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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놀이 말고 공연·전시 보자… 4월 문화소식
- ●Exhibition ◇유람일지: 유(儒)를 여행하다 일정 4월 21일까지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에서 만나는 충청 유교 문화유산’을 주제로 하는 전시는 조선시대 선비의 삶을 ‘고택’, ‘서원’, ‘구곡’(九曲)으로 나눠 소개한다. 집, 학교, 자연이라는 공간을 통해 나고 자란 선비의 삶의 궤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닮았다. 1부 ‘고택유람’은 충청도 명문가인 파평 윤씨 가문의 명재고택을 중심으로 한다. 윤증의 초상 초본, 문중의 교육 공간인 종학당의 디오라마(실물 축소 모형) 등을 볼 수 있다. 2부 ‘서원유람’에서는 충청도 유일의 유네스코 등재 서원인 돈암서원을 통해 배움과 실천을 지향한 선비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예학을 정립한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 그리고 송준길, 송시열은 서원의 대표 선비로 꼽힌다. 3부 ‘구곡유람’에서는 율곡 이이의 정신적 이상향이자 선비들이 자연에 은둔하며 학문을 수양했던 공간인 ‘구곡’을 디지털 화폭에 담아낸 수묵 미디어아트 영상을 전시한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선비들이 이야기하는 시대정신, 일상의 가치, 타인을 대하는 태도, 자연을 품은 풍류 등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힐링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전했다. ◇우제길 : 빛 사이 색 일정 5월 12일까지 장소 전남도립미술관 평생 ‘빛’을 쫓으며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한 우제길(1942~) 작가의 회고전. 총 10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1부 ‘기하학적 추상의 시작’은 ‘빛’을 주제로 하기 전인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그의 과도기적 작품을 살펴본다. 2부 ‘어둠에서 찾은 빛’에서는 절단된 면의 틈 사이로 솟아나는 빛 작품들과 어두운 배경에 작가 특유의 직선이 강조된 대작들을 소개한다. 3부 ‘새로운 조형의 빛으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구도가 다양해지고 밝은 색채가 등장하며 확장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4부 ‘색채의 빛’은 원색의 빛을 다양한 실험적 방식으로 구현한 작품들을 소개하며, 5부 ‘지지 않는 빛’에서는 신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Book ◇어른의 말습관(김진이·다른상상) 같은 말이라도 어떤 사람은 반감을 사고, 어떤 사람은 호감을 얻는다. 그 이유는 바로 ‘말하기’의 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경인방송 아나운서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진이는 책 ‘어른의 말습관’을 통해 성숙하게 말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어른답게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분명히 말할 줄 알고, 그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또 서로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고 관계의 중심을 단단하게 지킬 줄 안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는 단순히 말투만 바꾼다고, 기술만 답습한다고 되지 않는다. 내 말 속에 숨어 있는 디테일과 패턴, 즉 말하는 습관을 돌아보고 바꿔야 한다. 노력만이 말습관을 기르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책에서는 서투른 언어를 다듬어 말하는 법, 각각의 상황과 내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 말과 태도를 장착하는 법, 사람들과 주파수를 맞춰나가며 내 세계를 확장하는 법, 부정적 말의 패턴을 소거하는 법, 감정을 차분히 다스려 담백한 말로 갈무리하는 법 등 여러 가지 말하기 방법을 소개한다. 자기 말의 주인이 되어 일, 관계, 인생을 더욱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 보자. ◇멋진 인생을 위해 오십부터 해야 할 것들(김옥림·미래문화사) ‘가슴이 뛰는 한 영원한 청춘’이라는 시인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나답게 사는 것이 인생 후반기를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위험하고 매혹적인 제로 이야기(찰스 세이프·DKJS) 제로(0)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자 철학, 종교, 수학, 물리학의 근간이다. 저자는 0의 출현, 억압, 성장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시니어를 위한 슬기로운 디지털 생활(조진화·임지윤·포레스트북스) 디지털 전문 강사인 모녀가 합심해 만들었다. 스마트폰·키오스크 사용법 등 부모님이 알았으면 하는 디지털 정보 10가지를 안내한다. ●Stage ◇러브레터 일정 4월 4일 ~ 4월 27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연출 김민정 출연 정보석, 박혁권, 하희라, 유선 연극 ‘러브레터’는 30개 언어로 공연된 세계적인 스테디셀러 작품이다. 밀도 높은 2인극이 특징으로, 무대에는 50년 동안 편지를 매개로 서로의 인생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앤디와 멜리사만 존재한다. 글을 사랑하는 모범생 앤디 역은 정보석과 박혁권이 맡아 연기한다. 그림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멜리사 역에는 초연 당시 몰입도 높은 연기를 보여준 하희라와 함께 유선이 캐스팅됐다. 제작사 측은 “깊은 내공으로 다져진 베테랑 배우들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사랑과 이별, 그 무수한 사연들도 디지털 기기의 버튼 하나로 정리되는 요즘, 잊고 있었던 우리의 순수성을 깨워주는 작품이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친정엄마 일정 4월 20일 ~ 5월 26일 장소 서울 한전아트센터 연출 김재성 출연 김수미, 이효춘, 신이현, 선예, 김도현, 박장현 등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 ‘친정엄마’는 2004년 원작소설 출간 이후 연극, 뮤지컬, 영화로 제작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특히 뮤지컬은 주크박스 뮤지컬의 진수로 통하며, 실력파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이번 시즌에는 하루에도 열두 번 넘게 딸을 걱정하는 친정엄마 봉란 역에 김수미와 이효춘이 캐스팅됐다. 김수미는 초연부터 봉란 역을 연기하고 있으며, 이효춘은 뮤지컬에 첫 도전한다. 엄마와 티격태격하다 이내 사랑을 깨닫게 되는 딸 미영 역은 신이현이 지난 시즌에 이어 연기하며, 원더걸스 출신 선예가 새롭게 합류했다. ◇클로저 일정 4월 23일 ~ 7월 14일 장소 플러스씨어터 연출 김지호 출연 이상윤, 진서연, 김다흰, 이진희, 최석진, 유현석, 안소희, 김주연 연극 ‘클로저’는 1997년 초연 이후 50개국 100여 개 도시에서 공연됐으며, 2004년에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극은 현대 런던을 배경으로 앨리스, 댄, 안나, 래리라는 네 명의 남녀가 만나 서로의 삶에 얽혀드는 과정을 그린다. 국내 공연은 8년 만인 가운데, 원더걸스 출신 안소희가 연극에 첫 도전해 눈길을 끈다. 앨리스 역을 맡은 그는 “연극이라는 무대와 관객들과의 교감에 긴장과 더불어 설레는 마음이 있다”며 좋은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 2024-04-0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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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화로 그린 가족 벚꽃 놀이… 신간 ‘코딱지 코지의 벚꽃 소풍’
