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있는데 잘 안 되는 것이 있다. 사회공헌도 그렇다.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을 때 하자고 마음먹지만 그런 여건은 쉬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단한 결심 없이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작지만 큰 방법을 소개한다.
생활 속 지구 살리기
지난 열두 달, 정말 더웠다.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0월까지 인류는 12만 5000년 역사상 가장 더운 한 해를 보냈다.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클라이밋 센트럴’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평균보다 1.32℃나 높았다. 파리협정에서 각국이 넘지 않기로 합의한 기온 상승 한계치 1.5℃에 근접한 수치다.
기후 위기는 사회ㆍ경제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한 얼굴을 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폭우가 쏟아진 이튿날, 부잣집 안주인은 말한다. “비가 와서 그런지 미세먼지가 없네요.” 갑작스러운 비에 반지하는 죄다 잠겼는데 말이다.
‘기후 동행’을 위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응 방법은 주방에서, 거리에서, 또 주변 카페에서 찾을 수 있다. 다회용기 사용, 자동차 대신 녹색 교통수단(대중교통, 자전거, 걷기) 이용부터 시작해보자. 있는 물건을 재활용하고, 새활용(업사이클링)하는 것도 방법이다. 운동하며 지구도 살리는 플로깅(조깅하며 쓰레기 줍는 운동)도 좋다.
지구를 식히기 위한 습관 들이기가 어렵다면 포인트라는 보상을 활용할 수도 있다. 여러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제도는 ‘탄소중립포인트 녹색생활실천’이다.
‘탄소중립포인트 녹색생활실천’은 한국환경공단이 일상 속에서 탄소중립 실천 행동을 할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다. 전자영수증 발급, 텀블러·다회용 컵 이용, 일회용 컵 반환, 리필 스테이션 이용, 무공해차 대여, 친환경 제품 구매, 고품질 재활용품 배출, 폐휴대폰 반납 등에 참여하면 회당 100원에서 최대 2000원까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연 상한액은 7만 원이다. 전기·상수도·도시가스 사용량을 절감하면 감축률에 따라 탄소포인트를 주는 ‘탄소중립포인트에너지’ 제도도 있다.
봉사와 보람을 한 번에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이들도 멀리서 찾을 것 없다. 본지 사무실이 있는 강남구의 자원봉사센터 관계자는 “선생님, 어디 계세요?”부터 묻고는 이렇게 말했다. “봉사는 거주 지역 인근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아서요.”
누가 도움을 청하는지는 ‘1365자원봉사포털’에서 알 수 있다. 봉사 지역, 봉사 분야, 활동 구분(온라인, 오프라인, 온오프라인), 봉사 대상을 검색하면 전국 각지의 봉사처 조회와 신청까지 가능하다. 포털에 부가정보를 입력해두면 ‘맞춤형 자원봉사’도 추천받을 수 있다. 봉사를 마치면 자원봉사 확인서가 발급된다.
봉사학교에 입학할 수도 있다. 바로 ‘노노스쿨’이다. 행복에프엔씨재단이 운영하는 ‘노노스쿨’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을 설계하는 신중년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학교처럼 운영되고 있다. 입학하면 9개월여 무상 교육이 이뤄진다. 연간 일정에 따라 식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를 배운 학생들은 졸업 후 졸업생 봉사단 ‘노노프렌즈’ 소속으로 사회공헌 활동에 나선다.
봉사와 일자리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도 있다. 사회공헌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중장년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공헌형 일자리 사업을 진행 중이다. 사업 참여자는 봉사를 통해 보람은 물론 새로운 커리어 탐색 기회까지 얻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회공헌 일자리 사업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보람일자리’와 이음길HR의 ‘기업 퇴직자 사회공헌 뉴스타트 일자리’가 있다.
각자 특기를 살린 재능기부형 일자리 사업도 있다. 시니어에게 주목받는 사업 중 하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이 200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다. 여성 어르신을 선발·교육한 뒤 전국 유아 교육기관에 파견해 유아 대상으로 옛이야기와 선현들의 미담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1년여간의 교육과정이 결코 쉽지 않지만 보람 있고 활동 수당도 높은 편이라 지원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96세 김두엽 화가와 그의 아들, 정현영 화가의 개인전이 서울시 노원구 소재의 더숲 아트갤러리에서 7월 2일까지 열린다.
김두엽 씨는 여든셋에 그림을 시작해 올해로 14년 차 화가다. 2020년 아트스페이스 이지갤러리 초대 개인전, 미담 갤러리 초대 개인전, 생각하는 정원 갤러리 초대 개인전 등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었고, KBS 교양 프로그램 ‘인간극장’, 토크쇼 ‘황금연못’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그림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지만, 우연히 그린 사과 한 알을 시작으로 한국의 ‘모지스 할머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김 화가의 그림은 구김살 하나 없이 화사하고 또렷하다.
