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매장에 시계가 없다. 모순 같은 이 말은 롤렉스 매장의 현재 상황이다. 롤렉스는 극심한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만성적으로 지속된 현상이나, 롤렉스가 2018년에 ‘웨이팅 제도’를 폐지하면서 더 심해졌다. 대기는 받지 않고, 선착순으로만 구매가 가능해졌다. 매장에 전화를 걸어 재고를 확인하거나, 직접 갔을 때 물건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
이에 따라 오픈 시간 무렵 롤렉스 매장 앞에는 수십 명이 줄을 선다. 진열대는 시계 하나 없이 텅 비어 있기 일쑤. 인기 모델은 진열과 동시에 팔려 구경조차 어렵다. 시계를 시착해 보며 구입한다는 것은 롤렉스 매장에서는 불가능하다.
몇 년 새 수요 폭증, 롤렉스 매출액 급등
품귀 현상의 원인은 분명하다. 사고자 하는 이들은 많은데 공급량이 이를 못 따라간다.
롤렉스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몇 년 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는 롤렉스의 국내 매출액 추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롤렉스는 본사가 한국 시장에 직접 판매한다. 2002년 설립된 롤렉스의 한국 법인 ‘한국로렉스’는 롤렉스만을 취급하는 유통 업체로, 스위스의 ‘로렉스홀딩스’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로렉스의 2019년 매출액은 2,904억 원이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558억 원, 437억 원으로, 영업이익률이 무려 19.2%였다. 2014년까지만 해도 롤렉스의 매출액은 1천억 원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2015년부터 매출액이 폭증하여 매년 3천억 원 전후의 연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단기간에 롤렉스 수요가 크게 늘었음을 의미한다.
타 명품 시계 유통 업체 매출액과 비교하면 롤렉스의 매출액이 더욱 두드러진다. 오메가, 브레게, 블랑팡 등 12개 브랜드 시계를 판매하는 스와치그룹코리아의 2019년 매출액은 4,373억 원이었다. 파텍필립, 브라이틀링, 태그호이어, 위블로 등 9개 브랜드 시계를 판매하는 명보아이엔씨의 2019년 매출액은 1,667억 원이었다. 이들 기업이 취급하는 브랜드들은 대부분 인기 브랜드다. 반면 한국로렉스는 롤렉스 단 하나만을 판매하여 3천억 원에 달하는 매출액을 달성했다.
회원 수가 약 12만 7천 명인 대형 시계 동호회 ‘와치홀릭’에서는 롤렉스가 그야말로 선망의 시계다. 매일 주요 백화점의 롤렉스 매장을 순회하며 재고가 있는지 확인하는 사람도 있고, 제품 입고 소식을 듣자마자 반차를 내고 직장을 뛰쳐나와 백화점으로 향한다는 이도 있다. 몇 달, 몇 년을 노력했는데도 구입에 실패했다며, 이제는 롤렉스를 단념하기로 했다는 이도 있다. 이처럼 마음고생한 이들이 롤렉스의 공급, 판매 방식을 성토하는 글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기적적으로 인기 모델을 매장에서 구입한 이에게서는 아파트 청약 당첨에 버금가는 환희가 느껴진다.
높은 프리미엄에 중고 시세 고공행진
중고 시장에서는 롤렉스 시계에 높은 프리미엄이 붙고, 시세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대표 인기 모델인 GMT마스터2 40㎜ 모델은 중고 쇼핑몰 시세가 현재 약 1,900만 원이다. 정가는 1,177만 원으로 6백 만 원이 넘는 웃돈이 붙었다.
웨이팅 제도가 있던 시절에는 웨이팅 권리를 2백만 원 이상 주고 판매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는 롤렉스의 투자 가치를 높여 수요가 더 늘어나게 만드는 요인이다.
매장에는 일반 소비자뿐 아니라 되팔이를 목적으로 하는 업자들도 장사진을 치고 있다. 조직적으로, 전업으로 롤렉스 시계 구입을 목표로 하는 이들이다 보니, 일반 소비자가 그들의 구매력을 따라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베일에 싸인 롤렉스의 공급 정책
이런 상황에도 롤렉스의 공급, 판매 정책은 베일에 싸여 있다. 매장에 입고 시기를 문의해도 알 수 없다고만 하고, 재고를 물으면 없다는 답변만 돌아오기 일쑤다.
품귀 현상 원인이나 앞으로의 공급 계획 등에 대해서도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복수의 롤렉스 관계자는 “품귀 현상은 이전부터 지속되었고, 최근 들어 심해진 양상이다. 공급량에 큰 변화는 없으나 찾는 수요가 많아졌다.”라고 밝혔다. 또한 “롤렉스의 모든 시계는 내구성, 정확성, 실용성이라는 제품 철학을 추구하며, 최고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수작업으로 조립된다. 이처럼 엄격한 기준으로 인해 롤렉스 생산량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으며 인기 모델은 매장 구입이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롤렉스, 명품 시계 시장에서 독보적 입지 구축
이러한 현상이 몇 년에 걸쳐 이어지는 동안 롤렉스는 상품성, 브랜드 가치, 투자 가치, 희소성까지 두루 갖춘, 자타가 공인하는 럭셔리 워치의 대명사로 완벽하게 자리잡았다.
현재의 품귀 현상은 오히려 롤렉스의 가치를 높이고, 롤렉스를 갖고 싶은 마음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도 롤렉스를 찾는 이들은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품귀 현상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롤렉스 시계, 가격은 얼마나 할까?
금시계는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18캐럿 옐로우 골드로 만들어진 '데이데이트' 36㎜모델의 경우 4,416만 원이다. 하지만 의외로 접근성이 좋은 가격대의 시계도 있다. 스틸 소재로 만들어진 시계들이다. 지난해 신제품으로 선보인 '오이스터 퍼페츄얼' 41㎜ 제품은 오이스터스틸 소재로 제작됐으며, 716만 원이다. 럭셔리 워치 중에서는 접근성이 좋은 가격대다. 롤렉스와 더불어 ‘예물 시계 삼대장’으로 불리는 오메가, 까르띠에에는 이보다 비싼 시계가 많다. 롤렉스보다 브랜드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평가되는 브라이틀링이나 태그호이어에서도 오이스터 퍼페츄얼보다 비싼 제품이 인기리에 판매된다. 브라이틀링의 '내비타이머', 태그호이어의 '모나코'가 대표적인 예다. 롤렉스의 대표 인기 모델인 '뉴 서브마리너'는 전 제품이 41㎜로, 오이스터스틸 소재 제품이 985만 원, 오이스터스틸과 옐로우 골드를 혼합한 제품이 1,741만 원이다.
어딜 가든 화제가 되는 슈퍼리치는 부지불식간에 일상마저 들키곤 한다. 이때 대중의 시선은 그들의 패션을 단번에 스캔한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 또 어떤 신발을 신고 액세서리는 뭘 착용했는지. 최근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낸 슈퍼리치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애용하는 패션 아이템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꼼데가르송
지난 2월 9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날 대중은 투자·배급사인 CJ그룹의 이미경 부회장이 입은 의상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바로 ‘꼼데가르송 빈티지 재킷’이었다.
이 의상에 부착된 밴드 위에는 ‘PARASITE is Cool’(기생충은 쿨하다), ‘I’m Deadly Serious’(나 정말 진지해요), ‘RESPECT’(존경해요) 등 영화 속 명대사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새겨져 있었다. 이 부회장이 직접 넣은 문구들로 세간의 화제가 됐다.