- 이번 봄은 개화 시기가 빨라 벚꽃이 벌써 만개했다. 그 가운데 당장 벚꽃 소풍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어린이 그림책 ‘코딱지 코지의 벚꽃 소풍’이 출간됐다. ‘코딱지 코지의 벚꽃 소풍’은 ‘코딱지’ 코지 시리즈로 그림책을 만들어온 허정윤 작가의 신작이다. 봄이 오기만을 기다린 코딱지 코지가 벚꽃 소풍을 가는 내용이며, 봄의 정취와 가족의 화목함을 이야기한다. 책은 따스한 봄기운을 맞아 아침부터 분주히 벚꽃 소풍을 준비하는 코지네 풍경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할머니가 감기에 걸려 할머니와 할머니를 돌봐야 하는 할아버지는 집에 머물러야 했다. 결국 삼촌과 코지, 둘째 코비, 막내 코코만 벚꽃 구경을 간다. 아픈 할머니가 마음에 걸린 코지는 좋은 생각을 떠올린다. 코지는 벚꽃을 집에 가져와 코비, 코코, 삼촌, 할아버지와 함께 머리에 꽂은 다음 할머니에게 보여주면서 행복한 시간을 나눈다. 책의 내용과 함께 삽화도 눈길을 끈다. 허정윤 작가는 핀셋으로 꽃잎을 한 장 한 장 붙여 벚꽃을 만들었다. 벚꽃을 보러 나온 코딱지들은 머리 스타일·체형·표정까지 모두 다른데, 그 수가 300가지에 이른다. 작가가 점토를 직접 빚어 표현했다. 코지네 벽지와 이불, 카펫, 커튼 등도 작가가 10년 넘게 모아온 천을 사용했다. 작가는 작은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 꼼꼼함으로 코딱지 미니어처의 세계를 구현해냈다. 허정윤 작가는 대학에서 아동학, 대학원에서 유아교육학과 교육학을 공부했으며, 그림책 작가, 애니메이션 감독,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투명 나무’로 독일 국제 아동청소년 문학 분야(WHITE RAVENS)에, 2022년 ‘아빠를 빌려줘’로 THE BRAW AMAZING BOOKSHELF에 선정된 바 있다. 또한 허 작가는 ‘나는야 코딱지 코지’, ‘코딱지 코지의 콧구멍 탈출 작전’ 등 ‘코딱지’를 소재로 한 그림책을 만들어왔으며, 이번 책 출간을 기념해서는 전시회도 연다. 책 속의 ‘코지’가 아니라 점토로 만든 생동감 넘치는 ‘코지’를 만나볼 수 있다. 다음 달 4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종로 창성동실험실에서 전시된다.
- 2023-03-3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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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 가지 않아도 화사한 봄 꽃이 활짝
-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앞다투어 봄꽃 개화 시기를 전하고 있다. 매화, 개나리, 진달래, 철쭉, 산수유, 수선화, 튤립... 그리고 벚꽃엔딩까지 친절한 안내가 줄을 잇는다. 그야말로 꽃철이다. 멀리 남녘 지방까지 가지 않아도 주변에서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의 기운을 맞을 수 있는 곳, 날마다 꽃이 피어나고 있는 수도권 부천의 꽃 이야기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사정에 따른 변동으로 꽃 축제와 입장 가능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은 언제나 필수다.) 부천 원미산 진달래 꽃동산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이런 시 한 소절이 아니어도 봄을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진달래꽃이다. 부천 원미산(富川 遠美山)은 진달래 군락지로 유명하다. 봄이 되면 원미산을 뒤덮는 진달래가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만개한 꽃물결 속에 파묻혀 봄을 누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초입에 세워진 김소월 님의 진달래꽃 시비(詩碑)를 지나 능선을 조금 오르다 보면 발아래로 저 멀리 부천 FC 스타디움이 보인다. 원미산 167m에 올라 정상의 원미정에서 내려다보는 부천 시가지와 종합운동장, 역동적인 축구장을 진달래 동산이 에워싸는 포인트에 서면 봄을 만끽하는 순간이 된다. 3월 중순경부터 약 한 달 남짓 만발한 진달래를 볼 수 있다. ♤가는 길: 지하철 7호선 부천 종합운동장 2번 출구로 나와서 500m 정도 거리에 있다. 참고로 1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면 우측 놀이동산을 끼고 부천 순환 둘레길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둘레길 걷기의 시작이 된다. 특히 1구간의 향토 유적 숲길은 운치 있다. 부천 자연생태공원 튤립 정원 사월과 오월 중순쯤까지 가장 화려한 색감으로 온 누리를 빛내주는 튤립을 볼 수 있는 곳, 부천 자연생태공원이다. 이곳은 부천식물원, 자연생태박물관, 부천 무릉도원 수목원, 농경유물전시관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무엇보다도 테마 정원과 유아 숲 체험관, 힐링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아이 어른 상관없이 다양한 볼거리가 가능한 문화휴식 공간이다. 코로나로 훌쩍 떠나지 못하는 수도권 시민들이 찾아드는 곳이기도 하다. 부천 무릉도원 수목원의 튤립은 고결하고 우아한 자태로 봄 햇살을 받으며 가장 강렬한 색감으로 최상의 멋을 보여준다.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다. 튤립 꽃길을 걸으며 선명한 빨강, 노랑과 보라, 하양, 핑크 등의 화사한 꽃들을 들여다보는 행복은 오직 이때뿐이다. 이 무렵 담장 너머 목련은 이미 지는 중이고, 춘덕산에서는 부천을 상징하는 복사꽃 피는 마을답게 춘덕산 복사꽃 축제가 이어졌었다. 튤립 정원을 지나 나타나는 수목원은 편백 군락지 산책로와 연결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힐링의 숲이다. 천천히 걷거나 곳곳의 벤치에 앉아 봄의 정취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주상절리를 연상케 하는 폭포, 생태연못 쪽으로 가면 수생식물들과 시원하게 내뿜는 분수의 물바람을 맛볼 수 있다. 나비정원, 풍차, 귀여운 토끼나 공작새의 미니 동물원은 튤립을 보러 왔다가 자연 속의 풍경에 푹 빠지는 시간이 된다. 