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먹기 싫은 것이 있다면 바로 나이가 아닐까? 시니어기에 접어들고 나이 앞자리가 무거워지면 모든 것이 억울하고 슬퍼지는 상황을 맞기도 한다. 그런데 어차피 먹을 나이 좀 맛있고 멋지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세상 모든 이가 맞이하는 그 나이 듦에 당당해져보자.
도움말 전수경 남서울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생애주기에 있어서 50대 이후에 겪게 되는 정신적 스트레스의 요소는 다양하다. 갱년기 우울증을 비롯해 자식들의 독립으로 인한 빈 둥지 증후군, 이혼, 사별, 부모의 죽음 등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가질 수밖에 없는 외부적 요건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전수경 남서울대학교 교수는 “에이징, 즉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외로움, 소외감, 박탈감, 허무함 등을 시니어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년기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건강한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른바 ‘웰에이징’이란 아름답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신체적 건강만큼 정신건강도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의 근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의 표현을 빌리면, 성인후기(노년기) 마음의 근육은 ‘자아통합감’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그대로 수용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조화롭고 균형 잡힌 견해를 가지는 성숙한 인격을 의미합니다. 성공적인 노화(successful ageing)와 심리적 안녕(psychological wellbeing)에 도달하기 위한 단계인 것이죠. 이를 갖지 못하면 우울감과 타인에 대한 원망, 인생에 대한 불만이 가득 찰 수 있습니다.”
동화작가 겸 극작가인 설용수 씨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각종 불안감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환갑을 넘기고 나니 새로운 삶이 열린 것처럼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의 결혼으로 인한 빈 둥지 증후군은 자전거 타기와 독서로 조금씩 이겨내기 시작했다. 집은 작은 평수로 줄여서 이사했다. 2년 전부터는 사교댄스를 배워 한 달에 한 번은 춤을 추기 위한 모임에도 간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다고.
“아무런 부담이 없어요. 자식을 키워야 한다는, 부모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내가 직장을 다니고 뭘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습니다. 남자 여자라는 성(性) 구분이 없는 것도 해방에 가깝습니다. 다들 나이가 있으니까 누구를 만나도 사람 그 자체로 만날 수 있어요. 시간도 돈도 마음도 뭐든지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것도 좋습니다. 혼자 사는 것에 적응하니 지금 정말 행복해요.”
빈 둥지의 허탈감과 늙어간다는 부적정인 생각을 밟고 더욱더 성숙하고 완전한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을 설용수 씨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너무 깊은 우울감 대신 좀 더 나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누구든지 신나고 당당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심리학 교수 애덤 그랜트는 ‘옵션 B’라는 공동 저서를 통해 ‘상실과 역경으로 마주하게 된 삶을 ‘옵션 B’라는 말로 설명했다. ‘옵션 B’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회복탄력성’이 요구되는데, 이는 “절망감 속에서 빠져나오는 심리적 근육”을 말한다. 자아통합감과 회복탄력을 지니려면 마음을 단단히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전 교수는 이를 위해 “무엇이든지 인정하고, 긍정적이며, 과도하게 의존적이지 않아야 하고,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면서, 타인을 배려하고,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레이스 리보와 바버라 케인이 쓴 ‘나이 든 부모와는 왜 사사건건 부딪힐까?’라는 책을 보면 시니어기에 접어들어 정서적,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었을 때부터 그러한 인자(요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니어가 되어 갑자기 고집스러워진다거나, 독단적이고 의존적인 성향으로 변한 게 아니라는 것. 전 생애에 걸쳐 원래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니어기에 부각되거나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물론 나이 들면서 더욱 문제가 도드라지기도 한다. 그레이스 리보와 바버라 케인은 나이 듦으로 해서 겪는 6가지 문제 성향을 책을 통해 열거해놓았다. 이를 반대로 생각해서 “자신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돌아보고 개선하고자 노력한다면 나이 먹는 스트레스 없이 긍정적이고 멋진 시니어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전 교수는 조언했다.
시니어의 문제적 성향
❶ 홀로서기가 불가능한 유형이다.
❷ 흑백의 세계에 있으며 나쁜 면만 보는
유형이다.
❸ 자기밖에 모르는 유형이다.
❹ 만사를 자기 뜻대로만 하는 유형이다.
❺ 자기학대를 하는 유형이다.
❻ 두려움에 빠진 유형이다.
전수경 교수의 어드바이스
❶ 홀로서기를 연습해야 한다.
남에게 과도한 의존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❷ 좋은 면을 보는, 긍정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 관점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❸ 자기중심적이어서는 안 된다.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현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❹ 자기 뜻대로 사람이나 상황을 조정하려고 하는 통제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❺ 자기를 사랑하고 보듬어야 한다.
