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IT(가전제품·정보기기) 전시회인 ‘CES 2022’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됐다. 전 세계 159개 국가의 2200여 개 기업이 참여했다. 전년에는 코로나19 유행으로 홈코노미(홈+이코노미, 재택경제활동)에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는 로봇 등 위드코로나 속 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돌파구 마련에 집중했다. 이 중 고령자의 전반적인 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들이 속속 소개돼 눈길을 끈다.
현대차그룹은 전시 기간 소형 모빌리티 플랫폼인 ‘모베드(MobED)’를 공개했다. 모베드는 직육면체 모양의 차체에 기능성 바퀴 네 개가 달려 기울어진 도로나 요철에서도 수평을 유지할 수 있다. 고속 주행 등 필요에 따라 전륜과 후륜 간격을 65㎝까지 넓혀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며, 저속 주행이 필요한 복잡한 환경에서는 간격을 45㎝까지 줄여 좁은 길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모베드의 크기를 사람이 탑승 가능한 수준까지 확장하면 노인과 장애인의 이동성을 개선할 수 있으며 유모차·레저용차량(RV) 등 1인용 모빌리티로도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CES 2022에는 헬스케어 기업이 대거 참여했다. 미 플로리다의 케어프레딕트는 노인 맞춤형 건강 추적 서비스를 선보였다. 손목시계가 노인들의 식사와 요리, 수면, 목욕 등 일상생활 패턴을 모니터링하고 평소와 다른 행동이 감지되면 가족들에게 알림 메시지를 보낸다. 예컨대 노인이 평소보다 침대에 오래 누워있는 것을 감지하면 가족들에게 이를 알려 사고를 예방하는 식이다.
한국 스타트업 룩시드랩스는 사람의 뇌파와 동공 움직임 등 생체 신호를 활용해 경도인지장애 위험에 노출된 노인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인지 건강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VR(가상현실) 인지 기능 평가·훈련 시스템을 개발했다. VR 기기를 착용하고 기기에서 나오는 VR 게임을 즐기는 동안 기기가 사용자의 뇌파와 눈 움직임 등을 분석해 작업 기억력, 주의력, 공간지각력 등을 평가한다.
한국 기업 아이메디신은 무선 건식 뇌파 측정기 ‘아이싱크웨이브’를 공개했다. 머리에 모자처럼 써서 사용하는 이 기기는 4분 만에 뇌파를 측정하고 10분 만에 검진 결과를 알려준다. 뇌파를 측정하면 전두엽·측두엽·후두엽 등 뇌 부위의 활성화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나의 뇌가 동일한 연령대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인지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 기업은 뇌파 측정 결과를 요약해 클라우드에 띄워 보여 주면서 뇌의 각 부위를 빨간색 또는 파란색으로 표시한다. 빨간색은 같은 나이대보다 뇌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뜻하고, 파란색은 뇌가 제 기능을 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메디신은 최근 서울 서초구치매안심센터와 아이싱크웨이브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회사 관계자는 “향후 ADHD 검진 또는 치매 예측 등으로까지 서비스를 뻗어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바디프렌드는 안마의자 ‘다빈치’를 발표했다. 이는 생체 전기저항을 통해 체성분을 측정하는 BIA 기술을 적용해 사용자의 근육량, 체지방률, BMI(체질량지수), 체수분 등 7가지를 분석한다. 측정한 체성분 정보는 안마의자 태블릿에 저장되며, 체성분 정보에 맞는 안마 프로그램 추천 기능도 탑재했다. 특히 팔 안마부에는 LED 손 지압 기능을 적용했다. 더불어 손과 팔목의 관절 부위에 특정 파장대의 LED를 조사하는 LED 테라피를 제공하며, LED 가이드 플레이트 상단에는 발열부를 추가해 손바닥에 열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스타트업 룩시드랩은 사람의 뇌파와 동공 움직임 등 생체 신호를 활용해 경도인지장애 위험에 노출된 노인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인지 건강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VR(가상현실) 인지 기능 평가·훈련 시스템을 개발했다. VR 기기를 착용하고 게임을 즐기는 동안 기기가 사용자의 뇌파와 눈 움직임 등을 분석해 작업 기억력, 주의력, 공간지각력 등을 평가한다.
한편, 웨어러블(착용형) 헬스케어 기기들도 등장했다. 착용하면 수면 상태와 심박수, 체온, 혈중산소농도 등을 실시간 추적하는 반지, 사람이 올라서면 체성분과 자세 등을 체크해주는 욕실 매트, 잠을 자는 자세를 분석하고 자동으로 높이를 조절해 코골이를 예방하는 베개도 출시돼 많은 주목을 받았다.
‘덜커덩’ 캐리어 끄는 소리와 활주로에서 대기 중인 비행기, 어딘가 바삐 움직이는 승무원의 발걸음. 그리고 손에 쥔 비행기 표까지. 공항이란 장소는 여행이 시작되기도 전 가슴을 한껏 웅장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공간이다. 그 설렘을 잊고 지낸 지 어느덧 2년째다. 여행이 멈춘 세상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휴가철이 되면 하늘 위로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그런 이들이 주목할 만한 곳이 있다. 국립항공박물관이다.
서울 강서구 하늘길 177. 내비게이션에 적힌 주소에 도착하자 드넓은 평지 아래 자리 잡은 거대한 원통형 건축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가가 살펴보니 빗살무늬 구조물이 건물을 둘러싸고 반복되는 패턴을 그려낸다. 그 모습이 비행기의 동력 장치인 ‘터빈’을 연상케 한다.
비행기의 심장을 닮은 역동적인 외관에서부터 항공의 모든 것을 담아내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이곳은 지난해 7월 개관한 국립항공박물관이다. 연면적 1만8593㎡,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에 이르는 규모로, 그 이름처럼 하늘에서 펼쳐지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아우른다. 새의 날개에서 영감을 받아 글라이더를 띄우던 시대의 역사부터 우리나라를 오늘날 항공 강국으로 만든 각종 산업과 에어택시 가 날아다닐 공항의 미래상까지, 항공 분야의 면면을 다양한 전시물과 체험 시설로 소개한다. ‘하늘길’이라는 도로명 주소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상공에서 만난 민족의 얼
박물관의 정체성을 나타내던 외관의 구조물이 내부에서는 또 다른 각도로 존재감을 뽐낸다. 안으로 입장해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면, 둥그런 천장이 빗살무늬로 퍼지는 채광과 만나 제트 엔진의 형상을 그대로 재현한다. 본격적인 여행은 지금부터라는 듯, 천장 주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거대한 항공기가 관람객을 반긴다.
전시는 국내외 비행의 기원과 발전을 살펴볼 수 있는 1층 ‘항공역사관’부터 시작된다. ‘인간에게 하늘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해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면서도 갈망했던 옛 조상의 염원을 각종 유물과 문헌으로 소개한다.
