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폰카’로 사진을 찍는 세상이다. 별다른 스킬과 강박이 없는 채로 스마트폰을 들이대 일상에 널린 사진 소재와 디자인 요소를 포획한다. 사진으로 유희하고 자랑하고 소통한다. 사진으로 이렇게 나를 표현한다. 낡은 빈티지 카메라를 탐닉하는 이들까지 출현했다. 사진은 이제 일부 애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중과 사진의 사이가 이토록 긴밀한 시대가 있었던가. 그러나 국내에 사진 전문 미술관은 뜻밖에도 별로 없다. 서울 삼청동에 있는 ‘뮤지엄한미’가 그래서 반갑다. 삼청공원 들머리 한적한 고샅에 있다.
삼청동에는 미술관이 많다. 경복궁 동남쪽 모서리에 있는 동십자각에서 삼청동까지 걸어보라. 저마다 독특한 외관을 가진 미술관 10여 곳이 눈에 띈다. 갤러리현대, 금호미술관, 아트큐브, 아트선재센터, 국제갤러리 등등…. 미술 작품을 즐기며 한나절 소요하기 좋은 동네다. 미술관들이 펼치는 예술적 레이스로 개성과 정취가 묻어나는 곳이다. 이제 뮤지엄한미가 가세했다. 큰길에서 벗어나 한갓진 느낌을 주는 야트막한 언덕길 옆에 있다. 도회 복판이지만 소음과 소란을 따돌린 입지다. 심지어 고즈넉한 분위기까지 풍겨 첫눈에 호감이 간다.
뮤지엄한미는 송파구 방이동 한미약품 사옥에 있던 한미사진미술관 본관을 삼청동으로 옮기면서 거듭난 미술관이다. 즉 한미사진미술관을 기반으로 재탄생한 뮤지엄이다. 2년여에 걸친 이전 작업을 통해 2022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2003년에 개관한 한미사진미술관은 한국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20여 년간 사진 전시는 물론 소장품 수집, 작가 지원 사업, 출판과 교육 사업을 펼쳤다. 학술 연구기관인 한국사진문화연구소와 대중을 대상으로 한 한미사진아카데미를 설치해 사진예술 연구와 보급을 위한 갖가지 콘텐츠를 가동하기도 했다. 사진 전문 미술관이 전무했던 시절에 발군의 역량을 가지고 탕탕 행진했던 셈이다. 뮤지엄한미는 그 20여 년간 축적한 성과와 실력을 돛으로 삼아 더 광활한 사진의 바다로 나아가고자 개관했다.
뮤지엄한미의 건물 외관이 야기하는 인상은 뭐랄까, 허세 없는 말쑥한 패션을 입어 단정하다. 또는 단아하다. 담백하지만 싱겁지 않고, 세련됐지만 요란하지 않다. 따뜻한 손을 조용히 뻗어 사람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기운? 은근한 내향적 기풍이 느껴진다. 건축가 민현식(건축연구소 기오헌 대표)이 설계했다. 그는 파주출판도시 설계, 수원화성역사문화도시 기본계획 등의 작업을 통해 특유의 건축적 이론을 실천한 인물로, 자주 건축적 논쟁의 중심에 선 원로다. 전통 건축의 중요 요소인 마당의 의미를 근간으로 한 ‘비움의 구축’을 키워드로 삼은 설계로 독자적인 건축 언어를 발신해왔다.
로비로 들어서자 공간 한 면의 통유리창으로 햇살이 들이친다. 2층 건물 내부 벽면 곳곳에 유리창을 설치했다. 따라서 곳곳이 밝고 투명하고 유려하다. 창으로 들어오는 건 햇살만이 아니다. 북악산에서 흘러내린 푸른 능선과 능선 갈피에 산재한 집들, 그리고 하늘과 구름까지 따라 들어온다. 이렇게 외부 경관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건물이다. 내부 구조는 치레와 꾸밈을 자제했다. 외부 경관에 더 많은 자리를 내주기 위해 살짝 뒤로 물러나 앉은 양 간명한 품새다. 그러나 간명하기만 하다면 허전할 터. 건물 디자인의 백미에 해당하는 공간이 하나 있는데 바로 ‘물의 정원’이다. 건물 복판에 중정 역할을 하는 작은 연못을 조성해 물의 양상과 묵상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잠잠한 수면을 희롱하는 햇살의 동향을 읽을 수 있는 ‘물의 정원’의 이채에 즐겁다.
