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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첫 아파트형 마을공동체, 위스테이 별내 “대안적 주거 모델”
-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2022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52.4%인 1227만 가구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이렇게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늘어나는 반면, 정작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층간 소음으로 범죄까지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아파트 ‘위스테이 별내’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국내 첫 ‘아파트형 마을공동체’로서, 입주민 약 1500명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의 이웃이다. 뿐만 아니라 입주민이 직접 아파트 시설을 설계·운영한다는데, 그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아보고자 위스테이 별내를 찾아가 봤다. 입주민이 직접 만든 커뮤니티 시설 2020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는 위스테이 별내는 지하 2층부터 지상 22층의 7개 동, 총 491세대(60㎡, 74㎡, 84㎡ 3가지 주택형) 규모다. 약 1500명의 입주민은 모두 ‘위스테이 별내 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이다. 아파트는 크게 전유부(거주하는 집), 공유부, 부대·복리 시설(커뮤니티 시설)로 나뉜다. 이 가운데 위스테이는 부대·복리 시설을 입주민이 직접 설계했다. 위스테이에서는 이를 ‘커뮤니티 디자인’이라고 명칭 했으며, 입주 전부터 거의 1년간 논의의 시간을 거쳤다. 그 결과로 법정 기준의 2.5배에 달하는 2777㎡ 규모의 커뮤니티 시설이 내실을 갖춰 조성됐다. 위스테이 단지 중앙에는 잔디 광장이 있고, 그 주변으로 커뮤니티 시설이 존재한다. 교류의 장인 동네카페를 비롯해 동네책방, 동네체육관이 있다. 작게는 빨래방, 공유주방도 형성됐다. 취미를 공유하는 공간인 동네창작소와 통네텃밭도 만날 수 있다. 아파트 외곽에는 협동상회도 존재한다.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 모두 입주민이다. 공동체 시설에 잘 어울리는 ‘동네’라는 이름 또한 투표로 결정됐다. 위스테이 별내 입주민들은 월세 10만 원을 내는데, 그중 5만 원은 커뮤니티 시설 이용료다. 입주 초기에는 ‘나는 잘 이용하지 않을 것인데 왜 5만원이나 내야 하냐’면서 볼 멘 소리를 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입주민의 3분의 1 이상이 동아리 활동을 하고, 각자의 사연으로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하기 때문에 다들 만족을 표한다. 위스테이에서 커뮤니티 시설은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아주 중요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위스테이에 사는 사람들 위스테이 별내는 남양주 일대에서 ‘아이를 키우기 좋은 아파트’로 소문이 났다. 전 세대가 어우러져 살아가며 교류할 수 있고, 관련 시설도 마련돼 있어서다. 단지 내에는 산새꽃어린이집을 비롯해 미취학 아동 및 방과 후 학생을 위한 돌봄 센터가 있다. 외출 시 이웃에게 자녀를 맡기거나, 학부모끼리 고민과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현재, 어르신을 위한 공간은 없을까. 위스테이의 60세 이상 어르신은 30·40대 입주민의 부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지 내에 있는 ‘60+센터’가 그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경로당이라고 하는 곳이다. 단순히 소통과 취미·여가를 위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도 힘쓴다. “이웃은 나의 친구…여행보다 집이 좋아” 수요일 정오 무렵 ‘60+센터’에서는 맛있게 밥 익어가는 냄새가 났다. 오후 요가 수업을 앞두고 어르신들이 함께 밥 먹는 날이라고 했다. 가족을 표현하는 ‘식구’란 ‘끼니를 같이 먹는 사람’을 뜻하는데, 가족 같은 끈끈함이 느껴진다. ‘60+센터’ 어르신 가운데 김연진(76), 김석순(70) 씨와 얘기를 나눠봤다. 김연진 씨는 ‘비공식 요가 강사’이다. 시니어들의 요가 수업은 온라인 영상을 보고 따라 하는 것으로 진행되는데, 40년 넘게 요가 운동을 해온 그는 선배이자 지도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김석순 씨는 시니어 동아리 부회장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이전에는 공동체 활동을 해본 적이 없었던 터로 걱정이 많았지만, 현재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김연진 씨는 “최근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힘들기만 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우리 아파트가, 사람들이 많이 그리웠다”면서 “집이 제일 좋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할 정도다. 공동체 삶의 장점을 묻자 김연진 씨는 “여기에서 요가도 하고, 라인댄스도 배우면서 사람들하고 정답게 살다 보니 건강이 좋아졌다”고 답했다. 이웃들과 산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러깅 활동을 한다는 김석순 씨 역시 건강이 좋아졌다고 맞장구를 쳤다. 또한 그는 “꽁날(공동체의 날)에 우리 시니어들이 공유주방에서 반찬을 만들어서 팔았다. 다들 너무 맛있다고 계속 먹고 싶다고 해서 뿌듯했다. 또 요즘은 어떤 활동을 할 때 앞장서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외롭지 않은 노년을 보내게 된 점을 최고의 장점으로 꼽았다. 위스테이에는 홀로 사는 80대 할머니가 있다. 김연진 씨는 언니인 그분이 마음에 쓰여 일부러 종종 찾아가 말도 걸고 같이 산책도 하고 그랬다고 한다. 이제는 언니가 동생을 먼저 찾는가 하면, ‘60+센터’에도 자주 나오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단다. ‘60+센터’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시니어는 30명 정도다. 이제 그들은 돈독한 친구 같은 사이가 됐다. 김연진 씨와 김석순 씨는 “친구가 많을 필요는 없지만, 같이 늙어가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인 것 같다”고 입을 모아 말하며 웃음 지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없으면 안 돼. 오죽하면 나중에 우리끼리 같이 살까라는 말도 했다니깐.” 부동산 문제 해결하는 주거 모델 대규모 아파트형 마을공동체 위스테이는 주거 안정을 꾀하는 대안적 주거 모델로 꼽힌다. 1호 별내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2호 지축은 경기도 고양시에 각각 있다. 위스테이 사업을 주관하는 사회혁신기업 더함의 김종빈 부대표는 “위스테이 사업을 시작한 지 7년째 되어간다. 초반에 정부부터 주변 사람들까지 ‘과연 가능할까’라면서 의구심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니 입주민의 만족도도 높고, 관리도 잘 되고 있어 ‘제법 괜찮았다’고 생각 된다”라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더함의 창립 멤버들은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었다. 김종빈 부대표는 아름다운가게․한솔교육희망재단 등 비영리 단체 출신이다. 양동수 대표는 공익 활동에 치중해 온 변호사였다. 그럼에도 그들이 뭉친 이유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였고, 자연스럽게 주요 대상층은 30․40세대가 됐다. “소득을 기준으로 국민을 10분위로 나눠봤을 때, 우리는 중위 계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에 집중했습니다. 그중 8, 9, 10분위는 집이 있고, 1, 2분위는 공공이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죠. 저희는 3분위부터 7분위 정도가 저희들의 타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들이 결국 30․40세대인 거죠. ‘전세 난민’, ‘하우스 푸어’, ‘영끌족’ 등 모두 30․40세대에서 시작되거든요. 그래서 입주민을 모집할 때 ‘서울 수도권에 거주하는 30·40세대 중에서 공동체 생활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자’로 아예 표적을 설정했어요.” 더함은 2016년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의 시범사업인 ‘협동조합형 뉴스테이’의 사업자로 선정됐다.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뉴스테이’ 사업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2015년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애초 취지와 달리 모든 이익을 건설사가 가져가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이에 국토부는 공공성을 보완하고자 협동조합형 뉴스테이 공모 사업을 진행했고, 더함이 선정되면서 위스테이라는 모델이 만들어진 것이다. 기존의 뉴스테이 사업은 건설사가 자금을 대지만, 위스테이는 입주민이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려 출자하는 방식을 취했다. 건설사는 단순 도급 형태로만 참여했다. 이를 통해 임대료를 주변 시세 대비 20% 저렴하게 제공하게 됐다. 별내는 보증금이 2억 5000만 원, 지축은 2억 9000만 원이다. 그중 4000만 원은 협동조합원으로 내는 출자금(임대차 계약 해지 시 환급)이다. “위스테이는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의무 임대 기간을 8년으로 정했고, 2년마다 재계약을 진행합니다. 별내는 이미 한 차례 재계약을 했는데, 보증금은 동결이었으며 임대료는 단 1% 상승했어요. 법의 기준은 1년에 5%씩 상승 가능해서 최대 10%까지 올릴 수 있죠. 그러니까 위스테이는 비용적인 측면만 봐도 좋은 부동산 주택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8년 이후에는 어떻게 할지는 아직 정해진 게 없어요. 우리 사업 구조가 조합원들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이긴 하지만, 법 개정 요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가야죠.” 김종빈 부대표는 위스테이는 ‘어포더블 하우징’(Affordable Housing)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중·저 소득자를 위한 저렴 주택’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은데, ‘합리적 주택’이 맞는 표현으로 보인다. 그는 “어포더블 하우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장기간 거주가 가능해야 한다. 두 번째, 합리적 주택 비용을 지불하는 정도 수준이어야 한다. 세 번째, 그 안에 좋은 커뮤니티가 존재해야 한다. 위스테이는 그 세 가지의 기본 개념을 충족했다”고 강조했다. 공동체 생활 주거 늘어나야 위스테이는 아파트에 거주하면서도 공동체가 살아있는 마을을 만들고, 나아가 지역사회에도 기여하는 모델을 그렸다. 무엇보다 공동체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평생학습 모델인 ‘100개 마을 학교’와 ‘100개 마을 일자리’를 목표로 세웠다. “100개 마을 학교는 이미 다 채웠어요. 악기 연주, 스포츠, 목공 등의 만들기 등, 현재 동아리를 보면 마을 학교에서 이어진 경우가 많죠. 그러나 일자리 제공은 50여 개밖에 되지 않았어요. 세입이 창출돼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을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마을 일자리는 양질의 일자리는 아니에요. 