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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드웨어는 변했어도 소프트한 감성은 그대로
- 우리 시대 중장년은 어떤 음악을 어떻게 즐기고 있을까?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나만의 주크박스를 플레이하는 요즘이지만, 그렇다고 듣는 음악까지 가볍게 치부할 순 없다. 여전히 중장년의 귓가엔 그 시절 울림과 설렘을 안긴 묵직한 감성의 음악들이 흘러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50대 이상 남녀 42명 대상 온라인 서베이 진행 음악은 나의 일상 ,혼자일 때 들으면 더 좋더라! 얼마나 음악을 듣느냐는 질문에 ‘항상 듣는다’(38.1%)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과반수가 주 5회 이상, 대부분은 주 3회 이상 일상에서 음악을 즐기는 모습. 스마트폰이나 소형 기기의 발달로 음악 감상이 수월해진 덕분인 듯하다. 중장년은 주로 ‘혼자일 때’(40.5%)나 ‘스트레스 풀 때’(38.1%), 위로가 필요하거나 어떤 추억이 떠오를 때(33.3%) 음악을 가까이했다. 나에게 힘이 되어준 노래 가사는? ♪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 버렸죠. 그대 힘든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 ‘걱정 말아요 그대’ ♪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 ‘나이 서른에 우린’ ♪ “When I'm feeling sad I simply remember my favorite things and then I don't feel so bad”(언젠가 내가 슬플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간단하게 기억해내면 그땐 난 슬프지 않지) - ‘My Favorite Things’ ♪ “먼 훗날에 돌아온다면 변함없이 다정하리라” - ‘미련’ ♪ “Let it be”(순리에 맡겨라) - ‘Let It Be’ 8090 발라드 들으면 기분 전환! 주로 듣는 음악 장르는 발라드, 팝송, 트로트 순으로 나타났다. 최근 트로트 열풍 속 한때는 주류였던 중장년 세대이지만, 그보다는 발라드나 팝송 등 감성적인 멜로디와 가사를 담은 음악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과반수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음악을 선호하고, 최신 음악을 즐기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기분 전환’(47.6%)을 꼽았다. 그 시절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 ‘하얀나비’(김정호)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추억만들기’(김현식) ♪‘목마와 숙녀’(박인희) ♪‘그날이 오면’(노찾사) ♪‘서른 즈음에’(김광석) ♪‘너를 위해’(임재범) ♪‘낭만에 대하여’(최백호) ♪‘사랑하기 때문에’(유재하) ♪ ‘For the Peace of All Mankind’(알버트 하몬드) ♪ ‘Billie Jean’(마이클 잭슨) ♪‘Non Ho L'eta’(질리오라 칭게티) ♪‘Almaz’(랜디 클리포드) 스마트폰 하나면 언제 어디서든 플레이! 세월이 변한 만큼 중장년의 음악 감상 방식도 더욱 캐주얼해졌다. 대부분이 스마트폰 앱이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맘껏 듣고 있었다. 실제 음악 앨범을 구입하기보다는 인터넷 다운로드를 이용하는 이가 과반수다.
- 2020-08-3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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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암송해보니
- 며칠 전, 송파 문인협회에서 시 낭송을 난생 처음 해봤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4명이 4부분으로 나눠서 낭송했다. 몇 번 연습을 하고 보면서 낭송했는데 기억에 남는 구절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올 연말 행사에는 보고 읽는 것이 아니라 안 보고 암송하기로 했다. 박인환문학관을 다녀왔던 기억을 떠올려 ‘목마와 숙녀’를 선정했다. 그 동안 암기능력은 개발해본 적이 없다. 줄줄이 기억하던 은행 계좌 번호도 매번 통장을 꺼내 봐야 한다. 노래방에 가도 노래 가사를 몰라 모니터 자막 없이 못 부르는 지경이다. 술을 좋아하다 보니 알코올에 뇌세포가 많이 죽은 모양이다. 우선 문제는 아예 생각나지 않는 현상이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우리 가족력에 치매는 없었는데 필자에게 가능성이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손바닥에 커닝페이퍼처럼 사인펜으로 첫 머리만 메모해두는 방법, 맨 앞좌석에 앉은 사람에게 큰 글씨로 시를 출력해서 들고 있게 하여 안 보는 척 보는 방법 등, 여러 가지 편법이 생각났으나 그냥 암송하기로 했다. 두 번째 문제는 단어가 생소하다 보니 내가 쓰기 편한 단어를 만드는 버릇이다. ‘숙녀’라는 단어는 요즘 잘 쓰지 않는 단어이다 보니 ‘여인’, ‘그녀’등이 대신 튀어 나왔다.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가 ‘목마를 탄 여인‘으로 둔갑했다. ’술을 마시고‘는 ’술을 마시며‘로 ’방울 소리 울리며‘는 ’방울소리 울리고‘로 마구 뒤섞였다. 암송을 방해하는 요소로 각각의 연이 끊어질 때 마다 3초씩 멈췄다가 이어가는 것이 문제였다. 천천히 분위기를 잡다 보면 다음 단어가 막혔다. 문장을 몽땅 외워 좀 빠르게 숨 쉬지 않고 끝내는 방법으로 바꿨다. 끝없이 말이 이어지는 여자들의 수다에서 배운 요령이다. 그냥 멈추는 것과 숨을 쉬기 위해 멈추는 것은 다르다. 나중에 속도만 조정하면 되는 것이다. (/br) 1차 테스트를 받아봤다. 그런대로 암송에 성공했다. 아직 건재하다는 얘기이다. 기억을 살려 빨리 끝내려는 마음에 빨라지는 톤만 고치면 된단다. 