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바다의 새벽, 시루섬이 잠긴 바다가 어슴푸레하다. 수평선 위로 떠오른다는 아침 해는 간데없다. 심상찮은 기후와 미세먼지 나쁨 수준도 한몫했다. 간밤에 뿌린 비로 하늘이 맑아졌으려나 했지만 새벽이 되어도 구름에 잔뜩 가린 채 신비롭다. 작은 해변가 시루섬은 고성 상족암군립공원 해안 끄트머리에 그렇게 무심히 비경을 숨기고 있었다.
경남 고성군 시루섬은 떡시루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근래 들어서는 케이크섬으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이름이 어디 이뿐이랴. 밀물과 썰물에 따라 섬과 육지로 바뀌는 모습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끊임없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도 오직 그곳에 그림처럼 떠 있는 시루섬은 잔잔한 물속에서 또 하루를 시작한다.
바다 냄새를 품은 새벽 공기가 가슴 깊이 파고들어 시원하다. 고요한 바다 위에서 숱한 세월을 보낸 시루섬은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 잠겨 있다. 지금도 여전히 탄성이 절로 나오는 일출과 일몰은 물론이고 한밤이면 별을 좋아하는 이들이 찾아드는 곳, 그렇게 우주의 신비를 담아 언제나 명장면을 연출하는 섬이다.
시루섬은 세월을 켜켜이 쌓은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이 에워싸고 있다. 물이 들고날 때마다 사람들은 맨손으로 해조류를 집어 올린다. 갯바위에 걸터앉아 바다낚시의 즐거움을 낚아 올리는 낚시꾼의 모습도 더러 보인다. 겨우내 무채색 색감이던 바다에서 상큼한 초록의 파래가 흐르는 물 따라 빗질하듯 씻겨 내려가는 모양 또한 시원하다.
해변가는 수천수만 년을 구르고 굴러 반질반질한 몽돌들로 가득 채워졌다. 무수한 세월이 담긴 바윗돌이 지나는 나그네에게 걸터앉도록 자리를 만들어주고, 날마다 파도를 만나며 오늘도 시루섬을 이룬다. 시루섬 몽돌해변의 여유로운 풍경과 새벽 공기의 개운함은 비길 데가 없다.
바다 건너편으로 솟아오른 작은 섬들이 마주 보인다. 시루섬 오른쪽 뒤로 보이는 섬은 봄이면 분홍빛 진달래가 화사한 사량도다. 크고 작은 다도해 중에서 시루섬 왼쪽으로 봉긋이 솟은 두 개의 섬이 질매섬이다. 섬사람들은 가슴을 닮았다 하여 유방섬이라 부른다. 날 좋은 때는 이곳에 앉아 섬 사이로 떠오르는 유방일출(乳房日出)과 다도해의 절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고 하니 한시름 놓고 일출을 보고 싶을 만하다.
물이 완전히 빠졌을 때의 시루섬은 태곳적을 연상시킨다. 직접 가까이 다가가 시루떡처럼 쌓이고 쌓인 바위 위를 걷고 섬의 풍광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시선 닿는 모든 것이 바다와 하늘이고, 그 사이에 자리한 섬과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품은 몽돌과 바위다. 수억 년의 시간을 간직한 섬의 속살을 바닥까지 들여다보고, 갯바위로 연신 파도치는 바다 풍광은 가슴을 뛰게 한다. 거룩한 세월이 담긴 시루섬이다. 태곳적 순수한 자연을 들여다보면서 가슴 벅찬 시간이다.
동해 최북단 강원도에 고성이 있고, 이 땅의 남쪽에는 경남 고성이 있다. 남해의 바닷가 마을 고성은 근처에 통영이 있고 사천과 진주가 둘러 있어서 먼저 언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행지로서 고성을 말할 때 오히려 주변 지역이 등장하기 일쑤다. 이를테면 시루섬에 이어서 고성의 다른 지역이 아닌 삼천포 쪽으로 여행 노선을 잡기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경남 고성의 가치를 찾아 떠나는 이들이 늘어났다.
시루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고성 상족암군립공원의 명승지 상족암과 인근 덕명리 일대의 공룡 발자국 화석지는 고성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중생대 백악기 공룡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화석 산지인 상족암군립공원은 1억 년이 넘는 시간을 선명하게 간직한 신비로운 지역이다. 핫플레이스라며, 멋진 포토존이라며 사람들이 몰리는 곳과는 확연히 다르다.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본다면 실속 있는 여행지가 고성이다. 해안 풍광이나 수려함의 극치 또한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절경이다.
남해의 바닷가 제전마을 입구에서 시작되는 해변길 옆으로 층층의 기암괴석을 지난다. 제전항 입구의 해변에는 바지를 걷어 올린 채 소라를 줍고 모래놀이를 하며 노니는 아이들이 보인다. 따뜻한 남쪽 바다다. 모래톱 옆으로는 언제적 화석인지 모르는 너른 바위가 몇 겹씩 겹쳐서 펼쳐져 수억 년 전의 위용을 뿜어낸다.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무 산책로가 길게 이어져 있고, 데크 아래로 내려가 해변의 화석과 바다를 만난다. 공룡 발자국이 이상할 것 없을 만큼 화석으로 남은 암반과 돌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공룡이 이렇게 이동했구나 하면서 발자국 따라 너도나도 발을 대보기도 한다. 이렇듯 상상 속 세계가 현실이 된다.
경상남도 청소년수련원 앞 몽돌해변까지 가면 누구나 바다로 내려선다. 바다를 앞에 두고 갯돌이 굴렀을 시간을 가늠해보는 몽돌밭이다. 여행자들이 하나씩 쌓아 올린 돌탑이 해안 풍경을 이루었다. 층층마다 담긴 소망은 민속신앙이나 종교를 초월한 맹목적인 믿음이다. 누구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가만히 돌 하나 얹는다.
몽돌해변에서 바라보는 봄 바다, 널따란 암석이 층을 이루어 마음대로 쭉쭉 뻗친 모양새로 파도를 맞고 있다. 낮은 언덕을 오르내리다 보면 남쪽 바다의 최고 절경 고성 상족암(床足巖)이다. 떨어져서 보면 밥상 다리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 상족암은 무수한 암반이 겹겹의 층을 이루었다. 푸짐하게 밥상을 차려내도 천년만년 견딘 굳건한 상다리가 휠 염려는 없겠다.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해안의 상족암은 1983년 군립공원으로 지정, 주변 일대를 모두 포괄하는 상족암군립공원이다.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지이자 천연기념물 제411호다. 수억 년 퇴적층의 지각변동으로 생겨난 기묘한 모습을 보면 단박에 압도된다. 대형 구들장이 겹겹이 층을 이룬 듯한 암벽 속으로 뚫린 동굴 또한 신비롭다. 고작 백 년쯤 겨우 사는 인간들이 수억 년의 세월을 견딘 동굴 속을 찾아들어 신기한 듯 들락날락한다. 그 옛날 선녀들이 옥황상제에게 바칠 금의를 짜고 목욕을 하던 선녀탕이 웅덩이가 되어, 사람들은 일렁이는 실루엣과 함께 사진 찍기에 열을 올린다. 태고의 동굴 밖으로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유람선이 지나가고 봄 바다 위로 윤슬이 빛난다.
‘트로트의 황제’ 설운도(64)의 노래에는 특별함이 있다. 그의 노래에는 추억이 녹아 있고(사랑의 트위스트), 아픈 이별의 기억이 떠오른다.(보랏빛 엽서) 힘든 순간 위로가 되어주기도 했다.(다함께 차차차) 설운도가 대한민국 국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지 벌써 40년이다. 그 스스로도 “오랜 시간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 않냐”고 말할 정도로 가수로서 자부심이 있다. 그렇다고 권위적이거나 까탈스럽지 않다. 오히려 누구보다 젊고 열린 마음을 갖고 있고, 시대를 읽는 눈을 갖고 있다. 40년의 역사는 결코 그냥 써지지 않았다.