그가 창작 활동을 본격적으로 이어나간 데는 아들 정현영 화가의 도움이 컸다. 정현영 화가는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등단해 여수국제미술제 초대전, 광양미술협회전, 동덕아트 갤러리 100人 초대전 등 다수의 개인전과 초대전에 참여했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김두엽 화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력이 없을 때도 있지만 붓을 잡고 있으면 힘이 좀 나는 것 같다”며 “느리더라도 천천히, 계속 그려보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한편, 자세한 전시 내용은 더숲 아트갤러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넓은 집에 살고, 고급 차를 끄는 화려한 삶. 최범호(58)가 꿈꾼 배우의 삶이다. 현실은 꿈과 달랐지만, 그는 배우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벌써 30년 차 배우가 된 최범호는 이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진정한 ‘베테랑’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1992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최범호는 다양한 작품에 크고 작은 역할로 출연했다. 특히 MBC 드라마 ‘하얀거탑’, ‘이산’, ‘히어로’, ‘마의’, ‘제왕의 딸, 수백향’, 영화 ‘알투비 : 리턴투베이스’ 등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더불어 그는 ‘회장 전문 배우’라는 수식어도 갖고 있다. OCN ‘TEN’ 시리즈에서는 경찰국장으로, tvN ‘도깨비’, MBC ‘자체발광 오피스’, ‘돌아온 복단지’ 등에서는 회장으로 출연했기 때문. 비교적 최근인 2019년에는 MBC ‘웰컴2라이프’에서 시각장애인 연기를 펼쳐 호평받았고, 이듬해에는 화제의 드라마 JTBC ‘부부의 세계’에 출연해 눈도장을 찍었다.
못난 아들에서 못난 아비로
1964년생인 최범호는 민주주의 중심에 있는 이른바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다. 전남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밥을 준다’는 단순한 이유로 연극반에 들어갔다. 당시의 연극반이란 연극을 통해 사회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때문에 최범호가 대학교 졸업 후 탤런트가 되겠다고 서울로 떠나자 선후배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연기’밖에 없고, 탤런트가 되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빨리 성공해서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아들이 되고 싶었다.
최범호의 예상과 달리 탤런트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섯 번 정도 탈락의 고배를 마신 후에야 마침내 MBC 21기 공채 탤런트가 될 수 있었다.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건만 현실은 잿빛이었다. 연기를 하고 싶어도 일이 주어지지 않았다. 반면 동기 장동건, 김원희 등은 잘나갔고, 최범호의 열등감은 커져갔다. 무엇보다 자책하는 아버지는 못난 아들을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제가 배우로 성공하지 못한 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당신이 가난해 뒷바라지를 못 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무능력하다고 자괴감을 느끼시는 거죠. 아버지는 지금도 저에게 배우 그만하라고 하세요. 아직도 저를 인정하지 못하신 거죠. 저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갈망을 아직 해소하지 못했어요.”
탤런트가 된 후 최범호는 암흑의 나날을 보냈다. 좌절감에 매일 술을 진탕 마시고 방황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주선한 소개팅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두 사람은 1년 반 동안 신앙 얘기만 하며 지냈으나 마침내 결혼했다.
1998년 3월의 결혼식 날, 최범호는 ‘가진 것 하나 없는 나 같은 놈도 결혼하다니’라는 생각이 들어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내는 인기나 돈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나를 불쌍한 영혼으로 바라보면서 엄마처럼 품어줬어요”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슬하에 두 아들을 둔 그는 양육을 하면서 피부로 닿는 경제적인 타격이 점점 커지기만 했다. 최범호는 “나는 언제 자리 잡을까 고민이 컸어요.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에 휩싸여 있었죠”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때 찾아온 작품이 인생작 MBC 드라마 ‘이산’(2007~2008년 방영)이다. 정조(이서진 분)의 동궁전 내시 역을 연기한 최범호는 “그때 이서진 씨가 참 많이 도와줬어요”라고 말했다.
특히 최범호는 이서진에게 감동받은 기억을 전했다. 어느 날 ‘이산’ 촬영장에 최범호의 아내와 두 아들이 놀러 왔는데, 이서진이 그들을 자기 가족처럼 챙기고 소고기를 대접했다는 것. 최범호는 마음 놓고 고기를 사준 적이 없던 터였다. 당시를 떠올리던 그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이서진에 대한 고마움에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저는 애들이 ‘갈비 먹고 싶다’고 하면 고깃집에 가서 돼지갈비를 시켜요. 그리고 고기를 난도질해놓고 밥을 꼭 시키죠. 돈이 없으니까 꼭 상추에 밥과 고기를 싸서 먹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서진이가 우리 가족을 데리고 소고깃집에 간 거예요. 우리는 겁이 나서 그런 데를 못 가봤거든요. 맛있으니까 애들이 너무 잘 먹는데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이후 2019년 OCN ‘트랩’ 등으로 최범호와 이서진의 인연은 이어졌다. 특히 올해 최범호의 첫째 아들이 결혼했는데, 이서진은 아들의 통장으로 직접 축의금을 보냈다고. 이서진의 미담을 잊지 않고 전한 최범호는 “후배지만 존경하는 배우”라고 표현했다.
“참 서진이에게 빚을 많이 졌습니다. 돈 빚이 아니라 사랑의 빚이죠. 정조대왕의 대사 중에 ‘햇빛은 천하 지위 고하, 재산 유무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 대사와 같은 삶을 서진이가 묵묵히, 값지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우에서 베테랑으로
배우로 살다 보니 최범호는 늘 성공에 목말랐고, 아버지를 비롯한 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했다. 연기를 할 땐 괜찮지만 작품이 없으면 극도로 예민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화를 내기도. 이에 그는 배우가 아닌 사람 최범호로서 살기로 했다. 그렇게 또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배우가 아닌 사람으로 살면서는 자신에게 일이 얼마나 주어지느냐가 중요해졌다. 연기를 일 그 자체로 본 것. 그는 대본을 받으면 ‘최범호’라는 이름을 찾기에 급급했다. 5년 전 어느 날, 대본을 막 넘기는 그를 보고 아내는 “당신, 이제 사람으로 살지 말고 배우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내한테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죠. 생각해보니 내가 연기 자체를 좋아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싶더라고요. 그동안 저는 작품성이나 연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가 작품에 얼마나 나오느냐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이제 배우로서 정식으로 연기에 집중해보자 생각하게 됐죠. 두 번째 터닝포인트를 맞았던 것입니다.”
