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계의 개그맨’ 박민수(50) 씨는 순수한 광기를 지닌 유쾌한 인물로 보이지만 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돈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면 못 할 게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이 땅의 아버지다. 쌍둥이 아들을 위해 은퇴도 미뤘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절실하게 하는 중이다.
여의도 증권 유관기관 24년 차 직장인이자 주식투자 1타 강사. 샌드타이거샤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그리고 구독자 225만 명을 자랑하는 이말년 작가의 유튜브 채널 ‘침착맨’에서 인지도까지 쌓아 올린 사나이. 박민수 씨와 마주하기 전에는 능력 있는 직장인의 흔한 성공 스토리로 보였다. 주식투자에 성공하면서 업계에 이름을 알린 뒤 실타래 풀리듯 각종 섭외 대상이 되는, 우리네에겐 무척 어렵지만 그 동네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줄 알았다. 그래서 50대에도 해맑은 미소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만나보면 다르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어쩌다 보니 재미를 주는 캐릭터가 됐는데, 사실 평소에 저는 굉장히 침착해요.”
차분한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더 의외였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운이라고 여겼던 영역마다 박민수 씨의 의도와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을 위해서, 쓸모를 찾아서
직장인은 사표를 가슴속에 품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 박민수 씨도 그렇다. ‘쓸모’라는 말을 유독 좋아하는 그에게 나이 들어 쓸모없어질 수 있다는 건 실체적 불안 그 이상이었다. “쉰 살이 되기 6~7년 전부터 회사에서의 내 쓸모가 줄어들겠다는 느낌이 왔어요. 회사 밖에서의 쓸모가 비자발적으로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고요. 쉽게 말해 나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거죠. 언젠가 생길 일을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가족을 어떻게 먹여살릴까’ 생각하면 엄청나게 절실해지는 거죠. 굶기면 안 되잖아요?”
박민수 씨는 고3처럼 살아가고 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주식투자 뉴스를 정리해서 네이버 카페에 올리고, 직장으로 가 오전 9시부터 오후 6~7시까지 업무를 본다. 운동 삼아 가급적 목동 집까지 1시간 30여 분 걸어서 퇴근하고, 오후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글쓰기 등 자기계발을 한다. 라디오나 유튜브 촬영이 있을 때면 꼬박 며칠을 준비에 매달리기도 한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지만 루틴에 변함은 없다. “절실함이 원동력인 것 같아요. 가족이 있잖아요. 책임감인지 의무감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가족이라는 존재가 굉장히 에너지를 올려줘요.”
40대 초반까지 그는 쓸모를 회사 안에서만 찾았다. 밤샘 야근을 마다하지 않았고, 술은 마시지도 못하면서 회식 자리는 꼭 참석했다. 그렇게 ‘에이스’라 불리며 승진이 동기보다 2년 이상 빨랐지만, 몸은 정직했다.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2018년에 협심증으로 쓰러졌어요. 그때 또 한 번 이런 일이 있으면 큰일 난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습니다. 당시 쌍둥이가 초등학생이었어요. 중환자실에 누워서 본 두 아이의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내가 이 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해야 할 게 있더라고요.”
박민수 씨는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른여섯에 “넌 뭘 잘하니?”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불현듯 ‘주식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이후 점심도 굶어가며 주식 공부에 매달려 7년 만에 종잣돈 3000만 원을 8억 원으로 불렸다. 그 노하우를 아이들에게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내가 죽으면 아이들이 물려받을 텐데, 아직 어리잖아요. 쓸데없는 짓 해서 다 까먹을까 봐 걱정되는 거죠. 아빠만의 투자 방법과 원칙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루에 3시간 자면서 3주 동안 쓰니 책 한 권 분량이 됐어요.”
2018년 9월 출간돼 현재까지 10만 부 이상 팔린 ‘주식 공부 5일 완성’은 이렇게 완성됐다. “인쇄소 가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려 했는데, 사장님이 그러더라고요. ‘내용이 좋으니까 책을 내보라’고요. 그래서 진짜 투고를 해봤어요. 당연히 안 되죠. 그런데 임프린트(한 출판사에 속한 별도의 하위 브랜드)에 원고가 흘러갔나 봐요. 마침 대표가 증권사 경험이 있는 분이라 가치를 알아봤고 출간이 이뤄졌어요.”
책은 2020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대형 재테크 유튜브 채널 ‘신사임당’ 출연이 결정적이었다. 그 계기는 한 통의 메일에서 시작됐다. “제가 먼저 출연 요청을 했습니다. 답변은 2개월 후에 받았어요. 촬영 후 업로드까지 다시 2개월이 걸렸고요. 그리고 다음 날부터 소위 말해 빵 터졌죠. 인생 역전이었습니다.” 또 다른 유명 재테크 유튜브 채널 ‘김작가TV’ 출연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문의했고, 정중히 고사하자 재차 어필해 출연 기회를 얻었다. 그 6개월 사이 책 7만여 권이 팔렸다.
최고민수, 침착맨을 만나다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은 의외의 보상을 줬다. ‘침착맨’ 이말년 작가와의 인연이다. 박민수 씨는 2021년 초 MBC 웹예능 전문 유튜브 채널 ‘M드로메다 스튜디오’의 기획 시리즈 ‘말년을 행복하게’에 일일 주식투자 강사로 출연하며 ‘침착맨’과 안면을 텄다. ‘최고민수’라는 애칭도 그때 생겼다. ‘주식계 박찬호’라는 설명이 붙을 만큼 지치지 않는 열강에 ‘침착맨’이 “최고네요, 선생님. 닉네임도 바꾸세요, 최고민수”라고 하면서다.
인연은 ‘침착맨’ 채널까지 이어졌다. 7번 정도 출연했고, 그중 한 콘텐츠는 100만 뷰가 넘었다. “본인 채널에 와서 주식 강의를 1~2시간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실수를 했어요. 주식 강사로 섭외된 자리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만 한 거예요.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 등등 걷잡을 수 없이 말이 새버렸어요. 6시간 방송을 했는데 정작 주식 강의는 20~30분에 불과했죠. 집에 가면서 무지 걱정했어요. 욕먹을 각오를 했는데, 감사하게도 신선하게 봐주셨어요.”
콘텐츠에 대한 열의와 쉬지 않는 입은 이제 박민수 씨의 캐릭터가 됐다. 경제사 특강, 주식 종목 고르는 10단계 특강, 주식 ETF 투자법 7단계 특강 등 평균 6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방송은 그 이미지를 굳혔다. 10시간 42분짜리 일본 기타큐슈 여행 브이로그는 그 정수로 꼽힌다. 박민수 씨는 한시도 말을 쉬지 않았고, 구독자는 그 모습을 오롯이 즐겼다. 영상은 90만 뷰를 기록 중이다.
“기타큐슈 여행 브이로그로 인지도가 굉장히 올라갔어요. 어쩌다 보니 재미를 주는 캐릭터가 됐는데, 사실 굉장히 열심히 준비해 가는 사람이에요. 말했잖아요, 저는 ‘쓸모’가 중요한 사람이라고요. 출연 전 일주일 정도 준비에 매달려요. 기타큐슈 여행도 정말 많이 준비했어요. 실은 항일 투어로 계획한 거라 일본 역사까지 속속들이 공부했죠. 내 밥값을 다하기 위해, 내 쓸모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앞으로 3년, 은퇴 후는 내 마음대로
박민수 씨는 3년 뒤 은퇴를 꿈꾸고 있다. 그때가 되면 가장의 부담을 다소 내려놓아도 괜찮을 시점이기 때문이다. “3년 뒤면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됩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직장인 신분을 유지할 생각이에요. 아빠 이야기가 나왔는데 제가 집에서 쉬고 있는 상황이면 아이들이 움츠러들지 않을까 해서요. 지금은 월급이 소중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은퇴하면 2년 정도 저도 질풍노도의 시기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또 다른 일을 할 텐데 그게 잘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3년 정도 여유를 두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때까지 준비를 잘 해야죠.”
