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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기 충전 돕는 ‘이열치열’ 건강법
- 본격적인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여름은 양(陽)의 기운이 넘쳐 밖으로 뻗어나가는 계절이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다. 더위가 지속되면 체내의 양기가 몸 밖으로 빠져나온다. 시니어들 가운데 요즘 따라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쉽게 피곤함이 느껴진다면 더위로 인한 기력 소모가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땀을 많이 흘렸을 때 몸이 지치는 걸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양기소모는 면역력을 떨어뜨리면서 각종 질환에 취약하게 만들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 상태로 겨울을 맞이할 경우 건조한 날씨, 심한 일교차로 잔병치레를 할 수도 있다. 여름에 양기를 충분히 흡수해야 겨울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폭염 속 부족해진 기력을 채울 건강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흔히 ‘더위 먹었다’는 말은 기력이 쇠해 나타나는 ‘기허증’(氣虛證)을 의미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양기를 북돋워줘야 하는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평소보다 잘 먹고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보양식 섭취다. 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뱃속의 기운은 차가워져 소화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몸 안팎의 균형을 맞추려면 열기를 머금은 따뜻한 성질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 열을 열로 다스리는 ‘이열치열’ 건강법이다. 많은 사람이 복날에 삼계탕, 추어탕 등 따뜻한 음식을 찾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여름철 보양식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음식이 삼계탕이다. 닭의 따뜻한 성질이 원기를 더해주고 위장을 덥혀 소화 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부재료인 인삼, 황기는 기운을 보충하고 생강, 마늘은 몸의 열을 올려준다. 육개장과 추어탕도 훌륭한 여름 보양식이다. 육개장에 들어가는 쇠고기는 소화를 돕고 떨어진 기운을 북돋워준다. 함께 먹는 파, 마늘 등도 따뜻한 성질을 지닌다. 추어탕은 기력 보충과 갈증 해소에 좋으며 위를 보호해 신진대사를 돕는다. 특히 미꾸라지는 단백질 함유량이 높아 소화가 잘되며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이 함유돼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 이외에 최근 인기가 높은 전복, 낙지, 장어 등도 여름철 건강관리에 도움을 주는 음식들이다. 그러나 지나친 보양식으로 양 기운이 넘칠 경우 오히려 몸의 열을 소통시키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과잉 섭취를 삼간다. 음식뿐 아니라 생활 방식도 중요하다. 날씨가 무덥다고 에어컨이나 선풍기 등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몸에 해롭다. 특히 항시 따뜻하게 해줘야 하는 배가 찬 기운에 자주 노출되면 소화불량으로 인한 복통, 설사를 일으키기 쉽다. 특히 여성의 경우 자궁 등 여성 질환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복부와 허리에 냉기가 오래 머물면 주변 근육이 경직되어 요통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들은 모두 냉방병의 일종이다. 냉방병 하면 감기 같은 질환을 떠올리기 쉬운데, 냉방병의 본질은 과도한 냉방에 신체가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만큼 증상이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더울 때는 적절히 냉방은 하되 배와 골반만큼은 따뜻하게 해주고 특히 잠잘 때는 배에 이불을 꼭 덮어준다. 반대로 머리는 시원하게 해주는 게 좋다. 머리에 열이 많으면 두통이나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화가 나거나 오랜 시간 일에 몰입할 경우 머리가 무겁거나 몽롱해질 때가 있다. 피가 머리로 몰려 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기온이 높아 머리가 과열되기 쉬우므로 시원하게 해줘야 한다. 이는 “찬 기운은 올라가고 더운 기운은 내려가야 건강하다”는 한의학의 ‘수승화강’(水乘火降) 원리와도 통한다. 적당한 강도의 신체 활동을 규칙적으로 해주는 것도 여름철의 급격한 체력 저하를 막고 몸의 기운이 원활히 순환하는 데 도움이 된다. 걷기, 조깅, 맨손체조, 스트레칭 등 유산소운동을 통해 땀을 내주면 체내 각종 노폐물 배출에도 효과적일 뿐 아니라 몸의 기혈 순환을 촉진해 건강상태를 개선할 수 있다. 또 규칙적인 운동은 근력 및 유연성을 강화하고 숙면도 돕기 때문에 면역력이 좋아진다.
- 2020-07-2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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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막의 개장국이 화려한 육개장으로…
-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스스로 미욱하게 풀어낸 해답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족한 재주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여러분의 올곧은 지적도 기대한다. 육개장은 ‘오래된’ 전통음식일까? 전통음식이지만 ‘오래된’ 음식은 아니다. 육개장의 역사는 불과 100년 남짓이다. 늘려 잡아도 200년이 되지 않는다. “육개장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 다수설이다. 그럴까? 부분적으로는 맞다. “육개장을 외부 공간에서 팔기 시작한 것은, 대구의 식당 혹은 시장통이었다”는 표현이 맞다. 이미 민간에 널리 퍼진 음식이었다. 그 음식이 대구의 시장통 등지에서 처음으로 상업화됐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육개장은 ‘우육(牛肉, 쇠고기)+개장국[狗醬羹, 구장갱, 개고깃국]’이다. ‘우육개장국’이 육개장이 된 것이다. 원래 된장 등을 푼 물에 개고기를 넣고 국을 끓였다. ‘구장갱’ 혹은 ‘구장’, ‘개장’, ‘개장국’이라 불렸다. 그러다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고 마치 개장국처럼 끓였다. 그래서 육개장이라는 게 다수설이다. 개장국 대용품이다. 이 음식이 대구의 시장통으로 나온 것이 바로 지금의 육개장이다. 역사는 100년 남짓 왜 대구일까? 교통 요지였기 때문이다. 일제는 효율적인 한반도 약탈을 위해 경부철도를 건설했다. 만주의 물자를 한반도를 세로로 질러 부산항에 운반해 배로 일본으로 보냈다. 군산, 목포, 여수, 부산이 모두 만주 혹은 한반도의 목재, 쌀, 밀 등을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세운 항구들이다. 대구는 경부철도의 주요 거점 도시다. 철도와 더불어 도시가 커지면서 시장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장 상인들과 손님들을 위한 식사 공간이 필요해졌다. 식당이나 허름한 천막 아래서 옹기종기 모여 국밥 한 그릇씩을 먹었다. 조선시대에는 역원(驛院) 제도와 주막(酒幕)이 있었다. 역원은 초기부터 있었던 공식 숙박 시설이다. 사용자는 공무원들이다. 조선시대에는 역원 제도를 통해 공무원의 이동을 도왔다. 주막은 사설 기관이다. ‘막(幕)’은 집이 아니다. 주막의 시작은 정식 건물이 아니다. 비바람을 가리려고 천막을 쳤다. 임시, 가설 시설이다. 이곳에서 목을 축일 만큼만 술을 팔았다. 사설, 불법 시설물이다. 조선시대 후기, 숙종시대를 거치며 이들 주막이 슬슬 공식화(?)된다. 공무원들은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역원을 이용한다. 민간 여행자들은 이용할 공간이 없다. 결국, 주막이다. 주막은 조선시대 후기 ‘탈법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합법도 아니고 불법도 아니다. ‘눈감아주는’ 정도의 공간이 확대된다. 