 노랫말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구나 싶다.
중년들이 특히나 천연 염색을 자주 찾는다. 자연의 빛에 부쩍 관심이 많아질 나이인 데다, 눈 번쩍 뜨일 효능에 반해서 그러겠거니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천연 염색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걸 원치 않는다. 천연 염색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이 흔들리는 일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천연 염색한 옷을 판매하는 분들 중에서 필요 이상으로 비싼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전 일부러 같은 옷을 팔더라도 훨씬 싼 값에 내놓죠. 항의받을 때도 있지만 저는 당당하게 그래요. ‘작품하고 상품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기껏 만든 옷이 안 팔리면 그건 무슨 소용이 있냐. 그래서 밥 벌어먹고 살겠냐’고요.”
전문가 양성 과정에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천연 염색 체험 프로그램에서 한두 번 염색하고서 끝났다고 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직접 가르치는 제자들에겐 ‘이럴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천연 염색을 배워 창업하려는 중년들에게는 디자인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여유가 된다면 디자이너와 계약하거나, 의상이나 디자인을 전공한 대학생을 아르바이트로 채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전통문화산업 지원 사업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자연
염색 일은 앞으로 5년 정도나 더 할까 싶다. 다만 문화재 보존과학과 염색을 동시에 전공한 전문가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스스로 선구자가 되어 후학을 이끌고자 산업대학원 섬유예술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문화재보존과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출토복식특별전 및 학술 세미나에 참석해보면, 시신이 입고 있던 옷을 분석해서 바느질 기법, 원단 종류를 밝혀내는데 염색에 대해선 전문가가 없어 추측만 하는 현실이 아쉬웠던 탓이다. 지금은 마음을 접었지만, 전통염색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전문가가 꼭 생기기를 소망하고 있다. 아들이 그 역할을 맡아주길 내심 바라고 있지만 강요하진 않는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최근에는 염색에 대한 애정 뒤편으로 숲 해설가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자라났다. 염색밖에 모르던 외골수의 도전이다. 하던 일과 대단히 다른가 싶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숲 해설가는 자연휴양림, 유아숲체험원, 숲길 등에서 국민이 산림에 대한 지식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해설하거나 지도하는 직업이다. 숲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 이야기, 나무나 식물에 대한 지식, 숲에 얽힌 역사, 숲과 인간의 관계 등에 대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처음엔 풀만 보면 ‘저걸로 염색하면 무슨 색이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죠. 자연에서 난 재료를 다루긴 했지만 평생 염색만 하고 살았는데, 직접 숲속에 들어와 보니 훨씬 좋더군요.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숲에 직접 나가 해설사 강의를 듣고 있어요. 어떨 땐 배를 잡고 웃고, 어떨 땐 감동받기도 해요. 듣다 보니 재미있어서 공부 좀 제대로 해봐야겠다 마음먹었죠. 석 달 뒤에 자격증 시험을 보는데 경쟁률이 만만찮아요. 느리더라도 꾸준히, 열심히 하려고요.”
돌고 돌아 자연이다. 쪽빛으로 물든 손과 흙 잔뜩 묻은 등산화가 전혀 거슬림 없이 자연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마음먹은 것은 이뤄내는 끈기와 열정이 뒷받침되기에 그럴 것이다. 그의 한결같음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꽃이 가득 핀 오월의 봄 거리가 그렇듯.
호기심이 많다. 원체 돌아다니길 좋아해 여행을 자주 다녔다. 흥미가 생긴 분야는 끝까지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공부하는 아빠’, 한의사 문성택 씨는 6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들을 만날수록 아쉬웠다. 식사만 잘 챙겨도 훨씬 나아질 텐데. 나이 들어서도 내 집, 집밥을 고집하는 부모님을 향한 걱정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실버타운을 발견하자마자 생각했다. 이거다!
남편 문 씨가 아내 유영란 씨를 설득했다. 전국 실버타운 중 스무 군데를 추려낸 목록과 함께. 남편의 끈질김에 두손 두발 다 든 아내도 실버타운에 대해 공부하고 함께 견학을 다녔다. 벌써 6년 전 일이다. 직접 다녀보니 ‘노인들 가둬두고 막 대하는 요양 시설’, ‘현대판 고려장’ 정도의 취급이 말도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실버타운이야말로 나이 들어 고생하지 않고도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편견 때문에 노후 거주지로 고려조차 않는 게 안타까워 동영상을 제작해 올린 것이 공빠TV의 시작이다.
처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할 때만 해도 입주자 정원을 채운 실버타운이 거의 없었다. 이제는 실버타운마다 대기자가 수두룩하다. 입주하려면 최소 몇 달, 몇 해는 기본으로 기다려야 한다. 견학을 위해 방문한 실버타운에서 ‘공빠TV’를 보고 입주를 결심했다며 반가워하는 이들도 종종 만난다. 실버타운의 이미지 제고를 이끈 주인공, 공부하는 아빠 문 씨와 공부하는 엄마 유 씨에게 실버타운에 대해 물었다.
실버타운을 고를 때 무얼 체크해야 하나?