아내의 말에 각성한 최범호. 실제로 이후 그의 연기는 깊어졌다. 앞서 말한 대로 최범호는 MBC ‘웰컴2라이프’에서 시각장애인 연기로 호평받았다. 특히 그는 극 말미 오열하는 뒷모습으로 시청자를 울렸는데, 아내도 그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최범호는 “그렇게 나를 알아봐달라고 발버둥질하는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보일 때가 됐구나 싶었어요. 오열하던 뒷모습에 묵묵히 같은 길을 걷는 제 자신이 투영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최범호는 2019년부터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배우 정보석에 이어 현재는 최수종이 이사장으로 있다. 최범호는 사무총장 제의를 받았을 때, 연기 외의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던 터라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거절했으면 평생 후회할 뻔했다. 나날이 보람을 느끼는 중이다.
사무총장인 최범호는 에이전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배우 캐스팅, 출연료 책정 등의 일을 주로 한다. 지난해 한국방송연기자협회에서는 신협중앙회의 후원을 받아 웹드라마를 제작했는데,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150명이 넘는 사람에게 출연료로 30만 원을 주었다. 최근에는 한국방송연기자협회와 새마을금고가 MOU를 체결, 새마을금고 60년 역사를 담은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예정이다. 배우들은 일자리를 얻고, 새마을금고는 홍보 효과를 누리게 된다.
“협회에 와서 삶을 다시 한번 배우고 있어요. 그동안은 내가 일하고 돈 버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됐어요. 더불어 같이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죠. 젊은 후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기쁨을 느껴요. 부모들이 자식 밥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고 하는 그 감정이죠.”
어느덧 60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최범호는 “앞으로도 묵묵히 저의 길을 걸어갈 겁니다.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 자체가 좋아서 이 길을 계속 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가난하지만, 무명이지만, 그것들을 견뎌내면서 걸어온 것도 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의 목표는 쓰임 있는 배우, 모범이 되는 선배가 되는 것이다.
“연기 경력 50년도 넘은 선배님들이 많이 계시는데 제가 베테랑이라고 한다면 과찬이죠. 다만 성품이 훌륭한, 사랑을 나누는 베테랑이 되고 싶습니다. 배우를 떠나 어떤 사람이 한길을 걸어갔을 때, 결국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가 베테랑으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성공 또는 실패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사람이 가진 가치를 이어갈 수 있게 멘토 또는 코치의 역할을 얼마나 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가칭)실버이야기연극배우’(‘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 참가자들의 다른 명칭)과 사업 관계자를 7일 만나 간담회를 가졌다. 박 장관은 “이야기할머니 사업을 복지 차원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더 나아가 창작과 예술을 함께 진흥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바꿔나가겠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은 일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한 여성 어르신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전국 유아교육기관에 직접 방문해 우리 옛이야기와 선현들의 미담을 들려주는 사회봉사형 일자리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인성을 함양하고 세대간의 소통까지 도모하기 위해 기획됐다. 2022년 기준 1948년~1966년 사이 출생한 대한민국 국적 여성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2009년부터 매년 이야기 할머니를 양성하고 있으며, 올해는 총 3080분의 이야기 할머니가 활동하고 있다.
박 장관은 “실버 모델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연극 스타도 존재해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실버이야기연극배우를 발굴하고 이야기연극의 창작과 제작을 ‘K-컬처’의 일부로 진흥”하겠다고 강조했다.
참석자 중 실버이야기연극배우들은 은퇴 후 전통 이야기를 통해 미래 세대와 소통하며 인생 2막을 보람차게 열 수 있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어 기존 이야기 구연 활동을 예술 영역으로 확장하겠다는 문체부의 방침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 참석자는 “이야기의 힘이 곧 K-컬처의 힘”이라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어린이들이 상상력을 키워 미래의 작가로서도 성장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박보균 장관 역시 실버이야기연극배우들이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키우고 다듬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데에 동의의 뜻을 밝혔다. 이어 “앞으로 이야기 구연 배틀 등의 기회를 마련해 사업을 더 정교하고 짜임새 있게 추진해 가겠다”라고 화답했다.
아울러 박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전통문화 가치 확산과 창조적 발전’을 위한 정책 의지를 밝히고, “이번 간담회에서 나온 제안들은 정책에 충실히 담아 실현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폐지가 한가득 실린 노인의 손수레에서 폐지가 쏟아지자 가던 길을 멈추고 폐지를 주워주는 청년들의 선행이 알려졌다. 이들의 선행은 근처를 지나던 속초시청 직원 눈에 띄어 알려졌다.
6일 오후 1시 30분께 휴무를 이용해 어머니를 모시고 은행에 가던 속초시청 직원은 영랑교삼거리에서 신호대기 중 반대편 건널목에서 노인이 끌고 가던 손수레에서 폐지가 쏟아지는 모습을 봤다.
노인 키만큼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던 폐지 일부가 옆으로 쏟아졌다. 이를 목격한 직원이 어쩔 줄 몰라 망설이는 순간 때마침 장사동에서 영랑동 방향으로 우회전하던 한 트럭이 멈춰 섰다. 이어 트럭에서 청년 2명이 내린 후 폐지가 쏟아진 곳으로 달려왔다.