다양한 전시물 가운데 라이트 형제보다 300여 년 앞서 우리나라에 이미 ‘하늘을 나는 수레’가 존재했다는 역사적 기록물은 가히 인상 깊다. 임진왜란 당시 무관 정평구가 발명한 유인 비행체 ‘비거’(飛車)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저작에 따르면, 왜군에 의해 진주성이 고립되었을 때 정평구가 오늘날의 글라이더와 유사한 비행체를 날려 적의 포위망을 뚫었다고 전해진다. 비거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학계의 논란이 분분하지만, 우리 항공 역사에 새로운 연구 과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우리 국민에게 비행은 하늘을 난다는 일차원적 의미, 그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되찾는 ‘구국’의 수단이자 전쟁 중 ‘호국’을 위한 무기였고, 첨단 기술을 활용한 각종 산업으로 ‘부국’을 이루는 계기였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한인비행학교가 있다.
1920년 7월 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항일 운동을 목적으로 설립한 한인비행학교는 독립을 향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담긴 곳이자 오늘날 공군의 뿌리가 된 역사적인 활동이다. 국립항공박물관이 코로나19라는 악조건을 무릅쓰고 개관 날짜를 지난해 7월 5일로 고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때 당시 훈련기로 사용했던 2인승 복엽기 ‘스탠더드 J-1’은 박물관을 대표하는 전시물 중 하나다. 스탠더드 항공사가 개발한 이 훈련기는 우리나라가 소유한 최초의 비행기로, 수직 날개에 태극 문양이 진하게 새겨 있다.
그로부터 2년 뒤 한국인을 태우고 우리나라 상공을 최초로 비행했던 ‘금강호’도 박물관의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전시물이다. 조선 최초 비행사 안창남 선생이 몰았던 복엽기로, 당시 서울 여의도와 창덕궁 일대를 자유롭게 날던 금강호의 모습은 조국을 빼앗긴 우리 민족에게 긍지를 일깨웠다. 박물관에 설치된 금강호는 복원 모형이지만, 실물 크기를 그대로 재현해 그 압도적 규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국민의 성금을 모아 사들인 최초의 공군 전투기 ‘T-6 건국기’부터 영화 ‘빨간 마후라’에 등장한 한국전쟁의 영웅 ‘F-86 세이버’, 우리 자체 기술로 만든 초음속고등훈련기 ‘T-50 골든이글’ 등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항공기를 실물로 만나볼 수 있다.
하늘 위로 꿈을 펼치다
한 층 위로 올라가 볼까. 2층으로 향하는 길목에 설치된 ‘에어워크’는 나선형 경사로로 관람객을 부드럽게 안내하며, 걸어 올라가면서도 실물 비행기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 이동 과정에서 생겨나는 시간의 공백까지 촘촘히 메운다. 보딩 브리지(Boarding Bridge)를 통해 비행기에 오르는 느낌과 비슷해 여행 전의 설렘도 선사한다.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 관람객은 2층에 다다르는 순간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짐 찾는 곳부터 입국 심사대, 세관 신고장 등 공항의 각종 시설이 재현돼 있다. 항공 운송 및 항공기 제작, 정비 등 오늘날 항공산업 전반을 다루는 ‘항공산업관’이다. 이곳에서는 수화물 이동 과정, 비행기 이착륙 원리 등 공항과 기내에서 느꼈던 크고 작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2층을 둘러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더 먼 미래, 인류는 무엇을 타고 이동할까? 비행기 그 이상의 것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이에 대한 해답이 3층 ‘항공생활관’에서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자율비행 드론과 자율비행 개인항공기(OPPAV), 수직 이착륙과 고속비행이 가능한 스마트 무인기 ‘TR-100’ 등 현재 개발 단계에 있거나 완료된 최첨단 교통수단을 전시하고, 미래 인류의 생활상을 예견한다. 이로써 항공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아우르는 공간이 완성된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박물관의 하이라이트가 남아 있다. 최첨단 항공 시설로 생생한 비행 경험을 제공하는 체험형 교육·문화 공간이다. 관람객은 기내 방송으로만 듣던 안전교육을 전·현직 승무원에게 배워보고, 가상현실(VR)과 360도 회전 장비를 활용한 기기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부조종석에 탑승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5곳의 체험관 중 단연 인기인 것은 ‘조종·관제 체험’이다. 인천공항의 관제탑과 보잉 747기 조종실을 재현한 시뮬레이터에서 비행기 이착륙을 관장하며 관제사와 조종사가 되어보는 시간이다. ‘체험’일지언정 생생함은 실제와 견줄 만하다. 조종실 부기장석에서 이륙을 알리는 기장의 사인과 귓가를 멍멍하게 만드는 엔진 소리, 눈앞에 펼쳐지는 광활한 하늘을 온몸으로 느끼다 보면 앉아 있는 곳이 지상이라는 사실을 깜박 잊게 된다.
체험관을 비롯해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항공다빈치클럽’ 등 박물관 곳곳에 아이들을 위한 콘텐츠가 눈에 띈다. 이는 어린이에게 항공인의 꿈을 키워주고자 한 최정호 국립항공박물관장의 소망이 반영된 결과다. 최정호 국립항공박물관장은 “박물관을 찾는 어린이들은 앞으로 항공 기술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아이들이 이곳을 통해 꿈을 꾸고, 이루어가고, 먼 훗날 항공인이 되어 돌아와 꿈을 확인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매시 30분마다 조종사 또는 승무원 출신 도슨트가 전시 해설을 진행한다. 더욱 흥미롭게 관람하고 싶다면 시간을 맞춰 방문하는 것이 좋다.
국립항공박물관
관람 시간 매일 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 휴무
입장료 무료(체험 비용 별도)
가는 길 지하철 5호선, 9호선, 공항철도를 이용해 김포공항역 하차. 김포공항 국내선 1층 국립항공박물관 안내표지를 따라 제2주차장 방면 게이트로 나와서 직진, 박물관까지 약 400m. 또는 국내선 1층 4번 게이트에서 공항순환버스 이용.
※블랙이글스 탑승 체험을 제외한 전 체험은 홈페이지(aviation.or.kr)에서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인터넷에 안경을 파는 쇼핑몰도 없던 시절부터 안경 디자인을 시작해 25년간 디자이너로서 묵묵히 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1세대 안경 디자이너로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안경 디자인 회사 ‘디자인 샤우어’를 운영 중인 김종필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인터넷이 낯선 시대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기본이 된 세상으로 변했지만, 같이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업계를 떠났다. 그가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출발했을까? 그간의 여정을 들으며 그 원동력에 관해 물어봤다.
