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시니어, 우리 인생의 선배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한국의 역사와 밀접한 삶을 살았고, 그들이 살아온 삶의 족적은 우리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기 때문일 것. 이에 해당하는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최근 개봉작을 살펴봤다.
왕십리 김종분
감독: 김진열
개봉 : 11월 11일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02분
벌써 50년, 서울 행당동 왕십리역 11번 출구 앞에는 노점을 운영하는 김종분 씨가 있다. 김종분 씨는 1991년 노태우 정권 당시 백골단 강경 진압에 목숨을 잃은 고(故) 김귀정 열사의 어머니다. 이번 영화는 김귀정 열사 30주기를 기려 제작됐다.
팔순의 현역 노점상인 김종분 씨는 항상 씩씩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그는 세상을 떠난 작은 딸을 가슴에 묻은 아픔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영화는 김종분 씨의 길 위의 삶, 그리고 어머니의 삶을 조명한다. 또한 김종분 씨를 포함한 가족들과 함께 성균관대학교 동문이 참여해 고인을 향한 그리움과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
노회찬6411
감독 : 민환기
개봉 : 10월 14일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27분
'노회찬6411'은 고(故) 노회찬 의원의 삶을 다룬 첫 번째 다큐멘터리로, 그의 3주기를 맞아 명필름에서 제작했다. '6411'은 노 전 의원이 2012년 진보정의당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새벽 노동자'의 버스 번호로 언급했던 것이다.
영화는 우리가 몰랐던 노회찬 의원에 대해 보여준다. 대학생 시절 용접공으로 위장 취업했던 노동운동가, 진보 정당 창당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정치를 펼치고자 했던 정치인 등, 인간 노회찬의 인생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펼쳐진다.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호평받고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노회찬보다는 그가 마음에 품었던 꿈과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하는 한편,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을 관객에게 맡긴 점이 좋은 평가를 이끌었다.
울림의 탄생
감독 : 이정준
개봉 : 10월 21일
등급 :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 96분
'울림의 탄생'은 마음을 울리는 단 하나의 소리를 찾기 위해 60년 넘는 세월 동안 북을 만들어 온 임선빈 악기장(경기무형문화재 30호(북 메우기))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 다큐멘터리이다.
6·25 전쟁 중 태어나 고아로 자란 임선빈 악기장은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가 불편했는데, 이곳저곳 전전하며 돈을 구걸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패거리의 폭력으로 한쪽 청력을 잃게 되고, 북 만들기가 그의 유일한 생존 방법이라는 스승의 가르침에 임선빈 악기장은 60년 넘게 일에 매달렸고, 장인의 위치에 올랐다.
장인은 한쪽 청력마저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고, 더 늦기 전에 자신만의 북을 남기려 한다. 어린 시절 들은 북소리를 잊지 못한 그는 그것을 재현하고자 23년간 아껴뒀던 나무를 꺼내 들었지만, 쉽지만은 않다. 임선빈 악기장의 옆을 지키는 아들 임동국 전수 교수와의 협업도 눈길을 끈다. 전통을 잇는 일이지만 세대교체를 고민하는 부자(父子)의 모습은 영화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태일이
감독 : 홍준표
개봉 : 12월 1일
등급 :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 99분
고(故)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 됐다. 전태일의 이야기가 영화로 나온 것은 지난 1995년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후 두 번째다.
'태일이'는 1970년 평화시장, 부당한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뜨겁게 싸웠던 청년 전태일의 이야기를 그렸다. 홍준표 감독은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십분 활용, 보다 따뜻하고 밝은 색채로 이야기를 담아냈다. 전태일과 동년배인 시니어들은 과거를 추억하며 영화를 볼 수 있고, 젊은 세대는 몰랐던 역사를 새롭게 배워갈 것이다. 남녀노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뜻이다.
홍 감독은 "대중에게 전태일의 최후가 분신으로 각인돼 있으나 열사의 이미지를 강조하기보다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청년 전태일을 그리고자 노력했다"면서 "너무 무겁지 않은, 인간적인 측면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 따뜻함도, 울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 장동윤, 염혜란, 진선규, 박철민, 권해효 등이 목소리 연기로 영화에 힘을 보탰다. 오는 12월 1일 개봉.
폭염과 열대야가 연일 이어지며 더위에 취약한 시니어들에게는 더욱 힘겨운 여름이 지속되고 있다. 이럴 때 넓고 푸른 바다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기운을 전해준다. 올여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이유로 바다로 떠나기가 어렵다면 집에서라도 바다를 즐겨보는 것이 어떨까.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무더위를 날려줄 시원한 바다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두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다.