앞으로 3년, 그는 망가질 준비가 돼 있다. 내성적이지만 가장이라는 무게는 개인 성향을 뛰어넘는다고 말한다. 그는 아예 스스로를 ‘주식계 개그맨’으로 포지셔닝할 정도다. “다들 그래요. 얼굴 내놓고는 못 하겠다고요. 그런데 가장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거예요. 너무 직설적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저는 어떤 것도 할 수 있어요. 카메라 앞에서 웃고 떠드는 일이 쉽지 않아요. 그런데 절실하면 부끄러운 거 없습니다. 일단 하는 거예요. 은퇴를 꿈꾼다면 더욱더요.”
은퇴 후 박민수 씨는 ‘침착맨’ 같은 삶을 꿈꾼다. 예능 PD를 꿈꾸며 방송국 최종 면접까지 본 경험이 있는 그다. 제2의 인생은 보다 즐겁고 자유로운 나날로 채워지길 바라고 있다. 그가 기획하는 프로그램은 ‘최고민수의 중2병’. 박민수 씨는 3년 뒤 유쾌한 방황을 예고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여행 유튜버예요. 지난해 빠니보틀(구독자 190만 명의 여행 유튜버)님도 만났어요. 회사를 그만두면, 그때는 진짜 내 맘대로 막 삐뚤어져보고 싶어요.”
2022년 11월 공개된 ‘ChatGPT’(챗GPT)는 출시 일주일 만에 사용자 100만 명을 넘으며 광풍을 일으켰다. 현재 글로벌 검색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구글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는 ‘Google is done’(구글은 끝났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챗GPT로 대표되는 대화형 인공지능이 구글을 대체할 수 있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스마트폰의 등장처럼 챗GPT도 우리 일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오픈 에이아이(OpenAI)가 개발한 GPT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문장과 글을 생성할 수 있게 만들어진 인공지능(AI)이다. 2018년 GPT-1 출시 이후 GPT-2, GPT-3로 꾸준히 버전을 높여왔다. 지난해 11월 GPT-3.5에 해당하는 챗GPT를 공개했으며, 이후 4개월 만에 성능을 개선한 GPT-4 버전의 차세대 모델까지 선보였다.
챗GPT는 로봇과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서비스다. 언어 능력에 특화돼 있어 사용자가 대화창에 질문을 입력하면 그에 맞춰 로봇이 다양한 답변을 내놓는다. 기존 대화형 AI는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문법과 맞춤법을 완벽하게 구사하거나 언어의 특성과 해석의 차이를 구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동문서답을 하거나 아예 답변을 도출하지 못해 활용 범위가 제한적이었던 반면, 챗GPT는 대화의 숨은 맥락을 이해하고 이전 대화를 기억하며 답변해 마치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졸업 논문, 회사 시말서, 제안서도 OK
챗GPT는 미국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SAT 읽기 및 쓰기와 수학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의사·변호사 시험을 가뿐히 통과했다. 뛰어난 지능 덕인지 수행할 수 있는 업무도 다양하다. 기사, 논문, 법원의 판결문뿐 아니라 의회에 제출할 법안 초안도 작성한다. 국내에서는 챗GPT가 쓴 책들이 잇달아 출간됐다. 책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은 기획안과 목차를 제외한 모든 내용을 챗GPT가 직접 쓰고, 편집과 교열 작업까지 완료하는 데 단 30시간이 걸렸다.
챗GPT의 출시 이후 실생활에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챗GPT로 시말서를 작성했다는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자세한 내용을 보면 챗GPT는 “저는 이번 일로 인해 회사의 정책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라며 “무심코 생각 없이 행동을 하게 된 것이지만,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고 서술했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회사 내부의 정책과 규정을 충분히 숙지하고 그에 맞게 행동할 것을 다짐한다”며 “앞으로 회사의 이익과 안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경각심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겠다. 회사와 동료들에게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라고 마무리했다. 누리꾼들은 사람이 작성한 결과물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반응을 보였다.
챗GPT 똑똑하게 활용하자
챗GPT의 문장은 깔끔하고 정갈하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한다. 이용자가 입력한 질문에 대해 학습된 데이터가 없을 경우, 그 내용 자체가 틀렸을지라도 해당 정보를 기반으로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기 때문이다. GPT-3.5 버전에서는 ‘신사임당이 이순신의 아내’라든가, ‘티타늄 전차가 조선 중기에 사용됐다’는 등의 황당한 이야기를 성의 있게 답변한다. “이순신 장군이 고종의 옷에 커피를 쏟은 사건에 대해 알려줘”라는 질문을 하면 “이순신 장군이 고종의 옷에 커피를 쏟은 사건은 유명한 역사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대한제국 말기인 1896년에 일어난 일로, 당시 고종은 이순신 장군을 모시고 국사조사를 하던 중 이순신 장군이 실수로 고종의 옷에 커피를 쏟았습니다. 이때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으며, 이후 둘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습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결국 AI 답변의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건 사용자의 몫이다.
즉 챗GPT는 잘 아는 정보를 요약하거나 정리하는 용도에는 적합할 수 있지만,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한 사실을 묻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용자가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따라 답변의 수준도 현저히 달라진다. 얻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요구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50대 배우자와 갈 만한, 물가가 비싸지 않고 골프장이 많은 여행지는 어디야?”와 같이 명확한 지시와 완결된 문장으로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 질문을 거듭해도 뾰족한 정보를 얻을 수 없을 때는 한글보다 영어로 지시하면 더 깔끔한 답변을 얻을 수 있다. 챗GPT는 영어에 조금 더 최적화돼 있다.
유명세에 따른 사칭 사이트 증가
챗GPT에 관심이 생긴다면 한 번쯤 사용해보는 것도 좋지만, 사칭하는 사이트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스마트폰으로 앱을 다운받기 위해 플레이 스토어에 들어가 ‘챗GPT’를 검색하면 유사한 명칭의 앱이 존재한다. 하지만 오픈 에이아이가 개발한 공식 앱은 아직 출시되지 않은 상태다.
실제로 챗GPT와 같은 해외 유명 사이트와 비슷한 이름의 사이트 혹은 앱으로 유도해 카드 정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었다. 금융감독원은 카드 정보 유출 피해를 막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전체 숫자, 카드 비밀번호 네 자리 등의 개인정보 입력을 요구하면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카드 정보 유출이 의심되면 불편하더라도 카드 사용을 정지하고, 재발급받아 부정 사용을 차단하는 것이 안전하다.
오픈 에이아이에서 개발한 챗GPT를 체험해보고 싶다면 ‘openai.com/blog/chatgpt’로 이동해야 한다. 우선 회원가입을 통해 계정을 등록하고, 화면 하단에 있는 입력 칸에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입력하면 된다. 또는 ‘에지 브라우저’를 통해 검색 엔진 ‘www.bing.com’에 접속한 뒤 왼쪽 상단의 ‘채팅’ 버튼을 누른다. 계정을 생성하고 로그인하면 채팅을 시작할 수 있다. 검색창에 궁금한 점을 입력하면 해당 내용과 관련한 AI의 답변이 검색 페이지 오른쪽에 나타난다. 답변을 보고 온라인 출처를 자세히 검증하거나, 더 구체적인 자료를 얻을 수 있다.
2007년 전통복식 분야 1호 유희경 박사의 집에 신사임당 초상을 그리기로 한 이종상 화백과 한국조폐공사 관계자, 석주선 단국대 기념박물관장 등이 모였다. 5만 원 지폐에 넣을 신사임당을 그리기 위해서다. 이날 신사임당의 초상 모델이 바로 임수빈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장이다. 어딘지 모르게 닮은 선한 눈매와 은은한 미소를 가진 그를 만나 고전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상에, 정말 이런 머리를 하고 살았을까?’