어릴 때부터 암기나 받아쓰기는 못해도, 그림을 그리는 데 재주가 있어서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다녔다. 그림 그리는 걸 얼마나 좋아했던지 다빈치의 해부도를 보고 큰 감명을 받고 직접 따라서 매일같이 그렸다고 한다. 디자이너로서 타고난 본능이 이끄는 대로 대학에서도 금속공예 디자인을 전공했다. 우연한 계기로 선택한 첫 직장이 인생의 이정표가 됐다.
“어릴 때부터 안경 디자이너가 꿈은 아니었어요. 다만 조립하고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그런 점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이상하게 안경에 끌렸어요. 당시 렌즈와 테가 조립되는 구조적인 디자인이 제게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운 좋게 안경 디자인 공모전에 입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당시 유명했던 ‘서전안경’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게 됐어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직장인으로서 애환은 누구나 있지만,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과 안정적인 생활은 쉽게 뿌리치기 어렵다. 그는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하고 어떤 결심으로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든 걸까?
“첨엔 안경 디자인 리뷰 사이트를 만들었어요. 지금으로 치면 블로그라고 할까요? 막 인터넷이 보급되던 시절이라 ‘블로그’라는 개념조차 없던 때였죠. 심지어 안경원 하시던 나이 지긋한 사장님들은 이메일조차 못 쓰셨어요. 그때 전 세계의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안경을 수집하면서 리뷰를 꾸준히 올렸어요. 이 디자인이 왜 좋은지, 브랜드 스토리는 어떤지 스스로 공부도 할 겸 만들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기술로 승부
재미로 시작했던 일이 사람들에게 주목받으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입소문이 퍼지면서 여러 군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해외 브랜드 담당자들이 한국 업체에 그의 사이트를 문의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에게 투자해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디자인만 하다 보니 세상 물정을 잘 몰랐어요. 기회가 오니 잡아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지금 같으면 착실하게 준비했을 텐데, 어린 나이에 그냥 저질러보자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경제관념도 없던 때라 다달이 통장에 꽤 많은 금액이 들어오는 걸 보면서 계속 잘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사업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관리가 잘되지 않았고,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지 못했다. 빚만 지고 돈을 벌지는 못한 채 계속 적자를 메우기에 바빴다.
“안경원을 4개나 운영하고, 내근직과 영업직도 있고, 도매까지 손을 댔는데 잘 안 됐어요. 욕심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직원이 24명이나 있었는데, 바쁘게 살다 보니 직원의 이름을 잘 모를 때도 있었어요. 통장 잔고 0원에서 시작했는데 빚이 13억 원까지 불어나니까 아찔하더군요. 결국 폐업 위기까지 갔고, 밀린 월급을 챙겨주면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냈는데 참 미안했어요.”
빚이 불어나고 직원을 보낼 정도라면 폐업을 신청하고 포기할 수도 있었을 터. 그는 어떻게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 걸까?
“다시 살아야겠다! 이 마음 하나밖에 없었어요. 거래처 가서 부탁도 많이 하고, 욕도 무진장 많이 먹었어요. 빚쟁이들이 몰려와서 빚 독촉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했고요. 한 8년을 그렇게 지나왔는데,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진짜 앞만 보고 달렸어요. 다른 건 죽어도 할 자신 없고, 이걸로 끝장 본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때부터 기술로 승부 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빚도 많이 줄었고, 신용불량자 상태도 풀렸어요.”
고심이 만든 고집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나? 그가 만든 안경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하나둘씩 그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특히 대중에게 얼굴을 자주 비추는 연예인들이 찾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단골손님이 가수 양희은이다.
“저희가 갤러리아백화점에 입점한 적이 있었는데, 마침 양희은 선생님 스타일리스트가 저희 안경을 보고 선생님께 추천을 드린 거예요. 선생님도 안경을 보시고 맘에 들어 하셔서 그때부터 저희 안경을 자주 찾으세요. 이제까지 30개 이상은 구매하신 것 같아요. 황재근 디자이너나 김영하 작가도 저희 안경을 쓰세요. 대체로 보면 창의적인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와요. 그렇지 않은 일반인 분도 종종 오시는데, 그분들도 개성이 강한 편이에요.”
그렇다면 단골손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수제 안경의 독특한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분들이 많이 찾다 보니 재미있고 차별화된 걸 좋아하세요. 예를 들어 안경알의 좌우 형태가 다른 안경이 있는데 하나는 둥그렇고 다른 하나는 네모예요. 굉장히 특이한 안경인데 이런 스타일을 선호하시는 분이 꽤 많아요. 테가 탈착되는 방식이라 부러지지 않고 빠져요. 빠지면 다시 끼우면 돼요. 충격을 받아도 잘 부러지지 않는 것이 제가 만드는 수제 안경의 장점 중 하나예요. 오로지 제 손끝에서 나온 하나밖에 없는 안경들이에요.”
수제 안경의 장점은 확실히 특별하다.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안경인 동시에, 한 사람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다만 대량 생산과 비교해서 품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오랫동안 수제 안경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들이 다 하는 걸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똑같은 걸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평소에 생각하던 걸 손으로 한번 구현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죠. 처음엔 공장에 최소 수량을 맡길 자금도 수중에 없었어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재미있었어요. 사실 손으로 만드는 과정은 중요해요. 머릿속 생각을 구체적인 오브제로 실현하는 동시에, 과정 중에 하나둘씩 문제를 발견하면서 해결책을 스스로 생각해요. 그 과정이 더 좋은 안경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고 봐요. 손으로 만드는 과정은 일종의 실험이에요. 제 공방은 연구소나 다름없어요.(웃음)”
공장은 쉬지 않고 돌아가지만, 사람은 밥도 먹고 잠도 자야 한다. 손으로 만드는 것은 기계와 비교해서 한계와 단점도 존재한다. 이제껏 수제 안경을 만들면서 힘든 점은 없었을까?
“물론 있죠. 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어요. 거칠게 말하면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고, 다르게 말하면 그 한계치까지 고심해서 만들어내는 고집인 거죠. 기계나 기술이 부족하면 포기할 줄 알아야 하는데, 제 성격상 그게 잘 안 돼요. 같이 일하는 후배는 왜 사서 고생하냐고 묻지만, 저는 이게 좋아요. 매번 똑같은 걸 만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새롭고 더 좋은 안경을 계속해서 만들고 싶어요. 늘 한계를 실험 중인 거죠. 제 고집이란 게 그래요.(웃음)”
한 뼘이라도 나아지는 삶
안경 디자이너로서, 숱하게 수제 안경을 만들면서 자신만의 기준이 분명히 있을 터. 그가 생각하는 좋은 안경의 기준과 디자이너로서 철학을 물어봤다.
“일단 기능적으로 충실한 것이 기본이죠. 편하지 않고 튼튼하지 않은 안경을 손님에게 드릴 수는 없죠. 덧붙여 수제 안경은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에요. 새롭지 않으면 손으로 만들 필요가 없죠. 안경은 오브제에 대한 열정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그리고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에요. 완벽한 안경은 없다고 생각해요. 광이 잘 나는 것보다 부족하더라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좋은 안경과 제대로 된 브랜드의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시도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고, 새로운 시도는 열정에서 출발해요. 저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제보다 더 나은 걸 만들려고 매일 다짐해요.”