국내 최초로 저온 수장고 설치
‘물의 정원’은 이 뮤지엄을 이룬 세 개의 건물을 하나로 엮는 고리 역할도 한다. ‘물의 정원’을 중심으로 규모와 형상이 저마다 다른 공간들이 3차원으로 교직하는 것이다. 관람 동선 구성에서도 민현식의 건축적 의도와 지향이 완연하게 드러난다. 그는 관습적인 순환 동선을 구사하는 대신, 매트릭스 형태를 구성해 동선을 다양화했다. 심지어 다리까지 만들었다. 관객에게 동선의 선택 폭을 넓혀줌으로써 미술관에서의 한때를 한결 즐겁게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한 셈이다. 공간의 용도를 미리 규정하지 않고, 전시 작품에 따라 변용할 수 있는 중성적 공간으로 만든 데에도 설계자의 의도가 숨어 있다. 어떤 작품이 들어오더라도 수용할 수 있도록 공간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난 형국이다. 이모저모 ‘비움’의 은유를 가시적으로 구현했다.
뮤지움한미의 구성원들이 야심과 포부를 가지고 각별히 공들인 공간도 주목할 만하다. 고도의 테크놀로지로 구축한 수장고가 바로 그렇다. 이 미술관의 심장부다. 지난 20여 년간 수집한 2만여 점의 사진 소장품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저온 수장고와 냉장 수장고를 만들었다. 보관 여건이 좋지 않으면 손상되기 쉬운 게 사진이다. 곰팡이가 슬거나 열화(劣化)가 발생한다. 이를 방비하기 위해 완벽한 성능을 갖춘 전문 수장고를 설치했다. 이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고성능 수장고로 꼽힌다. 첨단 항온·항습 시스템이 가동되는 이 수장고에 보관된 사진 소장품들은 500년의 수명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니 놀랍다.
19세기 귀한 사진도 보관
물론 일반인은 수장고에 출입할 수 없다. 이를 아쉽게 여긴 미술관 측은 수장고 입구에 자그만 전시실로 꾸민 개방 수장고를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역사적인 사진 중 일부를 보여준다. 어디서도 만나기 어려운 이 저온 수장고 전시실엔 1929년 이전에 촬영한 사진 작품 12점이 걸려 있다. 모두 진귀한 사진들이다. 카메라를 귀신 붙은 괴물체쯤으로 여겼던 1883년에 국내 최초의 사진관을 차린 사진가 황철이 찍은 1880년대 사진을 비롯해, 대한제국 황실 사진가 김규진이 운영한 천연당 사진 작품, 최초의 여성 사진가로 알려진 경성사진관 이홍경이 찍은 사진 등 희귀한 원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고종황제와 흥선대원군의 초상 사진도 전시돼 흥미롭다. 누렇게 빛바랜, 무상한 세월의 잔영처럼 남은 손바닥 크기의 옛 흑백사진들이 스산하지만 뜻밖에도 평화롭다. 영영 지나간 풍경들, 사라진 사람들의 흔적이 사진으로 남아 한 줌의 온기를 전하는 듯하다.
전시장에선 뮤지엄한미 신축 개관전이 성황리에 펼쳐지고 있다.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전이다. ‘한국 사진이 어떤 제도적 조건과 역사적 문맥 속에서 역사를 일궈왔는지 밝히고자 기획한 전시’란다. 1929년에 열렸던 정해창의 ‘예술사진 전람회’부터, 1982년 덕수궁 석조전에서 있었던 ‘임응식 회고전’까지, 한국 사진사에 한 획을 그은 전람회들을 재조명하는 대형 기획전이다.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을 나오는 중에 여운처럼 아른거리는 게 있다. 흑백사진들의 검은빛과 흰빛이다. 단순한 흑백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음영과 농담(濃淡)과 여백을 통해 피사체를 부각한 흑백사진의 묵직한 호소력이라니. 컬러로 존재하는 세상을 흑백으로 번역하자, 외려 깊은 맛을 풍기는 게 아닌가.
