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시 산자락으로 귀농한 송정섭(67, ‘꽃담원’ 대표)은 자칭 ‘꽃미남’이다. 아내 역시 ‘꽃미녀’로 쌍벽을 이룬단다. 외모를 내세우는 ‘자뻑’이 아니다. ‘꽃에 미친 남자’와 ‘꽃에 미친 여자’가 함께 사는 걸 빗댄 얘기니까. 못 말릴 강태공은 낚싯대 하나로 만족한다. 다인은 끽다로 세상을 건넌다.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사는 것보다 나은 게 있던가. 송정섭은 오나가나, 앉으나 서나, 매양 꽃과 동행한다. 귀농을 한 것도 꽃에 제대로 미치기 위해서였다. 그게 인생의 쓸쓸한 황혼을 북돋울 가장 유력한 방안이라 보았다.
송정섭의 거처는 온통 녹음이다. 600평에 이르는 너른 터에 자라는 온갖 식물이 초록을 내뿜는다. 하늘을 반쯤 가린 저 앞의 푸른 준령은 내장산이다. 범람하는 산기(山氣)로 한여름의 무더위는 물론 속기마저 씻어낸다. 산 위로 흐르는 구름은 또 어떻고? 꽁무니에 바람을 매달고 유유히 흘러 번잡한 세상사를 잊게 한다. 어디를 보더라도 진부한 게 하나 없는 산골 풍경이다. 개중에 흐벅진 건 송정섭이 귀농 8년간 꾸민 정원 경관이다.
이 정원에선 나무들의 제전, 꽃들의 향연이 한창이다. 원래 감나무 세 그루뿐이었다. 외갓집 묵정밭이었다고 한다. 쓸모를 잃은 땅에 정원을 꾸려 쓸모는 물론 미감까지 고스란히 살려냈다. 애쓴 흔적, 공들인 자취가 완연하다. 식물에 관한 단순한 애호를 넘어선 빙의? 화초류만 하더라도 자그마치 350여 종이라지. 게다가 본때 있는 솜씨로 적재적소에 배치해 조화롭다. 이곳에서 철 따라 도도한 자연의 순환과 드라마가 펼쳐질 걸 짐작할 만하다. 그렇다면 송정섭은 일쑤 무아지경을 느끼나? 그러고 싶어 꽃에 미쳤나?
“농촌진흥청 화훼 분야 연구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직장 생활 30여 년간 꽃을 전공으로 삼았던 것인데, 은퇴 이후 노년의 30여 년 역시 고향으로 내려가 꽃과 더불어 살고 싶었다. 꽃을 비롯한 식물이 지닌 매력과 선한 영향력을 잘 알기 때문이었지. 후회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귀농하지 못했다는 점일 뿐이다.”
귀농이 만족스럽다는 뜻인가?
“조직 안에서 의무감으로 움직여야 하는 직장 생활에 비할 수 없는 만족을 느끼며 산다. 난 정년 2년 남긴 시점에 명퇴했다. 더 일찍 물러나 정원 가꾸는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면 좋았을 텐데, 한결 나은 생활을 괜히 유보했던 셈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목적과 지향이 분명할 경우 귀농은 빠를수록 좋다.”
십중팔구 세상의 아내들은 남편의 귀농 제안에 일단 반기를 든다. 고생살이가 빤히 보여서. 이 대목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우리 부부는 주로 수원시에서 살았다. 10여 년은 단독주택에 살며 정원 가꾸는 재미를 충분히 맛봤다. 아내 역시 꽃에 관한 경험과 조예가 없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꽃을 중심에 둔 귀농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웠다.”
정착하기까지 초기의 갖은 애환을 면제받기 어려운 게 귀농이라지?
“퇴직하자마자 혼자 곧바로 이곳에 내려와 텐트를 치고 살았다. 오랫동안 홀로 종일 일하고 밤이면 막걸리 한잔하고 잠을 잤지. 기반을 닦는 과정이었다. 몸이야 고달팠지만 좋아하는 일, 원하는 일이라 힘든 줄 모르고 지냈다. 물론 모든 게 순조롭지만은 않았지만.”
가령 어떤 점이 어려웠나?
“이 터가 원래 맹지였다. 길을 내는 게 무엇보다 화급한 과제였다. 그러나 쉽지 않더라. 경계면에 있는 남의 땅을 사들이는 수밖에 없었는데 지주가 팔지 않았다. 시세의 두 배를 주겠다고 해도 통하지 않더군. 실로 어렵사리 길을 만들어내는 데 긴 시간이 소요됐다. 그 때문에 귀농 2년여가 지나서야 살림집을 지을 수 있었다.”
