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병장수를 위해서는 운동이 필수라는 이야기를 들은 70대 A씨는 큰마음 먹고 집 근처 헬스장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입구에 ‘노(No)시니어존’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에서 운동해야 할까. 다행히도 시니어가 운동할 수 있도록 각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새해를 맞아 건강해지려는 이들을 위해 ‘노인을 위한 운동장’을 소개한다.
지난해 1월 서울에 있는 한 복합 스포츠 시설은 만 68세인 A씨가 회원가입을 신청하자 만 65세 이상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고령 회원들의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해 회원가입 나이를 제한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인권위는 “만 65세 이상을 일률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서울 강동구의 한 헬스장에서는 고령층과 한 공간에서 운동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민원을 받고 ‘젊은 분들에게 인사, 대화, 선물, 부탁, 칭찬 등을 하지 마세요’라는 공지문을 게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김영재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초빙교수는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 헬스장을 찾는 시니어가 늘어나는 추세다. 노시니어존은 그룹 수업이 성행하면서 불편을 느낀 젊은이들이 생겨나며 불거졌다고 본다”라면서 “시니어가 헬스장 문을 두드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 운동을 즐기던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큰 용기를 냈을 것이다. 그러한 그들을 배척하는 것은 매우 차별적인 행동이며, 큰 상처를 안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중년 이상은 체력이 약해지는 시기로, 이를 보강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필요하다. 운동은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 등의 만성질환, 심뇌혈관 질환, 치매, 암 등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며, 삶의 질을 높인다는 점이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알려져 있다. 운동법은 유산소 운동 50%, 근력 운동 30%, 스트레칭 운동 20%, 5:3:2로 구성하는 게 효과적이다. 노인을 위한 운동장에서 마음 편하게 스타트를 끊어보자.
내 몸 측정부터 시작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해야 할 것은 나의 체력을 측정하고 어떤 운동이 필요한지 진단하는 것이다. 이에 운동 첫 단계로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운영하는 ‘국민체력100’ 체력인증센터 방문을 추천한다. ‘전 국민의 건강한 100세 시대’를 표방하는 ‘국민체력100’은 국민의 체력 및 건강 증진에 목적을 두고 체력 상태를 과학적 방법에 의해 측정·평가해 운동 상담 및 처방을 해주는 스포츠 복지 서비스다.
2011년 시범 사업부터 시작했으며,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책과 강연을 통해 ‘국민체력100’ 방문을 추천한 이후 시민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체력인증센터는 전국에 75개소가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하며, 매월 1일과 16일에 예약일이 오픈된다. 유아기(48~83개월), 그리고 유소년기(만 11~12세), 청소년기(만 13~18세), 성인기(만 19~64세), 어르신기(만 65세 이상) 등 연령별 맞춤형 체력 측정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기본 체력은 물론 근력, 심폐지구력, 유연성 등을 측정한다.
그중에서도 서울 송파체력인증센터는 국민체육진흥공단 직영점이다. 송파센터에서 근무하는 윤혜옥 운동처방사는 “체력인증센터의 가장 큰 장점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목표를 설정하고 체계적으로 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라면서 “현재 하고 있는 운동이 있다면 그 운동이 내 몸에 맞는지 점검할 수 있고, 추가적으로 다른 운동은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만약 아무 운동도 하지 않는다면 걷기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국민체력100’에서는 대면·비대면 체력증진교실도 운영한다. 송파센터에서는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교실을 지속적으로 연다. 프로그램은 운동처방사가 대상에 맞춰 구성하는데, 소도구를 활용한 근력·유산소 위주의 운동을 알려주는 편이다. 윤혜옥 운동처방사는 “매 기수 20명 넘는 회원이 수업하며 경쟁률이 치열하다. 60대부터 80대까지 함께하는데 어르신들이 연령을 구분 짓지 않고 친해지며, 즐겁고 열정적으로 운동한다”고 말했다. 또한 “체력증진교실에서는 8주간의 수업 전후로 체력을 측정한다. 보통 어르신들은 체중의 변화는 거의 없지만 체지방이 줄고 근력과 유연성이 좋아진다는 결과가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송파구 주민인 김수남(76세) 씨는 남편과 함께 센터가 건립된 시기부터 줄곧 다니고 있다. 체력 측정 결과 1등급을 받았다는 그는 “나이에 비해 건강한 편인 것 같다. 워낙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신 선생님들 덕분이다”라면서 “80대에도 계속 여기서 운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천섭(80세) 씨도 센터에서 계속 운동하고 싶다면서 “운동을 하면서 건강뿐 아니라 활력을 찾았다. 어르신을 위한 수업이 더욱 길게, 그리고 자주 편성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수요 높아진 근력 운동
중년 이상 되면 근력 운동은 필수적이다. 근육은 40세를 기점으로 해마다 1%씩 줄어든다. 근육량, 근력이 급격히 떨어지면 근감소증으로 이어져 만성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난해 4월 개소한 서울 강남구 논현노인종합복지관 ‘스마트피트니스센터’는 근력 운동을 중심으로 하며, 국내 최초 AI 기반 시니어 헬스장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스마트피트니스센터는 60세 이상의 강남구민이면 이용할 수 있다. 논현노인종합복지관의 정다운 사회복지사는 “한 번이라도 센터를 이용한 분은 약 400명, 일일 이용자는 100명 이상으로 집계된다”면서 “원래 70~80대가 많았는데 60대 어르신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 이용 금액이 무료이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부담감이 적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처음 어르신이 센터를 방문해 접수하면, 건강상태에 대해 물리치료사와의 상담이 진행된다. 그리고 인바디로 체성분을 측정하고, 노쇠측정기로 노쇠지수를 검사한다. 상담 및 검사 결과에 따라 운동 목표를 설정하고 운동을 시작하면 된다. 생활스포츠지도사가 기구 사용법을 설명해주고, 상주하며 운동을 돕는다. 또한, 동년배로 구성된 시니어헬스봉사단이 배치되어 더욱 도움을 준다.