끝으로 더 나은 걸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 디자이너로서의 계획을 물었다.
“죽을 때까지 조금씩 배우면서 성장하는 것이 삶의 목표예요. 빠르고 크게 성장하는 건 기대하지 않아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 그렇게 조바심을 내면 많이 힘들었어요. 남들에게 보이는 성공보다는 행복하게 재밌게 보내는 하루가 더 소중해요. 어제보다 조금씩 더 성장하고, 일 년 전보다 한 뼘씩이라도 나아지는 것. 그게 디자이너이자 한 인간으로서 목표예요. 그런 점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대표로서 앞으로 사업을 조금 더 가치 있는 방향으로 이끌고 싶어요. 올해는 친환경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한번 해보려고요.”
베테랑 안경 디자이너 김종필 대표가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한 말은 ‘성장’과 ‘차별화’였다. 그의 차별화는 명함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누구나 다 쓰는 종이 명함이 아니라 비닐로 정성스럽게 포장된 안경닦이 위에 수제 안경 사진과 함께 새겨진 명함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을 차별화하는 수단이자 실용성을 더한 명함이었다.
한편 그는 늘 성장하고자 했다. 폐업에 내몰렸을 때 사업가로서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경영·마케팅·브랜딩 책을 400권 이상 독파했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경영인으로서의 판단 기준이나 관점을 많이 익힐 수 있었다고.
이제껏 그는 남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안경을 만들며 자신만의 사유를 표현했다. 그게 단순히 이상적인 얘기가 아니고, 구체적인 실행과 기본을 충실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서 더욱 빛나 보였다. 아름다움과 동시에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디자인적으로 차별화에 신경 쓰면서 편안함이라는 안경의 실용성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김종필 대표는 디자이너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갖추기 위해서 지난 25년 동안 밤낮없이 고민했고, 그 고민의 결과가 수제 안경이었다. 흔히 나이테라고 부르는 ‘연륜’은 계절의 변화가 뚜렷할수록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늘 시도하고 매일 성장하려는 그의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큰 연륜을 만들고, 후에 품이 넓은 나무로 성장해서 넉넉한 그늘을 사람들에게 드리우는 안경 디자이너가 되기를 바라며 마친다.
#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저·메이트북스)
로마의 전성기를 이끈 ‘철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삶과 죽음, 세상의 본질 등에 대해 날카롭게 통찰해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인생 지침서가 되어준다.
#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 (최배근 저·21세기북스)
글로벌 금융위기, 동일본 대지진, 코로나19 등 2000년대 인류에게 발생한 여러 위기를 예리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공감과 호혜의 가치를 역설한다.
# 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열린책들)
수술 중 사망한 주인공이 지난 생을 심판하는 천국의 법정에 도착해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인간' 이후 시도한 희곡으로, 특유의 상상력과 유머가 돋보인다.
# 50이라면 마음청소 (오키 사치코 저·센시오)
라이프스타일 전문가인 저자가 청소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소개한다. 공간을 향기롭고 쾌적하게 정리해나가면서 마음속에 묵혀뒀던 찌든 때까지 지워나갈 것을 제안한다.
# 예술가의 편지 (마이클 버드 저·미술문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력서, 프리다 칼로의 연서 등 희대의 예술가들이 손으로 주고받은 90여 편의 기록물을 담았다. 실물 편지 스캔본을 첨부해 시각적 즐거움도 제공한다.
# 아름다운 사찰여행 (유철상 저·상상출판)
여행전문기자 출신 저자가 20여 년 동안 전국의 사찰을 다니며 기록한 책이다. 총 56곳의 산사를 테마별로 소개하며 사찰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마음 치유 효과도 설명한다.
얼마 전 박수근 그림 한 점을 강원도 양구군에서 사들였다는 기사가 났다. 박수근의 그림 ‘나무와 두 여인’ 시리즈 6점 중 한 점이다. 구매 가격이 무려 약 8억 원이다. 시골 재정이 어려운데도 이러한 과감한 결정을 한 양구군에 경의를 표한다.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해 방학이나 휴가철에 자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지구촌 사람들 삶의 모습이나 환경을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힐링도 하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신비로운 자연경관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마다 찬란한 문화유산은 자랑거리다. 여행 중 어디를 가든 빼놓지 않고 가는 곳이 박물관이요 미술관이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레오나르도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을 봐야 하고, 네덜란드에 가면 뭉크의 ‘절규’를 봐야 한다. 유명한 그림 한 점이 있는 곳에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사진 한 장 찍기도 어렵다.
지난번 오스트리아 빈에 갔을 때 벨베데레 궁전을 들렸을 때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처음 그의 진품 ‘키스’작품이 공개된다는 거였다. 우리가 사진이나 서적을 통해서 많이 봐왔던 작품이다. 그런데 그의 진품이 100년 만에 전시되는 것이고 또다시 진품을 만나려면 100년을 기다려야 한단다. 이번에 못 보면 내 생애 진품은 구경도 못 하는 것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기념관에 도착하니 관람 인파로 가득하다. 요즘은 사진기술도 발달하고 복제품도 얼마든지 있는 시대다. 유튜브에는 클림트의 ‘키스’작품 제작 방법까지 알려져 많은 사람들 따라 그리고 있다. 그렇게 쉽게 볼 수 있건만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의문을 품고 몇 시간을 기다려 진품 앞에 섰을 때의 그 짜릿한 느낌과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평생을 두고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마치 작가의 고뇌와 영혼이 전이되어 오는 느낌이다.
또 한 번은 일본 다카마쓰 나오시마 지중미술관을 갔을 때이다. 모네의 ‘수련’시리즈 몇 점이 전시되어있다고 했다. 또 긴 줄을 서야 했다. 여긴 더 엄격하다. 한 번에 꼭 열다섯 명씩만 들어간다. 앞 조가 다 보고 나서야 다음 조가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들어간 전시장은 쾌적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로 빽빽이 붐비던 생각을 하면 천양지차이다. 모네의 진품 한 점이 지역경제에 큰 힘이 되는 셈이다. 유명 화가의 진품을 보는 것 자체만도 감동이었지만 그 쾌적한 공간에 그림 감상을 한 경험이야말로 특별히 대우를 받은 느낌이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라 사진 한 장 없지만, 눈과 마음으로 찍어온 감동이 지금도 짜릿하게 전해온다.