출구로 나가면 주변에 맛집도 즐비하다. ♤경기도 부천시 길주로 660(춘의동) 7호선 까치울역 1번 출구에서 3분 정도 직진 내비게이션 명칭 검색 : 부천식물원 또는 자연생태박물관 ☏부천 자연생태공원 공원 조성과(032-625-3502)로 연락 백만 송이 장미원의 화려한 봄날 해마다 오월이면 장미가 온 천지에 가득했던 부천 백만 송이 장미원, 올해도 여전히 피어나겠지만 문이 활짝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혹시라도 아쉬움에 찾아가 장미원 둘레 담장 너머로 먼발치의 장미꽃들을 바라볼 만도 하다. 돌아보면서 군데군데 나타나는 장미 터널과 예쁜 포토존이 행복감을 주는 장미원이다. 부천 백만 송이 장미원은 부천시에서 1998년 150000여 그루의 장미나무를 심으면서 시작되었다. 장미 한 그루에서 7~10송이의 꽃이 피어나기에 백만 송이의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벚꽃이 눈부시게 피어나는 주변의 도당산이 에워싸고 장미를 비롯한 야생화 단지와 분수대, 체력장 등의 시설들이 갖추어진 장미꽃 테마공원이다. 오월과 칠월 사이에 절정을 이루는 백만 송이 장미를 풍성하게 볼 수 있다.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산 34 지하철 역곡역이나 까치울역에 내려 마을버스 013-3번 ☏부천시청 공원관리과 공원관리 2팀(032-625-4854) 부천 상동호수공원의 꽃양귀비 계절별 꽃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상동호수공원. 그중에서 5~6월이면 붉은 꽃양귀비가 피어나 짙은 아름다움 속에서 힐링의 시간을 준다. 부천시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공원으로 호수 근처로 나무 데크 길이 길게 연결되어 있어서 바람 쐬며 걷는 맛이 최고다. 또한 체육 시설과 놀이시설, 휴식 공간이 두루 잘 갖추어져 있어서 산책길에 한나절쯤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원이다. 꽃양귀비 정원에 들면 화려하고 강렬한 색상의 붉은 양귀비와 함께 청보리가 자라나고 있다. 두 가지의 어울림을 조화롭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 혹시 코로나의 여파로 꽃밭 가까이 갈 수 없을 수도 있으니 촬영하려면 망원렌즈를 지참해야 한다. 멀리 꽃구경 가기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부천 상동호수공원은 수도권에서 쉽게 나설만한 곳이다. ♤지하철 7호선 삼산체육관역 1번, 5번 출구 역 경기 부천시 길주로 16 복사 부천 중앙공원 능소화 터널 한때는 능소화를 찾아서 저 아랫녘까지 가기도 했다. 이제는 길거리나 동네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되었다. 그 옛날 구중궁궐 속에서 다시 찾지 않는 임금이 하도 그리워 궁녀 소화는 날마다 임금의 발자국 소리에 오매불망 귀를 기울였다. 죽으면서도 담장 아래에 묻혀 님을 기다리겠다는 애절한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궁녀 소화, 님의 발소리를 들으려 귀를 활짝 열어놓은 듯 피어난다. 기다림의 세월이 능소화로 곱게 다시 피어났다는 전설의 꽃이다. 부천 중앙공원에 가면 능소화가 터널을 이루어 피어난다. 6월 말부터 7월 중하순까지 흐드러지게 만개했다가 툭툭 떨어지며 진다. 꽃이 지는 모습도 볼만해서 능소화 터널 아래 낙화가 뿌려져 있을 때 다시 가기도 한다. 더위와 비바람에도 흐트러진 남루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꽃잎 하나씩 날리며 지는 게 아니고 미련 없이 꽃 한 송이 통째로 떨어뜨리는 게 능소화의 마지막 모습이다. ♤경기 부천시 중동 1177(부천 시청 뒤편)
- 2022-05-0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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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타버스, 시니어 플랫폼으로 가능할까?
- 메타버스 관련 소식이 쏟아지고 있다. 메타버스는 현실같이 구현된 가상 세계를 뜻하는 말이다.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의 공상과학 소설 ‘스노 크래시’ 속 가상 세계 명칭인 ‘메타버스’에서 유래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는가. 메타버스는 이미 추억 속 인물을 재현하는 기술,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 기술 등으로 우리 생활에 파고들고 있다. 희망과 긍정을 노래했던 혼성 그룹 ‘거북이’가 오랜만에 무대에서 뭉쳤다. 드라마 ‘이태원클라쓰’의 OST인 가호의 ‘시작’을 편곡했다. 신나는 노래인데도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심지어 함께 무대를 꾸미는 멤버들도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꾹 참은 채 노래를 부른다. 가족들도 지켜보며 눈물을 훔치는 가운데 웃고 있는 이는 단 한 사람, ‘터틀맨’뿐이다. 지난해 말 CJ ENM 음악 채널 엠넷의 특집방송 ‘AI음악프로젝트 다시 한번’에 방영된 풍경이다. 이 프로그램의 다른 에피소드에선 전설적인 가수 김현식이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를 불렀다. 2008년경 터틀맨은 사망했다. 김현식은 1990년에 사망했고, ‘너의 뒤에서’는 1994년 발매됐다. 어떻게 이런 무대가 가능한 것일까. 답은 메타버스 기술에 있다. 엠넷은 음성 복원 기술을 활용했다. AI가 터틀맨과 김현식의 목소리를 학습하고 분석한 뒤 각각의 목소리로 새롭게 노래를 불렀다. 또 터틀맨과 김현식의 생전 영상도 학습하고 분석해 몸짓과 표정까지 자연스럽게 구현해냈다. 메타버스가 시니어에게 미치는 영역 메타버스는 가상 세계이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구현될 수 있다. 한 명의 가상 인물일 수도 있고, 새로운 세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아직 통일되고 명확하게 정의돼 있지는 못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메타버스를 정리하면, 메타버스에는 실제와 비슷한 세계인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실제 공간에 가상현실을 겹쳐 영상으로 만드는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기술이 있다. 여기에 두 기술을 결합한 혼합현실(MR, Mixed Reality)과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까지 모두 포함해 실제와 구분하기 어렵도록 사실적으로 구현한 가상 세계가 메타버스다. AI로 구현된 터틀맨과 김현식 무대의 청중에는 가족들도 있었다. 가족들은 눈물을 훔치며 지켜봤다. 비록 만질 순 없지만 사랑했던 이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에게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살다 보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게 된다. 이별 후 오랜 시간이 흘러서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메타버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그리움을 덜어낼 수 있는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현실 세계에서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메타버스에서 일어나는 일도 다양하다. 