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지 맛(쓴맛·단맛·신맛·짠맛·매운맛) 중에서 쓴맛은 몸속의 습을 제거해준다. 습이 많으면 몸이 무거워지고 속이 울렁거리고 입맛도 없어진다. ‘동의보감’에는 10가지 병 중에 8~9개는 습과 관련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옛말이 있다. 한의학에서 볼 때 대부분의 병은 원인과 관계없이 화와 열이 머리 쪽으로 몰릴 때 온다. 그런데 강한 쓴맛에는 화와 열을 끌어내리는 효능이 있다. 그래서 한약에는 강한 쓴맛이 나는 약재가 많다. 황금과 황련, 황백, 씀바귀, 민들레, 대황 등이 그것이다. 녹차도 강한 쓴맛이 난다. 고기와 녹차가 궁합이 맞는 것은 고기의 뜨거운 열을 차가운 성질의 쓴맛이 나는 녹차가 중화시켜주기 때문이다. 쓴맛이 나는 차를 마시면 열이 내려가 눈과 머리가 맑아진다. 블랙커피에도 이런 효능이 있다.
약한 쓴맛은 씁쓰름한 맛이다. 첫맛은 쓰지만, 끝맛은 은은한 단맛이 나면서 입에 침이 감돌게 한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과 의미가 통하는 맛이다. 춘곤증으로 나른해지는 봄날에 취나물, 곰취, 씀바귀, 왕고들빼기 같은 씁쓰름한 봄나물을 먹으면 입맛이 돌고 기운이 나면서 몸이 가벼워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인삼, 홍삼은 씁쓰름하면서 나중에는 단맛이 난다. 인삼과 홍삼의 약한 쓴맛은 기운을 보충해준다. 그래서 몸이 무겁고 축 처지며 입맛이 없을 때 씁쓰름한 맛이 나는 음식이 제격이다.
쓴맛의 3가지 효능
약한 쓴맛의 효능은 크게 3가지다. 첫째, 기운을 끌어올여준다. 인삼이나 홍삼, 봄나물이 대표적인 식품이다.
둘째, 약한 쓴맛은 허열을 내려 머리를 맑게 한다. 녹차와 커피를 마셨을 때 잠이 깨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것은 바로 쓴맛 때문이다. 약한 쓴맛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능, 즉 스트레스로 인해 교감신경이 항진됐을 때 완화시켜준다. 약한 쓴맛은 먹고 난 뒤 입에서 침이 돌아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 수행하는 사람들이 약한 쓴맛의 음식을 먹는 건 이 때문이다. 학생들에게도 약한 쓴맛이 좋다. ‘동의보감’에도 “상추가 머리를 총명하게 한다”는 기록이 있다. 약한 쓴맛의 효능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셋째, 소화를 잘되게 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밥을 먹고 난 다음에 숭늉을 끓여 먹었다. 밥을 살짝 태워 만든 누룽지는 약한 쓴맛이 나는데 이 맛이 소화를 돕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식후에 약한 쓴맛의 차를 마셔 소화를 돕게 한다. 서양에서는 커피와 홍차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했다. 모두 약한 쓴맛의 효능을 응용한 것이다. 이때는 처음에는 쓴맛이었다가 끝맛은 구수해야 제대로 효과가 나타난다. 식사 중에 상추, 샐러드 등을 곁들이면 약한 쓴맛이 침을 분비하게 해서 소화를 돕는다.
입이 쓴 것은 병에 대한 몸의 반응
머리로 허열이 오르면 이목구비의 기능을 떨어지고 입맛도 없고 입이 쓰고 침도 마른다. 이럴 때 숭늉, 봄나물 등 씁쓰름한 맛이 나는 음식을 섭취하면 침 분비를 자극해 입이 마르는 것을 방지한다.