김선영 뮤지엄한미 학예연구관
“꼼꼼히 감상하는 관람객 많아 놀라워”
뮤지엄한미는 사진을 즐기는 이들이 반색할 만한 공간이다. 흔히 습관처럼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일상의 오락으로 삼는 풍속을 고려하면, 대중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 수 있는 시대적 환경을 맞이한 뮤지엄이기도 하다. 김선영 학예연구관의 얘기는 이렇다.
“사진은 여느 예술 언어에 비해 큰 강점을 지닌 매체다. 가령 회화나 조각과 달리 이미 대중에게 익숙해진 매체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문자보다 사진 영상을 소통의 도구로 사용할 정도이지 않은가. 사진이 보편적인 시각 언어로 부상한 셈이다. 이런 경향을 포괄해서 사진과 타 매체의 접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주는 전시 기획에 주력할 계획이다.”
대중에게 더 다가가겠다는 얘기인가?
“우리 뮤지엄의 목표는 20여 년간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진예술을 확장하는 데 있다.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지만 더 새로운 전시 기획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소장품들을 수장고에 유폐하기보다 개방 수장고를 통해 전시하는 이유는, 대중과의 긴밀한 소통을 추구하는 뮤지엄한미의 상징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2만여 점의 소장품 가운데 가장 진귀한 사진을 꼽는다면?
“특정 작품을 꼽기는 어렵다. 소중한 가치를 지닌 진품 원본 사진이 너무 많아서다.”
전시실에 관람객이 많더라.
“진지한 관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작품을 꼼꼼히 관람하는 이들이 많다. 놀라울 정도로. 사진에 관한 대중의 친밀도를 반증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사진 작품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준다면?
“공부가 좀 필요할 것 같다. 이를테면 한국 사진이, 또는 서양 사진이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흘러왔는지, 한국 사진과 서양 사진은 어떤 접점을 갖고 있는지 알려주는 개론서를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하면 안목이 생기고, 안목이 생기면 더 흥미로워진다.”
요즘의 사진예술은 추상회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파격적인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흥미로운 반면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융복합이 매우 활발하다. 현대미술이 사진을 차용하기도 하고, 사진작가들이 외연을 확장해 미술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한편 외연 확장적인 작품이 복잡하고 개념적인 것 같지만, 작가들이 그 레퍼런스를 주로 일상에서 찾아내 작업하기 때문에 어렵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20세기 사진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 철학 ‘결정적인 순간’의 영향력은 이 시대에도 유효한 것일까?
“한 장의 이미지에 많은 것이 응축된 절대적 순간을 집어넣는다는 게 ‘결정적인 순간’의 개념으로, 사진가들에겐 바이블과 같은 규범이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훨씬 자유로운 사진들이 이미 1950년대 이후에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진가가 윌리엄 클라인이다. 뮤지엄한미에서 올 5월 말에 그의 전시회가 열린다.”