설운도는 ‘트로트계의 싱어송라이터’로 통한다. 그는 노래도 잘 부르지만 작곡 실력도 뛰어나다. 설운도의 히트곡 ‘쌈바의 여인’, ‘보랏빛 엽서’, ‘사랑이 이런 건가요’ 등은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더불어 ‘사랑의 트위스트’, ‘여자 여자 여자’는 설운도가 작곡하고 아내 이수진이 작사한 곡들이다.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의 현실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설운도가 임영웅에게 선물한 노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가 대박 나기도 했다.
이처럼 시대를 풍미하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진정한 가수, 설운도. 그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타고난 DNA로 가수가 됐지만, 꾸준한 노력 없이는 오늘날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국회의원들을 보면 2선, 3선 계속하잖아요. 그러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하나요. 우리도 똑같아요. 노력하지 않고 히트곡이 없으면 안 되죠. 그래서 지금도 한해 한해 열심히 사는 거죠. 노래 연습도 열심히 하고, 음악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작곡도 계속하죠. 제가 트로트 가수 작곡가 중 현대적인 감각의 노래를 많이 만들잖아요. 저는 현재 어떤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지 연구를 굉장히 많이 해요. 새로운 것을 추구하다 보니 한 곡 만드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죠. 저한테 곡 받으려고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이 와요.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이 있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내가 가진 작은 능력으로 도와주고 싶죠.”
가수가 될 운명
설운도에게 가수는 ‘운명’이었다. 6남매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난 설운도(본명 이영춘)는 유독 어머니를 빼닮았다. 얼굴, 성격, 그리고 노래 실력까지. 설운도의 어머니는 치과의사 아버지 밑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시청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에 노래자랑에 나갔는데 단번에 MBC 전속 가수로 발탁됐다. 그 정도로 노래 실력이 뛰어났지만, 집안의 반대로 꿈을 접어야만 했다.
설운도의 어머니는 가수가 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됐다. 꿈을 이루지 못하면 더욱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이에 그녀는 자신을 닮아 노래를 잘 부르는 설운도가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이뤄주기를 바랐다.
“어머니는 노래를 정말 잘 부르셨어요.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면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당신의 못다 이룬 꿈이 가수였기 때문에 앉으나 서나 ‘너라도 내 꿈을 이뤄다오’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귓전에 맴돌았어요. 저에게 가수가 되는 것은 과제였고, 결과적으로 효도했죠. 문화관광부 주최로 수여하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이 있어요. 1995년에 어머니께서 그걸 받으셨는데 정말 많이 우셨어요. ‘엄마의 한을 풀어줘서 정말 고맙고 기쁘다’고 하셨죠.”
설운도는 부산에서 알아주는 금수저 출신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기울어졌고 어머니도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울산의 한 회사 구내식당을 운영했다. 설운도는 어머니를 보러 울산에 갔다가 울산 MBC 주최 노래자랑에 출연하게 됐다. 그때 불과 열여섯 살이었던 설운도. 놀라운 노래 실력으로 울산 대표로 뽑혀 서울 MBC에서 진행하는 전국 노래자랑까지 진출했다. 당시 그는 금메달을 네 개 받았고,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저는 늘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요. 어머니는 제가 꿈도 이뤄드리고, 잘되는 모습을 보시고 돌아가셨잖아요.(2016년 별세) 그런데 아버지는 제가 열일곱 살 때 돌아가셨으니까…. 제가 서울 MBC에 갔다가 금메달을 하나씩 들고 돌아오면, 아버지께서 동네에 자랑하고 다니시던 모습이 생각나요. 아버님이 살아 계셨으면 제가 잘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그게 늘 가슴이 아파요.”
가수로서의 재능을 확인한 설운도는 이후 부산의 극장 쇼, 라이브 클럽을 전전하며 무명 가수로 활동했다. 부산에서도 인기가 많고 돈을 잘 벌었기 때문에 굳이 서울에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때 군 복무를 마친 그에게 숙자매의 매니저 안태섭 씨가 찾아왔다. 안 씨의 권유로 설운도는 1982년 KBS ‘신인 탄생’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프로그램이다.
설운도는 5주 연속 우승하며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고, 이듬해 ‘잃어버린 30년’을 발표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특히 이 곡은 ‘남북 이산가족 찾기’ TV 방영 당시 메인 곡으로 선정됐고, 설운도의 구슬픈 목소리는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 뜨거운 관심 속에 설운도는 그해 KBS ‘10대 가수상’을 수상했다.
“열여섯 살 때부터 극장 쇼부터 지방 업소를 다니고, 고생을 많이 했죠. 그래서 공부를 제대로 못 했어요. 졸업도 못 하고 중퇴하고 그랬죠. 특히 제가 서울로 올라왔을 때는 어머니께서 하시던 사업이 망해서 정말 어려웠어요. 저도 자리 잡은 게 아니라 도와주지 못했죠. 그러는 바람에 엄마하고 형제자매들이 다 흩어졌어요. ‘잃어버린 30년’이 히트치면서 다시 만났죠.”
2세로 이어진 가수 DNA
마침내 오랜 무명 생활을 청산하고 주목받은 설운도. 그러나 그의 가수 인생은 쉽게 가는 법이 없었다. 1984년 회사에 문제가 생겨 문을 닫게 된 것. 설운도는 당시에 대해 “졸지에 홀로서기를 하는데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더라. 10대 가수에서 밑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회상했다. 아직 어린 나이였던 그는 이를 감당하지 못했고 일본으로 도피했다. 그는 3~4년 일본에서 엔카 공연을 했다.
그리고 돌아온 설운도는 1991년 ‘다함께 차차차’를 발표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MBC ‘10대 가수상’을 2년 연속 받으며 트로트 4대 천왕으로 급부상했다. 듣기만 해도 힘이 나는 ‘다함께 차차차’는 현재도 국민 송으로 통한다. 더불어 그해 겹경사가 터졌다. 설운도는 이수진과 결혼했고, 이듬해 설운도 작곡·이수진 작사 ‘여자 여자 여자’가 탄생했다.
설운도와 이수진의 결혼은 당시 큰 화제였다. 이수진은 1980년대 ‘빨간 앵두’, ‘자유부인’ 등에 출연한 영화배우였다. 연예인 커플, 특히 가수와 배우 커플은 흔치 않았기 에 두 사람은 더욱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수진은 결혼 후 설운도의 노래를 작사했고, 현재는 의상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설운도의 무대 위 화려한 의상들은 그녀가 만든 것이다. 설운도의 의상들이 유독 멋스러운 이유는 아내의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는 파티 장소에서 만났는데, 옆자리에 앉았어요. 외모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더라고요. 말을 붙였는데 고향이 부산 쪽인 양산이라는 거예요. 더욱 호감이 갔죠. 사실 제가 숫기가 없는데 이 여자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아내가 노래를 좋아한다고 앨범 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유명한 작곡가라며 곡을 주겠다고 거짓말로 아내를 꾀었어요. 사실 아내 노래 실력은 형편없었는데, 당시 누가 아내를 가수로 키우려고 바람 잡았던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아내와 데이트를 했는데 큰아들이 바로 생겨버린 거예요. 이 여자를 만나라는 하늘의 뜻이구나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동거하다가 애 낳고 결혼했어요.”
설운도는 아내 이수진에게 ‘강원도 포수’라는 별명을 지어줬다고 밝혔다. “강원도는 워낙 숲이 우거져서 한 번 들어가면 못 나온다. 우리 아내는 돈을 벌어다 주면 돈이 밖으로 안 나온다. 그만큼 알뜰하다는 소리다. 덕분에 애들도 잘 컸고 내조를 잘 해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내와의 결혼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했다. 둘 다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자기주장이 강해 부부 싸움을 많이 했다고. 설운도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남 이승현은 1990년에 태어났고, 이듬해 둘째 아들 이승민이 태어났다. 막내딸 이승아는 1996년생이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가수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첫째 아들 이승현은 루민이라는 예명으로 가수로 활동 중이다. 그는 아이돌 그룹 포커즈, 엠파이어로 활동했고, 최근에는 솔로로 신곡을 발표했다. 딸 이승아는 가수 지망생으로 KBS 2TV ‘트롯 전국체전’에 출연한 바 있다. 설운도는 이승아의 근황에 대해 “가수는 물론 연예계 생각을 접었다”고 강조했다.
