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날은 일본에서 살고 있는 딸이 우리 집에서 열흘간 머물다 떠난 날이었다. 김포공항에서 딸을 배웅하고 미용실에 들렀는데 일본에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한 것이다. 딸과 통화 중에“네가 내 딸이라 고마워”라고 하자 이 말을 들은 미용실의 한 손님이 “참 듣기 좋은 말이네요”라고 했다고 원장님이 웃으며 전해줬다.
서둔야학 시절 나는 이별을 자주 했다. 야학생들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이 1년 정도 봉사활동을 하다가 그만두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떠날 때마다 너무 슬퍼서 새로 오시는 선생님들에게는 절대로 정을 주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정을 주지 않은 줄 알았는데 선생님들이 떠날 때마다 나는 또 울고 있었다. 마음 아프지 않겠다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이별인 듯싶다. 딸과도 매년 두 번씩 만나 며칠간 같이 있는데 헤어질 때마다 울게 된다. 정 많고 눈물 많은 내가 어쩌다 하나밖에 없는 딸과 떨어져 살게 되었는지…. 이것도 운명이겠지!
딸은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나를 위한 이벤트를 기획해서 온다. 2017년에는 딸의 배려로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보그전'을 봤는데 너무 아름답고 멋졌다. 패션을 좋아하는 내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보그전은 패션디자이너와 패션모델, 그리고 사진작가와 현장 감독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색채의 향연과 빛의 향연 속에서 모델들은 마음껏 아우라를 내뿜었다. 그야말로 극치의 아름다움이었다.
나태주 시인이 말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한 사람이 된다"라고.
"야~~ 멋있다!" "정말 환상적이다!"
딸애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볼 때마다 흥분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나를 지켜보며 뿌듯해했다.
지금은 스마트시대다. 내 가슴속에 각인된 멋진 그 시간은 휴대폰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에 이따금 꺼내 보며 딸과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려본다.
2015년에는 뮤지컬 '엘리자벳'을 같이 관람하는 호사를 누렸다. 오스트리아의 황제 요제프의 왕비인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다. 경국지색(傾國之色), 침어낙안(沈魚落雁)이라 칭할 만큼 빼어난 미인이며 몸매도 아름다운 그녀는 화려한 궁중 의상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그녀의 모습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완전 내 취향이라서 한눈에 빠져버렸다. 요제프 왕세자는 그녀의 언니와 혼인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가 아름다운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 그녀와 결혼한다.
‘로맨틱 엘레강스’. 내 옷차림 콘셉트다. 나는 ‘패션’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한다. 새 옷을 입는 날은 가슴이 설레 밥을 못 먹을 정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옷을 입을 때 수수하고 편한 것을 추구한다. 나는 절대 아니다. 좀 불편해도 예쁘고 멋진 의상을 선택한다. 그러다 보니 옷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장난 아니게 많다. 남보다 튀려고 작심하고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의상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가 다르니 다른 사람과 차별이 될 수밖에 없는 게 내 옷차림이다.
“너도 제발 남들처럼 수수하게 입고 다녀라.”
결혼 전, 출근할 때마다 내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엄마는 잔소리를 늘어놓으셨다. 결혼 후에는 남편이 그랬다. 너무 튀는 옷을 입고 다닌다며 타박하듯 말해 티격태격하는 날이 많았다.
1988년 2월의 어느 날 아침, 평택여고 교무실을 들어서는데 동료 교사들이 미디 기장의 타이트한 옥색 원피스를 입은 나를 보고 일제히 박수를 쳤다.
케이프 디자인의 어깨에 앞면에는 같은 색의 커다란 오간자 실크 리본이 달려 있는 옷이었다. 옷감은 모직 개버딘. 고급스런 느낌에 피부에 닿는 감촉이 포근했다. 우아한 아이보리색 진주목걸이를 매치하고 같은 색 계열 아이보리 톤의 진주귀걸이도 달았다. 하얀 레이스 장갑은 신의 한 수였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 동료 교사들은 내 옷을 보며 봄을 상상한 걸까? 예상외의 반응에 부끄러웠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옷을 사놓고 빨리 입어보고 싶어 며칠을 안달했다. 아무래도 봄까지 기다리는 것은 무리였다. 2월 중순 무렵이었고, 속옷으로 슬립 하나만 입었던 터라 그날의 쌀쌀했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옷을 입는 행위도 일종의 예술로 생각한다. 옷을 예쁘게 입는 데 목숨 건 내게 그 정도의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새로 산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가기 며칠 전, 평택 번화가를 지나다가 J브랜드 매장 쇼윈도 마네킹을 보고 숨이 턱 막혔다. 너무 마음에 드는 옷이 내 눈에 띈 것이다. 좋은 옷은 색감, 질감, 디자인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마네킹이 입은 원피스가 그 조건들을 다 갖췄다는 판단이 서자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너무 젊은 애들 스타일 아닐까? 나한테 과연 저 옷이 어울릴까?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는 않을까?’ 쉽게 구매결정을 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 옷이 다른 사람에게 팔릴까봐 이삼일에 한 번씩 가서 확인을 했다.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하고, 갖고 싶은 물건은 반드시 손에 쥐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였다. ‘패션은 도전’이다. 결국 며칠 만에 용기를 내어 매장에 들어가 그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일단 입어보고 어울리지 않으면 포기하면 됐다.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그 옷은 마치 손님이 맞춘 옷처럼 딱 맞네요.”
매장 직원과 그곳에 온 손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사이즈는 55였는데 내 몸에 맞춘 듯 잘 맞았다. 어디 하나 손댈 곳이 없었다. 그 옷을 사 입은 후 한국 사람들은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옥색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참 많이도 들었다.
잘 맞는 옷은 그 사람의 캐릭터가 된다. 옥색 원피스를 입고 교무실 앞 복도를 걷는데 남자 영어 선생님이 한마디 툭 던지며 지나갔다.
“그녀는 내게로 나비처럼 날아왔다.”
잘생기고 키도 크고 품성도 좋은 그가 반대 방향으로 스쳐 지나가던 나를 보고는 싱글벙글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가 그리도 좋았던 걸까? 완벽한 패션을 추구하는 나는 어지간한 옷들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눈에 들어온 옷은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든다. 구입 후에는 아끼고 또 아껴가며 입는다. 옥색 원피스도 10년 이상을 나와 함께 동고동락했다. 나를 가장 빛나게 해주고, 숨이 막힐 만큼 좋았던 옷은 내 평생 그 원피스뿐이다.