먼저 ‘일반 아파트형’이 아닌 ‘업체 관리형’인지 확인한다. 직접 분류하고 정의 내린 개념 중 하나인데, 업체 관리형은 운영사 측에서 고용한 직원들이 상주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의 실버타운이다. 반면 아파트형 실버타운은 아파트와 똑같은 형태에 60세 이상만 입주할 수 있으나, 상주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들이 없다. 시설만 존재할 뿐 정작 활용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일반 아파트형은 거르는 게 좋다. 다음은 보증금을 잃을 위험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전화로 전세등기를 발급받을 수 있는지, 혹은 보증보험을 들 수 있는지 꼭 물어보도록 하자. 직접 방문 시엔 직원들 수가 충분히 많은지, 태도는 어떠한지도 눈여겨본다. 그 다음으로 식사가 건강식으로 운영되는지, 시설과 프로그램 운영 현황이 어떤지 체크한다. 시설만 있을 뿐 관리가 안 되거나, 막상 프로그램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실버타운 과대광고에 속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
운영자에 대한 파악이 중요하다. 운영자가 누구인지, 경영 마인드가 어떠한지, 그동안 어떻게 운영해왔는지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경매’, ‘부도’, ‘파산’과 관련 있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역시 직접 방문하기다. 직원들과 입주자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실버타운 내 분위기를 직접 확인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실버타운에 들어가면 안 되는 유형도 있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자신의 집과 요리를 너무 좋아하는 분들이다. 고집 센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실 이런 분들이야말로 실버타운에 일찍 들어갈수록 더 오래 살 수 있다. 자가를 갖고 매일 직접 요리하며 밥 차려먹는 게 은근 고생스러운 일이라 늙기 십상이다. 두 번째는 경제력이 약한 분들. 부부 기준 실버타운 생활비는 월 200만~300만 원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실버타운에 입주할 돈은 그렇다 치더라도, 매달 지불해야 하는 생활비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런 분들에게는 알뜰실버타운, 즉 고령자 복지주택을 추천한다. 세 번째로는 공동생활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이다. 실버타운에는 공동생활 공간이 무조건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느낀 실버타운의 단점은 무엇이었나?
우선 좁다. 보통의 실버타운 전용률은 공동생활 공간을 제외하면 50% 내외다. 높아봐야 70%인데, 이마저도 많지 않으니 입주 초반에는 생활 공간이 좁게 느껴질 수 있겠다. 나이 제한도 아쉽다. 현재 실버타운 입주가 가능한 나이는 만 60세 이상이다. 또한 보통 80~85세가 넘어가면 암묵적으로 입주가 제한된다. 실버타운은 일찍 들어갈수록 건강과 비용 모든 면에서 이득이기 때문에, 노인을 위한다면 미국처럼 만 55세로 제한 연령을 낮추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 번째로는 비싸게 ‘느껴진다’는 점. 월 300만 원을 생활비로 한 번에 지출하려니 비싸게 느껴지지만, 자가에서 생활할 때 필요한 관리비, 식비, 운동 등의 취미 활동에 쓰이는 지출을 모두 합치면 크게 차이 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실버타운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만 60세 이상 인구는 약 127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한다. 그런데 실버타운에 입주할 수 있는 세대는 고작 1만 세대에 불과하다. 즉 0.1%의 선택받은 사람만이 실버타운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실버타운에 대해 공부할수록 이 점이 가장 아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실버타운을 택해야 할 이유는?
독신과 부부 등 가구 형태와 무관하게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버타운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아예 모르고 있거나,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유튜브로 좋은 실버타운을 더 많은 어르신들에게 알리고, 입주율을 높여서 실버타운이라는 사업 자체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실버타운을 포함한 실버 사업은 사실 돈이 안 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잘 운영되는 모범 사례가 생긴다면 실버타운 공급도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버타운을 이용할 예비 입주자 입장에서도 실버타운 증가는 좋은 일이다. 양질의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건 소비자에게 좋은 일이니까.
지금 당장 입주할 수 있다면 어느 실버타운을 선택하겠는가.
현재 분양 중인 롯데호텔 실버타운 1호점 VL 오시리아를 택하겠다. 고급형인 데다 막 지어진 신축 건물이고, 호텔 서비스를 제공하며 전용률도 높은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비교적 저렴한 보증금으로 자연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가평의 청심빌리지, 강남에 있고 최신축 건물을 자랑하는 더시그넘하우스도 좋다. 언급한 곳들 말고도 살아보고 싶은 곳이 많아 고민이다. 빨리 60세가 되기만 기다리고 있다. 최대한 다양한 실버타운에서 직접 살아보며 이점을 누리고 싶다.
[TIP] 공빠TV가 추천하는 시니어 유형별 실버타운
부부 동반 입주형 부부가 입지와 주변 시설, 가성비, 전용률 등 다양한 요소 중 어떤 것을 기준으로 두느냐에 따라 갈린다. 가성비와 전용률 면에선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를, 입지나 대형 병원 접근성 면에서는 서울시니어스 분당타워를 추천한다. 각종 인프라가 구축된 도심에 살고 싶거나 신축 시설을 이용하고 싶다면 서울의 더시그넘하우스가 좋겠다.
무조건 럭셔리형 90식으로 환산한 의무식과 2인 가구 부부 기준으로 생활비를 따졌을 때 1위는 더클래식500, 2위가 삼성노블카운티다. 서울 2호선 건대입구역에 있는 더클래식500은 건국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호텔식 서비스를 제공한다. 게다가 건너편에 건국대병원이 있고, 주변에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이 있어 실버타운으로는 최고의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삼성에서 운영하는 삼성노블카운티 역시 최고급 실버타운으로, 행정구역은 용인이지만 수원 영통역과 가까우며 청명산과 기흥호수를 조망할 수 있어 전원형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1인 입주형 성별에 따라 달라진다. 남성 가구에게는 입지와 가성비를 기준으로 용산 하이원빌리지, 서울시니어스 가양타워, 서울시니어스 강남타워를 추천한다. 문화 시설이나 쇼핑 시설 유무, 인테리어를 중시하는 여성 가구에게는 서울시니어스 강서타워, 성북 노블레스타워, 가평 청심빌리지가 안성맞춤이다.