양구군이 박수근(1914~1965)의 대표작품 '나무와 두 여인' 을 7억 8750만 원을 들여 구매했다고 한다.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1년 치 작품구매 예산을 몽땅 투입해 27×19.5cm짜리 손바닥만 한 그림에 투입한 셈이다. 소장자도 박수근 미술관을 위해 1억 원의 통 큰 할인을 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특히 소설가 박완서 ‘나목(裸木)’의 영감이 된 작품으로 유명하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1952년 당시 미군 기념품 판매점 내 초상화 부에서 박수근과 박완서가 있었다. 훗날 작가 박완서가 함께 일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박수근을 주인공으로 쓴 작품이 나목이다. 처음엔 잎도 없는 ‘고목’이라 생각했으나 그 그림이 시든 ‘고목(古木)’이 아니라 언젠가 싹을 틔울 봄날을 기다리는 ‘나목(裸木)이었음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다. 박수근의 이 그림은 당시 가난했던 서민의 삶의 모습을 연민의 시선을 담아 그린 그림이라 한다.
이러한 미술품이 장차 지역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문화 브랜드임을 믿는다. 그림 구매를 위해 백방으로 뛰며 설득한 미술관 관장과 이를 만장일치로 찬성한 양구 군청의 결정에 찬사를 보낸다. 이 작품은 오는 5월 6일부터 열리는 특별전 ‘나목: 박수근과 박완서’에서 선보인다고 하니 나도 꼭 찾아가서 관람을 해야겠다.
흔히 여성암이라고 하면 유방암이나 자궁경부암 등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발생되는 암의 순위를 매겨보면 어떨까? 국가암정보센터 2015년 기록을 보면 예상과 달리 유방암은 2위에 불과하다. 자궁경부암 순위는 대장암이나 위암 등에 밀려 더 아래로 내려간 7위다. 그렇다면 1위는? 바로 갑상선암이다. 여성에게 발생되는 전체 암 중 19.4%가 갑상선암이다. 주요 의료기관에서 갑상선암을 대표적 여성암으로 지정 관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갑상선암에 잘 대비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대여성암병원 권형주(權炯周·40) 교수에게 알아봤다.
의학 분야나 의료제도에 대해 오랫동안 기사를 써온 기자라면 갑상선암과 관련한 취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질문이 있다. 바로 과잉 진단 관련 질문이다. 2000년대 초반 이후 국내에서 갑상선암 진단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면서 의료계에선 갑상선암 과잉 진단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지금은 일단락된 걸까?
‘무조건 수술’ 지양하며 논란 줄어
권형주 교수는 갑상선암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수술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라고 말한다.
“진단법이 개선되고 장비가 좋아지면서 과거보다 많이 발견되고 있어요. 예전엔 검진 과정에서 나타나면 대부분 조직검사를 한 뒤 수술로 제거했는데 최근에는 이전보다 보수적으로 치료하고 있습니다. 우리 병원에서는 5mm 이하의 종양은 조직검사와 수술을 하지 않고 좀 더 지켜봅니다. 종류에 따라 성장이 빠른 암도 있지만, 대부분 ‘거북이’처럼 진행 속도가 느려 관찰할 수 있는 여유가 있거든요.”
이렇게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에는 암의 크기 이외에 환자 나이와 종양 발생 위치도 포함된다. 환자의 나이가 젊은 경우 진행 속도가 중장년에 비해 빠르기 때문에 적극적인 치료를 하게 된다. 암의 크기가 5mm에서 1cm 정도일 때 경과를 지켜보는 경우도 있지만, 경동맥이나 식도, 기도, 성대신경 등과 가까워 수술할 때 합병증이 걱정되거나, 림프절 전이가 의심될 때, 그리고 어렸을 때 방사선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어 암 성장이 빠를 것으로 예상될 때는 수술을 적극 고려한다.
갑상선암 진단이나 치료에 대한 ‘신중론’이 의료계 전반에서 논의되면서 다양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병원마다 이러한 기준이 세워졌고, 이로 인해 과잉 논란은 일단락된 분위기다.
방사능에 노출되면 발병 늘어
갑상선이라 하면 보통 혈관처럼 생긴 기다란 선(線)을 연상하지만 실제로는 기도를 감싼 나비모양의 덩치가 꽤 큰 신체기관이다. 성인의 갑상선은 한쪽 길이가 5cm 정도에 이르고 두께도 3cm가량 된다. 한자로는 ‘甲狀腺’이라 표기한다.
이곳에 암이 생기는 이유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른 여성암과 마찬가지로 골치 아픈 부분. 권 교수는 의학계에선 여성호르몬과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8대 2 정도로 여성에게서 발병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 여성호르몬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죠. 또 갑상선암을 앓은 환자에게 유방암이 발병할 확률은 2~3배, 자궁내막암이 생길 가능성도 5배 정도 높아요. 여성암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료기관들이 각각의 암을 별도로 바라보지 않고, 통합적으로 관리하려는 것은 이 때문이에요. 다른 암도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하는 거죠.”
갑상선암의 원인으로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방사능이다. 방사능에 노출된 적이 있거나 어렸을 때 방사선 치료를 받았을 경우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 갑상선암도 모든 암과 마찬가지로 노화와 관련이 있다. 55세 이후 발병하면 경과가 좋지 않은 사례가 많다고 권 교수는 말한다.
“잘 알려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인근 지역 주민의 갑상선암 발병이 증가했다는 사실이 증명됐어요. 이 밖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소아·청소년 비만이나 당뇨, 유방암, 폭음 등이에요. 또 갑상선암의 한 종류인 수질암은 20% 정도가 유전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 갑상선암 중 유전과 관련이 있는 경우는 매우 낮은 편이에요.”
발견 늦으면 평생 호르몬제 먹어야
갑상선암을 발견하는 최선의 방법은 초음파 검사다. 아주 작은 조직도 일찍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 주변에서 종양이 만져지거나 물을 마실 때 목에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목소리가 변하기도 한다. 이런 자각증상이 있을 땐 암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 치료 상황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검사 과정이 복잡하지 않으니 미리 검사해두는 것이 좋다.
고령 등의 이유로 수술이 어려운 환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치료는 갑상선을 절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권 교수는 수술 방식이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 이전만 하더라도 갑상선에 암이 생기면 거의 대부분 전절제 방식을 선택했어요. 재발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최근에는 수술 후 환자의 삶을 고려해서 수술 범위를 줄이려는 노력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종양의 크기가 4cm 이하로 작을 경우 암 발생 부위만 제거하는 반절제술도 많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과 반만 제거하는 수술은 단순히 난이도의 문제로만 볼 것은 아니다. 모두 절제해버릴 때는 방사선 요오드 치료가 뒤따르고 평생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한다. 호르몬을 분비할 기관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반절제술을 할 경우는 수술 후 일정 기간만 호르몬제를 복용하다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과가 좋으면 약을 끊기도 한다. 방사선 요오드 치료를 생략하는 경우 많다. 치료 후 환자의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암의 조기발견은 매우 중요하다.