다행히 떨어진 폐지 양이 많지 않아 폐지를 다시 싣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통량도 많지 않은 곳이라 교통혼잡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누리꾼들은 “대한민국은 이런 사람들이 많아 유지보전되는 것”, “이런 소식을 들어 기분이 참 좋다”라며 훈훈한 반응을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한 어르신이 감동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주시는 효자동에 거주하는 92세 임양원 옹이 코로나19로 고생하는 공무원을 위해 써달라며 성금 700만 원을 맡겼다고 31일 밝혔다.
전주시에 따르면 어제 8월 31일 오전, 한 백발의 어르신이 전주시청을 방문했다. 힘든 발걸음으로 3층 시장 비서실에 온 어르신은 재킷 안주머니애서 꼬깃꼬깃한 봉투를 하나 꺼냈다. 봉투 겉면에는 '코로 예방 공무원 격려금'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이 어르신은 “코로나19 방역과 보건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후배 공무원들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후배들을 격려할 수 있는 작은 기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스스로 퇴직공무원이라고 밝힌 임양원 옹이다.
그는 “어르신들 예방접종을 위해 동 주민센터에서 한 손 한 손 잡고 조심스럽게 버스를 태워주고, 본인이 타고 온 버스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명패를 착용해 주고, 접종 전후 수시로 전화해 상태를 묻는 배려가, 나도 퇴직 공무원이지만 그동안 겪어본 것 중 최고의 행정서비스였다”며 “이렇게 시민을 위해 고생하는 공무원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다”고 격려금을 준비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에 전주시 관계자는 “기부금을 어르신 뜻에 따라 코로나19 방역 현장 공무원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는데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주시청은 이 사연을 페이스북에 올려 어르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젊은 시절부터 외화를 즐겨 본 시니어라면 할리우드 배우 톰 행크스에 대한 옛 기억이 하나씩은 있다. IQ 75의 순수한 청년 ‘포레스트 검프’부터 아폴로 13호에 탑승한 우주비행사,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떠난 ‘진짜 사나이’, 시애틀에서 사랑에 빠진 로맨티스트까지. 그는 장르 불문 다양한 역할로 스크린을 통해 시니어를 만났다.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중년이 되었지만 연기 열정은 예전 못지 않은 그.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톰 행크스의 최근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영화를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뉴스 오브 더 월드 (News of the World, 2020)
“오늘 밤, 온 세상의 멋진 뉴스를 여러분께 전해드리겠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난 1870년, 한 남자가 군중 앞에서 신문을 읽는다. 그는 제퍼슨 카일 키드 대위(톰 행크스). 뉴스 프로그램의 앵커가 아니라 인쇄소를 운영하다 전쟁으로 가족과 일자리를 잃은 방랑자다. 전후의 혼란한 상황 속 뉴스를 접하기 어려운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뉴스를 전해주는 일을 한다. 어느 날도 어김없이 길을 가던 키드는 피습당한 마차에서 살아남은 인디언 소녀 조애나(헬레나 젱겔)를 만나고, 소녀를 집으로 데려다주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영화 ‘뉴스 오브 더 월드’는 톰 행크스 연기 인생 최초의 서부극이다. 그러나 기존 서부 영화와 달리 전투보다 평화에 주목하고, 액션보다는 휴머니즘을 담으려 한다. 적대적 관계에 있던 백인과 인디언, 두 사람의 동행을 통해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고, ‘소통’이란 대안을 제시한다. 서부극에 빠질 수 없는 황야와 거친 들판을 러닝 타임 내내 비추지만, 마냥 쓸쓸하고 황량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톰 행크스가 출연한 대부분의 영화가 그랬듯, 결국 인류애의 실현을 희망하는 작품이다.
2.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 (A Beautiful Day in the Neighborhood, 2019)
내면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가시를 세우며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 잡지 기자 로이드 보겔(매튜 리즈)이다. 날카로운 성격으로 고발 기사를 써 상도 받았지만, 그로 인해 취재원의 기피 대상 1호가 된 그. 이달은 영웅 특집을 준비해야 하는데, 인터뷰에 응해주는 이가 없어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 프레드 로저스(톰 행크스) 취재를 맡는다. 비리 폭로 전문인 로이드는 미담뿐인 로저스의 이야기를 써야 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고, 불편한 마음으로 그를 만난다. 그런데 웬걸, 정신을 차려보니 인터뷰의 주도권을 뺏긴 채 속내를 털어놓고 있는 것 아닌가.
푸근한 미소와 눈빛 때문일까. 만남이 거듭될수록 로이드는 그 앞에서만 ‘무장해제’가 되어간다. 연륜 있는 시니어가 젊은이의 아픔을 다독여주는 서사는 영화 ‘인턴’을 떠올리게 하지만, ‘휴머니즘 장인’ 톰 행크스만의 연기가 ‘인턴’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인물 간 주고받는 대사에 잔잔한 위로를 얻고, 마침내 톰 행크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 작품. 로저스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오프닝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돼 쇼 한 편을 보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3. 홀로그램 포 더 킹 (A Hologram for the King, 2016)
인생이 이렇게 꼬여도 꼬일 수 없다. 한때 승승장구하던 회사는 망했고, 아내와 이혼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에게 3차원 홀로그램 장비를 팔고 오라는 고난도의 미션을 받는다. 세일즈맨 ‘엘런 클레이’(톰 행크스)의 이야기다. 영업을 위해 도착한 타국에서의 생활은 사막 한가운데 낙오된 것처럼 힘겹고 낯설기만 하다.