메타버스는 공간 제약이 없어 오히려 현실보다 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쉽게 외출할 수 없는 요즘,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손쉽게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을 이용하면 지금은 갈 수 없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단순 체험뿐 아니라 교육과 훈련에 적용해 차원 높은 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할 수 있다. 이를테면 초보 파일럿이 가상 세계에서 비행 훈련을 할 수 있게 도와 사고 위험 없이 비행 숙련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2019년 SK텔레콤은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을 이용해 부천에 있는 축구 꿈나무가 런던에 있는 손흥민으로부터 직접 축구 코칭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처럼 메타버스는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다른 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메타버스 타고 헬스케어 진입 정치, 경제, 과학, 예술 등 실제 세계를 구성하는 분야는 셀 수 없이 많다. 실제 세계가 다양하다면 메타버스도 마찬가지다. 시니어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메타버스 분야는 바로 의료다. 메타버스를 이용한 헬스케어 서비스들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헬스케어는 뇌파와 시선 분석을 통한 치매 진단부터, 가상 공간에서 치매 예방 훈련 프로그램과 재활 치료까지 도우며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엠넷 방송이 디지털 휴먼을 소환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해줬다면, 메타버스 헬스케어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현실의 시간을 늘리고, 시니어의 젊음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준다. AI 기반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룩시드랩스’가 대표적이다. 룩시드랩스는 가상현실 기기를 이용해 가상현실 콘텐츠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신질환 여부를 판단하고, 노년층의 치매 위험 정도를 파악해 이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사람의 뇌파 관련 데이터를 모았다. 뇌파 변화, 동공 크기 변화, 시선 처리 속도 등의 데이터베이스로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을 판별한다. 룩시드랩스는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인지 건강을 관리해주는 개인 트레이너 ‘루시’를 선보였다. 루시 사용자는 매일 가상현실 헤드셋을 쓰고 인지 능력을 테스트한다. 뇌파 센서 6개와 시선 추적 카메라를 활용해 전문적인 두뇌훈련시스템을 제공받는다. 사용자는 가상 공간에서 박스를 이용해 공간을 구성하거나, 컨트롤러로 드래곤을 처치하는 등 다양한 게임을 할 수 있다. 사용자가 가상현실 게임을 하는 동안 클라우드 서비스가 뇌파와 안구 운동을 분석한다. 분석된 내용은 이해하기 쉬운 보고서 형태로 제공되며, 태블릿이나 모바일 기기로 가족, 의사와 공유할 수 있다. 메타버스로 기분도 up 몸도 up KT도 두뇌 개발 및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는 체험 공간 서비스를 출시했다. 바로 ‘리얼큐브’다. 놀이를 위한 공간과 평평한 벽면이 있다면 집에서도 메타버스에 빠져들 수 있다. 리얼큐브 이용자는 콘텐츠 체험용 매트 위에서 벽면에 투사된 가상 공간을 바라보고 노화 방지를 위한 콘텐츠들을 체험할 수 있다. 동작인식 센서가 어르신들의 손짓이나 몸동작을 인식해 특별한 기기 없이도 게임을 조작할 수 있다. 비눗방울 맞혀서 터뜨리는 게임, 몸짓으로 리듬에 맞춰 분리수거하는 게임, 숫자 연산 게임 등이 있다. 공이나 막대기 같은 부자재를 이용할 수 있어 두뇌와 신체를 동시에 활성화할 수 있다. 리얼큐브는 전국 시니어 기관과 복지시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부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치매 예방과 증상 완화에 이미 리얼큐브를 활용하고 있다. 강남구 시니어플라자, 대구 중구 노인복지관, 용산구 치매안심센터, 동대문구 치매안심센터에서 리얼큐브 콘텐츠를 활용해 체육대회도 열었다. 대구 중구 노인복지관에서 리얼큐브 프로그램을 체험한 어르신은 “생각이 밝아지는 것 같다. 숫자를 계산하지 못했는데 프로그램 체험 뒤 분별력이 생겼다”며 “기분이 좋아지고 운동도 된다”는 체험 소감을 밝혔다. KT 관계자는 “리얼큐브를 비롯한 메타버스 콘텐츠를 계속 확대하고,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라며 “이미 협업한 복지기관 외에도 다른 기관에서 요청하면 KT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처음 만나는 메타버스가 시니어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시니어들에게 매력적인 도구다. 오랜 삶과 연륜을 바탕으로 메타버스를 더 풍부하게 만들 가능성도 높다. 엄청난 영향력과 파급력을 몰고 올 메타버스에 올라탄 시니어들에게 메타버스는 어떤 공간으로 어떤 기회를 열어줄까. 제페토로 메타버스 맛보기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제페토’ 앱을 검색한다. 설치 후 앱을 실행한다. 그리고 ‘캐릭터 만들기’ 버튼을 눌러 가상 세계에서 나를 닮은 사람을 만든다. 먼저 생년월일을 입력하는데, 생년월일은 자신이 먼저 밝히지 않는 한 제페토 세계에서 다른 이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전화번호나 이메일로 가입하거나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트위터 같은 SNS와 연동해 가입할 수도 있다. 아이폰 사용자는 애플 계정으로 가입할 수 있다. 셀카를 직접 찍거나 스마트폰 사진첩에서 사진을 선택하면 사진 속 모습을 비슷하게 본뜬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마땅한 사진이 없거나 사진 찍는 게 번거롭다면 표준화된 캐릭터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런 다음 닉네임을 짓는다. 닉네임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제페토 내에서는 ‘코인’과 ‘젬’이 화폐처럼 통용된다. 코인과 젬으로 내 캐릭터에게 입히는 옷과 액세서리를 구입할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때 주는 8500 코인으로 옷을 살 수 있다. 코인을 다 썼을 때는 출석 후 미션 수행을 통해 코인을 추가로 받으면 된다. 제페토에 푹 빠져 이렇게 받는 코인으로는 부족할 경우 현금결제로 코인과 젬을 얻는 방법도 있다. 코인과 젬으로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입었다면 제페토 월드로 놀러 가보자. 유령의 집이나 벚꽃공원처럼 테마가 있는 맵이 있고, 경복궁과 독도, 한강공원처럼 랜드마크를 본뜬 곳도 있다. 제페토 월드에서는 뉴욕과 몰디브, 베네치아 등 세계적인 관광 명소도 방문할 수 있다.