몇 년 전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한 젊은 여성이 인사를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평택여고 나왔어요. 학교 다닐 때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 옷 구경하곤 했어요.”
직접 가르치지도 않은 학생이 내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궁금해서 수시로 교무실에 가서 몰래 훔쳐봤다는 고백이었다. 하긴, 평택여고에서 내 별명은 ‘공주 선생님’이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인천성모병원과 함께 ‘백세 건강 챙기는 가정용 의료기 백배 활용법’을 연재합니다. 시니어가 가정에서 자주 사용하는 의료기를 제대로 알고 쓸 수 있도록, 재미있는 영상과 함께 찾아갑니다. 영상은 네이버TV 브라보 마이 라이프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감수 김대균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출연 안지현 인천성모병원 간호사, 박애란 동년기자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사망 원인 통계를 보면, 다소 낯선 이름의 병명이 8위에 자리 잡고 있다. 바로 ‘만성 하기도 질환’. 기관지염이나 만성폐쇄성페질환(COPD)으로 대표되는 호흡기의 만성 질환이다. 통계에서 나타나듯 이 병으로 인해 오랜 시간 고통을 받거나, 사망하는 환자의 수가 적지 않다.
특히 만성폐쇄성폐질환은 시니어가 주의해야 할 대표적 질환 중 하나. 흡연, 분진, 가스, 취사, 난방으로 인해 발생하는 연기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폐 조직이 손상되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은 한 번 발생하면 완치되지 않는다. 폐에 문제를 일으켜 산소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게 만들고, 혈액순환에도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기침이 잦은 정도로 시작하지만, 증상이 심하면 호흡곤란과 만성호흡부전으로까지 이어진다.
전문의들은 만성폐쇄성폐질환의 원인으로 흡연을 가장 먼저 꼽는다. 전체 흡연자의 15% 정도가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고 있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 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 중 남성의 비율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는 미세먼지 같은 공기오염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밖에 먼지나 분진에 노출되는 직업을 가진 이들도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중증 상태에서는 꾸준한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소를 적극 공급함으로써 호흡부전으로 발생하는 산소 부족을 해결해줘야 삶의 질과 생존 기간을 향상시킬 수 있다.
산소발생기라 하면 거대한 설비를 상상하기 쉽지만 최근 만성호흡부전 환자를 위해 보급되는 산소발생기는 집 안에서도 쉽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볍다.
2006년부터는 병원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산소치료도 건강보험이 적용돼, 한 해 약 1만여 명의 환자들이 연간 100억여 원의 혜택을 받고 있다. 담당 의사로부터 산소치료 처방전을 받은 후 공급업체를 통해 대여하는 방식인데, 환자는 대여료(치료수가)의 10%만 부담하면 된다. 실제 환자 본인 부담 비용은 가정용 산소발생기의 경우 월 1만2000원, 휴대용 산소발생기는 월 2만 원 수준이다.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김대균 교수는 산소발생기 사용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중증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의 수명을 연장해주고, 삶의 질도 높여준다는 효과가 입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가정에서나 외출할 때 가능한 한 오랜 시간(적어도 하루 15시간 이상) 산소 공급을 받는 게 좋습니다. 지속적인 산소 공급이 폐동맥의 압력을 줄여 심장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안정을 취할 때는 호흡곤란이 심하지 않은 환자라도 움직이면 곧바로 숨이 차게 마련이니 이동하거나 운동할 때만이라도 산소 치료를 하면 좋겠습니다.”
가정용 산소발생기
가정용 산소발생기 사용법▶가정용 산소발생기 사용 방법은 어렵지 않다. 다만 주의할 것은 사전 준비. 산소발생기는 주변 공기를 활용해 산소를 발생하기 때문에 흡기가 이뤄지는 부위 주변에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따라서 벽 가까이 붙이면 안 된다. 또 산소 공급 과정에서 코 안 점막 등이 마르지 않도록 습윤을 도와주는 물통이 늘 청결해야 한다.
a 호흡을 위해 환자 코에 캐뉼러를 삽입하고 빠지지 않도록 귀에 건다. 길이 조절용 홀더를 당겨 턱에 캐뉼러가 밀착되도록 한다.
b 전원을 켜고, 처방받은 산소량이 공급될 수 있도록 다이얼을 조작한다.
c 최근 공급되는 제품들은 저소음 설계와 미세한 산소량 조절이 대부분 가능하나 사용 초기에는 작동 음에 대한 적응이 필요하고 처방 범위 내에서, 그리고 활동 여부에 따라 달리 투여되는 산소량 조절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휴대용 산소발생기
휴대용 산소발생기 사용법▶휴대용 산소발생기 사용 방법도 가정용 기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휴대용 산소발생기 역시 흡기 부분에 장애물이 있으면 산소 발생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작동 시 확인이 필요하다. 휴대용 산소발생기의 작동시간은 일반적으로 3~4시간(분당 산소
2ℓ 공급 기준) 내외이기 때문에 외출할 때에는 귀가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해야 한다.
a 호흡을 위해 환자 코에 캐뉼러를 삽입하고 빠지지 않도록 귀에 건다. 길이 조절용 홀더를 당겨 턱에 캐뉼러가 밀착되도록 한다.
b 전원을 켜고 잠시 기다린 후 정상으로 작동되는지 확인한다. 처방받은 산소량이 공급될 수 있도록 다이얼을 조작한다.
횡격막 호흡법
▶횡격막 근육을 강화해 호흡 능력을 증진하는 운동법
a 무릎을 굽히고 등을 대고 편안히 눕는다.
b 한 손은 배 위에, 다른 손은 가슴 위쪽에 얹는다.
c 코로 숨을 들이마시며, 가능한 한 복부가 부풀게 한다.
d 초를 끄듯 입술을 모아 천천히 입으로 숨을 내쉰다.
e 이때 가능한 한 위쪽 가슴은 움직이지 않게 한다.
이 과정을 반복한다.
건강한 노령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매일유업은 지난해 10월 웰에이징을 위한 영양전문 브랜드 ‘셀렉스’를 론칭하고 ‘마시는 고단백 멀티비타민’, ‘밀크 프로틴바’ 제품을 출시했다. 이번에 선보인 ‘셀렉스’는 ‘영양전문가의 선택’이라는 브랜드 콘셉트로 중장년층의 영양 상태와 식습관을 고려해 주요 성분과 제품 형태를 엄선해 개발됐다.