시니어 마음 치유할 ‘나의 문어 선생님’
다큐멘터리 감독인 ‘크레이그 포스터’와 어떤 문어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오랜 시간 영화감독으로 일해 온 포스터가 중년기에 들어서며, ‘번 아웃’ 상태를 겪었다는 고백과 함께 영화가 시작한다.
슬럼프에 빠진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낸 남아프리카 바다에 다시 뛰어들며 중년 인생의 공허함을 메꿀 기회를 찾는다. 신비로운 해초 숲을 헤엄치던 포스터는 특별한 문어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이 문어가 기적처럼 포스터의 삶에 들어온다.
“저는 암컷 문어 덕분에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바다에 들어가면 놀라울만큼 자유로워지죠. 나를 짓누르던 온갖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고, 갈등이 해소됩니다. 모든 동물에게 서서히 관심을 가집니다. 아주 작은 동물에게도요. 그리고 모든 생명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야생 동물의 삶이 얼마나 유약한지 이해함으로써 이 땅에 사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유약한지 알 수 있죠.”
문어의 신기한 외모와 몸짓에 매력을 느낀 포스터는 문어를 흥미롭게 관찰한다. 높은 지능으로 전략을 세워가며 사냥을 한다. 척추가 없는 연체동물로 온갖 위험에 취약함에도 무리를 짓지 않고 고독하게 살아가는 문어. 이런 문어에게 포스터는 마음을 빼앗긴다.
문어 역시 위협 없이 눈앞에 자꾸 나타나는 포스터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둘은 손을 뻗어 인사를 나눈다. 서로 교감을 이룬 셈이다. 포스터는 문어를 보기 위해 1년을 매일같이 바다에 뛰어든다.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공격에 상처를 입어도 꿋꿋이 이겨낸다. 하지만 주어진 숙명을 단 한번도 거역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희생하는 문어의 삶. 이 작은 생명체의 일생을 관찰하고, 또 그와 교감을 하며 포스터는 현실의 허무힘과 고단함을 극복해간다.
다큐멘터리임에도 픽션 못지않은 스토리텔링을 갖춘 이 영화는 바다의 시원함 뿐 아니라 자연이 주는 따뜻한 감동까지 전하며 시니어들의 마음까지 치유한다.
감초연기에 지루할 틈 없는 ‘해적’
조선 건국 초기, 전대미문의 국새(국권의 상징인 임금님의 도장) 강탈 사건으로 조정이 혼란에 빠진다. 국새가 바다를 통해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이동되던 중 고래의 습격으로 분실된 것이다.
이를 찾기 위해 조선의 ‘난다긴다’하는 무리들이 바다로 뛰어든다. 바다를 호령하다 졸지에 국새도둑으로 몰린 위기의 해적, 고래는커녕 바다도 처음이지만 의기양양 고래 사냥에 나선 산적, 건국을 코앞에 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개국세력까지 국새를 찾기 위해 바다로 모여든다.
“음파, 음파~만 기억하면 되는겨! 등신마냥 파음, 하면 뒤지는겨.”
손예진과 김남길, 유해진 등 캐스팅이 화려한 이 영화는 볼거리도 화려한 어드벤처 오락 영화다.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시원시원하고 통쾌한 액션신과 명배우들의 코믹한 연기가 더위와 그 불쾌감을 시원하게 날려준다. 특히 유해진과 박철민, 김원해 등 명품 조연배우들의 감초연기가 영화를 지루할 틈 없이 유쾌하게 채워간다.
코로나19와 무더위로 피로도가 쌓일 대로 쌓였다면 이 영화를 보고 한바탕 웃으며 묵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권선징악의 교훈도 담고 있어 주말에 손주들과 함께 보기에도 손색없는 영화다.
● Exhibition
◇ 판화, 판화, 판화
일정 8월 16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국내 현대 판화를 대표하는 작가 60여 명의 작품 100점을 통해 ‘판화’라는 특수한 장르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책방’, ‘거리’, ‘작업실’, ‘플랫폼’ 등 4가지 테마로 구성된다. 우리 주변에서 익숙하게 접하던 장소의 명칭과 특징을 빌려와 판화가 존재하고 나아갈 자리에 대해 고찰한다. 판화로 제작된 아티스트 북, 드로잉, 설치, 조각 등을 비롯해 인쇄문화와 판화의 관계를 나타낸 작품들, 또 타 장르와 구분되는 판화 고유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대표작 등을 폭넓게 감상할 기회다.