역원과 주막에서 개장국을 내놓았다. 유교는, 사람이 여섯 가지 가축을 먹도록 허용했다. 소, 말, 돼지, 개, 양, 닭이다. 소는 금육(禁肉)이다. 농사의 도구라 식육을 엄하게 금했다. 살아 있는 말의 가격은 도축한 말고기 값보다 비쌌다. 말을 도축할 일은 없었다. 교통, 통신의 수단이지 고기로 먹을 일이 아니다. 양은 한반도에서 잘 자라지 않는다. 돼지도 마찬가지. 한반도의 춥고 건조한 기후는, 습하고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는 돼지와 맞지 않는다. 돼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인간과 ‘먹이’를 두고 다툰다. 사람이 먹는 걸 먹는다. 사람이 먹을 것도 귀했던 시절이다. 돼지 키우기는 쉽지 않았다. 개, 닭이 만만했다. 닭은 개체가 적다. 여러 사람이 몰려드는 역원, 주막에서 닭은 어울리지 않는다. 결국, 개다. 개고기, 개장국은 보양식이 아니라 늘 먹는 상식(常食)이었다. 육개장의 전신 개장국 조선시대 후기. 역원과 주막에서 널리 사용했던 개고기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다. 중국 청나라 때문이다. 청나라는 개고기 식용을 피했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개의 지위(?) 때문이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수렵, 기마민족이다. 개는 사냥의 동반자이자 목숨을 지켜주는 동료다. 농경민족의 개와는 지위가 다르다. 인간은 동반자, 동료를 먹지 않는다. 유목, 기마민족의 청나라가 개고기 식용을 피한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청나라를 세운 태조와 개의 인연 때문이다. 청나라(후금)를 세운 이는 누르하치(Nurh achi, 努爾哈赤, 1559~1626)다. 개가 누르하치의 생명을 두 번이나 구해줬다고 전해진다. 청나라의 통치자는 만주족이다. 이들이 개를 먹지 않자 피지배자인 중국 한족들도 따른다. 중국인들이 개고기를 피한 이유다.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 ~1637)을 겪으며 조선은 견디지 못할 치욕과 약탈을 당한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명나라를 그리워하고 ‘오랑캐 청나라’를 증오, 멸시했다. 시간이 흘렀다. 강희제, 건륭제, 옹정제 등 명군들은 청나라를 세계 최강의 나라로 바꿨다. 서양 문물들이 급격히 중국으로 몰려들었다. 청나라의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된다. 사절단으로 중국에 간 조선 사신단은 발전한 중국과 서양의 문물을 중국, 북경에서 본다. 북학파도 생긴다. 명나라에 대한 막연한 호감, 모화사상(慕華思想)이 엷어지고 청나라에 대한 호기심, 흠모가 생긴다. ‘문명 개화된 중국, 청나라’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개고기를 먹는 것은 야만의 짓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개고기를 피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이유원(1814~1888)은 조선시대 말기의 문신이다. 고종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임하필기(林下筆記)’를 남겼다. 그가 듣고, 보고, 기록한 내용은 19세기 후반, 고급 관리의 시각으로 본 조선시대 후기의 사회상이다. ‘임하필기’에 조선시대 후기, 개고기 식용에 대한 재미있는 내용이 실려 있다. “연경(북경)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을뿐더러 개가 죽으면 땅에 묻어준다. 심상규가 북경에 갔을 때 경일(庚日, 복날)을 맞아 개고기를 삶아 올리도록 하였다. 북경 사람들이 크게 놀라면서 이상히 여기고 팔지 않았다. 심상규가 그릇을 빌려 삶았는데 그 그릇을 모조리 내다 버렸다. (황해도) 장단의 이종성은 잔치에 갔다가 개장국을 보고 먹지 않고 돌아와 말하기를, ‘손님을 접대하는 음식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두 사람이 달랐다.” 두 사람이 등장한다. 심상규와 이종성이다. 심상규는 개고기 식용론자이고, 이종성은 식용 반대론자다. 두 사람 모두 이유원보다는 앞선 시대의 사람이다. 이종성은 심상규보다 더 앞선 시대 사람이다. 그는 개고기가 먹을 음식이 아니라 하고 심상규는 복날에 삶아 올리라 했다. 영조, 정조시대를 지나며 조선시대의 사회는 개고기 식용과 반대가 뒤섞여 있었다. 민간도 마찬가지. 문제는 봉제사(奉祭祀) 접빈객의 음식이다. 제사를 모시거나 손님맞이에 음식은 필수다. 혼례와 제사에도 국수가 필수적이다. 국수는 귀한 음식이었다. “언제 결혼하느냐?” 대신 “언제 국수 먹여주느냐?”라고 묻는 이유다. 일반 인들은 결혼식에나 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상(喪)’을 당했을 때는 음식을 미리 준비할 수 없다. 급작스럽게 닥치지만, 손님맞이 음식은 필요하다. 지금도 상가에서 늘 육개장을 만날 수 있는 이유다. 시작은 개장국인데 피하는 이들이 늘어나 어느 날부터인가 육개장으로 바뀐 것이다. 대구 시장통에 등장한 ‘육개장’ ‘대구가 육개장의 시작’은 아니다. 조선시대 후기, 민간에서 꾸준히 육개장을 먹었다. 이 음식이 처음 식당에 등장한 것이 ‘대구 육개장’이다. 사족 하나. “왜 육개장은 매운 고춧가루를 많이 쓰고 붉을까?”에 대한 엉터리 대답 둘. 귀신을 쫓기 위해 붉은색 음식을 만들었다! 엉터리다. 상가는 돌아가신 조상을 모셔서 먼 길 떠나기 전에 대접하는 자리다. 붉은색으로 귀신을 쫓는다? ‘벽사(辟邪)’의 붉은색이다? 도대체 상가에서 혼령을 모시자는 건가, 아니면 혼령을 쫓자는 건가? 또 하나 엉터리. “대구는 분지라서 춥다. 그래서 매운 고춧가루를 많이 쓴다?” 틀린 말이다. 대구보다 추운 지방은 훨씬 많다. 남쪽치고는 추운 편이지만 서울 이북보다는 춥지 않다. 분지? 대구만 분지도 아니다. 다른 지역에도 추운 분지 많다. 육개장의 붉은 고춧가루는 개장국의 영향이다. 개장국은 누린내가 심해 매운맛으로 감춘다. 향신료 사용량도 많다. 개장국이 육개장으로 발전하면서 고춧가루, 붉은색을 본뜬 것이다. 황광해 맛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경향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년간의 기자생활 동안 회삿돈으로 ‘공밥’을 엄청 많이 먹었다. 한때는 매년 전국을 한 바퀴씩 돌았고 2008년부터 음식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KBS2 ‘생생정보통’, MBC ‘찾아라! 맛있는 TV’, 채널A ‘먹거리 X파일’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한국 맛집 579’, ‘줄서는 맛집’, ‘오래된 맛집’ 등이 있다.
- 2019-12-0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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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물 없는 한식은 없다
-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스스로 미욱하게 풀어낸 해답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족한 재주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여러분의 올곧은 지적도 기대한다. 한식은 탕반(湯飯) 음식이다. ‘반’은 밥이다. ‘탕’은 국물을 뜻한다. 우리는 국물 없는 밥상을 상상하지 못한다. 우리 밥상에는 밥과 국이 있고, 반찬을 더한다. 밥과 국은 우리 밥상의 기본이다. “일본에서도 밥과 국을 같이 먹더라”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 일본의 비즈니스 호텔 등에서도 밥과 국 그리고 몇 가지 반찬을 내놓는다. 종류가 한정적이다. 아침 밥상의 ‘미소시루(일본 된장국)’ 정도다. 낮이나 밤의 밥, 술자리에서는 흔하지 않다. 아침에 먹는 국 한 종지 정도다. 한식 밥상은 국의 향연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늘 “오늘 저녁은 무슨 국을 끓일까?” 고민했다. 우리 밥상은 밥과 국을 빼고는 성립하기 힘들다. 웬만한 밥상에는 늘 국이 등장한다. 국, 밥, 김치만 있는 밥상도 즐겁다. 탕반 음식은 우리의 핏속에 녹아 있는 음식문화다. 국도 여러 종류다. 고깃국, 생선국, 각종 채소국, 이도 저도 아닌 된장국까지 국물 없는 밥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한여름철에는 근대국과 아욱국을 따로 끓인다. 얼핏 보면 비슷한 아욱과 근대. 그러나 국으로 끓이면 그 맛이 각별하다. 콩나물, 미나리, 무, 시금치, 각종 시래기와 우거지까지. 