바리스타, 경비, 청소 등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가정주부나 시니어가 하기 적합한 파트 타임 일자리가 많은 편이죠. 좀 더 양질의 일자리로 목표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함의 직원 10여 명은 실제로 위스테이에 거주하는 입주민인데, 김종빈 부대표는 지축에 산다. 적극적으로 공동체 활동 참여도 하고 있다. 목공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는가 하면, 한 달에 한 번은 아들과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나누는 모임에 참석한다. 직접 거주하며 느낀 공동체 생활의장점을 묻자 그는 객관적인 시선을 위해 아내의 얘기를 전했다. “사실 제 아내가 좀 내향적인 성격이어서 위스테이로 이사 올 때 썩 내켜 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위스테이 사업을 하는 사람이니까 동네에서 좀 알려지게 될 것 같고, 민원도 받을 것 같고 조금 부담스러웠나 봐요. 그런데 이 공간이 주는 힘이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해서 지금은 굉장히 만족하면서 살고 있어요. 둘째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인데 학부모들끼리 엄청 친해졌더라고요. 여행도 다녀올 정도로요. 또 단지 내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사람들하고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공동체로 산다는 것은 분명 좋은 점이 많다. 그러나 가족끼리도 싸우는데 ‘갈등’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을 터. 더함은 이를 예상했고, 조합원들이 입주 전 갈등 조정 교육을 60 시간 이상 이수하도록 했다. 또한 위스테이는 갈등 조정 위원회도 두고 갈등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공동 주택인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3대 분쟁은 주차·층간 소음·반려동물 문제를 들 수 있다. 특히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펫팸(Pet+Family)족’이 늘고 있는데, 위스테이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별내에서는 입주 초기에 반려동물 훈련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과 함께 ‘별나개(별내에 나쁜 개는 없다)’ 워크숍을 했었어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족을 상대로는 에티켓에 대해 얘기했고,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가족에게는 예상되는 불편함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죠. 그리고 세 번째로 같이 모여서 약속했어요. ‘목줄 잘 채워줘’, ‘배변 잘 치워줘’ 등의 약속이 오갔죠. 별내에서는 2년 전 조사 결과지만, 30~40% 정도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어요. 1인 가구 거주율이 높은 지축은 50% 가까운 사람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축에서는 목공 동아리에서 반려동물의 배변을 치울 수 있는 간이 부스를 만들었고, 운영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동아리가 하고 있기도 합니다.” 김종빈 부대표는 물론 입주민은 위스테이와 같은 좋은 주거 모델이 지속해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꼭 위스테이 3호가 아니더라도 ‘공동체 생활이 가능한 합리적인 가격의 주거 모델’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박근혜, 문재인, 현재의 윤석열 정부까지. 대통령이 세 번이나 바뀌는 기간이었는데, 정부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공모는 딱 한 번 이뤄졌어요. 위스테이와 같은 주거 유형은 대한민국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적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2100만 가구가 사는데, 딱 1000세대만 독특한 모델인 위스테이에 살고 있는 거죠. 앞으로 정부의 노력도 이뤄져서 그 숫자가 늘어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 2023-11-3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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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서 마음 돌보는 책방으로 중년 새 인생 시작
-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 세대의 창업을 통한 도약을 지원하기 위해,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을 펼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한 점프업5060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에 성공하고 새 인생을 펼치는 중장년들을 소개합니다. 나이 들면 무얼 하면서 살까? 어떻게 해야 일터와 삶터를 분리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김은주, 박유하 부부는 은퇴 전부터 이어진 오랜 고민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살고 있는 주택 지하에 자리 잡은 모모책방으로 말이다. 서울시 도봉구 도봉동 사람들은 모모책방에 모여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관람한다. 늦은 시간까지 필사를 하거나, 외국 드라마 ‘빨간머리 앤’을 보며 영어 공부를 한다. 수업을 이끄는 강사는 물론 도봉동 이웃 주민이다. 모모책방에서는 번개모임이 잦다. 김은주 씨와 책방을 함께 운영하는 그의 동생이 문득 영화가 보고 싶어지면 모모책방 밴드나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소식을 올린다. 곧 관람을 희망하는 이웃들이 각자 간식을 챙겨 들고 삼삼오오 모여든다. 빔프로젝트를 내리고 책방이 어두워지면 모모책방은 영화관으로 변신한다. 흥미로운 마을공동체 사업에 응모하거나 새로운 활동을 기획할 때에도 주민들은 자연스레 모모책방을 찾는다. 문화 갈증 채우는 동네 책방 모모책방을 탄생시킨 김은주, 박유하 부부는 인생 후반부 계획을 세우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점프업5060 공고를 발견했다. 미래에 대한 여러 고민을 해결해줄 프로그램이라고 판단해 지원을 결정했다. 교육과정을 충실히 따라 수료할 때쯤에 맞춰 모모책방의 문을 열었으니 그야말로 모범생이었다. “책방을 사업 아이템으로 결정한 이유는 여러 가지예요. 제 오랜 꿈이 서점을 여는 것이었고, 마을 문화공간에 대한 높은 수요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도봉구의 문화공간 인프라는 창동에만 몰려 있어요. 도봉동 주민들이 집 주변에서 문화생활을 즐길 만한 곳이 없죠. 책방을 비롯한 문화공간에 대한 갈망이 클 수밖에 없어요.” 걸림돌은 단 하나, 공간이었다. 책방을 열 공간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던 때에 이웃의 한마디가 해결책이 됐다. ‘지금 살고 있는 주택의 지하층을 이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 일터와 삶터를 분리하지 않고도 마을 책방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묘수였다. 그렇게 모모책방은 2019년 12월 도봉동 주택단지 한가운데, 부부가 거주하는 주택 지하에 자리 잡았다.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지만 정작 마주한 건 코로나19 대유행이란 이름의 터널이었다. 부부는 넋 놓고 앉아 있는 대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섰다. 스마트 기기 조작이 서툴고,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집에 홀로 있어야 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돌봤다. 적은 인원이라도 모여 책방에서 비대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왔다. 부모를 대신해 숙제나 준비물, 가정통신문 같은 학급 전달 사항을 읽어줬다. 김은주 씨와 그의 동생은 심리학을 전공한 지식을 살려 ‘점심 도시락’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점심을 함께하며 종일 붙어 지내야 했던 엄마와 아이들의 마음 건강을 살폈다. 위기 속에서 탄생한 고향 김은주 씨는 힘든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모모책방이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감정적으로 위로가 필요한 날 불쑥 찾아갈 수 있고, 누구에게나 친구가 되어주는 문화공간. 그게 바로 김은주, 박유하 부부가 생각하는 모모책방의 지향점이다. 이는 사업을 구상할 때부터 막연하게 품고 있던 목표다. 어떻게 해야 실현할 수 있을지 막막하던 차에 되레 악재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나 할까. 책방에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책들이 가득하다. 모두 김은주 씨와 그의 동생이 전공을 살려 선정했다. 이외에도 필사나 컬러링 키트를 구비해뒀다. 흉흉한 세상에 쫓겨 책방으로 찾아든 사람들이 마음을 돌보게끔 하기 위해서다. 도봉동 주민들은 갑갑한 집을 벗어나 책방에서 글씨를 끄적이고 책을 뒤적이면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뛰어놀기 좋아할 나이에 집에만 있어야 했던 아이들에게는 더욱 답답한 시간이었을 터. 코로나19 시국에 유일한 놀이방이었던 책방은 아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줬다. “고향이란 단순히 과거에 살던 동네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공유하는 추억이나 문화가 있어야 충족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아이들에게는 고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책방을 만든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에게 고향을 돌려주자’였어요. 요즘 아이들은 태어난 동네, 살던 동네, 학교 다닐 때쯤 이사 간 동네가 다 다르잖아요. 이웃 간 왕래도 없죠. 개인적으로 그 점이 안쓰러웠는데, 책방에서 아이들이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모모책방과 마을 아이들은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됐다. 하교하던 길에 신발 끈이 풀어졌으니 묶어달라며 불쑥 책방을 찾고, 학교에서 그렸다는 동네 지도에는 모모책방이 ‘우리 동네 명소’로 표시돼 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책방에 찾아올 때, 책방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부부는 큰 보람을 느낀다. 모모책방의 사업 목표는 ‘적정 수준의 적자를 유지하기’다. 지금도 서적 판매로는 책방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익 모델만 운영하고 있다. 수익을 내는 데에만 급급하다 이웃들이 모모책방을 찾으려던 발걸음을 망설이게 될까 조심스럽기 때문. 책방의 공간을 활용해 유튜브를 시작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받았지만 역시 고개를 저었다. 하나의 영상을 기획하고 촬영한 뒤 편집하고 채널을 관리하는 동안 책방과 마을에 소홀해지기 싫어서다. 모모책방은 앞으로도 돈은 적게 벌더라도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선택해나갈 것이다. 큰길가 대신 주택가 안쪽에서, 누구든 들어올 수 있도록 언제나 문을 열어두고 있는 동네 책방. 모모책방은 아이들에게 고향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다.