“솔직히 저는 엄마, 아빠가 연예계에 있었지만, 아이들은 다른 길을 가길 바랐어요. 애들이 워낙 하고 싶어 하니 막지는 못하지만, 노래로 경쟁 사회에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고 봐요. 제가 어디 나가서 ‘우리 아들입니다’ 소개하는 그런 것을 못 해요. 우리 딸도 오디션에 나왔는데, 제가 심사위원인데도 내 딸 나온다고 아무한테도 말 안 해서 떨어졌잖아요. 아무리 딸이라도 실력이 안 되면 떨어져야죠.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노력하고 실력도 향상돼요.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좋죠.”
다시, 트로트 전성기
2020년 TV조선 ‘미스터트롯’으로 트로트 열풍이 이어지면서 설운도는 제2의 전성기를 썼다. 지난해 ‘미스터트롯’ 우승자 임영웅 효과로 설운도의 노래 세 곡이 동시에 히트를 쳤다. 설운도는 이를 두고 “기적 같은 일”이라고 표현하면서 “영웅이와 나는 묘한 조합이다. 둘의 시너지가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짚었다.
먼저 임영웅이 ‘미스터트롯’에서 ‘보랏빛 엽서’를 불러 설운도는 23년 만에 역주행 신화를 썼다. 또한 2019년 나온 설운도의 노래 ‘사랑이 이런 건가요’도 임영웅이 부르며 재조명됐다. 이에 설운도는 임영웅에게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를 작곡해 선물해줬다.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뮤직비디오는 조회 수 5000만 뷰 돌파를 앞두고 있다. 트로트 역사상 유례없는 인기다.
“‘보랏빛 엽서’가 히트하면서 나도 동반 성장하게 된 거죠. 영웅이한테 고맙잖아요. 그래서 곡 선물을 해주고 싶었는데,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가 영웅이한테 가게 된 거죠. 많은 국민들이 노래를 좋아해주셔서 작곡가로서 기쁘고 뿌듯해요. 요즘 사랑이 메말랐잖아요. 사랑의 전도사 같은 노래예요. 삭막한 세상에 모두가 이해하고 용서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후배 영웅이 덕을 많이 봤으니까 늘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걔가 속이 깊어서 고마움을 알고 항상 감사해하는 친구예요.”
설운도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히트곡을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사랑이 이런 건가요’를 꼽은 것. 그는 “젊은이들이 트로트를 좋아하게 만든 노래다. 펑키한 리듬이라 트로트 느낌도 안 나고, 이 노래에 자부심이 있다”고 설명했다. 설운도는 트로트가 중장년층의 전유물이 아닌 젊은 세대에도 통하는 음악이 된 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트로트가 재조명받은 이유로 신선해졌다, 맑아졌다, 수준이 높아졌다, 트로트 하는 친구들이 젊고 다양한 연령층의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등을 꼽을 수 있어요. 예전에는 트로트는 부모들이나 듣고 옛날 사람이 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트로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죠.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고 우리의 노래구나라고 사람들이 인식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트로트를 좀 더 신선하고 수준 높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설운도는 이처럼 젊은 세대와 통합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앞날을 선도해가야 한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는 미래 유망 사업인 NFT에도 관심이 아주 많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대체 불가 토큰을 말한다. 설운도는 ‘잃어버린 30년’ LP를 등록해 NFT 기부 챌린지에 참여했다.
“NFT로 기부 챌린지 말고 조만간 새로운 도전을 할 예정이에요. NFT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재산이에요. 죽더라도 나는 그 가상공간에 살아 있게 되죠. 가상공간이라는 것이 예전에는 우주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오던 것이었지만 앞으로는 현실이 되고,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닌 세상이 온 거죠. NFT는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에 지금 해야 해요. 나중에 가서 하면 늦죠.”
설운도는 “트로트는 나의 모든 것”이라면서 파란만장한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그는 어린 나이에 부산 밤업소를 돌아다니며 노래하고 좌절도 맛봤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힘든 순간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노력을 배로 했기 때문에 기회가 찾아왔고 영광의 순간을 맞이했다고 생각한다. 설운도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K-트로트’다. 한국의 정서가 담긴 트로트가 전 세계에서 통하길 바라는 대부의 마음이다.
“저는 트로트라는 장르를 고집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트로트 가수로 남을 거예요. 트로트 가수로 무대에서 노래하다 죽어야죠. 힘들었던 역경을 지나오면서 지금의 제가 탄생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마음속에 항상 희망과 꿈,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바라는 ‘K-트로트’라는 개념은 전 세계인이 트로트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K-트로트’ 문을 누가 열지는 모르겠어요. 누군가는 그 문을 열어야 하고, 그다음에는 모두가 주력해야겠죠. 세계 문화를 주도해가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만들어가자는 거죠.”
도예가 신상호(74)는 실험적 현대 도예의 전위이자 전사다. 그의 작업엔 형식이 없으며 경계가 없다. 일찍이 전통 도예의 권위자로 부상했던 그는 해적선과 같은 거침없는 도발과 활보로 혁신적 도예를 구현했다. 이런 그가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과 맺은 인연이 깊다. 돔하우스에 ‘파이어드 페인팅’ 타일을 만들어 붙인 장본인이며, 미술관 초대관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니까. 미술관 설립 과정에도 깊이 간여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항해의 방향을 그가 노정했다. 즉 탄탄한 초석을 깔아놓은 셈이다.
“전통 분청만이 아니라 현대미술까지 아우르고, 나아가 도자와 건축이 만나는 전시가 펼쳐지는 특성화된 미술관을 만들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이걸 시에 제안했는데 흔쾌히 수용하더라. 지방 소도시가 미술관을 만들어 지속시킨다는 게 실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김해시가 해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극복하고 외국에서도 관람객들이 찾아오는 미술관으로 성장시켰다. 아마도 김해시로선 보물 같은 공간일 거다.”
좋은 미술관이란 어떤 걸 말할까?
“개성적인 건축, 그리고 새로운 콘텐츠, 이렇게 두 날개로 비상해야 한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이 모두 이 둘을 겸비했다.”
선생이 만난 가장 인상적인 미술관은?
“스페인에 있는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이다. 빌바오는 원래 철강 산업의 메카로 풍요로운 도시였으나 포항제철에 밀려 폐허처럼 망가졌다. 그러나 구겐하임미술관 건립으로 마법과도 같은 반전을 맞이했다. 미술관으로 그야말로 대박이 났으니까.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관광객들이 미술관 앞에 줄을 섰고, 돈이 몰렸으며, 마침내 금융도시로 떠올랐다. 미술관 하나가 가져오는 시너지 효과가 이렇게 강력하다.”
구겐하임미술관의 무엇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나?
“건축물의 힘이다. 티타늄 강판으로 외벽 전체를 마감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을 만들어낸 것이다. 재미있는 건 티타늄 강판의 입수 경로다. 러시아가 우주로 쏘아 올리기 위해 만들다가 경제 사정으로 방치한 로켓의 티타늄 외장재를 사서 가져왔으니까.”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의 외벽 티타늄에 노을빛이 비치면, 미술관 앞으로 흐르는 강물에 환상적인 황금물결이 일렁인다. 관람객들은 미술관의 컬렉션은 차치하고 그 한 장면만으로도 탄성을 토한다. 외벽의 재료가 과시하는 힘이 이렇게 압도적이다. 신상호가 건축과 도자의 협주를 몹시 중시하는 이유가 집힌다.
그나저나 도예는 왜 대중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걸까. 넌, 저리 가라! 미술계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건 아닌가.
“그 점에 내가 한이 맺혔다.(웃음) 과거엔 대학에 도예과가 많았으나 지금은 거의 폐과 되고 소수만 남았을 정도다. 기능적 쓰임새와 미에 치중해온 도예 풍조 탓이다. 철학과 실험정신을 개발해 치고 나가야 한다. 과거와 미래를 함께 아우르는 비전을 가지고. 그러자면 도예 예술가들이 더 공부해야 한다. 세계로 나아갈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니까.”