한반도의 국물은 끝이 없다. 한국 사람들은 탕, 국물이 없는 밥상은 ‘국물도 없는’ 것으로 여겼다. 인간관계를 끝낼 때도 “국물도 없다”고 말했다. 밥상에 반드시 있어야 할, 기본이 국물이다. “넌 앞으로 국물도 없다”는 말은 인간관계 단절을 의미한다. 최소한의 것도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국이 없는 밥을 먹으면 목이 메었다. “국물도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는 매정한 표현이다. 국물의 기본 국물의 기본은 ‘대갱(大羹)’이다. 대갱은 고기 곤 국물, 고깃국물이다. ‘대’는 크다는 뜻과 더불어 으뜸, 시작, 바탕이라는 의미도 있다. 아무런 양념이나 부재료인 채소 없이 국을 끓이면 대갱이다. ‘대갱’은 중국에서 시작된 개념이다. 오래전에는 매실과 소금으로 기본적인 양념을 대신했다. 대갱은 ‘매실이나 소금 양념’도 하지 않는, 고기를 곤 국물이다. 맛을 따질 일은 아니다. 맛이 있으면 양념한 화갱을 찾을 일이다. 국물에 채소나 양념을 넣으면 ‘화갱(和羹)’이다. 중국에는 화갱이나 대갱 모두 사라졌다. 화갱은 그나마 중식 코스 요리 중, 각종 채소를 넣고 생선이나 고기를 더한 국물 음식이 남아 있다. 한식에는 아직도 대갱이 살아 있다. 곰탕이 대갱이고, 제사상의 곰국, 곰탕이 바로 대갱의 변형이다. 우리 밥상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화갱이다. 채소에 고기를 넣고 끓여도, 채소만으로 끓여도 화갱이다. 고깃국, 채소, 생선이나 여러 가지 양념을 더한 것이 모두 화갱이다. 한국 사람들의 밥상에는 화갱이 늘 자리한다. 시래깃국, 김칫국, 배춧국, 뭇국, 시금칫국, 토란국, 아욱국, 근대국 그리고 해조류를 넣은 미역국, 톳을 넣은 국, 몸국(모자반국)과 해산물을 이용한 북엇국 등 숱한 국물 음식들이 그것이다. 곰탕과 설렁탕 곰탕과 설렁탕은 비슷한 음식이다. 약 100년 이상 곰탕과 설렁탕은 경쟁하고, 상대의 장점을 서로 더했다. 두 국물은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곰탕은 ‘고기를 곤 국물’이다. 쇠고기 양지 부위를 중심으로 푹 곤 국물은 반가의 음식이기도 하다. 서울이나 나주 등에서 곰탕이 유행한 이유도 간단하다. 서울, 한양은 궁궐이 있었던 도시다. 각종 관청도 많았다. 궁중의 제사를 모시는 종묘가 있고 공자의 제사를 모시는 성균관, 대성전이 있다. 제사에는 귀한 쇠고기를 사용한다. 공식적으로 쇠고기 도축을 하는 이들이 있었고, 곰탕을 비교적 흔하게 사용했다. 서울, 한양의 곰탕집들은 이런 쇠고기 소비문화를 뒤따른 것이다. 나주 곰탕도 마찬가지다. 나주는 큰 도시였고 큰 관청, 관사가 있었다. 역시 향교가 있고 외부 손님들의 방문도 잦았다. 한양 도성에도 외국에서 온 사신과 외부 관리들의 방문이 잦았다. 역시 쇠고기 소비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했다. 나주 곰탕, 진주냉면이 발달한 까닭이다. 설렁탕은 출발부터 다르다. 곰탕이 고기 곤 국물이라면 설렁탕은 뼈와 내장 곤 국물이다. 때로는 소머리를 곤 국물도 더했다. 오늘날 서울 인근 경기도 몇몇 곳에 소머리 국밥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설렁탕을 만들 때 소머리도 이용했다. 그 방식이 그대로 전해진 것이 바로 소머리 국밥이다. 오늘날의 설렁탕에는 쇠고기도 더한다. 양지나 우둔살의 일부, 업진살 등을 넣는 설렁탕 전문점도 많다. 곰탕의 장점을 받아들인 결과다. 출발은 곰탕과 다르다. 내장, 소 머릿고기 등을 사골, 잡뼈 곤 국물에 더했다. 이른바 ‘부산물’들이다. 부산물은 정육의 대칭어다. 곰탕은 정육에서, 설렁탕은 부산물에서 출발했다. 육개장과 닭개장 닭은 개체가 너무 작다. 가정에서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닭은 귀한 달걀을 낳는 존재. 그나마 풀과 벌레가 흔한 여름철과 달리 추운 겨울에는 먹이가 마땅치 않았다. 봄에 병아리에서 시작, 늦가을 대부분 닭을 ‘정리’했던 이유가 있다. 조선시대 후기 급격히 발달한 주막에서 개장국을 끓인 것은, 그나마 개가 개체가 크고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내내 개장국은 주막의 주요 메뉴였다. 개장국은 ‘개고기+장(醬)+국[羹, 갱]’이다. 개고기는 일상으로 먹는 상식(常食)이었다. ‘명의록(明義錄)’은 정조대왕 즉위 원년(1776년)에 작업을 시작해 이듬해 완성한 책이다. 정조의 대리청정을 반대했던 홍인한, 정후겸 등을 사사한 과정 등을 기록했다. 할아버지 영조를 대신해서 대리청정했던 세손, 정조대왕이 즉위한 직후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반대하고 궁궐에 자객을 침투시킨 반대파를 엄벌한 것이 정당했음을 밝힌 책이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이 드라마 ‘이산’과 영화 ‘역린(逆鱗)’의 소재가 되었다. ‘이산’과 ‘역린’에 공히 정조 암살을 위해서 자객이 궁궐에 침투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 반대파에 의한 정조 시해 시도는 있었다. ‘명의록’의 공초(供招) 기록에 의하면 전병문, 강용휘 등 범인들은 궁궐에 침투하기 전 ‘궁궐 밖 개 잡는 집’에서 저녁을 먹고, 거사 실패 후 남대문 언저리로 도주, 다시 ‘개 잡는 집’에서 만난다. 사건 수사기록인 공초에 아무렇지도 않게 ‘궁궐 밖 개 잡는 집’, ‘남대문 언저리 개 잡는 집’이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18세기 후반에는 한양 도성 곳곳에 개 잡는 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개장국은 저잣거리 주막의 평범한 음식임을 알 수 있다. 1670년 무렵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는 안동 장 씨 할머니의 ‘음식디미방’에도 나온다. 개장국은 반가, 저잣거리를 따지지 않고 널리 퍼져 있었다. 조선시대 말기와 일제강점기에는 육개장과 설렁탕 등으로 바뀐다. 육개장은 ‘육[肉=쇠고기]+개장국’이다. 즉, 쇠고기로 마치 개장국같이 끓인 음식이 육개장이다. 나중에 등장하는 닭개장은 ‘닭고기+개장국’ 형태의 음식이다. ‘닭계장’으로 쓴 것은 틀렸다. 닭개장이 맞다. 개장국이 사라진 것은 청나라의 중국 문화를 받아들인 결과다. 청나라는 유목, 기마민족이다. 개의 존재가 농경민족인 우리와는 다르다. 개는 동반자 때로는 생명의 은인이다. 청나라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우리도 청나라 문화를 받아들인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고, 저잣거리에서도 개고기를 피하는 이들이 생긴다. 조선시대 말기 소의 생산량도 늘어나고 국가의 금육 정책도 힘을 잃는다. 나라가 망한 일제강점기, 금육은 허물어진다. 쇠고기를 더한 육개장과 쇠고기로 끓인 곰탕, 소의 부산물을 중심으로 끓여낸 설렁탕이 널리 퍼진다. 한반도의 국물 음식 중 으뜸은 곰탕, 설렁탕, 육개장 그리고 육개장을 중심으로 변형된 해장국들이다. 선지해장국과 뼈다귀해장국이 있다. 선지에 각종 채소를 더한 것도 등장하고 장터에서 간단히 만들어 내놓았던 장터해장국도 선보인다. 한반도만의 국물 문화 전 세계 모든 문명국에는 라면이 있다. 동남아, 중동, 유럽, 미국, 아프리카까지 진출했다. 라면을 먹지 않는 나라는 드물지만, 라면 국물을 알뜰하게 먹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에서 라면을 먹었던 이들은 “듣기와는 달리 일본 라면이 짜더라” 말한다. 당연하다. 일본인들은 라면 국물을 우리처럼 알뜰하게 먹지 않는다. 일본은 면 중심으로, 우리는 국물 중심으로 라면을 먹는다. 면을 먹는 이들은 면에 국물이 배어든 맛을 즐긴다. 우리는 라면 국물에 밥까지 말아 먹는다. “나트륨이 많은 국물을 먹지 말자”는 캠페인은 허망하다. 우리는 ‘국물도 없는’ 음식을 싫어한다. 면보다는 국물에 만 밥에 김치를 얹어 먹어야 속이 후련하다. 이제는 사라지고 있는 수반(水飯)도 마찬가지다. 물에 만 밥. 입맛이 없거나 간단한 상으로 손님을 접대할 때 정식으로 수반을 내놓았다. 왕(성종)도 즐겨 먹었고, 아버지 묘소에서 간단하게 수반을 먹었다는 기록을 남긴 왕도(정조) 있다. 각종 채소를 넣고 끓인 후 일상적으로 먹는 나물국, 생선, 고깃국, 개장국과 설렁탕, 곰탕, 육개장 그리고 라면과 수반까지. 한반도만의 독특한 국물 문화다. 황광해 맛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경향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년간의 기자생활 동안 회삿돈으로 ‘공밥’을 엄청 많이 먹었다. 한때는 매년 전국을 한 바퀴씩 돌았고 2008년부터 음식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KBS2 ‘생생정보통’, MBC ‘찾아라! 맛있는 TV’, 채널A ‘먹거리 X파일’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한국 맛집 579’, ‘줄서는 맛집’, ‘오래된 맛집’ 등이 있다.