- 2023-01-1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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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의 글판, 감성 캘리그래피로 도시 따뜻하게
-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 세대의 창업을 통한 도약을 지원하기 위해,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을 펼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 한 점프업5060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에 성공해 새 인생을 펼치고 있는 중장년들을 지면을 통해 소개합니다. 디지털 시대라지만 디지털이 아닌 것들이 남아 있었으면 했다. 캘리그래피 손글씨 카드를 만드는 이유다. 주변에서는 “요즘 누가 손편지를 쓰느냐”고 했지만, 6년째 캘리엠 카드를 찾는 이들은 줄지 않았다. 박서영 대표는 ‘진심’이 담긴 감성 디자인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믿는다. 오랫동안 캘리그래피 작가로 활동한 박서영 대표는 2016년 ‘캘리엠’을 창업했다. ‘캘리그래피 모놀로그’라는 이름으로 운영한 개인 블로그에서 이름을 따왔다. 박 대표는 캘리그래피 작가라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문구가 적힌 카드를 만들었다. “카드 사업이 들이는 품에 비해 수익은 크지 않아요. 재고 관리도 어렵고요. 처음 창업했을 때 주변에서 조금 하다 말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요즘 누가 종이를 쓰느냐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 디지털이 아닌 것들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카드 한 장으로 사람들이 소통하는 거잖아요. 읽고 버릴 순 있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는 진심을 읽는 거니까요. 그래서 취미생활처럼 묵묵히 꾸준히 했어요. 신기하게도 수요는 늘면 늘었지 줄지 않더라고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상황이 늘어나자 오히려 카드를 찾는 사람이 늘었다. 마음을 전하는 수단으로 디지털이 아닌 것들의 가치가 높아질 거라고 생각한 박 대표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물론 어떤 메시지를 카드로 전할까 매번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토끼해, 호랑이해처럼 시기에 맞는 문구를 매년 새로 만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버이날 문구다. ‘부모님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를 ‘우리 엄마여서 고마워요’, ‘우리 아빠여서 고마워요’로 나누었는데 정말 많은 인기를 끌었다. 여전히 캘리엠의 베스트셀러 카드이기도 하다. 공공디자인에 눈을 뜨다 박 대표는 2018년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 여름편 캘리그래피’ 작가로 선정돼 처음 공공 글판 작업을 했고, 이를 계기로 공공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저 도시에 문구 하나가 걸렸을 뿐인데 지나가던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그 글을 보러 일부러 누군가 찾아오기도 하고, 누군가는 위로를 받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시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고 느꼈다. “무언가를 고친 게 아니라 늘 지나가던 길에 문구 하나 더 있을 뿐이잖아요. 그런데 그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도시에 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더라고요. 오래됐다는 이유로 뭐든지 갈아엎는 건 재건축에 가깝겠죠? 제가 하고 싶은 도시재생은 오래된 것에 감성을 입혀서 활성화하는 일이에요. 약간은 손봐야 하겠지만, 사람이 모이도록 해서 그 지역 안에서 자부심을 갖고 뭔가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일이랄까요? 도시재생의 중심이 ‘사람’이 되는 거죠.” 공공디자인이 갖는 힘을 경험한 박 대표는 2019년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실시하는 ‘점프업5060’ 프로젝트에 신청했다. 항상 지나다니던 일산시장에 글판처럼 변화를 주고 싶었다. 간판에 가게 이름만 적는 게 아니라, 가게에서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메시지로 전달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순댓국 한 그릇으로 오늘 하루가 따뜻하기를’이라는 문구로 감성도 의미도 전달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간판 사업은 지자체, 협의체, 상인, 주민 등 다양한 사람의 의견이 하나로 모여야 했다. 또 도시계획이라는 프로젝트 안에서 움직여야 할 일이라 개인이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박 대표는 간판이 아니라 제품 패키징에 그 가치를 담아보기로 했다. 지역에서 소신을 가지고 일하는 가게의 상품에 브랜드 가치를 녹여 예쁜 패키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번에는 강원도 고성군의 로컬 상품들을 패키징하는 일을 했다. 앞으로도 로컬 상품에 담긴 이야기를 패키징으로 잘 풀어내는 것이 목표다. 감성 우체국 ‘엽서가게’ 박 대표가 생각하는 도시재생은 사람을 중심으로 지역에 활기를 불러오는 일이다. 예를 들면 동네 책방이지만 그곳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뜨개질도 하고 대화도 하는, 책을 판매하는 서점 역할뿐 아니라 사랑방 역할도 하는 것. 그래서 ‘점프업5060 재도약 과정’을 통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엽서가게’를 열었다. “감성 우체국이에요. 저희 캘리엠 문구 카드가 있고요. 지역 작가님들이 그린 그림으로 카드를 만들었어요. 지역에 판로가 없는 디자이너들의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어요. 동네에 그림 잘 그리시는 분이 오시면 저희가 엽서로 만들어드리고 판매 수수료를 드릴 수 있겠죠. 엽서가게에 오는 손님들은 이곳에서 엽서를 사서 편지를 쓸 수 있고요. 카드를 우체통에 넣으면 저희가 보내드리는 서비스를 하려고 해요. 또 해외 작가의 카드들도 가져와서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엽서들을 판매할 예정이에요.” 이제 막 문을 열었기에 어떻게 소문을 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무엇이라도 되리라 생각한다. 동네 책방과의 협업도 생각하고 있다. 도시재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통’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디딤돌 만들어 올라서기 점프업5060과 같은 정부 지원을 받으면 좋은 점은 디딤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 기초를 닦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더 좋은 점은 같은 프로그램에 지원한 대표들과 네트워크가 생긴다는 것. 도시재생이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며 소통이 중요한 만큼, 서로 다른 일을 하는 대표들과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무척 소중한 자산이 된다. “은퇴 이후의 삶은 무능력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현재 트렌드도 잘 못 따라갈 것 같죠. 어쩌면 그간의 경험이 현재 바뀌는 시류를 따라가는 데 별 도움이 안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마음으로 열정을 낼 수 있어요. 그럼 더 애착이 가요. 저는 은퇴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제 친구들에게도 늘 말해요. ‘그냥 창업해!’라고요.(웃음)” 박 대표는 2016년 캘리엠 창업, 2019년 주식회사 캘리엠 법인 전환, 2021년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등을 밟으며 성과를 냈다. 그 배경에는 정부 지원사업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초를 닦았다면 이제 스스로 디딤돌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원사업에 신청하고 선정되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지원을 받았으니 결과보고서를 내야 하잖아요. 그러면 어느 순간 숙제하듯 일을 하게 될 때가 있어요. 어느 정도 기초를 닦았다면, 지원사업을 벗어나 자신의 것을 해보는 용기를 꼭 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2022-12-0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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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귀촌의 형태, 관계인구를 만나 정착한 사람들
- 귀촌(歸村), 촌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오는 것. 보통은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지방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귀촌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역에 살지 않고도 귀촌한 것처럼 그 지역에 참여하는 새로운 인구가 나타났다. 지역과 마음이 이어지든,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누군가와 마음이 이어지든, 관계인구는 그렇게 지역의 무엇과 엮인다. 열렬한 응원이든, 묵묵한 응원이든 지역에 관심을 갖다가 물들듯이 자연스럽게 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그들은 또다시 지역의 느슨한 연결자가 된다. 1. 서동민 가가책방 대표 ‘언젠가 책방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채, 여느 직장인처럼 서울에서 책을 추천해주는 회사에 다니던 서동민 대표. 독서 모임으로 알고 지내던 권오상 대표가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는 소식에 공주에 내려왔다가 이곳에 책방을 열게 됐다. 6개월 동안 공주 이곳저곳을 돌아보다 2019년 6월 무인 책방 ‘가가책방’을 열었다. 동네 곳곳에 버려진 재료들을 모아 손수 책방을 꾸몄다. 젊은 청년이 무언가를 뚝딱거리자 옆집 무궁화회관 사장님은 ‘밥은 먹고 있느냐’며 식사를 챙겨주기도 했다. 동네 어르신들은 오며 가며 ‘동네 어디에 가면 물건이 있다’고 알려줬다. 알음알음 가가책방을 찾은 사람들은 ‘나만의 비밀 공간이 생긴 기분’이라며 ‘부디 오랫동안 운영해달라’고 편지를 남겼다. 책방을 운영하며 동네 가이드 일을 하던 서 대표는 2021년 2월 ‘마을스테이’의 안내소 역할을 하는 ‘가가상점’을 두 번째로 열었다. 그의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를 통해 공주와 연결된다. 2. 천재박·김현정 부부 천재박 대표는 ‘쌈지농부’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7년을 일했다. 아내 김현정 대표는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에서 브랜드 제품 기획 일을 오래 했다. 천 대표는 2018년 ‘농부가 우리 사회의 공유 자산’이라는 의미를 담은 ‘어프로젝트’라는 회사를 차렸고, 농업회사법인 ‘어콜렉티브 그레인’을 세워 우리나라의 장을 연구하는 일을 해왔다. 공주가 고향이었던 김 대표는 2018년 아버지 생신 잔치할 곳을 찾다가 봉황재를 우연히 알게 됐고, 원도심에서 하루를 묵었다. 오래된 역사를 담고 있는 원도심에 반해 2020년 봄, 집을 보지도 않고 매물로 나온 한옥집을 매입해 U턴했다. 이곳에서 부부는 우리 곡물이 가진 가능성을 탐구하는 카페 ‘곡물집’과 ‘곡물 연구소’를 운영한다. 한 편에는 ‘데시그램북스’라는 책방도 있다. 김 대표의 친구가 운영하는 문학 전문 서점이다. 두 사람은 곡물과 문학이 가진 느슨한 연결 지점을 가지고 ‘식경험디자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3. 김광호 마을건축가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건축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떠났던 김광호 마을건축가. 프랑스에서 18년 정도 살다가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삼성 계열사의 건축소장으로 일하던 때 ‘전국이 나의 현장이라면 꼭 서울에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공주, 부여 등 여러 도시를 둘러보았는데, 도시와 교통이 잘 연결되어 있으면서 1500년이 넘는 역사가 서린 공주가 살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0세로 접어들면서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며 살아도 짧다’며 삶의 방향을 정리했다. 공주에 살 곳을 알아보다가 100년 역사를 가진 노인회관을 매입했는데, 막상 집으로 사용하려니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 권오상 퍼즐랩 대표를 알게 됐고, 이들이 마을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듣게 됐다. 그들의 가치관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김 건축가는 노인회관을 10년 동안 무상 임대해주었다. 지역사회에 내려와 기반을 잡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편하려면 내 주위가 편해야 한다’는 프랑스 친구들의 말을 전하며, 지역사회가 잘되어야 나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ㆍ김광호 마을건축가 인터뷰 Q 귀촌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나? A 아파트는 제외했다. 