센터에는 7개의 AI 기반 상·하체 근력 운동기구가 있다. 각 기구를 이용하기 전에 회원 카드를 찍어야 한다. 카드에 회원의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어 기구가 알아서 무게를 조절하고, 운동 목표치를 알려준다. 정다운 사회복지사는 “AI 기구는 운동의 지속성과 함께 운동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등속성 기능으로 부상 위험을 줄여 안전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센터 공간은 이전에 안마의자 등이 있던 건강관리실이었다. 건강관리에 대한 어르신들의 높은 욕구를 반영해 헬스장으로 공간을 탈바꿈한다고 했을 때, ‘운동 싫다’, ‘젊은이들이 쓰는 기구인데, 두렵다’ 등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정다운 사회복지사는 “만성질환의 단순 관리를 넘어선 예방 차원의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시설 마련의 큰 계기가 됐다. 실제로 운동을 한 후 약 복용을 줄인 분도 있고, 여기에 다닌 후 용기를 얻어 사설 헬스장을 다니는 분도 있다”면서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일상에 활기가 생기고 잠이 잘 온다고 공통적으로 얘기한다”고 전했다.
매일 센터에서 운동한다는 이기순(72세) 씨는 “집 근처에 있는 헬스장을 가본 적도 있다. 거기도 선생님이 계시긴 하지만, 나이 든 사람이 운동기구에 대해 세세하게 물어보는 건 실례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러웠다”면서 “여기서는 선생님이 계속 봐주시기도 하고, AI가 운동 강도를 조절해줘서 좋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근력 운동을 지속하다 보니 몸이 건강해진 것이 느껴진다. 우리 집이 3층인데 계단 오르내릴 때 이전보다 무릎 통증이 적고 숨이 덜 차다”면서 “올해 목표는 체중 3kg 줄이기, 두 번째는 지구력 기르기”라고 각오를 다졌다.
개포동에 거주하는 이관섭(77세) 씨는 대중교통 기준 왕복 1시간 거리를 오간다. 그는 “원래 만 보 정도 걸어 다니고, 등산도 좋아했다. 지금도 등산을 하긴 하지만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근력 운동이 필요해 여기에 오게 됐다”면서 “매년 현상 유지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욱 늘어날 시니어 운동장
은퇴 후 제2의 일을 하며 액티브 시니어로 살고 있는 권오돈(77세) 씨는 일주일에 세 번 오전에는 송파체력인증센터, 오후에는 스마트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한다고 밝혔다. 그는 “노년인 우리를 마다하지 않고 운동을 가르쳐주는 곳과 열정적인 선생님들이 있어 고마움을 느낀다”면서 “국가적으로도 노인이 건강하게 살아가야 병원비라는 사회적 비용을 경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인 건강 시설에 대한 지원이 더 많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다운 사회복지사는 “수요가 점점 높아지는 데 비해 우리 시설 공간이 협소하다. 또 멀리서도 우리 센터를 찾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이는 집 근처에 안전하고 편리하게 운동할 장소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르신들이 더욱 쾌적한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접근성과 기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시설이 확충됐으면 한다”며 의견을 전했다.
김영재 교수는 정부에서 노인의 건강 증진 필요성을 인지하고 지원을 확산하려 한다며, 전국적으로 파크골프장이 건립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예라고 봤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노시니어존’ 헬스장 논란은 줄어들고, 노인을 위한 운동 공간이 많아질 것이 분명하다. 다만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고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근력 운동과 체계적인 운동에 대한 니즈가 높아진 만큼, 시설을 갖추고 운동지도사 인력 배치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