- 2019-09-0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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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보양식
-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스스로 미욱하게 풀어낸 해답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족한 재주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여러분의 올곧은 지적도 기대한다. 조금은 마뜩잖은 내용으로 글을 시작한다. 곧 여름철이다. 여기저기서 보양식을 찾는다. 주로 닭, 장어, 민어다. 답답하다. 여름을 앞두고 ‘보양식 원고 청탁’도 많다. 제법 긴 시간 동안 전화로 설득한다. “보양식은 없다. 제발 보양식 원고 청탁하지 말라”고. 보양식. 참 그럴 듯하지만, 우리 시대의 탐욕이자 꼼수다. 음식을 먹었는데 몸도 좋아진다? 더하여 ‘정력에 좋다’는 소문까지 돌면 그야말로 횡재한 기분이 든다. 동식물의 여러 부위가 보양의 재료로 등장하기도 한다. 식사를 했는데 갑자기 몸이 좋아진다니 싫어할 사람이 없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다. 식사하고 강장(强壯)도 된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다. 음식점 주인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초복이면 오피스타운의 해물탕 전문점에서도 삼계탕을 내놓는다. 하루에 100그릇 이상 삼계탕을 판다. ‘초복 특수’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보양식은 없다. 음식 먹고 몸도 튼튼, 강장, 강정(強精)까지 해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보양은 ‘保養’ 혹은 ‘補陽’이다. 전자의 보양은 ‘잘 보호해 양육한다’는 뜻이다. 보양식은 ‘보양(補陽)’의 의미를 갖는다. 몸의 ‘양기(陽氣)’를 잘 지키고 더하는 일이다. 우리 선조들은 늘 ‘평(平)’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정조 19년(1795년),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환갑을 맞았다. 그해 윤이월 9일부터 16일까지 수원 화성(華城)에서 환갑잔치가 열렸다. 이때 차린 밥상의 반찬 그릇 수가 모두 16기(器). 그중 음의 반찬이 8기, 양의 반찬이 8기로, 평을 맞추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기록된 ‘혜경궁 홍씨 환갑날 밥상’은 한식 최고의 밥상이라도 해도 좋다. 이 밥상의 구성은 ‘보양’이 아니라 ‘평(平)’이다. ‘평’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남거나 모자라지 않음이다. 진정한 보양식은 음양이 조화를 이룬 ‘평(平)의 밥상’이다. 동지(冬至)는 깊은 겨울. 해가 가장 짧은 날이다. 황진이 시조의 한 구절,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낼 만큼 밤은 길다. 해는 양(陽)이다. 이날부터 해가 조금씩 길어진다. 음의 기운이 강하다. 양을 도와야 한다. 붉은색은 양이다. 음식 중 양의 성격을 지닌, 붉은 팥죽을 먹는다. ‘동짓날 팥죽’은 양을 돕는 소박한 식품이다. 우리 선조들은 ‘동짓날 팥죽’을 양을 보완하는, 보양식으로 여겼다. 그야말로 보양하는 음식이다. 반가의 보양식 중 으뜸은 민어다? 누가 이야기했는지 불확실하다. “반가의 보양식 중 으뜸은 민어, 두 번째는 삼계탕, 세 번째는 장어, 마지막이 개고기”라는 표현이 있다. 엉터리다. 추정컨대,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표현일 것이다. 개장국[狗醬]은 특별한 보양식이 아니라, 상식(常食)이었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여섯 종류의 가축을 길러 먹도록 했다. 육축(六畜)으로 소, 말, 개, 돼지, 양, 닭이다. 소는 농경의 도구이니 함부로 도축하지 못했다. 금육(禁肉)이다. 말은 교통수단이다. 돼지는 하는 일 없이 인간의 곡물을 축낸다. 양은 한반도에서 잘 자라지 않는다. 개와 닭만 남는다. 닭은 개체가 작으니 주막 등에서 내놓기는 힘들다. 주막에서 개고기[狗]를 된장[醬] 푼 물에 넣고 끓이면 구장, 개장국이 된다. 조선시대 후기, 청나라 만주족의 습관을 따라 개고기를 피하는 이들이 생긴다. 개장국 대신 ‘쇠고기[肉]+개장국’, 육개장이 태어난다. 민어는 가장 흔한 생선이었다. “특별한 것이 없으니 별도로 기록하지 않는다”(허균의 ‘도문대작’)고 했던 생선이다. “큰 조기는 민어, 작은 것은 조기”라 했다. 별다를 것 없다. 조선시대 기록 어디에도 민어를 보신, 보양 음식으로 사용했다는 흔적은 없다. 삼계탕의 인삼은 1~2년 자란 수삼이다. 어떤 방식으로, 누가 길렀는지 알 수 없다. 약효? 알 수 없다. 농약은? 비료는? 알 수 없다. 닭은 20여 일 기른, 병아리 치고도 어린 것이다. 영양가? 짐작할 수 없다. 맛은 물론 엉망이다. 삼계탕에 견과류나 들깻가루를 듬뿍 얹는 이유다. 이걸 먹고 보양을 하겠다니 부끄럽다. 20여 일 자란 병아리를 먹고 보양을 할 만큼 우리 살림살이가 허망하지는 않다. 장어도 마찬가지. 일본인들의 ‘우나기’를 옮긴 것이다. 일본인들은 초여름 ‘우나기 동(민물장어 덮밥)’을 먹고, 우리는 화력 좋은 불에 구워 먹는다. 장어에 바르는 간장 양념? 일본과 비슷하다. 장어 뼈 곤 국물에 여러 가지 한약재(?)를 넣고 졸인다. 여기에 물엿, 조미료, 어설픈 효소를 넣는다. 보양? 알 수 없다. 우리 선조들의 최고 보양식은 ‘죽(粥)’과 ‘미음(米飮)’이었다. 몸이 아픈 대비전(大妃殿)에 죽을 올렸다는 기록은 여기저기 남아 있다. 지금보다 가난하던 시절이다. 왕실이라 해도 지금 서민들이 먹는 음식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음식 약’ ‘보양식’은 죽이었다. 인삼을 넣고 끓인 죽이 있는가 하면, 좁쌀을 넣고 끓인 것도 있었다. 왕대비께서 빈청에 언문(諺文)으로 하교하기를, “(중략) 나와 같은 병으로 연명하여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속미음(粟米飮)을 마셨기 때문인데 이것까지 들지 않고 날짜를 표시해놓고서 죄다 봉해서 놔두었다. 비록 미음을 든다고 대전(大殿)에 말하기는 하였으나 지금의 병세는 실로 부지하기 어렵다”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정조 10년(1786년) 12월 1일 왕대비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다. 좁쌀 넣은 미음으로 연명하고 있는데 험한 일을 당하니, 이제 그것도 끊겠다고 한다. 비록 아들인 정조에게는 “먹고 있다”고 말하지만 먹지 않고 봉해두었다고 밝힌다. 이때도 보양식은 좁쌀을 넣은 미음이었다. 조선시대의 국왕 중, 가장 장수한 이는 영조대왕이다. 평생 스트레스도 심했다. 재위 52년, 83세까지 살았다. 장수의 비결? 간단하다. 소식(小食)이다. 영조는 입이 짧았다고 전해진다. 가려 먹되 자주, 조금씩 먹었다. 보양식은 소식이다. 황광해 맛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경향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년간의 기자생활 동안 회삿돈으로 ‘공밥’을 엄청 많이 먹었다. 한때는 매년 전국을 한 바퀴씩 돌았고 2008년부터 음식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KBS2 ‘생생정보통’, MBC ‘찾아라! 맛있는 TV’, 채널A ‘먹거리 X파일’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한국 맛집 579’, ‘줄서는 맛집’, ‘오래된 맛집’ 등이 있다.