가성비 추구형 보증금이나 생활비가 비교적 저렴한 전원형 실버타운이 좋다. 보증금이 저렴한 곳을 원한다면가평 청심빌리지(보증금 2000만 원), 미리내실버타운(보증금 5000만 원)이 좋다. 생활비가 저렴한 곳으로는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월 80만 원), 김천 월명성모의 집(월 90만 원)을 추천한다.
반려동물 동반형 현재 반려동물 동반 입주가 허용된 곳은 없다. 그러나 부산 오시리아의 롯데호텔 실버타운 1호점, VL 오시리아를 시작으로 신축 실버타운에서는 가능해질 것이다.
최근 80대 운전자가 중앙분리대를 넘어 반대편으로 돌진해 마을버스와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를 다룬 유튜브 동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누리꾼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해당 동영상 하단 댓글 창에는 고령 운전자의 운전면허 반납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다른 운전자들의 안전 침해가 우려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고령 운전자의 면허증 반납을 두고 벌어지는 갑론을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는 2016년 8만6304건에서 2020년 11만4795건으로 증가했다. 이에 정부와 각 지방 지자체들은 운전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하는 보상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실제로 운전대를 놓는 고령자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중 자진 반납한 이들의 비율은 2%에 불과했다.
운전대를 언제, 왜 놓아야 할까?
막상 이슈의 당사자인 고령 운전자는 왜 운전대를 놓아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동의 불편함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면허를 반납할 의향은 있지만 언제 반납해야 좋을지 몰라 고민하는 이들도 많다.
미국의 경우에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지침을 제공한다. 미국 보건복지부와 은퇴자협회(AARP)가 만든 질문 목록을 보면, 알고 있는 길을 주행할 때도 길을 잃은 적이 있는지, 정지 신호를 보고도 멈추지 못하고 주행한 적이 잦은지 등을 묻는다. 이 질문들에 그렇다는 대답을 하게 된다면 운전 여부에 대해 의사와 상담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동시에 면허 반납이 강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강조한다. 모든 나이 들어감의 형태가 같지 않고, 어떠한 연령대가 되었다고 해서 운전을 그만둬야 할 이유도, 강제할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뉴욕 몬테피오레 메디컬센터의 노인정신의학과장 게리 케네디 교수는 미 은퇴자협회와의 인터뷰에서 “고령 운전자는 자신이 운전하는 차에 손주를 태울 수 있는지 자문해보라”고 조언했다. 선뜻 대답할 수 없거나 부정의 대답이 나온다면 그때가 바로 운전대를 놓아야 할 때라는 것. 그는 “이는 소중한 손주를 위한 일이며, 도로 위의 모든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센티브에서 ‘100원 택시’까지, 대체 수단 제공
고령 운전자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보상 제도도 공감대 형성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부는 2018년부터 만 65~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면허 자진 반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면허증을 반납하면 선불식 교통카드나 지역 상품권을 혜택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지자체별로 반납 방법이나 인센티브가 다르므로 주민등록상 주소지 관할 주민센터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서울시와 경기도에서는 고령 운전자 면허 자진반납 원스톱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서울시는 만 70세 이상이며, 2019년 3월 28일 이후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한 어르신에게 약 10만 원 상당의 교통카드를 지원한다. 2019년 3월 28일은 ‘서울특별시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지원 조례’ 시행일이다. 운전면허증을 지참해 주민센터를 방문하면 원스톱서비스 신청에 필요한 지원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다. 지급 받은 교통카드는 ‘티머니’ 교통카드로, 전국 교통수단과 편의점 등지에서 이용할 수 있다.
원스톱 시스템을 운영하는 경기도 역시 경기지역화폐 10만 원과 노랑 우산을 인센티브로 제공한다. 이외에도 부산시는 교통비 지급과 함께 병원, 의류, 안경점 이용 시 요금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진주시는 10만 원 상당의 교통카드를 지급하고 시내버스 5년 무료이용권을 제공한다. 대전시와 광주시는 10만 원 상당의 교통카드를, 전주시는 20만 원이 든 교통카드를 지급하며, 김천시는 30만 원 상당의 김천사랑상품권 또는 교통카드를 1회에 한해 지원한다.
어르신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도 시행되고 있다. 인천시 옹진군, 전남 화순군 등 전국 79개 군 단위 지역에서 시행 중인 공공형 택시, ‘행복택시’가 대표적 사례다. 효도택시, 100원 택시 등 명칭은 다양하나 100원의 요금을 받고 시내버스 노선이 없는 벽지 지역을 달린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충남 서천군의 100원 택시는 뉴욕 타임즈에 소개돼 ‘신의 선물’, ‘대중교통 혁명’이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이 택시의 이용 방법은 콜택시와 유사하다. 개인택시 사업자에게 전화로 요청하고 해당 마을에서 승차해 택시를 이용한 뒤, 내릴 때 군에서 배부한 이용권과 함께 요금인 100원을 부담하면 된다.