대한민국 65세 이상 30% 단백질 권장량 미달, 중장년기 반드시 필요한 단백질 섭취
몸 속 근육량은 30대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50대부터는 매년 1~2%씩 소실되고, 70대가 되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체중의 50% 이상이 근육인 만큼 근육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매우 크다. 특히 나이가 들면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단백질 필요량이 젊은 사람들에 비해 증가하기 때문에 근합성에 필수적인 단백질을 섭취해줘야 한다.
건강한 근육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루에 몸무게 1kg 당 1.0~1.2g의 단백질 섭취가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60세 이상 2명 중 1명 이상은 하루 권장량 이하의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성인들은 매일매일 꾸준히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1~2회 몰아서 지방함량이 높은 삼겹살로 고기 단백질을 섭취하는 경향이 있다. 나물 등의 채소 위주로 식사하고 유제품 등은 소화가 안 된다는 이유로 꺼리기도 한다.
단백질은 근육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영양소로 달걀, 기름이 없는 육류, 생선, 두부 등이 대표적인 공급원이다. 단백질은 종류에 따라 소화와 흡수시간이 다르다. 동물성, 식물성 단백질을 복합적으로 섭취하여 지속적으로 단백질 합성에 필요한 아미노산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백질은 약 20여종의 아미노산으로 결합되어 있는데, 이중 체내에서 합성되지 못하는 필수 아미노산 9종은 식품으로 직접 섭취해야 한다. 9종의 필수아미노산 중 특히 류신(leucine)은 단백질 합성을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육 단백질 합성을 증가시키고 분해를 감소시켜 근육량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노인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 JAMDA에 따르면 체중 60kg 성인 여성이 먹어야 하는 하루 단백질 권장량은 60g이다. 하루 60g의 단백질을 섭취하려면 달걀 7~8개, 돼지고기 170~570g, 우유 2~3L를 먹어야 한다.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인 우리의 경우, 이 권장량을 음식으로만 채우기는 쉽지 않다. 매끼 챙겨 먹기 어렵다면 시중에 나와있는 고단백 제품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좋다.
일상생활을 불편함 없이 누리는데 필요한 자신의 근육건강을 상태를 간단하게 체크해볼 수도 있다. 매일유업의 ‘매일아이(www.maeili.com)’ 모바일 사이트에 접속해 전문가 상담 코너 ‘근육점수 자가설문’을 클릭하면 매일유업의 근감소 관련 연구조직 ‘매일사코페니아연구소’에서 제시하는 자가설문 10문항을 통해 자신의 근육점수를 알 수 있다.
동물성·식물성 단백질의 최적의 발란스, 간편하게 즐기는 고단백 영양식 셀렉스
‘셀렉스’는 매일유업에서 선보이는 고단백 영양식. 액상 파우치 음료 ‘마시는 고단백 멀티비타민’과 시리얼 바 ‘밀크 프로틴바’로 구성돼 있다.
매일유업은 우유단백질(동물성 단백질)과 식물성 단백질을 고루 배합하여, 단백질의 발란스를 맞추어 간편하게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제품의 맛을 높이기 위해 1년여간 연구개발에 투자했고 10여 차례의 소비자 평가를 진행하는 등 단백질 제품은 맛이 없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마시는 고단백 멀티비타민’은 간편하게 뜯어서 바로 마실 수 있는 RTD(Ready to Drink) 제품으로 125㎖ 용량에 단백질 8g이 함유돼 있다. 이는 동일 용량 우유의 2배에 해당하는 단백질 양으로, 평소 소화 때문에 우유섭취가 어려웠던 중장년층이 부족한 단백질을 채우기에 적합하다. 단백질과 함께 근육 합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필수아미노산 ‘류신(leucine)’은 1000mg 들어 있다.
하루 권장 섭취량을 고려해 비타민과 미네랄도 14종이나 담아 ‘마시는 고단백 멀티비타민’을 하루에 1~2포 마시면 별도의 영양제를 먹을 필요가 없다. 7가지 곡물과 견과류(수수, 조, 현미, 율무, 보리, 호두, 땅콩)로 고소한 맛을 더했다.
‘밀크 프로틴바’는 휴대가 간편해 여행이나 운동 중 영양보충에 좋다. 우유로 감싸 부드럽고 폭신하며 제품 1개(18g)에 우유 한 컵에 들어 있는 단백질(3.8g)이 함유돼 있다. 고소한 3가지 견과류(아몬드, 호두, 땅콩)와 3가지 달콤한 베리류(크랜베리, 아로니아, 블루베리) 2가지 맛이 있어 기호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다.
건강과 맛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인기몰이 중
중장년층이 건강과 맛을 동시에 챙기면서 간편하고 친근함을 추구하는 영양식 푸드를 찾기 시작했다. 동년기자 박애란 씨는 “브라보 헬스콘서트 현장에서 받은 셀렉스 액상 파우치가 음료라고 해서 뜯어서 마셨는데 일반 단백질 쉐이크와 달리,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나고 든든한 한끼 식사로도 충분했다”며 “어디서 구매하나 하고 포장지를 살펴보니 우유에 단백질 등 수십년간 영양전문가로 많은 제품을 출시한 매일유업에서 나오는 거라 더욱 믿음이 갔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말 서울시 축제 때 셀렉스를 알게 된 60대 시니어는 “평소 음식만으로 단백질을 채울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단백질 제품을 찾던 중, 셀렉스 밀크 프로틴바 제품을 접하고 맛있고,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어 좋았다” 며, 간단하게 외출하거나, 운동을 할 때 주머니에 하나씩 넣고 다니면서 챙겨 먹기 좋다고 말했다.
2017년 4월 4일 MBN의 토크 프로인 황금알에 '고수'로 출연했다. 주제가 '인생에 정년은 없다'였다. '밑줄 쫙 긋고'란 말로 유명한 국어강사 서한샘 씨를 포함해 유명인사 총 아홉명 '고수'들이 녹화에 참여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나였다. 저녁 4시 반부터 녹화를 시작해서 밤 9시 반에 끝났다. 저녁까지 굶으며 녹화했는데 어찌나 재밌는지 몰랐다. 녹화 내내 즐거웠고 기운이 펄펄 났다.