- 2019-05-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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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싸한 겨울 바다를 벗삼아 걷는 길 ‘외옹치 바다향기로’
- 겨울에는 왠지 속초에 가야 할 것 같다. 눈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갯배를 타고 건넜던 청초호, 눈에 파묻힌 아바이마을, 영금정에서 봤던 새해 일출, 이 딱딱 부딪혀가며 먹었던 물회의 추억이 겨울에 닿아 있어서일까. 이번에도 속초 바닷길과 마을길, 시장길을 구석구석 누비는 재미에 빠져 남쪽 외옹치항에서 북쪽 장사항까지 걷고 말았다. 걷기 코스 속초고속버스터미널▶외옹치 바다향기로(속초해수욕장~외옹치항 왕복)▶ 설악대교▶ 아바이마을▶갯배▶속초관광수산시장▶동명항▶영금정전망대▶해돋이전망대▶속초등대(택시)▶속초시외버스터미널 바다 위를 걷는 느낌 외옹치 바다향기로 속초 도보여행 첫 코스는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외옹치 바다향기로’다. 속초해수욕장부터 외옹치해수욕장을 거쳐 외옹치항까지 이어진 바닷길을 걷는다. 길이가 약 1.74km이며, 속초해수욕장 850m 구간과 외옹치 해안데크산책로 890m 구간으로 나뉜다. 천천히 걸어도 편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서 속초해수욕장 정문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 금세 눈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코끝이 찡한 날씨에도 겨울 바다를 찾은 이가 꽤 많다. 바닷가 포토존 너머로는 가마우지들이 모여 사는 조도(鳥島)가 보인다. 삿갓 모양의 조도와 철썩이는 파도를 감상하며 모래밭 옆 산책로를 거닌다. 속초해수욕장과 연결된 외옹치해수욕장에 다다르면 외옹치 해안데크산책로 입구가 나온다. 외옹치 해안은 1970년 무장공비가 침투한 이후부터 작년까지, 65년 동안 미개방 군사 작전 지역이었다. 작년 4월 외옹치 바다향기로를 개통하면서 개방됐다. 해안데크산책로는 암석관찰길, 안보체험길, 하늘데크길, 대나무명상길 등의 주제로 나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해안 철책과 초소가 있는 안보체험길을 지나면 ㄷ자형 전망대가 나온다. 송혜교, 박보검 주연의 tvN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두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 사랑을 싹틔운 장소다. 바다 풍광이 가장 멋진 구간은 하늘데크길이다. 지네바위, 굴바위 등 이야기가 있는 갯바위와 은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를 마주 보며 걸을 수 있다. 겨울철 09:00~17:00, 여름철 09:00~19:00 개방. 아날로그 감성 갯배 그리고 아바이마을 외옹치항에서 속초해수욕장으로 되돌아올 때는 바닷가 산책로 옆 해송숲길을 선택한다. 숲 분위기가 그윽해 사색하며 걷기 좋다. 해송숲을 지나 방파제와 나란히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청호동 아바이마을을 만난다. 실향민 정착촌인 아바이마을은 한국전쟁 때 함경도에서 피란 온 실향민 다섯 가구가 백사장에 터를 잡으며 생겨났다. 마을 동쪽은 바다, 서쪽은 청초호와 접해 있다. 청초호와 바다를 연결하는 신수로를 건설하면서 마을이 남북으로 나뉜 것인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로 위로 붉은 아치형의 설악대교를 세웠다. 설악대교를 건너기 전에 교각 아래의, 실향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아트플랫폼 갯배’에 들른다. 전시장과 카페로 꾸민 공간이다. 2층 창가에 앉아 신수로를 오가는 어선들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긴다. 설악대교 교각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리 위로 올라가면, 진한 바다 냄새가 풍기는 아바이마을과 속초항의 풍경이 펼쳐진다. 수로를 건넌 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바로 북쪽 아바이마을에 도착한다. 주택가인 남쪽 아바이마을과 달리 이곳은 실향민들이 함경도 음식을 파는 식당가다. 좁은 골목에 아바이순대, 오징어순대, 명태순대, 가자미회냉면, 막국수 등을 파는 식당이 빼곡하다. 단천식당과 신다신식당이 함경도 음식 원조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신다신식당에서는 함경도식 육개장인 가리국밥을 판다. 아바이순대와 소고기, 대파 등을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인 국인데, 소고기국밥과 맛이 비슷하다. 다음 코스인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가기 위해 아바이마을 갯배 선착장으로 향한다. 갯배는 주민들이 청초호를 건널 때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무동력 운반선이므로 중앙동 선착장과 아바이마을 선착장 사이에 걸어놓은 쇠줄을 갈고리로 잡아당겨야 움직인다. 아바이마을 주민이 탑승해 줄을 끌어당기지만, 승객들도 눈치껏 힘을 보태야 한다. 갯배 요금은 편도 500원이며 운행시간은 3분이다. 시장 골목에서 발견한 헌책방 갯배에서 내려 생선구이 골목을 지나면 속초의 명동이라 불리는 로데오 거리에 자리한 속초관광수산시장이 코앞이다. 속초를 잘 아는 이에겐 중앙시장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다. 시장 안에 수산물 골목, 청과물 골목, 순대 골목, 잡화 골목 등 취급 품목별로 골목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시장 지하에는 활어회 센터가 있다.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은 제철 생선을 볼 수 있는 수산물 코너다. 가게마다 몸통이 물풍선처럼 빵빵한 곰치가 좌판을 차지하고 있다. 옛날에는 어부들이 잡은 즉시 바다에 버려서 물텀벙이라 불렸던 생선인데, 지금은 금값이다. 곰치로 국을 끓이면, 곰치 살이 입안으로 호로록 들어갈 만큼 부드러운 데다가, 국물 맛이 시원해 겨울 별미로 손꼽힌다. 시장 골목을 요리조리 구경하다가 대경중고서점을 발견한다면, 보물을 캔 것과 마찬가지다. 속초에 하나뿐인 귀한 헌책방이니 말이다. 책방 안에는 천장 턱밑까지 책이 꽂혀 있다. 책 무게 때문에 등이 휜 나무 선반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헌책방 주인장은 소녀처럼 수줍음이 많은 전경화 씨. 속초 토박이인 전 씨는 “제가 헌책방을 인수해 장사한 지도 25년이나 됐네요. 이곳 역사가 50년은 됐을걸요. 영업 이익만 생각하면 문 닫아야죠. 많은 사람이 좋아해주셔서 그 보람으로 책방을 지켜요. 우리 책방은 A급 중고 책만 취급하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요”라고 말하며 속초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속초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식당과 좋아하는 음식들을 술술 풀어놓는다. 시장 안 작은 헌책방이 오래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며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속초등대에 올라 겨울 바다 마주하기 속초관광수산시장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동명항에 닿는다. 동명항 활어센터는 자연산 활어회만 취급하며 횟값이 저렴한 곳으로 유명하다. 건물 안에 횟감을 팔고, 손질하고, 매운탕을 끓여주는 구역이 따로 있다. 2층 상차림 식당에는 대게 철을 맞아 손님이 바글바글하다. 동명항 근처에는 속초등대, 영금정, 영금정전망대, 해맞이정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다. 영금정은 속초등대와 동명항 사이 해안에 펼쳐져 있는 갯바위다. 갯바위 꼭대기에 올라앉은 영금정 전망대에 서면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나간 해맞이정자가 발아래 굽어보인다. 겨울에는 해맞이정자 앞으로 해가 떠 일출 명소로 유명해졌다. 해맞이정자에서 빤히 보이는 속초등대 전망대에 오르면, 왼쪽으로 영금정과 동명항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속초 시가지와 설악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력이 있다면, 속초등대에서 등대해변 쪽으로 내려가도 좋다. 등대해변의 산홋빛 바다색이 아름다워, 입소문 난 횟집과 전망 좋은 카페가 바닷가에 속속 들어섰다. 호반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영랑호도 가까이 있다. 주변 명소 & 맛집 봉포머구리집 봉포머구리집은 잠수부였던 주인장이 작은 가게로 시작해 음식 맛 하나로 큰 빌딩을 세운 곳이다. 해삼, 비단멍게, 문어숙회, 광어회, 성게알, 백골뱅이 등을 소복하게 담아낸 해물 모둠물회를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진다. 여덟 가지 찬과 소면 두 덩이가 밥상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새콤한 육수와 꼬들꼬들한 해산물과 아삭한 채소가 조화를 이뤄 엄지가 절로 척 올라간다. 속초시 영랑해안길 223, 033-631-2021, 09:30~21:30 칠성조선소 살롱 조선업이 쇠퇴해, 칠성조선소에서 배를 만들지 않게 되자, 칠성조선소의 3대 대표가 조선소 건물을 카페와 전시공간으로 개조했다. 배를 만들고 수리했던 허름한 조선소 건물은 전시장이 됐고, 만든 배를 바다에 띄우기 위해 설치했던 마당의 철 구조물들은 벤치 역할을 한다. 복고풍 분위기 덕에 인기 명소가 됐다. 조선소의 너른 부지에서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속초시 중앙로46번길 45, 033-633-2309, 11:00~20:00(수요일 휴무) 문우당서림과 동아서점 문우당서림과 동아서림은 속초에서 오랫동안 뿌리를 내린 대표 서점이다. 책 파는 것을 넘어 작가와의 만남, 시 낭송회 등을 주최해 지역문화를 만들어가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1984년에 개점한 문우당서림은 부부와 귀향한 딸이 운영한다. 2층에 책 읽는 공간을 따로 두고, 독서 모임방을 무료 대관한다. 1956년에 개점한 동아서점은 3대가 운영하는 서점으로 유명하다. 세련된 서가 배치와 북큐레이션이 돋보인다. 대형 서점에선 볼 수 없는 독립출판물도 취급한다. 동아서림은 문우당서림 뒤쪽에 있다. 속초시 중앙로 45, 033-635-8055, 09:00~22:00 여행 정보 걷기 Tip ➊ 자가용을 이용할 때는, 외옹치항에 주차한 뒤 바다향기로를 걸으면 된다. ➋ 고속버스터미널 하차 후, 외옹치항 바다향기로 입구까지 택시로 이동하면 왕복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 이동은 추천하지 않는다.