고전머리 미용대회를 준비하던 30대 늦깎이 학생은 머리를 올리다 말고 생각에 잠겼다. 대회에 출품된 화려하고 다양한 고전머리 스타일이 신비로워 보였다. 고전머리의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다. 1999년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미용실을 운영하던 임수빈 협회장은 미용을 더 알고 싶었다. 파마약을 바르면 왜 머리가 구불구불한 채로 모양이 잡히는지, 머리카락 속 단백질과 미용 약품 사이에 어떤 화학작용이 발생하는 건지 원리를 알고 싶었다. 2005년 국제대학교 피부미용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해 서경대 미용예술학과에서 불화에 표현된 고전머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궁금한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니 세월 흘러가는 줄 모르고 젖어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하래도 못 할 것 같아요.(웃음) 과거에도 지금도 고전머리를 하나의 학문으로 가르치는 곳은 없어요. 한복만큼 전통 가치가 지켜지고 있지 않아 아쉽습니다.”
K-헤어의 뿌리를 찾아서
어디에서도 고전머리를 배울 수가 없어 임 회장은 역사책을 뒤져가며 스스로 공부했다. 그는 고전머리야말로 현대 미용의 뿌리라고 했다. 고전머리는 청동기, 상고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도자기 항아리나 벽화 등에 그려진 여성을 통해 머리 모양을 추론할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서민들은 쪽머리, 댕기머리, 둘레머리, 얹은머리 형태를 고수했다. 왕족이나 귀족은 시대에 따라 복식과 머리가 바뀌었다. 조선시대에는 소 한 마리 값에 맞먹어 부의 상징이 되어버린 가체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개화기에 우리 전통 고전머리가 사라졌어요. 역사적으로 쪽머리는 기생이 할 수 없는 머리예요. 용, 봉, 개구리 등으로 품계를 나타냈던 첩지머리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개화기에 나라도 잃고 신분을 나누던 품계도 사라지면서 무거운 머리를 풀어헤치고 기생들이 쪽머리와 첩지머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신여성이 등장했고, 서양에서 들어온 머리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고전머리는 유야무야 사라지다시피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실은 1933년 화신백화점 미용부에서 시작됐다. 최초의 조선인 미용사 오엽주가 시초다. 이 최초의 미용실이 우리나라 미용 역사의 시작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임수빈 회장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오다 개화기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우리 머리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5천 년이라는 우리 고유의 머리 역사와 뿌리가 있는데도, 오엽주 미용사의 신여성 머리 스타일만 남은 거예요. 그런데 미용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이 뿌리부터 배우는 게 정석 아닐까요?”
고전머리에는 우리의 역사가 그대로 녹아 있다. 한복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것처럼 머리 스타일도, 장신구도 역사에 따라 달라졌다. 한복에 관해서는 연구가 활발하고 이를 전통으로 지키려는 노력도 하지만, 고전머리에는 그 관심이 이어지지 않아 못내 아쉬웠다.
미용은 ‘학문’이 될 수 없을까?
임수빈 회장은 미용을 ‘과학’이라고 말했다. 미용을 전공하는 많은 학생들이 이르면 중학생 때부터 미용을 배운다.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그는 기술을 넘어 미용의 원리와 뿌리를 알고 싶었다.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으면 더 깊이 있는 배움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기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기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머리의 역사에 대한 연구, 미용의 과학적 부분에 대한 연구, 조금 더 학문적인 연구를 통해서 미용의 질을 높이고 싶었어요.”
각종 불화와 문헌을 뒤져 고전머리를 연구하던 임수빈 회장은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5천 년 역사 속 장황하게 흩어져 있던 고전머리 자료를 모으고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해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귀족·사대부·천민들이 쓰는 장신구, 비녀, 꽂이, 장신구별 의미, 상징 등을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문헌 속 고전머리를 전통 방식에 맞게 재현하고 트렌드에 맞춘 퓨전머리도 디자인했다. 이 내용을 학생들이 더 이해하기 쉽게 ‘고전머리교실 : 이론과 실습’으로 펴냈다.
머리 스타일에 빠질 수 없는 게 장신구다. 또 복장과 머리 스타일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인터뷰를 하면서 머리 장식에 대해 묻자 협회 곳곳에서 최소 100년 넘은 온갖 장신구들이 나왔다. 임 회장의 할머니가 사용했다는 청색 족두리와 담비털 모자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에도 등장했다. 거실 액자 속에 늘 걸려 있었다는 담비털 모자는 구한말 할머님이 사용하시던 것이라고. 임수빈 회장이 고전머리에 매력을 느꼈던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트레머리가 없어지고 쪽머리가 정착되면서 비녀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어요. 서민들이 쓰던 비녀도 새겨진 무늬가 다 달라요. 천연 옥비녀에는 특유의 고운 빛깔과 흉내 내기 어려운 정교한 조각이 새겨져 있죠. 천연 옥의 종류도 이렇게나 다양해요. 여름에는 옥 소재 비녀를 많이 쓰고 겨울에는 따뜻한 소재를 썼죠. 뒤꽂이 종류도 무척 많아요. 주로 매미, 벌, 꽃, 나비 등이 소재로 쓰였죠. 조선시대에는 생콩을 빻아서 조롱박에 담아 세면대에 두었다가 세안할 때 비누 대신 콩을 비벼 사용했어요. 그러면 콩 비린내가 남거든요. 그래서 향주머니를 차고 다닌 거죠. 이 매미 모양의 향주머니는 매우 드문 거예요.”
고전머리는 머리 장식, 의복, 의복에 쓰이던 장신구까지 모두 이어져 있고, 각 시대상을 반영한다. 이렇게 역사 이야기와 임 회장이 그동안 수집한 온갖 장신구를 직접 눈앞에 펼쳐두고 강의를 하니 학생들은 그의 수업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머리에 몰입한 20년이라는 시간
고전머리를 더 많이 알리기 위해 그는 2012년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를 세웠다. 10여 년 동안 임 회장은협회비를 받지 않고 개인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협회를 운영했다. 더 많은 이들이 고전머리 관련 활동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더 많은 미용사가 고전머리의 매력을 알고 자신의 가치를 높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고전가체 예능사 1~3급 자격제도를 만들었다. “고전머리도 머리를 만지는 일이기 때문에 미용 자격증이 반드시 있어야 해요. 미용 관련 국가자격증이 여러 가지인데 고전머리 자격증은 없거든요. 수익사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하고 싶어 만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오색단장, 수빈헤어&메이크업, 한국방송협회 일을 현업에서 계속하다 보니 자격제도를 만들어놓고도 제대로 활성화시키지 못했어요. 그러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추면서 저를 재정비하게 됐죠. 미용하는 분들이 고전머리를 통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지면 좋겠어요. 미용인의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혼자 개척해나가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고전머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제대로 고증되지 않은 고전머리 정보를 퍼트릴 때면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고민하기도 했다. 게다가 아무리 궁금한 게 많아 공부가 즐거웠다 해도, 매일 역사서를 들여다보며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몸은 서울에 있지만 마치 과거에 사는 느낌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기왕 여기까지 온 것, 조금만 더 해서 학생들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는 하나는 만들어두고 그만두자’고 마음을 달랬다.
미용을 시작한 후 20년을 온전히 고전머리에 몰입해 살았다. 처음 수빈헤어&메이크업을 열었을 때는 손님 한 명 보기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주말이면 고전머리를 하려는 손님들이 줄을 선다. 임 회장이 반한 고전머리의 매력을 알아본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난 것. 이제는 ‘고전머리’ 하면 많은 이들이 임수빈 회장을 떠올린다. 그럴 때 그는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보람을 느낀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임수빈 회장은 우리나라 가체장 1호 명장이 됐으며, 2019년에는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문화예술부문 한국전통문화최우수공로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2021년에는 한국예술문화명인 인증을 받았다.