향후 목표는 치유정원
집을 짓고 아내가 합류할 즈음 정원 역시 어엿한 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뿌리고 심고 가꾼 것들이 생육을 거듭했던 것. 비와 바람과 햇볕만 식물의 성장을 도왔으랴. 송정섭은 원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식물의 성장을 뒷바라지할 수 있는 경륜과 기술로 정원 만들기에 가속을 붙였다. 말하자면 그는 식물 재배에 도가 텄다.
“사실 ‘화류계’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도움을 준 이들도 많았다. 시골에 내려와 정원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보내온 나무들만 해도 자동차 14대 분량이었다. 덕분에 정원 조성 작업이 순탄했다.”
시골 정원을 열심히 가꾸다 몸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있더라. 강철처럼 일어서는 풀들과 실랑이를 하다가 나동그라질 수 있으니 가급적 작은 정원을 즐기는 게 현명하다는 충고도 흔하다.
“프로에겐 얘기가 다르다. 하루에 두 시간 정도 몸을 쓰면 꽃 관리, 잡초 처리 등은 충분하다. 전지는 1년에 한 차례로 마무리한다. 나는 단순히 꽃을 가꾸고 즐기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나만의 특별한 생태정원을 구축하는 한편, 꽃을 보급하고 정원 만들기 지원 활동을 하며 시민정원사를 양성하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과 꽃 아카데미를 운영해 식물의 인문학을 강의하기도 한다. 이 모든 부문이 다행스럽게 잘 돌아간다. 거의 날마다 체험자들과 수강생들이 찾아드니까.”
결국 공직 은퇴 이후 꽃과 정원으로 새 직업을 발굴한 셈인가?
“이곳에 귀농해 열심히 정원을 가꾸는 나를 주민들은 의아해했다.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저토록 꽃을 잔뜩 가꾸지?’ 그런 궁금증으로. 꽃 가꾸기가 소득과 연결될 수 있다는 걸 그들은 미처 몰랐던 것이지.”
그는 민박업도 병행한다. 귀농 초기에 사용했던 농막을 다듬어 에어비앤비(Airbnb, 국제적인 홈스테이 네트워크)에 가맹, 투숙객을 받는다. 이 역시 순항한단다. 자신이 보유한 물적 자산을 최대치로 활용하고 있으니 그의 두뇌가 기민하게 움직이는 걸 알 만하다.
“민박 수요는 넘친다. 그러나 적당한 선에서 자제한다.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다. 주된 목적인 정원과의 동행에 전념해야 하니까. 향후 치유정원으로 확장할 작정이다.”
치유정원? 그게 뭐지?
“의사들의 데이터를 보면 꽃이 치매까지 개선한다고 한다. 이렇게 원예로 질병을 고칠 수 있다는 데 착안한 게 치유정원이다. 독일이나 네덜란드에선 오래전부터 치유정원이 활성화돼 있다. 환자를 무조건 병원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치유정원으로도 보내는 것이지. 국내에도 치유정원을 표방하는 원예농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자신의 전공과 경륜을 고스란히 살려 인생 2막을 열어젖힌 뚝심이 인상적이다.
“귀농에 대한 로망은 아파트에 살던 시절에 이미 움텄다. 옆집에서 누가 죽어 나가도 모르고, 좋아하는 꽃을 기껏해야 베란다에서 기를 수밖에 없는 답답함에 질렸던 것이다. 그러면서 일찌감치 생태정원을 구상했다. 개인이 가진 기능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게 좋은 삶이라는 인식은 뿌리 깊은 것이었고.”
식물의 능력은 사람보다 뛰어나다
그는 갑갑한 도시를 벗어나 우선은 ‘나’를 즐겁게 하고 싶었던 거다. 즐겁지 않고 행복할 수 있겠는가? 오욕칠정으로 탁류처럼 흐르는 인생일망정 내 길을 내가 가는 한 뒤에 남을 미련한 미련이 적어진다. 그는 귀농으로 삶이 부과하는 갈등과 갈증을 해소했다. 귀농하며 가슴에 새긴 건 세 가지였단다. 변화한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자연을 소중하게 대하기. 죽을 때까지 공부하기. 개중 결연한 건 공부 욕심이 아닐까. 그런데 그가 가르침을 청하는 선생은 꽃이며 식물이다. 풀꽃 하나에서 생명의 신비한 노래를 듣고, 바람에 떠는 나뭇잎 하나에서 우주의 율동을 보는 영혼이 드물지 않은데, 송정섭의 사유 역시 비슷한 계보에 속하는 것 같다.
“호기심을 가지고 식물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얻을 것이 많다. 이를테면 꽃들은 무엇으로 대화를 할까, 그걸 공부하다 보면 향기에 답이 있음을 알게 된다. 심지어 식물은 사람의 말뜻까지 알아듣기도 한다. 사실 식물의 능력은 인간의 재능을 뛰어넘는다.”
좁쌀보다 작은 상추씨가 흙을 들어 올려 싹을 틔우는 기적을 바라보면 천하장사는 저리 가라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얘기는 재고되어야 할지도.