'하루를 살아도 재미있게’
이 말은 오랫동안 추구해온 내 삶의 모토이다. 자식들을 다 키웠으니 이젠 내 시간이니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하며 즐기며 살면 된다. 그래서 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교사 시절부터 퇴근 후 인근 대학교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인 왈츠를 수강했고, 주말에는 상경하여 압구정동에서 놀았다. 그리하여 MBN에서 고수로 출연했던 당시 내 콘셉트는 압구정 날라리였다. 금요일에는 2번 출구로 나가서 클래식 음악감상실 무지크 바움에 가서 오페라 감상을 했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압구정역 4번 출구에 있는 탱고 동호회 '땅게리아'에 가서 아르헨티나 탱고를 배웠다. 운동 차원에서 왈츠와 탱고를 춘 것이다. 음악에 맞춰서 한 시간 춤을 추다 보면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이 되고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니 마음 또한 힐링됐다. 다른 시니어에게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싶다.
시니어 미디어 일인자를 꿈꾼다
퇴직 후 제일 불행한 사람은 집에 우두커니 있는 사람이다. 일본의 통계에 의하면 첫 번째 행복한 사람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고, 두 번째 행복한 사람이 취미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세 번째로 행복하다고 했다. 전반생인 퇴직 전의 삶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는 기간이 후반생인 퇴직 후의 삶이다. 요즘 트렌드인 일인 미디어의 주역을 꿈꾸며 올해는 한국방송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3학년에 편입해 공부하고 있다. 시니어도 하고 싶은 일을 차례차례 다 해보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다 보면 삶의 질이 높아진다. 모르는 것을 아는 기쁨이 크니 그 과정을 그냥 즐기면 된다. 공부하고 글쓰기를 하며 책을 읽는 것이 지금 나의 일상이다.
시니어 생활 이렇게 하자
즐기자 삶은 즐기는 것이다. 부부가 같이 왈츠와 탱고를 추자. 서로 교감하며 춤추는 동안 기분은 좋아지고 충분한 운동이 된다. 더불어 심드렁하던 부부간의 애정도 높아진다.
공부하자 우리나라는 교육인프라가 너무 잘돼있다. 지자체의 프로그램도 우수한 콘텐츠가 많다. 한국방송대 강의 또한 훌륭하니 방송대에 편입해서 질좋은 강의를 들어보자.
하고 싶은 일을 이루자 글쓰기, 독서, 사진작가 등 그동안 하고 싶어도 전반생에서는 여건상 못했던 일들을 차근차근 시작해보자.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냥 그 과정을 즐긴다는 마음가짐이면 된다.
문화를 즐기자 오페라 감상, 음악회, 그림 전시회 등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생활을 골고루 누려보자. 진동하는 예술의 향기를 외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나를 몇단계 업그레이드시켜주는 것이 예술의 향기이다.
여행여건이 되면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다른 문화권 사람들의 삶과 색다른 풍광, 이색적인 문화를 체험해보자.
감사하자나는 내 마음의 주인이다. 더 갖고 싶은 욕망은 나를 불행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마음에서 욕심을 내려놓고 비우고 덜어내며 하루하루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자.
김형석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학습하고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라고.
후반생의 삶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될 수 있으면 나누며 살자.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렇게도 살고 싶은 내일이다' 하루하루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흥미, 재미, 의미를 추구하며 살도록 하자.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S예요. 선생님 저 곧 결혼할 거예요. 고마웠어요, 선생님"
"S야 정말 오랜만이구나. 참으로 축하한다. 이제는 힘든 일은 다 잊어버리고 좋은 사람과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S를 만난 것은 그녀가 평택여고 2학년인 1998년도 봄학기였다. 어느날 컴퓨터실에 갔던 나는 작은 소동을 목격했다. 보육원에서 살고 있던 S가 같은 보육원의 다른 친구와 둘이서 소풍비 청구서를 그곳에서 인쇄하다가 그만 그들의 담임 선생님께 들켜버린 것이었다. 혼나고 있는 아이들의 사연을 알고 나니 가슴 아팠다. 내가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온순한 성격의 학생들이 얼마나 용돈이 쓰고 싶으면 가짜 청구서까지 만들었을까. 그달부터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두 학생에게 한 달에 각각 만 원씩 용돈을 줬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비밀로 하고 쓰고 싶은 곳에 쓰라고 했다. 이일은 그들이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여름 어느 날
2층에서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가던 나를 본 S가 재빨리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뒤로 감췄다. 때마침 S는 아래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던 중이었다. 다달이 자신에게 용돈을 주던 내 눈치가 보여 맛있게 먹던 아이스크림을 숨기는 행동에 다시 마음이 내려앉았다.
"S야 괜찮아 그 돈은 뭐든지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쓰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쓰라고 준 것이거든."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 내 눈치를 보며 주눅 들어있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며 긴장한 그녀의 어깨를 다독여줬다. S는 졸업 무렵, 나에게 주석으로 된 연주하는 소녀 인테리어 소품을 선물했다. 자신이 쓰고 싶은 곳에 쓰라고 줬는데 나한테 쓰다니.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허나 내 선물을 산 것도 그녀가 쓰고 싶은 곳에 돈을 사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고맙게 받기로 했다.
그녀가 전화로 자신의 결혼 소식을 알린 것은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다음이었다. 학교를 나가서도 나를 잊지 않고 소식을 알려준 S가 고마웠다. 먼 지방에서 결혼하는 그녀의 결혼식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행복을 마음껏 빌어주었다. 외롭게 자랐던 그녀가 사랑하는 이와 서로 믿고 존경하고 서로 돕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참으로 간절했다.
작년 초, 2기 동년기자 발단식에 범상치 않은 여인이 나타났다. 망사와 레이스로 된 코사지를 머리에 올려 쓰고, 화려하게 빛나는 공단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박애란 동년기자였다. 상냥한 어투로 자신을 핑크레이디라고 소개하던 그녀는 어느새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없어서는 안 되는 대표 인물로 자리매김하는 중. 최근에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영상 제작에도 참여하며 그 누구보다 활발히 동년기자 활동을 넓혀가고 있는 그녀다. 잘 영근 숙녀의 삶 속에는 어떤 우여곡절이 숨어 있을까?
동년기자 리포터 가능할까요?