- 2021-08-0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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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의 '초록 샤워기' …창덕궁 후원의 휴식
- 올해에는 벚꽃놀이도 없었고 봄꽃의 흐드러짐도 만나지 못하였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새도 없이 지나는 가장 젊은 날의 봄이 아쉽다. 연두색 새잎이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5월을 느끼기 좋은 곳이 어딜까 고민하다 창덕궁 후원을 떠올렸다. 가을에는 몇 번이나 갔으나 봄은 처음이다. 창덕궁은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 때 만들어졌다. 형제의 피를 묻히고 왕위에 오른 태종은 경복궁으로 돌아가는 것을 꺼렸다. 1405년 새롭게 창건된 창덕궁은 이궁(離宮)이었으나 조선의 역사 속에서 종종 법궁(法宮)의 역할을 하였고 현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 평가받고 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들어서면 회화나무 여덟 그루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수백 년 된 노구에 연두색 새잎이 돋고 있다. 궁궐 안의 가장 오래된 돌다리인 금천교를 건너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정전인 인정전이 나온다. 그 뒤로 편전이었던 선정전, 왕의 침전이었다가 편전으로 사용한 희정당과 대조전이 있다. 왕과 왕비의 침실이기도 했고 왕자와 공주의 교육 장소로 쓰였던 대조전은 조선 멸망을 지켜본 비운의 전각이다. 한국을 일본에 넘기는 합병조약이 이곳에서 체결되었고 ‘창덕궁 전하’라 불리던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이곳 대조전에서 승하하였다. 전각들은 대부분 촘촘하게 붙어있어 수월하게 둘러볼 수 있다. 사대부 양식의 건물인 낙선재만 주 전각들과 약간 떨어져 있다. 이에 반해 후원은 꽤 발품을 팔아야 한다. 양옆에 긴 담벼락이 늘어선 길을 따라 후원으로 들어간다. 비밀의 정원답게 들어가는 입구가 길다. 이때부터 초록 샤워기를 틀고 그 아래에 선 듯 느껴진다. 대여섯 살 정도 된 딸 둘과 고궁 나들이에 나선 한 가족이 앞서 걷다가 감탄사를 터뜨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구부러진 길 끝부터는 더 깊은 초록의 터널이다. 싱그러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치열하게 달린다. 뽕나무, 은행나무, 쪽동백나무, 함박꽃나무, 느티나무.... 나뭇잎을, 그러쥐어 꾹 짜면 연두와 녹색이 절묘하게 섞인 5월의 색이 주르르 흘러내릴 듯하다. 숲 터널 끝에 자리한 부용지가 은밀하다. 사각의 연못을 가운데 두고 동쪽에는 영화당이 남쪽과 북쪽에는 각각 부용정과 주합루가 서 있다. 정조가 즉위한 해인 1776년에 만든 주합루는 계단식 구조물 위에 2층 누각 형태를 띠고 있는데 1층은 도서관인 규장각이, 2층은 학자들의 배움터이자 토론장으로 애용되었다. 부용지를 나와 숙종 때 만들어진 애련지와 조선 시대 양반가옥을 본떠 만든 연경당을 둘러보고 다시 시작되는 초록 샤워 길을 지나 왕의 휴식공간이었던 존덕정에 이르러 발길을 멈춘다. 쉼조차 싱그러운 봄이다. 너른 숲길에 작은 오솔길이 나 있다. 길을 따라 들어가면 인공적으로 물길을 낸 옥류천이 나타난다. 이곳 또한 휴식처이다. 5월의 창덕궁은 어느 곳 하나 싱그럽지 않은 곳이 없다. 전각과 후원의 생기 가득한 풀과 나무 사이를 걸으며 코밑까지 온 봄을 느낀다. 숨바꼭질 동무를 찾아 기쁘듯 숨어있다 얼굴을 내미는 연못과 정자에서 휴식의 기쁨을 누린다. 가는 봄날의 아쉬움이 달래 진다. 관람 안내 : 창덕궁의 전각은 휴관 일(매주 월요일)을 제외하면 상시 관람이 가능하지만 후원은 궁궐 전각 관람료(대인 3000원)와는 별도의 후원 관람료(대인 5000원)를 내고 들어간다. 후원 관람은 90분 정도 소요되며 해설사와 함께 회차 별 100명으로 입장을 제한하고 있다. 예약은 6일 전 오전 10시부터 입장 전날까지 받는다. 예약인원 50명, 당일 발권 50명이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해설사 없이 회차별로 입장하여 자유 관람하는 형태로 운영 중이다.
- 2020-05-2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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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들이 즐겨 찾는 서울숲 봉사 현장
- (사)한국숲생태지도자협회에서는 2018년부터 산림청 지원을 받아 서울시에 있는 양로원과 경로당 어르신들을 서울숲에 초청해 숲 해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봉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바로 ‘싱그런 봉사단’. 봉사단은 숲 해설 자격증을 갖고 있는 60여 명의 숲해설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원들이 매일 교대로 참여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4월부터 11월까지 평일 오후 2시부터 2시간씩 운영되는데, 하루에 10여 명에서 20여 명의 어르신들이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게임도 즐기고 여러 가지 만들기 놀이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렌지색 조끼를 입은 숲해설가들은 80세 전후의 어르신들이 탄 휠체어를 밀고 다니면서 서울숲을 안내하고 게임도 함께한다. 요즘 서울숲에는 목련, 개나리, 벚꽃, 철쭉, 튤립, 수선화 등 봄꽃이 만발했다. 그래서 숲 해설 주제도 ‘서울숲의 아름다운 꽃구경’으로 정해 봄꽃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있다. 봉사단원들은 어르신들에게 꽃이 피는 시기, 꽃의 특성, 번식 방법, 꽃말 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기념촬영도 한다. 지난 4월 23일에는 노원구에 위치한 ‘효담라이프케어’ 양로원에서 지내는 어르신 24명이 참여했다. 그분들 중 최진학 어르신은 85세인데도 정정해 보였다. “서울숲 견학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오랜만에 넓은 숲으로 나와 아름다운 꽃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놀이까지 즐겨서 너무 좋다”고 했다. 83세인 김순자 어르신도 “양로원에서 야유회를 간다고 해서 동참했는데, 아름다운 숲에서 튤립, 팬지 등 다양한 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해줘서 고맙고 또 오고 싶다”고 했다. 서울시 성동구 뚝섬로에 위치한 서울숲은 서울시에서 운영 관리하는 공원이다. 조선시대에 임금과 왕실 사람들의 매 사냥터였던 이곳은 1908년에 설치된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 수원지였다. 이후 경마장과 골프장으로 활용되다가 2002년 서울 시민에게 휴식 공간을 마련해주고 녹색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하면서 나무가 우거지고 호수가 있는 숲으로 탈바꿈했다. 서울그린트러스트 운동을 통해 5000여 명의 시민과 70여 개 기업은 서울숲 조성을 위해 기금 후원과 자원봉사 참여를 했다.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고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서울의 대표 녹색 쉼터인 서울숲은 지하철이 근처까지 연결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입장료와 관람료도 없다.