◇ 너의 감정과 기억
일정 12월 27일까지 장소 디뮤지엄
듣고 보는 경험을 소리, 빛, 공간 등 다양한 감각이 결합된 작품으로 선보이는 전시다. 기존 전시실과 더불어 다양한 문화 경험을 누릴 수 있는 특별 공간까지 공개하며 디뮤지엄 개관 이래 최대 규모로 꾸렸다. 관객은 오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전달되는 자극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총 11개 섹션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는 13개 팀의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관객주도형 퍼포먼스, 인터랙티브 라이트 아트, 비주얼 뮤직 등 사운드·비주얼 작품 22점을 다양한 범주로 소개한다.
◇ 데스 브로피 초대전: 즐거운 인생
일정 8월 31일까지 장소 흰물결갤러리
사람들의 유쾌한 모습을 포착해 재미있게 표현해온 영국 화가 데스 브로피의 초대전. 2년 전 한국에서의 첫 전시를 통해 인간미 넘치는 작품들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며 큰 웃음과 행복을 선사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최근 코로나19 등으로 각박해지고, 웃음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일상이 주는 즐거움과 그 안에 담긴 유머와 사랑을 전하고자 기획됐다. 작가 특유의 따스한 감성이 돋보이는 50여 점의 유화, 수채화, 판화 등을 통해 기쁨과 긍정의 에너지를 물씬 느낄 수 있다.
◇ 현대 HYUNDAI 50 PART II
일정 7월 17일까지 장소 갤러리현대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1부)에 이은 갤러리현대의 50주년 특별전 2부로, 갤러리의 역사와 더불어 한국 미술사 100여 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본다. 이번 전시에서는 갤러리현대와 성장한 한국 작가 16팀의 대표작과 신작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전통의 현대화라는 문제의식을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낸 강익중, 김민정, 이슬기의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시기간에는 6·25전쟁 70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마련된 대형 작품 ‘광화문 아리랑’도 만날 수 있다.
● Stage
◇ 라스트 세션
일정 7월 10일~9월 13일 장소 예스24스테이지 3관 연출 오경택 출연 신구, 남명렬, 이상윤 등
위대한 두 학자 C.S. 루이스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세기적 만남을 그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9월 3일, 두 주인공이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신에 대한 물음과 나아가 삶의 의미와 죽음 등을 주제로 치열한 논변이 오간다. 배우의 호흡이 중요한 2인극 형태로, 프로이트 역에 중견배우 신구와 남명렬이 캐스팅되며 눈길을 끌었다.
◇ 오네긴
일정 7월 18~26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제인 번 출연 유니버설발레단
오만한 도시 귀족 오네긴과 순수한 시골 소녀 타티아나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 러시아 대문호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이 원작이다. 차이콥스키 작곡의 오페라 탄생 이후 존 크랑크의 안무가 더해지며 발레극이 완성됐다.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를 아름다운 발레 동작으로 섬세하게 그려내며 애틋함을 자아낸다.
◇ 제이미
일정 7월 4일~9월 11일 장소 LG아트센터 연출 심설인 출연 최정원, 조권, 신주협 등
영국 웨스트엔드의 히트 뮤지컬 ‘제이미’의 세계 최초 라이선스 프로덕션 무대를 국내에서 만난다. 꿈과 자아를 찾아나선 소년 제이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신나는 팝 음악과 스트리트 댄스가 보는 내내 흥을 자아낸다.
● Movie
◇ 소리꾼
개봉 7월 1일 장르 드라마 감독 조정래 출연 이봉근, 박철민, 이유리, 김동완 등
한국형 뮤지컬 영화로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갑자기 사라진 아내를 찾아 나선 소리꾼과 그를 필두로 길에서 뭉친 광대패의 팔도유랑기가 펼쳐진다. 주인공 학규는 부패한 권력을 향해 피폐해진 백성의 마음과 단호한 의지를 노래로 대변하는 인물이다. 학규 역의 국악인 이봉근은 이번 영화를 통해 첫 연기에 도전하며 소리꾼다운 노래 실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밖에 배우 박철민, 이유리, 김동완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희로애락을 팔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우리 가락으로 표현한다.
