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무슨 상관?” 세대 장벽 허물 시니어 여가 트렌드

기사입력 2024-10-14 08:07 기사수정 2024-10-14 08:08

온라인 플랫폼 통해 러닝·발레 등 인기… 디지털 바람 타고 ‘회춘’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여가란 일·가사 등 의무적인 활동을 제외하고 자유롭게 사용하는 시간을 말한다. 과거에는 은퇴하면 집에서 잠을 자거나 TV 보면서 여가를 보낼 거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현재 액티브 시니어의 여가 보내는 방법은 확연히 다르다. 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그들이 주목하는 여가 활동 트렌드를 알아봤다.

액티브 시니어의 개념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퇴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0년 이후 조명받았다. 액티브 시니어는 탄탄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나 중심의 선택적 소비를 하는 시니어라고 할 수 있다. 통일된 연령 기준은 없다. 은퇴를 경험한 50대부터 건강한 신체를 가진 70·80대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지난해 말 LG경영연구원은 ‘향후 30년간 확대될 액티브 시니어의 소비 파워’라는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놨다. 통계청의 가계 동향 조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액티브 시니어의 소비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했다. 보고서에서는 55~69세 시니어가 여가 활동에 집중한다면서 “자녀 양육을 마치고, 여행·운동·문화생활을 위해 시간적·경제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니어 여가도 디지털 바람

시니어의 여가 활동에도 디지털이 접목되고 있다. AI가 발전하면서 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큐레이션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와 관련해 시니어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곳은 단연 로쉬코리아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오뉴’는 큐레이션 알고리즘을 적용한 5060세대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그림 그리기 및 만들기, 여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시니어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클래스를 찾아 여가를 보낼 수 있다.

‘시놀’은 애플리케이션(앱) 기반 큐레이션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5070세대는 시놀 회원이 되면 데이팅, 모임, 여행 등을 즐길 수 있다. 본래 시놀은 데이팅 앱으로 출발했는데, 지난 7월 개편을 통해 모임 커뮤니티 앱인 ‘시놀’(시니어놀이터)과 만남 주선 앱인 ‘시럽’(시니어러브)으로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또한 시놀은 인터파크 투어와 손잡고 시니어 여행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5070세대가 액티비티를 함께 즐기며 친구도 사귈 수 있는 상품이다.

김수형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노인학과 초빙교수는 “여가 관련 큐레이션 플랫폼의 발전은 시니어 라이프스타일의 빈자리를 채워준다고 본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시니어들은 젊은 시절 바빠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고 싶어 한다”면서 “특히 시니어가 여행을 선호하는 이유는 과거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데, 추억을 함께 나누며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공 영역을 살펴보면, 서울시를 포함한 지자체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60대 이상 시니어의 여가 활동을 돕는 ‘스마트 복지관’이 확대되고 있다. 스마트 복지관은 60대 이상 시니어가 노인종합복지관에서 태블릿·키오스크 같은 디지털 기기로 다양한 내용을 학습하거나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돌봄 로봇 활용도 해당된다.

김수형 교수는 “스마트 복지관은 효율적이고 기술 발전에 발맞춘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우려되는 지점은 어르신들이 디지털 기기 다루는 것을 어려워하고 흥미를 못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어르신들이 노인종합복지관에 가는 이유는 여러 사람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인데, 사람 간의 대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든다”면서 “어르신들이 스스로 디지털 기기 사용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디지털 역량도 늘고 배움의 즐거움도 깨달을 수 있다”라고 전했다.

▲시니어 큐레이션 플랫폼 ‘시놀’과 ‘오뉴’
▲시니어 큐레이션 플랫폼 ‘시놀’과 ‘오뉴’

세대 간 교류가 필요해

여가를 활용하는 좋은 방법은 나만의 취미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액티브 시니어는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는 경향이 있다. 시니어의 취미 생활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젊은 세대와의 간극이 줄어들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운동을 꼽을 수 있다. LG경영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50대 이상 시니어의 운동을 위한 지출이 빠르게 증가했다. 55~69세 전체의 운동·오락 서비스 이용 금액은 25~39세 전체 지출액의 30% 수준에 불과했는데, 현재는 90% 수준으로 비슷해졌다.

2030세대에서 러닝 붐이 불고 있는데, 시니어도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10월까지 ‘7979 서울 러닝크루’를 진행한다.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달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공식 인스타그램 속 사진을 통해 중장년 참여자가 많아져 여러 세대가 단합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발레 등을 포함한 무용은 예술 영역이라고 생각해 중년 이상 나이가 되면 접근이 어려웠는데, 도전의식이 강한 액티브 시니어들이 등장하면서 세대 간 장벽이 많이 허물허진 추세다.