“강의를 할 때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꽃처럼 살자’는 거다. 꽃에서 배우자는 뜻이다. 그럼 무엇을 배우나? 한 가지 예를 볼까? 지구상의 꽃은 25만여 종에 이른다. 이 모든 꽃이 다 다르다. 저만의 개성으로 존재한다. 이는 개성을 살리기보다 욕망을 따라 달려가는 인간의 양상과는 사뭇 다른 게 아닌가.”
꽃인들 속 터질 일이 없을까마는 사람보단 덜 아등바등한 것 같다.
“우리가 자주 잊고 지내는 게 있다. 식물이 내뿜는 산소를 마시며 숨 쉰다는 걸. 인간의 생존에 이모저모 절대적인 기여를 하는 식물의 헌신을 기억하기만 해도 삶이 한결 나아질 거라는 얘기다.”
식물 예찬이 길게 이어진다. 새삼스러울 게 없는 얘기지만 새삼스럽게 들리는 건 외면하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귀농으로 일군 꽃 농장은 송정섭에게 세상의 중심이다. 세상의 한 귀퉁이를 꽃으로 채워 향기를 흩뿌리는 삶이란 얼마나 떳떳한가. 게다가 안정적인 소득 기반까지 다졌다. 그는 바야흐로 썩 괜찮은 인생의 열매를 거두는 시절로 접어든 셈이다. 귀농을 통해 마침내 얻고 싶은 걸 얻었고, 하고 싶던 걸 하게 됐다. 그렇다면 그가 으뜸으로 치는 귀농 수칙은 어떤 것일까.
“가장 중요한 건 주민들과 화학적 결합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마을의 문화와 풍토를 존중해야 하는데, ‘3척’만큼은 피해야 한다. 시골에서 아는 척, 잘난 척, 가진 척을 하다가는 거의 죽음과도 같은 고난에 빠질 수 있다.”
허튼 우월감은 버려라?
“자세를 낮추는 게 좋다. 시골 사람들이 무슨 법 같은 것엔 무심할망정, 자신들이 경험한 사실 외엔 함부로 말하지 않는 신중함이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직접 겪은 불화 경험은 없었나?
“불화라기보다 귀농 초기에 다소 서툰 처신을 해 미운털이 박힐 뻔한 경험이 있다. 마을회의 같은 곳에서 박사랍시고 너무 많은 말을 한 것이다. 그러자 분위기가 이상해지더라. 아하, 내가 팽당했구나! 뒤늦게 깨닫고 태도를 바꾸었다.”
딱히 죄를 지은 것도 없이 코너에 몰릴 수 있는 게 귀농 생활이라는 얘기다. 나를 내세우기보다 타자의 얘기에 먼저 귀 기울이자는 조언이고. 세상의 도처가 교실인 셈이다.
송정섭이 주는 귀농 Tip
꽃 농원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러나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뜻을 이루기 힘들다. 우선 식물에 관한 공부를 미리 충실하게 해둬야 한다. 재배 기술 숙지는 기본이고, 식물심리학과 식물의 인문학까지 섭렵하는 게 필요하다. 농원의 공간 디자인도 핵심 요소다. 개성과 미감을 살려 구조를 설정해야 한다. 효율적인 동선 조성 역시 중요하다. 입지로는 들판보다 숲속이나 산자락이 이상적이다. 주변에 축사나 고압선 철탑이 있는 곳은 피하라.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근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점이다. 유난히 텃세가 심한 곳은 피해야 하는데, 단기간이나마 미리 살아보고 풍토를 판단하는 게 좋다.
몇 년 전부터 나만의 북큐레이션으로 무장하고 독자와 호흡하는 소소한 이벤트로 세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던 동네 책방을 되살려내고 있는 책방지기들이 등장했다. 이곳 동네 책방 한쪽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조용히 책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가슴속 묻어뒀던 작은 행복 하나가 ‘똑똑’ 심장을 두드리며 응답한다.
“남에게 보이는 것보다 내가 행복한 삶’이 좋다. 오늘 당장 떠날 것, 가까운 동네 책방으로!!”
“책방도 사업입니다. 지속 가능성이 없다면 문 닫아야죠.”
어? 이 사람 ‘찐’이다. 소위 공트럴파크(공릉동+센트럴파크), 옛 경춘선 철길 따라 조성된 노원구 시민공원 한쪽 2층에 위치한 동네 책방 ‘책인감’. 이곳에 위치해 있던 책방 ‘51페이지’를 인수해 간판을 바꿔 단 지 2년 9개월 됐다.
이제 막 전업 3년 차를 향해 달려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대기업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동네 책방 운영자, 1인 출판사 사장 및 출판 기획자, 저자, 강연자, 콘텐츠 기획자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세포분열 중이다.