박애란 동년기자에게 자주 가는 장소가 어디냐고 물으니 서울 강남에 있는 서초문화원이라고 했다. 현재 이곳에서 모델워킹 수업과 시창작 수업을 듣고 있다고. 대부분 시간을 주로 강남 일대에서 보내는데 1분 1초도 아깝지 않게 살뜰히 모아 사용하고 있다.
“2012년부터 다니기 시작했어요. 평택에서 컴퓨터 선생님으로 교사생활 33년 하고 나서 서울로 이사왔습니다. 이곳에서 수필창작, 영어회화, 시낭송, 왈츠를 등록해 열심히 다녔어요. 패션학원도 등록해서 다녔어요.”
어렸을 때 꿈 중 하나가 교사였는데 이것은 벌써 이뤘고, 다른 하나는 패션디자이너라고 했다. 교사직을 맡고 있을 때도 꿈을 이루기 위해 평택과 서울을 오가며 패션 특강을 들었다고. 한국폴리텍대학교에서 패션디자인 야간과정을 6개월 정도 밟기도 했다. 순간마다 패션의 길로 접어들까 고민한 적도 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신 패션 공부했던 경험을 실생활에서 활용하고 있다. 박애란 동년기자가 입고 두르고 가지고 다니는 것 대부분이 스스로 리폼한 제품이다.
“어렸을 때 바느질을 좋아했어요. 내 옷은 내가 리폼하고요. 이 가방도 다섯 번도 넘게 끈 부분을 갈았어요. 레이스를 손바느질로 덧대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명품가방을 만든 거지요.”
퇴직하고 난 이후에 더욱더 열심히 사는 박애란 동년기자다.
“생각을 바꿔야 해요. 퇴직 전은 전반생, 그 후는 여생이 아니라 후반생. 전반생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살았다면 후반생에는 의무감에서 벗어나도 괜찮아요.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살면 돼요. 그래서 후반생은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거죠. 내가 또 몸치이기는 한데 왈츠도 배우고 탱고 동호회도 나가고 있어요. 발레도 하고요. 이 나이에 몸이 잘 늘어나겠어요? 왜 내가 내 돈 들이면서 이 고생하나 하다가도 우아한 발레 음악 들으면 엄청 행복해집니다.(웃음)”
인터뷰 바로 전날에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 제작하는 영상 프로그램 촬영을 다른 동년기자들과 마친 상태였다. 이후 의학 관련 영상에서는 리포터로도 활약했다. 검증된 끼와 재능으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간판 리포터(?)로 벌써부터 점쳐졌던 인물이 박애란 동년기자였다.
“아무래도 시작이다 보니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생기더라고요. 안 그래도 ‘브라보 마이 라이프’도 영상을 시도할 만한데?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시작하더라고요. 동년기자들이 대단한 내공을 가진 시니어잖아요. 내 생각이 그대로 옮겨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대한 애정은 이뿐만이 아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품격 있는 시니어라면 반드시 봐야 하는 잡지가 ‘브라보 마이 라이프’!”라며 홍보 멘트를 꼭 날린다. 우리 잡지에 처음 자신의 기사가 실렸을 때는 너무 좋아서 기절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생각해보니 당시 기자 앞에서도 본인 기사가 실린 잡지를 열어보고는 방방 뛰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웃는 얼굴에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슬프고 착한 아이, 애란을 만나다
“내 패션이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지? 왜 이런지 물어봐주실래요?”
한껏 하늘을 날 것처럼 깃털 같은 얘기를 이어가다가 갑자기 기자에게 질문했다. 별 얘기 아니려니 하고 원하는 질문을 던졌다. 뜻밖의 소재로 이야기가 바뀌었다.
“옷을 이렇게 입게 된 건 언니 때문이었어요. 어린 시절 아빠가 언니만 사랑해줬어요. 언니가 아버지를 닮았거든요. 한번은 언니랑 싸우는데 아빠가 싸우지 말라고 우리를 다그치다 저랑 언니를 톱자루로 엉덩이를 한 대씩 때렸어요. 정말 너무너무 아팠어. 그때 든 생각은 ‘언니도 아프게 때렸을까?’ 였어요. 나도 사랑받고 싶었어요.”
이때의 기억은 말 그대로 트라우마(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남아 있었다. 똑같이 때렸을 거란 기자의 말에 “아니, 아닌 거 같아요”라고 맞받아쳤다.
“어느 날 언니가 책을 산다며 아버지한테 용돈을 달라고 했어요. 저한테도 ‘돈이 필요하지 않냐?’고 아버지가 물었어요. 그런데 저는 ‘됐어요. 그동안 제가 모아놓은 돈으로 사면 돼요’라고 했어요. 누가 착한 아이야?”
이 말에 기자는 “아버지가 속으로 많이 상처를 받았을 거 같다”고 답했다. 이에 박애란 동년기자는 그게 왜 상처냐고 되물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돈 잘 모은 행동’을 칭찬받고 싶었겠지만, 아버지 입장에서 ‘용돈을 주겠다’는 말이 일종의 사과였고 화해의 사인이지 않았을까. 박애란 동년기자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너는 도대체 애다운 맛이 없다”며 나무랐다. 화해의 손을 놓아버린 고집 세고 질 줄 모르는 애어른으로 아버지는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때 박애란 동년기자가 아버지한테 “저도 책이 사고 싶어요, 돈 주세요”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아버지는 분명 화해를 표했던 것이라고 꼭 박애란 동년기자에게 얘기하고 싶다. 어린 시절 언니를 편애하던 아버지 이야기가 끝나고 나니 초등학교 시절 너무 예뻐서 한 치도 따라잡을 수 없었던 두 친구 이야기로 흘렀다. 외모 콤플렉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선생님께 예쁘게 보이기 위해 길에서 주웠던 군번줄을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학교에 갔던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려줬다. 아버지에게 거부당한 사랑은 선생님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사랑으로 표출됐다. 이쁨받기 위해 고운 옷을 골라 입었고, 모자 쓰기를 좋아했다. 말을 하는 내내 박애란 동년기자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아직도 그렇게 서러운 걸까. 밝은 웃음 뒤에 철저하게 감추고 있었던 상처받은 어린 박애란이 바로 눈 앞에서 울고 있었다.