와이파이는 물론 배를 채울 만한 식당도, 에어컨도 없으며 미팅 관계자는 나타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등에 정체 모를 혹까지 생겼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클레이는 왕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생 2막을 열어나간다. 영화 ‘홀로그램 포 더 킹’은 인생에 위기를 맞은 세일즈맨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머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지만 실적 압박, 가정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등 중년 남성이 겪는 현실적인 고충과 불안을 타국에서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로 극대화한다. 장면 곳곳에서 엿볼 수 있는 이슬람 문화권의 이국적인 풍경이 재미를 더한다.
연말은 기부나 모금이 활발하다. 거리에서는 구세군의 자선냄비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전염병으로 뒤숭숭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지금, 다들 어떻게 기부를 하고 있을까? 실제 사례와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기부문화를 살펴보자
코로나19 이전에도 기부는 늘고 있는 추세였다. 지난 2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문화연구소가 발표한 ‘2020 기부 트렌드’에 따르면, 국내 기부자 수는 2013년까지 증가하다가, 2014년 잠깐 530만 명 수준에서 정체를 보였다. 하지만 그 뒤로는 꾸준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보면 30대(26.5%)와 40대(31.8%)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50대(25.6%)는 2013년과 비교했을 때 3% 정도 늘었다.
기부 동기는 세대별로 달랐다. 나눔문화연구소가 국내 기부자 세대별 특성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기부를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생각했고, X세대는 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중 하나로 봤다. 두 세대는 SNS로 모금활동에 참여하거나, 자신이 속해 있는 팬클럽을 통해 기부를 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여유로운 경제력을 갖추고 있고 사회와 집단에 관심이 많아 은퇴 이후에도 꾸준히 기부활동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었다. 세대별로 동기는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기부에 대한 관심은 높아진 상황이다.
높은 관심은 악재에도 여전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기부가 늘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기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성금으로 모인 금액은 2505억 원이다. 이는 재난 관련 국내 모금액 중 가장 많은 액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다른 재난과 달리 파급 효과가 크고, 장기화하면서 모금액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가적으로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 모두 이웃을 위하여 조금씩 힘을 보태고 있었다.
그렇다면 일반 시민들은 어떤 방식으로 기부활동을 하고 있을까? 코로나19 이후 기부문화는 달라졌을까? 다음 사례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코로나19로 바뀐 기부 문화
경조사도 기부로 한다
축의금과 조의금을 받는 경조사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4월 방송인 최희 씨는 기부 웨딩을 진행했다. 기부 웨딩이란 결혼식 비용으로 기부를 하는 것이다. 최 씨는 피로연, 신혼여행 등을 생략하고 국제 어린이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에 3000만 원을 기부했다. 축의금 기부처럼 조의금을 기부하는 경우도 있다. 부산에 사는 전직 경찰공무원 A 씨는 지난 4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써달라며 모친 장례 시 받은 조의금 중 1000만 원을 사회복지법인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A 씨는 평소에도 정기적인 기부와 무료급식 봉사활동에 참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부 수혜자가 기부자가 된다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지난 3월 굿네이버스 방화2종합사회복지관에서 관리를 받는 중증 장애인 어르신이 고생하는 복지관 직원들을 위해 일회용 마스크 20장을 전달했다. 한 어르신은 “늘 고마운 마음을 보답하고 싶었다”면서 마스크 전달 소회를 밝혔다. 해당 복지관 관계자는 “건강이 좋지 않아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직접 사무실을 방문하셨다. 마스크에 담긴 온기만큼 따뜻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토닥토닥 캠페인
코로나 블루로 인한 무력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토닥토닥 캠페인’이 유행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장기화로 지친 마음을 ‘나비포옹법’ 동작을 통해 위로하는 자기 돌봄 캠페인이다. 나비포옹법은 양팔을 X자로 교차해 가슴 위에 올리고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가며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심리안정화 기법이다. 배우 류수영, 가수 김태우 등 연예인들도 동참했다. 최근에는 이용섭 광주시장과 구제길 광주 아너 소사이어티 회장도 참여했다. 구 회장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하루빨리 종식돼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할 말은 다 하고 센 듯 보이지만 공감이 가니 유쾌하다. 과거는 마음에 두지 않고 현재와 미래만을 이야기한다. 돈과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게 삶의 철학이지만 쓸 때는 통 크게 쓰는 여장부. 최근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제가 된 시니어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7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기부한 676억 원을 포함해 2012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총 766억 원을 출연하며 전 국민의 관심을 모은 그녀를 만나 이 시대의 어른, 그리고 시니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1936년 서울에서 4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 10대 시절을 보낸 소녀는 이제 한 기업의 대표이자 막대한 기부금을 사회에 환원해 시니어의 지표를 새롭게 세운 유명인이 되었다. 그 주인공인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은 화통한 기부금만큼이나 솔직하고 유쾌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나는 과거에 매이지 않아. 오직 현재와 미래만 생각해.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니까. 아무리 돈이 없어도 옷 한 벌은 챙길 수 있지만 시간은 그럴 수 없잖아.”
기부를 하면 새로운 기쁨을 알게 된다
이미 팔순을 넘어 85세의 나이지만 오직 현재와 미래만 본다는 이 회장의 말에는 아직도 그녀가 젊게 살 수 있는 이유가 담겨 있었다. 그녀가 엄청난 기부금을 출연한 것도 현재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기부하면 이제까지 자신이 느끼지 못한 새로운 기쁨을 알게 되고 엔도르핀이 돌아.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도 달라지고.”
그녀가 기부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6.25전쟁 시절에 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동네 사람들이 환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떡 잘 먹었다” 하고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동네 사람들이 떡을 잘 먹었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에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전쟁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떡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에게 “우리 애기가 떡을 나눠드리라 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이 받을 감사를 딸에게 돌린 것이다. 그때 기부의 선한 영향력, 그리고 그걸 가능케 한 어머니의 부지런하고 알뜰한 모습이 이 회장에게 분명하게 각인되었다.