자주 “입이 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증상은 화병, 열병, 과로로 몸의 진액이 마른 상태에서 나타난다. ‘동의보감’에는 “입맛이 쓴 것은 심장의 열 때문이거나, 간장의 열이 쓸개로 옮겨간 것이거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즉 화가 입의 진액을 말려버린 것이다. 이럴 때 몸이 스스로 반응하면서 입맛을 쓰게 만들어, 머리로 올라온 열을 식히고 침을 분비하도록 한다. 즉 입맛이 쓴 것은 병의 결과가 아니라, 병을 낫게 하려는 몸의 자연스런 반응이다. 입맛이 쓸 때 사용하는 약들은 대부분 쓴맛이 난다. 열을 내리고 진액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약한 쓴맛이 나는 음식을 매일 먹으면 스트레스로 심장에 생긴 화와 혈당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숙면을 도와주는 효과도 있다. 치커리, 상추, 씀바귀, 고들빼기, 왕고들빼기, 민들레, 취나물, 쑥, 케일, 더덕, 여주 등은 약한 쓴맛이 나는 대표적인 음식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밥을 먹고 난 다음에 숭늉을 끓여 먹었다. 밥을 살짝 태워 만든 누룽지는 약한 쓴맛이 나는데
이 맛이 소화를 돕기 때문이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치유학교 ‘그루’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강화도는 서울 서쪽에 위치해 있다. 자가용이 있던 시절에 몇 번 가보고 그 후로는 오랫동안 외면하던 곳이다. 초지진, 광성보 등 해안에 초라한 진지가 남아 있을 뿐 별로 기억에 남는 것들이 없다. 마니산은 올라가는 계단만 보고 왔고 전등사는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절이었다. 어느 식당에 갔다가 음식이 너무 맛이 없어 일행들이 젓가락만 돌리고 있어 뒷산에 있는 고들빼기를 좀 뜯어와 겨우 한 끼를 먹은 적도 있다. 폭우를 만나 하마터면 급류에 휩쓸려 일가족이 몰사할 뻔하기도 했다. 석모도에 갔을 때는 불친절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왔다. 강화도의 밴댕이회가 유명하다지만 생선회는 어디나 비슷비슷하다.
얼마 전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회원 40명이 대중교통으로 강화도에 다녀왔다. 강동 쪽에서 전철로 송정역까지 2시간 걸렸고, 송정역에서 다시 3000번 버스를 타고 1시간 반을 달리고 나서야 강화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다음 날부터 시작된다는 장마 때문인지 날씨는 푹푹 찌고 불쾌지수가 높았다.
이번에는 시내 쪽으로 가봤다. 횡단보도 신호등을 대여섯 개 지나자 남문이 나왔다. 남문을 지나서 조금 더 가니 서문이 보였다. 서문 안쪽으로 다시 시내 도로로 되돌아 나오는 길에 용흥궁이라는 표지가 있었다. 도로 안쪽에 작은 표지판이 있어 미리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가면 지나치기 쉽다.
용흥궁은 철종이 19세 때까지 살던 사저였는데 그 후 기와집으로 새로 지었다. 성공회성당이 높은 자리에 위용을 자랑하고 있어 하마터면 못 보고 갈 뻔했다. 이 광장이 이번 관광의 하이라이트였다. 심도 직물이라는 큰 직물회사가 있던 자리라고 했다. 한쪽으로는 강화 문학관이 있고 마침 조경희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지나칠 뻔 했던 곳이 고려 궁지도 관람할 수 있었다. 강화 성당을 보고 언덕을 올라갔는데 초라한 한식 대문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고려 궁지’였다. 입장료는 900원, 경로우대는 무료였다. 서울 선정릉의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곳인데 이곳이 바로 고려시대 몽고의 침략 당시 도읍을 개성에서 강화로 옮긴 곳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왕이 있었던 곳이다. 1232년부터 39년간이었다. 그 당시에도 불에 탔고 개화기에도 프랑스 선원들이 불에 태워 다시 지었다. 이곳에는 그 유명한 외규장각이 있다. 전철 한 칸의 3분의 1 정도 되는 작은 건물이다. 조선의궤를 따로 보관하던 곳인데 프랑스 선원들이 훔쳐갔던 의궤를 얼마 전 프랑스에서 영구 반환받아 조명을 받았던 곳이다.
고려 궁지 성벽을 따라 북문 쪽으로 올라갔다. 아름드리 벚꽃 나무들이 도열해 있었다. 제철에 오면 볼 만할 것 같았다. 강화도에도 둘레길이 있다. ‘강화 나들길’이라 하여 6시간짜리 코스가 20개나 있다. 지금 이웃 교동도에는 연육교가 있어 강화도와 연결되고 석모도도 곧 다리가 완성될 예정이다. 자동차가 있으면 하루 일정으로 교동도까지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없으며 1박 정도 예상해야 한다. 오가는데 너무 멀어 진이 다 빠지는 것 같다. 그래도 강화도는 서울의 관문으로 외세 침략을 일선에서 막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1970년대 서울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앞으로 역사와 관광의 이점을 잘 살린다면 가볼 만한 장소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