꼼데가르송은 1969년 출시된 일본의 아방가르드 고급 패션 브랜드다. 이 브랜드에 전 세계가 주목한 것은 1981년 파리 컬렉션에서다. 블랙을 기초로 한 비대칭 재단과 미완성인 듯 보이는 바느질, 풀어헤쳐진 원단을 사용한 의상들은 당시 충격을 안겨줬다.
이 부회장이 시상식에서 입은 재킷의 정확한 가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만 원대로 추정된다. 꼼데가르송의 재킷과 코트는 100만~300만 원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에 잘 알려진 하트 로고의 플레이 라인 티셔츠는 10만 원대, 카디건은 30만 원대다.
◇에르메스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교회) 총회장이 명품 넥타이로 주목받았다. 지난 3월 2일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 국민에게 사죄하기 위해 마련한 기자회견장에 ‘에르메스’의 노란색 실크 넥타이를 매고 나온 것. 해당 제품은 약 20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에르메스는 프랑스의 하이엔드 명품 패션 브랜드다. 루이비통, 샤넬과 함께 3대 명품 브랜드로 통하는데, 그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하지만 가격대가 상당한 프리미엄 라인은 따로 있다. 대표적으로 ‘버킨백’과 ‘켈리백’이 초고가 제품이다. 버킨백 가격은 2011년 기준으로 1240만 원 정도다. 그레이스 켈리가 들고 다녀서 유명해진 켈리백은 35㎝급 제품이 930만 원 선이다.
이 제품들을 구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예약을 한 뒤 오랜 대기기간을 거쳐야 살 수 있어서다. 버킨백은 현재 2000여 명의 대기자가 있어 3년 후에나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켈리백은 현재 국내 VIP의 예약을 받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롤렉스
지난해 연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찾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착용한 시계가 화제였다. 영국 언론 데일리미러의 보도에 따르면, 호날두가 착용한 시계는 스위스 명품 브랜드 ‘롤렉스’의 ‘GMT-마스터 아이스 워치’다.
이 시계의 가격은 38만 파운드(약 5억74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한정판 제품이다. 데일리미러는 이날 호날두가 차고 나온 시계도 희귀하지만, 그의 소장품 중 가장 비싼 제품은 아니라고 전했다.
롤렉스는 시대와 분야를 막론하고 성공한 사람들과 유명인의 총애를 받는 대표적인 명품 시계 브랜드로 정확성과 내구성을 최우선 가치로 꼽는다. 엄격한 자체 검증과정을 통해 하루 오차 2초 내외로 정밀 조정된 시계만 출고한다.
롤렉스는 매우 일관적이고 확실한 콘셉트를 갖고 있어 용도와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모델 분류가 철저하다. 다른 브랜드들도 용도에 따른 분류를 하지만 롤렉스에 미치지 못한다. 롤렉스 시계가 필드 쓰임새를 극대화한 ‘고급 툴워치’라는 개념으로 설명되는 건 이 때문이다.
온 나라가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개 부문 석권 소식에 떠들썩하다.
뜨거웠던 시상식의 열기만큼이나 시상식장의 면면도 관심이 가는데, 바로 2016년부터 시계 명품 브랜드 롤렉스가 디자인하고 있는 돌비극장 내 그린룸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돌비극장 내 그린룸은 아카데미 시상식 때 시상자와 특별 게스트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 머무는 특별한 공간으로 유명하다. 매년 시상식 때마다 다양한 주제로 꾸미고 있다. 올해의 테마는 ‘극지 탐험’이었다.
롤렉스는 올해 그린룸의 디자인을 통해 극 지대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그린룸 방문자는 북극 한가운데에 있는 목재 장식의 아늑한 전망대에서 차가운 순백의 설경을 바라보며 얼음 세상을 체험하는 듯한 경험을 했다.
특수 조명이 일출과 일몰 시간의 흐름을 실감 나게 연출할 뿐만 아니라 북극 특유의 햇살과 음영을 느끼게 한다. ‘시간’ 역시 그린룸 디자인의 핵심 콘셉트다. 따라서 극한 환경 탐험에서 필수적인 롤렉스 익스플로러 II가 내부 장식에 중요하게 사용됐다.
한국영화에서 신성일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뺄 수 있을까?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10.12~ 21)에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독보적 아이콘, 신성일의 회고전이 ‘한국영화 회고전’을 통해 선보였다. , , , 등 신성일이 주인공을 맡은 500여 편의 영화 중 8편을 엄선해 영화제 기간 동안 상영했다. 최근 폐암 3기 판정을 받아 항암 치료 중인 신성일은 회고전 기간 내내 활발한 모습으로 영화제 현장을 누비며 팬들과 소통했다.
신성일 야외 사진전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10월 13일은 ‘신성일의 날’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신성일을 회고하는 행사가 많이 열렸다. 영화의 전당(부산시 해운대구) 앞마당에서 펼쳐진 ‘신성일 야외 사진전’ 리본 커팅을 시작으로 영화 (김수용 감독·1967) 관객과의 대화,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 등이 이어졌다.
오후 2시 야외 사진전 오픈식에 모습을 드러낸 배우 신성일은 단상에 서자마자 故 김기덕 감독(1934~2017)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김기덕 감독이 만든 62편의 작품 중 32편에 출연한 신성일. 김기덕 감독이 자신과 같은 폐암 3기 수술 후 20일 만에 유명을 달리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현재 폐암 3기 선고를 받고 방사선 치료 중인 신성일은 “10월 25일 방사선 치료가 끝나는데 건강도 많이 회복됐다”며 “모두들 건강 챙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 를 본 뒤 잃어버린 두 개를 찾았다
한국영화 회고전 ‘배우의 신화, 영원한 스타: 신성일’의 첫 번째 영화로 (김수용 감독·1967)가 상영됐다. 김승옥의 소설 을 영화한 것으로 김승옥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각색까지 도맡았다.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는 영화 의 김수용 감독과 신성일이 함께 나와 영화에 대한 추억담을 꺼내놓았다.
정정한 모습으로 관객 앞에 선 김수용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로 22회짼데 다른 사람들 다 했는데 신성일씨가 어찌 지금 회고전을 하냐”면서 “아마 상황이 이렇게 되어(신성일의 병세를 두고) 하게 된 것 같다”, “이번 영화제만큼은 원로 영화인들이 가슴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영화 마지막 장면의 신성일 연기를 언급했다. “세월이 다 지나갔지만 저 사람 실력 있는 배우였다”며 극찬했다. 당시 두 번째 영화에 출연한 배우 윤정희에 대해서도 “그때 참 촌스러웠다”며 “신성일씨가 메이크업과 속눈썹을 다 봐줬을 것”이라고 말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이날의 주인공 신성일은 “내 나이 딱 서른 때 찍은 작품이었다”, “정작 너무 바빠 이 영화를 지금까지 못 봤다”고 털어놓았다.
영화를 보면서 잃어버린 두 가지를 찾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제가 요즘 잃어버린 것이 많은데 영화에서 차고 나온 시계가 굉장히 좋은 시계입니다. 롤렉스 백금 시계였는데 3년 전에 도둑맞았어요. 그때는 쉽게 수입을 할 수 없었던 시절이어서 극동 필름 차태진 사장이 일본에서 사다준 결혼선물 시계입니다. 현재 시세로는 한 몇 억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끼고 나온 다이아몬드 반지는 결혼반지입니다. 두 개 다 도둑맞아서 이제 저에겐 없지만 영화 속에서 찾을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눈으로라도 찾았으니까요.”