●Exhibition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 결정적 순간
일정 10월 2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세기 사진 미학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 발행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다.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결정적 순간’에 수록된 오리지널 프린트, 1952년 프랑스어 및 영어 초판본, 출판 당시 편집자 및 예술가들과 카르티에 브레송이 주고받은 서신을 비롯해 작가의 생전 인터뷰, 라이카 카메라를 포함하는 컬렉션을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집 ‘결정적 순간’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앙리 마티스가 직접 쓰고 그려준 제목과 커버로 장식됐다. 책에는 카르티에 브레송이 1932년부터 1952년까지 미국, 인도, 중국,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촬영한 경이로운 삶의 순간들이 담겼다. 마하트마 간디 장례식, 영국 조지 6세의 대관식, 독일 데사우 나치 강제수용소 등 역사적 순간과 현장도 생생하게 녹아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사진에 담백한 시선을 담은 카르티에 브레송의 글이 포인트다.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가 ‘사진작가들의 바이블’이라고 일컬을 만큼, ‘결정적 순간’은 당대뿐 아니라 후대의 사진작가들에게 큰 파급력을 불러온 책이다. 이번 전시는 책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찬사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카르티에 브레송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명인 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
일정 9월 25일까지 장소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
전통예술에서 부채는 판소리뿐 아니라 한량춤, 부채산조, 부채춤 등의 전통춤과 줄타기, 탈춤, 굿 등 연희에서도 필수적으로 활용하는 소품이다. 국립국악원은 전통예술 명인·명창 58명의 부채 80여 점을 수집해 기획전을 열었다. 명인·명창의 부채를 통해 그들의 삶과
열정 또한 엿볼 수 있다. 남해안별신굿보존회의 100년 넘은 부채, 신영희 명창이 소리 인생 70년간 사용한 부채 중 닳아 사용할 수 없는 부채 24점을 모아 만든 8폭 병풍 등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전시명의 붓글씨는 한글 서예가로도 유명한 소리꾼 장사익이 직접 썼다.
●Book
◇여성 50대를 위한 100세 시대 인간관계(오노데라 아쓰코·문학사상)
“중년 여성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 자신답게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은 남성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부모나 남편, 자녀 등 가족과의 관계가 그 선택을 좌우한다.”
책 ‘여성 50대를 위한 100세 시대 인간관계’는 50대를 중심으로 중년이라 일컬어지는 그 전후의 40대, 60대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여성 심리학자인 저자는 중년 여성의 인간관계와 앞으로의 삶의 방식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책의 부제는 ‘인간관계는 왜 이 나이가 되어서도 힘들기만 할까?’이다. 50대가 되면 인간관계로 고민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골치 아픈 일이 많다. 중년 여성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틈바구니에서 다양한 문제를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부모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형제자매와의 관계, 직장 내 인간관계, 친구 관계 등에서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
저자는 인간관계 문제를 겪고 있는 중년 여성들에게 명쾌한 해결법을 제시한다. 더불어 인생 후반부를 지금보다 더 풍요롭게,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도 얘기한다.
저자 오노데라 아쓰코는 현재 메지로대학 인간학부 심리카운슬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발달심리학, 인격심리학이다. 저서로는 ‘비기너 심리학’, ‘아동발달과 아버지의 역할’ 등이 있다.
◇부자의 서재에는 반드시 심리학 책이 놓여 있다(정인호·센시오)-
저자는 “부자가 되려면 금리, 환율보다 사람들의 행동 심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부자는 어떤 심리를 가졌는지, 어떻게 사람들의 심리를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지 소개한다.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폴 김, 김인종·마름모)
25년간 정신질환자 가족을 돌보고 있는 폴 김과 저널리스트 김인종이 함께 썼다. 책은 정신질환을 의학적·사회적인 관점과 영적·심리적인 관점에서 균형 있게 들여다본다.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픈 이에게 도움을 준다.
◇고양이의 매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강은영·좋은생각)
인스타그램 팔로워 10만 명에 달하는 ‘모리’ 강은영의 첫 번째 그림 에세이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업무 시간이 줄어 ‘1일 1고양이’ 그리기를 시작했고,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 과정을 그림과 글에 고스란히 담아 행복 에너지를 전한다.