이철재 대표는 대학에서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 18년 동안 안정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조금씩 직책이 높아지고 중간관리자가 되면서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았단다. 합리적이지 않은 상사의 지시, 몇 차례 설득과 설명을 해도 돌아오는 건 “까라면 까”라는 상명하복의 문화가 싫었다. 부하 직원에게 자신 역시 똑같이 불합리한 지시를 내리고 업무 성과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하게 됐을 때 인생 2막을 준비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무작정 그만둘 수는 없어 ‘뭘 해볼까?’ 고민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책과 관련된 일을 해보자’ 마음먹고 동네 책방 쪽을 알아보게 됐단다.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기존 사업체 인수가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아 ‘51페이지’와 계약을 하면서 미련 없이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딱히 책을 열렬하게 좋아했던 건 아니었단다. 자전거 타고 전국을 누비며 여행을 하다가 동네에 자그맣게 자리한 동네 책방들을 만나게 됐고 콘텐츠로서 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호기롭게 사표를 던지고 나와 새로운 인생의 길을 만들고 있는 중이지만 ‘바깥은 전쟁터’라는, 드라마 ‘미생’의 대사를 실감하고 있다. 그래도 대기업 출신이 운영하는 동네 책방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주인장 ‘이철재’를 궁굼해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정답은 없지만 계속 도전하는 이유
현재 이철재 대표는 꾸준히 책 관련 콘텐츠 기획을 하며 외연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처음부터 동네 책방 운영만이 목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1인 출판사 ‘책인감’을 통해 ‘이철재’ 이름으로 두 권의 책을 펴냈고 책을 출간하고 싶은 이들과 협업으로 세 권의 책을 더 세상에 선보였다.
이 대표의 저서 ‘1인 가게 운영의 모든 것’은 서점 주인만을 대상으로 펴낸 책이 아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1인 가게 운영자들이 꼭 알아야 할 A부터 Z까지의 노하우를 담았다. 경영학도답게 1년간 동네 책방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시장분석을 통해 스스로를 컨설팅하고 전국의 동네 책방까지 컨설팅해준다.
이 책이 동네 책방에서 판매되고 지역 서점조합의 주문도 받게 되면서 종종 서점조합이나 도서관에서 열리는 행사 강연자로 초대되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동네 책방 업계에 ‘이철재’라는 세 글자를 알리게 된 셈이다.
그런데 책 출간 방식이 기존 출판사 문법과는 다르다. 한마디로 책을 먼저 판매한 뒤 출간을 진행한다. 지난해 3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을 통해 펀딩에 나섰고 220명으로부터 531만3800원의 후원을 받았다. 그 뒤 ‘1인 가게 운영의 모든 것’이 출간됐다.
이 대표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펴낸 두 번째 책은 ‘제주 힐링 여행 가이드’. 대한민국 자전거길 국토 완주 그랜드 슬럼을 달성할 만큼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누볐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책은 제주 토박이와 관광객으로 이분화돼 있는 제주의 숨은 여행지와 맛집 등을 중간자적 입장에서 소개한 안내서다. 역시 텀블벅 펀딩으로 79명으로부터 164만 원의 후원을 받아 출간됐다.
‘책인감’ 이름으로 펴낸 세 권의 책은 모두 책방 고객들로부터 의뢰를 받아 제작 출간됐다. 서울시민정원사회가 펴낸 ‘서울시민정원사가 들려주는 가드닝 이야기’, 시와 꽃 동인들이 펴낸 시집 ‘꽃씨한톨’, 간호사 김미정 씨가 펴낸 ‘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다’ 등이다. 책방에서 독서모임을 갖거나 자주 방문하는 고객들이 토로한 출판의 어려움을 듣고 시작된 프로젝트들이다.
“동네 책방은 왜 대박을 기대하면 안 되죠?”
이렇듯 이철재 대표는 동네 책방을 기반으로 문화 콘텐츠 기획자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두번째 외연 확장은 마을공동체 및 서울시, 공공기관의 다양한 지원사업 도전이다. 하루에도 수십 개는 뚝딱 만들어내던 기획서 작성 능력을 바탕으로 공공기관의 다양한 수행 사업을 실행 중이다. 특히 마을공동체 사업 등은 책방 공간을 활용한다.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 그림을 배우거나 기타 다양한 활동을 하는 장소이자 ‘책인감’을 널리 알리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동네 책방의 단골 이벤트라 할 독서모임도 눈길을 끈다. 과학책 읽는 모임인 ‘과학강좌’와 ‘여행강좌’, 그리고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이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모여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금요와인’ 등이 있다. 과학에 관심이 많고 여행과 와인을 좋아하는 주인장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Mini interview '책인감' 이철재 대표
현재 텀블벅 프로젝트 3탄을 준비중이다. 책방 운영하랴… 공공 지원사업 신청하랴… 부족한 시간 가운데에서도 세번째 책 집필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철재 대표가 회사 생활할 때 ‘엑셀의 신’으로 불렸던 본인의 꼼꼼한 엑셀 활용법을 복기하면서 직장 생활의 애환을 담을 예정이다. 엑셀의 무한한 활용을 꼼꼼하게 전수할 실용서에 회사 생활의 애환을 함께 담는 실용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집필 시간이 너무 부족해 월요일 하루였던 책방 휴무를 화요일까지 이틀로 늘렸을 정도다. 이전 텀블벅 프로젝트보다 훨씬 대중적인 분야라 모금액이 더 많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있다. 올해 안에 출간하는 것이 목표란다.