나는 배우의 삶이 좋다
신성일은 한 기획사의 제안으로 내년 봄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몸이 많이 회복돼 촬영할 수 있게 됐다”며 “따뜻하고 행복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날로그로 대표되는 우리 세대와 디지털 세대, 인공지능 세대인 손자 세대가 따로 살지만 한 가족을 이루고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영화 진행이 잘돼 영화제에서 작품이 소개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신성일은 배우의 삶을 산 것이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배우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고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이지만 서울대학교에 떨어진 것이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경남고등학교 출신으로 나름대로 큰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공부했지만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배우가 됐어요. 영화배우가 됐기 때문에 4·19혁명 같은 큰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영화 찍느라 바빠서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의식 있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더라면 시위 현장에 있었겠죠. 내 후배나 선배들 고문당하고 붙들려 들어가서 골병들었습니다. 대신 우리는 그런 속에 영화를 찍었습니다. 김수용 감독도, 정진우 감독도 그렇고요. 우리 작품이 매번 검열에 다 걸리니까 대신 청춘 영화를 찍고 현대문학을 찾아냈습니다. 정권이 바뀌어 좋아질 것을 예상했지만 또 다른 군부가 들어섰어요.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요. 당시 제게 정치판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만 고사했습니다. 그때 만약 갔더라면 국회의원 세 번 정도 하고 이 자리에는 있을 수 없겠죠.”
신성일은 마지막으로 “관객 앞에 설 수 있기에 영화배우로 살아온 것이 거듭 고맙고 많은 얘기를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서 배우로서 행복하다”고 말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어 늦은 밤 해운대 파크 하얏트에서 열린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에는 신성일과 다수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윤정희를 비롯해 임권택, 이장호, 안성기, 한지일, 허기호 등 영화계 원로가 참석해 회고전의 밤을 축하해주었다. 또 이날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부산 출신 박태호 작가가 만든 액터스 체어를 신성일에게 증정했다.
오늘은 모처럼 장롱 속을 뒤집어 정리하기로 했다. 잘 입지 않는 옷이 가득한 옷장은 한숨부터 나온다.
연례행사로 안 입는 옷을 추려내어 재활용 옷 수거함에 넣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 입지 않지만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옷이 한 가득하다.
한복 넣어 둔 서랍을 열어보니 곱게 싼 보자기에 보관한 우리 아들 아기 때 입혔던 옷이 나왔다.
면으로 된 흰색 쌍방울표 러닝과 팬티가 어찌나 조그맣고 인형 옷처럼 예쁜지 미소부터 지어진다.
그러고 보니 필자는 아들 아기 때 입혔던 배냇저고리랑 앙증맞게 작은 첫 신발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워낙 물건 버리기를 잘 못 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내 옷은 수십 번 처리하며 살았어도 아기 옷 몇 가지는 꼭 갖고 있고 싶었다.
하얀색 융으로 만든 배냇저고리 2장은 우리 아들이 태어났을 때 솜씨 좋으신 시어머님이 직접 재봉질하셔서 만들고 하나씩 맡아 앞섶에 수를 놓았다.
어머님은 파란 색실로 감치셨고 나는 분홍 색실로 사슬뜨기를 해서 모양을 내었다.
사서 입혔던 많은 아기 옷은 아기가 자라면서 없어졌지만, 어머님과 내가 수를 놓아 만든 아기 옷은 버릴 수가 없었다.
가끔 장롱 속 서랍 한쪽에 넣어둔 아기 때 입혔던 옷들을 꺼내보면서 정말 우리 아들이 요렇게 작은 옷을 입을 때도 있었다는 게 신기해서 웃음이 난다.
어쩌면 필자는 손자가 생기면 “네 아빠가 입었던 옷이란다.” 하고 입혀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필자도 이제 할머니가 되어 예쁜 손녀 손자를 갖게 되었다.
앙증맞은 팬티는 남자용이라 할 수 없지만, 필자랑 어머님이 마주 앉아 고운 색실로 수를 놓았던 배냇저고리는 손녀에게 입히고 싶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른의 도움 없이 모든 일을 참 잘 처리한다.
연애결혼을 한 우리 아들도 결혼할 때 모든 걸 웨딩회사에 맡겼다며 필자에게 어떤 도움도 청하지 않았다.
예전 필자가 결혼할 당시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엄마가 준비해 주셨다. 예물도 그렇고 별로 필요하지 않은 그릇도 그때 유행하던 일본제 노리다케와 아리타로 한 세트씩 사주셔서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쓴 그릇도 있을 정도로 알아서 준비해 주셨는데, 우리 아이들은 오히려 몇 시까지 청담동 어떤 한복집에 가서 옷을 맞추라던가 가봉을 하라고 하는 등 엄마가 신경 쓰는 일 없게 진행했다.
있는 집으로 시집을 갔던 필자는 시댁으로부터 롤렉스시계와 패물로 7세트를 준비했다거나 밍크 목도리 등 당시로써는 많은 예물을 받았기 때문에 필자도 아들 결혼 준비를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예물도 둘이 알아서 골랐다 하고 함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물품도 알아서 준비했다고 해서 참 세상 좋아졌구나! 손뼉을 쳤었다.
그렇게 저희 둘이 알아서 하니 어떤 일도 참견을 할 수가 없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필자는 필자가 수놓은 배냇저고리를 꼭 입히고 싶었다.
며느리에게 넌지시 “이것 봐라, 예쁘지? 네 남편이 아기 때 입었던 거란다.” 하며 보여 주었더니 예쁘다며 하하 웃을 뿐 아기에게 입히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새 옷이 아니라서 그런가? 그래도 옷감도 부드럽고 의미도 있을 것 같은데 입히라고 말하진 못했으며 아기용품은 이미 다 준비해 놓은 것 같았다.
모든 일을 알아서 하는 게 좋았지만 이럴 때 필자 의견을 주장 할 수 없는 게 좀 아쉽긴 하다.
필자는 꺼냈던 아기 옷들을 다시 싸서 장롱 서랍에 간직해 두었다.
가끔씩 꺼내 보면서 우리 아들이 손녀 손자보다 더 작을 때도 있었구나, 그때를 언제까지나 추억해 볼 것이다.
시계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발전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의 시계는 자연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해가 뜨고 지고 달이 차고 기울고 조수간만의 차이가 생기는 자연의 순행에서 인간은 시간이라는 개념과 함께 이를 물리적으로 표시하는 시계라는 도구를 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글 장세훈(張世訓) 타임포럼 시계 칼럼니스트
학계에서는 기원전 30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해시계를 시계의 기원으로 보고 있으며, 영국의 전설적인 거석기념물인 스톤헨지 또한 실제 용도는 해시계였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한편 고대 그리스인들은 날씨가 흐리거나 야간에도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클렙시드라라는 물시계를 발명했고, 1434년 장영실이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완성한 자격루 또한 물시계의 작동 원리를 응용 발전시킨 것이었다. 이밖에도 모래로 시간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모래시계와 기름의 연소량을 시간 계측에 활용한 램프시계도 중세시대에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시계의 역사는 이토록 오래되었지만, 근대적인 개념의 기계식 시계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17세기 중반부터다. 물리학 및 관측천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기계식 시계의 이론적 토대인 진자의 등시성 원리를 16세기 말에 발견한 것을 기점으로, 네덜란드 태생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호이겐스는 이를 최초로 시계에 적용해 시계 제작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그가 1675년 개발한 진자시계는 후대의 과학자들과 시계 제작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들의 손을 거치며 점차 다양한 종류의 시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탁상시계와 휴대가 간편한 회중시계가 유럽의 귀족과 부유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현상은 한편으로는 시계가 인류의 생활 깊숙이 뿌리내렸음을 의미했다. 물론 그 시절만 하더라도 휴대용 시계는 일반 서민들은 쉽게 볼 수조차 없는 사치품이었다. 유명 시계 제작자들은 주로 왕가나 귀족들을 위해서만 소량씩 주문제작방식으로 시계를 제작했고, 긴 체인을 연결해 양복 포켓 안에서 수시로 꺼내 볼 수 있는 회중시계는 특권층의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면서 귀금속 케이스로 제작한 시계들이 각광을 받았다.