그러니 신도시는 당연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긴 세월 동안 주거지로 검증된 지역을 찾았다. 몇십 세대에 걸쳐 사람이 늘 살던 곳들이다. 집은 오래됐겠지만, 고쳐 살면 되니까. 공주는 역사에 나온 것만 해도 천 년이 넘어가니 딱 좋았다. 공주에서 현재 사람이 더 많이 사는 곳은 북쪽 신도시인데, 과거 수도였던 웅진이라는 곳은 공산성을 끼고 있는 공주 원도심이다. 사실 전원의 조건을 다 갖춘 집이라면, 도심 한복판에서 도시의 편리함도 누리고 전원도 즐기는 게 가장 좋다. 심야에 슬리퍼 신고 편의점에 갈 수 있다는 게 도시의 좋은 점 아닌가.(웃음) 공주나 부여 규모의 지역이라면 전원의 맛도 있으면서 도시가 주는 혜택도 누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생활권이 수도권에도 있으니, 교통이 가장 편한 공주를 택했다. Q 귀촌을 한 이유가 궁금하다. A 건축은 문화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랑스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철저히 수도에 모든 게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 서울을 떠나면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집 앞에 미술관이 있는 곳에서 가질 수 있는 무형의 어떤 권리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내 나이 60이 되면서 삶의 방향을 정리한 게 있다. 앞으로 길어야 20년 아니겠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며 살아도 시간 짧겠더라. 아마 젊었으면 쉽게 서울을 떠나지는 못했겠지.(웃음) 나이가 들고 한 분야의 일을 오래 하면 모든 걸 쫓아다니지 않아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방향성도 많이 좁혀질 테고. 그렇다면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Q 지역에서 마을을 만들어가는 청년들에게 무상임대를 해주었다고 하던데.. A 내가 살 집을 찾다가 노인회관을 소개 받았다. 이 건물을 잘 고쳐봐야겠다 했는데, 막상 내가 원했던 집의 구조가 아니었다. 그런데 집이라는 게 쉽게 사고 팔고 하기가 어렵지 않나. 그러다가 퍼즐랩에 권오상 대표를 알게 됐는데, 이들이 원하는 공간으로 노인회관이 적합했다. 어차피 나는 쓰지 않을 공간이니 그들이 필요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나도 그 안에서 무언가 해보고자 했다. 지역사회에 내려와 기반을 잡고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의 좌충우돌하는 시간이 잘 적립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유럽은 복지 제도가 잘 되어있는데 열심히 일하고 떼어가는 세금을 보면 그들도 허탈해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내가 편하려면 내 주위가 편해야 한다."고 하더라.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가 편해야 나도 행복하다. Q 새로운 지역에 녹아드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먼저 귀촌한 사람으로서 팁을 준다면? A 조급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이가 들어 새로운 것에 적응하려다 보면 마음이 급해진다. 우린 시간이 없지 않나.(웃음) 건축과 비슷하다. 특히 지방에 정착해 활동할 때는 거기에 맞는 정도의 건축, '적정 건축'이라고 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설계다. 한정된 예산으로 어디까지 고치고 어떻게 손을 대야 할까 고민하는 거다. 너무 지나치게 다가가고 가까워지는 것 보다, 어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 2022-08-0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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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에서 한달살기 꿈꾼다면 이곳을 ‘주목’
- 큰맘 먹고 시작한 한달살기. 정해진 시간에 정신없이 유명한 장소를 훑는 관광이 아닌, 느리고 여유로운 휴식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늘 부지런히 살아온 이들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하루를 빈둥빈둥 보내는 게 영 익숙하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제주 생활이 즐겁고 만족스러울까? 급할 건 없다. 우리에게는 30일이라는 시간이 있으니까! 한달살기는 단순한 여행과는 차이가 있다. 보통 한달살기를 앞둔 사람들은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한 달 동안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기를 원한다. 동네 산책을 하다 말을 트게 된 아주머니에게 사는 이야기를 듣거나, 비를 피하려 우연히 들어간 작은 카페에서 메뉴에 없는 음료를 대접받는 등의 상황 말이다. 그러나 막상 제주 땅에 발을 딛고 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육지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 할 수 없는 일을 깨알같이 모두 즐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을 참고해 각종 정보를 샅샅이 뒤지게 되고, 고민과 갈등의 연속에 하루하루가 숙제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이상과는 다른 제주살이에 문득 조바심이 날 수도 있다. 한달살기가 아니라 그저 한 달간의 패키지 여행이 되는 셈이다. 한달살기에 대한 보상 심리를 바라기보다, ‘여행 테마’를 설정하고 제주를 누려보는 건 어떨까. 마음의 자유 선물하는 ‘책방 투어’ 전자기기와 영상매체가 발달한 후로는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도 버거운 사람들이 늘었다. 독서율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달살기를 명목으로 멀리했던 책을 다시 가까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제주에는 소규모 독립 서점, 독특한 색깔을 가진 서점이 많다. 제주만의 지역 감성과 책방지기의 취향이 버무려져 남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책방 특유의 기분 좋은 종이 냄새와 책장 넘기는 소리가 주는 아늑함은 덤이다. 바라나시 책골목_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횟집 거리 사이, 빈티지한 간판이 눈에 띈다. 내부로 들어서면 이국적인 향이 후각을 자극하고, 인도 서적과 세계문학 및 인문학 책이 즐비하다. 이곳은 제주 속 인도, ‘바라나시 책골목’이다. 바라나시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있는 도시다. 갠지스강 중류에 있는 바라나강과 아시강을 합쳐 붙인 지명으로, ‘신성한 물을 차지한다’는 뜻이 있다. 생애 한 번은 가봐야 할 도시로 꼽히며, 일부 여행객은 인도 여행의 필수 코스로 소개하기도 한다. 제주 바라나시 책골목은 한국에서 인도의 정취를 느끼기 충분한 장소다. 책방과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어 인도식 밀크티인 ‘차이’나 요구르트 ‘라씨’도 맛볼 수 있다. 만춘서점_야자수를 배경으로 한 아담한 흰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삼각형 구조의 내부로 매력을 더했다.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책들과 LP, 제주의 감성이 흐르는 소품이 가득하다. ‘만춘서점’ 책방지기는 출판·디자인 업계에서 일하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했다. 그래서인지 육지 사람이 그리는 제주의 장면을 더욱 잘 옮겨놓은 듯하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 1인용 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마당에 놓인 의자에 앉아 쉬어 가기도 좋다. 소심한 책방_오름 다섯 개가 감싸고 있어 유독 고요한 제주의 동쪽 끝 마을, 종달리다. 좁은 골목 안쪽, 돌담 너머에 ‘소심한 책방’이 있다. 이곳은 각각 제주와 서울에 사는 두 사람이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모아 만든 공간이다. 소설, 에세이, 여행 등 단행본부터 독립 출판물, 제주 특산품, 문구까지 다채롭게 구비했다. 낮에는 햇살이 가득 들어와 책방에 온도를 더해주고, 밤에는 노란 불빛이 다정하게 채워진다. 때로 소소한 전시나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주변에 들를 곳이 많은 관광 지역이 아닌데도 굳이 찾아가게 되는 이유는 하나만 꼽기 어렵다. 책약방_‘책약방’은 초록 잎과 나무, 낮고 작은 집 사이에 위치한 아주 작은 그림책 전문 서점이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무인으로 운영된다. 사람 대신 책이 지키고, 마을이 지킨다는 독특한 콘셉트를 갖고 있다. 현관 옆에 걸린 작은 의자 위에는 운영자가 추천하는 ‘오늘의 그림책’이 놓여 있다. 비치된 그림 일기장과 100자짜리 작은 원고지에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다. 릴레이처럼 이어진 글들을 읽다 보면, 책약방의 진짜 ‘약’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된다. 걸어서 제주 한 바퀴 올레길은 제주도의 마을길, 해안도로, 숲속 오솔길 등 걷기 좋은 길들을 선정해 개발한 코스다. 2007년 9월 8일 제1코스(시흥초등학교~광치기해변, 총 15km)가 개발된 이래, 2012년 11월 제주해녀박물관~종달바당을 잇는 21코스가 개장하면서 올레길 코스는 제주도를 한 바퀴 빙 두르게 됐다. 현재는 제주도 내에 총 23개 코스가 있으며 우도, 가파도, 최근 확장된 추자도 코스를 포함하면 총 27개다. 각 코스는 길이가 대체로 15km이내이며, 평균 소요 시간은 5~6시간 정도다. 제주도 올레길을 한 코스씩 돌다 보면 도내의 모든 코스를 돌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나 대중교통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코스도 있어 차를 갖고 있지 않다면 동선과 숙소 계획을 맞춰 짜야 한다. 식사도 매번 사 먹을 수 없으니 간단하게 준비한다. 또한 올레길은 리본을 매달아 길을 안내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으로 혼자 간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통상 날이 저무는 시간인 오후 6시 이후로는 드문드문 표시한 리본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길을 잃기 쉽다. 이런 사소한 단점을 보강한 ‘알파캠프’는 트레킹과 관련해 가이드, 교통, 식사, 숙소, 세탁 서비스 등을 모두 제공한다. 더불어 관광객이 한 달 동안 제주의 모든 올레길과 새로 생긴 하영올레길까지 안전하게 완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신의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토끼반과 거북이반 중 하나를 골라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체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보통 중장년층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68세 이선이 씨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려 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그 대신 올레길을 걸어볼 생각으로 알파캠프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올레길 코스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고, 숙소 예약도 번거로워 고민하던 차였다. 이 씨는 “차로 여행할 때는 그냥 지나치던 것들을 가까이 보며 자연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리고 길을 걷다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 “제주는 그저 우리나라의 섬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정겨운 기분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알파캠프에는 제주 올레길 코스를 완주하는 ‘제주올레캠프’ 프로그램 외에도 오름이나 한라산, 4대 휴양림, 숲길 등을 다양하게 걷는 ‘제주여행캠프’, 다이어트 식단을 제공하는 ‘다이어트 캠프’, 오름 전문 캠프인 ‘제주계절캠프’ 등이 있다. 의미 있게, 친환경 한달살기 ‘제주도’ 하면 많은 이들이 청정 자연을 떠올린다. 그러나 막상 해변에는 폐그물, 밧줄, 스티로폼, 플라스틱, 페트병, 장대 등 폐어구와 나무토막이 가득하다. 게다가 언제 번식했는지 모를 파래가 수면에 떠 있거나 바위나 모래사장에 널려 있어 볼썽사납다. 제주도는 수용력을 넘어서는 관광객의 유입으로 환경이 위협받고 있다. 실제로 도는 1인당 폐기물 발생량을 전국 평균의 2배 이상, 관광객이 버리는 생활폐기물은 전체 발생량 가운데 4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일부 관광객은 제주를 지키기 위해 ‘쓰레기 없는 제주’를 여행 혹은 한달살기 테마로 설정한다. 제주에 있는 동안 최대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플로깅을 하는 식이다. 플로깅은 간단한 산책이나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운동으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 혼자서 가고 싶은 장소를 지정해 환경 정화를 하거나, 제주 내 여러 봉사단체에서 진행하는 캠페인과 이벤트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다. 나에게 맞는 여행 테마는? 후회 없을 제주도 한달살기를 위해서는 장소 위주로 계획을 짜기보다 나만의 큰 주제나 목표를 정하는 게 좋다. 우선 ‘왜 제주도에 가려고 하는지’를 고민해보자. 1 건강하게 한달살기 ‘하루 한 군데 오름 오르기’, ‘서핑·승마·스쿠버다이빙 등 레포츠 한 종목 배우기’, ‘한 달간 인스턴트식품 끊기’ 등으로 몸을 상쾌하게 만들 수 있다. 2 휴식하며 한달살기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다면 ‘매일 한 시간씩 바닷가에서 멍때리기’, ‘동네 반경 5km 안에서 생활해보기’, ‘7시간 이상 수면하기’ 등의 방법을 통해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다. 3 습관 개선 한달살기 한 달 동안 ‘전자기기 없이 살기’, ‘부정적인 말 하지 않기’,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기’ 등을 시도해 나를 괴롭히는 습관을 개선해보는 건 어떨까. 1 바라나시 책골목 2 만춘서점 3 소심한 책방 4 책약방