남들이 안 하는 것들을 많이 시도하고 있다는 질문에 이철재 대표는 아래와 같이 답을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정답은 없지만 이런 시도를 계속하는 건, 그래야 발전하니까요.”
‘책인감’ 서울 노원구 동일로 182길 63-1, 2층
토목공학을 전공해 35년간 건설회사에서 몸담았던 민병직(71) 씨. 퇴직 후 서울 시민정원사로 활발히 활동 중인 그는 현재의 일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반평생 토목공사를 하며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산을 깎아 길을 내고 댐도 만들었죠. 돌이켜보니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식물이 희생됐더군요. 그 시절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젠 자연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이 분야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꼭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 유독 꽃을 심고 화단 가꾸는 일을 좋아했다. 평소에도 집에서 다양한 식물을 키웠고, 도심 속 작은 텃밭도 일궈왔다. 그러던 중 퇴직을 앞두고, 자신의 전공 분야와 접목해볼 만한 일을 찾던 그의 눈에 처음 들어온 건 ‘조경’이었다.
“예전엔 조경도 토목의 한 분야였죠.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조경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했는데, 나름대로 연관성 있는 분야라 어렵지 않게 잘 마칠 수 있었어요. 그러곤 뭔가 더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서울 시민정원사 1기 모집’ 공고를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2014년 가을 기본 과정을 수료했고, 이듬해 심화 과정을 이수하며 서울시장 명의 ‘서울 시민정원사’ 인증서를 취득할 수 있었다. 물 흐르듯 순탄하게 방향 전환에 성공한 그는 유기농업기능사, 종자기능사 등 국가기술자격까지 섭렵하며 제2인생을 위한 항해를 시작했다. 자격증 취득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이후 실전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은 자연의 시간표대로 묵묵히 흘러갔다.
“자연을 상대하려면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보통 씨를 뿌리고 결실을 내려면 1년은 걸립니다. 요즘엔 자격증 공부하며 이론으로 터득한 내용과 별개로 텃밭 한쪽에 제 나름의 방법으로 식물을 키우며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있습니다. 자연의 일은 체험이 중요하다고 봐요. 다양한 시도를 통한 경험의 수치가 생기기도 하고, 뜻밖의 선물을 얻기도 하죠. 그게 바로 자연과 더불어 일하며 얻는 가장 큰 수확이자 기쁨이 아닐까 합니다.”
자격증에 관심을 두는 중장년이 늘어났다. 젊은이들이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의 도구로 자격증을 취득하듯, 시니어 역시 재취업을 위한 발판으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노소를 떠나 무분별한 자격증 취득은 시간, 돈 낭비에 그치기도 한다. 2019년 등록된 자격증 수는 3만2000여 개. 관심 있는 자격증 정보를 선별하기도 쉽지 않다. 이에 고민인 중장년을 위해 자격증을 분야별로 나눠 알아보려 한다. 이번 호에는 ‘농업·원예’ 분야를 소개한다.
자료 제공 및 도움말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한국산업인력공단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추억이 있는 중장년 세대의 경우 아예 귀촌을 하거나 도심에서 텃밭을 가꾸고, 원예나 정원 관리 등 자연을 벗삼은 활동을 통해 유년 시절의 향수를 달래곤 한다. 집에서 취미로 꽃이나 나무를 키우기도 하지만, 농업·원예 분야 자격증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일자리를 꾀할 수도 있다. 각 지역 농업기술센터를 중심으로 도시농업전문가 과정이 늘었고, 정원문화 확산을 위한 정원지원센터가 곳곳에 생겨나는 등 관련 시장과 수요가 점차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PART1. 국가기술자격
먼저 농업 분야에서 중장년의 관심이 가장 높은 국가기술자격은 ‘유기농업기능사’다. 유기농업이란 화학비료나 농약, 제초제 등 합성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물과 미생물 등 자연재료만을 활용한 농사 방식이다. 최근 환경오염이 화두로 떠오르며 유기농업의 중요성과 수요가 증대되는 추세다. 실제 도심에서 직접 먹을 농작물을 키우거나, 귀농 후 농사를 지을 때도 유기농법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자격시험에서는 유기농 재배 및 관리를 비롯해 생산, 토양관리, 가공, 유기축산 등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데, 평균 합격률은 95.6%로 꽤 높은 편이다(2018년 기준). 특히 50대 이상 합격자 수가 타 연령대에 비해 많다는 점에서, 관심 있는 중장년이라면 도전해볼 만하다(응시자격제한 없음).