한편 회중시계는 기술적으로도 당대 시계제작자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했다. 크기가 큰 추시계류와 달리 회중시계는 부품들의 사이즈부터 매우 작고 더욱 정밀한 가공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마이크론 단위까지 정확하게 측정, 절삭할 수 있는 기계들이 앙트완 르쿨트르 등 몇몇 선구적인 인물들에 의해 19세기 초반에 개발되었다.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스위스 태생의 시계 제작자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18세기에 등장한 가장 중요한 시계 제작자이자 시계 역사상 어쩌면 가장 영향력 있는 발명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최초의 셀프와인딩(로터의 회전에 의해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는 형태의) 시계였던 퍼페추엘(1780년)을 비롯해, 훗날 브레게의 상징이 된 정교한 패턴의 기요셰 다이얼(1786년)과 파랗게 열처리를 한 브레게 핸즈(1783년), 충격 흡수장치인 파라슈트(1790년), 브레게 헤어스프링으로 불리는 탄성과 내부식성이 탁월한 밸런스 스프링(1795년), 그리고 지지대 역할을 하는 케이지 안에 끊임없이 밸런스 휠을 회전시켜 중력을 상쇄하는 혁신적인 설계의 투르비용(1801년)에 이르기까지 현대 기계식 시계 제조의 기틀이 되는 여러 중요한 발명들이 브레게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브레게는 회중시계 시대를 앞당긴 인물이면서 훗날 손목시계의 등장까지 예견한 진정한 의미의 천재였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시계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가 가시화된다. 바로 회중시계에서 손목시계로의 세대교체가 그것이다. 최초의 손목시계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1904년 루이 까르띠에가 친구인 조종사 산토스 뒤몽을 위해 제작한 까르띠에의 ‘산토스’를 최초의 현대적인 손목시계로 꼽는다. 케이스 모서리를 둥글린 사각에 가까운 케이스, 두툼한 러그, 착용감을 고려한 아담한 사이즈는 산토스를 당시의 어떠한 시계와도 차별화시켰다. 까르띠에는 또한 제1차 세계대전에 투입된 프랑스의 전투 장갑차에서 착안한 아이코닉한 사각시계 ‘탱크’를 1917년 탄생시켜 일찍이 손목시계 제조사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IWC, 론진, 호이어(태그호이어의 전신) 등 여러 제조사들이 손목시계 제조에 발 빠르게 합류했다. 특히 롤렉스는 세계 최초의 방수 케이스인 오이스터(1926년)를 비롯해, 오토매틱 무브먼트인 퍼페추얼(1931년), 자정 무렵 날짜창이 자동으로 변경되는 시계 데이트저스트(1945년), 최초의 다이버 시계 서브마리너(1953년) 등 몇몇 선구적인 발명으로 손목시계 시대를 앞당긴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계 브랜드로 거듭나게 된다.
손목시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시계로 인기를 모으면서 대중적으로 더욱 많이 알려지게 됐다. 종전 직후인 1950년대에는 이미 스위스 시계업계가 주류로 군림했다. 1960년대 말까지 스위스 시계 산업은 전례 없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고 시계는 더 이상 사회 고위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도 향유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세이코를 필두로 한 쿼츠시계의 광풍에 밀려 스위스 시계 산업은 1990년대 초까지 기나긴 암흑기에 접어들게 된다. 기계식 시계와 달리 수정자와 배터리로 작동하는 쿼츠시계는 적은 제조비용으로 훨씬 더 많은 시계를 생산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특유의 정확함으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1990년대에는 쿼츠시계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이 기계식 시계를 찾기 시작했고 2000년대 접어들면서 기계식은 쿼츠와 사이좋게 시장을 양분할 만큼 다시 예전의 선호도를 되찾는다. 각종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일상의 주축이 된 요즘 수백 년 방식 그대로 제작되는 기계식 시계가 다시 높은 인기를 누리는 현상은 어찌 보면 난센스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기계식 시계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쿼츠시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계식 시계만의 예스러운 감성과 장인정신, 그리고 예술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좋은 시계란 무엇인가? 명품 시계에도 트렌드가 존재하는가?
좋은 시계의 기준이란 어찌 보면 상대적이고 자의적인 개념이다. 기술적으로나 미적으로 그리 훌륭하지 않은 시계일지라도 한 개인의 관점에선 충분히 최고의 시계로 비칠 수 있다. 또한 소중한 추억이 담긴 시계라면 가격대를 떠나서 그 자체로 특별한 가치를 갖게 마련이다. 특정 시계에 ‘명품’이라는 수식을 붙이는 것 또한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현실에는 주저 없이 명품으로 분류할 수 있는 시계들이 분명 존재한다. 단지 고가라서, 다이아몬드로 화려하게 장식을 해서, 누구나 알 만한 유명 브랜드라서 꼭 명품이 아니라, 정제된 디자인과 오래 봐도 질리지 않을 클래식한 다이얼, 우수한 설계의 무브먼트와 같은 요소들이 명품 시계를 규정하게 한다.
세상 돌아가는 순리가 그렇듯 명품 시계 시장에도 소위 말하는 트렌드라는 게 있다. 가령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사이즈가 크고 대담한 디자인의 시계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당시만 해도 신생 브랜드였던 위블로, 벨앤로스 등이 이러한 트렌드에 힘입어 시계 업계에 완전히 자리를 잡는가 하면, 전통적으로 빅사이즈 시계를 브랜드의 개성처럼 강조해온 IWC, 파네라이 같은 제조사들도 엄청난 혜택을 입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명품 시계 업계의 트렌드는 과거로의 회귀로 규정지을 수 있다. 빅사이즈 트렌드에 대한 반발로 시계 사이즈를 다시 줄이기 시작한 제조사들이 늘어났으며, 지나치게 화려하고 스포티한 디자인 대신 단순하면서 고전적인 디자인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예 수십 년 전의 헤리티지 모델을 현대적으로 복각하는 것도 업계의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 반면 블랙, 화이트 다이얼 일색인 고급 시계 업계에 최근 들어서는 블루, 그레이, 브라운, 옐로 등 다양한 컬러가 도입되고 있으며, 단순히 색만 입히는 차원이 아니라 기요셰, 그랑푸 에나멜링, 핸드 페인팅 등 다양한 전통 다이얼 제작 기법까지 적용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바쉐론 콘스탄틴, 파텍 필립,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예거 르쿨트르, 율리스 나르당, 샤넬 같은 제조사들은 자체적으로 양성한 전문 에나멜러와 인그레이빙 장인, 주얼리 세팅 장인들을 활용해 다이얼에 예술성을 가미하는 ‘메티에 다르(Metiers d'Art)’ 시계들로 고급 시계 제조의 또 다른 예술적인 경향을 선도하고 있다.