고전머리가 K-헤어 트렌드
임수빈 회장은 복장과 헤어의 어울림을 강조한다. 전통 한복이라면 전통 고전머리를, 퓨전 한복이라면 퓨전 고전머리로 꾸며야 한다는 것. 전통 고전머리를 응용하면 한국식 현대 스타일을 무궁무진하게 창작할 수 있다. 고전머리야말로 현대 미용의 뿌리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요즘 흔하게 하는 ‘당고머리’는 ‘쪽머리’가 원조다. 쪽머리는 비녀가 없던 시절부터 해오던 머리 스타일이다. 항공사 승무원들의 머리 스타일은 ‘벼머리’에서 시작됐다. ‘포니테일’이라고 불리는 묶음머리는 ‘후두부로 흩어진 머리’라는 고전머리에서 출발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머리는 5:5 가르마예요. 우리나라의 기본 스타일이죠. 과거 여인들도 모두 반머리를 했어요. 우리가 반묶음을 하는 것처럼요. 다만 그것을 장식하는 장신구가 바뀌었을 뿐이에요. 현대의 의복에 맞춰 고전머리 스타일이 현대에 맞게 바뀐 거죠.”
임 회장은 고전머리를 기반으로 한 한국 스타일의 퓨전 헤어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고전머리를 가르쳐주는 곳이 없으니 미용사들도 배워본 적이 없어 응용을 하고 싶어도 몰라서 못 하는 실정을 무척 아쉬워했다. 더 많은 미용사가 고전머리를 배워 자신만의 한국 스타일로 응용하면 그것이야말로 K-헤어가 되는 것 아닐까?
“고전머리가 국가무형문화재가 되는 게 마지막 꿈이에요. 고전머리를 만지는 기술도 서울무형문화재로 함께 인정받으면 금상첨화겠죠. 한복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은 것처럼 고전머리도 우리의 것으로 역사성을 인정받고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합니다.”
박신정 관장은 ‘젊은달 와이파크’ 이전에 강릉 ‘하슬라아트월드’를 만들었다. 남편 최옥영 작가와 함께. 처음엔 ‘하슬라아트월드’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사립미술관에 따개비처럼 들러붙는 게 운영난이라서 하지 말라는 고언이 난무했던 것. ‘젊은달 와이파크’를 추진할 때도 마찬가지였단다. 그러나 박 관장 부부는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어떤 신념이 박 관장을 추동했을까?
“예술가로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컸다. 작품에만 주력하는 작가들과 좀 다른 길이지만, 미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현대미술을 보여주고, 돌아오는 반응과 소통하고 싶다는 건 오래된 꿈이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후미진 시골 동네에 미술관을 열 용기를 내다니.
“미술이란 아름다운 세계가 아닌가?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남들 역시 아름답게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 계산이 아닌 확신, 좋아하는 일에 대한 믿음으로 미술관을 설립했다.”
‘젊은달 와이파크’의 관람 포인트를 얘기한다면?
“미술관에 산재하는 모든 구조물을 하나의 작품으로 즐기면 좋겠다. 최옥영 작가는 이곳의 8000여 평 부지를 통째 오브제로 삼아 대지미술을 구현했다. 특별하기론 ‘레드 파빌리온’이다. 어디에도 없는 구조물이니까. 주변의 자연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프레임이고.”
술샘박물관의 구색이 고루해 아쉽더라.
“영월군이 만든 박물관이라 손댈 수 없다. 첨단 디자인으로 바꾸고 싶지만.”
미술을 즐기는 국내 애호가들은 과거보다 많이 늘었다고 보나?
“애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좋아하는 정도의 사람이라도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웃음)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심지어 미술작품을 그저 아이들 장난감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이지.”
미술을 좋아하는 이가 드물어 사립미술관들이 난항을 겪는 현실. 이를 해소할 방법은 무엇일까?
“미술관 운영자들의 강인한 자립 의지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미술관 두 곳을 운영하는 내겐 원칙이 있다. 외부 환경을 탓할 것 없이 자립하겠다는 게 바로 그렇다. 정말 수익이 없어 벼랑에 몰린다면 문을 닫는 게 순리라는 각오도 다졌다. 예술이 돈이 안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가난에서 영감을 얻겠다는 듯이 돈벌이에 무심한 작가들도 많다.
“마치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수험생처럼 열심히 작업에 몰두한다면 왜 가난하겠나? 모든 삶과 마찬가지로, 예술도 진정 땀을 쏟아야 성취할 수 있다.”
박 관장은 일곱 차례 개인전을 치른 화가다. 주로 작가적 개성과 고집을 가지고 까다로운 작업을 이어왔다. ‘젊은달 와이파크’에 있는 설치작품 ‘시간의 거울-신사임당이 걷던 길’은 다르다. 작풍이 변했다. 한결 쉬워졌다.
“신사임당이 과연 행복하기만 했을까? 시대를 초월해서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아름다운 건 상처의 반영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담은 작품이다.”
모성(母性)의 빛과 그늘에 봉헌한 작품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그는 삼척에 세 번째 미술관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올 연말이면 부분 개관을 한다. 무적함대에 가까운 항진이다.
산수미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곳이 강원도 영월군이다. 서린 역사와 보유한 유적은 또 어떻고? 그저 심심풀이로 여행을 갔다가도 오감 만족으로 기억에 새겨지는 곳이다. 박물관, 문화 공간, 전시장의 합이 자그마치 20여 개이니 말 다 했다. 2019년에 개관한 미술관 ‘젊은달 와이파크’는 개중 등등한 기세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주말이면 수백 명의 관람객으로 북적인다. 한적한 시골 동네에 벌어진 이변이다. 영월 변방 주천면 언덕배기에 있다.
‘젊은달 와이파크’에서 맨 먼저 만나는 건 입구를 이룬 설치작품 ‘붉은 대나무’다. 빨간 페인트를 입힌 수백 개의 기다란 강철 파이프로 작은 대나무 숲을 연출했다. 말이 대나무 숲이지 저만치서 보면 길길이 치솟는 불길을 연상시킨다. 빨강은 열정과 절정의 상징색이다. 욕망과 유혹과 혁명의 표식이기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엄습해 교감신경을 일깨우며 심리적 침체를 털어내게 한다. 그렇다면 ‘붉은 대나무’ 입구를 들어서며 가슴을 빨강으로 물들여 기분을 기차게 돋우라는 권유? 미술관에 차려진 성찬을 포식하기 전에 입맛을 다시라는 애피타이저? 담긴 뜻이 한둘이 아닐 테다.
‘붉은 대나무’를 만든 이는 대지미술을 추구하는 조각가 최옥영이다. 강릉 정동진에 대형 미술관 ‘하슬라아트월드’를 세워 명소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는 내친김에 ‘젊은달 와이파크’를 2차로 설립해 다시 한번 실력을 입증했다. 빨간색은 최옥영의 시그니처 컬러다. ‘붉은 대나무’만이 아니라 미술관의 거대한 파빌리온(가설 건축물)에도 통째 빨강 물감을 쏟아부었다. 파란 하늘, 초록 산야, 그리고 빨강의 선명한 색채 대비가 주는 감흥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라는 뜻에서다.
미술관 본관으로 향하는 야외 동선을 따라 걷는다. 미지근한 일상에서 벗어난 쾌감이 오롯하다. 불면증과 우울증이 서식하는 도시의 권태를 잠시나마 멀리에 뒀으니 이게 어딘가? 미술관 외벽을 이룬 산과 하늘의 표정은 잡티 없이 해맑아 순수하다. 완벽한 회화가 아닐 수 없다. 자연이 그리는 미술을 사람의 예술과 아울러 감상할 수 있다는 건 이 미술관이 지닌 미덕이다. 외부의 자연과 수시로 조우할 수 있도록 건축과 공간을 개방적으로 구성했다.