그나마 박애란 동년기자 인생에서 다행인 것은 어린 시절의 아픔을 서둔야학에서 대신 치유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서둔야학은 박애란 동년기자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야학으로 서울대학교 농대 재학생들이 주축이던 곳이다. 작년 말에는 서둔야학당터에서 ‘서둔야학 홈커밍데이’ 행사를 열었는데 본지가 찾아가 탐방 취재를 하기도 했다. 선생님 모두 착한 아이로서 박애란 동년기자를 인정해주었고 예뻐해줬다. 훗날 박애란 동년기자의 교사 꿈을 이루게 해준 놀라운 곳도 바로 서둔야학이다.
박애란 동년기자가 울컥할 때 주문처럼 되뇌는 마법과도 같은 말이 있다.
“울면 안 돼, 짜장면은 돼!”
세상의 모든 낭만적이고, 슬프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순간에 박애란 동년기자는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아픔을 덮어주는 이불과도 같은 말. 이제는 좀 따뜻한 마음으로 사그라지고 아물고 용서할 수는 없을까.
백설공주처럼 예쁘게 안녕
“큰일날 뻔했어. 이 좋은 세상 못 보고 이생을 하직할 뻔했잖아.(웃음)”
상황 불문 눈물, 콧물 짜며 소녀감성 폭발하는 박애란 동년기자. 세상을 비관하고 꽃다운 나이에 자살을 시도했던 일화도 꽤 오랜 시간 털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야학에서 공부를 하고 나니 막상 갈 곳이 없었다. 결국 선택한 곳은 대한방직이었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책에 빠져 있는데 현실은 공장이잖아요. 숨이 턱턱 막혔어요. 내 방에 공주들 사진을 붙여놓으면 아버지는 그런 것을 벽에 붙이면 귀신 나온다며 떼어버리라고 그러셨고요.”
이러다 평생 여공으로 살 것 같았다. 그러느니 죽자. 수면제가 가장 깨끗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을 듣고 수면제를 사다 모았다. 사랑으로 감싸준 서둔야학 선생님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헝겊으로 꽃을 만들었다. 죽음 초읽기에 들어갔다.
“1968년도 5월 15일에 야학당에 가서 스승의 날 꽃이라며 선생님들 가슴에 달아드렸어요. 정말 눈물을 꾹 참고요. 내 나이 열여덟 살이었어요.”
죽을 때 죽더라도 예쁘게 죽겠다는 생각에 하늘색 브라우스에 스커트를 입고 꽃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입 안에 수면제를 털어넣었다. 천운이었을까, 일어나보니 하늘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막 우시더라고요. 그래도 아버지가 고와보이지 않았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맞았던 사건 이후로 아버지한테 사랑받기를 포기했어요. 무엇보다 아버지는 가족들 앞에 무력했습니다. 그땐 절망이었습니다.”
기운을 차리고 야학당으로 가서 그곳에 계신 대학생 선생님들에게 자신의 자살소동과 관련한 얘기를 했다고.
“그때 번뜩 정신을 차렸어요. 선생님이 제 얘기를 듣고 놀라기도 했어요.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누가 너 죽은 모습을 보고 아! 아름답다’ 하겠냐고. 백설공주를 본 왕자는 아름답다고 외쳤는데. 암튼 그때 제 생각에 꽃이 달린 모자를 쓰고 죽으려 했던 것이 너무 낭만적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반전은 죽었으면 큰일날 뻔했어. 지금 사는 게 너무 재밌거든. 요즘 생각하면 죽기 정말 아까워요.”
여직공, 여교사 되다
“되게 힘들게 살긴 했네요. 고비, 고비. 길고긴 고비. 내가 산전, 수전, 지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사람이에요. 처음에는 수원에서 딸기를 땄어요. 그다음에 버스회사 사환을 했어. 방직공장에 들어갔어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일반직으로 이십대 때 근무했어요. 그다음에는 타자학원 강사로도 일했고요. 그리고 결국 스물아홉 살에 중등교사자격시험에 합격했어요. 이후에 공립학교 임용고시에 붙어서 선생님으로 33년 살았잖아요. 교사자격증을 손에 쥐었을 때 눈물이 강물이 되도록 울었어요.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말씀드렸는데 엄마가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서울대학교 농대에서 일할 당시 선생님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농대 학장은 유독 박애란 동년기자에게 “우리 여 선생님 오셨네”라고 하셨다.
“일반직 여직원이 80명이 넘는데 저한테만요. 내가 주장하고 싶은 건 꿈은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제가 학교와 선생님을 좋아했어요. 제게 학교로 가는 길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생각해요.”
트라우마를 조금씩 치유하고 어릴 적 자신과 타협하며 매일 조금씩 나아가며 살아가는 박애란 동년기자는 화려하게 보이는 일은 물론이고 매일 공부하며 사는 하루가 행복하다고 했다. 현재는 문화원에서 다양한 공부를 하는 것 이외에도 방송통신대학교에서 미디어영상학과를 전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농학과, 국어국문학과, 가정학과와 문화교양학과에 이어 미디어영상학과까지 5번째 입학이다.
“우리 집 TV는 방송대 채널에 고정돼 있어요. 예능프로그램은 볼 생각해본 적 없고 클래식 음악 채널이나 다큐채널을 틀어놓아요.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인 거 같아요.”
압구정 날라리는 폼생폼사?
인터뷰도 하기 전에 이런 제목이 어떨까 하고 물어온 박애란 동년기자. 저 느낌이 본인 캐릭터라고 밝게 웃는다.
글쎄 눈물의 근원과 굴곡진 인생 얘기를 듣고 나니 그녀가 가볍게 폼생폼사로 살아간다는 느낌은 없다. 오히려 마감할 뻔했던 삶을 치유하고 보듬으며 매일을 기똥차게 열심히 사는 시니어, 내면에서 흐르는 진정한 멋을 가진 여인으로 느껴졌다. 앞으로 더 깊고 고운 아름다움으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빛내는 동년기자로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브라보 3기 동년기자 릴레이 인터뷰를 본지 에디터가 진행합니다.
최근 건강한 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근력 강화와 함께 체형 교정에도 도움이 되는 필라테스가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몸 관리 트렌드로 자리 잡은 필라테스를 박애란(68), 이두백(69) 두 동년기자가 체험해봤다.