●Stage
◇아트(ART)
일정 9월 17일 ~ 12월 11일
장소 예스24스테이지 1관
연출 성종완
출연 이순재, 노주현, 백일섭, 박은석, 조풍래, 최재웅, 최영준, 김도빈, 박영수, 박정복 등
블랙 코미디 연극 ‘아트’는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대표작이다. 세 남자의 오랜 우정이 그림 한 점을 계기로 드러난 허영과 오만에 의해 얼마나 쉽게 깨지고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지를 일상의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현재까지 15개 언어로 번역돼 35개국에서 공연했고, 몰리에르 어워드,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토니 어워드 등 유수의 상을 휩쓸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시니어 버전’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원로배우 이순재, 노주현, 백일섭이 새롭게 캐스팅됐으며, 최정상 배우들이 총출동해 기대를 모은다. 이순재, 박은석, 조풍래는 지적이며 고전을 좋아하는 항공 엔지니어 ‘마크’ 역을 연기한다. 예술에 관심 많은 피부과 의사 ‘세르주’ 역은 노주현, 최재웅, 최영준, 김도빈이 맡는다. 우유부단한 사고방식의 문구 영업사원 ‘이반’ 역에는 백일섭, 박영수, 박정복이 캐스팅됐다.
◇삼총사
일정 9월 16일 ~ 11월 6일
장소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출 유병은
출연 신성우, 이건명, 김형균, 김준현, 김신의, 김현수, 김법래, 장대웅, 정욱진, 최민우, 렌, 라키, 경윤, 민규 등
뮤지컬 ‘삼총사’가 2018년 10주년 공연 이후 4년 만에 돌아온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삼총사’는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왕실 총사가 되기를 꿈꾸는 청년 달타냥과 삼총사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가 루이 13세를 둘러싼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다.
국내 초연부터 출연한 배우 신성우와 함께 이건명, 김형균은 삼총사의 리더 아토스 역을 연기한다. 김준현, 김신의, 김현수는 로맨티스트 아라미스로 무대에 오르고, 김법래와 장대웅은 화끈한 바다 사나이 포르토스 역을 연기한다. 정욱진, 최민우, 렌, 라키, 경윤, 민규 등은 돈키호테 같은 성격의 쾌남 달타냥 역을 맡았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일정 8월 30일 ~ 11월 6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김동연
출연 임창정, 정성화, 양준모, 신영숙, 박혜나, 김다현, 김산호, 하은섬, 박준면, 임기홍 등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코믹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번 국내 초연은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이다. 이혼으로 양육권을 잃은 다니엘이 백발의 가정부 할머니 다웃파이어로 변장해 아이들을 돌보는 도우미로 취직하는 내용을 담았다. 故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다웃파이어 역에는 임창정, 정성화, 양준모가 캐스팅됐다. 특히 이 작품으로 10년 만에 뮤지컬에 복귀하는 임창정은 “다섯 아이의 아빠로서 가족의 정과 사랑을 듬뿍 담은 다웃파이어를 보여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 Exhibition
#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
일정 5월 31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비디오 아트의 30여 년을 재조명한다. ‘시간 이미지 장치’를 부제로 하는 이번 기획전은 국내 비디오 작가 60여 명의 작품 130여 점을 선보인다. 시간성, 행위, 과정의 개념을 실험한 1970년대 작품에서 시작해, 1980~90년대의 장치적인 비디오 조각과 싱글채널 비디오까지 아우르며 한국 비디오 아트의 전개 양상을 입체적으로 해석했다. ‘한국 초기 비디오 아트와 실험 미술’, ‘탈장르 실험과 테크놀로지’ 등 크게 7개의 주제로 나뉜다. 기술과 영상 문화, 과학과 예술, 장치와 서사 등 이미지와 개념의 문맥을 오가며 진화해온 한국 비디오 아트의 역사를 다각도로 살펴볼 기회다.
# 매그넘 인 파리
일정 2월 9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프랑스 파리를 주제로 한 사진전으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등 20세기 사진의 신화로 불리는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 소속 작가 40명의 작품 400여 점이 공개됐다. 2014년 오텔 드 빌(파리 시청)에서 처음 개최됐던 이번 전시는 2017년 일본 교토문화박물관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앞서 열린 파리와 교토 전시에서는 선보이지 않았던 엘리어트 어윗의 사진 40여 점으로 구성된 특별 섹션 ‘Paris’와, 파리의 패션 세계를 담은 작품 41점을 추가로 만날 수 있다. 파리의 풍경이 담긴 옛 지도와 희귀도서, 앤틱가구 등으로 꾸며진 ‘파리 살롱’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풍성하다.