연말 행사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더욱 세련되어 질 것이다. 암송 연습을 해보니 좋은 점도 있었다. 뇌의 기억 세포를 살려 놓는 것이다.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 과정에서 잠자던 세포를 살려내는 작업이다. 치매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br) 거리를 걷거나 계단을 오르면서 암송을 하면 힘든 줄 모른다. 발은 저절로 걸어가지만, 머리 속에서는 기억 세포를 계속 굴리는 것이다. 혼자 중얼거리고 다니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보지만 개의치 않는다. 시를 그냥 읽었을 때와 다른 것은 단어 하나하나가 깊이 박힌다. 책을 읽을 때 시 암송 습관이 도움 되기도 한다. 그냥 스쳐지나가던 단어가 속속들이 드러난다. ‘~한다’ 등 마치는 끝말도 시처럼 또렷하게 남는다. 이번 시 낭송이 끝나도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마음에 드는 시 하나를 뽑아 암송할 생각이다. 무미건조하게 생각 없이 길을 걷거나, 힘들게 계단을 올라갈 때 써먹자는 의도이다. 얼마 후 있을 히말라야 트레킹 때 하루 20km나 걸어야 한다. 지친 다리의 고통을 잊기 위해서도 시 암송이 도움 될 것만 같다.
- 2018-11-2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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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 지금은] 전설의 ‘70가수’들 ‘2016’에 응답하다
-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 포기가 돋아나오고…’ 길거리 음반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다. 중장년이라면 금세 알지만 10~30대 젊은 층은 거의 모르는 노래다. 1970년대 활동했던 정미조(67)가 부른 ‘개여울’이다. 그 정미조가 37년 만에 대중 곁으로 돌아왔다. 정미조뿐만 아니다. 정미조처럼 197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다 활동을 중단했던 가수들이 최근 대중음악계에 속속 복귀하고 있다. 지난 3월 14일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 로비에서 꽃다발을 든 50~70대 수십 명이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함성을 지르고 눈물을 흘렸다. 35년 만에 가요계에 복귀하는 포크 1세대 가수 박인희(71)였다. “살아가면서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 못 했다. 잠깐 노래했었고 좋아하던 방송을 하다가 떠났는데 이렇게 많은 분이 기다려 주시고 만나 볼 기회를 주시다니 너무 감격스럽다. 내 음악을 잊지 못하는 팬들을 보고 앨범 하나 만들자는 꿈을 품게 됐다.” 1981년 미국에 이민 가면서 대중음악계를 떠났다가 35년 만에 대중 앞에 다시 나선 박인희는 한창 활동했을 때의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특유의 단아함은 잃지 않았다. 1970년대 혼성듀엣 ‘뚜아에무아’ 출신인 박인희는 1972년 솔로로 나선 뒤 모닥불’, ‘끝이 없는 길’, ‘그리운 사람끼리’, ‘세월이 가면’, ‘봄이 오는 길’ ‘방랑자’ 등 서정성이 강한 멜로디와 가사의 포크 음악을 직접 만들어 큰 사랑을 받은 1970년대 보기 드문 싱어송라이터였다. 또한, 박인희는 맑고 청아한 음성으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등 시를 낭송한 음반으로도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박인희의 트레이드마크인 통기타와 긴 생머리, 그리고 나팔바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박인희는 4월 30일 서울 콘서트를 시작으로 일산, 수원 등 전국 투어에 나섰다. 박인희는 “가을께 새 앨범도 낼 계획이다. 최근 만든 곡이 60곡쯤 된다. 내게 맞는 곡은 내가 부르고 만든 곡에 맞는 가수가 있으면 줄 것이다. 가수 박인희보다 싱어송라이터로서 넓은 의미의 음악 속에 살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박인희…정미조…중장년팬들 가슴 설레 “가수로 복귀해 너무나 기분 좋습니다. 이젠 제 삶을 노래로 들려줄 때인 것 같아요. 저를 기억해주시는 분들뿐만 아니라 저를 새롭게 아는 분들에게도 가수 정미조가 어떤 가수인가를 보여주고 싶어요.” 인기 최정상이던 1979년 전격 은퇴를 한 뒤 37년 만에 대중 앞에 다시 선 정미조다. 차분하고 매력적인 보이스로 ‘개여울’ ‘휘파람을 부세요’ ‘불꽃’ 등으로 1970년대 스타 가수로 명성을 날렸던 정미조가 지난 2월 전격 복귀해 수많은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 정미조는 1979년 은퇴에서 2016년 복귀까지 기간을 제목으로 한 앨범 ‘37년’을 발표하며 가수로서 대중을 다시 만났다. ‘귀로’ ‘인생은 아름다워’ ‘7번 국도’ 등 재즈, 발라드, 탱고, 보사노바까지 다양한 장르의 세련된 신곡과 중장년층 뇌리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개여울’ ‘휘파람을 부세요’ 등 자신의 히트곡을 함께 담은 새 앨범은 정미조를 기억하는 중장년 팬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인기 절정의 1979년 가요계를 전격적으로 은퇴하고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던 정미조는 이후 교수 생활에 전념했다. 그리고 가요계를 떠난 지 35년이 흐른 2014년 만난 최백호가 앨범 발표를 권유하며 음반 제작자를 소개해 준 게 컴백의 계기가 됐다. 정미조는 수원대 조형학부 서양화과 교수로 정년퇴임(2015년)을 앞둬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노래에 대한 그리움이 터져 복귀 용기를 냈다고 했다. 음반 발매와 함께 가요계로 돌아온 정미조는 지난 4월 10일 콘서트를 갖는 등 가수 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했다. 