본관 로비로 들어서자 커피 향이 그윽하다. 매표소를 겸한 카페 공간이다. 미술관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길모퉁이 작은 찻집에서처럼 농밀한 운치를 즐긴다. 시스템 전환이랄까? 요즘 미술관들은 필수 부속처럼 카페를 운영한다. 미술과 커피의 조합이 거두는 효율이 커서다. 미술관은 커피를 팔고 관람객은 한 줌의 낭만을 산다. 커피 한잔과 내 인생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커피를 혀로 굴리며 예술을 생각해보는 잠깐의 휴식은 비루한 삶을 잊게 한다. 일러 ‘소확행’이다.
상상력을 돋우는 ‘목성’
카페에서 전시장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 거대한 돔 안으로 들어선다. 철골빔 뼈대에 일정한 크기로 빠갠 소나무들을 굴비 두름처럼 촘촘히 엮어 쌓은 돔이다. 이 미술관의 설치작품 대부분은 최옥영의 생산물. 대형 나무 돔 역시 그렇다. 타이틀은 ‘목성’(木星)이다. 작가는 우주에 사는 목성이 별똥별처럼 떨어져 내린 이벤트를 상정했나? 그는 나무 무더기를 무수히 쌓아 동굴을 닮은 설치를 하고서 목성을 보라 한다. 광폭의 감성 사이즈로 우주를 느끼라 한다. 그렇다면 ‘목성’은 우주의 축약이며, 신과 우주를 향한 외경을 표출한 고대 로마의 판테온처럼 신성하다. 최옥영의 창작 변을 간추리면 이렇다.
‘무한의 영역인 우주를, 상상의 우주를 조각적 형태로 만들었다. 이는 생명의 분화구를 상징한다. 원초적인 힘과 사랑, 그리고 우주적 활력을 돔 안에 쏟아냈다.’
‘목성’은 대작이다. 높이 15m, 지름 12m에 달하는 원형 구조물이다. 꼭대기엔 휑하게 구멍을 내 하늘을 보게 했다. 늘 거기에 있는 일상의 하늘과 돔의 구멍을 통해 올려다보는 하늘은 달라 상상력을 돋운다. 내가 하늘 아래 존재하는, 또는 하늘과 공존하는 썩 의미 있는 생명체임을 자각하게 한다. 구멍으로 쏟아지는 빛과 나뭇더미 틈새로 들이치는 빛살 역시 일상의 빛을 바라볼 때와 달라 유심히 반추하게 한다. 작가의 의도를 따라 읽자면, 저 빛들의 산란은 우주적 쇼다. 우리가 늘 눈에 달고 사는 빛의 출처가 무한 우주라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우는. 급기야 나 역시 우주에 동참한 하나의 소우주임을 느끼게 한다.
‘목성’을 뒤로하고 이제 오만 가지 조화(造花)를 오브제로 삼은 설치작품 ‘시간의 거울-신사임당이 걷던 길’과 만난다. 박신정(그레이스 박)의 작품이다. 여성을 사회적 타자로 방기한 시대를 살았던 신사임당의 삶과 내면을 칡넝쿨과 꽃, 그리고 거울을 설치해 조형했다. 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은 꽃들의 퍼포먼스에 기뻐 팔짝팔짝 뛰며 인증샷을 찍는다.
박신정은 최옥영의 부인으로 ‘젊은달 와이파크’의 관장이다. 화가 부부의 협연으로 미술관을 구축, 공간 곳곳에 선율과 리듬을 부여한 셈이다. 이곳엔 원래 ‘술샘박물관’이 있었다. 주천면의 유별한 술 문화와 양조 역사를 홍보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운영이 신통치 않아 먼지를 뒤집어쓰고 버려지다시피 한 걸 박신정 부부가 미술관으로 살려냈다. 술 박물관이 시들고 미술관이 꽃 핀 것. 미술관이 생동하면서 숨이 넘어가던 술 박물관도 회생했다. 다시 말해 미술관이 술 박물관을 옆구리에 끼고 동행한다.
‘젊은달 와이파크’의 주조음을 탄주하는 건 어디까지나 최옥영의 작품들이다. 재생타이어 수백 개로 만든 ‘블랙 드래건’, 쓸모를 잃은 널빤지들을 조형해 별의 원초적 에너지를 은유한 ‘우주정원’, 금속 재료로 회오리치는 바람기둥을 만들어 승천하는 용을 상징한 ‘실버 드래건’ 등 다수의 설치작품이 스케일과 볼륨을 과시한다. 그렇다고 난해하지 않다. 뭐가 뭔지 모를 관념의 카오스로 애먼 관람객의 기를 죽이는 현대미술의 경향과 달라 감정이입이 쉽다. 최옥영이 구현하는 대지미술이 자연주의의 계보라는 걸 고려하면 작품 이해가 더 쉽다.
재미있는 미술관이란? 어디서 도무지 보지 못했던 걸 볼 수 있는 미술관? 그렇다면 이 미술관이다. 공간 구성의 핵을 이룬 작품 ‘레드 파빌리온’을 보라. 철제빔과 철판, 쇠 파이프만으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다. 온통 빨강을 칠해 야릇한 미감을 구현했다. 미술관의 랜드마크다. 이 흥미로운 구조물은 전시장이자 통로다. 공중에 걸쳐진 통로 바닥은 숭숭 구멍 뚫린 철판이라 마치 허공을 걷는 듯 묘한 느낌을 준다. 붉은 창살 밖으로는 푸른 자연이 환히 보여 작가의 의도가 비친다. 그는 말하고 싶었나 보다. 하늘, 산, 들판, 마을, 허공에 부유하는 미세먼지, 그리고 사람까지 모두 우주를 이루는 미립자라는 걸.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4월 1일(수)부터 ‘임철순의 즐거운 세상’을 주 1회 온라인 연재합니다. 코로나19로 어둡고 우울한 시대에, 삶의 즐거움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유머로 버무려 함께 나누는 칼럼입니다.
나는 아파트의 힘센 층에 산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교사시인 이장근(1971~ )의 동시 ‘힘센 층’을 읽어보라. “너희 집 몇 층이야/15층//와, 높다//그럼 너희 집은 몇 층이야/1층/2층에서 15층까지/모두 업고 있는/1층이지//와, 힘세다.”
우리 집은 2층부터 25층까지 업고 있으니 힘센 층 정도가 아니라 아주 아주 힘센 층이다. 이 힘센 층에는 잔디 깔린 마당이 있고, 그 둘레에 조붓한 화단과 작은 텃밭도 조성돼 있다. 노란 개나리가 울타리를 이룬 마당에는 지금 할미꽃이 피고, 천리향이 갈수록 향기를 더하고, 동백이 빨갛게 타오르고 있다. 모란은 하루하루 개화를 향해 호흡을 가다듬는 중이다. 좋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외출이 부자유스러운 판에 이런 마당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이건 내 말이 아니라 아내의 코멘트).
그런데 안 좋은 게 있다. 힘이 세지 못한 층에 사는 자들이 자꾸 뭘 버리는 짓거리다. 버리는 건 주로 담배꽁초(담배 끊은 지 15년 돼가는 내가 보기에도 아까운 장초까지 있다)다. 담배꽁초가 창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걸 보면 그냥 던진 게 아니라 손가락에 끼워 탁 튕기는 녀석이 있는 것 같다. 어떤 날은 코를 풀었는지 물을 닦았는지 젖은 휴지도 떨어져 있다.