- 2022-07-2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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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는 바쁘니까 인간이 알아서 할게
- 변화무쌍한 일상은 아니다. ‘이동식 급식소’ 관리하던 시절에야 차에 사료 한가득 챙겨 몇 시간씩 순회를 돌았다. 운영을 그만둔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 집 앞 식당에 빈 밥그릇 채워놓고, 피크타임 비껴갈 즈음 손님들 노는 모습을 뷰파인더에 담으면 그만이다. 미리 보정해둔 사진과 재치 있는 문구를 곁들여 SNS에 올려두고, 사진 정리를 하거나 원고 작업을 한다. 이용한 작가의 일상에 ‘대단한 변화는 없다’고 할 수 있겠다. 변화무쌍한 고양이를 제외한다면. 장소 협조 고양이책방 ‘책보냥’ 이용한 작가는 16년 차 ‘캣대디’(고양이와 아빠의 합성어로,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이자 명실상부한 고양이 작가다. 2009년에 낸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를 시작으로 ‘명랑하라 고양이’, ‘나쁜 고양이는 없다’ 시리즈와 지난해 출간한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까지 총 11권의 고양이 책을 냈다. ‘나쁜 고양이는 없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영화 ‘고양이 춤’의 제작과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으며, ‘사라져가는 오지 마을들을 찾아서’, ‘물고기 여인숙’, ‘사라져가는 풍경들’ 등 문화기행서를 내고 있다. 세 번째 고양이 책의 성공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는 국내 세 번째 고양이 책이다. 사진부터 글 내용까지 전부 고양이로 가득한 ‘고양이 책’은 당시 출판 시장에 거의 전무했다. 이제는 해외 번역본까지 포함해 한 해에만 고양이 책이 몇 백 권씩 쏟아지지만, 2009년 한국에 등장한 이용한 작가의 고양이 책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여태껏 낸 고양이 책에 고양이 다이어리, 고양이 일력 등을 합하면 이 작가가 책 형태로 엮어낸 고양이 이야기만 헤아려도 셀 수 없다. 특별히 아끼는 책을 꼽기도 힘들다. 다만 첫 고양이 책인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와 신간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조금 더 많다. “책을 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국내에서 출판된 세 번째 고양이 책이자, 최초의 성공 사례라고나 할까요. 고양이 책만 열 권 넘게 냈지만 아직도 첫 번째 책 판매 부수를 넘어선 책이 없어요. 책보다는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으로 고양이 동영상을 보는 시대가 됐잖아요. 지금은 워낙 고양이 책이 많아지기도 했고요. 앞으로도 실물 책을 낼 생각이지만,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도 100% 공존은 없다, 그러나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는 출간되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책이다. ‘고양이 식당’ 운영 경력 16년 차, 그를 거쳐간 수많은 고양이 손님들의 이야기를 꾹꾹 모아 담았기 때문이다. 현재 운영하지 않는 이동식 급식소는 제외하고, 1호점 고양이 식당인 ‘구름이네 고양이 식당’, 꾸준히 사료 후원을 해오고 있는 2~3호점 단골손님들이 주인공이다. 책에는 그의 ‘반쯤’ 마당 고양이 ‘아쿠’와 ‘아톰’이 등장한다. 이 작가의 집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세 살배기 두 형제는 최근 그와 함께 거처를 옮겼다. 지난한 원고 작업 중에도 세 살배기 고양이와의 첫 만남부터 함께 살게 되기까지 있었던 일을 정리할 때는 행복했단다. 다 커버린 아이들의 어릴 적을 추억하는, 영락없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반면 쓰기 힘들었던 부분도 있다. 고양이 식당 2호점 ‘목련식당’의 할머니 이야기다. 만취한 채 ‘고양이를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윽박지르는 경찰, 고양이 키우지 말라고 협박하는 마을 이장. 늘그막에 길고양이를 돌보며 삶의 낙을 얻곤 했지만 이웃 등쌀에 못 이겨 결국 할머니와 목련식당은 산속 깊숙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요즘도 사료 후원 겸 사진 촬영 겸 주기적으로 2호점을 찾고 있지만, 쫓겨나듯 이사하던 당시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다. “시골에서 고양이 밥 주며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굉장히 낭만적이라고 말해요. 현실을 모르니 할 수 있는 말이죠. 시골에서 고양이는 상추보다 못한 생명 취급을 받아요. 밭을 파놓고 농작물을 건드린다고 욕하고, 집 앞마당에 철마다 쥐약을 놓죠. 고양이 식당에 찾아오던 고양이들이 어느 때부턴가 자꾸 다치고 죽는 일이 있었어요. ‘나 때문에 고양이들이 피해를 입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에 괴로워하다가 2~3년 정도 밥 주는 일을 멈춘 적도 있었죠.” 해마다 이웃집 마당에 놓이는 쥐약을 보고도 모른 체해야 한다. 어제까지도 고양이 식당을 찾아오던 단골손님이 차갑게 굳어 쓰러진 모습을 마주하는 일도 종종 겪어야 한다. 시골 캣대디 생활은 그런 식이다. 개보다 고양이를 고깝게 여기는 분위기가 만연한 데다, 시골에서 발생하는 고양이 학대는 도시와는 달리 주목조차 받지 못한 채 묻혀버린다. 고양이를 모함하는 이웃들에게 맞서보기도 했지만 ‘위아래도 없는 천하의 몹쓸 놈’ 소리만 들었단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밭을 망치는 고양이가 늘어난다. 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헤집어 길거리를 더럽힌다. 고양이에 대한 단단한 오해를 풀 의향이 없어 보이는 이웃들을 포기하고 도망가는 대신 그는 회유책을 택했다. 뇌물에 가까운 선물을 가져다주며 대화를 시도하는 것.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고양이를 득달같이 쫓아내던 할머니네 텃밭에는 어느덧 촘촘한 그물이 쳐졌다. 언제 누가 낳은 것인지도 모르는 집 앞 도랑의 꾸물거리는 새끼 고양이 여섯 마리를 챙겨도 된다는 암묵적인 허락도 받아냈다. ‘고양이에 미친 놈’ 취급받은 지 6년 만에 찾아온 변화였다. 고양이 친화적이라 ‘고양이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터키나 모로코에도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제 것을 나누며 공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방해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다를 뿐. 길고양이 학대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요즘이지만, 그는 하던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그게 길고양이와 사람이 공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고양이 아빠 노릇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수많은 작은 곳의 수많은 작은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수많은 작은 일들을 하고 있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어요. 수많은 캣맘과 캣대디, 애묘인들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는 동네 고양이를 포획해 TNR(길고양이 중성화) 사업 지정 병원에 데려다놓고, 누군가는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SNS에 올려서 고양이의 귀여움을 널리 알리고, 또 누군가는 감명받은 고양이 게시물을 주변에 공유하는 거죠. 이 모든 일이 계속되다 보면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고양이와의 공존도 자연스럽게 가능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 믿음의 기저에는 그 스스로가 인식의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경험이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열렬한 고양이 예찬론자지만, 고양이라는 존재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의 그는 고양이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좋아하지도 않았다. 옥외 식당에서 식사할 때 발치를 맴돌던 길고양이를 쫓아낸 적도 있다. 고양이가 싫어서가 아니라 몰라서 그랬을 뿐이다. 그러나 2007년의 늦가을 어느 저녁, 아내 덕분에 발견한 고양이 일가족에 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고 말았다. 버려진 소파 위에 누운 어미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 다섯 마리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은 강렬한 충격 그 자체였다. ‘머릿속에서 고장 난 필름처럼 무한 반복되던’ 장면을 곱씹던 그는 먹다 남은 음식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일 년 후에는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이사를 감행했다. 집 마당에 고양이 식당을 차리기 위해. 고양이 작가로 활동한 지 10년이 훌쩍 넘어가니 새삼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 그는 털어놓았다. ‘초등학생 때 작가님의 책을 처음 접했는데 벌써 어른이 되었다’는 독자들의 메시지를 받을 때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진을 통해 대단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첫 번째 책 서문에 썼듯, ‘고양이에게 신뢰받지 않고는 신뢰할 만한 고양이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길고양이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나누면 세상은 더 귀여워진다 운이 좋으면 카메라를 들이대자마자 재밌는 장면을 포착하지만, 대부분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래도 사람처럼 턱을 쓸어내리는 듯한 재밌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에는 ‘포토샵으로 조작한 것이 아니라 진짜 고양이가 맞느냐’며 열광적인 반응이 쏟아진다. 그중에서도 유독 반응이 좋은 사진들이 있다. 예를 들면 눈이 내려 소복이 쌓인 길 위에서 총각무를 먹는 고양이 가족의 사진이 그렇다. “12년 전 한겨울 오후였어요. 어미 턱시도 고양이(등이 검고 가슴이 흰 고양이)와 새끼 두 마리가 배가 고팠는지 누군가 먹다 버린 총각무를 나눠 먹고 있더라고요. 무도 작은 데다 그마저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새끼들은 어미를 밀어내고 그걸 다투듯 나눠 먹는 모습이 어찌나 짠하고 안쓰러웠는지 몰라요. 사진만 빠르게 촬영하고 차에 남은 사료를 챙겨줬죠.” 촬영할 때 느끼는 감정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들기 때문일까. ‘작가님 덕분에 캣맘, 캣대디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뒤숭숭한 소식도 자주 들려오지만, 16년 전보다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훨씬 유해졌음을 몸소 느끼는 요즘이다. 가장 많이 변화한 지역은 제주도다. 과거에는 어업 종사 인구가 많은 섬 특성상 ‘고양이가 생선을 훔쳐간다’는 이유로 인식이 좋지 못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가게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최근 여행차 방문한 제주도는 예전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최근에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웬만한 카페나 식당 앞에는 고양이 밥그릇 물그릇이 있고, 고양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우호적으로 바뀌었더라고요. 특히 제주도 남쪽에 있는 가파도는 섬 곳곳에 고양이 급식소를 지어두고 사료를 챙겨주고 있었어요. 일본의 고양이섬을 연상케 할 정도였는데, 작기는 해도 섬 하나가 통째로 바뀐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그는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모로코의 공원에서는 보잘것없는 빵이나마 고양이와 나누는 걸인의 모습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누군가는 사람 먹는 음식을 고양이에게 준다며 눈살을 찌푸리지만, 그가 생각하는 가치는 제 것을 나눈다는 데에 있다. 어려운 시절에도 된장국에 남은 밥을 말아 길고양이들에게 내주던 어머니를 보고 자란 이용한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그들보다 더 많이 가졌으니 우리가 가진 걸 고양이에게 조금만 나눠줘도 이 세상은 훨씬 아름답고 귀여워질 것”이라고.