또 다른 국가기술자격으로는 ‘원예기능사’가 있다. 원예기능사는 묘목을 재배하거나, 생육 시설 설치 및 관리, 관수(물주기), 시비(거름주기), 제초 등의 작업을 수행한다. 자격시험을 치르려면 시설 원예를 비롯해 채소·과수·화훼 원예에 대한 이론과 실제 작업 과정 전반을 익혀야 한다. 지난해 시험 결과를 보면 필기시험 평균 합격률 35.4%, 실기시험 평균 합격률 61.1%로, 합격이 수월해보이지는 않는다. 근래 합격자 수 역시 한 해에 100명이 채 안 될 정도로(2018년 80명, 2017년 95명, 2016년 69명) 적었다.
농업·원예 분야의 국가기술자격에는 종자기능사와 화훼장식기능사도 있다. 전체 합격자 수로만 본다면 유기농업기능사나 원예기능사보다 훨씬 많지만, 젊은 세대가 주를 이룬다. 농업·원예 분야의 자격증은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 및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 중 필기시험 면제자를 위한 실기 응시기간이 따로 있어,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PART2. 민간자격
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된 농업·원예 관련 민간자격들을 살펴보면, 다양한 스마트 기술 또는 예술 분야와 접목된 종목들이 눈에 띈다. 드론농업장제전문가, 스마트정밀농업전문가, 힐링농업지도사, 원예심리상담전문가, 생활원예아트, 정원놀이지도사 등 단순히 작물 재배나 가꾸기에 머무르지 않는 참신한 자격증이 많다. 물론 이들 종목들 대부분이 아직 시작 단계인 경우가 많아 관련 제도와 훈련 기관 등이 미흡한 편이다. 관련 교육과 양성 과정이 궁금하면 각 지역 농업기술센터(또는 농업기술원)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서울특별시 농업기술센터의 경우 ‘원예활동생활화 교육’, ‘치유농업 프로그램’, ‘도시농업전문가 양성 특별교육’, ‘도시농업 힐링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치유농업, 원예치료 등 농사가 목적이 아닌, 심신 회복과 안정을 위한 농업·원예 분야 자격과 프로그램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의 중장년층에게 커다란 생채기를 남긴 IMF. 도시농부 김재영(金宰永·58)씨 역시 나라가 휘청거릴 만한 큰 위기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원래는 인쇄기계를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었죠. 인쇄업이 사양산업이기도 했지만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더 이상 회사를 유지할 수 없었죠. 그래서 결국 사업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아봤어요.”
원래 생각했던 것은 귀농이었다. 부모가 이미 가평에서 텃밭을 가꾸며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기댈 곳은 그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당장 서울을 떠날 수 없었다. 아이 교육이나 여러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가 2010년에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 입학했어요. 기왕 귀농을 하려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죠. 2014년에 졸업하고 나서는 좀 더 실무적인 교육과정을 찾았어요. 이론과 현실은 다르니까요.”
인연이 닿은 것은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도시농업전문가양성과정이었다. 그는 이 교육을 통해 현장에서만 할 수 있는 교육을 배웠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재미있는 스토리 중 하나는 그의 아내 이광희씨의 존재다. 이광희씨는 김씨와는 부부 이상의 상호보완적 관계로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도 함께 졸업하고 도시농업전문가양성과정도 함께 다녔다. 부부가 된 이후에 캠퍼스 커플이 된 셈이다.
도시농부가 된 뒤에는 사단법인 도시농업포럼이나 서울특별시도시농업전문가회, 서울특별시시민정원사회 등의 단체를 통해 주로 강사로 활동했다. 그러다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은 올해 초의 일이다.
“아내도 도시농부다 보니 여러 가지 작물을 키워요. 주로 음식이나 차에 쓰이는 허브 종류가 많은데 습한 곳에서 자라는 작물은 옥상정원이나 텃밭에서 키우기 어렵다며 제게 이런저런 주문을 했어요. 그런 아이디어를 모아 부분적으로 작물을 키우는 데 적용하고 있었죠. 그런데 주변에서 서울시에서 하는 도시농업경진대회에 한번 출품해보지 않겠냐고 권유를 하더라고요.”
출품자가 너무 적으면 관련 기관에서 애를 먹을 수도 있어 모르는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가 출품한 것은 다양한 장치를 활용한 아이디어 텃밭. 2층 구조로 설계해 아래쪽에는 햇볕이 직접 닿으면 안 되는 음지식물을 심고 위에는 양지식물을 심는 구조였다. 타이머와 빗물받이를 이용해 우수가 저장되면 식물의 생육에 활용할 수 있게 했다. 한쪽에는 태양전지판을 설치해 보조 조명을 밝히는 전원으로 썼다. 해충기피 식물의 배치도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얻었다. 그의 아이디어 텃밭은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깜짝 놀랐어요. 아내와 주변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것뿐인데. 예전에 기계 관련 사업을 했던 것이 제작에 많은 도움이 됐죠.”