- 2019-05-0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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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고전 영화② 섬마을 선생님과 12명의 학생 이야기
- 어느 나라나 제대로 알려면 구석구석 둘러봐야겠지만, 일본은 한촌까지 볼거리를 많이 준비해둔 완벽 여행 만족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카마쓰시도 그러한데, 최근 우리나라에선 배를 타고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둘러보는 여행 상품이 인기다. 영화 팬이라면 다카마쓰시에서 배를 타고 쇼도시마를 찾을 일이다. 일본 흑백 고전 ‘24개의 눈동자’를 찍은 ‘24개의 눈동자 영화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극 중 미사키노 분교장으로 나왔던 나에바 소학교 다노우라 분교에선 영화 촬영 당시의 책상과 풍금, 학생들 작품을 볼 수 있다. 소설 ‘24개의 눈동자’ 원작자인 쓰보이 사카에 문학관, ‘24개의 눈동자’만 상영하는 작은 영화관, 주연 여배우 다카미네 히데코 갤러리, 추억의 알루미늄 식기에 담긴 튀김 빵과 카레 수프가 나오는 급식 세트도 즐길 수 있다. 영화마을은 쿠사카베항과 가깝지만, 반대편 도노쇼항 입구에도 쓰보이 사카에 동상과 주인공들의 조형상이 있다. 영화는 1928년부터 1946년까지, 작은 섬마을 여교사와 12명의 학생이 함께 한 아름다운 추억과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그린다. 일본인에겐 소화 3년부터 소화 21년의 기간으로, ‘그리운’ 쇼와시대에 해당된다. 시대 배경만 그리운 게 아니라, 사제 간 진심어린 교류가 감동적으로 그려졌기에, ‘24개의 눈동자 영화 마을’은 교육의 원점 장소로서 전국의 교직원을 비롯한 방문객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28년, 세토나이가이에서 두 번째로 큰 섬 쇼도지마의 미사키노 분교에 이제 막 대학을 마친 오이시(다카미네 히데코) 선생이 부임한다. 양장을 하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선생은 이제 막 입학한 열두 명 제자의 이름과 별명을 외우며, 벚꽃 아래서 기차놀이도 하고, 아름다운 동요도 가르쳐 준다. 그러나 개구쟁이 학생이 파 놓은 모래 구덩이에 빠져 다리를 삔 선생은 치료 차 학교를 떠나게 된다. 아이들과 단체 사진을 찍으며 “본교에서 너희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게”라며 선생과 제자들은 이별을 맞이한다. 마침내 4학년이 된 학생들은 본교로 가서 오이시 선생의 반이 되고, 다카마쓰시로 수학여행을 가는 등, 행복한 추억을 쌓는다. 그러나 가난과 전쟁은 다감한 선생님과 천진한 제자를 평화롭게 공부할 수 없게 만든다. 식당으로 일하러 가는 여학생들과 징집되어 나가는 남학생들. 오이시 선생은 군군주의를 강요하는 학교에서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며 학교를 떠난다. ‘24의 눈동자’는 섬마을의 평온한 삶을 파괴하는 가난과 전쟁의 상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회복되는 인간성을 담백하면서도 눈물겹게 그린다. 다리를 다친 선생을 위문하러 집에 간 아이들에게 오이시의 어머니는 우동을 내어준다. 다카마쓰시엔 사누키 우동 순례 버스가 운행될 정도니 말해 무엇 하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우동을 먹어본 아이들, 학부모들은 고맙다며 농산물로 보답한다. 오이시 선생은 항구 우동 집에서 일하는 아마츠를 우연히 만나 눈물짓는다. 아마츠가 작별 인사를 하러 달려 나오다 급우들에 둘러싸인 선생을 보고 골목에 숨어 운다. “수학여행 가는 대신, 학교를 그만두고 일하기로 했어요”라던 고토에는 식구들마저 외면하는 가운데 폐병으로 죽어간다. 오이시 선생은 “내 앞에서 실컷 울어라”라고 말할 뿐이다. 패전 이듬해, 오이시 선생은 다시 분교로 돌아와 옛 제자의 아이들 담임이 된다. 부모, 형제들과 꼭 닮은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감회에 젖는 오이시. 세상 떠난 제자들 무덤을 찾아 꽃을 놓는다. 살아남은 옛 제자들은 환영회를 연다. 전쟁으로 눈을 잃은 제자가 선생과 찍었던 단체 사진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다 보여요” 한다. 오이시 선생은 옛 제자들이 선물한 자전거를 타고 씩씩하게 분교로 출근한다. 미모와 연기력이 빛나던 29세에 ‘24개의 눈동자’에 출연한 다카미네 히데코. 대학을 막 졸업한 초임 여교사에서 세 아이를 둔 미망인까지를 연기하며 당시 일본 열도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물론 영화는 지금 보아도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명작이다. 1929년 데뷔한 아역 배우 출신으로 셜리 템플과 비교되며 일본 영화 팬을 울린 이래, 쉼 없이 영화에 출연한 다카미네 히데코. 나루세 미키오, 오즈 야스지로, 기노시타 게이스케와 같은 일본 영화계 거장들 대표작의 히로인이었던 연기력 빼어난 배우. 하라 세츠코, 다나카 키누요, 쿄 마치코와 함께 일본 영화 황금기를 대표했던 여배우. 1979년 은퇴 후 수필가로 활동하다, 2010년 12월 28일 86세에 도쿄 병원에서 폐암으로 사망했다. 영화 속 오이시 선생과 섬마을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매를 들기 일쑤였던 엄혹한 교사만 겪었던 시니어에겐 낙원의 나날과 다름 없다. 정말 저렇게 다정하고 생각 바른 스승이 세상에 존재한단 말인가, 나는 왜 스승의 날에 찾아뵙고픈 선생님이 없는 것일까, 저런 선생님이 단 한 분만 계셨어도 내 인생은 따뜻했을 텐데, 설움에 겨워 자문하게 된다. 한 분의 선생님과 열두 명 학생은 예수님과 열두 제자에 빗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 2018-07-1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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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왕산한옥마을’ 청정마을에서 옛 정취에 빠져보자
- 인적 드문 시골 마을에 전국 각지에서 하나둘 사람이 모여들었다. 강원도 산골에 누가 오기나 할까 의심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름 알아서 잘들 찾아와 쉬다, 놀다, 힐링했다며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여간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조용하던 이곳에 세상 모든 이들의 쉼터 왕산한옥마을이 소담스럽게 자리 잡았다. 유유자적 시골 체험 강릉 톨게이트를 나와서 바다가 아닌 대관령·성산 방면으로 향한다. 왕산터널을 지나고 차로 5분여를 가면 한눈에 봐도 최근에 지어진 신식 한옥이 보인다. 바로 왕산한옥마을(위원장 정길수)이다. 이곳은 말 그대로 한옥 살아보기를 하는 곳이다. 전국 각지에 잘 꾸며지고 정리된 한옥마을이 많지만 이곳은 아직 날것(?) 그대로다. 한옥 밖은 온통 농촌 풍경.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라고는 왕산한옥마을이 전부다. 이곳이 유명 관광지로 변하기 전에 꼭 가보기를 권한다. 시골 순수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말이다. 생각해보니 이곳의 모습은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강릉 시민이 먹는 물의 상수원보호구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 전체가 우렁이 농법을 비롯해 친환경 농업 재배를 유지하는 곳이라고. 