물론 국내 보상 제도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장효석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YTN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예시를 들었다. 그는 “인센티브가 일회성에 그치는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에서는 자진 반납한 고령자에게 금리 인하나 지역 병원에 건강 검진을 했을 때 할인받을 수 있게 한다”며 국내 인센티브 혜택의 실효성 부족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자의 5명 중 1명은 여전히 운전대를 쥐고 있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중 21.9%는 자동차 운전을 하고 있으며, 이는 2017년도에 비해 3.1%p 증가한 수치다. 여기에 2025년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고령 운전자도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로 인한 교통사고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 고령 운전자와 그의 가족, 도로 위의 모든 이들을 위해서, 더욱 세심하되 확실한 혜택을 고민해야 할 때다.
65세 이상 고령자인 노인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는 기술이 준비된다. 최근 노인 운전자 사망자 수와 사고 건수가 늘고 있고, 노인에 의한 사고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비율이 23.4%로, 교통사망사고에서 4명 1명이 고령자 사고로 확인됐다. 2018년 22.3%에서 2019년 23.0%로 매년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교통안전공단(교통공단)이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도록 첨단운전자 보조장치(ADAS, Advanced Driver Assistant System)를 차량에 달고 이용했을 때 실질 효과를 분석해 연구한다고 15일 밝혔다.
교통공단은 이를 위해 지난 14일 김천경찰서,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경북지부와 함께 ‘고령 택시 운전자 교통사고 예방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이번 협약으로 교통공단은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는 운전행태 분석과 정책개발 연구에 나선다.
김천 고령 개인택시 운전자 40명 차량에 ADAS를 설치해, 운행기록정보(DTG)와 ADAS 효과를 분석한다. ADAS는 차선을 이탈하면 경고하고, 전방에 있는 차량이나 물체와 추돌할 가능성이 생기면 경고해 운전자가 안전운행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단은 또 ADAS 기능이 효과를 발휘하면 경찰청이 추진하고 있는 '고령운전자 조건부 면허제도'와 연계해 ADAS를 장착하면 고령자 운전면허를 허용하는 방안을 건의할 계획이다.
조경수 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본부장은 "다양한 교통안전 사업을 통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감소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 김시골(가명)씨는 퇴직을 앞두고 고민이 많다. 공단에서 32년을 일한 그도 노후가 걱정이긴 마찬가지다. 연금은 받겠지만 아직도 군대 간 아들 복학 후 몇 년을 더 AS해야 해야 하니 주름이 늘 수밖에 없다. 사실 퇴직 후 시골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다. 이처럼 은퇴자들은 시골살이를 꿈꾸지만 귀농과 귀촌은 선뜻 도전하기가 만만치 않다.
2020년 진행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도시민의 41.4%가 은퇴 후 귀농귀촌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2019년보다 6.8% 증가한 수치다. 또한 지자체들은 인구 감소에 따른 해결책의 일환으로 귀농귀촌 인구 유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제 귀농귀촌이 퇴직자들의 전유물이란 통념에서 벗어나 도농 균형발전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연금이나 금융소득의 수입원이 있는 은퇴자들은 귀농보다는 귀촌에 힘이 더 실려 있다. 때문에 지자체들은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수요자 눈높이에 맞는 귀농귀촌 정책 지원 확대에 발벗고 나섰다. 예비 귀농귀촌인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가보고 싶은 귀농귀촌 우수 지자체 10選을 기획했다. 그 첫 번째로 경북 성주군 편을 담았다.
귀농귀촌으로 가는 길 [경북 성주군 편]
샛노란 성주참외로 부자농촌 대명사 등극
경상북도 성주군의 4월은 온통 노랗다. 성주의 들판을 뒤덮은 수만 동의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참외 때문이다. 전국 최고의 단일 품종 최대의 부자농촌 대명사가 됐다. 성주군은 지난 한 해 동안 성주참외 농사로 억대 매출을 올린 농가가 1230가구로 조사됐다. 전국 참외 재배 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참외 최대 생산지 성주군을 귀농귀촌 최대 수혜지로 찾았다.
성주군의 4200여 농가에서 생산되는 연간 15만 톤 안팎의 참외는 전국 유통 물량의 70%를 차지한다. 성주참외 맛의 비밀은 자연환경에 있다. 풍부한 물과 기름진 토양에 영남 내륙 분지라는 지리적 이점까지 갖췄다. 분지는 태풍·눈·비·바람을 막아줘 참외가 자라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전국에서 가장 긴 일조 시간도 한몫해 성주참외를 더 단단하게, 더 달게 한다.
이 지역의 참외 재배 역사는 60년이 넘지만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건 1990년대부터다.
참외는 여러 모로 우리나라에 특화된 채소다. 멜론의 변종인 참외는 해외에서는 Korean Melon, 즉 ‘한국 멜론’으로 불린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며,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다고 할 수 있다. 90%가 수분으로 이뤄진 시원함과 특유의 아삭하고 달콤한 맛이 특징인 참외는 삼국시대부터 재배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개량을 거듭하여 2000년대 후반부터는 오복꿀, 바른꿀 등 ‘꿀 시리즈’로 알려진 참외들이 시장을 장악했다.
이러한 참외를 생산하는 땅이 가장 집중된 곳이 경상북도 성주군이다. 전국 참외 재배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성주군은 그야말로 참외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참외에는 ‘성주참외’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성주군에서 참외 하나로 벌어들이는 조수입(비용 포함 수입)이 연 5000억 원 이상이라니,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대표 농작물로 계속 언급되는 이유다.
