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식은 미지수(χ) 값에 의해 참 또는 거짓이 된다. 예측하기 어려운 미지수라도 방정식 내 상수와 숫자, 사칙연산 등을 잘 따져보면 결국 답이 나온다. 이러한 방정식을 인생에 대입해보자. 나라는 상수와 주변인, 그들과의 연관성에 따라 ‘관계’라는 미지수 값이 매겨진다. 그렇게 적합한 미지수를 잘 찾으면, 참다운 인생이라는 등호도 성립된다. 생애주기에서 중년의 관계 방정식은 어쩌면 가장 어렵고 복잡할 수 있다. 그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알아둘 만한 몇 가지 조언을 담아봤다.
[1] 평생 현역 시대라는 ‘관계 전제 조건’
은퇴 후에는 비즈니스로 형성됐던 인맥이 자연스레 축소된다. 과거라면 섭섭한 마음은 들지언정 살아가는 데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100세 시대를 넘어 150세 시대까지 예견되는 요즘, 은퇴 후에도 경제활동은 계속돼야 한다. 평생 현역 시대를 사는 중장년에게 경제적 관계가 줄어드는 것은 단순히 감정적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이며, 가급적 기존의 비즈니스 관계를 잘 유지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굳이 이러한 조언이 없더라도, 스스로 그 필요성을 체감하는 중장년이 적지 않을 것이다.
김동철 심리학 박사는 “최근 중장년들을 보면 가급적 직장 생활을 오래 하려 애쓰고, 은퇴 후에도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최대한 유지하려 한다. 이때 본업이 내가 좋아하는 쪽이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관계도 염두에 둬야 한다. 제2의 직업으로 전향한다 해도 또 다른 비즈니스 관계 형성에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평생 현역 시대를 살아내려면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공적인 관계 확장은 꼭 필요하다. 다만 순수하게 나의 관심과 흥미에 따른 사적인 관계도 형성해둬야 한다. 노후에는 일과 즐거움을 두 축으로 균형감 있게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말했다.
[2] 때때로 탈피하는 ‘관계의 알고리즘’
중장년이 애용하는 유튜브에는 ‘알고리즘’이라는 기능이 있다. 이는 원하는 콘텐츠를 맞춤형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편리하게 작용하지만, 자칫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만 독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알고리즘의 부작용이 바로 ‘확증편향’이다. 자신의 견해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취하고,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외면하는 성향을 말한다. 이러한 알고리즘은 인간관계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오십의 기술'을 펴낸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은 “우리는 흔히 편한 친구를 반복적으로 만난다. 나이 들수록 친구 관계는 줄어들고 압축적으로 변한다. 그렇게 나의 사고방식 또한 자주 만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덩어리처럼 압착된다. ‘내가 맞구나’라며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 확증편향이 생겨나는 것이다. 또 늘 비슷한 사람들과 치우친 생각만 이야기하다 보면 아무래도 지겨울 수밖에 없다. 긴 노후에는 삶의 영역, 특히 대인관계가 다채롭고 다양해야 한다. 안정적인 관계가 때로는 지루함을 준다. 때때로 제한된 관계의 알고리즘에서 탈피해보는 게 좋다”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존 관계의 알고리즘을 벗어날 수 있을까? 크게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낯선 곳에 나를 던져보는 방법이 있다. 이를테면 늘 만나던 친구가 아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귄다거나, 정치적 성향이 반대인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면 새로운 알고리즘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새로운 인생도 열리게 된다. 사실 아주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위험한 면도 있다. 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계속 새로운 관계에 도전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3] 최대 수명 대비한 ‘최소 사회망’
나는 앞으로 얼마나 살게 될까? 예측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건 수명의 최댓값이 날로 증가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인 가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독거노인 수도 이에 비례하는 양상을 보인다. 결혼을 했더라도 이혼이나 졸혼, 사별 등으로 언젠가는 혼자가 된다. 즉 수명이 길어질수록 얼마나 홀로 살게 될지도 미지수인 셈이다. 이렇게 독거 신세가 됐을 때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성향을 보인다. 족쇄라도 풀린 듯 대인관계를 더 왕성하게 펼쳐나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고립된 상태로 외톨이를 자처하는 이도 있다.
김동철 박사는 “본래 기질이나 성향이 대인관계에 소극적이고 불편해하는 분들이 있다. 노후 관계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나서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타고난 성향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억지로 관계를 맺으려 했다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럴 땐 직접적인 일대일 관계가 아닌, 상대적으로 관계망이 느슨한 모임의 일원이 되어볼 수 있다. 이마저도 어렵다면 강연이나 공연을 보러 가는 등 다수 속에 섞이는 경험을 해나가면 도움이 된다. 특별히 누군가와 인맥을 쌓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이런 방식의 간접적인 사회 관계망이라도 형성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자칫 고립이 일어나고, 노인성 우울증이나 고독사 등의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염려했다.
[4] 더할수록 즐거운 ‘친구들의 집합소’
이호선 센터장의 조언대로 기나긴 노후를 함께할 친구가 기왕이면 여럿 있는 게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 기존에 친구들을 함께 볼 수 있는 모임이나 동창회 등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관계의 알고리즘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새로운 공동체 관계망을 찾아봐도 좋다. 더욱이 요즘에는 블로그나 카페, SNS 등을 이용하는 중장년이 늘어 관심사나 취향에 따라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게 어렵지 않다. 독서, 여행 같은 취미 동호회도 많고, 소셜 다이닝이나 자원봉사 등 사회 관계망을 이어주는 공동체 모임도 상당하다.
이 센터장은 “꼭 참여하길 추천하고 싶은 건 학습 공동체다. 오십 이후에 노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의미가 사라진다. 반면 배움은 늘 우리를 새롭게 한다. 때문에 학습 공동체는 가장 건전하고도 발전적인 모임 형태라 할 수 있다. 지식만 습득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 관계가 형성된다. 시험과 과제를 거치면서 서로 성취를 확인하고, 나와 공동의 목표를 바라보는 이들과 토론해가며 상호 돌봄 과정도 경험하게 된다. 학습은 과정만으로도 성숙을 이루고, 학습 공동체는 성숙을 통한 자아실현을 가능케 한다. 노후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고 싶다면 학습 공동체에 참여해보길 바란다”고 권했다.
도움말 김동철 심리학 박사(김동철심리케어 원장),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 학과장)
참고 '오십의 기술'(이호선 저, 카시오페아)
[브라보 마이 러브]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30년 만에 그를 만났다. 나는 새내기, 그는 대학 3학년이었으니. 이렇다 할 로맨스는 없었다. 손 정도는 잡았을 테지만 입맞춤을 해본 기억은 없다. 하기야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해본 적도 없고, 헤어지기 전 어느 가을 춘천에 한 번 같이 간 게 전부다. 이 말도 우습다. 만난 적이 있어야 헤어질 거 아닌가. 끌어모아 봤댔자 주머니 속 동전 몇 푼처럼 그와 함께한 기억도 추억도 궁색하기만 할 뿐.
그럼에도 나는 그를 대상으로 ‘만약에’ 게임을 해볼 때가 있다. 만약에 그와 사귐을 이어갔더라면, 그래서 만약에 둘이 맺어졌더라면, 만약에 그와 함께 황혼을 맞았더라면…. 밋밋하나마 평범한 결혼생활을 했을 것이며, 그랬다면 지금 나는 이혼녀가 되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근거 없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는 섬세한 꽃봉오리를 터치할 때처럼 여린 여심을 건드릴 줄 아는 남자는 아니었기에 한창 감수성 예민한 시기엔 매력적인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소위 ‘나쁜 남자’와 대칭점에 서 있는 전형적인 ‘착한 남자’였다. 착한 여자, 착한 남자의 치명적인 결함은 조미료가 전혀 가미되지 않은 영양식처럼 매력이 없다는 것이니. 더구나 그는 대화거리 없는 공대생이었으니.