암 성질 변하면 1년 이내 사망할 수도
조기발견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암의 성질에 있다. 갑상선암의 종류는 유두암, 여포암, 수질암, 미분화암, 역형성암 등으로 구분하는데 대부분은 유두암이다. 유두암은 성장이 느려 가장 온순한 암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데, 생존율도 95~100%라서 치료도 쉽다. 문제는 유두암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어느 순간 역형성암으로 변한다는 데 있다. 역형성암의 평균수명은 6개월 정도이고 대부분 1년 이내에 환자가 사망한다.
권 교수는 조기발견이 중요한 이유 중 전이도 있다고 말한다.
“치료를 제때 하지 않으면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는데, 절반 정도는 폐로 갑니다. 뼈로 전이되는 경우는 20%, 뇌에 발생하는 사례도 15% 정도 됩니다. 일반 유두암은 대부분 생존할 수 있지만 폐로 전이되면 생존율이 50% 정도로 떨어져요.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이유죠.”
최근에는 로봇을 활용한 수술이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다빈치’로 대표되는 로봇 수술기는 전립선암과 같이 사람 손이 닿기 어려운 장기가 모여 있는 복잡한 부위를 수술하는 데 활용한다. 갑상선은 그런 부위는 아니지만 수술 도중 주위의 신경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합병증을 줄일 수 있고, 작은 흉터만 남겨 호응도가 높다.
흔히 알고 있는 갑상선암에 대한 상식 중 하나는 요오드 섭취를 위해 다시마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속설이다. 권 교수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한국인은 이미 요오드 섭취량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김치만 먹어도 요오드 섭취량은 차고 넘쳐요. 요오드 섭취량이 부족한 이들은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의 일부 사람들 정도로 보면 됩니다. 최근에는 요오드를 너무 많이 먹어도 갑상선암의 발병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다시마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거두셔도 됩니다.(웃음)”
유럽 미술의 거장들과 만나다 ‘유럽 미술관 박물관 여행’ 휴가철이 시작되는 7월. 해외로 떠난다면 숙소, 관광지, 맛집 등과 더불어 그 지역을 대표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한 곳쯤은 다녀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명한 곳이라도 전시된 작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라면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유럽 곳곳 미술관, 박물관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정보를 친절하게 담아낸 여행안내서 ‘유럽 미술관 박물관 여행’을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유럽 미술관 박물관 여행’ 김지선 저
자료 제공 낭만판다
요약 정보 활용해 여행 스케줄 짜기
미술관, 박물관 소개의 첫 페이지에는 외관 사진과 함께 주소, 교통, 운영시간, 휴일, 요금, 웹사이트 등을 요약해 보여준다. 교통 정보는 인근 역에서 걸어서 얼마나 걸리는지까지 상세히 적혀 있어 여행 일정을 짜는 데 유용하다. 바로 옆 페이지에서는 내·외관 사진들과 더불어 공간의 역사와 전시품 정보, 건축의 특별함 등을 자세히 소개한다. 또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한 관람 팁도 알차게 담겨 있다.
관람지도로 관람 동선 파악하기
‘오르세 미술관은 5층부터 둘러보는 게 좋다’, ‘루브르 박물관의 어디부터 관람해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쉴리관으로 먼저 입장하라’ 등 관람 순서를 안내하는 ‘효율적으로 돌아보기’ 코너가 마련돼 있다. 건물의 층마다 대표 작품의 위치를 표시하고 계단, 화장실, 안내소, 식당 등을 표시한 ‘관람 지도’도 제공한다. 여행 가기 전 지도를 보고 미리 동선과 주요 작품 위치를 파악해두면 실제 방문했을 때 덜 헤맬 수 있을 것이다. ‘전시관별 살펴보기’, ‘오디오 가이드 대여하기’, ‘뮤지엄 패스 사용하기’ 등 상세 정보도 빼놓지 않았다.
주요 전시품 예습하기
각 미술관과 박물관을 대표하는 전시품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눈으로 익힌 뒤 실제 작품을 마주하면 그 감동이 배가될 것이다. 책에는 주요 작품의 이미지와 함께 제작 연도, 크기, 전시관 내 위치, 역사 및 특징들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아직 어느 곳을 관람할지 정하지 못했다면, 여행지의 미술관과 박물관의 전시품 정보를 먼저 훑어보고 관심이 가거나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작품이 있는 곳을 골라 가도 괜찮겠다. 전시 작품들 외에 인근 성당이나 공원, 궁전 등 함께 둘러볼 만한 곳도 함께 소개한다.
책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즐거움
plus 01
‘세계 3대 박물관을 둘러보는 10박 12일 알찬 여행’, ‘인상파 화가들의 흔적을 찾아보는 10박 12일 프로방스 여행’, ‘르네상스 대가들을 찾아가는 9박 11일 여행’, ‘미술관 박물관과 함께 30일 유럽 여행’ 등을 통해 미술관, 박물관 정보와 전시품 소개는 물론 테마별 추천 루트까지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머무르게 될 도시와 여행 계획, 이동 방법, 숙박 도시 등을 하나의 표로 정리했다. 여행 일정 짜기가 막막하다면 저자의 제안 루트를 토대로 조금씩 취향에 따라 맞춰가는 것도 좋겠다.
plus 02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다빈치 코드’(2006)는 프랑스 최대의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하버드대학 기호학자 교수로 등장하는 톰 행크스(랭던 역)는 의문의 사건이 남긴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모나리자’, ‘암굴의 성모’ 등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들 속에 숨겨진 비밀들을 파헤친다. 영화 속 수수께끼를 풀듯 암호를 맞춰가며 루브르 박물관 곳곳과 작품들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plus 03
프랑스 남부 니스의 ‘샤갈 미술관’에는 450여 점의 예술품이 전시돼 있는데, 마르크 샤갈의 종교 작품만을 전시해놓은 것이 특징이다. 당장 프랑스로 떠날 수는 없지만, 국내에서 열리는 전시를 통해 샤갈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자. 국내에서 개최된 샤갈의 전시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마르크 샤갈 특별전-영혼의 정원 展’이 8월 18일까지 M컨템포러리(르 메르디앙 서울)에서 열린다. 프랑스, 스위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4개국의 개인 소장자 작품 중 국내 최초 공개작 25점을 포함, 샤갈의 예술사를 총망라한 26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아이, 어른 누구나 읽어도 흥미로운 그리스 로마 신화.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더불어 그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까지 담아낸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를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 필립 마티작 저
자료 제공 뮤진트리
신화가 영향을 준 예술 작품들
흔히 그리스 로마 신화 도서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 대부분. 반면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가 오늘날 문화 속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대해 다양한 예술 작품과 더불어 정리한 것이 특징이다. ‘후대 예술과 문명에 비친 OOO’이라는 콘셉트로 신화 속 인물이나 사건이 후대 예술 작품에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있는지 설명한다. 예를 들어 ‘후대의 예술과 문명에 비친 아프로디테의 탄생’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인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후대의 예술과 문명에 비친 레다’에서는 다빈치의 ‘레다’ 등에 대해 그림과 함께 이야기한다.