촬영 협조 리얼라인 필라테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운동
독일의 요제프 필라테스(Joseph Pilates)에 의해 고안된 운동법인 필라테스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서 다친 환자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흔히 젊은 여성들이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에게 열려 있는 종목이다. 필라테스는 주로 골반과 척추를 지지하는 근육인 코어근육을 강화하는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몸의 균형을 바로잡을 뿐만 아니라 몸매를 가꾸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특히 활동량과 근육량이 감소하는 시니어에겐 큰 충격을 주는 운동이 아니면서 충분한 유산소 운동이 되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김선미 리얼라인 필라테스 대표는 “체형에 따라 운동의 목표는 다르지만 보통 유연성과 근력 강화, 밸런스 증진, 통증 케어 등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박애란 동년기자
젊은 여성들이 필라테스를 하는 모습을 보고 ‘몸매가 어쩜 저렇게 예쁠까! 기회가 된다면 나도 꼭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나이가 있어 조금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강사의 이해하기 쉬운 설명 덕분에 어렵지 않게 따라할 수 있었다.
이두백 동년기자
남성들에겐 조금 낯선 운동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웬걸, 꽤 많은 남성 회원들이 필라테스 스튜디오에 있었다. 옛날에는 몸매 관리하는 남자는 상상할 수도 없었는데 역시 시대가 많이 변한 것 같다. 몸매 관리하는 남자라니… 멋있다!
필라테스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기구
필라테스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독특한 모양의 기구들이 눈에 띈다. 언뜻 보면 운동 장비보다는 중세시대 고문 장치처럼 보이지만 이것들 모두 다양한 운동 동작을 수행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다. 대표적으로 스프링의 저항을 이용해 코어를 강화하는 ‘리포머(reformer)’, 유연성 향상과 코어와 척추 주변 근육 강화에 도움이 되는 ‘캐딜락(cadillac)’ 등이 있다. 이러한 전문기구가 없는 집에선 비교적 저렴한 폼롤러, 짐볼, 보수 등의 소도구를 사용하거나 의자, 수건 등을 이용해 운동할 수 있다.
박애란 동년기자
침대와 뜀틀같이 생긴 기구, 스프링이 달린 것 등 난생처음 보는 기구들이 신기했다. 마치 놀이터에 온 듯한 기분이랄까! 운동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구들을 이용해 허리와 어깨 근육 이완 운동을 진행했다. 기구의 힘을 빌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었다.
이두백 동년기자
몇 가지 기구를 사용해 양팔과 다리, 몸을 전후좌우로 밀거나 당기는 운동을 반복적으로 진행했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운동이 되었다. 20분 정도 지속하다 보니 숨이 차올랐고 40분째엔 내의를 갈아입어야 할 정도로 땀이 났다. 보기에는 별거 아니네 싶었지만 실제로 해보니 간단한 운동이 아니었다.
비싼 수업료가 부담스럽다면
필라테스를 시작하기 전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비용 문제다. 수업료는 지역, 수업 인원, 프로그램 등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만큼 전문 강사진과 검증된 프로그램 등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최소 3~4곳에서 상담을 받아본 후에 결정할 것을 추천한다. 과거엔 고가의 운동인 필라테스를 접하기 어려웠지만 최근 들어 저렴한 스튜디오를 비롯해 몇몇 주민센터에서도 필라테스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필라테스가 처음이라면 비싼 개인 수업보다 그룹 수업이 이상적일 수 있다. 인터넷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필라테스’ 또는 ‘홈 필라테스’ 등으로 검색하면 집에서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교육 영상을 무료로 찾아볼 수 있다.
박애란 동년기자
필라테스는 비싸다는 생각에 등록을 항상 미뤄왔다. 이번 기회로 일대일 수업을 받게 되었는데 첫 번째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체형 문제, 체형을 교정할 수 있는 운동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맨몸으로 하는 몇 가지 운동 동작을 알아두면 집에서도 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쯤은 필라테스에 투자해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이두백 동년기자
전신거울을 보며 운동한다는 게 처음에는 매우 어색했지만,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통해 내가 동작을 잘 따라 하고 있는지, 어느 부위가 약해서 밸런스가 무너지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이라면 가능한 한 몸에 딱 맞는 옷을 추천한다. 너무 헐렁한 옷을 입을 경우 몸의 굴곡을 잘 볼 수 없어 제대로 된 운동이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3월에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서둔 야학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었다. ‘과락 하는 게 몇 과목이나 되려나? 과락을 해도 2학기 등록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뭘 바라?' 시험결과를 앞둔 밤,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며 두려움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쥐도 새도 모르게 새벽 1시에 살그머니 컴퓨터를 켰다. 1학기 기말고사 성적을 확인해 보았다. 한국방송통신대 홈페이지를 열고 성적확인 경로를 타고 들어가서 눈은 컴퓨터 화면에 고정하고 숨은 멈추고 확인해봤다. 조심조심 중간 과제물 성적을 합산해봤다. 이럴 수가! 과락이 없었다. 야호! 좋아도 너무 좋았다.
예상했던 대로 어려운 과목인 '그래픽커뮤니케이션'과 중간고사 성적이 제일 좋지 않은 '뉴미디어론' 성적이 간신히 턱걸이했다. 특히 뉴미디어론은 60점이 나왔다. 1점만 모자랐어도 재수강해야 했는데, 86점 나온 '현대광고와 카피전략' 점수보다도 1점이 모자라지 않아서 간신히 통과한‘뉴미디어론’과목 60점이 더 반갑고 기쁘고 고마웠다. 아침에 일본에 사는 딸에게 보이스톡으로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러다가 기어이 울고 말았다.
"딸아, 엄마 과락 없이 다 통과했어."
'엄마 이번에는 꼭 마쳐야 해'라며 그동안 격려해주던 딸애는 엄마를 마음껏 축하해주었다. 이게 제대로 된 상황인가? 엄마와 딸의 역할이 바뀐 듯한 이 상황이.
여섯 과목을 통과해야 하는데 1학기 내내 수요일 하루 스터디그룹에 끼어서 공부한 거 외에는 특별히 따로 공부 하지 않았다. 그러다 1학기 기말 고사 일인 6월 24일을 1주일 앞두고 벼락치기로 공부를 시작했다. 일단 공부는 엉덩이 힘으로 하는 거니까 일체 외출 금지 후 만만할 것 같은 '미디어와 스토리텔링'부터 방송을 들었다. 그런 후 교과서에 있는 연습문제를 차근차근 풀었다. 다음에는 흥미진진한 과목 '현대광고와 카피전략'을 같은 방법으로 차근차근 진도를 나갔다. 방송 들으랴 교과서 보랴, 문제 풀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여섯 과목을 한꺼번에 머리에 넣으려니 참으로 바빴다. 여러 과목을 욕심내다 보면 모든 과목에서 F가 나오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두, 세 과목만이라도 건지려면 걔들만 집중적으로 하는 게 나은 게 아닐까?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허둥지둥하는 자신이 참으로 한심했다.