최고의 참외 전문가들과 함께 품질 유지
물론 성주군에서도 성주참외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작년에 성주참외 50년을 기념하고 미래 50년을 준비하는 성주군에는 전국 224명, 경상북도에 46명 있는 농업 마이스터가 6명 있다. 이들은 모두 참외 재배 분야 마이스터다. 또한 참외명인 1명, 참외명장 2명을 두어 우수 기술을 계속적으로 컨설팅하며 성주참외의 위상과 품질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명장들의 손길 덕분인지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에 따르면 성주참외에는 베타카로틴이 딸기에 비해 3배, 감귤에 비해 2배 함유되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또한 성주참외를 위한 새로운 로고와 캐릭터, 포장재 등을 개발했으며, 전국 최초로 농식품부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100억 원을 투자하는 비상품화농산물자원센터를 2023년까지 건립할 예정이다. 이 센터를 통해 상품화되지 못한 참외들을 효율적으로 분류하여 다양한 재가공을 통해 한우 사료 및 기타 가공품으로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성주참외는 코로나19 확산과 소비 침체 와중에도 해외 수출 415톤을 기록했다. 해외 시장 진출은 K 시리즈로 대변되는 해외 문화 수출 기획과 함께 이뤄지고 있다.
18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기억들
인구 4만3000여 명의 성주군은 성공적인 참외 산지 외에도 다양한 문화 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성주군은 1800년 전 고대 가야 연맹국 중 하나인 성산가야가 있었던 곳이며, 조선시대 초기에는 경상도에서 개간된 농토가 가장 넓었던 자리였으니 농업 지역으로서 일찌감치 높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또한 태종, 단종, 세조의 태실이 자리할 정도로 명당의 평가를 받았으며,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고도 있었다. 성주군은 이러한 역사성을 바탕으로 도심 공원형 복합문화공간 ‘성주역사테마공원’을 만들었다.
2020년 10월 말에 준공된 성주역사테마공원에는 조선시대 영남의 큰 고을로 위상을 떨쳤던 성주목의 옛 모습인 성주읍성 북문과 성곽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전기 4대 사고 중 하나인 성주사고와 조선시대 전통 연못인 쌍도정도 있다. 밤이면 은은한 조명이 성곽과 문루를 비춰 고즈넉한 야간 명소로 각광받는 중이다.
해발 1433m의 가야산을 품은 가야산국립공원도 성주에서 경험할 수 있는 천혜의 공간이다. 특히 정견모주길은 가야산국립공원 속에 숨어 있는 진주로 불리는데, 봄에는 연분홍빛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그늘이 계속되는 숲길과 시원한 계곡 물소리가 가득하다.
성산동 고분군은 성주군의 역사를 활용한 또 하나의 대표 관광지다. 참외가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것과 맞물리는 묘한 인연이랄까. 삼국시대의 한 축이었던 성산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거대한 규모의 고분들이 집결되어 있으며, 가야부터 신라까지 이르는 다양한 토기와 마구류 등이 출토되어 우리 역사를 다시 보게 만든 중요한 유적지다.
성주군의 문화 명소
천연기념물 제403호인 성밖숲은 2017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2018~21년에는 대한민국 생태테마관광지로 선정되었다. 이곳에는 500년 긴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신비롭고 기이한 형상을 지닌 52그루의 왕버들이 모여 산다. 매년 7~8월이면 맥문동이 피어 성밖숲을 시원한 자줏빛으로 물들이며 짙푸른 왕버들과 보색(補色) 대비를 연출하기에 사진작가와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인간적인 전통을 느껴보고 싶다면 한개민속마을로 가보는 것도 좋다. 이곳은 국가민속문화재 제255호로 60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성산 이씨 집성촌이다. 하회마을·양동마을과 더불어 우리나라 7대 민속마을 중 하나이며, 경북도지정문화재 9채와 6채의 재실을 포함한 총 75채의 초가집·기와집이 돌담길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주의 명소 무흘구곡과 성주호 둘레길의 드라이브 코스는 하나의 길 안에 있다. 아라월드 입구에 들어서자 만나는 성주호 둘레길은 호반을 끼고 이어지는 숲길이다. 이 길은 숲으로 호수로 구불구불 이어져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자동차로 59번 국도를 따라 북진하다가 30번 국도와 만나는 교차점에서 서남쪽으로 우회전하면 성주호를 끼고 돌게 된다. 이 길은 매년 봄이면 벚꽃 터널로 덮여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 드라이브 코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성주댐을 지나 김천시 증산면 청암사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의 입구를 지나면 무흘구곡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직장 은퇴를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전에 가보지 않은 길에 자신의 전부를 투입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도래한 걸로 간주했다. 그런 그가 귀농을 선택한 건 매력과 환멸이 공존하는 서울이라는 기이한 대도시를 통쾌하게 벗어난 시골에서 삶의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였다. 구체적으로는, 농업에의 투신이라는 미지의 모험을 통해 자신의 내공을 시험하고 싶었다. 올해로 귀농 7년 차. 허진영(64) 씨의 농장은 그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정신과 육체의 거의 모든 걸 쏟아 부은 결과가 그렇다.]
허진영 씨는 알아주는 눈이 많은 귀농인이다. 강소농(強小農)의 본으로 지역에 회자된다. 고행에 가까운 게 귀농생활이다. 그러나 그는 진지한 몰입으로 치고 나갔다. 고전과 시행착오로 허우적거리기 쉬운 게 농사이지만 물 위를 뛰어다니는 물방개처럼 활개를 쳤다. 용의주도! 매사 빈틈없는 숙고와 실행을 숭상하는 자질을 어디서 얻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깐깐하게 돌다리를 두드려 물을 건넜으며, 건널 다리가 없을 경우엔 스스로 다리를 고안해 형세를 호전시키는 재능을 발휘해 귀농의 갖가지 난관을 타파했다. 요컨대 그의 머리는 전략적으로 작동한다. 32년간 일했던 ‘삼성맨’ 시절에도 두각을 나타내기를 밥 먹듯이 했다고 한다. 이 영민한 사람의 귀농 사전준비는 전혀 평범한 게 아니었다.