그래서일까? 마을 전체에 깊고 맑은 공기 가득 자연의 향이 드리워져 있다. 환경의 혜택을 제대로 받은 곳이다. 왕산한옥마을 둘러보기 왕산한옥마을에는 12개 객실과 함께 세미나와 단체 수련회를 할 수 있는 ‘시강원’, 왕산권역의 친환경 농산물로 음식을 만들고 체험할 수 있는 ‘수라간’이 있다. ‘시강원’ 옆 ‘왕산정’이라고 쓰인 너른 정자도 매력적인 공간. 날씨 좋은 날 마을 주위를 둘러보다 누워 뒹굴기 제격이다. 이외에도 떡가공 시설, 풋살 경기장, 야영장, 남녀 샤워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11월 준공식을 마친 왕산한옥마을은 그 이전인 7월부터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고 있다. 그렇지만 시설을 꼼꼼하게 살피고 개선하는 데 시간을 투자해야 했기에 한옥 체험 이외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못했다. 올해부터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강화할 계획이라고 김정희 사무장은 말했다. “왕산한옥마을은 말 그대로 한옥과 농촌살이를 잠시나마 알 수 있는 공간이에요. 이곳의 주제를 친환경, 농촌 체험 휴양마을로 생각하고 있어요. 재활용 물건을 이용한 전통놀이 장난감 만들기, 친환경 제품 만들기 등 환경 친화적인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준공이 지난해 말이지만 어떻게들 알았는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문의하고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한적한 환경에다가 삼척, 속초, 동해 등을 여행하고 다녀오는 이용객들이 꽤 있다. 듣자 하니 왕산한옥마을 근처에 가볼 만한 곳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나무가 있는 ‘커피커퍼 커피박물관’과 차옥순 할머니가 2011년까지 26년 동안 자식과 가족을 위해 돌탑을 쌓아놓은 모정탑이 근방에 있다. 해발 1100m의 고랭지 채소 단지인 안반데기도 한옥마을에서 멀지 않다.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공간 왕산한옥마을은 2011년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공모에 당선되면서 추진된 지역 사업이다. 건물은 강릉시 소유이지만 왕산권역 지역 주민이 세운 법인체가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 수익이 나면 지역 주민에게도 매년 소득이 발생한다. 왕산한옥마을을 이용하는 것이 지역을 살리는 방법인 것이다. 김 사무장은 이를 통해 지역 주민의 일자리가 좀 더 늘어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이곳에서 농산물을 연계해서 판매가 이뤄지기도 합니다. 한과를 하시는 분이 한옥마을에 시식 코너를 제안하고 무인으로 판매할 수 있게 해놓았는데 다 팔았어요. 수라간에서 식사할 때는 마을 주민들이 와서 요리를 합니다.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시니어 계층의 이용은 대환영이라고 김 사무장은 덧붙였다. 지금까지 만난 시니어 이용객이 시설을 깨끗이 이용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고. 그만큼 이곳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왕산한옥마을은 계절마다 느껴지는 모습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언제든 와서 쉬어도 좋은 곳이란다. 지대가 높아 비교적 늦게 피는 왕산초등학교 벚꽃이 일품이라고 김 사무장은 귀띔했다. 한여름 밤 한옥마을 위로 쏟아지듯 빛나는 별이 장관이란다. 사계절 언제 가도 할머니의 품처럼 푸근하게 안아줄 곳을 찾는다면 왕산한옥마을에 가보기를 권한다. 이용안내>> 주소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도마길 21 전화·팩스 033-648-7179 전화문의 9~18시 홈페이지 wangsan.kr
- 2018-01-0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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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이 있는 길] 종로통 구석구석 옛 기억이 살아나다
- 세상 모든 길에 사람이 지나다닌다. 이들 중에는 길과의 추억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다. 추억이란 살아온 시간, 함께했던 사람, 그날의 날씨와 감정이 잘 섞이고 버무려져 예쁘게 포장된 것이다. 박미령 동년기자와 함께 오래전 기억과 감정을 더듬으며 종로 길을 걸었다. 흑백사진 속 전차가 살아나고 서울시민회관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행복한 발견. 감동이 잔잔히 밀려왔다. 경복궁에서 스케이트 타던 시절이 있었어요! 서울시 종로구 당주동에서 태어난 박미령 동년기자는 대학 시절을 넘어 결혼 전까지 종로에서 산 토박이다. 세종문화회관 전신인 서울시민회관 계단이 놀이터였고, 중학생이 돼서는 경복궁과 인왕산 활터가 주 무대였다. “인왕산에 활터가 있어요. 활터 아저씨들이랑 얘기하고 맛있는 것을 주시면 먹기도 했어요. 경복궁은 젊었을 때 너무 많이 왔어요. 경회루 연못이 얼면 그곳에서 스케이트를 탔어요. 그때는 뭣도 모르고 탔죠. 스케이트 날을 가는 아저씨와 스케이트 빌려주는 아저씨가 저기 경회루 계단 아래 앉아 있었어요.” 현재를 사는 젊은이에게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경복궁은 문화재청이 엄격하게 관리하는 문화재다. 취재 당일에도 문화재청에 경회루 사진촬영허가신청서를 냈다. 스케이트를 탔다는 말이 그저 충격이었다. “창경원에서 보트도 탔는걸요. 밤벚꽃놀이도 하고요.” 이 부분에 있어 옛 추억으로 그냥 넘어가기에 씁쓸함이 앞선다. 일제강점기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불렸다. 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 등 놀이시설이 들어섰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 수천 그루를 심어 놓고 밤벚꽃놀이를 즐겼다. 왕이 사는 궁궐의 의미를 상실한 시대를 지나야만 했다. 경복궁 내에 세워졌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1996년 철거됐고, 창경원으로 불리던 창경궁은 1983년 원래 명칭으로 환원하였다. 시니어의 추억은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잔인한 역사와 함께한다는 생각이 들어 꼭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아버지와 아침식사, 금천교시장 기름떡볶이 1960년대, 박미령 동년기자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서울시민회관 옆 길가에는 중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중화요리집이 있었다. 아침잠이 없는 아버지는 아침잠이 많은 어머니를 깨우지 않고 박미령 동년기자를 데리고 그곳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가곤 했다. “중국 사람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먹고 부인 먹을 것을 싸들고 온답니다.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근데 거기서 먹었던 콩국이 정말 맛있었어요. 콩국에 찹쌀튀김을 잘라 넣은 것인데 시리얼 같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서 중국여행 가면 찾아는 보는데 딱 그 음식 맛이 나는 걸 아직은 못 먹어봤어요.” 