# 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
일정 3월 1일까지 장소 마이아트뮤지엄
체코를 대표하는 화가 알폰스 무하의 판화, 유화, 드로잉 등 오리지널 작품 230여 점을 작가의 삶과 여정에 따라 총 5부로 나눠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는 체코 출신의 테니스 선수 이반 렌들의 개인 소장품을 주축으로 기획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일명 ‘무하 스타일’이라 알려진 넝쿨 같은 여인의 머리카락, 독특한 서체 등 매혹적인 아르누보 스타일의 포스터에서 작가가 고국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작품까지 총망라한다. 도슨트 운영과 더불어 체코문화원과 함께하는 미술사 강연 및 시즌 이벤트, 키즈 아틀리에 등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도 제공할 예정이다.
# 고향 gohyang: home
일정 3월 8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서울시립미술관 비서구권 전시 시리즈의 세 번째 프로젝트로, 복잡한 사회·역사적 배경을 가진 중동 지역의 현대 미술을 살펴본다. 중동에서 발생한 다양한 미술적 활동을 통해 고향을 잃거나 빼앗긴, 또는 고향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민족’이라는 관념적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기억의 구조’, ‘감각으로서의 우리’ 등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며 이미지, 사운드 설치, 드로잉, 비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아우른다. 전시기간에는 할리드 쇼만 컬렉션의 영상 작품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시네마테크 컬렉션으로 구성된 스크리닝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 Stage
# 뮤지컬 '레베카'
일정 3월 15일까지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엄기준, 신성록, 옥주현 등
‘엘리자벳’, ‘마리 앙투아네트’ 등으로 잘 알려진 뮤지컬계 콤비 미하엘 쿤체(대본·작사)와 실베스터 르베이(작곡)의 대표작. 영국 대표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동명 소설 ‘레베카’와 알프레드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 ‘레베카’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됐다. 원작 소설과 영화를 뛰어넘는 감동적인 로맨스, 반전을 거듭하는 서스펜스, 강렬한 음악으로 전 세계 1900만 관객을 마음을 사로잡으며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라이선스 공연의 상징이 된 회전하는 발코니 신은 관객이 꼽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관전 포인트다.
# 마당놀이그 '춘풍이 온다'
일정 1월 26일까지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 연출 손진책 출연 김준수, 서정금, 김미진 등
판소리계 소설 ‘이춘풍전’을 바탕으로 한 마당놀이극이다. 34명의 배우와 20명의 연주자가 풍성한 무대를 꾸민다. 기생의 유혹에 넘어가 가산을 탕진한 한량 춘풍을 그의 어머니와 몸종이 혼쭐내고 가정을 되살린다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다. 마당놀이 특유의 세태를 꼬집는 풍자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 2020 신년음악회
일정 1월 4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 정명훈 출연 서울시립교향악단, 클라라 주미 강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은 경자년을 맞아 새해 첫 주 토요일 신년음악회를 개최한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끈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4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며 의미를 더한다. 실력파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협연으로, ‘브람스 교향곡 제1번’을 비롯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고 사랑받아온 곡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 Movie
# 피아니스트의 전설
개봉 1월 1일 장르 드라마·판타지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 출연 팀 로스, 프루이트 테일러 빈스 등
‘시네마 천국’, ‘베스트 오퍼’에 이은 주세페 토르나토레와 감독과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 감독이 함께한 ‘예술과 사랑’ 3부작 마지막 편이다. 2002년 12월 개봉 이후, 22년 만에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국내 첫 정식 개봉을 확정했다. 이탈리아 작가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소설 ‘노베첸토’가 원작. 평생 바다 위에서 살며 한 번도 땅을 밟아본 적 없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라는 설정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여기에 아름다운 영상과 황홀한 선율이 조화를 이루며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개봉 1월 16일 장르 드라마 감독 셀린 시아마 출연 아델 하에넬, 노에미 메를랑 등
제72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2관왕에 이어 토론토, 뉴욕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여인과 그녀의 결혼식 초상화 의뢰를 받은 화가 마리안느의 미묘한 관계를 그린다.