그의 텃밭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최하는 생활원예 중앙경진대회에서도 최우수상에 뽑혔다. 전국의 농촌 출신의 진짜 농부들을 제치고 얻은 도시농부의 쾌거였다.
“도시농업은 저처럼 쉽게 농촌으로 떠나기 힘든 은퇴자들에게 딱 맞는 직종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 있어요. 교육을 다니다 보면 어디서 어떻게 교육을 받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주변에 살펴보면 교육받을 수 있는 기관은 생각보다 많아요. 거기서 한 걸음씩 시작하시면 좋겠습니다.”
“전 삼수생이에요.”
신구대학교 시민정원사 교육과정에서 만난 권옥연(權玉蓮·64)씨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조경가든대학 교육에 참여하려고 몇 번 시도한 끝에 지난해 겨우 수료할 수 있었고, 올해는 심화과정이라 할 수 있는 시민정원사 과정에 참여 중이다.
권씨가 정원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관광 프로그램을 통한 일본 정원 탐방이다. 일본 후쿠오카 등 큐슈 지방의 유명 정원을 돌면서 문화를 접했던 것이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두 번째는 주말에 쉬려고 마련한 양평의 전원주택이다. 이 집이 그를 조경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고 당장 갖게 된 정원이 직접 가꿔야 할 숙제가 됐다.
“일본에서 아름답고 정갈한 정원들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복잡한 머리를 식히며 명상할 수 있는 정원이 있다면 좋겠다 싶었죠. 마련한 전원주택은 정원이 200평이나 돼요. 막상 가꿔보려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체계적으로 먼저 배워보자고 마음먹었죠.”
교육과정은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보람도 컸다고 말한다.
“정원 관리가 몸을 써야 하는 일이잖아요. 요즘처럼 여름에는 땀도 많이 나고 더 힘들어요. 대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니까 건강에는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지난해에는 경기도에서 주최하는 정원박람회에 교육생들과 함께 월가든(벽 형태의 정원)을 제작해 참여했는데, 기획에서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진행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어서 보람 있었어요.”
시민정원사 과정을 공부하며 권씨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정원과 문화가 복합된 공간을 꾸며보는 일이다.
“최근에 최시영 건축가의 파머스대디와 같은 공간들이 주목받고 있잖아요. 저도 제가 그동안 열심히 해왔던 도예나 자수 같은 예술 분야와 접목한 정원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곳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 마니아가 만나 서로에게 전문 분야의 교육을 해주는 문화공간을 꿈꾸고 있어요. 단지 꿈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부지부터 열심히 알아보고 있습니다.”
평생 흙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다가 갑작스레 정원 일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했지만 너무나 맘에 든다는 그는 시니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나이 들면 흙과 꽃이 좋아진다고 하잖아요. 저 역시도 그랬어요. 요새는 정원에 만든 텃밭에서 채소들을 가꿔 먹는 재미도 쏠쏠해요. 또 해질녘에 해먹에 누워 정원을 바라보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죠. 안과의사인 남편은 손이 보배라며 뒷짐만 지고 있어 약이 오르기도 해요. 그래도 노년에 이렇게 바쁘게 지낼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나이에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뭘 하지?’ 하며 방황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몸을 움직여서 건강에도 좋고, 여러 분야 중에 정원을 가꾸는 이 직업을 추천하고 싶어요.”
시민정원사를 꿈꾸는 권옥연씨(上)와 그의 정원(下).
사실 정원사는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직업은 아니다. 좁은 주거 지역에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국내 대도시의 특성상 대다수의 한국인은 정원이 없는 주거 형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저 사다리에 올라 큰 나무의 모양을 전정가위로 다듬는 영화 속 등장인물이 떠오르는 정도다. 그러나 이제는 아파트에서도 작은 정원을 만드는 사람이 많아지고, 공원이나 화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원사는 최근 주목받는 직업이 되고 있다.
콘크리트 빌딩이 빽빽이 들어선 도심 속에 언제부턴가 공원이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실제 숫자로도 확인된다. 올 3월 서울시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서울 시내에 새로 조성된 공원·녹지는 197개로 나타났다. 총 면적은 188만㎡로 여의도공원의 8배와 비슷한 수준이다.
도시 내의 녹지를 넓히려는 목적은 다양하다. 가장 먼저 지역 주민의 심리적 안정이 가장 크다. 실제로 녹지 공간의 유무는 노령층의 뇌 활동에 영향을 준다는 해외의 연구사례도 있고, 올 초 서울대학교 연구진은 녹지가 적은 지역에 살면 고지혈증에 걸릴 가능성이 1.5배 높다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도심의 폭염이나 열대야와 관련이 있는 열섬현상을 막기 위해서도 녹지를 계속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녹지 공간의 확대는 결국 관리 인력의 수요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데 그 직업이 바로 정원사다.