“일단 철저한 준비를 했다. 예컨대 작목 선정을 미리 해뒀는데 장단기 작물을 병행 재배하기로 했다. 귀농 당해에 수확할 수 있는 단기작물로 초석잠이나 복분자, 산딸기를 택해 귀농 1년 전에 미리 심었으며, 최소 이삼 년이 지나야 소득이 발생할 중장기 작물로는 베리 종류나 호두나무 같은 유실수를 선정했다. 이 모든 선택 작물들은 나름의 공부와 분석을 통해 고른 것들이었다.”
신중하게 작목을 선택하더라도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게 농사다.
“실로 그렇더라. 귀농 첫해에 거둔 소득이 예상을 거슬러 형편없이 적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받았던 한 달 치 봉급 수준밖에 되질 않았거든.”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첫 농사였던 만큼 생산량 자체가 미미했다. 게다가 판로가 막연하더군. 고구마, 감자, 고추도 심었지만 수익 발생이 되질 않아 무의미한 걸 알고 다시는 이것들을 재배하지 않기로 했다. 첫해의 성과는 초라했으나 덕분에 공부를 한 셈이고 비전을 세울 수 있었다. 향후의 대책을 수립했으니까.”
실의에 빠지진 않았고?
“쓴맛을 보고서야 한결 정신을 번쩍 차리는 게 사람이지 않던가. 일종의 통과의례로 작은 실패를 했다 여기고 이듬해 농사에 만전을 기했다. 귀농 전에 구상했던 기본 방향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이기도 했지.”
어떤 기본 방향?
“첫째는 다양한 작목을 재배해야겠다는 구상이었다. 여기엔 많은 강점이 있다. 우선은 노동력을 분산할 수 있어 탄력적이다. 그리고 자연재해나 병충해, 또는 가격폭락 등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부 작물들이 흉작이더라도 피해를 덜 본 일부 작물들이 손실을 보완해주니까.”
둘째는?
“소량생산을 추구하기로 했다. 대량생산을 할 경우 흘려야 할 땀 역시 대량일 수밖에 없지만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하기 어렵다. 소량 규모여야 고품질 생산이 가능하고, 이는 고가격 정책의 밑거름이 되는 게 아니겠는가.”
SNS 마케팅이 없으면 승산도 없다
허진영 씨는 귀향으로 귀농을 실현했다. 낳고 자란 산 깊은 벽촌으로 내려가 농사꾼으로 변신한 거다. 자식들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을 고향의 홀어머니를 모처럼 살뜰히 봉양하자는 생각도 귀농을 추동했다. 그는 선친이 생시에 농사를 지었던 농토 8000여 평을 다듬고 닦아 ‘산중햇살농장’이라 이름 붙였다. 농장의 반은 호두나무 과수원, 나머지는 갖가지 약용식물들이 생육하는 밭이다. 농장 가운데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면 산이 절반, 하늘이 절반이다. 그 사이를 천천히 흘러가는 뜬구름은 정처 없어 걸릴 게 없으니 자유로운 나그네임을 알 만하다. 숲속 언덕배기에 오두막 하나 슬쩍 짓고 세월아 네월아, 한가하게 노닥거리기 좋은 풍광이다. 하지만 그는 오직 농사에 용무가 많아 농사 외엔 매사 심드렁한 분위기다.
초심자로 농사에 뛰어들었으나 구상도 패기도 짱짱했던 그에게 첫해 농사의 섭섭한 소출은 약진의 발판이었나보다. 이듬해부터 곧바로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했으니까.
“다작물 재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경제성 높은 약용작물이나 핫이슈 작물을 발굴해 도입했다. 인디언감자라고 들어봤나? 북미 원주민, 즉 인디언들의 주식이었던 덩굴식물로 천연 자양강장제라 평가되더라. 이게 국내에 막 들어온 시점에서 종자를 구해 심었는데 결과가 좋았다. 치매에 좋다는 블랙커런트, 항산화 작용이 빼어나며 당뇨에 좋은 코끼리마늘, 오미자, 슈퍼도라지, 토종 보리똥 등도 재배해 재미를 봤다. 귀농 2년 차에 흑자가 나자 자신감이 솟구치더군.”
모든 작물이 효자 노릇? 그렇다면 당신은 작목 선정의 귀재다.
“유행가만 한순간에 사라지는 게 아니다. 유행작물의 수명도 짧고 변덕스럽다. 나는 작목별 손익분기점을 계산해 상황이 나쁜 작물은 과감히 버린다. 신속히 대체작물을 찾아 채워 넣는다. 여기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수적이다. 한마디로 농사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우선은 목표치부터 확실하게 설정해야 한다. 귀농 시 나는 은퇴 전 삼성에서 받았던 연봉 수준의 농업소득을 목표로 잡았다. 그리고 그걸 4년 만에 달성했지.”
올해 7년 차다. 2020년의 소득액은 얼마였지?
“매출 2억에 순수익 1억3000만 원 정도다. 이는 매우 드문 경우라 하더라. 이른바 ‘강소농’의 기준 소득액은 연매출 1억이다.”