신상호에 따르면 새롭지 않은 건 예술도 아니다. 남의 흉내를 내는 건 사망진단서를 자체 발부하는 행위와 같다고 보는 것 같다. 이런 그가 요즘 회심의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자그마치 100호 내지 200호 사이즈에 이르는 ‘파이어드 페인팅’ 작업에 빠져 있다는 것.
그런데 광한루원의 본색은 ‘춘향전’과 무관하다. ‘춘향전’ 스토리의 한 배경으로 차용됐을 뿐이다. 독자적인 조성 역사와 미적 가치를 지닌 조선 중기의 빼어난 원림이라는 데 광한루원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그럼 주객전도? 마치 곁다리처럼 끼어든 ‘춘향전’의 사랑 이야기가 대중에게 각인돼 조선 원림으로서의 드높은 가치는 사뭇 뒷전으로 밀린 게 아닌가.
사실 광한루원이 ‘춘향전’의 배경 장소로 사람들에게 부각되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광한루원과 ‘춘향전’의 연관성을 표 나게 드러낸 최초의 구조물인 사당 ‘춘향사’가 들어선 때가 불과 90여 년 전이니까. 광한루원의 600여 년 역사에 비하면 새 발의 피 같은 연원이다.
춘향사 건립 이후 현대에 이르러선 춘향관, 월매집, 완월정, 전통놀이체험장 등을 꾸미고, ‘춘향제’를 흐벅지게 펼치면서 본격적인 관광지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이건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국가적 문화유산인 조선 원림이 관광을 위한 갖가지 시설물들과 맥락 없이 뒤섞이면서 정체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진 게 아닌가. 일부 전문가들은 정색하며 상업주의를 자제하라고, 원림의 본질과 원형을 유지하는 일에 공을 들이라고 일갈한다.
그도 그럴 것이 광한루원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을 마치 ‘춘향전’ 영화의 세트쯤으로 여기며 즐기다가 돌아간다. 유심히 살펴보고 감동을 누릴 만한 멋진 조선 원림을 두 눈으로 보고서도 정작 또렷이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시 눈여겨보는 관점이 필요할 텐데, 관광 소재로 들어앉은 시설물들을 시야에서 걷어내고 원림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겠다.
광한루원은 중심 누각인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그 일원에 조영된 관아 원림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관아가 주도해 본때 있게 조성한 이 원림의 스케일은 상당히 웅장하다. 깨알처럼 섬세하게 구사한 디테일로 아름답다. 유례가 드물도록 거대한 조선 원림이다. 특히 광한루는 고유한 건축 메커니즘으로 빼어나 갈채를 받을 만하다. 지방 관아가 지은 누각으로는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 삼척의 죽서루, 평양의 부벽루 등이 있지만, 광한루를 개중 으뜸으로 친다.
광한루는 조선의 명재상 황희가 남원에서 유배를 살며 지은 작은 누각 광통루(廣通樓)에서 유래했다. 이 광통루를 남원부사 민여공이 1434년에 증축한 게 지금의 광한루다. 광한루라는 이름은 1444년 전라감사 정인지가 지었다. “아하, 여기가 바로 달나라의 미인 항아가 산다는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로구나!” 이렇게 찬탄한 정인지가 광한루라 이름 붙였던 거다.
투박하면서 묵직한 기운을 뿜는 돌기둥들에 떠받쳐진 광한루는 월궁(月宮)을 상징한다. 천상의 궁궐인 셈. 이렇게 천상계를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천상계에 흔전만전 지천으로 뿌려진 것은 별인데, 광한루 전면의 너른 연못은 다름 아닌 은하수를 상징한다. 은하의 못 가운데에선 세 개의 섬을 만들어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표상했다. 네 개의 홍예로 만들어진 오작교는 견우성과 직녀성이 칠월칠석에 만나는 다리다. 베를 짜는 직녀에게 필요한 도구인 지기석은 연못 속에 넣었고, 견우를 위해서는 은하수를 건널 때 쓰일 배 하나를 만들어 수면에 띄웠다.
관아원림이란 한마디로 고을의 벼슬아치들이나 오고가는 시인 묵객들이 회포를 풀며 노닌 야외 정원이다. 산수엔 오고감이 없지만 인간사는 살면 살수록 시들어 덧없다. 옛사람들은 이곳에서 달과 별을 끌어안고 우주적으로 부푼 상상력을 즐기며 야유회를 즐겼다? 그렇게 봐야 할 것 같다. 벼슬이든 공부든 지상의 질서와 규율에 속박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은 이곳에서 정신의 나래를 자유롭게 펼친 것이다.
원림은 원래 자연과 소통하고 싶은 선비들이 지닌 갈망의 산물이다. 이 점에서도 광한루원은 빼어나다. 오늘날엔 원림 곁으로 대로와 강변 둑이 생겨 경관이 크게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저 옛날엔 숲과 강, 멀리 지리산 자락까지 한눈에 쓸어 담을 수 있는 자연의 도가니였다. 관광지처럼 번잡하다고 만만하게 볼 원림이 아니다.
답사 Tip
광한루원 연못가에 어우러진 거목들이 예스럽고 웅숭깊은 운치를 자아낸다. 500살 남짓한 나이를 지닌 버드나무, 팽나무, 능수버들 등 오래 산 나무들의 거쿨진 자태를 보라! 이곳이 아니고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지난 7월, 우주여행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7월 11일 오전 7시 40분에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7월 20일 오전 6시 12분에는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달과 화성 탐사용 우주선 ‘스타십’을 개발해 그 뒤를 쫓고 있다. 앞다투어 우주로 떠나는 나이 든 ‘회장님’들은 로망으로 존재하던 우주여행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 달에 발을 딛는 우주인을 보며 상상만 했던 우주여행, 국내에서도 정말 가능한 걸까?
시니어가 우주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제각기 다양하다. 정달호 전 이집트 대사는 “기후 변화나 코로나19 사태를 보면 지구에 한계가 온 것 같다. 인류의 미래가 우주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주가 어떤지 직접 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양승국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변호사는 “영화처럼 몸이 둥둥 뜨는 무중력 상태에서 파란 지구를 내려다볼 걸 상상하면 짜릿하고 흥분된다”며 “실현 가능성이 낮을 것 같아 꿈만 꾸고 있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첫 번째로 신청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아직까지 한국인이 우주여행을 다녀온 사례는 없지만, 비슷한 사건은 있었다. 2008년 4월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다녀온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의 이야기다. 2006년 진행된 우주인 선발 프로젝트는 당시 큰 이슈였다. “인생의 마지막 열정을 우주에서 태우고 싶습니다. 우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손자 손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당시 예순일곱의 나이로 최고령 도전자인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이 남긴 메시지는 사회에 울림을 주었다. 이외에도 산악인 고(故) 박영석 대장, 카레이서 황진우 등의 명사가 도전해 더욱 화제를 모았지만, 우주행 티켓을 거머쥔 주인공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의 이소연 박사였다.
이 씨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9박 10일간 머무르고 무사히 귀환했다. 이 씨는 전문적인 훈련 과정을 거친 직업 우주인으로, 그녀의 여정은 현재 이뤄지고 있는 민간 우주여행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그러나 당시 국민들은 ‘1호 우주인 탄생’이라는 경사를 지켜보며 머지않은 미래에 누구나 우주를 여행할 수 있기를 꿈꿨다.
실제로 이소연 씨의 귀환 직후 인터뷰는 시청률 조사회사 TNS미디어코리아 기준 17.2%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높은 관심을 받았다. 당시 국민적 관심을 인식한 듯 국내 한 관광사는 유사 우주관광 상품을 내놓았다. 2008년 판매된 ‘우주에서 살아남기-우주항공 체험과 러시아 일주 6일’이 그것이다. 관광객들은 직접 우주로 떠나는 대신, 러시아 여행 중에 모스크바의 가가린 우주훈련센터를 방문했다.