6월 24일 시험 날이었다. 용어조차도 헷갈렸지만 문제를 풀어야 했다. 답이 확실하지 아니면 OMR 마킹을 하지 않고 확실한 문제만 마킹해 나갔다. 다른 학우들은 차츰차츰 다 나가고 드디어 나 혼자만 남아서 시험을 보고 있었다. 3교시 내내 이 상황이 반복되었다. 꽤 긴 시간을 시험감독 둘이서 수험생 하나를 놓고 감독하고 있었다. 끝까지 시험지를 붙잡고 있었다. 마킹이 빠진 것은 없나? 밀려서 마킹한 것은 없나? 차근차근 확인한 후 제출했다.
'가르치는 자는 배움을 게을리하면 아니 된다' 평택여고 시절 방학이 되면 공부할 계획부터 세웠다. 게으르면 안 되는 것이 컴퓨터, 영어, 과학교사이다. 자고 나면 어제의 정보는 구닥다리가 되니 쉬지 않고 업데이트를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 연수를 600시간 이상 받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젊은 남자들인 자기들도 계속 앉아있으려면 좀이 쑤시는데 나이 든 여교사가 늘 꿋꿋이 앞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듣는 것을 보고 젊은 남교사들이 내게 붙여준 별명이란다. 뒤에서 내 뒷담화 하는 줄 모르고 있다가 세월이 꽤 지난 후 듣게 되니 여간 재밌는 게 아니었다.
평택여고에서 워드 프로세서와 인터넷을 가르쳤고 1973년도에 최초로 컴퓨터를 배운 이후 2000년도에 워드 프로세서 1급 자격증을 땄고' 2002년도에는 컴퓨터 활용능력 2급 자격증을 땄다. 미디어 영상학과는 컴퓨터 접목학과이기 때문에 이번 시험에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무슨 공부든지 해놓으면 언젠가는 나를 견인해주는 힘이 될 수 있음을 1학기 기말고사를 치른 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컴퓨터에 대한 기본소양이 없었으면 벼락치기로 1주일 공부해서 과락 없이 평균 C 학점 나오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방송대 미디어영상학과는 뉴미디어론, 그래픽커뮤니케이션, 현대광고와 카피전략, 영상제작입문, 미디어와 스토리텔링, 문화산업과 문화기획, 등의 수업이 진행된다. '1인 영상시대'인 요즘 트렌드에 잘 맞는 학과가 바로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이다. 구성된 학과목이 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여 다른 시니어 분들께도 공부하기를 권장하고 싶은 학과이다.
"학생 늦었는데 집에 안 가요?"
"음악이 좋아서요. 이 음악 끝나면 가려고요."
1989년 내 나이 39세 때였다. 남편이 평택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11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학생 한 명이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부재중이라 내가 문을 닫아야 했기에 그와 대화를 하다 보니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때 서점에 틀어놓은 음악은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제5번 '황제'였다. 그 학생 또한 가장 좋아하는 곡 중에 하나라고 하였다. 나와 똑같이 황제를 좋아하여 음악을 다 듣고 가겠다는 그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황제'는 베토벤 자신이 붙인 타이틀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곡이 화려하고 위풍당당하여 황제의 위엄이 있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 하였다. 다른 해석으로는 피아노협주곡 중에 황제라는 의미도 있다 하였다. 클래식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하던 나는 차이콥스키의 6번 교향곡 '비창',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테잎을 틈틈이 100여 개 사 모은 후, 서점에 번갈아서 틀어놓고 즐기고 있었다. 책과 음악이 어우러진 공간은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공간이었다.
그 후 3학년인 그 학생은 종종 서점을 찾아왔고 그때부터 나와 그 학생은 클래식 음악 얘기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서정주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고 그를 키운 분은 외할아버지라고 하였다. 음악 애호가인 와세다대 출신인 외할아버지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소양을 길러주었다고 하였다.
그동안 문화 불모지인 평택에서 클래식 음악에 관한 대화에 갈증이 엄청났던지 어느새 그 시간이 기다려지곤 했었다. 내게 꿀맛 같은 시간을 선물해준 그에게 클래식 음악을 깊이 있게 해석한 '이 한 장의 명반'이란 책을 선물했다. 그것은 내 마음이 담긴 선물이었다.
"인아 엄마 나 밖에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 올게."
어느 날이었다. 이 학생이 오는 것을 본 남편이 급히 자리를 피해주었다. 나중에 남편이 말하기를 그 학생이 오면 내가 얼굴이 빨개졌다고 하였다. 자신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 불편해할까 봐 자리를 피해주었노라고 하는 남편은 언젠가부터 그를 '젊은 애인'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코란도 승용차로 아침에 우리 집까지 와서 나를 태워서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저녁에는 집까지 태워다 주는 친절한 동료 선생님 한 분이 있었다. 이분은 어느새 늙은 애인이 되어있었다. 남편이 그렇게 붙인 것이었다. 그 선생님은 내게 항의하였다. 내가 선생님보다 세 살이나 아래인데 젊은 애인이라면 모를까 왜 늙은 애인이냐고. 그건 모르는 얘기이다. 어디까지나 나를 기준으로 해서 남편이 붙인 거라서 20년이나 어린 남자가 젊은 애인이니 상대적으로 선생님은 늙은 애인이 아니냐 하니 그도 수긍하였다.
"어떤 여성을 배우자로 만나고 싶어요?"
"푸치니의 '어떤 갠 날'을 듣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여자요"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캐나다에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온 젊은 애인에게 배우자상을 묻자 그는 위와 같이 대답했다. 그럼 바로 나 같은 여자였다. 내가 바로 그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었다.
그는 피아노를 전공한 참한 규수를 만나서 결혼하였다. 결혼 며칠 전 수협에 근무하는 그에게 내가 만든 노란 수선화 꽃바구니와 몇 권의 책을 선물로 주었다. 헤어지며 내게 해맑은 웃음을 짓는 그를 보며 느꼈다. 저 웃음은 여자를 알기 전의 웃음으로 해맑은 저 웃음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웃음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