신문기자로 자리 잡기까지 거듭된 좌절
이 회장에게 다시 기부의 힘이 각인된 것은 그 어려웠던 시절에 들은 한 기독교 장로의 말 때문이었다. 온 나라가 구호물자를 얻으러 다니던 시절, 그 장로는 “우리도 가난하지만 주는 자가 되어보자”라고 설파했다. 그 말에 꽂힌 그녀는 자신이 모은 돈으로 세상을 더 선하게 만들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쉬운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대 법대생이었던 그녀는 당연히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녀는 그 시절의 자신에 대해 “선풍기도 없는 도서관에서 밤낮없이 공부하니 땀띠 범벅에 몸 곳곳이 망가졌고, 처음 맛본 실패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좌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한 번 세상에 도전했다. 그녀가 지원한 곳은 신문사. 기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사내 파벌 싸움, 서울대 나온 여성에 대한 질시 등이 심해 퇴사를 반복했다. 그러다 마침내 서울경제신문의 경제기자로 자리를 잡게 된다. 기자가 안 됐더라면 어땠을까. 기자의 질문에 이 회장은 바로 답을 했다.
“지금은 고시에 떨어진 걸 참 행운이라고 생각해. 고시에 합격했다면 그 검은 옷을 입고 변호사나 판검사가 돼서 살았겠지. 그런데 그 사람들은 싹 싸움꾼이야. 남의 싸움을 해결해주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신문기자로 살았으니 행동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할 말 다 하면서 많이 알게 됐지. 슬픈 사람, 잘난 사람, 못된 사람, 바보도 만나고…. 그때도 지금도 정직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죽이는 거라고 생각해. 양심적으로 살려고 했지. 기자생활하면서 인생의 많은 걸 배웠어. 평생 배우면서 살아야지.”
40대 중반에 제2의 인생을 개척하다
이 회장의 기자생활 커리어는 화려했다. 경제기자로서 당시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이병철 삼성 회장과의 인터뷰를 성사시켰고, 그 덕분에 다른 기업 총수들과의 만남도 무난하게 이뤄지면서 격의 없는 관계를 쌓게 됐다.
그러나 권력의 힘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1980년 5공화국이 언론통폐합을 하면서 그녀의 기자생활은 해직으로 끝나게 되었다. 40대 중반이었고 배우자 없는 여성이었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근심에 싸일 수밖에 없는 악조건이었다.
하지만 경제부 기자로서 수많은 CEO들을 만나면서 사업 수완을 익힌 덕분일까. 그녀는 제2의 인생을 사업가로서 다시 개척하기로 했다. 사실 그녀는 기자생활을 하던 서른다섯 살 때 아버지의 도움으로 안양 하천부지를 구입해 주말이면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그 농장은 퇴직 후 본격적인 본업이 되었다. 돼지를 키우고 옥수수를 재배했고 젖소까지 들였다. 이후 돼지가 1000마리까지 불어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사업 노하우는 인연의 중요함을 잊지 않는 것
숱한 위기와 고난을 헤쳐 온 그녀에게 다시금 시련이 찾아왔다. 이 회장의 땅이 도로 건설로 인해 수용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안양천에서 모래 채취 사업을 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서울 여의도 맨하탄 빌딩의 5층을 매입해 깡패들과 싸워가며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다른 층도 계속 사들여 빌딩관리단 회장이 되었고, 미국 LA의 도심 빌딩까지 구입하면서 막대한 성공을 일구었다.
그녀는 사업의 성공은 운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운이 자신 앞을 지나갈 때 누구는 붙잡고, 또 누구는 놓치느냐의 차이로 성패가 갈린다고 보는 것이다. 이 회장은 또 사람과의 인연을 중시한다. 아무리 작더라도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의 운명이 바뀌면 자신의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의 사업 노하우는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지금은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허투루 보지 않고 면밀하게 검토하면 길이 나와. 그걸 안 하니까 문제지.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있으면 감이 떨어져?”
이 회장은 땀 흘려서 번 돈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자신이 기자 시절부터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기부 또한 그런 기준에서 이뤄진다. ‘왜 카이스트에만 기부하고 모교인 서울대에는 기부하지 않느냐’라는 세간의 의문에 대해 그녀는 명확하게 대답했다.
“모교라고 다 해줄 생각은 없거든. 그래도 의과대학은 좀 하려고 해. 법대는 인성교육이 안 돼서 안 했어. 내 후배라고 할 사람도 없으니 연연할 필요도 없고. 내가 하는 기부의 기준은 국가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하는 것이고, 기부의 가치가 서야 해. 빈민 구제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번 돈인데 함부로 쓸 수는 없지.”
자식에게 무조건 돈을 주는 건 자식 망치는 길
이 회장의 기부금에 대한 단호한 기준은 최근 더 현실적으로 구체화되었다.
“지금까지는 기부한 기관에 맡기고 활용하게 했는데, 부작용이 너무 커. 돈 만지는 사람들 손에서 돈이 다 녹더라고. 그래서 내가 직접 ‘이수영과학교육재단’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 누가 봐도 투명하고 깨끗하게 운영할 생각이야.”