2013년, 이른바 황혼이혼과 함께 호주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내 나이는 딱 50세. 그는 52세가 되었을 테지. 그해 11월 말경, 대학 후배로부터 크리스마스와 송구영신 모임에 참석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전공이 달라 잘 아는 후배는 아니었지만, 어느 모임이든 활달하고 적극적인 사람이 소위 총대를 메게 마련인지라 그 후배의 역할도 그랬던 것이다. 게다가 본인 소유의 장소까지 있다니 날짜만 정해지면 되는 일이라 모두들 ‘알았다, 가겠다’란 응답을 했으리라.
우리 모임은 서울의 같은 지역, 같은 이름의 Y고교와 Y여고를 나온 사람 중에서 남자는 S대, 여자는 E여대 출신으로 구성된 모임이다. 그래서 이름도 ‘Y써클’이었다. 듣기에 따라 자발적이며 노골적인 짝짓기 모임으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아닌 게 아니라 몇 쌍이 부부의 연으로 맺어졌고 지금까지 아들, 딸 낳고 잘살고 있다), 그건 지금 시각이고 시국 논쟁과 독서 토론 등 설익으면 설익은 대로 우리는 나름 진지했고 또한 그 나이 그대로 풋풋했다. 그러던 것이 세월 따라, 인연 따라 만남은 지지부진해졌고, 그날 연말 모임에 나온 멤버들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던 기수라 할 수 있겠다.
오랜만의 해후라 서먹하기는 다들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는 이혼을 한 데다 외국 생활의 이물감까지 겹쳐 어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를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와 호기심에 마음이 들떴다. 먼저 도착한 나는 어둑한 실내에 적응이 되어 잠시 후 입구로 들어서는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중키에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몸피, 머리도 벗어지지 않았고, 배도 나오지 않은 그, 젊었을 때 그대로 웃는 인상의 그는 30년이 아닌, 3년도 아닌, 3개월 만에, 아니 고작 3일 만에 만난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한두 번밖에 입지 않고 옷장에 걸어둔 옷처럼 시간의 고운 먼지만 앉은 사람 같아 보였다. 순한 성품대로, 좋은 머리대로, 얽힘 없는 폭신한 실뭉치처럼 인생이 순탄하게 풀려나가면 저런 모습일까.
그럼 나는? 대학 졸업 후 미팅으로 만난 남편과 1년을 사귀는 동안 고양이 발톱처럼 얌전히 감추고 있던 폭력성이 결혼 일주일 만에 정체를 드러냈다.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사태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아이가 들어섰고, 결혼 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이민길에 올랐다. 홍수에 떠밀리듯 주변 상황이 급박히 돌아가는 와중에 남편의 폭력은 일상이 되어갔다. 그렇게 내가 롤러코스터에 올라 비명을 지르고 있는 동안 그는 유유자적 회전목마를 타고 있었던가 싶었다.
우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서로 의례적인 안부를 물었다. 모임의 남녀 선후배들도 우리 관계를 알고 있었다. 요즘 말로 하면 썸 정도를 탄 것인데, 둘이 뜨거운 사이였고 그와 헤어진 후 내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해괴한 소문까지 났었다. 그 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렸을 때 나는 그저 웃고 말았다. 사실이 아닐 땐 따따부따 따지기보다 그저 웃어넘기는 버릇 그대로.
물론 그런 입방아에 오를 만한 ‘혐의’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당시 나는 20대 특유의 실존적 번민에 휩싸여 나는 누구이며 왜 사는지 등 근원적 물음의 답을 찾아 열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그가 간이역처럼 나타났고, 지독한 정체성 상실의 시절을 통과하며 그와의 만남이 그렇게 와전되었던 것이다.
돌아가며 간단히 각자의 근황을 말한 뒤엔 얕은 물웅덩이처럼 이리 움푹, 저리 움푹 대화의 웅덩이를 만들며 20여 명이 앉은 자리의 연을 따라 시간을 보냈고, 분위기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자정 무렵까지 이어졌다. 귀갓길에 나섰을 땐 얼음 박힌 것 같진 않았지만 12월 중순의 찬 공기가 오싹 끼쳐오며 와인 한잔의 취기마저 몰아냈다. 집 방향에 따라 그 자리에서, 혹은 길을 건너서, 아예 한두 블록 멀찍이 떨어져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택시를 잡아 타고 꼬리등을 인사처럼 깜박이며 제각기 사라져갔다.
공교롭게도 그와 나의 방향은 같았기에 그가 함께 택시를 타자고 했고, 어쩌다 보니 그와 나, 둘만 끝까지 택시를 잡지 못한 채 덩그러니 길 한가운데 남게 되었다. 묘한 느낌이 든 것은 아마 그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흘러가는 시추에이션이라니!
마침내 빈 택시 한 대가 우리 앞에 섰고, 그가 안으로 먼저 들어가고 내가 나중에 탔다. 크리스마스를 열흘 남짓 남겨두고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연인 같은 남녀가 30년 만에 해후를 한 후, 조붓한 공간에서 그것도 몸이 닿을락 말락 서로가 서로를 옆에 두고 앉아 있다. 지나친 상투성만 뺀다면 로맨틱한 설정이 아닌가. 더구나 택시 운전사는 오늘 만남의 의미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우리 시대의 발라드로 분위기를 잡아주고 있으니.
그런데 정작 그와 나는 어쩌다 우연히 합석한 사람들처럼, “그간 잘 지냈니?” “네… 잘 지내셨어요?” “응, 나야 뭐. 고생 많았겠구나. 잘 살아야 한다. 내가 도울 일이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그럼 잘 가라.” 우리 동네 큰길가에 나를 내려놓기 전 20여 분간 이런 의례적인 말만 나누었을 뿐이다. 그게 다였다. 그게 다가 아니면? 가정을 가진 그와 이제 와서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한단 말인가?
그와 나는 두 번 더 만났다. 역시 같은 모임을 통해서였다. 이후 모임의 발동이 꺼져 버렸고 더는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면 8년 전 그날의 모임이 떠오른다. 롤러코스터에 오르지 않고 그와 회전목마를 탔더라면 스릴과 재미는 없었겠지만 이따금 마주 웃으며 생의 무난한 동반이 되지 않았을까. 그가 내 사람이 될 이유가 딱히 없었듯이 되지 못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그러나 내가 과연 그 따분하고 ‘안전빵’인 회전목마에 기꺼이 올랐을까. 그때의 나는 회전목마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지 않았나. 평생을 함께 돌고 있을 그의 ‘회전목마 아내’는 어떤 사람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사십대 후반, 또래의 여성 직장 동료들에게 독서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여리 독서 모임’을 만든 손문숙(51) 씨. 어느덧 4년째 모임을 통해 중년이 되어 느끼는 몸의 변화부터 퇴직 후 인생 계획까지 함께 나누고 있다. 퇴직 후에는 작은 도서관을 꾸려 회원들과 멋진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다는 그녀. ‘지극히 사적인 그녀들의 책 읽기’의 저자 손문숙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4년 째 직장의 여성 동료들과 독서 토론 모임을 진행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 모임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모임 소개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글쓰기 강사의 조언을 듣고 독서 학습 공동체에서 1년 동안 독서 토론을 공부했습니다. 독서 토론의 즐거움을 먼저 깨닫고 직장 동료들에게도 그런 기쁨을 나눠주고 싶어 ‘여리 독서 모임’을 만들게 됐습니다. 여리 독서 모임은 인천광역시교육청의 사무관 이상으로 구성된 여성 관리자 네트워크에서 만든 동아리로 회원들은 여자이고 나이는 40대 후반 이상입니다. 1년 단위로 회원들을 모집하는데 매년 17명 정도 활동하고 있고 인천 북구도서관에 직장인 독서 동아리로 등록돼 있어 매월 1회 평일 퇴근 후 도서관에서 모임을 합니다.