프로필로 보는 신화 속 인물들
신화 속 인물을 각각 상세하게 설명하기에 앞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프로필을 보여준다. 신이나 영웅들은 가족이나 연인 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는데 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부모, 배우자, 연인, 자녀를 비롯해 인물의 특징과 능력, 상징(물), 소재지 등을 정리했다. 특히, 트로이 전쟁에 관여한 인물들을 서열에 따라 보여준 점이 흥미롭다. 크게 그리스인과 트로이인으로 나누고 신, 왕, 영웅, 여인으로 분류해 서열 순서대로 인물들을 설명한다. 트로이 출신이지만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던 제우스를 비롯해 포세이돈, 아테나, 아프로디테 등 30명을 언급했다.
펜화와 명화를 함께 보는 재미
글로만 읽는다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에 90여 장에 이르는 삽화와 관련 명화, 조각 이미지 등을 넣어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책에 실린 모든 펜화는 19세기에 제작된 작품들이라 한다. 펜화를 포함한 모든 이미지는 흑백으로 실려 있지만, 신화 특유의 클래식한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책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즐거움
#plus1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망각의 여신 레테. 그녀의 강한 이미지는 현대 시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책에는 ‘레테 칵테일’ 레시피가 나오는데 그 과정이 독특하다.
#plus2
책에서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인물 소개를 읽고 난 뒤 영화 ‘트로이’(2004)를 본다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물론 반대로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것도 유익하겠다. 이 영화의 미술감독인 나이젤 펠프스는 작품 배경의 철저한 고증을 위해 제작 전부터 각종 서적과 사료를 탐독했다고 한다. BC 1200년경 미케네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조합한 배경과 당대 예술의 아름다움, 서사적 장대함을 동시에 표현해냈다. 특히 4만 496㎡의 트로이 성과 실제 건물 4층 높이로 제작된 약 12m의 트로이 목마의 웅대한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plus3
벨기에 플랑드르의 화가이며 바로크 시대 미술의 권위자로 불린 페테르 루벤스(Peter Rubens, 1577~1640). 강렬한 색감과 관능미를 추구했던 그는 신화를 바탕으로 한 초상화, 역사화, 풍경화 등을 그렸다. ‘아레스로부터 에이레네를 보호하는 아테나’, ‘에우로페의 납치’, ‘메두사의 머리’, ‘바쿠스’, ‘비너스와 큐피드’ 등이 대표작이다.
로봇수술이란 단어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인간의 손이 아닌 로봇 팔이 환자의 몸속에서 거리낌 없이 움직이며 수술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런 상상은 SF 영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우리 삶 가까이 등장한 로봇수술도 이런 모습일까? 실상은 영화 속 장면과 조금 다르다.
로봇수술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단어가 있다. 인튜이티브서지컬과 다빈치가 그것이다. 인튜이티브서지컬은 1995년 설립된 회사로 1999년 로봇수술 장비인 다빈치를 세상에 처음 내놨다. 200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로봇수술 시장을 석권했다. 우리가 아는 로봇수술에 관한 것은 모두 다빈치에 의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강경(내시경) 수술을 대체하고 있는 대중화된 로봇수술 장비는 다빈치가 유일하다고 보면 된다. 덕분에 인튜이티브서지컬은 지난해 세계 시장에서 27억달러(약 3조원)를 벌어들였다. 다빈치는 현재 4세대 제품까지 출시된 상태다.
국내에서는 2005년 세브란스 병원을 통해 처음으로 다빈치의 로봇수술이 시도됐다. 이후 다빈치는 각 병원에서 앞다퉈 도입하기 시작해 2017년 9월 기준으로 전국 31개 병원에 69대가 설치되어 있다. 장비 도입이 증가하면서 수술 건수도 늘어나 올해는 1만7000건 이상의 수술이 기록될 것으로 예상된다.
로봇수술도 사람이 하는 수술
로봇수술에 대한 가장 잦은 오해 중 하나는 기계가 집도해 수술을 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로봇수술의 주인공은 의사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로봇수술 장비(환자 카트) 아래에 환자가 위치하면, 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신체 부위 근처에 2~2.5cm 정도의 구멍을 낸다. 그곳을 통해 4개의 금속봉 모양의 로봇 팔이 들어간다. 수술 부위에 따라 여러 구멍을 내기도 한다. 4개의 로봇 팔 중 하나는 조명과 카메라가 달려 있어 촬영을 담당하고, 나머지 3개의 팔은 수술에 필요한 다양한 동작을 해낸다. 암 조직을 들어 올리거나 잘라내거나 수술한 부위를 봉합할 수도 있다. 사람처럼 다섯 개의 손가락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수술 과정에서 필요한 사람 손의 동작을 대부분 대신할 수 있다.
이때 의사는 환자와 좀 떨어진 조종장치(수술 콘솔)를 통해 4개의 로봇 팔을 조작한다. 조종장치에 달린 모니터는 확대된 입체 영상으로 치료 부위를 보여주기 때문에 섬세한 수술이 가능하다. 또 육안으로는 구분이 힘든 혈류를 다른 색으로 보여주는 등 다양한 의학적 정보도 모니터를 통해 집도의에게 제공된다.
다양한 질환에서 우수성 나타나
로봇수술이 의학계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사람 손으로는 도저히 동작이 불가능한 좁은 부위에서도 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립선이 로봇수술의 혜택을 보는 손꼽히는 부위인 것은 이 때문. 전립선은 좁은 골반 안에 신장과 방광, 소화기와 함께 몰려 있어 수술이 까다로운 부위다.
이외에도 신장암, 자궁암, 갑상선암, 간암, 구강암 등 각종 암수술과 요관절제술 등 비뇨기과계 질환에서 사용된다. 최근에는 유방암 수술까지 영역을 넓혔다. 겨드랑이를 통해 로봇수술 장비가 암 조직을 제거하면, 유두와 유륜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올 초 세브란스 연구진을 통해 국내 최초로 수술이 시도됐다.
이 중 전립선암, 신장암, 직장암의 로봇수술 치료가 201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유효성이 있음을 평가받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선언한 국민건강보험 혜택 확대로 인해 이들 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환자는 800만~1200만원 정도의 수술비를 절반만 부담해도 된다.