원래 아파트 공동생활에서 창밖으로 버릴 수 있게 전국적으로 허용되는 건 신사임당 또는 세종대왕이 그려진 현금이나 수표, 아니면 신용카드나 지갑, 좋은 정보가 담긴 usb, 읽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 또 뭐 없나, 하여간 이런 것들인데 뭘 모르는 몰상식한 자들이 엉뚱한 걸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쓰레기 버리지 말라고 아파트 입구 게시판에 써 붙였다. 똑같은 피해를 당하고 있는 우리 옆집도 버려진 담배꽁초를 모아 사진 찍어서 게시하기도 했다. 잠시 효과가 있나 했더니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원래 힘이 없는 자들은 제 몸 하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내가 그런 걸 치우면서 욕까지 해댔으니 저주를 받아서 심신이 더 미약해졌겠지. 속으로 ‘코로나나 걸려라’ 그러다가 ‘아차, 그러면 나까지 피해를 보게 되지’ 하고 얼른 철회한 적도 있다.
하루는 마당에 콘돔이 떨어져 있었다. 제 역할을 충실히 했는지, 내용물이 그대로 들어 있는 콘돔이었다. 세상에 이런 못된 놈이 있나. 암이나 걸려 뒈지라고 욕하며 집게로 집어서 마당 밖으로 휙 던졌다. 그런데 평소 훈련이 부족한 탓인지 울타리 안의 매화나무 꼭대기에 걸리고 말았다. 이걸 어째. 나무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올라가 떼어내기는 어려운 높이다.
어쩔 수 없지 싶어서 그대로 두었더니 태풍성 강풍이 분 탓인지, 덕분인지 어느 날 아침에 살펴보니 콘돔이 사라지고 없었다. 암 그러면 그렇지, 순결한 우리 매화가 그런 걸 받아들일 리가 있나. 온몸으로 거부했을 거야.
그런데 그 뒤로 매화가 시름시름 앓는 것 같더니 어느새 꽃이 다 지고 말았다. 이건 콘돔 독 때문인 게 분명해. 한겨울 추위를 이기며 선비의 매운 지조를 보여주듯 꿋꿋하게 피어난 매화가 이렇게 빨리 질 리 없어. 혹시 내년에 나무에 콘돔이 열리거나 콘돔 꽃이 피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매화가 지더니 그 뒤편의 울타리 밖 목련이 한껏 힘껏 얼굴을 펴고, 땅에서는 옥잠화 더덕이 청청하고 올곧게 머리를 쳐들고 일어서고 있다. 모란과 장미를 좋아하는 아내는 어서 모란(아내는 사실 모란보다 목단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이 피기를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하루하루 챙기고 있다.
이 마당 안팎에 있는 꽃이나 생명들아, 더 피어라 더 활짝, 더 아름답고 더 환하게. 이 아름답고 이쁜 것들 위로 차마 지저분하고 더러운 걸 버릴 엄두도 나지 않게. 힘센 층은 땅심도 세다. 이 마당엔 지렁이도, 땅강아지도, 무당벌레도 산다, 이 못된 것들아!
임철순 약력
서울 보성고, 고려대 독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역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등 수상. 저서 ‘손들지 않는 기자들’, ‘노래도 늙는구나’ 등. 대한민국서예대전 5회 입선.
우리나라에 위조지폐 감별 전문가가 몇 명 안 되던 시절,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은행에 위폐를 감별할 수 있는 직원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그는 자존심이 상했다. 매년 외화 감별 수수료로 나가는 돈도 수십 억 원이나 됐다. 오기가 발동해 공부를 시작했지만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이었다. 작은 정보라도 얻으려 찾아가면 문전박대만 당하고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그러기를 3년 여. 신도섭(申道燮·53) 씨의 독학(獨學)은 마침내 결실을 맺는다. 외화 위폐감별 능력에 있어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HSBC 은행의 최종 테스트 통과. 국내 최초의 자격이었다.
신도섭 씨를 만나러 가기 전날, 영화 한 편을 봤다.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희대의 사기꾼을 그린 영화였다. 수백 만 달러의 수표 위조범으로 악명을 떨친 주인공이 뛰어난 위조 수표 감별 능력으로 FBI에서 위조 수표 감별사로 일하게 되고, 위조 방지 수표까지 개발해 매년 수백만 달러의 로열티를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실화라는데 마치 잘 지어낸 거짓말 같은 영화였다. 위폐감별이라는 특별한 직업을 가진 전문가를 만나는 만큼 뭔가 특별한 장면이 펼쳐지길 기대하면서 그가 근무하는 상암동으로 갔다.
보안이 엄격한 곳이라 그런지 출입이 매우 까다로웠다. 신분증 제출은 물론 사진 촬영도 못하도록 휴대폰 카메라에 테이프까지 붙였다. 안으로 들어가서도 한 번 더 신분 확인을 받고, 마지막 관문까지 통과하고 나서야 그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좀 번거로우셨죠? 이 회사에서 29년을 근무한 저도 매일 네 번의 관문을 거칩니다.(웃음)”
수십억 원 수수료가 아까워 시작한 도전
곧 그가 일하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 각국의 화폐가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었고 그 아래 위폐감별기 몇 대와 확대경, 지폐를 담는 작은 바구니 등이 놓여 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는 소박한(?) 풍경이었다. 그때 그가 10여 개의 바늘이 꽂힌 스펀지를 들고 오더니 책상 위에 턱 올려놨다. 분명 옷을 꿰매는 크고 작은 바늘들이었다.
“바늘로 위폐를 감별하는 사람은 아마 저밖에 없을 겁니다. 이래봬도 낡은 화폐를 감별하는 데는 그만입니다. 몇십 년 동안 시중에서 유통된 돈은 보안요소가 닳아 없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는 지폐 속까지 뜯어 보안요소를 찾아야 하는데 이 바늘로 들춰보면서 지질의 상태를 확인하는 거죠.”
비밀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전문가의 설명은 흥미로웠다. 함께 있던 동료가 금융계의 허준이라 해서 좌중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가 이 길로 들어선 건 2006년. 우리나라에 감별사가 몇 명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외화 출납업무를 담당하다가 감별 수수료로 나가는 돈이 매년 수십 억 원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우리가 위폐 감별 능력을 갖추면 절감할 수 있는 돈이었어요. 너무 아까웠죠. 제가 공부를 해보겠다니까 주변에서 말렸어요. 노하우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참고할 만한 자료도 전혀 없는 상황이었으니 결과가 뻔해 보였겠죠. 당시 국내에서 인정받았던 감별사는 외환은행의 서태석 씨 한 명이었어요. 그분을 몇 번 찾아갔지요. 도움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분 입장이 이해가 됐어요. 저라도 그랬을 거예요.”
1차 심사에서 바로 합격
화두를 잡고 씨름을 하듯 그는 매일 지폐를 붙들고 늘어졌다. 그러나 진폐와 위폐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초정밀위폐 앞에서 두 손 두 발 들 때가 많았다. 그럴수록 오기가 발동했다. 어느 날은 국정원 다니는 지인을 찾아가 최근 발견된 위조지폐가 있으면 며칠만 빌려 달라고 애원을 했다.
“ HSBC 은행으로 연수 갔을 때도 문밖에 죽치고 앉아 기술자를 기다렸어요. 뭐라도 좀 얻어갈까 해서요. 처음에는 안 가르쳐주더라고요.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계속 찾아갔더니 슈퍼노트(정밀하게 위조된 100달러짜리 위조지폐) 감별 노하우를 몇 개 알려주더군요. 돌아와서 제가 찾은 방법들과 믹스해봤죠. 비로소 자신감이 붙더군요.”
HSBC 은행에서 위폐감별 최종 테스트를 받던 날, 그의 손에는 달러 뭉치 200장이 들렸다. 심사위원은 30분 안에 감별하라는 주문을 하고 나가버렸다. 아무 도구도 없이 순전히 감각으로만 식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떨어질 각오를 했는데도 진땀이 났다. 얼마 후 그가 감별한 지폐들이 시험대 위에 올랐다. 심사위원은 “음 맞네, 맞네” 하더니 “어? 이건 진짠데?” 하면서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
“순간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어요. 속으로 ‘난 떨어졌구나’ 했죠. 그래도 끝까지 정신을 차리고 위폐로 처리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음 날 인증을 해주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 감별이 맞았는데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려고 그랬다더군요.”