- 2019-02-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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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무료관광 떠나보자
-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국가안보가 우려되는 시점에 있다. 국민의 철저한 안보관이 어느 때보다 강조된다. 지난 6월 15일 문산 자유시장이 제공하는 ‘DMZ 무료관광’을 다녀왔다. 임진각까지는 가끔 갔었지만, DMZ 안을 둘러본 것은 처음이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했던가. 누구나 자기 돈 들이지 않고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다면 다소의 위험이 따르더라도 좋아한다는 의미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서 종종 활용하는 ‘1+1’ 판매도 마찬가지다. 딱히 이런 유형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경기도 파주시와 문산 자유시장이 함께 시행하는 ‘DMZ 무료관광’ 이벤트도 문산 자유시장에서 1만원 이상 거래한 고객에게만 덤으로 주는 혜택이다. DMZ 무료관광은 문산 자유시장으로 출발하여 DMZ 지역 안에 있는 주요 지역을 45인승 관광버스로 순회한 후 다시 문산 자유시장으로 돌아오는 일종의 안보관광이다. 45인승 자리는 꽉 찼다.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든 분들이었고 외국인도 서너 명 참가했다. 임진각-도라산역-도라전망대-제3땅굴-해방촌을 3시간 내외로 돌아봤다. 문산 자유시장은 재래시장인데 파주시의 지원을 받아 문산 자유시장 상인연합회에서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이 행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문산 자유시장은 이전의 낡은 건물을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시장으로 경의.중앙선 전철의 종착역인 문산역 근처에 있다. 전철역에서 내려 5분 거리에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경로우대카드를 갖고 있는 사람은 교통비를 들이지 않고 다녀올 수 있고 재래 전통시장에서 추억의 먹거리를 싼값에 즐길 수 있다. 그날 필자와 함께했던 일행은 점심으로 시장에서 육개장을 먹었는데 1인에 6000원이었고 맛이 뛰어났다. DMZ 무료관광은 하루에 두 번 열린다. 문산 시장에서 12시 30분과 오후 1시 30분에 출발한다. 월요일과 공휴일은 운행하지 않으나 토요일과 일요일은 정상 운행한다. 시장 안에서 음식을 먹거나 물건을 살 경우 거래 영수증에 확인 도장을 받아 이 영수증을 신축 중인 시장 주차장 앞쪽에서 접수하고 있는 상인연합회 관리 직원에게 신분증과 함께 제출하면 된다. 신분증은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한다. DMZ 출입에는 군 관계자의 검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음식을 먹기 전, 미리 신분증을 제시하고 예약하면 관광버스 좌석을 확보할 수 있다. 좌석은 정원제라서 음식을 먹은 후 버스를 타면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 시간 날 때 친구들과 함께 경의.중앙선 전철을 타고 주변에 펼쳐지는 풍광을 감상하고, 전통시장에서 추억의 먹거리도 즐기고, 관람이 쉽지 않은 DMZ에서 전 세계 유일 분단국가의 아픔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당연히 재래시장 활성화에 작은 보탬을 주는 일도 의미 있을 것이다.
- 2017-06-2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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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치지 못한 편지] 쓸쓸한 만추의 어느 날 떠나버린 친구에게
-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의 부치지 못한 편지가 지난해 연말 편집부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열어보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 인간의 끝이 없는 탐욕의 수렁으로 인해 빚어지는 이승의 혼탁함 속에서도, 평생 맑게 살다 얼마 전 저 세상으로 떠난 대학 과동기인 제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 친구는 어느 지방대학 교수이면서 북한학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던 국제정치학 교수였는데, 그간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오퍼를 받았지만 끝까지 강단과 연구실을 지켜온 천생 학자였습니다. 친구는 그의 어머니께서 노산으로 낳은 막내아들로 몸이 약했는데 평생 담배를 염소같이 많이 피더니 결국 60대 중반에 폐암을 얻었고, 힘들게 치료를 해 몇 년 지나 완치가 되었나 했더니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어서 병원에서 몇 달 있다가 한 열흘 전에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저와 몇 명 안 되는 과동기들은 천안의 공원묘지에 가서 그 친구를 전별했고 공원 입구에서 산 자들은 맛대가리 없는 육개장을 한 그릇씩 훌훌 먹고 그를 남겨둔 채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카톡을 통해 그 친구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가 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우들에게 먼저 갑니다. 아직 책을 더 써야 하고 그 밖에도 못다 한 일들이 남은 것 같아 아쉬움도 있지만 게으른 천성에 지금까지 살아온 것으로 자족해야 하겠습니다. 새는 죽음을 앞두고 우는 소리가 더욱 아름답고, 사람은 죽음을 맞이함에 그 마음씨가 선해진다고 합니다. 저 또한 보다 조용하고 겸허해지고 싶습니다. 귀거래혜(歸去來兮·도연명)에서 도연명은 국화꽃 피고 술 익는 고향의 전원으로 돌아갔다지요. 저는 아지랑이 피는 봄날, 장다리꽃 위로 노랑나비, 흰나비 날아드는 어릴 때 뛰어놀던 서울 근교의 밭길을 걷습니다. 그 옆으로 이어지는 숲길도 보입니다. 그 너머로 모든 미련이나 원망, 죄의식도 훌훌 털어버리고 가을처럼 높고 푸른 하늘을 지나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곳으로 표표히 떠납니다. 인생이 한 조각 뜬구름이라 했거니와, 제게는 또한 한 가닥 미풍과 같습니다. - ○○○ 드림 날짜는 없었습니다. 사후 발송 같습니다. 아마 떠나기 며칠 전 혼수상태 이전에 혼신의 힘을 다해 썼든지 또는 혼미한 상태에서 구술한 것을 가족이 적어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간 후에 발송해달라고 가족에게 부탁한 것 같습니다. 저는 발송 경위를 알아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 친구가 하늘에서 보낸 것이라 생각할 따름입니다. 그 편지를 보고 울컥 먹먹해지며, 그 친구가 떠나면서 봤을 것 같은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습니다. 영화 의 주인공 막시무스 장군(러셀 크로우 배역)이 로마의 사악한 왕에게 비겁한 공격을 받고 죽어가면서 그가 보는 장면입니다. 어떤 좁은 문을 지나 고향의 들판과 아름다운 꽃, 그리고 가족들을 파노라마처럼 보는 것이지요. 아마 동양이나 서양이나 하늘로 떠나는 사람은 고향, 특히 어릴 적 놀던 그곳을 찾아가 보는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답장을 했습니다. 자네 말마따나 게으르고 느려터진 친구가 갈 때는 왜 그렇게 성미 급하게 떠났나? 지난 5월 어느 날인가 나도 암수술 후 6개월 정기검진 때 대기실에서 기다릴 때 자네가 마침 이런 문자를 보낸 것 기억하나? “조 사장! 수술 후 회복 잘되고 있으리라 믿소. 나는 지난달에 신우암이 또 생겨 좌측 신장 절제를 했는데 3년 전 수술한 폐암과는 다른 종류인데 모두 담배가 유력한 원인이라네.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하면서 한 번쯤 평생 담배 핀 것을 후회해볼까 생각하네. 우리 중고차 잘 유지 보수하며 삽시다.” 이런 내용을 보냈어. 내게 말이야…. 그 후 9월까지 몇 번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9월 이후 그렇게 급격히 악화될 줄 몰랐네. 그 성미에 아픈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겠지만 결국 나는 자네 병문안도 못 가지 않았나? 어차피 우리들도 하나둘 자네 뒤를 따라갈 것이니 자리 잘 잡아놓게. 그때 가서 너무 고참 행세 하지 말고. 그는 천재였습니다. 제가 1969년에 서울대 문리대(지금은 사회대, 인문대, 이과대를 합친 단과대)를 차석으로 입학했는데 이 친구가 하필이면 같은 과에서 전체 단과대 수석 합격을 해서 나는 결국 수석도 못했고 등록금 면제 대상도 안 되게 만든 악연(?)이 있습니다. 그 당시 민주화 세대였던 우리는 극렬한 학생운동 대열에 들어가거나 일찌감치 고시공부를 해서 정부로 들어가는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민간기업에 취직할 기회도 적었지만 말썽꾸러기 데모꾼 정치학도를 받아줄 회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제3의 길, 즉 드물게 학문을 하는 먼 길이 있었는데 그 천재는 그 먼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운이 없어서 박사학위도 매우 늦었습니다. 그는 그래도 늘 유쾌했고 잡학박사였고 잡담(농아리)의 대가로 이상파와 현실파가 다 좋아하는 뼈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집은 늘 우리의 아지트였지요. 밥도 제일 많이 얻어먹었는데 어머니는 늦둥이 아들 친구라고 정성을 다해 밥상을 차려주었지요. 많은 추억거리가 있지만 그는 어떤 허세나 재주도 부리지 않고 올곧게 학자로만 일생을 살았고, 도대체 건강을 위한 운동이라고는 전혀 안 했고 담배만 열심히 피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인간입니다. 언젠가 그가 속한 학회의 회장으로서 국제학술대회를 한국에서 주최하는데 한전에서 조금만 협찬을 해달랬는데, 명분이 약하다고 못 해준 것이 지금 저는 마음에 많이 걸립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비슷하겠지만, 저는 매우 우울합니다. 어차피 티끌 같고 미풍 같은 짧은 인생인데, 왜 그렇게 절제 없는 욕망의 화차를 맹목적으로 몰다 온 나라의 전복을 걱정할 정도로 소용돌이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어야 할 신뢰가 더욱 아쉬운 이때에, 쓸쓸한 만추의 어느 날 오후에, 주변머리 없이 제 가치를 지키다 맑고 아름답게 간 친구 이야기를 두서없이 적어봤습니다. 부디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아직도 담배 피시는 분들, 이 글 읽고 한 번쯤 금연 시도해보시지요.