인공지능 수술은 아직, 국산화는 눈앞
수술 과정의 간편함도 로봇수술의 장점으로 꼽힌다. 한 대학병원 소화기외과 교수는 “복강경 수술은 의사가 2~3시간 동안 서서 모니터를 쳐다보며 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라며 “이에 반해 로봇수술은 편한 자세에서 이뤄져 의사가 받는 스트레스가 적고, 환자에게도 장점으로 작용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상상하는 인공지능 수술은 이뤄질 수 없는 것일까? 지난달 인튜이티브서지컬이 상암동에 설치한 수술혁신센터 개소식 참석을 위해 방한한 게리 굿하트 대표는 “인공지능을 통한 자율수술은 최근 선보이고 있는 자율주행기술보다 훨씬 더 많은 기술적 진보를 요구한다”며 “우선 집도의의 수술을 보조할 수 있는 부분에서 인공지능이 담당할 수 있는 단계의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봇수술 시장에는 국산 제품도 대항마로 등장했다. 바로 미래컴퍼니가 개발한 레보아이(Revo-i)다. 레보아이도 로봇 팔이 4개 달려 다빈치와 비슷한 외형을 지녔다. 레보아이는 지난해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시험 승인을 받고, 6월부터 올 초까지 세브란스와 본격적인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올해 8월에는 식약처로부터 레보아이 제조허가를 취득하고 사업화 준비에 착수 중이다.
◇exhibition
다빈치 얼라이브: 천재의 공간
일정 2018년 3월 4일까지 장소 용산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
예술, 과학, 음악, 해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사적 업적을 남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애를 색과 빛, 음향으로 재조명한다. 전시는 ‘르네상스, 다빈치의 세계’, ‘살아있는 다빈치를 만나다’, ‘신비한 미소, 모나리자의 비밀이 열린다’ 등 총 3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제1섹션에서는 실물 크기로 재현한 다빈치의 발명품을 직접 만지고 체험할 수 있다. 이밖에 베네치아에 보관된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도’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영상을 볼 수 있다. 다빈치의 걸작으로 꼽히는 ‘모나리자’에 관심이 있다면 제3섹션을 확인하자. 세계적 미술 감정 기업인 뤼미에르 테크놀로지가 모나리자 원화를 10년간 분석해 밝혀낸 25개의 비밀을 공개한다. 당시의 색감을 그대로 복원해 재현한 진짜 모나리자를 감상해보자.
더 아트 오브 더 브릭
일정 2018년 2월 4일까지 장소 아라아트센터
전시회의 주인공인 네이선 사와야는 세계 최초로 오직 ‘레고’만을 사용해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다. 지구본, 전화기 등 아기자기한 생활 소품부터 인체의 다양한 움직임을 표현한 작품까지 약 100만 개의 레고를 사용해 제작한 총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연인(키스)’,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등 유명 예술가들의 대표작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품 관람 이후엔 레고를 활용해 작품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디 아트 오브 더 브릭’전은 세계에서 꼭 봐야 하는 10개의 예술 전시 중 하나로 소개되었으며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다.
◇book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저·나무생각)
늙은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가 매일 100개의 도토리를 심으며 기적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황량했던 언덕이 생기를 되찾고, 말라버린 하천에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진정으로 옳다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언가를 처음 시도하는 사람의 용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환자 혁명 (조한경 저·에디터)
현직 의사가 기존의 의료 상식에 반기를 들었다. 환자를 향해 ‘자기 병에 더 큰 관심을 가지라’고 잔소리하는 저자는 ‘약과 병원에 의존하지 말고 건강 주권을 회복하라’고 주장한다. 성인병 치료의 열쇠는 환자에게 달려 있다며 스스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쉬우면서도 다양한 ‘혁명’을 제시한다.
◇movie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스타워즈’ 시리즈가 첫선을 보인 지 40년이 되는 올해 또 하나의 시리즈가 탄생했다. “선과 악의 전쟁, 거대한 운명이 결정된다”는 문구가 눈에 띄는 이번 영화는 비밀의 열쇠를 쥔 ‘레이’를 필두로 ‘핀’, ‘포’ 등 새로운 세대가 중심이 되어 운명을 결정지을 빛과 어둠, 선과 악의 대결을 보여준다.
이번 영화는 ‘레아 공주’ 역으로 얼굴을 알린 캐리 피셔가 지난해 작고하기 전 연기한 시리즈로 그의 마지막 ‘레아 공주’를 감상할 수 있다. 전편에서 감독으로 활약한 J.J. 에이브럼스가 제작에 참여하고 향후 시리즈 3부작 연출이 확정된 라이언 존슨이 연출을 맡았다.
개봉 12월 14일 장르 액션, SF 감독 라이언 존슨 출연 마크 해밀, 캐리 피셔, 아담 드라이버 등
아들에게 가는 길
코다(CODA, 청각장애인의 정상인 아이) 가정의 한 장애인 부부가 아들을 키우면서 겪는 문제를 다룬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 시골 할머니 댁에 보내지만 떨어져 지내는 만큼 아이와의 거리도 멀어진다. 진심으로 다가서려 하는 부모와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하는 부모가 답답한 아이.
자식은 어떤 존재이고 부모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묻고 가족 해체가 가속화하고 있는 이 시대에 가족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로 2016년 제17회 장애인영화제에서 우수상, 관객심사단상을 수상한 최위안 감독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개봉 11월 30일 장르 드라마 감독 최위안 출연 김은주, 서성광, 이로운 등
◇stage
빌리 엘리어트
2010년 한국에서 최초로 초연된 뮤지컬 가 7년 만에 다시 한국 무대에 오른다. 1980년대 영국 북부 탄광촌이 배경이다. 복싱 수업 중 우연히 접한 발레를 통해 꿈을 이뤄가는 소년 ‘빌리’의 여정을 보여준다.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일정 2018년 5월 7일까지 연출 스테판 달드리 출연 천우진, 김갑수, 최정원 등
블라인드
시각을 잃은 후 세상과 단절된 청년 ‘루벤’과 몸과 마음이 상처로 가득한 여자 ‘마리’가 만나 마음으로 서로를 느끼며 교감을 해나가는 사랑 이야기다. 오로지 마음으로만 교감하는 둘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봐야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장소 수현재씨어터 일정 2018년 2월 4일까지 연출 오세혁 출연 박은석, 이재균, 김정민, 정운선 등
거미여인의 키스
남성 2인극으로, 이념이 다른 두 주인공인 몰리나와 발렌틴이 감옥에서 만나 서로를 이해하며 다가가는 슬픈 사랑을 연기한다. 몰리나 역은 배우 이명행과 김호영이, 발렌틴 역은 송용진과 김선호가 지난 공연에 이어 재연을 확정했다.
장소 아트원씨어터 2관 일정 2018년 2월 25일까지 연출 문삼화 출연 이명행, 이이림, 김주헌 등
타이타닉
타이타닉 사건이 발생한 지 105년, 브로드웨이 초연 20년 만에 한국 무대에 상륙한다. 영화가 이 사건의 비극적인 사랑에 집중했다면 영화보다 앞서 제작된 뮤지컬 은 배가 항해하는 5일 동안의 사건과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장소 샤롯데씨어터 일정 2018년 2월 11일까지 연출 에릭 셰퍼 출연 김용수 왕시명 이상욱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