하루에 수백 장 감별, 실수한 적 없다
하루 300~400장의 위폐 의심 화폐가 그의 손을 거쳐 간다. 10여 년간 감별한 금액이 3조원 정도 되지만 그는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다고 했다.
“위폐를 감별할 때면 오감을 동원합니다. 색깔을 확인하고, 만져보고, 냄새를 맡고, 손가락으로 톡톡 치면서 소리도 들어봅니다. 위생 문제만 아니라면 맛도 볼 수 있어요.(웃음) 특히 지문은 인간이 가진 가장 훌륭한 더듬이입니다. 지폐의 까끌까끌한 지질까지 구별해낼 수 있거든요.”
그에 따르면, 지폐에 들어 있는 30여 가지의 보안요소를 100% 감별해내는 기계는 없다. 특별한 위치의 자석 물질, 그림 등이 감별되지 않으면 X값으로 판단해 무조건 지폐를 뱉어낸다. 설정된 값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머지 판별은 감별 전문가가 해야 한다.
신도섭 씨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한두 번쯤은 위조지폐가 주머니 속에 들어왔다가 나갔을 거라고 말한다. 위폐는 속아서 받았다 해도 구제받지 못한다. 운이 나쁘면 조사까지 받는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 일반인도 할 수 있는 간단한 감별 방법이 궁금했다.
“5만 원짜리를 예로 들면, 불빛에 비춰봤을 때 숨어 있는 신사임당 얼굴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림이 보이지 않으면 100% 위폐입니다. 그리고 앞면을 보면 왼쪽에 띠 홀로그램이 있는데, 이곳에 우리나라 지도, 태극무늬, 4괘가 숨어 있어요. 홀로그램 바로 옆 은선에도 태극무늬가 들어 있고요. 지폐를 살짝 기울여보면 이 무늬들이 보입니다. 뒷면 오른쪽 하단에 있는 숫자 ‘50000’도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고요.”
불빛에 비춰보고, 앞뒤로 기울여보는 것만으로도 몇 가지 위조방지 보안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해보니 어렵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나라 위폐 발행률은 0.003%밖에 안 된다고 한다. 위조범들의 표적이 되는 화폐는 100달러. 위조지폐 제조원가가 30달러나 들어가 그 정도 단위는 되어야 남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 5만 원권도 앞으로 타깃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최근 중국 위완화 위폐가 점점 많아져 걱정이라고 했다.
“엊그제만 해도 한 고객이 우리은행에서 위완화를 바꿔 중국엘 갔는데 10장이 위폐로 나왔다며 달려왔어요. 확인해 보니 우리은행에서 바꿔준 돈이 아니었어요. 중국 가서 물건 산 뒤 돈을 주자 바로 그 돈을 되돌려주면서 왜 위조지폐를 주냐고 하더래요. 중국인이 진폐를 위폐로 바꿔치기한 거죠. 2~3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어 국정원이 조사를 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가면 종종 그런 일을 당한다는 거예요. 특히 택시 운전사들이 위조지폐를 싸게 사서 갖고 다니다가 외국인이 탈 경우 돈을 슬쩍 바꿔치기한 뒤 위조지폐를 줬다고 우긴다 합니다. 그분도 그렇게 당한 거죠.”
가짜를 판별하려면 진짜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조언하는 신도섭 씨. 그는 자신의 경험치가 위폐 감별 능력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혜안과 감각까지 키워줬다고 믿는다.
“진짜 화폐의 인물은 저를 응시하는데 가짜 화폐에 그려진 인물은 제 눈을 회피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누구라도 집중해서 수백, 수천 번 반복해서 들여다보면 보입니다. 신문을 많이 읽으면 저절로 가짜뉴스를 구별해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위폐 감별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마음이 맑고 깨끗하여 욕심이 없는 청렴(淸廉, integrity)은 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결백(潔白, purity) 역시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고 부정한 일과 욕심이 없음을 말한다. 이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언제나 필요한 것임이 틀림없다. 나 역시 그러한 향기로운 세상을 만들기에 성실히 노력하고 싶어진다.
청백(淸白, uprightness)은 청렴하고 결백한 것을 말한다. 청렴결백한 것은 누구나 다 좋아한다. 쌀도 희고 깨끗한 것을 청백미라고 하지 않던가? 결백한 관리가 청백리(淸白吏, upright official)인데, 부정이 없고 아주 청렴결백한 사람은 청사(青史)에 기록되기도 했다. 나도 젊은 시절에는 공직에 몸을 담았던 때가 있었다. 당시 그런 본보기가 될 만한 인물이었는지는 스스로 되돌아보면서 반성하려고 한다.
지갑에서 한국은행 5만 원 지폐를 꺼내어 펼쳐 보았다.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이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1만 원 지폐에는 세종대왕(世宗大王, 1397~1450)이 훈민정음 창제의 위엄을 지니고 근엄하게 앉아 있었다. 5000원에는 신사임당의 아들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가 대유학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1000원권에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이 청백리 모습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퇴계 이황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가 주자학 연구에 힘썼다. 도산서원을 세워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공조, 예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학자이며 선비였다. 청빈한 생활로 유명해 공복과 연관된 일화는 아주 잘 알려졌다.
어느 날, 단 하나뿐인 공복이 물에 젖었는데 그대로 급히 입고 입궐하였다. 그때 공복이 젖어서 진한 색을 띠고 있었다. 이를 본 다른 관리들은 화려한 비단 새 옷을 입었다고 오인했다. 그들은 임금에게 퇴계 이황을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축축한 옷을 입고서도 잠자코 있었다. 젖은 옷 때문에 벌어진 웃지 못할 상황에서도 침착했다. 나중에 원인을 파악한 임금은 그의 청빈(淸貧)함에 다시 한 번 감탄을 했단다.
퇴계 이황의 저서로는 퇴계전서 시조작품 도산 12곡이 있다. 그중 나는 한 편을 읽어 보고 공유하고자 한다.
청산은 엇더하야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엇더하야 주야에 긋디 아닛는고
우리도 긋치지 말고 만고상청 하리라
시조를 감상하면서 그의 '청렴한 기상이 푸른 산에 푸르러 그치지 않고 영원히 푸르게 살리라'라는 청백리 꿈이 서려 있음을 깨달았다. 어쩐지 오늘은 하늘이 더 맑고 푸른 숲에 청풍이 불어오는 것 같다.
이 풍진세상 사바세계에서 청렴결백과 청백리는 언제나 존재해야만 하고, 그런 사회는 맑고 은은한 풍경 소리 보다 더욱더 푸르고 싱싱하리라 믿는다. 금 내가 소속된 곳곳에도 푸른 향기가 아스라이 스며오는 듯하다.
하루해가 참 길다. 새벽 4시 반 무렵이면 훤해져 저녁 8시가 지나야 어두워진다. 하루해가 가장 길다는 절기 하지가 6월 21일이었다. 특별한 취미활동이나 소일거리가 없는 시니어는 잠을 깨는 순간부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를 걱정하기도 한다. 특히 날씨마저 흐리면 더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런 날이면 움츠리고 앉아 있기보다 바깥나들이를 하면 한결 기분이 상쾌해진다.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함께 챙길 수 있는 나들이를 하면 금상첨화지 싶다. 나이 든 사람에게 많이 권하는 운동이 걷기다. 둘레길이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져 많이 활용된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삭막한 도심의 길을 걷기보다 바람과 속삭이는 숲과 물과 산새 소리 들으며 걷는 자연 속의 걸음은 한결 가볍고 여유로운 시간이 될 터이다. 아울러 문화산책도 곁들이면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이룰 수 있어 좋지 싶다. 두 가지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곳으로 석파정 산책 코스를 권하고 싶다.