시계와 사회성
시계를 순수하게 취미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이도 적지 않다.
소위 명품으로 분류되는 고급 시계 소비자들 중에는 해당 시계에 담긴 진정한 가치나 스토리텔링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해당 브랜드가 사회적으로 환기하는 아우라와 이름값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고급 시계가 사회 통념상 일반 소비재가 아닌 사치재로 통하기 때문에, 종종 신문의 사회면이나 방송에서는 부정부패한 방식으로 돈을 축적한 이들이 가진 재산을 은닉하기 위해 혹은 불법 로비를 위해 고급 시계를 구입하고 선물했다는 식의 가십성 기사도 종종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시계가 어찌 수천, 수억 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일 수 있는지에 관해 묻기에 앞서 우리는 해당 시계가 지닌 본연의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계 칼럼니스트로서 스위스 주요 시계 브랜드들의 시계가 제작되는 매뉴팩처(공장)를 방문할 기회가 있는데, 매뉴팩처 투어를 거치는 동안 가장 먼저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이토록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을 거쳐 제작된 시계가 비싸지 않을 이유를 발견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고급 시계에 지불하는 금액 속에는 해당 브랜드의 오랜 역사와 전통, 제조 노하우가 담겨 있는 데다, 기계식 시계의 경우 수백 개의 작은 부품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설계되어 조립되고 나아가 각각의 부품들을 사람 손으로 일일이 다듬고 장식을 하기 때문에 주변의 흔한 대량생산형 저가 시계들과는 확연히 다른 프로세스로 완성됨을 알 수 있다. 오랜 경력과 출중한 실력을 가진 시계제작자를 가리켜 ‘마스터(장인)’라고 칭하는 것도 고급 시계 제조의 배경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계는 분명 재화만 있다면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지만, 때로는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시계들도 있다. 하이엔드 시계 제조사들 중에는 시계를 단지 판매 목적이 아닌 브랜드가 지닌 기술력과 추구하는 가치를 최대치로 구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실험적인 시계를 제작하는 곳도 있다. 까르띠에가 2009년에 선보인 유니크 피스 ‘아이디 원(ID One)’과 2012년에 발표한 ‘아이디 투(ID Two)’가 그 대표적인 예로서, 시계 제조 방식에 새로운 혁신을 도모하고 궁극적으로는 더욱 완벽에 가까운 시계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까르띠에처럼 시계 제조 기술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예가 있는가 하면, 바쉐론 콘스탄틴이나 반클리프 아펠처럼 최상의 예술적인 시계를 완성하기 위해 전통 공예 장인이 최소 2주에서 길게는 몇 달간에 걸친 수작업으로 완성한 유니크 피스들도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시계애호가 및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열렬한 지지를 받는 MB&F, 그뤼벨 포시, 로랑 페리에 등의 독립 시계브랜드들과 필립 듀포, 카리 보틸라이넨과 같은 존경받는 독립 시계 제작자들의 시계도 매우 한정된 수량만 제작되기 때문에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시계로 손꼽힌다. 이러한 귀한 시계들은 차후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 세계 시계 경매에 출품돼 애초의 금액대를 훨씬 상회하는 경매가에 낙찰돼 화제가 되기도 한다.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겠지만, 흔히 볼 수 없어 희소하고 기술력과 예술적 표현의 한계에 도전한 마스터피스급 작품들은 반드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마련이다. 고급 기계식 시계가 세계 주요 경매에 단골손님이 된 것도 하나의 완성도 높은 시계는 예술품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귀한 시계를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부류일까? 물론 기본적으로 부(富)도 따라야겠지만, 단지 부유해서만은 가질 수 없는 탁월한 감식안과 시계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열정, 그리고 좋은 시계를 가치에 맞게 즐길 수 있는 애티튜드(자세)를 지닌 자야말로 진정한 주인이 아닐까 싶다.
>> 장세훈 타임포럼 시계 칼럼니스트
타임포럼 주 필진으로서 시계 각 분야의 뉴스 및 심층 리뷰와 칼럼을 담당하고 있으며, 매년 바젤월드, SIHH, 워치스 앤 원더스 등 주요 시계 박람회를 취재해 기사화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시계 전문지 스페셜을 번역 보완 출간한 를 감수 및 추가 저술했으며, 주요 시계 제조사와 대표작을 선별한 e-북 를 저술했다.
>> 타임포럼 소개
2006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시계에 관한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10만 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직접 시계 구입 후기와 착용 소감, 다양한 질문과 답변 등을 주고받음으로써 시계에 관한 국내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방대한 정보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timeforum.co.kr
‘아름다움’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정의가 필요치 않은 것은 기본이 충만할 때다.
스위스의 전 지역에 대한 평가는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 스위스는 가는 곳마다 ‘아! 너무 좋다’, ‘이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 아름다움 속에서 살아온 덕분일까? 스위스 사람들은 여행객들에게 한결같이 친절을 베풀어 준다. 보드라운 속살처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다가와 상대를 배려한다.
>>글 이신화 여행작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베른에서 만난 아인슈타인
필자는 알프스를 기대고 있는 프랑스 남부의 안시(Annecy)에서 국경을 벗어나 제네바(Geneve)에 도착한다. 제네바의 레만 호수에는 하늘 높이 분수가 솟구치고 있다. 롤렉스 간판들, 거리의 꽃시계 등이 시계의 나라임을 다시 인식시켜 준다. 주마간산으로 도심을 돌아보고 베른(Bern)으로 장소를 이동한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은 가을비에 촉촉하게 젖었다. 수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주 작다. 기차역 주변 말고는 인적도 뜸해 번잡한 구석을 찾을 수 없다. 숙소에서 준 대중교통 프리 티켓도 필요치 않다. 그저 작은 소읍의 풍치를 걸어 다니면서 보면 된다. 베른은 스위스 최초로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구 시가지의 골목에는 유럽에서 가장 긴 아케이드가 이어진다. 베른 도시가 생성됐던 12세기 후반에 지어지기 시작해 16세기 중반에 완성된 건물들이다.
그 건물에는 저장고 형태의 반 지하 상점이 늘어서 있다. 엇비슷한 건물 형태에 잠시 길을 잃을라치면 그럴 때마다 이 도시의 시계탑이 랜드마크 역할을 해준다. 시계탑은 감옥탑 이전에 베른의 출입구 역할을 했던 곳. 매시 정각 4분 전, 곰들과 광대들이 나와 춤을 추는 시간. 그 즈음이면 관광객들은 고개를 외로 꼬고 있다. 아랑곳하지 않고 시계탑 아래로 버스들이 오간다.
그것 말고도 자꾸만 시선과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은 다양한 테마로 만들어진 인형과 석조물이 아우러진 작은 분수들. 거기에 가는 곳마다 만나는 곰 형상들. ‘베른’이라는 이름 자체가 도시를 세운 체링겐 가문이 곰 사냥을 해서 시작됐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뉘데크 다리 건너편에는 곰 공원도 있다.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미공원 가는 길목이라서 으레 발길을 멈추지만, 왠지 어설프기만 한 곰 공원에 배시시 웃음 짓는다. 그 외 스위스 최대의 고딕양식 건물인 대성당(높이 100m)과 국회의사당 등이 포인트다.