로켓보다 열기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실제로 우주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지만, 오히려 국내 분위기는 예전만 못하다. 바다 건너 미국에선 우주여행 티켓을 팔며 분위기가 달아오른 모양새지만 우리나라에선 13년 전의 유사 우주 관광상품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 기술로는 짧게 보면 10년, 길게는 100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어릴 적 상상하던 ‘달나라로 떠나는 수학여행’은 정말로 요원하기만 한 걸까.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술력을 갖춘 어떠한 기업이 나타나 우주여행만을 목표로 기술 개발에 나서지 않는 한 10년 안으로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주여행 산업 진출을 꿈꾸는 국내 기업이 있냐고 묻자 “현재로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한화그룹의 방산·항공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도 “구체적인 계획이 없으며, 아직 우주 산업 전반에 투자하는 단계라서 우주여행과 같은 세부적인 부분을 논의하기는 이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휴성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미래스마트건설연구본부 본부장은 “기술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돈”이라고 콕 집어 지적했다. 우주여행에 필요한 발사체를 제작하고, 우주정거장처럼 궤도를 도는 우주호텔을 건설하는 일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우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필요한 비용도 수백억 원 수준이다 보니 일상화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로켓 대신 열기구를 도입할 경우 시니어에게도 희망이 있다. 열기구를 이용하면 우주복을 입지 않고, 우주에서 적응하기 위한 훈련이나 체력 단련을 거치지 않아도 우주와 비슷한 환경에서 푸른 별 지구를 내려다볼 수 있어서다. 실제로 스타트업 ‘스페이스퍼스펙티브’(Space Perspective)는 특수 제작될 열기구 ‘스페이스십넵튠’(Spaceship Neptune)을 이용한 관광상품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열기구의 강점은 로켓보다 천천히 상승해 탑승자가 버텨야 하는 중력가속도로 인한 압력이 비교적 낮다는 데 있다. 즉 탑승자의 신체 조건이 완화된다. 현재 우주행 티켓을 판매 중인 블루오리진·버진갤럭틱의 우주여행용 로켓에 탑승하려면 2~3G를 버텨야 한다. 2~3G는 급회전을 하거나 추락하는 롤러코스터에서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안형준 연구위원은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는 건강한 분이라면 탑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떨어지는 시니어들이 ‘열기구 우주여행’을 노려볼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엔 국내에서도 우주여행을 성공해본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 허환일 충남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수요가 있다면, 외국 기업이 제작한 발사체를 타고 국내 기업이 우주관광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가 가능할 수 있다”며 “아주 빠르면 10년 후에도 일반인의 우주여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니 우주여행을 꿈꾼다면 지금부터 체크리스트를 챙겨 준비해보자. 꿈꾸는 자에게 불가능이란 없고, 기다리는 자에게 기회가 올 테니까.
외출이나 퇴근하고 집으로 가야 하는 순간,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제약이 발목을 잡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떠나기엔 체력과 힘에 부쳐서, 가족이나 반려동물이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등등.
그러나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외출이나 퇴근 후 지친 시니어의 몸과 마음을 달래줄, 집에서도 여행온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매일 보는 창밖 풍경 지겹다면, 윈도우 스왑(window swap)
‘윈도우 스왑’(window swap)은 지구촌 곳곳에 사는 누군가의 창문 밖 풍경을 약 5~10분간 영상으로 구경할 수 있는 사이트다. 지난해 여름 개설된 이 사이트는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한 부부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거주하는 지인이 매일 보는 창밖 풍경이 지겹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듣고 고안해냈다.
해당 사이트에 접속해 메인 페이지 내 ‘세계 어딘가에서 새 창 열기’ 버튼을 누르면 랜덤으로 세계 곳곳의 창문 밖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창을 새로고침하거나 버튼을 누르면 다른 나라, 새로운 지역의 창밖을 감상할 수 있다. 컴퓨터나 모바일 둘 다 접속할 수 있으며, 큰 화면에 띄워놓고 소리까지 켠다면 더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세계 각지의 창문 밖 풍경은 사이트 전용 이메일로 보내진 영상들로 채워진다. 영상 좌측 상단에 보낸 이의 이름이 나와 있고, 우측 상단에는 나라와 영상 위치가 소개된다.
미국과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 세계 각지에서 보낸 해질녘 노을이 비치는 바닷가, 불 켜진 도심의 야경, 정원에서 낮잠을 자는 반려동물, 골목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등 다양한 영상이 코로나19로 잊고 지냈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줄 것이다.
시원한 계곡과 기차 소리 그립다면…한국관광공사 힐링사운드 여행 ASMR
화면 보는 것조차 지친다면 눈을 감고 귀를 활짝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홈페이지에서는 힐링 귀캉스를 위한 여행 ASMR(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콘텐츠는 흠뻑 노는 물놀이 여행, 맑고 푸른 산 여행, 체험이 있는 로컬 여행 등 세 종류 12가지의 소리로 구성돼 있다. 거제 학동흑진주몽돌해변의 파도 소리, 평창 월정사의 은은한 풍경 소리, 삼척 하이원추추파크의 폐역을 달리는 증기기관차 소리, 남해 상상양떼목장의 양떼 우는 소리 등 클릭 한 번으로 산과 바다, 초원과 계곡을 오갈 수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다양한 여행지의 생생한 소리를 들으며 집에서 편하게 힐링하고픈 시니어에게 안성맞춤이다.
여름의 막바지인 지금 이 순간 겨울의 정취가 그리울 시니어를 위한 맞춤형 ASMR 콘텐츠도 있다. ‘겨울을 느껴봐! 힐링사운드 여행’에서는 철원 한탄강에 부는 매서운 강바람 소리, 충주 목계솔밭에서 모닥불 타는 소리, 포천 산정호수에서 꽁꽁 언 호수 위에서 얼음 스케이트 타는 소리 등 시니어의 향수를 자극할 다양한 소리가 준비돼 있다. 컴퓨터와 모바일 둘 다 접속할 수 있다. 편하게 누워 그리운 곳의 소리를 ASMR로 즐겨보자.
대세는 우주여행? 방구석에서 떠나는 우주여행 ‘Space Videos’
색다른 힐링여행을 원한다면 아예 지구 밖으로 떠나보자. 직접 떠나는 우주여행은 아직 요원하지만 유튜브 채널 ‘우주영상(Space Videos)’과 함께라면 우주여행을 떠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1200여 개의 우주 동영상을 보유한 이 채널에서는 우주정거장에서 실시간으로 촬영한 지구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미항공우주국(NASA)이 송출하는 실시간 영상을 24시간 내내 끊김 없이 제공한다.
이 외에도 알프스 산맥, 안데스 산지 등 세계 각지의 고원지대를 우주에서 바라본 모습, 초고화질로 즐기는 극지방의 오로라, 날짜별로 달라지는 달의 모습을 담은 영상 등 다양한 영상이 업로드 돼 있다. 평소 우주에 관심이 많았던 시니어라면 현재 우주정거장이 지구의 어느 곳을 지나고 있는지, 검은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감상하는 재미에 빠질 수 있다. 어두운 방안에서 영상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실제로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최근 개관 1주년을 맞았다. 소감은?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문을 열었음에도 1년간 관람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우리나라 항공 기술이 이렇게 대단했나’, ‘이런 역사가 있었나’ 하시는 반응이었죠. 사실 항공 정책을 담당했던 저도 개관을 준비하면서 우리 항공 역사에 관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많아요. 항공의 전 분야를 한데 모아 체계적으로 전시하는 곳이 많지 않거든요. 이 공간이 그 역할을 최초로 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자긍심이 있죠.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전시물은?
아무래도 박물관 개관 날짜와 연관이 깊은 한인비행학교의 ‘스탠더드 J-1’이 가장 애착이 갑니다. 준비 과정도 쉽지 않았거든요. 당시 구매하려고 알아보니 전 세계에 세 대만 남아 있었어요. 그중 한 곳에 매입 의사를 밝히니 가격을 몇 배로 높여서 부르더군요. 예산에 한계가 있어 구매 대신 복원을 택했죠. 우리나라 최고의 복원 전문가와 함께 했어요.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기술로, 우리 최초의 비행기를 재현해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크다고 봐요.