석파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에 있다. 전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청와대 옆길을 돌아 자하문 터널을 지나면 곧바로 좌측 언덕배기에 보인다. 석파정은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쓰이던 곳이다. 보존이 잘 되어 현재 서울특별시 문화재 26호로 지정돼 있다. 이곳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립 미술관인 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석파정이 있는 지대가 미술관에 달린 사유지이기에 그렇다. 그 미술관도 여느 미술관과 다른 점이 있어 전시되거나 소장된 그림을 감상하는 문화 나들이도 되지만, 전시관 곳곳에 이벤트성 볼거리, 쉼터가 있어 관람을 여유롭게 재미를 더해준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도 예쁘게 만들어 놓았다. 영상과 함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음악감상실, 영화를 볼 수 있는 영상 상영 코너도 마련해두어 재미를 더해준다. 현재 “신사임당, 그녀의 화원”이 관람객의 관심 속에 9월 3일까지 특별 전시되고 있다. 미술관 3층 옥탑을 거쳐서 외부로 나가 만나는 석파정 일원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쉼터와 힐링의 장소로 등장한다. 옥상 잔디정원에서 조각품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북한산의 모습도 새롭다. 선이 아름다운 대원군의 별장 기와가 푸른 하늘과 맞닿아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둘러 서 있는 산책로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한다. 듬성듬성 만들어 둔 벤치에 앉아 중간을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배경 음악 삼고 새소리 들으면 그곳이 낙원 같다. 가파르지 않은 산책길을 따라 느리게 느리게 걸으면 자연의 소리에 취할 수 있다. “물을 품은 길”이라 이름 붙여진 좁은 산책로 또한 정겹고 주변 곳곳에 세워진 아름다운 문구의 팻말이 인생을 배우게 한다. 그 문구 중의 하나인 기욤 뮈소의 에 나오는 구절이 가슴에 와닿았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우리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다” 미술관 관람과 힐링의 산책을 하며 하루를 너끈하게 그리고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곳이지 싶다. 돌아오는 길에 경복궁 옆에 있는 사람 냄새 나는 통인시장에 들러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면 행복한 하루가 되지 싶다. 필자는 올봄에 고등학교 후배인 대학교수이자 화가인 고등학교 후배의 안내로 처음 이곳을 다녀왔다.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어 안사람과 함께 친구와 가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필자에게 사진촬영법과 활용기술을 배우는 남녀 어르신 11분과 다녀왔다. 모두 즐거워하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하루가 되었다고 했다.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아우를 수 있는 서울미술관과 석파정 산책 코스를 걸어보면 어떨까?
◇ 전시
YOUTH: 청춘의 열병, 그 못다 한 이야기
일정 5월 28일까지 장소 디뮤지엄
자유, 반항, 순수, 열정 등 유스컬처(Youth Culture)의 다양한 감성을 선보이는 대규모 사진전이다. 래리 클락, 라이언 맥긴리, 고샤 루브킨스키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28명의 사진, 그래픽, 영상, 그라피티 작품 240여 점을 총망라한다. 일탈과 자유, 반항과 열정 등 청춘의 내면에 공존하는 다면적인 감정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유스컬처의 역동적인 작품들을 통해 청춘의 불안이 기쁨과 환희로 승화됐던 순간들을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임당, 그녀의 화원: Saimdang, Her Garden
일정 6월 11일까지 장소 서울미술관 제3전시실
최근 TV 프로그램, 드라마, 도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체적인 여성의 시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는 조선시대 여류 예술가 신사임당의 기획 전시다. 시대적 제약 속에서도 자기계발에 매진했던 예술가로서의 신사임당의 면모와 생애를 재조명한다. ‘초충도’를 비롯한 그의 대표 수묵화를 통해 뛰어난 미의식과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개관 이래 처음으로 ‘묵란도’를 소개한다. 화폭에 자연의 이치를 담고자 했던 그녀의 예술정신이 농묵과 담묵의 절묘한 조화로 발휘됐다.
◇ 도서
두 번째 서른 살: 사랑을 이야기할 나이(마리 드 에느젤 저·베가북스)
프랑스 심리학자 마리 드 에느젤이 10여 년간의 상담과 치료를 통해 얻은 성(性)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저자는 시니어의 성생활에 대한 이상주의를 경계하면서 다양한 연구와 인터뷰, 대담 사례를 통해 사랑과 성을 추구하는 노년의 삶에 대해 피력한다.
어쩌다 보니 50살이네요(히로세 유코 저·인디고)
50세가 되면서 달라진 낯선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저자의 산뜻한 시선과 경험이 담긴 에세이다. 몸과 마음의 변화,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방법,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등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느낀 점들을 담담하고 편안한 어조로 풀어냈다.
◇ 영화
눈길
일제강점기 말, 전혀 다른 운명을 타고났지만 위안부라는 비극을 함께 겪은 두 소녀의 가슴 시린 우정을 그렸다.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데 이어 제24회 중국 금계백화장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품이다. 2월 3일 와디즈에서 크라우드펀딩을 오픈해 30분 만에 목표금액(4000만원)을 달성하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영화 수익금 일부는 위안부 피해자 시민단체에 기부될 예정이다.
개봉 3월 1일 장르 드라마 감독 이나정 출연 김영옥, 김향기, 김새론, 장영남 등
아빠는 나의 여신
가상의 동네 오가와에 있는 작은 술집 ‘사요코’를 배경으로 트랜스젠더 아빠와 딸의 특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트랜스젠더라는 자칫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를 일본 영화 특유의 따스하고 잔잔한 분위기로 연출했다. “착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케이노스케 감독은 낡은 술집에 다녀가는 손님들의 인간미 넘치는 사연을 통해 따스한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유쾌한 에피소드와 더불어 애틋한 가족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개봉 3월 예정 장르 드라마 감독 하라 케이노스케 출연 스도 리사, 후지모토 이즈미 등
◇ 공연
유도소년
2014년 초연, 2015년 재연 당시 전 회차 매진 기록을 세운 흥행작이다. 유도선수 경찬이 고교전국체전 출전을 위해 서울로 상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도·복싱·배드민턴 훈련을 거친 배우들이 실제 경기를 방불케 하는 연기를 펼친다.
장소 수현재씨어터 일정 3월 4일~5월 14일 연출 이재준 출연 허정민, 박정복, 신성민 등
혜은이 콘서트 '열정'
가수 혜은이가 데뷔 45주년을 맞아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콘서트를 연다. 팬들과 더 가까이에서 호흡하기 위해 대학로 소극장에서 한 달간 공연을 이어간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 ‘제3 한강교’, ‘열정’ 등을 마음껏 들어볼 기회다.
장소 대학로 SH아트홀 일정 3월 3일~4월 2일 출연 혜은이
머더 포 투
뉴욕타임스가 주목한 코미디 뮤지컬 의 국내 라이선스 첫 무대다. 두 명의 배우가 13명의 인물을 연기하며, 형사와 용의자 간의 실랑이를 그린 2인극이다. 의문의 총격 살인사건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극으로 빠른 전개가 흡입력을 높인다.
장소 DCF대명문화공장2관 일정 3월 14일~5월 28일 연출 황재헌 출연 김승용, 안창용, 박인배 등
윤동주, 달을 쏘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 창작가무극이다. 일제강점기, 비극의 역사 속에서 자유와 독립을 꿈꾸었던 청년 윤동주와 송몽규의 순수한 애국심을 노래한다. 윤동주의 대표 시 8편이 독백 대사와 노래가사 속에 담겨 있다.
장소 예술의전당 일정 3월 21일~4월 2일 연출 권호성 출연 온주완, 박영수, 김도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