- 2017-01-3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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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밥을 포기하고 나서
- 집에서 밥을 해먹던 것을 이제는 아예 나가서 먹는 것으로 전환했다. 집에서 취식을 안 하다 보니 여러 가지로 편리했다. 반찬거리를 둘 필요가 없으니 냉장고가 깨끗해졌다. 설거지 할 일도 없으니 주방이 깨끗하다. 쌀을 집에 두면 쌀벌레가 생겨 날아다니던 것도 사라졌다. 당연히 음식물 쓰레기도 없다. 장을 볼 필요가 없으니 재료를 사들고 갈 일도 없다. 집에서 밥을 해 먹던 것을 포기한 이유는 첫째, 아침 식사를 안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 뒹굴대다가 11시쯤 집을 나서면 한식 뷔페를 하는 집이 있다. 6천원인데 반찬 20가지에 밥과 국이 나온다. 이것으로 아침 겸 점심이 해결되는 것이다. 저녁 식사는 대부분 회식이나 뒤풀이로 배가 찬다. 집에서는 과일이나 술안주 정도만 두면 된다. 우리나라외식업체 수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인구 대비 많다는 것이다. 100명에 한 집 꼴이란다. 한 업체에 하루 100명의 손님이 찾아 드는 음식점도 많지는 않다. 그러므로 누가 갑인가 생각해 보면 굳이 집에서 밥을 해 먹을 이유가 없다. 재료 사다가 혼자 밥을 해 먹으면 오히려 돈이 더 들뿐 아니라 남아서 버리는 경우도 많다. 맛도 외식업체들은 경쟁이 치열하므로 맛있는 집이 많다. 값도 싸다. 내가 사는 지역은 주택가이면서 멀지 않은 것에 먹자골목이 있다. 좀 걸어 나가면 먹을 곳이 천지이다. 3천 원짜리부터 얼마든지 골라 먹을 수 있다. 요즘은 편의점 도시락도 먹을 만하다. 값도 3천원~4천원 수준에 메뉴도 다양하다. 24시간 문을 열고 있으니 언제라도 들러서 살 수 있다. 다만 국이 없다는 것이 흠이다. 국시장은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나처럼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은 국물이 있어야 식사를 제대로 한 것 같다. 내가 사 먹는 메뉴로는 한식 뷔페가 기본이다. 집에서 해 먹는 밥 이상이다. 기타 골라 먹는 메뉴가 칼국수, 냉면, 비빔밥, 콩나물 해장국, 북어국, 선지 해장국, 육개장, 설렁탕, 순대국, 추어탕, 삼계탕 등이다. 중국집 메뉴로 자장면, 짬뽕, 볶음밥도 언제나 대기 중이다. 어쩌다 집에서 해먹는 음식이라고는 라면이 있다. 비상식으로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라면은 냄비에 끓여야 하니 그냥 물을 끓여 라면에 부어 먹은 컵 라면이 더 편리하다. 설거지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동생네가 보내 주던 김치도 필요 없게 되었다. 양이 너무 많아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린 적이 많다. 기껏해야 라면 먹을 때 조금 필요하긴 한데 그 정도는 작은 용량의 김치를 마트에서 사다 먹으면 된다. 일인가구가 전체 27%로 2인 가구를 넘어 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일인가구가 대표가구가 된 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트에 가보면 아직 그 추세를 읽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1+1은 결코 반갑지 않은 포장 단위이다. 한 봉지만으로도 너무 큰데 1+1이라니 잡았다가도 손을 놓게 된다. 요즘은 과자 종류도 1+1으로 파는 경우가 많다. 싸니까 더 잘 팔릴 것 같지만, 미안하지만 기피한다. 포장단위가 더 작아져야 한다. 음식점들도 보통 4인 기준으로 테이블을 배치한다. 혼자 가도 4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게 되니 불청객 취급을 한다. 빨리 일인용 혼밥을 받아들일 태세를 갖춰야 한다.
- 2016-09-1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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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와 책으로 본 '채식주의자'
- 영화 '채식주의자'는 2009년에 만들어졌다. 한강의 동명 소설이 한국인 최초의 ‘맨부커상’을 수상하게 되자 최근에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최근 TV에서 여러 번 재방영되었다. 그런데 필자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곯아 떨어져서 제대로 다 본 적이 없었다. 어떤 때는 TV를 틀었을 때 시간이 안 맞아 중간부분부터 보다가 잠들었고 어떤 때는 거의 끝부분을 보다가 잠들었다. 첫날은 처음부터 봤는데 중간 광고 시간에 잠시 긴장을 푼 사이에 잠이 들어 못 봤다. 그러다가 드디어 네다섯 차례 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가 재미는 없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문예영화 또는 예술 영화는 지루한 것을 참고 봐야 한다. 말이 안 되든, 리얼리티가 떨어지든 제대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 영화의 바탕이 된 소설이 엄청난 큰 상을 받아 이미 내용은 수준 높다고 검증이 되어 좋은 작품이니 이해하려고 애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 영화의 제목이 ‘채식주의자’이니 채식주의자 여성을 주인공으로 알고 본다. 그러나 책은 그가 아닌 남편, 형부, 언니의 입장에서 썼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가족의 입장에서 그의 채식주의를 이해하려고 해야 하고 형부가 처제에 대한 성적인 욕망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책 모두 3부작으로 되어 있다. 각각 다른 시기에 써서 발표했고 이번에 셋을 영화와 책으로 모았다. 그렇다고 딴 사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은 같고 이야기도 서로 연관되어 이어진다. 1부 ‘채식주의자’, 2부 ‘몽고반점’, 3부 ‘나무 불꽃’이다. 영화에서는 채식주의자 영혜 역으로 채민서, 형부 민호 역에 현성, 그의 부인 지혜 역에 김여진이 나온다. 채민서는 채식으로 깡마른 몸을 연기하기 위해 8kg을 뺐으며 현성은 민호 역을 위해 반대로 10kg을 늘렸다고 한다. 1부 ‘채식주의자’에서는 영혜가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된 이야기를 알듯 모를듯하게 보여준다. 책에서는 기르던 개가 영혜를 물어 아버지가 그 개를 오토바이에 매달고 달려 탈진해 죽게 하고 식구들이 모두 모여 그 고기를 먹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책을 읽지 않으면 이 부분은 스쳐지나가기 쉽다. 영화에서는 대화에서 지나가는 말로 개를 죽였고 아무 거부감 없이 육개장 먹듯이 그 개고기를 먹는 것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책과 영화는 이런 차이가 여러 군데에서 나온다. 그래서 반드시 책도 읽어야 이해가 되는 것이다. 1부에서는 고기를 거부하는 영혜에게 아버지가 강제로 고기를 먹이려다가 안 되니까 뺨을 내리치는 장면이 충격적이다. 이 영화는 한 달 만에 3억5000만 원 정도의 저 비용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세트를 만들자니 돈이 많이 들어 20차례의 로케이션 촬영으로 끝냈다고 한다. 임우성 감독은 영화를 처음 만든 감독이라 유명세도 없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드라마 경쟁작에 초대받은 수작이 되었다. 3부작 중 가장 이색적인 것은 단연 2부 ‘몽고반점’이다. ‘몽고반점’은 2005년 이상문학상으로 뽑히기도 했다. 예술과 외설이 뒤섞인 기이하고 흥미진진한 내용이다. 채식주의 때문에 이혼 당한 처제와 비디오 예술작가 형부와의 작업 내용이다. 처제의 나신에 꽃 그림을 그리고 다른 남자를 등장시키지만, 결국 자신도 몸에 꽃그림을 그리고 처제와 뜨거운 정사를 나눈다.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관계인 처제와 형부의 관계, 그리고 처제를 벗기고 그 몸에 붓으로 꽃 그림을 그리는 애무 같은 과정, 자신도 나신에 꽃 그림을 그리고 처제와 결합하는 과정은 관능적이다. 맨부커상 수상작이 아니라면 음란영화나 음란 소설로 읽일 수도 있다. 형부가 하는 작업은 그림이 아니고 비디오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은 비디오 속의 주인공인 누구인줄 알아 볼 수 있다. 아무리 예술이라지만 이런 모험이 가능할까 싶다. 3부 ‘나무 불꽃’은 마무리이다. 거식증과 정신 분열증이 겹친 영혜는 결국 죽어간다. 죽는 장면은 없지만, 강제로 코를 통해 음식을 주입시키는 것도 거부하니 살 방법이 없다. 그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을까는 이해하기 어렵다. 꿈 때문이라고는 하나 꿈은 꿈일 뿐인데 현실에서 그대로 하고 있으니 병이다. 물구나무를 서고 있으면 나무가 뿌리를 땅에 내리듯이 되고 다리를 벌리면 가지가 벌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란다. 꿈에 나타난 얼굴은 매번 누군지 모르지만 다른 얼굴로 나타나는데 자신의 내장이란다. 어릴 때 자신을 물었던 개를 죽여 그 고기를 먹은 것이 영향을 줬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부인를 폭행하던 거친 아버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난해한 부분이다. 문화영화는 이렇듯 애매하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다.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이 한국인 최초의 맨부커상을 타게 된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한글로 된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작가의 역량도 대단하다. 필자가 보기에도 어려운 한국적인 분위기와 용어들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궁금하다. 특히 2부 ‘몽고반점’은 저자가 여자인데도 남자가 쓴 것으로 했는데 남자의 성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한 부분이 놀라웠다. 저자는 1970년생이니 앞으로도 더욱 기대되는 작가이다.