한편 디지털 시대에 책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높아지면서 독서를 취미로 삼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독서를 인증하는 젊은 세대의 게시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은 독서 모임을 통해 책 이야기를 나누며 인간관계도 맺는다. 이러한 독서 문화가 시니어에게도 퍼지고 있다.

2021년 KBS1 ‘다큐 On’에서는 ‘노년, 책을 들다’ 편을 방송했다. 책 읽는 다양한 노년의 모습을 담았으며,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얘기했다. 최병일 교수는 자녀와 손녀까지 3세대가 함께 가족 독서 토론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파주의 작은 책방에서는 ‘누름돌’이라는 시니어 독서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책방지기와 책방 손님으로 만난 시니어들은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됐다고 한다.

김수형 교수는 시니어의 여가와 관련해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2022년 K-시니어즈(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소속 회원 60명이 자신의 여가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QR코드로 배우는 도시학교’ 책을 펴냈다. 이후 김 교수는 지난해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강의에서 20대 대학생 45명에게 저자 중 한 명을 만나 여가 활동을 중점으로 인터뷰하는 과제를 제시했다.

강남대학교 학생들의 과제 후기를 보면 대체로 의견이 비슷했다. 은퇴 후에도 멋진 삶을 사는 시니어로부터 좋은 에너지를 받았으며, 자신도 여가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취미를 찾아야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더불어 시니어들이 여가를 잘 즐길 수 있도록 배움 또는 커뮤니티 장소가 확충되거나,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수형 교수는 “은퇴 후 시니어의 가장 큰 문제로 거론되는 것이 사회적 고립인데, 여가 활동은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니어들끼리만 소통하는 것보다는 젊은 세대도 함께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한 세대 교류의 장이 점진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독서 토론 모임, 지적 호기심 대화의 장”

▲최병일 교수(브라보마이라이프DB)
▲최병일 교수(브라보마이라이프DB)

“나이를 먹었어도 호기심을 갖고 있으면 늙은 게 아니죠.” 시니어 독서 토론을 권장하는 70대의 최병일 교수. 사실 그도 늦은 나이에 책의 매력에 눈떴다. 책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심도 있게 파고드는 정도는 아니었는데, 50대에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독서와 독서 토론의 매력을 깨달았다. 그게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 그는 지방자치단체, 교육기관, 도서관 등에서 독서 토론, 글쓰기 교육 등을 하고 있다. 2022년에는 4년 넘게 이어온 가족 독서 토론 이야기를 담은 책 ‘한 지붕 북클럽’(며느리 김예원 씨 공저)을 내기도 했다. 최 교수는 “시니어는 한 얘기 또 하고, 자신의 철학과 신념만 맞다고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인간의 뇌에는 입력 장치와 출력 장치가 있다. 책은 입력 장치 역할을 한다. 즉 독서를 해야 말도 글도 좋게 나올 수 있다”면서 시니어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또한 그는 “중년 이상은 독서를 공부라고 생각하고, 왜 읽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다. 그런데 책은 인생의 내비게이션이다. 나를 발견하고,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독서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중년들에게 그림책 읽기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책의 매력을 깨닫고, 점점 분량과 깊이를 늘려가면서 읽으면 된다는 조언이다. 다만 문학과 비문학 어느 하나를 편독하지 말고 균형 있게 읽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40~60대, 발레로 노화 방지 가능”

▲박경희 원장(브라보마이라이프DB)
▲박경희 원장(브라보마이라이프DB)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뉴욕발레아트학원은 ‘발레는 젊고 마른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대중의 편견을 깨고자 하는 체형 교정 발레 학원이다. 더 나아가 박경희 원장은 40~60대에게 발레가 좋은 운동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 수강생들의 연령은 보통의 학원보다 높은 편이다. 박 원장은 “40대가 가장 많고, 연장자로 67세 학생도 있었다. 젊은 시절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학원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경희 원장이 중년에게 발레를 추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나이 먹으면 근육이 빠지고 에너지가 떨어져서 중년이 되면 자세가 안 좋은 경우가 많다”면서 “발레를 하면 코어와 하체에 힘이 생기고, 몸의 균형 감각이 살아난다. 스스로 몸을 통제하게 되면 자신감 또한 상승한다”고 말했다. 중학생 때부터 발레 외길을 걸어온 박 원장은 “어느덧 50대가 됐다. 점점 발레의 장점을 깨닫고, 노화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고 말하며 웃었다. 우아하고 고고한 자태를 지닌 그는 발레의 효과를 입증한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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