❻ 두려움과 걱정을 떨쳐버리고 생산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어야 한다.
4월호 // 어린이 마음으로 살아가는 ‘층층나무동시모임’
[라이프@]
스승을 모시고
한 달에 딱 한 번
숙제 검사를 한다.
어린아이 마음 담은
어여쁜 말과 말을 잇는다.
내 아기, 내 시
시가 소복소복
마음에 와 안긴다
귀한 시간이 쌓인다.
동시 작가를 만나고 나니 손가락이 꼼지락 운율을 따라 움직인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이지만 말이다. 동시를 쓰는 작가들이 모여 공부하는 ‘층층나무동시모임’을 찾아갔다. 모임 구성원은 동시집을 적게는 두 권에서 많게는 열 권 이상을 낸 베테랑들. 한 명 한 명 찾아가서 개인 인터뷰를 해도 부족할 아동문학 대표 작가 집단이 바로 ‘층층나무동시모임’이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는 프로 중에서도 프로죠. 그냥 작가들이 아니에요. 잘나가는 작가죠.(웃음)”
층층나무동시모임에서 스승으로 모시는 선생님을 봐도 현실적이지 않다. 한국 아동문학계의 거목 중에서도 거목인 신현득 시인이 바로 숙제 검사(?)를 해주는 선생님이다. 전문 작가들이 모인 자리라 그런지 진지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각자 시를 읽고 나면 동시를 연마다 끊어 읽으며 날카로운 평이 이어진다.
제자 사랑의 결실이 층층나무동시모임
층층나무동시모임이 결성(?)된 것은 13년 전쯤. 신현득 시인과 인연이 있는 제자 4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은사 포함해서 10명이다. 13년 동안 은사 한 분에 제자 9명인 것을 보면 그들의 눈높이와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30대에서 80대까지 한자리에 앉아 귀를 쫑긋 세우고 좋은 생각을 나누는 귀중한 공부방 모임이다. 그런데 등단한 동시 작가로 인정받은 이들이 왜 이렇게 모이는지 의문이다. 설용수 시인은 작가 자신이 스스로에게 갇히지 않기 위해서 모임을 택했다고 말한다.
“내가 내 작품을 확실하게 못 볼 때가 있어요. 등단이라는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의미이거든요. 그래서 그 이후에 은사님을 모시는 거잖아요. 우리의 의견이 엇갈릴 때 조정을 해주시거나 핵심을 딱 잡아주세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모이기 때문에 일종의 부담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글을 쓴다고 했다. 베테랑 작가들도 사람이기에 게으르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일종의 기능 하나를 삶에 추가한 것이라고.
그렇다면 왜 동시일까?
이들을 동시의 세계에서 살게 만든 원동력이 뭔지 궁금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들을 유심히 살피는 고운 마음씨가 힘이다. 손자와 손녀가, 내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모습이 이들을 동시 속에 살게 했다. 아이들은 동시의 주체가 됐고 멋진 독자로 성장했다. 전직 초등학교 선생이자 최고령 작가인 박예자 시인도 손자들에게서 영감을 많이 얻었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전부 다 시로 보였어요. 제가 쓴 ‘아가는 시예요’라는 책이 있습니다. 손자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면서 시를 썼어요. 쓰다 보니까 동생이 태어나잖아요. 형이 동생을 질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독립심이 생기고요.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을 유아시로 써냈습니다.
박예자 시인과 마흔 살이나 차이 나는 최연소자 신정아 시인도 세 아들 얘기를 꺼냈다.
“제가 2012년도 등단했는데 그전부터 단국대학교에서 신현득 교수님의 아동문학 강의를 들었어요. 그때 제 아들이 세 살쯤 됐을 땐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동시가 하나둘 써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아무래도 소재 거리를 많이 주죠. 지금은 초등학생인데 독자이기도 하고요.”
아이의 심상 느낄 줄 아는 재능의 소산
동시는 잃어버린 동심을 찾아주는 글이다. 나이를 떠나 어린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리고 싶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 동시 아닐까. 세상에 많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엄마가 있지만 다들 한마음으로 동시를 쓰는 게 아니니 말이다.
층층나무동시모임에서 만난 작가들 모두 동심의 소중함을 알고 낮은 자세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있었다. 사실 동인들 모두가 너무 걸출해서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현역 동시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유희윤 시인과 김금래 시인, 경희대 간호팀장 신분으로 꾸준하게 동시 작가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는 한상순 시인도 층층나무동시모임을 자라게 하는 나뭇잎사귀다. 개인 활동은 물론이고 동인지에 관한 생각도 잊지 않고 있다는 층층나무동시모임. 모두가 건강하게 오랫동안 건필하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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