Q. 모임에서 주로 도서 선정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토론 방식은요?
토론할 책을 같이 의논해서 정하기 때문에 문학, 철학, 사회, 역사, 예술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으면서 자신의 고정 관념을 깨우치고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지요.
우리가 하는 토론은 찬반으로 나눠 경쟁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아닌, 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비경쟁 방식입니다. 직장 동료들은 책 내용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가정, 직장, 사회 문제 등 사적인 이야기까지 스스럼없이 풀어냅니다. 중년이 되어 느끼는 몸의 변화, 자녀에 대한 고민, 남편과 시댁과의 문제, 직장 이야기, 퇴직 후 인생계획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집니다.
Q. 중년 이후 시작한 독서 토론을 통해 얻은 일상에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또 동료들에게는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나요?
저는 40대 후반에 시작한 독서 토론을 통해 나를 찾고 타자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와 가정, 사회까지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요. 그리고 인생 2막에 작가로 살고 싶다는 멋진 꿈을 가지고 제 인생에 첫 번째 단독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회원들 중에는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책을 잘 읽지 않는 회원들이 더 많았습니다. 독서 모임에 나오면서 1년 동안 같이 읽을 책 목록이 공지되면 시간 여유 있을 때 책을 미리 읽어둡니다. 매월 모임에 나올 때 한 번 더 읽고 토론 후에 블로그나 독서장에 기록을 남기면서 한 번 더 복기를 합니다. 그러면 한 책을 세 번 정도 읽는 셈이지요. 토론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다보면 이해가 안 되던 것들도 알게 되고 본인의 생각도 객관화할 수 있게 되죠. 독서 모임을 통해 강제로라도 한 달에 한 권씩은 책을 읽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게 되어 배우는 점이 많다고 말합니다. 혼자 읽을 때는 읽고 나서도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데 독서 토론을 하게 되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도 하고요.
Q. 이번에 펴내신 ‘지극히 사적인 그녀들의 책 읽기’에 담고자 했던 주요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요?
저와 독서 모임 회원들이 독서 토론을 통해 깨달은 자아와 인생에 대한 성찰과 긍정의 힘을 제 책을 읽는 독자들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으면 해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카페에 커피 한 잔 마시러 가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독서 모임에 나가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함으로써 인생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이 소수의 고상해 보이는 취미 생활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일상 속에서 공기 마시듯 행하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으면 하기 때문이죠.
Q. 독자로 책을 접할 때와 이번처럼 저자가 되어 책을 접할 때, 어떤 점이 가장 다르던가요?
독자로 책을 읽을 때보다 독서 에세이 작가로서 원저작을 읽을 때는 좀 더 꼼꼼하게 읽고 작가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책 내용과 관련된 나의 생각과 통찰을 글로 담아내야 해서 일반 산문을 쓸 때보다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렸습니다.
Q. 우리네 인생에서 ‘독서’(또는 책)가 주는 가장 큰 힘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故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하는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낡은 생각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오래된 인식틀을 바꾸는 탈문맥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철학은 망치로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갇혀있는 완고한 인식틀을 깨뜨리는 것이 공부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완고한 인식틀을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독서가 주는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여성 중장년 독자들에게 꼭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입니다. 작중 니나를 통해 저자는 “모든 게 미정이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라는 말로 우리 안에 있는 자아들 중의 하나에 우리를 고정시키지 말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을 살아감에 있어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거침없이 옳다고 생각한 대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죠. 생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모험적으로 살아간 그녀의 삶의 방식은 전후 세대의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지금의 우리들도 동경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Q. ‘내 인생의 책’이라는 타이틀로 한 권을 꼽는다면 어떤 책이 될까요? 그 이유는요?
인상 깊은 좋은 책들이 많지만 앞서 언급한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꼽고 싶습니다. 20년 20일이라는 긴 수형 생활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성찰을 간직하고 있는 작가의 마음을 통해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선생님은 실천하는 지식인이셨고 “삶에 대한 공부를 통해 우리가 변화와 창조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공부이다”라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Q. 블로그, 인스타그램, 브런치 등 SNS 활동도 하고 계신데요. 주로 어떤 용도로 활용하고 계신가요?
동료들과 토론한 책 이야기를 주로 블로그와 브런치에 남깁니다. 처음에는 독서 토론을 한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기록을 남기려는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독서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글로 정리해서 나중에 책으로 만들 수 있도록 차곡차곡 쌓아 두고 있습니다.
Q. 현재 교육행정공무원으로 일하고 계시는데요. 장차 퇴직 후에 작가가 되어 책을 쓰고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하겠다는 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요?
저는 퇴직 후에 집필실을 겸해 여자들의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지금의 독서 모임 회원들과 퇴직 후에도 우리들의 재능을 나눌 수 있는 멋진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어서입니다.
퇴직이 8년 반 정도 남았는데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미래를 상상하며 차근차근 꿈을 실현해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작은 도서관 공간을 만들기 위해 돈을 모으고 꾸준히 책을 쓰고 있고, 뜻을 같이 하는 동료는 사십 초반에 사서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를 실현시키기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중입니다.
몇 년 전부터 나만의 북큐레이션으로 무장하고 독자와 호흡하는 소소한 이벤트로 세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던 동네 책방을 되살려내고 있는 책방지기들이 등장했다. 이곳 동네 책방 한쪽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조용히 책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가슴속 묻어뒀던 작은 행복 하나가 ‘똑똑’ 심장을 두드리며 응답한다.
“남에게 보이는 것보다 내가 행복한 삶’이 좋다. 오늘 당장 떠날 것, 가까운 동네 책방으로!!”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에 가입된 독립서점들을 살피다 보니 눈에 확 들어오는 이름이 있다. 마치 “저를 찾아와주세요… 저요, 저요” 하고 손을 드는 것처럼 시선을 붙잡아 맨 곳. 바로 ‘날일달월’이다.
일단 인터넷에서 ‘날일달월’ 웹사이트와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을 찾아봤다. 색다르다. 비건식당? 아니, 책방에서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음식을 판다고? 컴퓨터 모니터 화면 속에는 컬러풀한 채소들로 가지런히 상차림한 사진이 올라와 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이번 호에 소개할 동네 책방으로 선택했다.
‘날일달월’은 2호선 강변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강변역에는 동서울터미널이 있어 늘 사람이 북적이고 어수선한 곳이다. 이런 번잡스런 곳에 독립서점이라니? 의아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동네 책방이 산골에도 생기고 우리 동네 구석탱이에도 있는데 터미널이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건물 3층에 위치한 ‘날일달월’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열심히 채소를 씻던 분이 반겨준다. 먼저 점심 메뉴로 미역콩국수진지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았다. 한국의 마사 스튜어트라 불리는 이효재 씨와 언뜻 인상이 비슷하다.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광목 앞치마를 둘렀다. 한눈에 봐도 대표인 듯 보였다.
창가를 제외한 벽면에는 책들이 가득 꽂혀 있다. 찬찬히 살펴보니 출판사별로 칸이 나뉘어 있다. 서가를 살펴보다 음식 준비에 바쁜 주방으로 다가가 물었다. “혹시 이곳 대표님이신가요?” 그러자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 제가 이메일로 인터뷰 요청을 드렸는데 답장을 기다리지 못하고 궁금해서 와봤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희숙 대표와 날일달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생채식 식당과 작은 책방의 조합
‘날일달월’은 2018년에 문을 열었다. 비영리법인인 한국도서관친구들 대표를 맡고 있는 여희숙 씨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생채식 식당이자 작은 책방이다. 여 대표는 교사 생활과 독서시민운동 등을 하며 평생 책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오래전부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하고 저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2017년경 자녀들이 모두 성장해 독립을 하고 은퇴한 남편과 덩그러니 넓은 아파트에 살면서 큰 공간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즈음 건강이 안 좋아진 남편 덕(?)에 먹거리도 완전히 바꾸게 됐다. 이래저래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패턴을 바꿔야 할 때 거추장스럽기만 한 대형 아파트를 호기롭게(?) 팔고 두 부부가 살기 적당한 크기의 아파트로 옮겼다. 그리고 집 앞의 빌딩 3층을 임차해 책방 공사를 시작했다.