욕심 없이 베른 시가지를 배회하다가 한 유명한 인물을 만난다. 아인슈타인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많을 텐데 왜 베른에서는 거대한 아인슈타인 박물관을 만들었을까? 아인슈타인과 베른은 어떤 연계가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취리히 공과대학을 다녔고 베른에 온 것은 직장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의 이력은 어느 곳에서나 많이 나오니까 생략하기로 하고 흥미로운 사적인 삶을 들여다보자.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공과대학 동창으로 상대성 이론 논문 작성을 거들었던, 첫 아내 밀레바 마리치와 결혼했다. 그가 결혼해 살았던 아파트는 구 시가지에 ‘아인슈타인 하우스’로 남아 있다. 그런데 역사박물관에서 더 자세하게 아인슈타인의 사생활을 엿보게 된다. 그의 첫사랑은 물론이고 그가 사랑했던 마지막 사랑까지 소개되어 있었다. 오직 연구만 하는 ‘샌님’이라는 고정관념이 확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인슈타인에게는 몇 명의 여자가 있었던 것일까? 아인슈타인은 결혼생활 16년 만에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아인슈타인의 간통이었다. 이혼 위자료는 아직 타지도 않은 노벨상의 상금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혼 후, 달랑 넉 달 만에 내연의 관계였던 사촌 엘자 뢰벤탈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의 바람기는 재혼 후에도 잠들지 않아 평생 비서와 유부녀, 소련의 여성 스파이 등 여러 명의 연인을 두었다. 더불어 그는 아이들도 살갑게 돌보지 않았다. 밀레바와 혼전에 얻었던 딸은 출생 이후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혼 후에는 두 아들과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둘째 에두아르트는 아버지가 가족을 버렸던 일을 평생 용서하지 않아 두서없는 원망의 편지들을 보내곤 했고, 결국에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아인슈타인은 1932년 히틀러 집권 3주 전에 아슬아슬하게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미국에서도 생활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하여튼 유명인들의 ‘가십(gossip)은 오랫동안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젊은 처녀의 어깨’라는 융프라우 요흐에 올라
베른에서 기차로 툰(Thun)호수 - 스피에츠(Spiez) - 인터라켄(Interlaken)까지 40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융프라우 요흐((Jungfrau Joch, 3454m)까지 오르려면 산악열차를 타야 한다. 시작점은 인터라켄의 동역(Ost)이다. 동역에서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까지 올라가 다시 열차를 갈아타면 북벽 아이거 바로 밑 동네인 클라이네 샤이덱(Kl Scheidegg, 2061m)에 멈춘다. 이곳은 융프라우 정상과 그린델발트(Grindelwald, 1034m)로 가는 열차가 두 갈래로 나뉘는 환승역이다. 만년설을 가득 덮고 있는 위풍당당한 아이거 북벽이 우뚝 서 있다. 설산을 눈앞에 두고 마을 길 따라 1~2시간 정도 트레킹을 즐긴다. 가까스로 오르내리는 산악열차와 넓은 초지에 펼쳐지는 야생화, 햇살과 시간에 따라 바뀌어가는 산 그림자, 그림 같은 집들, 작은 호수,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 등. 그 아름다움의 매력은 군더더기 말이 필요치 않다.
이 마을을 비껴 융프라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악열차에 오른다. 아이거와 묀히의 암반을 뚫고 설치한 톱니바퀴 레일은 총 9.3㎞. 1896∼1912년 건설되었으며, 최대경사도 25도의 압트식(Abt-System)으로 오르는 데 50분이 걸린다. 열차를 내려서는 그저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 레스토랑도 있고,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 판매도 하고 한 조각 선물도 준다. 얼음궁전(Ice Palace)을 관람한 후 통로를 따라 나가면 900m 두께의 눈밭, 플래토(Plateau)에 도착한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스핑크스 전망대(3571m)가 있다. 북동쪽에는 묀히와 아이거, 남동쪽에는 알레치 빙하, 남쪽에는 알레치호른, 더 멀리에는 몬테로사 산이 있다. 하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기상 때문에 온전한 풍치를 보는 일은, 순전히 운에 맡겨야 한다. 결국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클라이네 샤이덱 주변에 펼쳐지는 풍광과 그린델발트 마을을 에둘러 봤으니 충분히 행복한 여정이다.
◇007 촬영지, 쉴트호른의 길목 마을, ‘뮈렌’ 아름다워
융프라우보다 느낌이 더 좋은 곳은 쉴트호른(Schilthorn, 2970m)이다. 라우터브루넨(806m)을 기점으로 찾아가야 한다. ‘울려 퍼지는 샘’이란 뜻을 가진 라우터브루넨은 정말로 아름다운 산골 마을이다. 247m의 슈타우프바흐 폭포를 비롯해 70여 개의 폭포가 연이어 높은 암벽을 타고 흘러내린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1749∼1832)는 1779년, 이곳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낭만파 음악가 멘델스존(1809∼1847)은 폭포 앞에서 괴테와 함께 그림을 그리며 보냈다. 시인 바이런(1788∼1824)도 이 폭포에 시를 남겼다.
폭포를 지나 마을 농장 길을 따라 4㎞ 정도 걸어가면 쉴트호른 케이블카를 타는 곳이다. 5~6번 정도 정차와 운행이 반복된다. 특히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산비탈을 등지고 사는 뮈렌(Murren, 1650m)이라는 마을은 그림 같이 아름답다. 고요할 정도로 조용한 고산 마을, 거칠고 척박한 높은 산봉우리 속에서도 화사한 꽃 화분으로 예쁘게 꾸미고 가꿀 줄 아는 사람들. 이 마을에 어찌 반하지 않겠는가? ‘이 높은 곳에서 뭐 먹고 살지?’ 하는 한국식 사고가 부끄러워지는 마을이다.
쉴트호른 전망대는 융프라우하고는 다르다. 터널이 아닌 시원한 야외 공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융프라우 요흐를 비롯해 묀히와 아이거 봉우리 3개가 한눈에 들어온다. 또 이곳은 유명한 시리즈 영화인 007 촬영장소로 활용되어 마치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재미도 준다. 전망대의 식당(피츠 글로리아, Piz Gloria)’은 야외 풍경을 보면서 즐기라고 뱅글뱅글 움직이고 있다. ‘007 제6탄-여왕 폐하 대작전’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식사한 곳에서 주인공인 것처럼 파스타를 먹는다. 분명코 융프라우만 보고 왔다면 반쪽 여행만 하게 되는 꼴이 될 것이다.
◇귀족, 부자들이 만든 휴양도시, 생 모리츠
한국 여행객 대부분이 융프라우 다음으로 가는 곳은 루체른(Luzern)이다. 필자는 루체른을 거쳐 생 모리츠(ST.Moriz)로 향한다. 스위스 여행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열차 여행이다. ‘Express’라는 이름으로 열차 관광 상품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중 빼어난 명품 열차가 베르니나(Bernina) 익스프레스다. 베르니나는 스위스를 가로질러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오래된 산악 열차다. 2008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열차 코스가 있다. 투시스(Thusis) ~ 생 모리츠(61.6㎞, 알불라 라인), 생 모리츠 ~ 티라노(Tirano)(60.6㎞, 베르니나 라인)를 합친, 122㎞ 구간이다.