판정패와 케이오패가 드물지 않은 게 귀농이다. 귀농열차를 타고 내달리는 이들을 보면 그 용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농림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귀농인의 90%가 실패한다. 현상 유지 케이스는 8~9%, 성공하는 농가는 1%에 불과하다.”
그게 정말 믿을 만한 자료라고? 휴, 귀농은 실로 격렬한 레이스군. 실패 요인 중 가장 핵심적인 건 무엇이라 보나?
“단연 판로 문제다. 피땀 흘려 농산품을 생산하고도 판로가 여의치 않아 고심들을 한다. 공판장이나 백화점, 대형마트 같은 곳에 상품을 줄 경우에도 가격을 후려쳐 실속이 없다. 결국은 직거래가 답이다. 내가 농장을 성장시킨 비결이 직거래망 구축에 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매개로 한 직거래 마케팅으로 활로를 찾았다. SNS 마케팅은 이제 필수다. 귀농을 해서는 반드시 SNS 마케팅을 해야 한다. 그게 없이는 승산도 없다.”
일 없이 노는 건 불행의 첩경
허진영 씨가 생산한 농산물은 기똥차게 잘 팔려나간다. 대부분 완판을 본다. 인터넷 마케팅 덕분이다. 지인들에게 상처를 줘가며 물건을 팔아치울 필요가 없다. 블로그 덕분이다. 댓글로 쌍방향 소통을 하는 블로그를 통해 막대한 수효의 직거래 고객을 확보한 덕분이다. 사실 농업인들의 블로그 운영은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블로그의 품질은 제각각이다. 허 씨의 블로그는 높은 충실도로 차별화를 꾀했다. 단순하거나 얄팍하게 상품 홍보에만 주력하지 않는다. 귀농일지에 가까우리만치 귀농 경험담을 소상히 고백한다. 귀농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한다. 고난을 이겨내는 결기와 과정을 소박한 글과 사진으로 진솔하게 기록한다. 공감과 신뢰를 자아내는 휴먼 터치로 고객관리에 성공한 셈이다.
“농사꾼들의 화두인 판로 문제를 인터넷 마케팅으로 해결하기 위해 귀농 2년 차부터 블로그를 독학으로 배워 운영했다. 죽기 살기로 블로그에 매달렸다. 전체 노동량의 50%는 농사에, 나머지 50%는 블로그에 쏟았던 거다. 그 결과는 너무도 좋았지. 많을 때는 하루에 7000~8000여 명이 접속한다. 그런 날엔 수백만 원씩 매출이 오르더라.”
이제 순풍을 매단 배처럼 질주를 한다고 보나?
“보람을 느낀다. 귀농 멘토로서도 활동량이 늘어 뿌듯하다. 그런데 일이 너무도 많아 힘겹다. 새벽부터 온갖 노동에 시달리고 밤엔 자정까지 블로그에 매달리다 쓰러져 잔다. 남들은 이런 나를 미쳤다 하더라. 겨울철도 내겐 농한기가 아니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갈대나 뽕나무 뿌리, 유근피 등을 채취해 상품을 만들거든. 몸 아플 겨를조차 없다. 가끔 이런 생각한다. 이거 정말 내가 미친 거 아냐?(웃음)”
과중한 일에 속박돼 산다는 회의?
“내겐 이미 퇴직 이전에 모아둔 재산이 꽤 있다. 돈벌이 목적의 귀농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퇴직을 하고 놀면 뭐하나, 일 없이 노는 거야말로 불행의 첩경이지 아니한가, 이런 생각으로 농사에 도전했던 것이다. 그게 새로운 삶이기에. 그리고 어느 정도의 성공으로 만족감을 얻기에 이르렀지. 하지만 일의 스케일을 키워 더 많은 성취를 하고 싶다. 아직 갈 길이 먼 거다. 이런 나를 두고 아내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사람 취급을 한다.(웃음)”
그의 아내는 서울에 산다. 가끔 내려와 남편을 챙겨주고 후다닥 달아난다. 귀농하자는 얘기를 들은 순간에 사색이 됐던 그녀는 길고도 격렬한 논쟁 끝에 당신 혼자 잘해보세요, 그리 선언하고 서울에 남았다. 여행이나 하며 부부가 오붓하게 인생을 즐길 나이에 웬 귀농 고생살이? 아내의 취지는 충분히 합리적이었으나 허진영 씨의 뜻을 꺾을 순 없었다. 그는 아내의 불만을 잠재울 유일한 길은 보란 듯이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있다는 생각으로 뛰고 또 뛴다. 귀농의 기수로 줄달음친다. 이는 과욕의 산물? 아니면 진취적 기개?
허진영 씨가 주는 귀농 Tip
•인생의 막다른 길에 접어든다는 결연한 각오가 없으면 귀농하지 마라. 적당주의가 통하지 않는 게 농사다.
•귀농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빈틈없이 실천하자.
•농사로 소득을 얻기 쉽지 않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용을 최소화하고 매사 절약해야 한다.
•농사도 기술이고 과학이다. 많은 정보를 섭렵하자.
•SNS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라. 의외의 성과가 빠르게 도출될 수 있으니.
•작목의 경제성을 과장 선전하는 묘목상의 상술에 현혹되지 말자.
•가장 믿을 만한 농사 조언자는 귀농 선배다.