◇ 욕창
개봉 7월 2일 장르 드라마 감독 심혜정 출연 김종구, 강애심, 전국향, 김도영 등
욕망과 상처를 감춰왔던 가족이 엄마의 죽음을 앞두고 갈등을 일으키는 과정을 그렸다.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국내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 에베레스트
개봉 7월 22일 장르 액션, 모험 감독 이인항 출연 성룡, 장쯔이, 오경, 정백연 등
‘1917’, ‘어벤져스: 엔드 게임’ 제작진과 성룡, 장쯔이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 한순간 삶의 모든 것을 잃은 남자가 한때 정복했던 에베레스트에 재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 Book
◇ 우아하게 나이들 줄 알았더니 (제나 매카시 저ㆍ현암사)
TED 강연 영상 ‘당신이 결혼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들’로 600만 뷰를 기록했던 저자가 나이가 들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해 말한다. 외모와 건강의 변화는 물론 기억력 감퇴, 세대 갈등, 결혼의 의미 등 중년 이후의 삶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에 대해 진솔하게 들려준다. 절망스러운 상황들을 유쾌하고 재치 있는 문장으로 담았다.
◇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저ㆍ파람북)
인간이 말에 처음 올라탄 무렵, 역사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두 나라의 전쟁을 그린다. 두 마리의 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 김훈 특유의 힘 있는 문장이 빛을 발한다.
◇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저ㆍ김영사)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부의 경험담을 통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고찰하게 한다. 실제 현장에서의 사례와 더불어 특수청소부로서의 고충과 보람 등에 대해 말한다.
◇ 인생의 태도 (웨인 다이어 저ㆍ더퀘스트)
‘계속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라며 고민하는 중장년들을 위한 삶의 지혜와 위안을 선사한다. 아울러 불행했던 과거, 불안한 미래와 작별하고 오직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것을 조언한다.
1989년 초연 이후 30년 넘게 대학로의 스테디셀러 연극으로 사랑받고 있는 ‘늘근도둑이야기’. 대통령 취임 특사로 풀려난 두 늙은 도둑이 노후 대책을 위한 마지막 한탕을 계획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다. 부조리한 사회에 유쾌한 돌직구 유머를 날리는 이 작품에 빼놓을 수 없는 터줏대감, 바로 배우 박철민이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 작품에 열성을 다할 수 있었던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03년부터 18년 동안 작품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그전부터 극단 ‘차이무’의 공연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당시 이상우 연출가께서 ‘늘근도둑이야기’ 제안하셨죠. 너무 흥분돼서 바로 합류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마음껏 놀 수 있는 캐릭터고, 자유로운 형식인데, 마치 장인이 치수에 딱 맞게 한 땀 한 땀 지어준 옷처럼 잘 맞아요. 그게 아마 현재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 같아요.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고 있는데, 특별히 연극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면요?
특히 관객을 직접 만난다는 부분이 다르죠. 또 무대 위에서는 NG가 없어요. 매번 새롭습니다. 마치 효모가 살아 있는 생맥주 같다고나 할까? 관객들의 눈을 보고 감정을 주고받으면서 그날그날의 공연을 완성하는 겁니다. 관객과 잘 호흡할수록 웃음도, 슬픔도 커지고 깊어지곤 하죠.
오랜 세월 작품에 익숙해진 반면, 혹시 매너리즘을 느낀 적은 없으신지요?
가끔은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심지어 첫 대사를 하면서 ‘언제 끝나나’ 했던 적도 있죠. 그런데 그럴 때마다 저를 잡아준 건 관객들입니다. 뜨거운 관객들의 반응에 덩달아 열정이 끓는 경험을 하면서, 어느새 이 작품으로 우리가 한길을 걷는구나 싶었죠. 정말 눈물 나게 고맙고, 그에 보답하기 위해 꾸준히 체력관리도 하면서 매 공연 담아낼 수 있는 사회 연안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답니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점점 역할(덜 늘근도둑)의 나이와 가까워지고 있죠?
몇 년 전 배우들이랑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러다 진짜 캐릭터 나이(극 중 환갑)까지 하는 거 아냐?” 그런데 이제 정말 몇 년 안 남았어요. 체력이 되면 죽을 때까지 하고 싶습니다. 배우로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연기에 한계를 느낄 때면 늘 이 무대에서 에너지를 얻곤 해요.
10여 년 전 이 연극을 본 관객에게 작품을 다시 추천한다면요?