박물관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살아 있는 비행기를 들이는 거예요. 지금 박물관에 전시된 비행기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죽어 있다고 봐야 해요. 겉면은 볼 수 있지만, 내부는 확인할 길이 없죠. 저희는 ‘디지털 수장고’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비행기 엔진, 가스 등 내부 구조를 디지털로 재현하고 관람객이 직접 다뤄볼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이제 박물관은 시청각 자료만으로는 안 돼요. 저희뿐 아니라 대부분의 박물관이 체험 형식으로 탈바꿈하고 있죠. 그런데 교통수단 중에 가장 빠른 게 항공이니, 저희가 앞서가야 하지 않겠어요?(웃음)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가?
방문객들이 박물관을 안마당처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곳이 아닌 재미있고 흥미로운 놀이 공간, ‘와우’ 소리가 절로 나오는 공간이요. 또 항공의 특징 중 하나가 ‘글로벌’이잖아요. 우리 국민뿐 아니라 공항의 환승객이나 외국인 관광객, 국내에 주재하는 외국인 방문객들도 찾아와서 우리나라의 항공 기술과 위상을 알아 갔으면 합니다. 어디서도 뒤처지지 않는 세계 1위의 항공박물관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할 겁니다.
앞으로의 운영 방향은?
박물관 주변 부지를 활용해 최첨단 교통 체험관 설립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에어택시를 비롯해 하이퍼루프 등 최신 교통수단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죠. 직원들에게 ‘우리 박물관은 하늘길 177번지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해요. 박물관 옆 김포공항과 한국공항공사, 그리고 옥상 위의 하늘까지 항공 교통과 관련된 모든 게 유산이라고 보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훗날엔 우주 왕복선 체험관도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주로 갈 수 있는 세상에 상공만 다루면 재미없잖아요. 최첨단이라는 말은 늘 꿈꾸게 하지 않나요?
최정호 국립항공박물관장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영국 리즈대학 대학원 교통계획학 석사, 광운대학교 부동산학 박사, 제28회 행정고시 합격, 건설교통부 육상교통국 육상기획관 서기관, 국토교통부 대변인,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 실장, 국토교통부 기획조정실 실장, 국토교통부 제2차관,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현 국립항공박물관 관장.
우주비행사 시험을 통과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우주선을 탈 수 없었던 80대 여성이 꿈을 이루게 됐다. 아마존 이사회 의장인 제프 베이조스가 ‘명예승객’으로 82세인 월리 펑크를 초대한 것이다.
제프 베이조스가 소유한 우주탐사기업 블루오리진은 미국에서 1일(현지 시간) “월리 펑크가 이달 20일 명예 승객의 자격으로 우주 탐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펑크는 서부 텍사스의 사막에서 발사될 블루오리진의 우주관광 로켓 ‘뉴 셰퍼드’를 타고 우주여행을 떠난다. 펑크와 함께 우주여행을 떠나는 동승자에는 베이조스와 그의 남동생 마크 베이조스, 2800만 달러(약 318억 원)를 내고 선정된 승객이다. 이들은 11분간 ‘우주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고도 100km 상공까지 올랐다가 무중력 상태를 4분 간 체험하고 다시 텍사스로 돌아온다.
조종사 출신인 펑크는 1960년대에 우주비행사 시험을 통과해 미국 최초 유인위성 발사 계획인 ‘머큐리 여성’ 13명 중 한 명이었다. 미연방항공청(FAA)의 첫 여성 감사관,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첫 여성 항공안전 수사관을 지내기도 했다.
펑크는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주비행사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여성을 우주로 보내려는 ‘우먼 인 스페이스(Women in Space)’ 계획이 돌연 취소됐다. 미항공우주국(NASA) 우주비행단은 전투기 조종 경력이 있어야 했는데, 당시 공군 전투기 조종사는 남자에게만 허락된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펑크는 60년 만에 우주비행에 대한 꿈을 이루게 됐다. 베이조스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펑크만큼 이 기회를 오래 기다린 사람은 없다”며 “이제 때가 됐다. 승무원이 된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펑크는 마침내 우주에 갈 기회를 얻게 돼 “환상적”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동영상에서 “나는 여행의 모든 순간을 사랑할 것이다. 기다릴 수가 없다”고 기대에 부푼 반응을 보였다.
펑크는 우주여행에 나선 최고령자라는 기록도 얻게 됐다. 지금까지 최고령 우주비행 기록 보유자는 1998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를 77세에 탑승한 남성 존 글렌이다. 그는 이 비행 후 여성도 우주비행을 한다는 것에 코웃음을 쳤다고 전해진다.
여성인 펑크가 공교롭게도 그의 기록을 깨게 됐다. 펑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 “그들은 ‘너는 여자라서 이걸 못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누구든지 원한다면 할 수 있다. 남들이 못했던 것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과거를 회고했다. 펑크의 사연을 보도한 AP통신은 이를 “우주적 반전”이라고 표현했다.
즐기는 취미가 있는가. 부자들의 좀 더 특별해 보이는 그것, 혹은 돈이 없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럭셔리 취미생활을 엿봤다.
브리지 게임에 빠진 슈퍼리치
한국 사람에게 가장 있기 있는 게임이 화투라면 외국에서는 트럼프 카드로 즐기는 브리지 게임(이하 브리지)이 인기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130여 개국 4000만 명이 이 게임에 열광한다.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지적인 두뇌 게임’이라는 찬사가 따라다니는데, 그 명성만큼이나 이 사교 게임을 즐기는 부호와 사회 지도자도 많다. 당장 부자의 대명사로 꼽히는 워런 버핏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이름이 나온다. 두 사람이 함께 브리지를 즐기는 모습이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이 이 게임을 소위 광적으로 즐긴다는 소문이 나면서 브리지는 세계 최고 부자의 놀이로 인식됐다. 워런 버핏은 “브리지를 잘하는 사람 3명만 있으면 교도소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빠져 있다. 버핏과 게이츠는 브리지의 장점 등을 알리며 미국의 중·고교 학생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두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시니어 세대 치매 예방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브리지 하면 인도네시아 최고의 갑부 마이클 밤방 하르토노도 빼놓을 수 없다. 경제전문지 ‘포브스’ 선정 ‘인도네시아 최고 부자 50인’에 11년 동안 1위 자리에 올라 있는 인물. 하르토노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정식 종목에 브리지를 넣기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특히 그는 당시 79세의 고령에 선수로 참가해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중국의 덩샤오핑 전 주석은 마오쩌둥 집권 당시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며 금지했던 브리지를 숨어서까지 했을 정도로 즐겼다. 이 열성적인 정치지도자로 인해 아시아권에서 중국이 브리지를 가장 많이 하는 국가가 됐다. 이외에도 미국의 아이젠하워, 케네디 대통령, 영국 윈스턴 처칠 수상 등이 즐겼으며, 조훈현 9단도 브리지 게임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주를 품는 슈퍼리치 3인방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 회장은 2000년 항공우주회사 블루오리진(Blue Origin)을 설립했다. 테슬라모터스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2년 후인 2002년 민간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X(Space Exploration Technologies Corp.)를 만들었다. ‘괴짜 CEO’로 알려진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도 2004년 민간 우주탐사기업 버진갤럭틱(Virgin Galactic)을 설립해 우주여행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 그는 10억 달러(약 1조1825억 원) 이상의 개인 자금을 우주 사업에 투자했다.
버진갤럭틱의 경우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사가 되면서 우주여행 사업이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니고 투자가 가능한 분야임을 입증했다. 2000년대 초반 이들이 민간 우주항공사를 만들 때만 하더라도 ‘저게 과연 가능한 발상인가’ 하며 젊은 부호의 허세로 여겼다. 하지만 장난처럼 보였던 도전은 취미에 머물지 않았고 정부산업의 축으로 보던 우주 분야의 문을 열었다.