나만의 공간인 동네 책방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나니 전국 각지의 ‘도서관친구들’ 회원 성원이 하늘을 뚫을 듯했다. 이왕이면 전국 곳곳에 그물망처럼 뻗어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해, 친환경 농산물이나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드는 식재료를 소개하면 어떻겠냐는 의견도 많았다. 사실 전국에서 도서관 서포터즈를 하는 이들의 경우 귀농을 해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거나 여러 가지 먹거리 관련 일을 하는 이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공유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여희숙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책’과 ‘가장 필요한 생채식 먹거리’가 조합된 ‘날일달월’이 탄생했다. 책방에 식당?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날일달월에 들어서면 오묘한 조합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도 흔히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확’ 풍기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 놀라게 된다. 여 대표는 생채식 먹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생채식이라 지지고 볶을 일이 없어요. 음식 냄새가 나지 않아서 책을 읽거나 고를 때 거슬리는 게 전혀 없습니다. 채식동호회나 환우회 카페 등을 통해 알고 방문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오히려 이분들은 ‘채식 전문식당인 줄 알고 왔는데 책방이네?’ 하며 놀라고 가요.”
낭독모임, 희곡 대본 읽기 등 프로그램 다양
여희숙 대표는 오랫동안 독서모임을 꾸리고 진행해왔던 터라 작은 책방을 열고 나서도 꾸준히 모임을 이끌고 있다. 현재 4팀의 독서모임을 이곳에서 하고 있는데 성격도 다채롭다. 주로 시니어들이 함께하는 월요일의 독서모임은 낭독모임이다. 얼마 전 1년간 이어진 ‘열하일기’ 낭독이 끝나고 현재는 ‘돈키호테’를 낭독 중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새롭게 등장한 모임도 있다. ‘연극배우와 함께 희곡 대본 읽기’다. 연극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힘들어진 연기자들을 조금이나마 지원하고 싶어 ‘좋은 희곡 읽기 모임’ 대표인 장용철 연기자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희곡 대본을 함께 읽으며 연기의 맛을 조금 맛봤다. 이후 6주 코스로 ‘햄릿’을 낭독했고 현재는 ‘오이디푸스’를 함께 읽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들과 함께하는 독서모임도 2팀이나 있다. 22년간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한 여희숙 대표는 어린 시절의 독서 지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교사들과의 모임은 아무리 피곤하고 힘이 들어도 이끌어나가고 있다. “어느 날은 오전 오후 꽉 찬 독서모임을 하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때가 많지만 마음만은 너무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는다.
이밖에 ‘그림책 따라 그리기 100일 프로젝트’도 있다. 그림책 한 권을 정해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모임이다. 최근에는 안승준, 홍나리 작가의 ‘어느 날 우리는’을 따라 그렸다. 이 책에는 고양이와 사자, 돌고래 등의 동물들이 등장하며 그림책 속 QR코드를 스캔하면 노래와 함께 애니메이션 뮤직 비디오까지 감상할 수 있다. 젊은 친구들의 호응이 특히 높다.
또 백승우 감독이 진행하는 금요시네마는 2018년 8월부터 꾸준하게 진행해왔다. 한 달에 한 번 매월 둘째 주 금요일 백 감독이 큐레이션한 작품을 함께 보며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날일달월의 빼놓을 수 없는 대표 프로그램이다.
한편 8월부터 11월까지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금요일, 달이 뜨면 심야책방으로!’ 이벤트가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사단법인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함께하는 ‘심야책방 2020’은 서울 지역에서 ‘날일달월’을 포함, 15곳의 동네 책방이 참여한다.
‘날마다 달마다 좋은 책과 음식을 먹으면 밝아진다’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었다는 ‘날일달월’. 이곳에서 금요일 둥근 달이 뜨면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조용히 책 한번 읽어보면 어떨까? 심야먹방 아닌 심야책방을 꿈꾸며.
Mini Interview ‘날일달월’ 여희숙 대표
여희숙 대표는 출판계와 교육계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진주교대를 졸업하고 마산과 하동, 광양, 포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22년을 근무했다. 교사 시절 교실마다 작은 학급 도서관을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책 읽는 선생님’으로 소문이 날 만큼 아이들에게 책 읽기의 생활화를 몸에 익히게 했다.
교사 일을 천직으로 알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왔던 여 대표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포스코를 다니던 남편이 서울로 발령이 나면서였다. 천직을 포기할 수 없어 주말 부부로 살기를 3년. 결국엔 사직서를 쓰고 남편과 합류하면서 서울 광진구에 정착했다. 낯선 서울 생활은 오로지 동네 도서관에서 책 읽는 즐거움으로 버텨냈다.
독서시민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 역시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는 여희숙 씨를 사서가 눈여겨보고 도움을 요청하면서였다고. 이후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서관친구들’ 활동을 시작해 현재 전국 회원 1만2000명에 달하는 비영리법인 대표를 맡고 있다. ‘도서관친구들’은 보령, 정읍, 남원, 광주, 진주, 울산, 창녕 우포, 부산, 제주, 부천 등 전국 16개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4년부터 활동했으니 16년의 세월이다. 이렇듯 오랜 시간 독서시민운동가로 활동한 여 대표는 KBS, EBS, 교통방송 등을 통해 아이들의 독서와 토론 지도를 위한 학부모 강좌를 진행하거나 패널로 출연, 독서 토론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펴낸 책으로는 2001년 ‘1년을 쓰고 50년을 간직할 독서노트’를 시작으로 ‘책 읽는 교실’, ‘토론하는 교실’, ‘도서관 친구들 이야기’, ‘아이는 도서관에서 자란다’ 등이 있다.
‘날일달월’ 서울 광진구 구의강변로 57 서림빌딩 3층
로마법 수업
“성장할 것이다. 변화할 것이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마지막 문장이다. 톨스토이는 인간은 매일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한 성찰과 학습을 통해 자기완성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없는 노력과 소중한 하루하루가 모여 ‘나다움’을 ‘내 나이’를 만드는 것이 인생이다. 이렇게 인생이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여야 하는 이유는 ‘자유’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행복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주저 없이 독서를 권한다. 독서는 노화의 지름길인 영혼의 경직성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내면을 성장시켜 ‘자유’를 얻게 해준다.
나이 들면서 타인과의 관계가 위축, 단절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수록 타인과 더 부단히 만나고, 더 소통하고, 더 변화해야 한다. 노년이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젊은이에게 지혜를 전해주는 메신저’의 모습을 보일 때다. 사람들의 재능과 진실이 세상에 잘 스며들도록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해야 할 역할이다. 주변을 마음의 여유와 탐미적 시선으로 보면 ‘아름답게 나이 드는 삶’으로 가꾸어갈 수 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나는 ‘독서 토론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9명의 회원이 각자 공통의 책을 읽은 후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 이 시간이 좋은 이유는 나와 다른 시선을 가진 이들과 소통하면서 내 세상이 더 넓어지는 걸 느낄 수 있어서다. 40대에서 60대에 속하는 회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제각각이다. 그 시선을 독자들과도 공유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서평이 아닌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기사는 책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와 독서 후의 짧은 소감, 논제로 구성했다. 논제는 회원들이 발제해 모임에서 함께 토론한 주제들이다. 독자들도 소개한 책을 읽고 제시된 논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2020년 6월의 책 1
- 도서명: 로마법 수업
- 지은이: 한동일
- 출판사: 문학동네
책을 선택할 때 저자의 이름만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꽤 있다. 본 도서가 그렇다.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이자 신부인 저자의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에 이어서 나온 책이다.