이에 앞서 33년간의 공백을 깨며 2014년 6월 새 앨범 ‘It’s Not Too Late’를 들고 복귀한 섹시 디바의 원조 김추자(65)는 무대를 통해 대중을 지속해서 만나고 있다. 1969년 신중현에 의해 발탁돼 가요계에 데뷔한 김추자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도발적 퍼포먼스,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거짓말이야’, ‘꽃잎’, ‘님은 먼 곳에’,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1970년대 한국 최고의 여가수로 우뚝 섰다. 1970년대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에서 알 수 있듯 김추자의 인기는 엄청났다. 김추자의 복귀 이후 활동은 그녀를 기억하는 중장년 팬과 그의 노래를 거미, 조관우 등 수많은 후배 가수의 리메이크로 접한 신세대들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가며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다. ‘70가수’ 음악, 한국 대중음악 스펙트럼 확장 197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두 명의 남자 가수도 최근 복귀해 중장년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목회 활동을 하다 2014년 신곡 ‘걱정을 말아요’ 등이 담긴 데뷔 55주년 기념 앨범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복귀한 윤항기(73) 역시 4월 30일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나의 노래, 나의 인생’이라는 타이틀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윤항기는 1959년 대한민국 최초의 록밴드라 할 수 있는 키 보이스(Key Boys)의 멤버로 데뷔, 가수 생활 57년째를 맞았다. 1974년 솔로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별이 빛나는 밤에’ ‘장밋빛 스카프’ ‘이거야 정말’ ‘나는 행복합니다’ 등 숱한 히트곡을 내며 스타 가수로 맹활약했다. 윤항기는 “나는 57년 동안 음악을 떠나 생활한 적이 없다. 그룹과 솔로는 물론 성직자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음악을 했다. 나같이 나이 많은 70대 가수들이 설 방송과 무대가 없어 안타까웠다. 나 같은 원로 가수들도 계속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에서는 70대 이상의 훌륭한 가수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존경도 받고 있다”며 여전한 현역 가수임을 강조했다. 윤항기는 가을부터 전국투어에 나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신드롬을 일으키며 높은 반응 속에 1월 16일 막을 내린 tvN 드라마 에서 라미란이 불러 유명해진 ‘황홀한 고백’의 원곡 가수 윤수일(61)도 1970년대 가수 컴백 대열에 합류한 스타 가수 중 한 사람이다.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데뷔해 ‘아파트’ ‘황홀한 고백’ 등으로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아온 윤수일은 4월 24일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열린 ‘윤수일 밴드 40주년 콘서트’를 계기로 무대 공연과 방송활동을 재개했다. 윤수일은 “세월이 화살 같다는 말을 실감한다. 여전히 나는 가수다. 내 노래를 기본적으로 활동하면서 후배 양성에도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35년 만에 복귀한 박인희를 비롯해 정미조, 김추자, 윤항기, 윤수일 등 1970년대 가수들이 다시 대중 앞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것은 최근 들어 신중년의 문화소비가 증가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장년층이 젊은 날을 함께했던 1970년대 가수들의 음반 구매와 공연 관람을 많이 하면서 신중년 가수들이 속속 대중음악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또한, 같은 드라마나 KBS 같은 음악 예능프로그램에서 1970년대 음악을 소개하거나 리메이크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대중문화 전반에 1970~1980년대 복고바람이 거세지면서 1970년대 가수에 관한 관심이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 층에서도 높아진 것도 1970년대 가수 복귀 붐의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에선 197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가수들의 복귀가 새로운 트렌드와 진화, 완성도 높은 음악, 탄탄한 가창력의 담보 없이 복고 바람에 기대어 단순한 추억팔이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하지만 1970년대 가수들의 복귀 바람은 대중음악계와 대중에 긍정적인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의 노래와 함께했던 중장년층에게 젊은 날의 추억을 선사할 수 있고 신세대에게는 1970년대 음악의 문양과 특성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요즘 신세대 가수들에게서 들을 수 없는 연륜과 정서가 담긴 60~70대 가수들의 음악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스펙트럼이 확장되는 것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 2016-05-16 0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