이들 중 후발주자인 버진갤러틱은 두 회사를 제치고 2018년 12월 민간기업 최초로 탑승객을 태운 우주선의 대기권 밖 여행을 성공시켰다. 성공이 있기까지 각종 사고와 실패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우주여행의 꿈에 꾸준히 다가선 결과다. 특히 리처드 브랜슨 회장은 민간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여행한 인류 최초의 여행자로서 원대한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해왔다. 지난 1월 8일에는 비행기 모양의 차세대 유인 우주선 ‘버진 스페이스십 유니티’를 공개하며 차근차근 우주 정복의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 버진갤럭틱은 1인당 약 2억8000만 원을 내면 우주비행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저스틴 팀버레이크, 레이디 가가 등 유명 인물을 포함, 700명이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관광객 우주 방문 프로그램인 로켓 시스템 ‘뉴셰퍼드’를 개발해온 블루오리진은 현재까지 11차례의 시험 비행을 마쳤는데, 6명까지 탑승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귀를 자극하고 마음을 열다
남자들이 특히 빠지면 안 된다고 입을 모으는 것 세 가지가 있다. 자동차와 카메라 그리고 오디오다. 이들 세계에 눈을 뜨는 순간 수천만 원을 쏟아 붓는 일이 어렵지 않게 벌어지기도 한다. 오디오필, 오디오파일 혹은 스테레오파일 등 오디오 애호가를 지칭하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전 세계에 하이파이(Hi-Fi), 하이엔드(High-End) 오디오라 부르는 고음질 음향을 추구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꼭 슈퍼리치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오디오 마니아로 소개된 이는 많지만 심취해온 구력(?)으로 봤을 때 공정곤 전 효성물산 부회장 이름이 가장 눈에 띈다. 그는 고가의 오디오 장비로 음악 감상실을 꾸며왔다. 스피커의 경우 1987년 생산된 골드문트사의 아폴로그. 이탈리아 유명 미술가 클라우디오 로타 로리아가 디자인해 세계 최초로 뉴욕 MoMA에 전시됐다. 이 제품의 25주년 특별 한정판 가격은 6억5000만 원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고교 시절 오디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대학 때부터 빠져 살았다”고 말했다. 레코드판이 많을 때는 1000장이 넘을 정도였다고.
오일머니 축구 구단주, 이것이 돈의 맛
2006년, 군부 쿠데타로 태국 정치권력으로부터 추출됐던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가 2007년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의 맨체스터시티(맨시티)를 인수한 적이 있다. 그 소식이 들리기가 무섭게 다시 주인이 바뀌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아랍에미리트의 왕자인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이하 만수르)이 3000억 원에 샀다는 것. 당시만 해도 그저 그런 성적을 보이던 맨시티를 사는 데 들어간 비용 자체만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만수르는 “진정한 부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말로 인수에 관한 언급을 대신했다. 사람들은 중동 부자가 인수한 맨시티가 과연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지 촉각을 세웠다.
그 후 12년 동안 맨시티의 분위기는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었다. 2011-2012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거의 매년 우승과 준우승을 오가며 고공행진 중이다. 만수르의 전폭적인 투자와 선수영입과 육성은 우승이 멀게만 느껴졌던 맨시티에게 기회를 제공한 셈. 2018년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만수르가 맨시티에 퍼부은 돈만 2조1000억 원이다. 그 뒤 2년의 시간이 더 흘렀으니 그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했을 것이다. 그는 스타급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물론 소속 선수들에 대한 지원, 차원이 다른 팬 서비스, 유소년 축구클럽 후원에도 아낌없는 지원을 이어갔다.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산하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가 선수들 몸값을 조사했을 때 맨시티가 가장 값비싼 선수들을 보유한 구단으로 나타난 바 있다. 맨시티 선수들 몸값 합산가는 10억1400만 유로(약 1조3350억 원). 특히 몸값으로 10억 유로를 넘긴 구단은 맨시티가 EPL 역사 이래 처음이다. 만수르가 맨시티 하나만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 지난해 말 만수르는 인도의 축구팀 뭄바이시티FC을 인수했다. 만수르가 운영하는 시티풋볼그룹(CFG)은 이 축구팀의 지분 65%를 인수했다. CFG는 맨시티를 비롯해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뉴욕시티FC, 호주 A리그 멜버른하트FC, 일본 J리그 요코하마 등을 소유하고 있다. 뭄바이시티FC는 만수르의 8번째 축구팀이다.
슈퍼리치의 특징 다섯 가지
미국의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미래 부자의 이웃: 부자가 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쓴 작가인 사라 스텐리 팔라우의 연구를 통해, 미국의 600여 명 부자들이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5가지 특징을 소개했다. 바로 독서, 운동, SNS 활동, 잠, 일이다. 그러면서 부자들은 이와 관련한 활동을 하루든 한 주든 한 달이든 평균적으로 고르게 시간을 할애한다고 강조했다. 취미도 잠도 운동도 성공에 있어 모두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다. 특히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독서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은 점에 주목하면서 워런 버핏의 경우 하루의 80%를 책 읽는 시간으로 쓴다고 언급했다.
마크 저커버그도 책읽기를 강조하며 책을 통해 다른 문화와 역사와 기술, 신념을 쌓아갈 수 있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말했다. 특히 운동 습관은 일반인들에 비해 철저했다. 일주일에 6시간 가까이 운동을 하는데 애플의 공동 창업자 팀 쿡은 매일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 피트니스센터로 향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주인공 안나 윈투어 역시 아침 5시 45분에 일어나 테니스로 몸을 푼다고.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도 아침에 주로 테니스를 치는데 서핑보드, 수영, 자전거 등도 꾸준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 슈퍼리치의 취미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 히브리어 책 읽기
•피터 틸(페이팔 창업자) 체스 두기 (국가대표 출신)
•래리 앨리슨(오라클 CEO) 요트 타기(그의 팀은 아메리카스컵 대회에서 우승을 거뒀다)
•데이비드 록펠러(미국의 전 은행가, 사업가) 딱정벌레 수집(록펠러가 최초로 발견한 딱정벌레에는 그의 이름이 학명으로 붙었다)
•구본무(전 LG그룹 회장) 새 관찰(살아생전 집무실에 망원경이 있었고, 조류도감도도 발간하고 새 사랑 사이트도 있었다)
‘남원’ 하면 춘향, ‘춘향’ 하면 광한루원만 생각났다. 남원에는 진정 광한루원 말곤 갈 데가 없을까 궁리하던 때에 마침 김병종미술관이 개관했다. 미술관이 좋아 남원에 들락거렸더니 식상했던 광한루원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된 동네 빵집과 걷기 좋은 덕음산 솔바람길도 발견했다. 이 산책로가 미술관과 연결되는 것을 알고 얼마나 기뻤던지. 남원을 여행하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가 종종 생각났다.
걷기 코스
남원역(남원시외버스터미널)▶차량 이동▶광한루원 북문▶남문▶요천 섶다리▶덕음산 솔바람길 입구▶전망대 레스토랑▶남원국립국악원▶그네매점(또는 약수터매점) 뒤 덕음산 솔바람길 입구▶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남원항공우주천문대▶춘향테마파크(또는 덕음산 오감만족숲)
상상 속 달나라를 구현한 광한루원
광한루원에는 남문(정문)과 서문, 북문이 있다. 오늘 걷는 코스는 북문으로 입장해 남문으로 나가는 것이 동선상 편하다. 북문 앞에는 고품격 한옥 호텔인 남원예촌과 규모 있는 한정식 전문점들이 자리했다. 이 일대는 남원 제일의 관광단지라서 거리가 깔끔하고 작은 쉼터도 조성돼 있다.
주중 낮 동안 일반인 관람이 허용되는 남원예촌을 잠시 둘러본 뒤 광한루원 북문으로 입장한다. 광한루원의 중심 건물인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춘향사당이 코앞이다. 조선 중기 사람들은 달나라에 옥황상제와 선녀가 산다고 생각했다. 이 상상을 지상에 구현한 것이 광한루원이다. 광한루는 옥황상제가 머무는 달나라 궁전이며, 광한루 앞 연못은 은하수를 상징한다.
연못에 섬처럼 떠 있는 세 개의 섬은 지상낙원, 즉 영주산(한라산), 봉래산(금강산), 방장산(지리산)을 뜻한다. 중국 ‘사기’에 등장하는 전설 속 세 산(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을 본떠 일컬은 것이다. 나무다리로 연결된 세 섬을 차례로 들러본다. 팽나무가 우거진 영주산 영주각에 올랐다가 봉래산의 대숲을 지나고, 방장산 숲에 숨은 작은 방장정에선 잠시 쉬어간다.
