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에서 발표하는 올여름 날씨 전망에 ‘역대급 폭염, 열대야의 무더위’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한더위를 특별히 ‘복더위’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여름철이 되면 복더위를 피하고 시원하게 지내기 위해 여러 방법과 도구를 사용했다.

열(熱)로 더위를 다스리다
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에 무더운 것은 자연의 당연한 이치다. 초복·중복·말복의 삼복 동안은 여름철 무더위의 대표적인 기간이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기운을 잃고 맥을 못 춘다. 여름 한더위에 식욕이 없어지고 땀을 많이 흘리면 허약해지기 마련이다.
냉장고며 제빙기조차 없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차가운 얼음과자나 팥빙수가 아닌 아주 뜨거운 음식을 즐겨 먹었다. 보신탕, 영계백숙, 계삼탕, 육개장, 팥죽 등 음식을 먹으며 기운을 보충하고 땀을 흠뻑 흘리고 나서야 비로소 ‘아 시원하다!’고 했다. 뜨거운 음식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면 송골송골 땀이 난다. 몸속 열이 배출되면서 체온도 낮아진다. 우리 조상들은 더운 것을 더운 대로 받아들였다. 뙤약볕도 마다하지 않고 각자의 일에 몰입해 땀 흘리다 보면 더위는 자연히 물러가 있다. ‘덥다, 덥다’고 하면 더 더워지는 것이 사람의 간사한 마음이다. 이열치열의 피서는 더위를 피하지 않고 맞서서 이겨내는 적극적인 피서법이다.

시원함(冷)으로 더위를 식히다
이열치열과 함께, 시원한 것으로 복더위를 식히는 이냉치열의 피서법도 있다. 여름에 사용하는 풍물들은 대개 신체와 물체 사이에 여유 공간을 만들고, 그 사이로 바람이 통하게 한다. 즉 공기를 순환시켜 살갗의 땀을 말리는 자연 선풍(旋風)의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복더위를 식히던 옛 풍물들로는 더위가 저만치 피해 가는 삼베옷, 신선한 자연 바람을 낳는 부채, 외부의 불볕더위를 막되 시원한 바람은 불러들이는 발(簾)과 평상, 돗자리, 목침과 퇴침, 죽부인, 등등거리와 토시 등이 있어 어떤 무더위도 걱정이 없었다.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달력이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부채는 여름나기 필수품이다. 또 복더위 가운데도 가장 더위가 심할 때는 생모시로 된 고의, 적삼 또는 치마를 해 입었다. 깔깔하고 성긴 천이라 옷이 살갗에 달라붙지 않게 한다. 우리 옷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양복처럼 몸에 꼭 맞게 짓지 않고, 몸과 옷 사이에 통풍 공간을 두어 여유로운 구조로 만든다.
여름 풍물 중 대표적인 것이 죽부인이다. 죽부인은 여름밤에 끼고 자면서 시원함을 취하는 생활 용구다. 대오리(가늘게 쪼갠 긴 댓개비)를 깎아서 사람 키보다 좀 작은 원통형 모양에, 부피는 안아서 반 아름쯤 되게 만든다. 얼기설기 엮어 속이 비어 있으니 공기가 잘 통하는 구조이며, 대나무 표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을 이용한 것이다. 주로 남성들이 끼고 자는 것이므로 그 물건을 인격화하여 ‘죽부인’이라 불렀는데, 아버지가 쓰던 죽부인은 아들에게 물리지 못하도록 했다. 무더운 여름밤에 죽부인을 끼고 삼베 홑이불을 덮고 잘 양이면, 죽부인의 서늘한 감촉과 품 안으로 드나드는 바람 덕에 시원하고 상쾌한 잠자리를 누릴 수 있었다.

여름밤이 서늘했던 까닭
지금은 산과 바다는 물론, 해외까지 나가는 먼 피서길이 많아졌다. 예전에도 그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산간 폭포에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으면서 하루를 보내는 ‘물맞이’를 하러 휴양 가는 일이 있었다. 차가운 물줄기에 몸과 마음을 가라앉히는 피서법이다. 바닷가나 냇가에서 뜨끈하게 모래찜질하며 땀을 빼는 지방도 많았으며, 냇물에서 고기잡이하는 ‘천렵’도 삼복 피서로 즐기던 여름의 백미다.

그러나 시원한 여름 하면 가장 익숙한 풍경은 흰 구름이 떠다니는 원두막과 시원한 물이 가득 샘솟는 우물가다. 원두막은 예부터 참외·수박을 지키는 망루 구실 외에도 동네 사람과 길손들이 땀을 식히는 좋은 피서지이자, 밤이면 마실 나오는 모임의 장소이기도 했다. 또한 옛날에는 웬만한 집 안에 대개 우물이 있었거니와, 물맛이 좋고 여름철에는 이가 시릴 정도로 찬 큰 우물이 동네에 하나씩 꼭 있었다. 몹시 더운 한여름에 참외나 수박 같은 과일을 시원하게 먹기 위해 두레박에 넣어 우물물 속에 담가두었다가, 먹고 싶을 때 끌어올려 차게 즐겼다. 시원한 과일을 원두막에서 나눠 먹는 즐거움에 여름의 시름이 사라졌다.
반면 모기는 반갑지 않은 여름밤 손님이다. 여름날 마당에 멍석을 펴놓고 저녁 먹을 때면 으레 단옷날 뜯어놓은 쑥과 짚검불로 모깃불을 피워 모기를 쫓았다. 된장에 찍어 먹은 풋고추의 매운맛에 모깃불의 매운 연기까지 겹치면 콧등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매운 저녁이 된다.

무더위로 잠 못 드는 밤이면 할머니들은 손주를 무릎베개에 뉘고, 모깃불이 다 사그라질 때까지 부채로 모기를 쫓아가며 무시무시하고 으스스한 옛날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꼬리 아홉 달린 백여우가 동물들의 간을 꺼내 먹는 대목과 달밤에 공동묘지에 나타나는 소복 입은 처녀 귀신 이야기, 사람을 잡으러 온 저승사자 이야기는 아무리 더워도 홑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게 한다. 으스스하다 못해 소름 끼치는 귀신 이야기를 듣다 보면, 긴 듯해도 실제로는 ‘코찌래기’만큼 짧은 여름밤이 금세 지나간다.
한여름이 덥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더위를 식히고 피하는 방법은 사뭇 달라졌다. 우리 조상들의 더위 피하는 방법은 자연의 숨결 속에서 그 생명력을 주고받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더위를 다스렸다. 옛날에는 방문과 창문을 열어 공간을 개방함으로써 시원함을 구하려 했고, 요즘은 자연의 조건을 차단한 밀폐된 공간에서 에어컨·선풍기 등 기계의 도움으로 더위를 피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오랜 생활 경험에서 터득한 여름나기 비법은 자연적이면서도 과학적이다. 무엇보다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무동력의 피서 도구와 방책들이었다. 무분별한 에너지 사용으로 해마다 더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는 요즘, 조상들의 지혜로운 여름나기 방법으로 건강한 여름을 지내보면 어떨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