로마법은 오늘날 민법으로 발전된, 개인 간의 문제를 다룬 로마 사법을 말한다. 저자는 로마 문명의 특징인 절충과 조율에 로마인의 실용적 기질이 더해져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만들어진 로마법이야말로 인류가 시대를 초월해 추구해왔던 보편적 가치와 이상을 담은 법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우리의 현실과 고대 로마 사회(로마법)를 비교하면서 어떻게 바람직한 인간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를 독자들에게 묻는다. 대표적인 예로 저자는 평등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질문한다. “로마 사회는 명목이나 실제에 있어서 불평등한 계급사회였고, 로마의 형법은 불평등한 법이다. 우리 사회는 명목상 평등한 사회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존재하는 실제로는 불평등한 사회다. 어느 사회가 더 나은 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독자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제 우리 사회를 실제로 평등한 사회로 실현해 나가자”고 부드럽게 제안한다.
이 책은 법률 서적이라기보다는 인문학에 더 가까운 도서다. 각 장은 진정한 자유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변화, 특권과 책임, 계급과 돈, 인간과 노예, 여성문제, 신분과 권한, 결혼과 이혼, 간통, 사회 범죄와 형벌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해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성찰하게 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와 과제에 대해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 이 책의 가치다. 저자가 책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 있다. 다음은 그것을 함축한 한 문장이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 책 읽은 소감: 저자가 말하는 정의에 대체로 공감한다. 우리의 공동체에 대해 성찰해보도록 하는 게 이 책이 지닌 강점이다. 아울러 로마 사회의 실체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됐다. 하지만 원론적 담론에 그친 한계와 새로운 제안의 부재가 아쉬웠다.
◇ 평점: 3.75(5점 만점)
◇ 논제
- 저자는 "‘신분상의 불평등 원칙에 기초하여 차별한 사회’와 ‘명목상 평등 원칙에 기초를 두고도 차별하는 사회’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낫거나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합니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p.55, 221)
-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제도 가운데 시공을 초월해 영영 변치 않을 절대 원칙이란 사실상 없는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법이란 시대의 반영인 동시에 시대가 요청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입법자라고 가정하고 지금 우리 현실에서 1) 반드시 폐지하고 싶은 법과 2) 꼭 제정하고 싶은 법이 있다면? (p.137)
- 로마 사회는 간통죄에 대해 여성에겐 엄격했고 남성에게는 관대했습니다. 그래도 로마법은 남녀가 동등하게 신의를 지킬 것을 권장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간통죄가 폐지된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자는 법이 관여하지 않는 영역에서도 우리가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묻습니다. 간통한 자들은 사랑이라 말하고 법에선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고통을 당하고 자살까지 하는 현실입니다. 간통죄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p.154)
-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최소한의 삶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인적자원 공급을 위해 출산을 장려한다면 고대 로마 사회의 노예가 자녀를 낳아 주인의 부를 충족시켜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무엇이 다르냐고 저자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우리 사회의 비혼과 출산 기피 현상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p.68)
- 로마는 남성 중심적인 세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은 인류법의 기원이라는 로마법에서조차 남성에게 귀속되는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여성의 권리가 완전 회복되기까지 2000여 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느리지만 끊임없는 투쟁으로 근래에 폭풍 같은 발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이 부족합니다. 성 평등, 가정에서부터 얼마나 실천하고 있나요? (p.90)
- 저자는 자유인으로서의 삶과 노예적인 삶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것을 제안합니다. 많은 사람이 바라는 자유에 대해 저자는 ‘묶여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진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나마 자유를 찾을 길은 사회의 일원으로 묶여 있다 할지라도 지위와 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으로서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저자의 관점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여러분이 바라는 자유는? (pp.57~58)
토요일 이른 아침. 새벽 공기 헤치며 곳곳에서 달려온 이들이 ‘책’을 들고 하나둘 모여 앉는다. ‘나로부터 비롯되는 변화’를 기대하며 기분 좋은 에너지를 나누는 ‘독서포럼 양재나비’에 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꿈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인생의 모자람을 채우는 소중한 시간. 그들에게 아침은 멋진 삶을 향해 나아가는 희망의 열쇠다.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의 3P자기경영연구소. 전국 각지로 퍼져 있는 ‘독서포럼 나비’의 본부 격인 ‘양재나비’가 매주 토요일 이곳에서 모임을 갖는다. 일상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인 오전 6시 40분부터 오전 9시까지가 정해진 독서 토론시간. 전국의 ‘독서포럼 나비’가 모두 ‘양재나비’의 토론시간을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시간에 토론을 하는 곳도 있다.
‘독서포럼 나비’는 자기계발과 성장을 연구하고 강연도 하는 3P자기경영연구소 강규형(56) 대표가 만든 작은 독서모임이다. ‘나로부터 비롯되는 변화’라는 화두를 가지고 두 명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은 전국적으로 400여 개 모임으로 늘었다. 이외에 나비의 독서법을 따라서 독서모임을 하는 모임도 상당수다. 미국, 브라질, 몽골에서도 ‘독서포럼 나비’라는 이름으로 독서모임이 생겨났다. 현재는 사단법인을 설립해 따로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평일에 받은 피로를 풀어도 모자란 천금 같은 주말 아침에 굳이 일어나 책을 읽고 왜 토론하는 것인가. 그리고 독서모임 중에서도 사람들이 ‘독서포럼 나비’를 찾는 이유가 있을까? 첫 번째 이유는 분위기가 활기차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오면 간식 준비나 테이블, 의자 정리 등을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한다. 흥미로운 건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호칭은 다 ‘선배님’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배움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서로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른다. 초·중등생이 참여하는 ‘주니어 나비’의 학생들에게도 예외 없이 선배님이라고 칭한다. 10대에서 시니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과 지역,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이 모든 편견의 갈래를 넘어서 따뜻하고 기운찬 아침을 함께 맞이한다.
두 번째 이유는 토론장 테이블 위에 책과 함께 올려진 ‘바인더’가 독서뿐만 아니라 자리관리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시간을 알뜰하게 활용하게 해주는 일종의 시스템 다이어리다. 강규형 대표가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시간관리를 위해 사용해온 방법이 바인더였다고 말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는 바인더가 자신에게 스포츠업체 대표, 수억 원 연봉의 보험설계사 등의 이력을 만들어줬다고 수많은 강의를 통해 설명해왔다. 성공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의 시스템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모임에 녹아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니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그렇게 ‘양재나비’는 10년 세월 동안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들과 함께 꾸준히 성장하는 독서모임이 됐다.
오전 6시 40분에 만나는 사람들
20년째 사업을 하고 있다는 오용운 씨는 자신의 회사에서 일했던 직원의 소개로 ‘양재나비’를 알게 됐다. 노는 것도 좋지만 진지한 토론이 그리울 때가 있다고. 그때마다 찾는 곳이 양재나비다. 밝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끔이라도 족적을 남기려고 한다. 사실 이날은 책도 읽지 않았는데 꼭 참석해야 할 것 같아서 나왔다고. 역시나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법무사인 박희봉 씨의 경우 혼자 하는 독서에 회의를 느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독서를 그렇게 많이 하시면서 왜 달라지는 것이 없냐”는 아들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 후 사람들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을 찾다가 이곳까지 왔다. 책을 읽어야 하니 자연스레 술 약속도 안 하게 됐고 다이어트 효과까지 봤다. 독서 정리를 위해 쓰기 시작한 바인더도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자세 교정 트레이너로 활동 중인 최준섭 씨는 평생 봤던 책보다 ‘양재나비’에서 읽은 책이 훨씬 더 많다고 했다. 책을 통해 얻는 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이곳에서 받아가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자연스레 몸에 배어 삶의 큰 방향을 찾은 느낌이다. 이날 가장 멀리에서 왔다는 강주광 씨가 사는 곳은 경상북도 안동시. 지난 겨울방학을 제외하고 작년 3월부터 1년여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아이와 함께 독서토론을 위해 달려왔다. 시간 맞춰 오려면 새벽 3시 반에는 출발해야 하는 강행군이다. 서울까지 오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안동 지역에서 독서모임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받아가는 기운이 남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송병훈 씨는 5학년 아들의 독서토론을 위해 따라왔다가 자신도 참여하게 됐다면서, 예전에는 소극적인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자평했다. 안동에서 온 강주광 씨처럼 먼 곳은 아니지만 꽤 거리가 있는 지역에서 첫차를 타고 혹은 자가용을 이용해 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다.