방장정 옆으로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돌다리 오작교가 보인다.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널 때 걸었던 오작교를 본떠 만들었다. 다리 길이가 57m에 달하는 국내 최장 연지교다. 조선 후기 소설 ‘춘향전’에서 성춘향과 이몽룡이 처음 만났던 장소로 등장하기도 한다. 오작교를 건너며 연못을 굽어보니 잉어 떼와 천연기념물인 원앙 수십 마리가 떼 지어 노닌다. 광한루원은 원앙과 잉어에게도 지상낙원인 듯하다. 연못가 버드나무와 짝꿍처럼 잘 어울리는 수중 누각 완월정에 올랐다가 남문으로 나선다.
솔숲이 우거진 덕음산 솔바람길
광한루원 남문으로 나오면 바로 요천변이다. 요천 제방에 올라 벚나무 가로수길을 걷는다. 가로수가 우거져 그늘이 짙다. 덕음산 솔바람길로 가려면 승월교나 섶다리를 이용해 요천을 건너야 한다. 흔한 시멘트다리 대신 섶다리를 선택해 건넌다. 이 섶다리는 옛날부터 요천에 섶다리 두 개가 있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근래에 만든 쌍섶다리다. 섶다리를 건너면 춘향테마파크와 식당, 놀이공원, 국립국악원 등이 있는 춘향촌 입구가 보인다. 춘향촌 입구 왼쪽에 ‘덕음산 솔바람길’ 입구가 있다. 나무계단을 조금 오르면 솔숲길이 이어진다. 잔잔한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걸었을까. 숲길이 전망대레스토랑 앞 전망대로 인도한다. 이곳에 서서 남원 시내를 굽어본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 같고, 도심 가운데로 요천이 흐른다. 남원의 젖줄 요천은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가 남해까지 간다.
탁 트인 남원 풍광을 감상하고, 포장도로를 따라 국립민속국악원 방면으로 내려간다. 국립민속국악원은 판소리의 성지인 남원의 국악 수준을 잘 보여주는 공연장이다. 주말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전통 공연을 선보인다. 주말에 이 길을 걷는다면, 공연시간을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국립민속국악원 뒤쪽으로 이동해 덕음산 솔바람길의 또 다른 입구를 찾는다. 나무계단을 오르자 김병종미술관까지 이어지는 데크 산책로로 연결된다. 길 곳곳에 전시돼 있는 시, 그림, 캘리그래피 작품을 감상하고, 솔숲 향기를 맡으며 느리게 걷는다. 데크에서 내려오면 바로 김병종미술관이 보인다. 국립민속국악원에서 미술관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남원의 뜨는 명소 김병종미술관과 화첩기행 북카페
2018년 3월 개관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남원 출신 한국화의 거장 김병종이 자신의 작품을 남원시에 기증하면서 건립이 기획됐다. 덕음산 기슭에 위치해 있어 실내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눈길 닿는 곳마다 푸른 숲이다. 김병종 화가의 작품은 1층 상설전시실에 전시돼 있다. 김병종 화가의 초기작이자 그의 이름을 미술계에 알린 ‘바보예수’ 시리즈를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이해하기 쉽고, 동심이 느껴져 절로 미소 지어진다. 김병종 화가는 여행 에세이 ‘화첩기행’을 저술해 문학가로서도 뛰어난 면모를 보여줬다.
상설전시장 옆에는 화첩기행 북카페 ‘미안’도 자리해 있다. 남원에서 나고 자란 청년 카페지기가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라는 뜻을 담아 ‘미안’이라 이름 지었다며 환하게 웃는다. 카페 한쪽 벽면에는 김병종 화가의 작품과 그가 기증한 미술, 인문학, 문학 관련 도서 등 약 2000여 권이 진열돼 있다. 나머지 벽면은 통창을 설치해 물이 가득한 정원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인다. 오랜만에 맘에 쏙 드는 미술관과 카페를 만나 걷는 즐거움이 커진다. 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 맛있는 커피와 빵을 먹으며 지친 다리를 쉬어간다.
춘향테마파크 걸을까, 오감만족숲을 걸을까
미술관에서 걷기를 마치고 광한루 쪽으로 내려가도 되고, 더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항공우주천문대를 거쳐 춘향테마파크 또는 덕음산 오감만족숲으로 내려가도 좋다.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광한루원이 멀지 않다.
항공우주천문대는 미술관 뒤쪽으로 난 길 끝에 있다. 미술관에서 약 300m 거리다. 오르막을 살짝 오르면 돔 형태의 지붕을 얹은 천문대를 만난다. 여러 대의 천체망원경을 통해 낮에는 태양의 흑점을, 밤에는 달과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다. 기상이 좋지 않으면 관측을 할 수 없으니 날씨를 봐가며 입장해야 한다.
천문대 뒤쪽, 솔바람길 이정표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면 춘향테마파크 뒷문이 나온다. 이 문은 춘향테마파크의 가장 위쪽 구역에 있으니 아래로 내려가면서 관람하면 된다. 춘향테마파크는 춘향을 주제로 한 문화예술공원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의 촬영세트장이 남아 있다. 뒷문 근처에는 월매집, 춘향과 이몽룡이 첫날밤을 보냈던 월매집 부용정, 춘향이 변 사또에게 고초를 당했던 관아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춘향테마파크에 입장하지 않고, 뒷문 앞에서 이정표를 따라 오감만족숲/광한루 방면 숲길로 5분 정도 내려가면 오감만족숲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오감만족숲은 2017년에 덕음산 기슭에 조성한 공원으로 걷기 좋도록 지그재그형 산책로를 만들어놓았다.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승월교로 바로 연결된다.
주변 명소 & 맛집
전통시장의 정취가 물씬 남원공설시장
광한루 서문 앞에 있는 상설시장이다. 오일장날에는 아침부터 붐빈다. 남원에는 산과 강이 있어 농수산물이 풍부하다. 특산물을 구경하며 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남원산 미꾸라지가 흔하다. 시골 시장에서도 보기 드문, 오래된 뻥튀기 가게도 있다. 온갖 곡식은 물론 무까지 튀겨준다. 남원 사람들이 이 시장에서 즐겨 사 먹는 또 다른 인기 메뉴는 닭발 튀김. 뼈를 발라낸 닭발에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낸다. 맥주 안주로 제격이다. 남원시 의총로 51, 4와 9로 끝나는 날이 오일장.
맛의 고장 남원 맛집
남원에서는 남원산 미꾸라지와 된장을 넣고 푹 끓인 추어탕이 유명하다. 광한루원 서문 쪽 요천변에 추어탕 거리가 형성돼 있다. ‘새집’, ‘현식당’, ‘부산집’이 입소문 났다. 광한루원 북문 앞에 있는 남원 한정식 전문점 ‘종가’도 추천할 만하다. 보리굴비 정식을 주문하면 홍어찜, 육회, 전복구이 등 맛깔난 전라도 음식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돌솥비빔밥 전문점인 ‘반야식당’도 광한루 인근에서 오래 장사한 소문난 집이다. 최근 뜨고 있는 ‘집밥, 담다’는 ‘따뜻한 가정식 한 끼’를 표방하는 젊은 감각의 음식점이다. 정갈한 식단으로 호평받고 있다. 예약은 필수.
남원 사람은 다 안다는 명문제과
남원에서 오래 장사한 동네 빵집이다. 가게는 작고 허름하다. 다른 빵집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빵을 개발해 인기를 얻었다. 남원에서는 이미 유명한 곳인데 ‘백종원의 3대천왕’에 출연한 뒤로 손님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평일에도 줄을 서며, 오후 늦게 가면 인기 빵은 동나 살 수 없다. 3대 인기 빵은 생크림소보로, 꿀아몬드, 수제햄빵이다. 광한루원 북문에서 도보로 10여 분 거리에 있다. 남원시 용성로 56.
걷기 Tip
❶ 5월 8일부터 12일까지 광한루원과 요천 일대에서 제89회 춘향제가 열린다. 광한루원은 야간 조명을 밝히는 밤에 산책해도 좋다.
❷ 4월 24일부터 5월 19일까지 바래봉 철쭉제도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