- 2022-06-2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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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는 서울광장’ 한 달 만에 방문객 2만 명 돌파
- ‘책 읽는 서울광장’의 방문객 수가 개방 한 달 만에 2만 명을 돌파했다. ‘책 읽는 서울광장’은 시청 앞 서울광장에 조성된 개방형 도서관이다. 서울도서관이나 광장 내 이동형 서가에 비치된 책을 빌려서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방문객 수는 개장 첫 금요일인 4월 29일 1127명에서 이달 14일 토요일 3200명으로 약 2.8배 증가했다. 책 읽는 서울광장이 운영되는 매주 금요일, 토요일 광장 동쪽과 서쪽에서는 거리공연과 동화구연, 북 토크 등의 문화예술 행사가 함께 진행된다. 특히 거리공연 ‘구석구석 라이브’는 클래식, 성악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를 마련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광장을 찾은 시민들은 신진 미술인의 작품을 관람할 수도 있다. 광장에 전시되는 30~40점의 작품은 서울시가 지난 2020년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예술인을 지원하기 위해 구매한 것들이다. 시는 작품 옆에 QR코드를 새겨 넣어 시민들이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지난 한 달간 책 읽는 서울광장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서울시민들의 빛나는 시민의식이었다”며 “운영 동안 총 3000권의 도서 중 단 1%만이 분실됐다”고 말했다. 이어 “매트, 휴대전화 충전기 등 무상으로 대여하는 비품들이 전부 회수됐고, 행사가 끝난 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가져갔다”며 “시민들이 행사 종료 후 각자 사용했던 빈백, 도서를 스스로 정리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쾌적한 독서 문화 환경을 빛냈다”고 덧붙였다. 6월부터 책 읽는 서울광장에서는 ▲조각 작품 전시 ▲‘서울 문학 광장’ 행사 ▲우리 동네 지역 책방이 참여하는 ‘움직이는 책방’ 프로그램이 추가로 운영된다. 책 읽는 서울광장은 10월 29일까지 매주 금·토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된다. 7~8월은 무더위와 장마를 피해 잠시 쉬었다가 9월에 다시 광장에서 시민들을 만난다.
- 2022-05-2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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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촌해 시골서 서점 운영, "생각보다 잘나가"
- 한결 가치 있는 생활에 대한 열망이 그의 귀촌을 부추겼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이, 인생을 한번 획기적으로 바꿔보자는 욕심으로 부푼 건 아니었다. ‘느림의 미학’ 같은 걸 추구하며 목가적인 전원생활을 즐기자는 쪽에 무게를 두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귀촌을 통해 가급적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똑떨어지게 개인적인 용무를 보고 싶었다. 그 용무란 서점 일이었다. 시골에서 서점을? 지지구재재구 노래하는 새들이야 지천이지만 돌아다니는 사람이라야 마을 원주민 몇몇에 불과한 후미진 산골에서? 이건 무인도에서 혼자 ‘전국노래자랑’을 공연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기획일 수 있다. 거북이를 끌고 산책하는 일처럼 요상한 이벤트이기도. 소비자들의 호응이 있고서야 생존이 가능한 게 서점 사업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김미자(59, ‘그림책 꽃밭’ 사장)에겐 남다른 속대중이 있었다. 믿는 구석이 다 있었던 거다. 그 믿음이란 오직 자신의 경험과 능력에 대한 확신에서 온 것이었다. 인생의 모든 것을 가늠하는 내공까지는 아닐망정, 적어도 서점에 관한 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으니 한바탕 제대로 붙어볼만한 게임으로 여겼던 것 같다. 미리 말하자면 그의 산골 서점은 놀랍게도 탕탕 잘나간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아동 그림책 관련 직업 활동을 했었다. 공공도서관과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일을 했으니까. 그림책 커뮤니티를 만들어 동네 엄마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지속했으며, 그림책 카페를 7년간 운영한 경험도 있다. 머릿속에는 항상 시골 생각이 들어 있었다. 번잡한 서울을 벗어나 그림책과 시골살이를 아우를 수 있는 삶을 늘 꿈꾸었던 것이지.” 김미자가 남편과 함께 이 시골로 내려온 건 2017년. 아파트를 정리하고 남편의 퇴직금을 털어 자금을 마련하고서였다. 흔히들 귀촌지를 결정하느라 진을 뺀다. 첫 단추부터 똘똘하게 끼우기 위해 해부학 교실의 연구원처럼 면밀히 분석하고 평가해 장소를 결정한다. 그러나 그는 지루한 물색의 과정을 싹둑 잘라냈다. 숲이 있는 시골이면 어디든 무슨 상관이랴, 그리 여겼다. 경륜과 자신감을 완비했으니 어디에 갖다놓아도 승산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봤다. 리서치를 통해 몇 군데 시골 서점의 순항 분위기를 미리 눈치채기도 했다. 그는 지인이 소개한 경매 토지를 덜커덕 사들여 집을 지었다. 서점과 살림채, 그리고 북스테이 공간을 마련해 영업을 개시한 게 만 3년 전. “처음 한동안은 손님이 오지 않았다. 날마다 매상과 마진을 계산하며 고민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덩달아 매출이 늘더라. 수익의 절반은 책 판매에서, 나머지 절반은 북스테이에서 발생한다. 이젠 단 한 사람의 손님도 없는 날은 없다. 덕분에 부부 둘이 먹고사는 데엔 아무런 불편이 없지. 이쯤이면 노후 생계 대책으로 충분하기에 안도감과 만족을 느낀다.” 단기간에 자리 잡다니. 이 서점은 어떤 힘과 매력을 지녔기에? “가급적 질적 수준을 높게! 풍경은 예쁘게! 그런 모토를 정하고 충실하게 구현한 결과물이다. 예전에 일본의 숲속 도서관들을 답사한 적이 있는데 감흥이 컸다. 모델로 삼을 만했지. 아무리 외진 시골이라도 구색과 내용이 충실하면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걸 확인했던 셈이다.” 도시에도 특별히 공들인 서점들이 있지만 흔히 불황을 면제받지 못하고 있다. 이곳의 자연경관이 유력한 재료라 봐야 할까? “아동 그림책에 주로 등장하는 내용이 자연과 생명에 관한 것이다. 시골 서점은 그 자연과 생명에 관한 아이들의 감수성을 일깨울 수 있는 환경 여건으로 한몫을 할 수 있다. 나는 그림책에 나오는 자연을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자연과 함께 펄펄 뛰노는 아이들과 얘기하고 싶었다.” 숙박을 하거나 책을 구입하는 고객층은 어떤 이들인가? “주 고객은 30~40대 부모와 아이들이다. 그림책 관련 각종 자격증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학습 차원에서 찾아오고, 시골 서점을 운영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방문한다. 물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선생님 손에 이끌려 찾아오는 당진시 일대의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 아동들이다.” 산골에서 소박하게 살기 다락을 구비한 책방 공간은 동화처럼 아기자기하되 품격을 돋워 꾸몄다. 아이들의 구미에 어울리게. 엄마들의 호감을 살 수 있게. 그림책 일색의 도서들은 모두 5000여 권. 서울에서 가지고 내려온 2000여 권과 새로 구입한 3000여 권을 합쳐 공간을 채웠다. 그림책을 좋아하던가? 게임에 사로잡힌 영혼들이 아닌가? “아동들은 순식간에 알아차린다. 엄마가 왜 나를 책방에 데려왔나를. 그러고서 하는 말이 이렇다. 나, 책 안 봐! 오나가나 아이들은 휴대폰 게임에 몰입하는 거다.” 그럴 때면 어떤 처방을 사용하지? “책이 싫으면 고양이하고 놀아! 마당에 나가 뛰어놀아! 그렇게 말해준다. 그러나 나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다.” 엄마들은 책이 싫다는 아이들을 왜 굳이 이곳에 데려올까? 책을 강요하면 자칫 책을 더 징그럽게 여길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든 책을 접하게 하려는 선한 의도에 무슨 결함이 있겠나? 그러나 엄마들의 방법엔 문제가 있다. 책을 학습이나 훈육의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나는 늘 한다. 연령에 맞는 책을 놀이로 즐길 수 있도록 나직이 읽어주라고 권한다. 아이들에겐 가르침보다 위로가 필요하니까.” 마을 풍경을 볼까? 딱히 빼어나거나 미묘한 설렘을 자아내는 풍치는 아니다. 변방의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농촌 마을이다. 야트막한 야산들이 강강술래를 하듯이 10여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을 빙빙 감싸고돌아 푸근하다. 김미자는 이 평온한 풍경에 안심을 느끼는 것 같다. 쉽게 오를 수 있는 산과 숲이 있으니 불만이 있을 때면 애먼 남편에게 툴툴거리기보다 나무에게 하소연하는 것으로 해소하겠지. 그에겐 자연과 사계의 순환에 심취하는 버릇이 있다. 이는 자연과 동행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사실 김미자의 귀촌은 자연에 가까이 가자는 목적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산골에서 소박하게 살기. 그게 자신을 기쁘게 한다는 걸 깨달았던 모양이다. 자연이 좋다지만 날마다 산을 바라보다 보면 권태감이 밀려들기 십상이다. 거칠지만 생동하는 도시의 풍속도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하긴 어렵다. “권태를 느낄 겨를 없이 분주한 게 시골 생활이다. 하지만 문화적 충격과 자극이 하나도 없다는 건 큰 단점이지. 서울에서 벌어지는 공연이나 전시를 볼 수 없다는 건 너무도 아쉽다. 주변에 예술가라도 하나 산다면 해갈이 될 테지만.” 마을 원주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나? 시골에도 지혜로운 이들이 있기 마련인데. “시골 할머니들의 평온하고 깨끗한 삶의 태도에 느끼는 게 많다. 대체로 할머니들은 인간관계에서보다 땅에서 얻은 경험으로 인생을 사는 것 같더라. 그들은 아무리 노쇠했더라도 호미를 놓지 않는다. 죽기 직전까지 호미로 땅을 긁는다.” 도시의 노인들에게선 보기 어려운 야생의 에너지. 시골 노인들에겐 그런 육화된 근성이 있다. “맞다. 처신에 깨끗하고 이치에 밝은 할머니들과 사귈 수 있다는 건 시골 생활이 주는 값진 행복의 하나다.” 먹고살 정도만 벌고, 삶은 놀이로 시골이라고 눈 밝고 경우에 환한 이들이 흔할 리 없다. 도시든 시골이든 ‘삐딱이’ 그룹이 있어 활약을 하는 게 아닌가. 김미자도 초기 한동안 유별난 이웃에게 좀 시달렸지만 적절히 타협하며 사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으로 포용했다. 보다 덜 소중한 것에 보다 더 소중한 걸 훼손하고 싶진 않았던 것일 텐데, 그에게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소박한 삶의 지속이다. 물구나무 선 세상을 뒤집을 힘이야 없지만, 최소한 자신만큼은 악다구니와 돈과 허영에서 벗어나 살고 싶은 것이다. 귀촌으로 그게 가능할 거라는 예상은 딱 적중하진 않았다. 그러나 거둔 성과와 만족의 크기는 만만치 않다. “내가 살고 싶은 방향이 뭐냐면, 월든 숲에 살았던 소로, 그리고 헨리 니어링 부부나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을 닮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 안 되더라. 우선은 돈벌이를 하는 내가 돈에서 해방되기 어려웠다. 더 큰 문제는 도시 생활과 자본에 길들여진 남편과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귀촌으로 부부가 함께 도시에서 한 걸음 물러난 것만도 어디인가? “나는 오늘도 들에서 냉이를 캐왔다. 시골에 살며 산나물 채취로 식사를 한다는 것, 육식을 덜 하고, 덜 소비하고, 덜 욕심부린다는 것, 이건 뿌듯한 일이다.” 한때 암과 싸웠다지? 고통이 극심할 때면 어떤 생각을 하나? “암! 무서웠다. 자주 권정생 선생을 생각하며 힘을 얻었다. 지극히 병약했지만 엄격한 절제로 삶을 완성한 선생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나 자신을 속이지 않을 수 있는 성찰의 습관도 그에게서 얻어왔다.” 심지어 가뭄에 타들어가는 벼를 바라보면서도 가여워 눈물을 흘렸던 권정생. 그는 성자가 아니었을까. “평생 병고에 시달렸지만 강하고 꼿꼿한 분이었다. 한번은 외투를 사다드렸더니 고사하더라. 