제가 노련해진 만큼 무대 자체도 세월을 거치면서 더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작품이 주는 웃음이나 해학도 훨씬 커졌다는 생각이 들고요. 사실 저희 연극이 끝나고 여운이 긴 편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공연을 통해 꼭 뭔가를 얻어간다기보다는 가슴이 답답하신 분들, 한번 실컷 편하게 웃고 싶은 분들이 보러 오시면 좋겠습니다. 또 긴 세월 동안 우리 연극을 사랑해주시고 찾아와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네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연기와 무대로 찾아뵙겠습니다.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일정 오픈런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3관 연출 박정규 출연 박철민, 태항호, 노진원 등
세월을 머금은 배우들의 활약이 펼쳐진다. 중년부터 황혼까지, 연기의 참맛을 드러낼 배우들이 봄맞이 연극 무대에 올랐다. 신구(78), 손숙(70), 유인촌(63), 조재현(49) 배종옥(50) 등이 그 대표적 예다.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로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 신구와 연극계 원로 손숙이 뭉쳤다. 지난해 초연 이후 호평이 이어졌던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3월 2일~30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가 앙코르 공연을 연 것이다. 간암 말기의 아버지로 분하는 신구는 부쩍 노쇠한 얼굴과 흰머리로 등장한다. 거친 호흡과 손끝의 떨림, 내뱉는 숨소리와 함께 촉촉이 젖어 있는 듯 흐린 초점을 한 신구의 눈은 관객의 감정을 빨아들인다. 그의 아내 홍매를 연기하는 손숙은 아픈 남편 옆에서 무심한 듯 살뜰히 수발을 들며 감정선을 쉼 없이 오르내린다. 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가족의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가운데, 부모 자식 간의 사건과 가족의 기억이 맞물리는 지점을 섬세하게 풀어나가며 깊은 울림을 준다. 신구는 “작가가 대본을 워낙 정교하게 써서 따라가느라 애를 썼다”며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환자의 증상을 조사하고 작가에게 구체적으로 물어보며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간성혼수에 대해) 찾아보고 표현할 것이 있으면 더욱 표현하고자 한다”고 열의를 내비쳤다.
배종옥(50), 조재현(49), 정은표(48), 박철민(48)이 출연해 드러내는 50대 중년 남녀의 사랑은 무엇일까. 위트를 잃지 않는 가운데,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이 작품은 바로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3월 1일~4월 27일, 서울 수현재씨어터)이다.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대학 교수인 정민과 은퇴한 국제분쟁 전문기자 연옥은 목요일마다 비겁함, 역사, 죽음에 대해 토론한다. 친구와 연인 사이를 오가는 50대 두 남녀는 사랑과 이별, 갈등과 화해, 애정과 증오를 표출해, 미묘한 남녀 갈등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조재현은 인기 행진을 이어가는 이번 작품에 대해 “50대뿐 아니라, 젊은층부터 70대 노인 관객까지 많이 찾아와 놀랐다”며 “더 폭넓은 세대를 공연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창작극으로서 적합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최근까지 누적 관객수 5만명을 돌파했다.
무대로 돌아온 전 문화부 장관 유인촌 역시 눈길을 끈다. 그는 삶과 죽음, 사랑과 고통,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을 전하는 ‘톨스토이의 홀스또메르’(2월 28일~3월 30일, 서울 CGV신한카드아트홀)를 택했다. 변종인 얼룩빼기 말로 태어난 홀스또메르는 진면목을 알아본 세르홉스키 공작(김명수, 서태화)에 의해 촉망 받는 경주마로 거듭난다. 늙고 병들자, 마시장에 팔리고 거세까지 당하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한 홀스또메르의 입을 빌려 희로애락 속 인생의 화두를 던진다. 수많은 공연을 거쳐 극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주로 해오던 이경미(53), 김선경(46)은 홀스또메르의 첫 사랑 암말 바조프리하 역과 세르홉스키 공작의 연인 그리고 그를 배신하고 달아나는 여인 마치에 역, 그리고 마리 역까지 1인 3역을 소화한다. 이들은 장면 사이사이 쉴 틈 없이 등장한다. 젊은 앙상블 배우들과 함께 속속 종횡무진하는 이들 중년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36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을 수상한 바 있다.
관객들은 한결같이 연륜과 진정성이 담겨 있는 중견, 원로 연기자들의 연극은 대사 한마디, 작은 표정 변화 하나도 오롯이 관객의 가슴에 전달돼 감동을 많이 받는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