청암사로 접어드는 길목부터 숲과 계류로 시원한 풍광이 펼쳐진다. 경내에도 다종다양한 수종이 아우러져 수목원을 연상시킨다. 비구니 행자들이 공부하는 아름다운 산사다. 내친김에 청암사에서 수도산 정상부 수도암 일대에 걸쳐 조성된 인현왕후길(총 9km)도 걸어볼 만하다.
장마로 불어난 수량에 계곡이 터질 듯 꽉 찼다. 억박적박 얽힌 바위들을 휘돌아 소쿠라지는 허연 물살로 음지이면서도 양양하다. 이쯤이면 절경에 맞먹어 폭염이 성가실 게 없다. 나무들은 궁금한가보다. 계곡으로 내뻗은 가지마다 살랑거리는 품이 은근한 손짓을 닮았다. 골바람이 스쳐 지나자 나무들이 사람처럼 들떴다. 출가도 설레는 여정일까? 세속에서 산문(山門)까지 멀리도 왔다. 이 절에 갓 출가한 수행자들이 산다. 청암사는 비구니 승가대학이다.
접때 왔을 땐 고요한 절이었다. 여린 싹눈 틔우는 봄나무처럼 청순한 행자들만 간혹 경내를 거닐더라. 오늘은 구경하러 온 사람이 숱하다. 김천시가 닦은 둘레길 ‘인현왕후길’에 청암사가 포함되면서 급작스레 드나드는 숫자가 늘었다. 찻집이 들어섰고, 현대식 해우소(解憂所)도 근사하게 새로 지었다. 뜨악하게도 경내의 일부 소로까지 아스팔트를 입혀 시커멓다. 원래의 흙길은 일부러 찾아와 걷는 이가 드문 덕분에 덜 밟혀 포근했다.
이 절이 그 절이었냐? 싱숭생숭하게 읊고 지나는 이가 있다. 그는 뭔가 섭섭한 게다. 불가에서 이르길, 외양에서 진리를 찾지 말라 했다. 부처마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다 했다. 알고 보면 다 편의시설이니 깐깐하게 따질 게 없다. 분에 넘치는 치레라면 허세이겠지. 그러나 그저 수수하며, 여전히 수려한 것은 나무들이 지천으로 어우러져서다. 청암사처럼 온갖 나무들이 길차게 자라 개운한 풍치를 이룬 산사가 흔치 않다.
물소리와 매미소리가 연신 귀를 따라붙는다. 극락전 구역에서 발길을 멈춘다. 청암사 풍경의 절정이 여기에 있어서다. 담장 안짝에 어느덧 늙어 고졸한 전각이 있고, 바깥으로는 소로와 텃밭이 정갈하다. 극락전 지붕 저편 위로 큰 구름덩어리 흘러 산을 넘어가자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법문이 따로 있겠는가, 내 마음에 구름이 걷히면 부처가 보인다.
극락전 담장에 기대어 붉은 꽃을 토해낸 놈은 배롱나무다. 껍질을 벗고 또 벗기를 거듭해 누드처럼 티 없이 말짱한 수피를 드러내는 나무다. 절집에서 흔히 배롱나무를 심는 건, 일념으로 번뇌의 껍질을 벗고 깨끗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기를 배롱나무처럼 하라는 경책에서다. 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어쩌면 모두 경책이자 법어다. 제 몸을 녹여 주위를 밝히는 초처럼 나무들은 꽃으로, 열매로 세상을 밝힌다. 물은 유유히 흘러 물처럼 살라 한다. 산은 만고에 명증한 무자천서(無字天書, 하늘이 만든 글자 없는 책)라 하였으니 청할 만한 족집게 레슨교사다.
이 절의 신참 비구니 행자들은 허투루 살지 않기를 맹세했을 것이다. 삶에 대한 회의에서 벗어나기로, 사사로운 감정의 늪에서 헤어나기로 다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서 일어나는 욕구들을 내려놓기 쉬울까보냐. 맛난 음식을 먹고 싶고, 달콤한 영화를 보고 싶고, 멋진 옷을 입어보고 싶고, 세간에서 습이 된 중생 유락을 다 떨치기 어렵다. 그걸 떨치면 깨달음이라 했다. 게다가 깨달음마저 떨쳐야 비로소 무애(無碍)에 이르러 견성이다. 이거야 원,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해서, 공부하다 죽어라! 고승들은 그리 통렬하게 가르쳤다. 무슨 공부를? 혜암스님이라고, 장좌불와(長坐不臥)와 일일일식(一日一食)으로 유명했던 이는 경전이나 선(禪)은 공부거리로 족하지 않다고 봤다. ‘중들이 불상인지 나무토막인지에다 대고 관세음보살이나 외는데 부끄러운 줄 알라. 남을 위해 쉴 새 없이 손발을 놀리는 게 공부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불법(佛法)이니라.’ 이타적 행실로 차가운 세상에 군불 지피기. 이게 승려만의 일이랴. 청암사에 가거들랑 신참 행자처럼 나를 내려놓아 남 좋은 일을 시키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한 번쯤 꿈꾸어볼 일이다.
인현왕후는 이 절에서 수행승처럼 살았을까. 숙종의 계비(繼妃)였던 그녀는 왕자를 낳지 못한 데다 당쟁에까지 휘말려 폐위된 뒤 청암사에서 3년을 살았다. 전해오는 행장이 없어 아쉽다. 어쩌면 불법에 의지해 사무치는 고독을 눌렀으리라. 스물세 살 나이에 긴긴 유폐라니. 나무들 무성한 저 뒷산 숲에서 몸을 떨곤 했으리라. 간혹 숲에서 번뇌를 잊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