이미 있는 외투 하나로 충분하다며. 스콧 니어링도 소유에 무심해 옷 한 벌로 살았다. 그러니 어떻게 배우지 않을 수 있을까.” 터무니없는 무욕으로 살았던 고수들을 무슨 수로 따를까.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게 인간이다. 당신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나? “돈은 먹고살 정도만 벌고, 삶을 놀이로 즐기는 게 답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나의 현실은 다르다. 일에 치여 산다. 속엔 답답한 게 많지만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겉으로는 웃는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체적으로 하고 있다는 자긍심은 갖고 산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에 나를 맞춰 살고 있으니 크게 어긋난 건 아니다.” 인생을 깊이 읽고 있다는 안도감. ‘나’를 진정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속에 산다는 확신. 귀촌의 나날을 선용하고 있다는 자부심. 속세에서 흔히 맛보기 어려운 감흥들로 김미자는 기쁜 것이다. 표정은 근엄하지만, 내부는 햇살로 밝아 바야흐로 인생의 봄날을 다시 만난 셈? 김미자 씨가 주는 귀농 Tip 시골에서 작은 서점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지만 함부로 덤벼들 일은 아니다. 책을 좋아하는 성향 하나만 믿고 뛰어드는 건 위험하다. 좋은 책을 고르는 능력, 인문학적 소양과 실력, 그리고 예술적 눈썰미를 미리 갖추는 게 중요하다.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서기 전에 까먹어도 무방할 정도의 소자본으로 도시에 작은 북카페를 차려 경험을 쌓는 게 좋겠다. 장소 선정도 매우 중요하다. 가급적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을 찾자. 사람들이 많은 관광지나 명소 인근도 잘만 하면 유망하다.
- 2022-04-0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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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지트에서 책 한잔", 중장년도 편안한 '술책방' 아시나요?
- “나의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에서, 나의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디타에서.(My Mojito in La Bodeg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 - 어니스트 헤밍웨이 미국의 대문호 헤밍웨이는 쿠바 체류시절 두 가지 칵테일을 즐겨 마셨는데, 그 술이 ‘모히토’와 ‘다이키리’다. 헤밍웨이는 매일 아침 ‘라 보데기타’에서 모히토를 마시며 아침을 시작하고, ‘엘 플로리디타’에서 한 번에 열 잔 넘게 다이키리를 마셨을 정도로 두 술을 사랑했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저서에서 선보인 뛰어난 영감이 술에서 비롯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있는 라 보데기타와 엘 플로리디타에 가면 헤밍웨이의 흔적을 좇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만큼 헤밍웨이와 책을 사랑하는, 그리고 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가 아닐까. 집중과 사색이 필요한 독서에 몸의 긴장을 푸는 술이라니, 언뜻 책과 술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팬뿐 아니라 한국에도 술과 책을 동시에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시작은 2013년 상암동에 생긴 ‘북바이북’이다. 북바이북은 책과 맥주를 합한 ‘책맥’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곳이다. 칵테일과 커피를 파는 ‘부장고’, 요리책 전문 책방 ‘쿡쿠프’, 일본의 대표적인 책방 ‘츠타야’ 등 김진양 북바이북 대표가 일본 책방들을 발이 부르트도록 찾아다니며 참고한 덕분에 한국에 북바이북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책바’가 주목받고 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소개되고 김영하 작가의 방문으로 입소문을 탔다. 술의 향기에 젖은 독서의 매력을 알아보기 위해 대표적인 ‘술 마시는 책방’ 두 곳을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직접 체험해봤다. ‘책맥’을 처음 선보인 북바이북 상암동에서 시작한 북바이북은 현재는 광화문에서 통합점을 운영하고 있다. 광화문역 1번 출구에서 바로 보이는 건물 1층으로 들어가면 된다. 띄엄띄엄 떨어진 좌석, 서가에 정갈하게 꽂힌 책들을 보면 평범한 동네서점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을 열고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음료와 디저트, 맥주를 판매하는 카운터와 책방 주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커피와 차, 토스트, 약과까지 메뉴도 다양하다. 카운터를 지나자 포스트잇에 적힌 방문객들의 방명록으로 빼곡히 채워진 벽면이 나타난다. 북바이북은 책을 읽으면서 맥주를 함께 즐기고 싶은 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스페인식 레몬 맥주 ‘끌라라’가 북바이북의 대표 메뉴다. 기자는 중고책 서가에서 북바이북 로고가 찍힌 ‘무진기행’을 선택했다. 중고라 정가의 30% 가격에 결제한 다음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투명한 캔에 담겨 나오는 끌라라에는 얇게 썬 레몬 두 조각이 띄워져 있다. 고려의 시조인 태조 왕건이 한 처녀에게 물을 청하자 바가지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줬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물을 급히 마시다 체할까 걱정돼 나뭇잎을 띄웠다는 처녀처럼,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다 취해서 책을 읽지 못하는 불상사를 우려한 마음이었을까. 의도야 어쨌든 덕분에 숨을 고르고 천천히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양이 줄어들수록 맥주의 레몬 향이 더 강해진다. 적당히 취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든 잔 같은 느낌이다. 김진양 북바이북 대표는 책과 술의 조합에 대해 “북바이북에서 맥주는 책을, 독서를, 책이 있는 공간을 더욱 친근하게 만들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굳이 진지하지 않아도, 심각하지 않아도 책을 가까이할 수 있고, 책이 있어 편안한 공간을 더욱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맥주”라고 설명했다. 좁지만 다양한 신청곡에 분위기가 바뀌는 책바 연희동에 가면 북적이는 바가 아닌, 책과 술을 즐기고 싶은 이들을 위한 조용한 공간 ‘책바’를 작은 골목에서 찾을 수 있다. 연희동 ‘사러가 쇼핑센터’ 맞은편에서 ‘현대부동산’과 ‘추앤추 한의원’ 사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구석에 숨은 책바 입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는 처음이시죠? 반갑습니다.” 어렵게 책바에 도착하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책방 주인이 자리로 안내한다. 처음 들어선 책바는 공간이 협소하다. ‘바 안에서는 1~2명만 책을 읽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는 순간 책장이 열리면서 안쪽에 있는 자리가 나타났다. 버튼 하나로 책장이 열리고 닫히는,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책을 읽기에 책바는 어두운 분위기다. 하지만 자리마다 녹색 원통형 조명이 배치돼 있어 책을 읽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자리에 앉으니 책방 주인이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그런데 메뉴판이 범상치 않다. 술의 도수에 따라 ‘시’, ‘에세이’, ‘소설’로 분류된다. 흥미로운 건 다양한 주종의 술과 더불어 술이 소개된 소설의 문구가 메뉴판에 함께 적혀 있다는 것이다. 소설 속 술을 직접 마셔보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마실 술을 골랐다면 이젠 책을 고를 차례다. 책바에서는 책을 판매하기도 하고, 빈손으로 온 고객을 위해 책을 대여하기도 한다. 서가에 꽂혀 있는 김훈 작가의 ‘라면을 끓이며’를 골랐다. 그리고 한때 ‘악마의 술’이라고 불린,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했다는 압생트를 주문했다. 이 술은 역사적으로 많은 오해를 샀지만 실제 독성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향이 특이했다. 옅은 초록빛에 풀 냄새가 났다. 의외로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50도 이상인 술이기에 책을 읽으며 아주 조금씩 들이켰다. 책을 읽다 보니 금방 마감 시간이 다가왔다. 책바는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면 바에 있는 손님들에게 마감 전 듣고 싶은 곡을 신청받는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요란한 음악은 신청하지 않는다. 하지만 각양각색의 손님들이 신청한 다양한 곡을 들으니 분위기가 새롭게 바뀐다. 다 읽지 못한 책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 마감곡을 들으며 읽던 챕터를 마무리한 다음 자리를 털고 나왔다. 사라지는 책방, 시니어들의 선택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교보생명 창립자인 대산 신용호 전 회장은 반대를 무릅쓰고 광화문 금싸라기 땅에 교보문고를 만들면서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말했다. 종이책 세대인 시니어들은 지금 세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책을 더 많이 읽고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은 시니어들조차 점점 책과 멀어지고 있다. 물론 시니어들의 잘못은 아니다. 책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워진 환경 탓이다. 이런 상황을 증명이라도 하듯 최근 많은 책방이 사라지고 있다. 책을 사랑하는 배우 박정민이 운영하던 ‘책과 밤낮’, 25년간 은평구민들의 곁을 지켜왔던 ‘불광문고’가 올해 폐업했다. 대형서점도 예외가 아니다. 매출 기준으로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에 이어 서점 업계 3위였던 ‘반디앤루니스’도 올해 33년 역사를 마무리했다. 올해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 발간한 ‘2020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국내 서점은 2003년 3589개에서 지난해 12월 기준 1976개로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가을이 되니 동네책방만의 개성과 분위기가 더 그리워진다. 책을 좋아하는 시니어라면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도서관과 대형서점으로 한정되는 걸 아쉬워할 만하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려 해도 독서를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 손에 쥔 작은 스마트폰으로 누릴 수 있는 콘텐츠가 아주 많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흥미로움을 전한다. 서점이나 카페에서 오래 책을 읽자니 부담스럽다. 코로나19로 운영 시간이 짧아진 탓에 도서관 이용도 여의치 않다. 이런 상황이지만 책에 빠져보고 싶은 시니어가 있다면 술과 함께하기를 추천한다. 술이 긴장을 풀어줘 책에 더 편안히 스며들도록 돕기 때문이다. 독서의 계절 10월이 가기 전에 술이 깃든 책방에서 체험하는 새로운 책방 문화가 신선함을 전할 것이다. 술과 책,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조화를 경험하고 나오는 길에 문득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나의 끌라라는 북바이북에서, 나의 압생트는 책바에서.”