이 열차 구간에 생 모리츠가 있다. 생 모리츠는 스위스 동쪽 끝 부분인 그라우뷘덴(Graubunden) 주의 엥가딘(Engadin)산맥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세계적인 휴양도시다. 스위스에서는 가장 일조량이 많다. 365일 중 320일이 맑은 마을. 그래서인지 생 모리츠에 도착하면 ‘그 맑음’에 눈이 부시다. 이 마을에는 예로부터 이름난 명사(코코샤넬 등)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스위스가 관광산업을 시작했을 때 돈 많은 영국 귀족들이 유서 깊은 호텔을 세웠고 스위스에서 가장 먼저 전기를 끌어들인 곳도 바로 생 모리츠다. 봅슬레이가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당시엔 영국 귀족들의 스포츠였다고 한다. 그 흔적들이 생 모리츠에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은 고산을 기대어 터전을 잡았고 그 중간에 호수가 있다.
가파른 언덕이 있는 도르프(Dorf)와 온천이 모여 있는 바트(Bad), 두 마을로 이뤄져 있다. 도르프란 독일어로 ‘마을’, 바트는 ‘온천’이라는 뜻인데, 예로부터 온천으로 유명해 붙여진 이름이다. 호화로운 호텔과 부호들의 별장이 즐비하고, 류머티즘이나 심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온천 근처에는 리조트도 들어서 있다. 그저 휴양도시라서 오래된 문화유적도 없다. 긴 역사의 흔적도 없다. 마을에 짙게 내린 가을 풍치와 산정의 겨울 풍치를 보면서 호숫가를 에돌아보면 된다. 흰 설국이 된다면 더 멋질 것이며, 이 도시는 엄청나게 북적거릴 것이다. 생 모리츠를 벗어나면서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 너무 아쉬워서 베르군(Bergun, Bravuogn) 역에 내려 한참이나 시간을 소요했다.
또 취리히로 나오는 길목에서는 ‘마이엔펠트(Maienfeld)에서 하룻밤을 유했다. 이 마을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배경이 된 곳. 이 마을에는 하이디와 할아버지가 살았던 집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박물관이 있다. 조용한 스위스의 시골마을에서의 하룻밤. 와이너리가 유난히 많은 이 마을의 호텔 바에 앉아 와인 잔을 기울인다. 동네사람들만 왁자하게 떠들던 그날 밤, 여행객의 상념은 깊어간다. 왜 스위스를 떠나는 게 이리도 힘이 드는 것일까? 단지 고국 떠난 여행객의 짙은 외로움만은 아니었으리라.
교통편 한국에서는 취리히 공항을 경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또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각지에서 열차가 수시로 연결된다. 취리히 공항에서 베른까지는 1시간 단위로 열차가 오간다. 각 여행지 선택은 다음 일정에 의해 결정하면 된다. 생 모리츠는 이탈리아와 인접해 있고, 베른, 제네바는 프랑스와 통한다.
현지 교통 정보 스위스는 철도가 발달된 도시. 대부분 기차로 이동하면 된다.
스위스 카드 구입하기 스위스 패스는 아주 유용하다. 카드마다 특전이 다르므로 선택을 잘 하는 것이 좋다. 패스를 이용하면 열차는 물론 포스트버스 등 대중교통 대부분을 이용할 수 있으며 케이블카 할인, 박물관 무료 등 혜택이 많다.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다면 날짜에 맞는 카드를 구입하면 된다. 또 스위스 철도는 유레일패스로도 이용할 수 있지만 할인 적용이 다르다. 열차 시간표는 홈페이지(www.rhb.ch)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운행 시간은 유럽 전역에서 아주 정확하다.
대표 음식들 퐁뒤(Fondue)가 있다. 기본적으로 긴 꼬챙이 끝에 음식을 끼워 녹인 치즈나 소스에 찍어 먹는 요리다. 18세기 초 알프스의 사냥꾼들이 사냥 중 모닥불에 치즈를 녹여 마른 빵을 부드럽게 적셔 먹은 것에서 유래했다. 또 초콜릿이 유명하니 선물용으로 구입해도 좋다.
숙박정보 스위스는 우리나라에 비해 환율이 높다. 비싼 호텔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값싼 호스텔을 이용하면 된다. 융프라우나 쉴트호른을 가려면 으레 라우터브루넨을 경유해야 한다. 라우터브루넨의 작은 마을의 밸리 호스텔(Valley Hostel)은 편하게 잘 되어 있다. 생 모리츠는 휴양지라서 숙박 가격이 비싼 편. 유스호스텔을 이용하면 아주 좋다. 스태프들이 친절하고 음식이 아주 맛이 좋다.
화폐단위 유로 대신 스위스 프랑을 쓴다.
언어문제 스위스 인들은 노인층까지도 영어를 잘 구사한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아 관광 안내소에는 한국어로 된 팸플릿도 있다.
유의할 점 여행 떠나기 전, 융프라우에 대한 정보는 많이 복잡할 수 있다. 미리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현지에 가면 관광체계가 잘되어 있다. 역에 가서 목적지만 말하면 그들이 알아서 표를 끊어준다. 한국에서는 할인 티켓을 프린트해 가는 게 좋다. 또 여행 중 농장의 철조망을 유의해야 한다. 전류가 흐르고 있어서 가까이 가면 감전의 우려가 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골프 출전 선수를 가리기 위한 세계골프랭킹(WGR) 포인트가 지난 14일부터 시작됐다. 국제골프연맹(IGF)는 2016년 7월 11일까지 세계남녀골프랭킹을 반영해 리우올림픽 출전 골프선수 남녀 각 60명을 정한다.
세계랭킹 15위에 드는 선수들은 올림픽에 1순위로 출전한다. 다만, 1개국에서 최다 4명만이 출전할 수 있다.
현재 세계랭킹으로 올림픽 출전선수를 뽑는다면 미국 남자의 경우 15위 안에 드는 버바 왓슨, 맷 쿠처, 타이거 우즈, 조던 스피스 등 4명이다. 랭킹으로 출전 선수가 먼저 채워지면 그다음은 국가별 쿼터를 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 중 출전을 신청한 나라는 최대 2명의 선수를 출전시킬 수 있다. 세계랭킹 15위내에 1명이 있다면 1명만이 더 받을 수 있다. 올림픽 개최국인 브라질은 출전권 1장을 보장받았다.
메달은 2개가 걸려 있다. 남녀 개인전 금메달 1명씩이다. 단체전은 없다. 개인전만 72홀 스트로크플레이로 열린다. 동타일 경우 3개홀 서든데스로 승자를 결정한다.
리우올림픽은 2016년 8월 5일부터 21일까지 열린다. 남자는 첫째주, 여자는 둘째주에 경기를 개최한다.
골프는 200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7인제 럭비와 함께 정식종목으로 선택됐다. 이는 올림픽 82년만의 일이다. 독일에서 1936년에 마지막으로 골프대회가 열렸다. 독일이 우승할 것이라는 소식에 히틀러가 차를 타고 가던중 졌다는 연락을 받고 되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에 대한 칼럼이 일본 신문에 실린 것이 있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올림픽에서 마지막 골프대회가 열린 것은 자료상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로 돼 있다. 어는 것이 맞는지는 불명확하다.
그렇다면 세계골프랭킹은 어떻게 정하는 것일까. 세계골프랭킹 산정방식은 남자와 롤렉스랭킹인 여자가 같다.
선수는 출전한 대회와 순위에 의해 포인트를 받게 된다. 받은 포인트는 13주, 약 3개월간 유지된다. 이후 1주일마다 획득한 포인트는 92분의 1씩 감점된다. 1년은 52주, 2년은 104주가 된다. 104주에서 91주를 빼면 13주가 되므로 약 2년이 지나면 벌어들인 포인트가 제로(0)가 된다.