각 지자체에서 앞다퉈 양성
정원사에 대한 개념이 최근 들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개인 정원이나 공공기관의 녹지공간을 관리해주는 개념이 컸다. 조경은 건설과 함께 이뤄지고 정원사는 관리만 한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최근 정원사의 업무 범위가 넓어졌다. 경기도와 함께 시민정원사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신구대학교 식물원 박종수 과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최근에는 정원사의 개념이 확대돼 정원 조성을 위한 디자인과 식물의 구성을 기획하고, 식수(植樹)와 관리 능력까지 두루 갖춘 사람을 말하고 있어요. 정원의 디자인만 하는 ‘디자이너’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엔 정원사가 모든 과정에 관여하고 있어요.”
도시의 녹지가 늘어나면서 각 지자체에는 시민정원사 혹은 시민가드너 양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역 주민에게 화초 등 식물의 생육에 대한 정보와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대신, 일정시간 이상 자원봉사나 재능기부를 통해 이들을 지역주민을 위한 녹지 공간 형성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경우 특별한 자격증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국가기술자격으로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조경기능사, 원예기능사, 화훼장식기능사가 있다.
최근 함께 각광을 받고 있는 도시농업과는 개념이 다소 다르다. 도시농업이 ‘생산’에 초점을 맞춰 건물 옥상 등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유휴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라면, 정원사는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에 녹지를 구성하는 일을 한다.
이러한 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지자체는 경기도다. 경기도는 2013년 제1기 시민정원사 84명의 인증을 시작으로 경기도 시민정원사 인증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경기도는 오는 2023년까지 3000명의 시민정원사를 배출할 계획이다.
경기도에서 시민정원사가 되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기본 교육과정인 조경가든대학을 이수하거나 대학에서 관련학과를 졸업해야 지원이 가능하다. 대신 경기도민에게는 75만원의 교육비 중 50만원을 지자체에서 지원한다. 시민정원사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년간 96시간의 자원봉사에 참여해야 한다.
이들은 수료 후 지자체에서 관리가 필요한 녹지로 파견돼 자원봉사를 하게 된다. 일부 교육기관에 조성된 ‘학교숲’이나 마을의 공한지나 자투리땅의 공원화 등에 참여한다. 땅의 공원화는 범죄율을 낮추는데도 도움이 돼 각 지자체에서는 공원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식물의 식생에 관한 교육이 청소년의 교화에도 긍정적 역할을 해서, 전북경찰청 등 일부 기관에선 지역 교육기관과 함께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시민정원사 혹은 시민가드너 교육과정은 지자체별로 조금씩 다르다. 각 지자체별로 호칭도 다르고 교육시간이나 운영방식도 지역 현실에 맞추다 보니 제각각이다. 그러나 지역에 자원봉사 형태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대부분 비슷하다.
교육 후 소득 기대는 아직 ‘흐림’
화초의 재배나 관리 등은 시니어의 주된 관심 분야이다 보니 실제 교육과정에서도 수강생들이 대부분 은퇴자들이다. 한 지자체 교육 담당자는 “정원을 가지고 있는 참가자가 많다 보니 독특한 교육문화가 형성되고, 커뮤니티의 결속력도 상당합니다”라고 말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경쟁률이 높은 곳도 있다. 일부 지자체는 경쟁률이 2대 1에서 3대 1가량이나 되어 교육생보다 대기자 수가 더 많다. 재수, 삼수가 기본인 곳도 있다.
박종수 과장은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정원사가 되기 위해서는 1년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이기 때문이죠. 또 아름다운 정원을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꽃의 크기, 키, 화색(花色)까지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원에 흔하게 심는 팬지만 해도 50종이 넘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교육 효과는 상당하다. 정원사 교육은 생활 속에서 활용이 쉽기 때문에 개인 정원에서 화초부터 실습해볼 수 있다. 또 심리적 변화는 덤이라고 귀띔한다.
앞으로 정원사의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기본적으로 녹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데다 다양한 활용 방안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 각 지자체에서 도시정원사 자격을 앞다퉈 도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는 대구시의회에서도 시민정원사 인증제 도입이 발의된 상태다.
문제는 시민정원사를 바라보는 지자체의 시선이다. 늘어나는 녹지나 공원에 비해 관리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한정된 예산으로 ‘열정페이’만을 강요하는 구조로 정책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대부분의 작업을 자원봉사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결과적으로 직업으로서 정원사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현장의 교육 관계자들도 아직까지 취업이나 창업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수목관리자로 일부 취업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일자리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소수이지만 화초 판매와 생육 방법 교육을 함께하는 플라워카페를 창업하는 사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