- 2021-10-2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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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 고려산 아래 묵묵한 내공의 우공책방
- 햇볕마저 좋다. 다음 주쯤 강화도에 한번 다녀올 참이었다. 고려산의 진달래가 온 산을 물들일 때다. 어느 곳이든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세상이지만, 불현듯 그 산하에 다가가고 싶을 땐 어쩔 수 없다. 강화도는 섬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땅이다.선사시대 고인돌 유적이 남아 있을 만큼 오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곳. 뿐만 아니라 이제는 곳곳에 새롭게 생겨나는 공간의 매력까지 더해지는 중이다. 물이 빠져나간 진득한 갯벌 위로 갈매기 떼가 날갯짓하는 외포항은 한적하다. 바람을 맞으며 포구 앞에서 갯골의 물길을 따라 바라보는 외포리의 생업 현장은 담담한 듯 조용하다. 수산물 직판장은 한가로웠지만 짭조름한 젓갈 냄새가 자연스럽게 풍겨난다. 한가로운 섬에 드니 이렇듯 편안하다.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 앞자리엔 바람 쐬러 나온 듯한 부부의 나란한 모습이 간간이 눈에 들어온다. 이 섬에서 얻는 휴식과 평온함의 풍경이다. 강화의 들길을 천천히 달리다 보면 진지나 요새를 만나고, 크고 작은 돈대가 나타난다. 외포항에서 5분쯤 달리면 나타나는 삼암돈대는 석모도를 마주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건너편으로 석모대교가 가로질러 있는 모습이 봄꽃 나무 사이로 보인다. 개화기 역사의 소용돌이가 스며 있는 강화 54돈대 중 하나다. 지금은 그 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지만 4구의 포좌가 해안을 향해 열려 있는 모습을 보니 슬그머니 진지해진다. 인적 없는 자그마한 돈대 안은 적막하기까지 하다. 원형으로 축조된 돈대의 발아래로 바다가 유유하다. 바람에 날리며 떨어지는 봄꽃이 눈부시다. 무기를 보관하던 작은 창고인 듯한 입구엔 냉이꽃이 가득 피어났다. 여유롭게 바다를 내려다보고 석모대교 위로 오가는 자동차들의 꼬리를 따라가는 시선 끝에 또 다른 장소를 떠올렸다. 내비게이션을 확인해보니 멀지 않다. 정보를 통해 진작에 알고 있던 동네 책방이다. 다음 주에 가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이참에 가면 어떨지 잠깐 생각했다. 미리 연락도 해놓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찾아간다. 가끔은 사람의 만남도, 무심코 맞닥뜨린 여행지의 순간도 이럴 때 오히려 더 기억에 오래 남지 않았던가. 책방과 공방의 조화 호수처럼 너른 저수지 옆을 지나고 시골길이 깊어진다. 몇 개의 굽은 고갯길을 거치고 한적한 들판을 달린다. 이렇게 산골마을이지만 사실 강화읍에서는 자동차로 10분 정도 거리다. 길 건너편으로 산 아래 조용히 앉혀진 연꽃마을의 우공책방이 보인다. 금속공예와 목공예 작가인 ‘공방장님’과 시인이신 ‘책방장님’이 그곳에 있었다. 차분하고 담백한 인상의 작가 부부. 색감이 고운 차 한잔 내어주신 책방장님은 일정이 있어서 곧바로 외출했다. 갑작스러운 방문의 결례로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친절한 배려를 보여주신 공방장 김찬욱 작가님께 고마울 따름이다. “원래 글을 쓰니까, 그리고 책이 많으니까 그 책을 누구라도 보는 데 쓰고, 사람이 안 와도 책 갖다놓고 책방이라는 타이틀을 놓으면 재미있겠다 싶었죠. 사실 책을 사기 위해 오는 동네 사람은 드물죠. 대부분 어르신들이고, 요즘은 농번기라 논에 물 대기 바쁜 농사철이기도 하고요. 강화의 지인들이 오고, 지나가다 신기하다고 들어오기도 합니다. 가끔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옵니다.” 책꽂이에는 아주 오래된 귀한 책들도 제법 많다. 절판된 책이나 오래전 책을 꼭 사겠다는 분도 있다고 한다. 8000권 넘는 책이 아래층과 위층으로 보기 좋게 가득가득 꽂혀 있다. 알음알음 동네 책방을 아끼는 분들이 책 주문을 하고, 우공책방의 독특함을 찾아서 먼 길을 오는 이들이 있어서 공감과 소통이 이어진다. 머릿속으로 그려오던 것을 나만의 북큐레이션으로 실천하는 것,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독자와 호흡하며 산골 책방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담백하다. 각자의 커리어대로 하던 일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현재는 멈추었지만 지역사회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입구에 나무와 환경에 관한 책이 배치되어 있다. “이곳엔 공방이 있으니까 나무도 있고 식물에 관한 책이 많죠. 책방장도 나무나 자연에 관한 책을 많이 선택하고 또 다양한 시집도 북큐레이션을 하죠. 자연에 관한 책, 시집은 특별히 주문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책을 가지러 와서 얼굴도 보고 차도 마시고 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판을 깔고 의미 있게 보내는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스치듯 말한다. 어쩐지 울림을 준다. 바이러스가 사라질 날이 언제일지. 고요한 힐링, 북스테이 또 하나, 이 책방의 멋과 맛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북스테이가 있다. 전망 좋은 책방 2층에 책 여행자들이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정갈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무엇보다도 조식과 석식이 제공되는데 어느 셰프의 상차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손맛 깊은 맛깔스런 밥상이다. “음식 만드는 것은… 제가 자취를 오래 했거든요. 그러기도 하고 음식을 제대로 맛나게 만들어 먹고 싶은 생각이 항상 있었죠. 그래서 궁금하면 어머니께 여쭤보곤 했어요. 식당을 40년 하셨고 못 만드시는 음식이 없었지요. 같은 재료인데도 내가 만들어 먹을 때는 왜 엄마의 그 맛이 안 나는지 늘 궁금했어요. 북엇국은 왜 엄마처럼 뽀얗게 안 올라올까 전화로 물어보면 기름에 한 번 볶아서 끓여야 한다. 또 순서가 어찌되었느냐, 시래깃국도 양념 넣고 잘 주물러서 넣어야 맛있다 말씀해주셨지요.” 우공책방의 북스테이에서는 엄마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받은 밥상을 받을 수 있다. 산골 동네엔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 없어서 제공한 식사였다. 그러다 보니 의외로 우공책방 북스테이의 푸짐한 고등어시래기찜이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힐링의 북스테이뿐만 아니라 우공책방에서는 목공예 작품을 만들어내는 체험도 가능하다. 작가의 예술적 감성이 스며든 작품을 배워볼 기회다. 책방과 공방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에서 따뜻한 나무의 질감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순하게 아날로그 정서가 발동되고 마음이 풍성해지는 여행 감성을 일깨운다. 자연, 나무, 목공예, 예술, 우공이산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주문받은 작품을 계속 다듬고 있었다. 깊은 손맛처럼 진심이 느껴지는 공방장님의 묵묵한 인상이 책방 이름 우공이라는 글자와 일치하는 느낌이다. 그런 내적 진중함이 만들어내는 목공 작품들이 책방 코너에 진열되어 있다. 햇볕이 쏟아져 내리는 산 아래 책방 마당, 데크를 지나 한편에 자리 잡은 공방장님의 작업장은 와우~ 신세계다. 나무와 금속을 다루는 갖가지 기계 장비들과 공구들이 빼곡하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들에게 잘 갖추어진 작업장은 뿌듯함이다. 우와~ 하며 놀랄 수밖에. 참죽나무로 만들어낸 책갈피부터 우리에게 친근한 빵도마도 만들어내는 곳, 절로 목공 작업이 확 당긴다. 책방지기의 묵직한 내공으로 배려받은 잠깐의 시간, 그 진중함으로 산과 바다라도 옮길 수 있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모습이 그려진다. 더디 가더라도 내가 주체가 되어 하고 싶은 일 속에 있는 것, 그 시간을 의미 있게 쓰려는 것이 또렷이 보일 때 부럽다. 일어서는데 김찬욱 작가님이 한마디 던진다. “적석사도 들러야죠? 3분입니다.” 고려산 기슭의 가파른 언덕 위 사찰 적석사에서 내려다본 청정한 연꽃마을, 그곳에 우공책방이 있다.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 연촌길 77-10(고천리 217-10) / 고려산 낙조대 적석사 가는 길목
- 2021-06-24 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