이 말에는, 지금까지의 막대한 기부를 멈추지 않고 되려 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지속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처럼 기부금에 대한 기준이 확실하고 공정한 운영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그녀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상속증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자식에게 무조건 다 남기려는 건 틀린 거야. 자식을 무능하게 만들어. 젊은 날에 부모가 뼈빠지게 돈 버는 모습을 자식에게 보여주고 그대로 가르치면 돈을 지킬 수 있는데, 그건 안 하고 ‘내가 고생했으니 자식은 고생 안 시키고 돈만 주겠다’면 자식들이 사치하고 탕진하고 마약이나 하게 되는 거지. 부모라면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을 하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줘서 값진 삶을 살도록 해야지. 땀 흘리지 않고 번 돈은 제 돈이 아니야.”
82세의 초혼, 그리고 첫 부부싸움
이 회장이 핫피플이 된 데에는 막대한 기부금도 있지만 82세의 나이에 성사된 초혼도 한몫했다. 상대는 서울대 동기인 김창홍 변호사. 사업을 하면서 친구들끼리 골프 모임을 자주 가졌는데, 골프가 서툴렀던 그녀의 캐디 역할을 자임했던 사람이 바로 김 변호사였다. 그렇게 쌓인 친분 속에서 마침내 결혼이라는 결실이 맺어졌다.
“동기생 중에 동아일보 기자가 있는데 인터뷰 기사를 쓰겠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우리 영감이 내가 먼저 프러포즈했다고 하는 거야. 무슨 개똥같은 소리를.(웃음) 결혼은 여자가 아무리 좋아해도 남자가 싫어하면 못하는 거 아냐? 화가 나서 반지랑 시계를 풀어서 쓰레기통에 버렸지. 그랬더니 남편이 ‘내일 결혼식인데 안 한다고 하면 어떡하니?’ 하더라고. 내 마음 달래줄 생각은 안 하고 결혼식이 걱정이었던 거야. 그래서 싸웠지.”
그녀에겐 인생 최초의 기념비적인 사랑싸움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감정을 묻어두는 사람이 아니고 그녀도 똑같은 성격이었다.
“그렇게 티격태격 싸우고 난 뒤에 둘이 웃는 걸로 끝냈지. 칼로 물 베기지. 그래서 결국 결혼식을 했는데, 신부화장하는 데 와서 날 보곤 입을 다물질 못했어. 좋아서.(웃음)”
또 하나의 가족이었던 ‘마리’
이 회장에게는 남편 외에 애정을 주는 가족이 또 있었다. 바로 그녀의 애견 마리다. 유기견이었던 마리는 얼마 전까지 그녀의 집 3층을 차지하고 살았다.
“나는 2층에서 지내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파바로티의 노래를 틀어주면 막 뛰어나와. 그러고 같이 산책을 하러 나가는데, 중간쯤 가다가 계속 날 돌아보고, 쓰다듬으면 꼬리가 빠지게 흔들고, 밥을 먹을 때는 식탁에서 나를 바라보곤 했지.”
그러나 지금 마리는 없다. 지난 11월 1일 비 오는 일요일에, 산책을 하고 돌아오던 마리는 불쑥 상추밭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리야!’ 하고 불렀는데 반응이 없어. 없어진 거야. 누구는 발정이 났다고도 하고, 그러다 돌아온다고도 했지. 그런데 끝내 안 들어와서 CCTV를 보니, 들개 세 마리에게 공격당하는 모습이 나오는 거야. 급히 골짜기를 다 뒤졌는데도 못 발견했어. 먹힌 모양이야. 지금도 가슴이 아파. 그래서 남은 사진들로 앨범을 만들었어.”
그녀의 핸드폰 대문 사진에는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웃고 있었다.
깊고 풍성한 마음이 닿는 찬란한 가치
아직도 잊지 못하는 마리의 사진들을 하나씩 보여주는 애견인 이 회장. 마치 손주 사랑에 흠뻑 빠진 시니어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녀는 과거에 비해 자신이 유해졌다고 말했다.
“늙으면 서러운 게 많대. 나도 늙으면서 성질이 유해지더라고. 젊을 때는 칼 같았지. 아랫사람들에게도. 그런데 어느 날 ‘저 사람들이 나보다 정말 뛰어났으면 내 밑에서 일하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때부터 납득하게 됐어.”
나이 들면서 철학적 사유와 희생이 그녀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어느덧 인생의 품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 회사의 직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일한 장기 근무자들이다. 그녀는 그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 무서운 게 없는 사람처럼 철두철미하게 직원들과 회사를 이끌어왔지만 그 강인함 뒤에는 직원들을 향한 애정이 숨어 있다. 이 회장의 형제 가족들에게 유언증서까지 마다하지 않고 측은지심으로 챙겨주는 그녀가 더 담백한 이유는 더 큰 세상을 향한 여정으로 이끄는 용기와 지혜에 있다.
“잘못된 것은 그냥 못 넘어가는 성격이야. 세상 사는 데는 정직이 최고지. 그리고 신용이고. 내가 받으려고 애쓰지 말고 주려고 해야 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어.”
인터뷰를 진행하며 왜 이 회장을 매스컴에서 앞다퉈 다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어른다운 어른이 없어서가 아닐까. 그녀야말로 이 무거운 코로나 블루 상황에서 통 큰 기부로 미담을 준,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온 영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합리적이고 현명하며 나눌 줄 아는 그녀의 선행이 사회적 가치로 거듭나 진짜 선한 영향력을 행하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밝혀주는 등불을 본다. 2021년에도 이 영웅의 스토리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카톡은 국민의 생필품적 통신수단이 된 지 오래입니다. 얼마 전까지도 연말연시엔 수첩과 명함을 정리하곤 했는데, 지금은 카톡을 정리하는 게 큰일입니다. 불필요한 동영상이나 사진, 의미가 없어진 사람의 이름을 삭제하고 중요한 걸 따로 갈무리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런 작업을 하는 동안, 모든 사람이 느꼈을 법한 불편과 불쾌함을 덜기 위해 일정한 지침이 필요하다 싶어 카톡 10계명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주로 단톡(단체카톡)방에 관한 것들입니다.