‘양재나비’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최근에 책까지 냈다는 남윤희 씨, 잘나가는 유튜버를 꿈꾸는 부동산 중개업자 박병오 씨, 초등학교 선생님, 탈모 전문가, 금융전문가, 편입을 준비하는 청년 등 정말 많은 사람이 아침 독서토론을 통해 자신감은 물론 행복한 에너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혹시 신나고 행복한 사람들의 기를 받고 싶다면? 새벽바람 마시면서 ‘독서포럼 양재나비’에 가보시라!
평범한 문학관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에 위치한 이 작은 문학관은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 안정된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문학관과는 완전히 다르다. 소설가 이동희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농민문학기념관은 그의 소장품들과 사유물 그리고 농민문학에 관한 자료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번듯한 입구나 잘 차려 입은 안내인은 없지만 농민문학이 표현하고자 하는 삶의 치열함이 느껴진다. 이곳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따라 누구에게는 훌륭한 박물관이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학교 또는 도서관이 되기도 한다.
둘러보니 농민문학을 이야기할 장소로 여기만 한 곳이 있을까 싶다. 전형적인 농촌마을. 당연히 대중교통을 이용한 방문은 불편하다. 영동과 물한을 왕복하는 버스가 문학관 앞 노천리에 서지만 하루 다섯 번만 운행된다. 다행히 고속도로가 멀지 않아 경부고속도로 황간IC로 나오면 차로 20분 거리다.
과거의 흔적만 남은 마을 앞 가게 터를 지나 골목으로 좀 걸어 들어가자 마을회관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농민문학기념관 앞이다. 관장이자 창립자인 소설가 이동희의 사택을 겸한 곳이기 때문에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가정집과 구분하기 힘들다. 마당에는 작은 텃밭까지 있다.
민초의 삶 다룬 농민문학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농민문학에 대해서다. 농민문학에 대한 정의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어왔다.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시작됐던 1930년대 초에는 일종의 노동자문학의 하위 개념으로 빈농을 계몽해 사회주의 사상을 따르도록 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이후 농촌의 자연이나 지방색, 농민의 생활을 그린 문학으로 변화해왔다.
대표적인 농민문학으로 손꼽히는 작품은 이광수(李光洙)의 , 이기영(李箕永)의 을 필두로, 이무영(李無影)의 ·, 김동리(金東里)의 등이다. 이동희 관장은 농민문학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4차 산업시대에 접어든 농촌은 과거와 많이 바뀌었지만 땅과 흙은 변한 것이 없어요. 농민에게는 쌀이 떨어지고 보리도 나지 않는 절량기를 버텨온 정신이 있어요. 흙의 마음 말이에요. 농민문학은 그것을 표현하고 추구하는 문학입니다. 밭 갈고 논매는 이야기보다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면해야 하는 삶의 이야기가 소재가 됩니다.”
소설가 이동희 일생의 자료 모아놔
농민문학기념관이 설립된 것은 2005년 2월 10일. 문학관 설립에는 이동희 관장의 스승인 소설가 이무영을 기념하기 위한 취지도 있다. 이동희 관장은 문학 지망생 시절 단국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하면서 이무영 교수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그의 가르침을 통해 소설가로 활동하게 되었고, 단국대학교에서 스승의 강의를 이어받아 1978년부터 2003년까지 국문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대표작으로는 소설 과 등이 있다.
문학관 설립을 위해 이 관장은 한국전쟁 때 소이탄을 맞아 불탄 옛집 터에 흙벽돌을 쌓기 시작했다. 너와로 지붕을 이어 복원한 생가에 모교 연구실에 있던 책과 자료를 5톤 트럭으로 네댓 번 날라야 했다.
현재 농민문학기념관에는 농민문학 작가인 이무영 선생의 작품을 비롯해 소설가 류승규, 오유권, 박경수, 김용호, 구상, 권웅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영동 지역의 작가 박희선, 박운식, 장지성 등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이 문학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도서는 단행본과 잡지를 포함해 약 5000권 정도다. 여기에는 1930년대 농민문학의 영향을 받은 북한의 책들과 잡지 도 포함되어 있다. 연변문학예술연구소에서 편찬한 , 한글 소설을 출간하는 중국 출판사의 단행본도 전시되어 있다.
이 관장은 이 문학관을 기반으로 한 모임 ‘한국농민문학’을 바탕으로 계간지 도 출간 중이다. 한국농민문학 회원은 약 500명. 1990년에 창간호를 발간해 2017년 여름호까지 통권 102호를 출간했다.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도 해
규모는 작지만 이 문학관을 통해 다양한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창작교실 ‘농민문학 사랑’을 운영하고 있고, 전원문학 콘서트도 연다. 얼마 전에는 농민문학 4대 작가 이무영, 류승규, 오유권, 박경수의 활동전도 열었다.
때로는 인근에 위치한 매곡초등학교 학생들의 글짓기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전교생이 30여 명에 불과한데, 그중 절반가량이 문학관에서 글쓰기를 배운다. 이 관장은 “아이들의 삶의 수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아이들 반응도 좋다”고 설명한다. 학생들이 관심 있는 책을 선정해 독서 후 토론도 하고 독후감 쓰기, 시·수필·소설에 대한 설명이 수업으로 진행된다. 이 관장의 희망은 문학관 자료들이 필요한 많은 사람에게 쉽게 쓰이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관련 협회와 다른 문학관, 박물관과의 교류를 통해 안목도 넓히고 공부도 많이 하고 있어요. 시골 농촌의 작은 시설이지만 세계적인 문화유산과 호흡하고 있는 셈이죠. 소장품 등록이나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통해 궁벽한 지역의 자료가 중앙으로 연결되도록 하고 싶어요. 또 한 집 한 집 민족의 애환을 지니고 있는 지역 농가를 개발해 마을 전체가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을 갖게 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 관람 정보
주소 충북 영동군 매곡면 노천리 622-3
전화 043-743-5186
관람시간 10:00~17: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명절
관람료 무료
리동네 도서관 어린이 열람실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부터 어른들 차지가 된다.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독서모임을 만들어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하는 시간을 그 곳에서 갖고 있다. 동양사상이나 그리스 철학 등 진지하고 묵직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던 다른 날과는 달리 자기가 하고싶은 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독서 토론을 할 땐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자 사람들 목소리가 활기에 찼다.
한 회원이 문득 고민을 내놓았다. 여행을 다니면서 본 것들을 스케치 하고 싶어 그림을 배웠는데 생각만큼 실력이 늘지 않으니 재능이 없는 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회원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림은 손으로 하는 것이라서 열심히 하면 누구나 완성도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무엇보다 노력이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눈높이가 너무 높거나 노력이 못 미친 건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그녀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나도 글을 한번 써볼까?’ 누구나 한 번 쯤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서 글쓰기 교실을 기웃거리고 어떤 글을 쓰면 좋을까 생각에 잠겨보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글을 쓰려고 시도해보면 마음먹은 대로 써지는 건 아니다. 머릿속 생각은 가득한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빈 종이만 바라보다가 ‘나는 글 쓰는데 소질이 없어’하고 돌아서 버린다.