함경도 출신인 박미령 동년기자의 아버지는 혈혈단신 남한으로 내려왔다. 이북 사람들은 의식주 중에 먹는 것을 가장 최고로 친다고 한다. 그래서 음식 솜씨가 좋은 외할머니와 아버지가 여느 모자 못지않게 친했다. 그리고 기름떡볶이에 대한 추억도 나눠주었다. “어렸을 때 먹었던 기름떡볶이에 대한 기억이 많아요.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엄마 따라 시장에 갔습니다. 제 기억에 떡볶이는 빨간 떡볶이가 아니고 기름에 바짝 구운 떡볶이예요.” 박미령 동년기자의 말에 곧장 기름떡볶이를 파는 통인시장으로 향했다. 사실 박미령 동년기자가 말한 기름떡볶이는 통인시장에서 파는 것이 아니다. 경복궁역 2번 출구, 금천교시장에서 기름떡볶이를 팔던 故 김정연 할머니(향년 98세)의 떡볶이다. 북에서 홀로 남한으로 내려온 김 할머니는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하고 돌아가셨다. “김 할머니는 간장으로 간을 한 기름떡볶이만 했어요. 금천교시장 할머니가 원조죠. 할머니는 곤로에다 무쇠솥 하나 올리고는 낚시의자에 앉아 떡볶이를 만드셨어요. 할머니 앞에 손님들이 빙 둘러앉으면 ‘몇 개 줄까?’ 하고 물어보셨어요. 겉을 바삭하게 무쇠솥에 지져서 구워주셨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어렸을 때 그 기름떡볶이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정신여고 회화나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통인시장에서 택시를 타고 박미령 동년기자의 모교인 정신여고가 있던 종로구 연지동 옛터를 찾아갔다. 명성왕후의 주치의이자 선교사였던 애니 엘러스 벙커(Annie Ellers Bunker)가 1887년 중구 정동에 설립한 정신여고는 1895년 종로구 연지동으로 교정을 옮겼다. 1978년 지금의 교정인 잠실로 이전하기 전까지 깊은 역사의 흔적이 쌓인 곳이 연지동 교정 터다. 이곳에서 박미령 동년기자는 여중·여고 시절을 보냈다. “버스를 타고 지나는 다녀봤지만 내려서 학교 쪽을 가본 적은 없어요. 종로5가 뒤쪽 대학로로 가는 중간에 있어요. 종로통을 잇는 전차를 이용해 통학했는데 종로4가에 내려서 학교로 걸어갔어요.” 지금 생각해도 학교 시설이 너무 좋았다고 회고했다. 수세식 화장실에 라디에이터 난방을 했다. 기숙사에는 침대가 설치돼 있는 등 당시에는 최고 시설을 갖춘 서양식 학교였다. 예쁜 교정이 그립지만 정신여고 옛터에는 본관과 기숙사로 사용됐던 세브란스관만 남아 있다. 현재는 다양한 기업체들이 상주해 과거 교실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옛 모습 그대로 사용하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하다. “우리 저기 뒤쪽으로 가보면 안 될까요? 교정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과거 정신여고 부지를 사들였다는 보험회사 건물과 남아 있는 정신여고 본관 건물 사이에 조성된 녹지공원이 보였다. 그곳에 가보니 정신여교의 교목인 회화나무가 그대로 서 있었다. “우리 학교 교목이에요. 옆에 건물도 보니 우리 학교 건물이 맞아요. 건물 사이를 이어주는 구름 다리도 기억나고요. 제가 찾아올 줄 알았겠어요? 나무를 찾아서 너무 좋아요.” 정신여고의 교목인 회화나무는 독립운동을 함께한 고마운 나무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애국부인회의 출발점인 정신여고가 일본 관헌의 수색을 받았을 때 비밀문서와 태극기, 국사책 등을 고목의 구멍에 숨겨 보존할 수 있었다.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날에 만나 시원한 바람으로 마무리한 멋진 데이트였다. 한 사람의 역사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종로의 작은 틈, 작은 돌 하나에도 우리의 역사와 추억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 2017-09-1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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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꽃이 참 곱다
- 올해로 구순이 되는 노모를 모시고 형제들과 함께 남도 나들이를 다녀왔다. 잔치 대신 해외여행을 추천해 드리니 지난 추억이 있는 그곳을 돌아보고 싶으시단다. 우여곡절 끝에 일정을 맟춘 네 자녀들과 함께 변산-개심사-내소사-목포-신의동리-광주-담양을 4박 5일 동행했다. 모두가 귀한 기억을 하나씩 더 안고 온 흡족한 추억 여행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헌것 주면 싫어해요.”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향 방문에 앞서 일가친척에게 보낸다며 온갖 것을 정리하신다. 한 달 전부터 방 한쪽에 놓인 가방에는 눈에 익은 낡은 옷가지에서부터 모자, 가방, 스카프, 냄비, 스테인 그릇, 전자제품, 갖가지 건강기구까지 한 살림이다. 나들이용으로 당신 카디건을 장만하면서 동서 블라우스, 시동생 티셔츠, 사촌조카 치마까지 거침없는 노모의 구매가 조금은 낯설었다. 바리바리 싸놓은 보따리가 한 짐이다. 급기야는 겉옷까지 주고 오셨지만 더 못 준 것이 아쉽다 하신다. 묵은 추억을 찾아가는 마음은 기존 여행과는 사뭇 다르다. ‘기억 찾기 퍼즐놀이라고나 할까?’ 제각각의 추억을 지닌 관계로 감흥 역시 다르다. 기억의 파편들은 저마다 다른 프리즘으로 떠오르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몇 편의 이야기로 아스라하게 남겨지나보다. 내 어린 추억은 이렇다. 할아버지 댁 입구를 지키던 우람한 구슬나무, 넓게만 보였던 앞마당, 높이 올려보았던 감나무, 소와 닭이 잠자던 외양간, 흙바닥의 낮은 부엌, 아궁이 위에 놓여 있던 커다란 무쇠 솥에서 나는 보리밥 냄새, 땔감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와 재미난 불 때기. ‘시골집이 있기는 하나?’ 좁은 농로는 2차선 도로가 되어버렸고, 실 같던 흙길은 시멘트에 덮여 낯설었다. 그 길에 서서 마을 주민에게 옛집을 물으니 손끝으로 방향을 알려준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반색하며 맞이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있었다. 서로 주름진 얼굴을 마주 보며 흐린 기억을 더듬으며 애써 끈을 찾는다. 선친께 술을 부으며 절을 올리고 나니 아직 남은 지인 몇 분이 찾아오고, 묵고 묵은 긴 이야기는 밤까지 이어진다. 바다 위로 섬을 잇는 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7월 준공이라는 말에 모터 나룻배로 섬을 이동하니 그쪽 역시 공원 조성으로 중장비 소리가 시끌하다. 하루 네 번 다니는 마을버스를 눈 빠지게 기다리다 물으니, 기사 양반이 친척 결혼식으로 뭍에 갔다가 오후에나 온단다. 시골답다. 덕분에 맥없이 길가에 한 줄로 앉아 구순 노모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전래 동화처럼 듣는다. 그 이야기 속에 철쭉, 벚꽃,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할미꽃, 수국 등 흐드러지게 핀 봄꽃들이 도처에 가득하다. “봄꽃이 참 곱다.” 따스한 햇살 속에서 반짝이는 벚꽃 사이를 걸으며 노모가 하시는 말씀이다. 우리네 인생도 꽃을 닮았다는 말에 완전 동의하며 살아 있는 人花, 사람꽃끼리 한 번 더 쳐다본다. 동행한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엄마와 같이할 수 있는 봄이 몇 해나 남았을까?’
- 2017-05-16 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