1. 시도 때도 없는 “카톡!”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카톡을 보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카톡, 카톡!” 소리가 싫어 묵음으로 해놓거나 아예 문자메시지만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무 때나 카톡을 보내는 건 실례입니다. 특히 시차가 있는 외국에서 제 흥에 겨워 시도 때도 없이 카톡을 보내면 역효과만 나게 됩니다. 낮에는 전혀 카톡을 읽거나 답하지 않다가 남들 자는 밤 12시, 1시 넘어 답장을 보내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2. 정치·종교 이야기 금지
얼마전 모 사회단체의 단톡방에, 어떤 사람이 인민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민주당 헌법 개정 초안이 나왔다는 글을 띄웠다가 뭇매를 맞았습니다. “정치 이야기하는 곳 아니다, 거짓 뉴스 띄우지 마라, 대체 누구냐, 나가라”는 비난이 쏟아졌는데, 그 사람은 나가지는 않은 채 숨만 쉬고 있습니다. 친목과 사교, 공지사항 전달이 주목적인 단톡방에서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서로 불편해지고 편이 갈려 싸움이 납니다.
3. 삼가야 할 중복·반복
용량이 큰 동영상 또는 사진을 다량 전송하거나 동일 내용을 반복 홍보하는 일도 삼가야 합니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 실황 중계를 하는 경우를 더러 보았는데, 대부분 그 사진이 그 사진이어서 받자마자 삭제하기 바쁩니다. 잘 선별해 의미 있는 것만 최소한으로 보내든지 ‘사진 묶어 보내기’ 기능을 이용하면 남들이 편해집니다.
4. 기성품 안부·격려 지양
월초나 주초, 또는 명절이나 연말연시가 되면 “힘내세요”, “웃고 사세요”, “오늘도 으라차차!” 따위의 응원 인사가 폭주합니다. 내용이 빤한데 본인이 쓰거나 만든 것도 아닙니다. 같은 걸 하루에 다섯 번 받은 날도 있습니다. 이런 거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배우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고 “어디 가져오는 데가 있어” 하면서 알려주지 않고 뻐기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5. 좋은 글·미담 공해
1960년대에 코미디언 살살이 서영춘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 이런 말을 유행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글과 사진을 마구마구 보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이도 자기보다 한참 적은 사람이 인생철학을 거론하며 착하게, 바르게 살라는 글을 보내오면 누가 좋아할까요? 이런 글 중 감동적인 미담에는 출처와 근거가 없는 가짜나 사실이 잘못 알려진 게 부지기수입니다.
6. 억지 초대 자제
서로 생면부지인 사람들을 모아 단톡방을 개설하는 것도 꼭 필요하지 않으면 삼가야 합니다. 초대된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이야기만 하거나 자칫 말이 엉켜 불쾌해지게 됩니다. 100명 넘는 사람을 초대해 운영하다가 “잠시 잠적한다”며 없어지더니 몇 달 후 다시 나타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이게 뭐야, 장난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 OB 내지 않기
골프에서는 공이 규정된 지역 외로 나가면 OB(Out of Bounds)라고 합니다. 단톡방에도 OB꾼들이 많습니다. 아내에게 보내는 카톡을 엉뚱한 모임에 날리거나 임대료 빨리 보내라는 카톡을 대학 동창 단톡방에 올려 웃음거리가 되곤 합니다. 정신 차리세요. 간판도 못 다는 사람이 많지만 단톡방 간판을 잘 보세요. 뒤늦게 삭제해도 ‘때는 늦으리’입니다.
8. 댓글 달기 신중하게
수신자가 지켜야 할 것도 많습니다. 행사나 모임에 초대하는 카톡에 눈치 없이 제일 먼저 못 간다고 댓글을 다는 건 한마디로 흥행을 방해해 김이 새게 만드는 짓입니다. 카톡을 빨리 읽는 건 좋지만 불참 통보는 최대한 늦춰야 합니다. 또 어떤 일에 대해 회원들의 반응이나 논의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다른 걸 올리는 건 실례입니다. 이런 중간 낙서는 먼저 글 올린 사람을 불쾌하게 할 뿐 아니라 호응도 얻지 못합니다. 하루 정도 지나 그 일이 정리된 뒤 새 글을 올리는 게 바람직합니다.
9. 딴전·딴청 부리지 말기
여럿이 의견을 주고받는 단톡방에서 그 주제 내의 특정 사항에 대해 둘이서 설왕설래, 지지고 볶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관심이 없거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떠들다 보면 본인들은 신날지 몰라도 꼴불견이 되기 십상입니다. 개인 카톡으로 1대 1 대화를 하는 게 좋습니다.
10. 반응·답장 잘 하기
카톡을 받으면 반응을 보이고 답을 하는 게 소통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묵묵부답인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내용이 지겨워 오는 족족 카톡을 지우고 일절 답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자 보낸 사람이 삐쳐서 전화도 안 받더랍니다. 겨우겨우 기분을 풀어주었는데, 영영 안 볼 사람이 아니면 적절히 알은척을 해주십시오. 데이터가 꽉 찬 경우 카톡방에서 나가버려 기분 상하게 하지 말고, 휴대폰 우측 상단의 석 삼자를 누르고 그 아래 기능 버튼에서 ‘대화 내용 모두 삭제’를 눌러 몸을 가볍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