그러나 작가의 천재적 영감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믿고 있던 작품들도 사실 작가들의 인내와 노력의 산물이었다는 걸 알게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존 그리샴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하루에 한 쪽씩 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새벽 5시에 알람시계가 울리면 일어나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다. 어떤 날은 10분 만에 한쪽을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두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다 쓰고 나면 생업인 변호사 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는 ‘그렇게 나는 자신을 혹독하게 단련했다’고 말했다.
헤밍웨이도 하루 400~700 단어를 쓰기 위해 연필 7자루를 2번이나 깎아 써야 할 정도로 고치고 또 고쳐가며 글을 썼다고 한다. ‘무기여 잘 있거라’의 결말 마지막 페이지는 서른아홉 번을 다시 쓰고야 만족했다니 그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한 노력을 짐작할 수 있다. 공지영 작가도 인터뷰에서 자신이 쓴 글을 고치고 또 고치면서 1,000번 쯤 읽어 소설 전부를 외우게 될 때까지 퇴고를 멈추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래서 막상 소설이 나오면 쳐다보지도 않는단다.
위대한 작가들의 글쓰기 비결은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의 인내와 노력에 있었다. 물론 영감이나 재능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글 쓸 일이 많아진 사회에서 노력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정말로 다행스런 일이다.
지독하게 더웠던 2016년 여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올해도 그 끔찍한 시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무더위를 피해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무더위의 고통에서 벗어나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은 의외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것도 책과 함께 지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들이, 알고 보면 근처 한 시간 거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북캉스’로 하루 보낼 곳을 기웃거려볼까.
*북캉스: 책을 뜻하는 영어 단어 ‘북’에 ‘바캉스’를 결합시켜 만든 신조어
책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TV, 영화 등 화려한 영상 문화와 게임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조류에 밀려 문화의 중심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책이었다. 우리들에게 지금 책은 영상과 말의 과잉으로 넘쳐나는 일상을 힐링하는 촉매로서 그 역할을 되찾고 있다.
선진국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의 도서관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 속에서 일상을 힐링하는 책의 공공기능적 역할을 간파한 기업들은 너도나도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문화 공간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이제 젊은 시절처럼 산으로 바다로 가지 않아도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났다. 여름휴가를 떠나는 대신 도서관이나 동주민센터, 백화점 북카페, 서점 등에서 책을 읽으며 더위를 식히는 이른바 ‘북캉스’ 문화가 시니어들에게도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곳곳에 위치한 책 향기 그윽한 서점과 강연과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복합공간의 도서관은 무더위를 식히는 도심 속 정자마루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 순화동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한길사 ‘순화동천’
책 좀 읽었다는 시니어들에게 인문학 중심 도서들을 주로 펴낸 한길사라는 출판사가 만들어내는 무게감은 각별하다. 그 한길사가 오랜 준비 끝에 지난 4월 말에 인문예술공간 ‘순화동천’의 문을 열었다. 한길사가 창업 초기 자리했던 서울 중구 순화동에 만들어진 순화동천은 3만여 권의 책이 즐비한 550평 규모의 공간이며 책 박물관, 갤러리, 강의실, 회의실, 서점으로 구성됐다.
한길사는 오래전부터 독자가 중심이 된 ‘책 놀이터’를 마련하고자 했으며 순화동의 ‘순화’와 노장사상에 나오는 이상향인 ‘동천’을 더해 ‘순화동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문·예술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평화를 순례하는 유토피아’가 되겠다는 의미다.
책 박물관은 근·현대출판문화사에 빛나는 아름다운 고서들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또한 작은 음악회를 열 수 있어 음악과 미술을 함께 즐길 수 있다. 강의실과 회의실로 사용할 수 있는 4개의 공간은 각각 ‘퍼스트아트’, ‘한나 아렌트 방’, ‘윌리엄 모리스 방’, ‘플라톤 방’으로 불린다. 전시회나 출판기념회, 8~15명이 참석하는 소규모 회의, 50~70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강연을 진행할 수 있으며 인터넷으로 접수를 받는다.
아트갤러리와 한길책방은 60m에 이르는 긴 복도로 이뤄져 있다. 복도의 한쪽 벽은 아름다운 미술 작품들이 걸린 아트갤러리로, 다른 쪽 벽은 한길사가 지난 40년 동안 펴낸 고품격 인문·예술도서가 들어찬 한길책방이다. 복도 중간에는 ‘카페뮤지엄’이 있어 커피와 함께 잠시 쉬며 책과 미술 작품을 즐길 수 있다.
◇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는 시원한 자유, 신세계 ‘별마당 도서관’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코엑스 안에 초대형 도서관이 있다? 사실이다. 신세계가 지난 5월 말에 문을 연 ‘별마당 도서관’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열린 도서관’이다. 회원카드도 따로 없다. 오래 머물러도 된다. 음료를 가지고 와도 괜찮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책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자유다.
별마당 도서관은 총면적 2800㎡에 2개 층으로 구성돼 있다. 도서관 내부에는 13m 높이의 대형 서가 3개를 중심으로 소파형·계단형 등 총 200석의 의자와 책상을 배치했다. 또 은은한 간접조명을 설치해 개인 서재 분위기를 냈고, 곳곳에 콘센트와 USB 단자를 구비해 노트북과 휴대전화 충전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는 5만여 권의 장서와 600여 권의 잡지가 준비되어 있는데, 잡지 코너만 보면 국내 최대 규모다. 고객들의 도서 기증도 받고 있기에 집에 보관해둔 책을 기증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별마당 도서관은 대출은 불가능하며 열람만 가능하다. 또한 도난방지 장치가 없다. 도서관과 쇼핑몰 사이에 출입구가 따로 없이 사방으로 열려 있는 구조이지만, 도난경보기 등을 설치하지 않았다.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믿는 구조다.
별마당 도서관은 문화와 휴식을 갖춘 열린 도서관을 찾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어 도서관이 지역 상권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시설이라고 판단해 만들어졌다. 별마당 도서관의 모델은 인구 5만 명의 소도시인 일본 다케오 시의 ‘다케오 시립 도서관’이다. 다케오 시립 도서관은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열린 도서관 콘셉트로 2013년에 리뉴얼한 이후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 키덜트 겨냥한 예스24 ‘홍대던전’
인터넷 서점들의 오프라인 서점 진출이 줄을 잇고 있다. 그동안 인터넷 서점들이 오프라인 거점을 주로 중고서점 중심으로 만든 것과는 달리, 예스24는 콘셉트 서점을 기획해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 서브컬처(하위문화) 복합문화공간인 ‘홍대던전’을 열었다.
홍대던전은 청소년에서 키덜트까지를 주 고객으로 하는 라이트노벨(가벼운 느낌의 장르소설)·애니메이션·게임 등 ‘서브컬처’ 맞춤문화공간을 지향한다. 5월에 문을 연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과 아래위층으로 연결돼 있다. ‘홍대던전’에는 누구나 무료로 라이트노벨을 읽을 수 있는 열람공간, 피규어와 퍼즐 등 캐릭터 상품과 코스프레 전문용품을 모아둔 판매공간, 애니메이션과 게임 속 메뉴를 모티브로 한 음식을 판매하는 매점 등이 마련되어 있다.
◇ 지적 세계로의 여행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현대카드는 ‘혁신’을 기업 이미지로 삼으면서 아날로그와의 적극적인 결합을 꾸준히 지향했다. 서울 도심의 네 곳에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세워진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는 아날로그의 대표적 콘텐츠인 책에 주목한 현대카드의 또 다른 실험이다. 공연과 문화공간 등을 통해 컬처 브랜딩의 선두주자로 각인된 현대카드에서 책을 통해 지적 브랜딩의 출발점을 잡은 것이다.