# 몽마르트 파파
개봉 1월 9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민병우 출연 민형식, 이운숙, 민병우
아버지의 인생 2막을 담은 아들의 다큐멘터리. 미술교사로 평생을 산 아버지는 은퇴 후 ‘몽마르트 거리 화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파리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도전기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 Book
# 55년생 우리 엄마 현자씨 (키만소리 저·책들의정원)
엄마는 해외로 떠난 딸을 그리워하며 자신도 영어공부를 해서 혼자 해외여행을 가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엄마, 아내,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거부한 그녀는 ‘현자 씨’라 불러 달라며 가족들에게 선포한다. 환갑을 훌쩍 넘겼지만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며 ‘나다운 나’로 살고 있는 현자 씨의 홀로서기 에피소드를 웹툰과 에세이로 담았다. 자신의 이름 석 자로 인생 2막을 살며 못다 한 꿈을 이뤄가는 당당한 꽃중년의 모습을 그린다.
# 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신정근 저ㆍ21세기북스)
베스트셀러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에 이은 신정근 교수의 신작. ‘중용’의 원문 중 신중년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60개의 명문장을 엄선해 인생의 무게 중심을 잡는 법을 일러준다.
#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수지 홉킨스 저ㆍ에프)
자신이 죽은 뒤 남겨질 딸에게 전하는 엄마의 사랑과 조언을 담은 그림 에세이다. 엄마가 떠나고 딸이 홀로 할 일들을 날짜별, 단계별로 보여주고, 행복한 삶을 위한 처방전도 제시한다.
# 굿모닝 미드나이트 (릴리 브룩스돌턴 저ㆍ시공사)
북극에 고립된 78세 천문학자와 지구로 귀환 중인 우주비행사가 생의 마지막 순간 느낀 지난날의 사랑과 회한을 그린 소설. 극한 상황 속 인간의 고독과 복잡한 내면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 어반 우즈맨 (맥스 베인브리지 저ㆍ목요일)
우드 카빙으로 숟가락, 주걱, 도마 등 일상에서 쓰이는 물건을 손수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다. 목재 구하기부터 도구 사용법, 관리법 등 초보자를 위한 목공 매뉴얼이 자세히 실려 있다.
카메라가 발명되고 나서 상업적 사진과 예술 사진의 경계에서 사진을 활성화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단연 보도사진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로버트 카파 등이 시작한 보도사진작가 그룹 매그넘이 초기 사진의 발전을 이끌었으며, 저명한 언론인 조셉 퓰리처의 유산으로 만들어진 퓰리처상으로 보도사진이 주목받았다. 각 지역의 문화와 자연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촬영해온 잡지의 자연과학 사진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든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장르를 묶을 수 있으며, 이들이 20세기 사진을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이 주목받는 것은 사진의 정체성이 사실성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진의 전부는 아니다. 예술의 덕목에 다양성이 있는 것처럼, 사진 역시 다양성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진의 사실성과 함께 추상도 생각했다. 이는 사진도 예외가 아닌 예술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할 중요한 길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전통적인 시각예술이 모두 그렇게 폭을 넓히고 생각을 키워 왔다.
그 일환으로 나는 종종 다중 노출 작업을 진행한다. 다중 노출 사진은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겹쳐지는 대상이 원래의 피사체와 같거나 연결되는 외형을 갖고 있는 경우에는 되풀이되는 패턴이 생긴다. 패턴이 서로 겹쳐지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예측하지 못했던 끊어짐과 이어짐이 되풀이되는 리듬과 끊어지면서도 부드러운 선이 생긴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늬가 서로 잘 어울리기도 한다. 음악이 갖고 있는 박자와 멜로디 그리고 어울림의 화음이 만들어지면서 없던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아무 관계도 없었던 바람들이 한 장의 필름에서 만나 꽃을 흔들어 무늬를 이루었다.