각 대회를 통해 획득한 포인트를 2년간 출전한 대회수로 나누면 평균포인트가 나온다. 이것으로 랭킹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랭킹 1위 애덤 스콧(호주)은 8.857점, 7위로 밀려난 타이거 우즈는 6.3636점이다.
대회마다 배분표가 다르다. 특히 출전선수에 따라 가산점이 큰 차이가 난다. 대회는 WGR 200위이내, 자국투어 전년도 랭킹 30위까지 출전하고, 어떤 선수가 출전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는 점이 특이하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가 아닌 코리안 투어 한국오픈에 타이거 우즈나 애덤 스콧 등이 출전하면 포인트가 확 올라간다.
대회마다 1~1000포인트가 주어지며 이는 39단계로 나눠져 포인트가 적립된다.
다만, 4대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US오픈, PGA선수권, 디 오픈 챔피언십(39단계)과 제5의 메이저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38단계)은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포인트가 주어진다. 메이저대회는 1위 100점, 2위 60점, 3위 40점, 4위 30점, 5위 24점, 6위 20점, 7위 18점, 8위 16점, 9위 15점, 10위 10점이다.
한국남자는 최경주가 71위, 김형성이 89위에 올라 있다. PGA 투어 1승씩을 거둔 노승열이 101위, 배상문이 157위를 마크하고 있다.
여자는 박인비가 3위, 유소연이 9위에 랭크돼 있다. 하지만 앞으로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어 누가 출전할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글 안성찬 골프대기자/ 골프문화칼럼니스트
롤렉스의 전통은 ‘완벽의 추구’라는 장인 정신에 의해 이어져 내려왔다. 롤렉스가 추구하고자 하는 길은 완벽한 품질의 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오직 품질로만 승부한다’는 창업자 한스 빌스도르프(Hans Wilsdorf)의 경영 철학 아래 품질과 전통의 가치, 참신함 그리고 기술적인 혁신의 완벽한 조화는 롤렉스의 영속성을 지켜나가는 비결이다. 그러한 롤렉스 철학이 바로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와 방수시계를 만들었고, 전 세계인들에게 최고의 시계 브랜드로 사랑을 받고 있는 원동력이다.
◇손목시계 제조의 역사를 이끌다= 장인 정신과 혁신적인 기술력으로 20세기 시계 제조의 역사를 전환시켜온 롤렉스. 세대를 초월한 전통, 고결함, 품위의 가치를 추구하는 롤렉스의 역사는 1900년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24세의 나이로 런던에 시계 전문 유통회사를 설립했던 바바리아 출신의 사업가인 한스 빌스도르프는 회중시계가 주류였던 당시, 손목시계의 미래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그는 조심성이 많은 대중들에게 안정성을 보장하고 손목에 착용할 만큼 소형 시계를 제조하기 위해 스위스에서 제조된 높은 정확도의 무브먼트(Movement)를 장착시켰다. 이렇게 탄생한 손목시계는 유행에 민감한 남녀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빌스도르프는 그의 창조물에 누구나 발음하기 쉬운 ‘롤렉스(Rolex)’라는 브랜드 명을 부여했다.
그는 시계 무브먼트의 정확성과 품질 개발에 초점을 뒀다. 1910년 스위스에서 손목시계 역사상 최초로 공식적인 크로노미터 인증을 획득했고, 1914년에는 그 당시 항해용 큰 시계에만 크로노미터 인증을 수여하던 영국의 큐(KEW) 천문대로부터 손목시계로는 처음으로 A등급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았다. 이후 손목시계는 정확성과 동의어가 됐다.
◇세계 최초의 방수·태엽시계= 빌스도르프는 1926년 시계의 안정성을 향상시키고 전 세계에 롤렉스 제품의 우수성을 보여주려는 노력으로 ‘오이스터(Oyster)’라는 이름의 세계 최초의 방수·밀폐·먼지 방지 시계를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다.
런던의 속기사였던 메르세데스 글릿즈가 두 번째로 1927년 영불 해협을 헤엄쳐서 횡단한다는 소식을 접한 빌스도르프는 그에게 방수 시계인 오이스터를 협찬했다. 글릿즈는 15시간 15분에 걸쳐 영불해협 횡단에 성공했고, 시계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는 시계 업계의 신화가 됐다. 이 이야기는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롤렉스에 대한 수많은 증언의 시작일 뿐이며 그들의 탐험과 용기는 롤렉스 브랜드의 우수성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게 됐다.
이후 빌스도르프는 데일리 메일(Daily Mail) 전면에 방수 손목시계의 성공을 홍보하고 오이스터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주력했다.
오이스터는 곧 또 다른 탁월한 기능을 갖게 된다. 1931년 손목의 움직임으로 태엽이 감길 수 있도록 해 시계가 영구적으로 작동하는 자동 태엽 메커니즘의 원조가 되는 영구 회전자(Perpetual rotor)를 개발한 것이다. 이 때부터 수동 시계는 시대의 뒤편으로 물러나게 된다. 이후 1945년 최초의 자동 날짜 표시 기능이 있는 최초의 크로노미터 시계를 비롯해 1953년 최고 100m의 깊이로 방수·반압 기능을 갖춘 ‘서브마리너(Submariner)’에 이르기까지 발전을 거듭한다.
◇GMT-마스터 II= 904L 스틸 소재의 오이스터 퍼페츄얼 GMT-마스터 II 모델은 두 가지 색상이 동시에 사용된 획기적인 세라크롬(CERACHROM) 베젤이 장착됐다. 세라크롬 베젤은 롤렉스가 자체 개발해 2005년 특허를 획득한 세라믹 소재다. 24시간을 담은 세라크롬 베젤은 낮과 밤 시간을 구분하기 쉽도록 반은 블루, 반은 블랙으로 표시돼 1955년 오리지널 GMT-마스터 베젤의 전통을 잇는다.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 ‘자동차 경주 레이서들을 위한 시계’로 태어났다. 올해 출시 50주년을 맞은 데이토나는 2013년부터 F1의 글로벌 파트너이자 공식 타임키퍼로 선정됐다. 올해 신제품은 데이토나 컬렉션 최초로 플래티넘으로 제작돼, 플래티넘 모델에만 사용되는 아이스 블루 다이얼과 세라믹 소재의 체스트넛 브라운 컬러의 세라크롬 베젤을 장착했다.
◇데이-데이트= 롤렉스는 2013 바젤월드에서 컬러풀한 가죽 스트랩이 장착된 18캐럿 옐로우, 화이트, 에버로즈 골드 소재의 새로운 데이-데이트를 선보였다. 1956년 첫 등장 때 날짜와 함께 요일을 약자가 아닌 전체 단어로 표시한 최초의 손목시계였던 데이-데이트는 명성과 품격의 상징으로, 골드나 플래티넘으로만 제작된다. 신제품은 데이-데이트만의 우아함을 보다 편안하게 표현했다.
◇레이디 데이트저스트 펄마스터= 2013 바젤웰드에서 새롭게 소개된 레이디 데이트저스트 펄마스터는 롤렉스가 자체 주조한 18캐럿 에버로즈 골드 소재 케이스와 브레슬릿, 최고급 다이아몬스가 세팅된 링크, 진주 자개 다이얼, 핑크골드톤 연꽃 모티브로 주목받았다. 특히 롤렉스는 솔리드 링크의 부드러운 라인으로 최고의 여성미와 개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착용감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