가회동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는 디자인 서적들이, 이태원 ‘뮤직 라이브러리’에는 음악 관련 서적들이 있다. 뮤직 라이브러리에는 책과 함께 1950년대 이후에 나온 1만여 장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LP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LP를 통한 음악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게 하고 있다. 심지어 계속 업데이트하는 중이다. 신사동 ‘쿠킹 라이브러리’는 음식 관련 서적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되어 있다. 재료 카드를 사면 현장에서 요리도 가능하다고 한다. 청담동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독서를 여행과 동일하다고 여기고 1만5000여 권에 달하는 여행 관련 서적들뿐만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는 여행을 ‘일상의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모든 형태의 지적 활동’으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 사회취약 계층과 함께하는 ‘네이버 라이브러리’
분당구 정자동의 네이버 사옥 로비에 자리한 네이버 라이브러리는 도서관, 서점, 북카페를 결합시켜 책이 있는 공간의 장점들을 모두 경험하도록 하는 데 목적을 뒀다. 디자인과 IT에 특화된 네이버 라이브러리는 디자인 장서 1만7000여 권, IT 장서 7000여 권, 전 세계의 전문 백과사전 1300여 권, 국내외 잡지 250여 종이 준비되어 있다. IT 기업이 운영하는 도서관이라는 특색을 살리면서 개인이 구매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비싼 디자인과 IT 분야의 책들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공간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책을 고르기 쉽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일반적인 도서관들과는 달리 ‘절대 정숙’ 문화가 아닌 대화하고 토론하는 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네이버 라이브러리는 네이버의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성격을 살리기 위해 사회취약 계층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사서는 시니어들이 맡고 있으며 안에 위치한 카페는 발달장애인의 일터를 만드는 회사 베어베터와 함께 운영되며 지적장애나 자폐를 가진 청년들이 커피를 만든다.
◇ 도심 속 한옥 도서관 ‘청운문학도서관’
종로구 청운동,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청운문학도서관은 종로구에서 16번째로 만들어진 도서관이자 최초로 한옥으로 만들어진 공공 도서관이다. 지붕은 전통 방식의 수제 기와를 사용했고 담 위에 얹은 기와는 돈의문 뉴타운 지역에서 철거된 한옥의 기와 3000여 장을 가져와 사용했다. 그야말로 전통 한옥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건물이다.
청운문학도서관 1층은 한옥이며 지하는 반지하식 양옥 건물이다. 1층에서는 시, 문학 창작교실, 문화예술교육, 인문학 콘서트 등이 열린다. 지하층은 시, 소설, 수필 위주의 문학 도서를 만날 수 있는 자료실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실이 있다. 또한 온돌식 독서공간도 마련되어 한옥 도서관이라는 콘셉트를 충실하게 살리고 있다. 물론 여름에는 에어컨을 통해시원하게 유지된다고 하니 냉방은 합리적인 현대기술을 이용했겠다.
도서관 같은 서점 인터파크 ‘북파크’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2, 3층 총 2000㎡ 공간에 자리 잡은 ‘북파크’는 북카페나 도서관처럼 이용할 수 있는 서점이다. 50여 개의 테이블과 200여 개의 의자, 앉아서 책 읽기가 가능한 계단 등이 마련돼 있다. 독서공간의 분위기도 다락방 스타일, 테라스 스타일, 응접실 스타일 등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고를 수 있다. 또 계단 밑이나 서가 뒤 숨은 공간에서 아늑한 분위기를 즐기며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어린이책 코너 부근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 뒹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일곱 곳이나 있다. ‘보신 책은 북박스에 넣어주시면 직원이 정리한다’는 안내문구까지 있으니, 책의 구매 여부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서점이다.
북파크는 인터파크의 과학재단인 카오스재단이 2016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카오스재단의 설립 목적인 ‘과학의 대중화와 과학지식의 공유’ 취지에 맞춰 총 10만여 권의 보유 서적 중 절반 정도가 과학 관련 책이다. 서점 안에는 35석 규모의 다윈룸과 8석 규모의 뉴턴룸 등 모임 장소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북파크는 이태원이나 경리단길 유명 맛집과 가깝고 공연장이 같은 건물에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 여름방학이 되면 손주 손을 잡고 다녀와도 좋겠다.
이밖에도 CJ CGV와 쉐라톤워커힐 호텔도 도서관을 만들었다. 금융계에서도 KEB 하나은행 본점인 을지로 사옥에도 도서관이 들어설 예정이고 대신증권도 명동 사옥에 도서관을 열었다. 기업들이 앞다퉈 사회공헌 차원에서 도서관을 개장하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과거에는 한 노인의 죽음을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에 비유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식의 총량이 매일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막대하게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인생 경륜을 어설프게 드러내는 것은 자칫 뭘 모르면서 꼰대 노릇하는 걸로 비치기 십상인 세상이 됐다.
나이 듦에 따라 정신과 지식의 세계도 변모하기에 품위 있게 늙는 일은 중요하다. 문화지성인으로서의 비움과 채움이 필요한 시니어에게 도서관은 여전히 매력적인 공간이자 여행지다. 다시 찾아온 무더운 여름, 어디를 갈까 고민 말고 가까운 도서관에 놀러 가보자.
사회에서 은퇴하고 재미있는 제2 인생설계를 위하여 많은 평생교육에 참여하였다. 한두 달 동안의 단기 교육동기들은 학창시절 동창과 전혀 다르게 20년 나이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많다. 새 친구 사귀기도 전에 교육을 마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교육 중 수업이 끝나면 막걸리 잔을 나누면서 지속가능한 모임이 되도록 노력한다.
몇 년 전, KDB 시니어브리지센터 제8기 사회공헌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하면서 교육동기 친목모임 ‘두레월회’를 결성하였다. 매달 둘째 월요일에 정기적으로 모여서 친목을 도모한다. 봄과 가을에는 둘레길 도보여행ㆍ문화유적 탐방 등 야외활동을 주로하고, 여름과 겨울에는 영화감상ㆍ소양강좌ㆍ독서토론 등 실내모임을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도보여행을 많이 하였다. 첫 행사는 젊은 시절 즐겨 걸었던 단풍이 곱게 물든 남산에서 시작하였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즐거웠던 그때가 그리워졌다. 둘레길을 돌아 장충동 족발골목에서 걷기를 마무리하였다. 막걸리잔 높이 들고 메아리를 남산으로 날렸다. 고양시 한북누리길, 사당역에서 양재역에 이르는 우면산 둘레길 새해맞이 도보여행을 하였고, 원당역에서 왕복 행주누리길 산책을 하였다.
회원 간의 교양강좌도 보람이 있었다. 사진전문가 조영대 회원의 강의와 SNS 전문가 오경순 회원의 지도로 스마트폰 동영상 촬영기법 강좌를 진행하였다. 동영상의 기능부터 촬영, 저장, 편집과 보내기까지 전반에 걸쳐 강의가 진행되었다. 전문지식과 체험을 갖춘 강사의 열강으로 동영상을 직접 만들어서 회원끼리 공유하는 실습까지 완료하였다.
문화해설이 곁들인 창덕궁, 덕수궁 고궁산책은 소양을 기르는데 큰 힘이 되었다. 한 바퀴 휙 돌아보는 구경이 아닌 살아있는 보물이었다. 추운 겨울에는 영화 ‘히말라야’를 감상을 하였다. 저명한 산악인의 실화를 배경으로 인간의 숭고한 도전을 그리고 있었다. 그동안 알려졌던 히말라야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었고,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올해는 양평 물소리길, 삼남길 걷기로 친목을 도모하고 체력을 증진하는 활동을 많이 하였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6월 둘째 월요일에 전철을 타고 양수역에 갔다. 나지막한 부용산은 걷기 좋은 호젓한 산길이다. 한강변 신원역으로 내려가면 서울로 가는 길이다. 복잡한 전철은 오후 4시가 넘으면 썰물 빠지듯 매우 여유가 있다.
친구모임은 재미가 있어야 활성화 된다. 수십 년 학교동창 모임도 주제가 있어야 한다. 막걸리 사발 돌리는 음식점 회동은 이미 사라지고 있다. 사회에서 늦게 만난 친구일수록 재미있게 사귀는 방법을 더 생각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