자연에는 의외로 많은 패턴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두 번 겹쳐 촬영한 한 장의 이미지에서 만들어지는 패턴은 우연일까? 거기에도 자연스러움이 있다. 인위적인 방법으로 두 장의 사진을 한 장의 필름 위에 덧씌운 이중노출 기법이지만 그것 또한 우연히 만들어진 자연의 한 모습인 것이다. 우연히 만난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가족을 이루어 자식을 낳고 살 듯이 말이다.
제시한 사진은 바람과 물이 만나는 장면을 다중노출 기법으로 연출한 사진 중 하나이다. 처음에는 사진 속의 사물들을 따로 따로 바라보았다.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그렇게 무심히 바라보다 서로간의 연관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먼저 바람 스스로 낸 물길에 따라 흔들리며 흐른다. 꽃과 바람이 실제로 만나는 장면이 포착되었지만, 무작정 기다릴 수 없기에, 나는 우연을 적극적으로 기대하며 두 이미지를 한 장의 프레임에 담기를 되풀이하며 지켜보았다. 꽃뿐 아니라 그 배경으로도 이야기는 진행되며 퍼져 나간다. 물을 만난 바람이 물 위에 일정한 시간을 두고 연속적으로 흔적을 남긴다. 그 사이 꽃은 다시 바람에 의해 누웠다 서기를 되풀이한다. 뿌리가 물밑 바닥 땅에 박힌 풀의 제한이 일정한 박자를 만든다. 조금 더 길게 보면 모인 풀들은 흩어지는 시간의 여정을 각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꽃은 시들 것이고 먼지가 되어 바람을 타다가 끝내 바람이 될 것이다. 바람은 다시 꽃의 색을 모으면서 순환하며, 이따금 여기에 물이 겹친다. 바람과 꽃과 물이 함께 만난 자리에 나도 참석하여 우연에 필연을 섞어 작업한 작품이다.
샌프란시스코 근처 1번 국도 남쪽의 배면도로를 달리다 보면 만나게 되는 하프 문 베이에서 작업했다.
의도를 넘어 우연(偶然)이 아름다움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도 내가 열과 성을 다해 노력한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면,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 과정을 되풀이할 필요가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있게 기다려야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두고 가능하면 아주 오래 오래 살아서 우선 꿀벌처럼 꿀과 의미를 모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최후에는 아마 10행쯤 되는 좋은 시를 쓸 수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닌 것이다. (중략) 사실은 시는 경험인 것이다”라고 했듯이 말이다.
장소가 어디든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의 핵심과 구조를 보기 위해서는 겉모양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겉을 싸고 있는 껍데기가 얇고 가볍게 보일지라도 가장 무겁게 사물의 내부를 누르고 있는 것은 그래도 외모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존재들은 온힘을 쏟아 붓는다.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 보이는 것은 자연의 일부이지만, 그것이 모든 것이 아님을 살면서 차츰 알게 된다. 통찰(洞察)이나 식견(識見)이란 뜻이 그렇고, 비슷한 뜻으로 쓰이고 있는 인사이트(insight)라는 영어 단어 또한 같은 얘기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대상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좋은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렌즈의 각도를 달리하며 오래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빛이 뻗어가고 확장해서 그 속에 숨겨져 있던 핵심과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맨눈으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었던 포장지 안의 속살이 뷰파인더를 통해 드러난다. 포장지 그 밑에 쌓여 있는 거품이 진짜 내가 보고 싶었던 속살이라고 착각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벗겨도 벗겨도 또 나오는 껍질에 속지 않고 내용을 보기 위해 이어지는 껍질을 까다 본질이 바로 껍질인 경우도 있다.
사진으로 형성되는 인상은 다중 노출의 형태처럼 다양하고 복잡하다. 수많은 시간과 공간의 조합이 다시 되풀이될 수 없을 만큼 경우가 많다. 매번 선택하는 셔터 스피드와 조리개뿐 아니라 그 사이의 시간적 공간적 간격에 따라 모두 다른 결과가 나온다. 기대는 할 수 있지만, 예측은 할 수 없다. 그래서 본질을 볼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갖고 있는 사진은 역시 기대할 만한 예술의 한 장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