- 2016-06-2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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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맛집] 라면을 먹으며
- 김훈의 산문 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추위와 시장기는 서로를 충동질해서 결핍의 고통을 극대화한다. 짙은 김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콱 쏘는 조미료의 기운이 목구멍을 따라가며 전율을 일으키고, 추위에 꼬인 창자가 녹는다.’ 과장했다고 느낄지라도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라면의 맛을 모르는 이는 없을 거다. 잘 차린 진수성찬보다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끓인 라면 한 그릇이 더 간절할 때도 있다. 오늘 점심에는 라면을 먹으며 저마다 있을 라면에 얽힌 추억 한 가닥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두 번 먹어도 맛있는 ‘첫번째라면’ 진한 조개 육수를 사용해 깔끔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특징인 곳이다. 모든 라면 메뉴에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수프를 쓰는데 매콤한 향이 침샘을 자극한다. 모든 메뉴에 1000원만 추가하면 라면과 잘 어울리는 멸치아몬드 주먹밥(2개)을 즐길 수 있다(공깃밥으로 선택도 가능). 기본 라면은 조개라면(5000원)이고 그에 올라가는 재료에 따라 새우라면(6000원), 꼬치어묵라면(6000원), 전복라면(8000원) 등으로 나눈다(조개는 모두 들어감). 황태를 우려낸 육수로 맛을 낸 황태라면(5000원)은 인근 회사원들 사이에서 해장라면으로도 잘 알려졌다고 한다. 칼칼한 부대찌개에 라면사리를 넣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면 김치부대라면(5000원)을 추천한다. 부대찌개 한 그릇 못지않게 들어간 햄과 소시지를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낮에는 라면을 찾는 손님이 대부분이지만 해가 지고 나면 모둠 조개찜(3만 원)에 술을 곁들이러 오는 경우가 많다. 조개찜을 다 먹고 나면 남은 육수에 라면사리를 넣어 먹을 것을 권한다. 빨간 국물의 조개라면과는 또 다른 맑은 조개라면의 맛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조개두루치기(2만 원), 조개계란말이(1만 원), 조개 파전(1만5000원) 등 조개를 주재료로 한 안주 메뉴가 준비돼 있다. 주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37 아일렉스상가 지하12호 운영 시간 (평일) 10:00~23:00 (주말/공휴일) 11:00~17:00 문의 02-786-2080 서울식 라멘 ‘한성문고(漢城文庫)’ 2004년 서울 마포구 상수동 극동방송국 옆 작은 골목길에서 시작한 라멘 전문점 ‘하카다분코’의 분점이다. ‘문화의 창고[文庫]’라는 뜻의 ‘하카다분코’가 일본 문화만을 전파하는 것처럼 왜곡되는 점에 아쉬움을 느낀 주인장이 새로운 서울의 문화를 꿈꾸며 서울 가로수길에 ‘한성문고’를 열게 된 것. 한성문고에서만 맛볼 수 있는 서울라면(1만 원)은 그가 생각하는 오늘날의 서울을 표현한 라면이라고 한다. 서울라면은 지금의 모습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의 생각을 담아 변화할 예정이다. 현재는 돼지 사골, 닭, 채소, 가다랑어, 고등어를 우려낸 육수에 일반 라면보다 굵은 면을 사용하고 있다. 고명으로는 돼지고기 장조림, 챠슈, 청경채와 대파가 올라간다. 한성문고와 하카다분코 두 곳 모두 판매하고 있는 인(印)라멘(8000원)과 한(漢)라멘(1만 원)은 2일 동안 우려낸 돼지 뼈 육수를 사용해 걸쭉하고 진한 맛을 낸다. 한성문고의 라면은 간이 살짝 짜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싱겁게 먹기를 원하면 주문을 할 때 미리 말해 두는 것이 좋다. 육수 기름의 양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취향에 따라 많게 또는 적게 주문한다. 단, 기름을 너무 많이 빼면 특유의 풍미도 감소한다는 점을 유의해야겠다. 두꺼운 면을 사용하는 서울라면과 한라멘은 익힘 정도도 고를 수 있는데, 조금 덜 익혀 먹을 것을 권한다. 조금 느끼하다고 생각한다면 다진 마늘을 넣어 먹을 것을 추천한다. 처음부터 마늘을 넣어 먹으면 국물 본연의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 맛을 보다가 첨가하는 것이 좋다. 기본으로 제공하는 통마늘을 도구를 사용해 즉석에서 다져 넣기 때문에 마늘의 향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한 그릇에 마늘 2~3알 정도면 적당하다. 주소 서울 강남구 신사동 542-3, 2층 운영 시간 11:30~22:30 문의 02-543-7901 라면 장인의 손맛 ‘이재현 55번지라면’ 서울 종로구 화동 55-1번지에 있는 ‘이재현 55번지라면’. 삼청동 골목의 한옥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이곳은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인기 있는 맛집이다. 이재현 셰프가 다년간의 연구 끝에 탄생시킨 육수와 양념장으로 인스턴트 라면이 따라올 수 없는 풍미를 자랑한다. 모든 라면에 사용되는 육수는 소뼈를 고아 만든다. 일반적으로는 뽀얗게 우러난 사골 육수를 사용하는 것이 맛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실제 사용하는 육수는 맑은 편이다. 너무 진한 육수를 사용하면 점성이 강해 오히려 텁텁하기 때문에 적절히 우러난 맑은 육수를 사용해야 그 맛이 깔끔해진다고 한다. 육수 농도를 맞추기 위해 계속 펄펄 끓이는 것이 아니라 불 조절을 해가며 최적의 상태를 유지한다. 오징어, 바지락, 새우, 버섯과 각종 야채로 맛을 낸 오짬라면(7700원)은 특유의 쫄깃한 오징어와 얼큰한 국물 맛으로 인기다. 이보다 덜 맵고 하얀 국물의 55백뽕(8800원)과 더 맵게 끓여낸 맵다면(8800원)도 있으니 기호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된장을 기본으로 한 소스에 시래기와 두부 등이 들어간 토장라면(7700원)은 들깻가루와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그 외에 육개라면(8800원), 부대라면(8800원), 순두부라면(7700원), 불고기라면(9900원)도 제대로 만든 육개장, 부대찌개, 순두부찌개, 뚝배기 불고기를 먹는 것처럼 깊은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우선 면을 먹고 공깃밥을 시켜 남은 국물에 말아 먹으면 든든한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다. 라면을 끓이는 시간은 5분 내외이지만 각각의 재료의 맛을 살리기 위해 소뼈 육수를 사용해 불고기 양념을 재는 등 세심한 노력이 깊은 맛을 내는 노하우라 할 수 있겠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기름지고 자극적인 봉지라면 대신 건강한 재료로 담백한 맛을 낸 55번지라면이 어떤가. 된장으로 맛을 낸 토장라면이나 달달한 소고기가 넉넉하게 들어간 불고기라면은 아이들이 먹기에도 좋다. 주소 서울 종로구 화동 55-1 운영 시간 11:00~21:00 문의 02-722-2997
- 2015-12-22 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