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산불 피해가 8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연예인들의 성금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산불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을 위로하며 피해 수습·복구·지원에 성금이 쓰여지기를 바랐다.
배우 김희선과 가수 영탁은 적십자를 통해 성금 1억 원을 기탁했다. 김희선은 적십자사를 통해 “예기치 못한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산림재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기부하게 됐다”며, “어려움을 겪는 이재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고, 산불로 소실된 산림이 조속히 복원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가수 임영웅은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1억 원을 기부했다. 그는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임영웅의 팬클럽 '영웅시대' 또한 회원들의 동참으로 모인 2억 6000만원을 사랑의열매에 전달했다.
유재석은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희망브리지)에 “산불 피해로 아픔을 겪는 이재민들을 위해 써달라”며 1억 원을 기부했다. 대형 산불 피해가 커진다는 소식을 접한 유재석은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긴급 구호 등 피해 지원 명목의 기부를 결정했다고 전해졌다.
유재석은 앞서 2019 태풍 피해, 2020 수해 피해 긴급구호 캠페인, 코로나19 피해 지원 성금 등 희망브리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기부해왔고, 기부 금액이 8억여 원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재석의 선한 영향력이 새삼 입증됐다.
이달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인 스타 커플 현빈과 손예진도 희망브리지에 기부금 2억 원을 함께 전달했다. ‘절친’ 정우성과 이정재도 희망브리지에 1억 원을 각각 기부했다. 정우성은 소속사를 통해 “산불로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과 밤낮으로 힘쓰시는 모든 관계자분들께 작게나마 도움을 보태고 싶다”라고 전했다.
김은숙 작가와 드라마 제작사 화앤담픽쳐스의 윤하림 대표는 산불 피해 이웃돕기 성금 6천만 원을 희망브리지에 기부했다. 더불어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자 돕기에 4천만 원을 기부했다.
가요계를 대표하는 3사도 기부에 동참했다.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와 SM엔터테인먼트, 그리고 YG엔터테인먼트는 희망브리지를 통해 5억 원을 쾌척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에 3억 원을 기부했다.
이 외에도 송강호, 김혜수, 송혜교, 신민아, 한지민, 이제훈, 김우빈, 이종석, 박민영, 김고은, 박보영, 아이유, 수지, 방탄소년단 슈가, 전현무, 김연아 등도 1억 원을 기부하며 산불 피해 구호에 동참했다.
강원도 산불은 지난 5일 오전 1시 8분 강릉시 옥계면 남양2리에서 주민 이모(61)씨의 방화로 시작돼 8일째 이어지고 있다. 11일 오전 울진-삼척 지역 산불이 꺼지지 못한 채 진화율 75%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동해안 산불로 인해 이날 오전 6시까지 2만 3 993ha의 산림 피해(산불영향구역 면적)가 추정된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인 2000년 동해안 지역 산불의 피해 면적인 2만 3천 794ha를 넘어섰다.
이날 오전 5시까지 산불로 648개 시설이 피해를 입었다. 주택 358채, 농·축산시설 48곳, 공장 및 창고 167곳, 종교시설 75곳이 피해를 봤다. 인명 피해로 확정된 사례는 없다. 방화를 저지른 이모 씨의 모친(86)이 산불을 피해 대피 도중 다치면서 숨진 바 있지만, 경찰은 평소 모친이 거동이 불편했기 때문에 산불로 인한 연관성은 적다고 봤다.
정부 각 부처가 강원·경북지역의 산불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건강보험료와 전기·도시가스 요금을 경감하거나 세금을 감면해주고, 의료비를 지원하는 등의 지원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강원 삼척시와 경북 울진군의 산불 피해 주민들에게 건강보험료를 경감하고 의료비 등을 지원한다. 의료지원을 요청할 경우 보건소 신속대응반, 재난의료지원팀이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도록 대기 중이며, 필요시 이동형 병원도 배치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재난의료지원팀은 의사와 간호사, 응급구조사, 행정요원 등으로 구성돼있다.
재난 포털에 등록된 피해명단 대상자는 건강보험료의 50% 범위 내에서 3개월치 보험료가 경감된다. 연체금은 최대 6개월까지 징수하지 않는다. 특별재난지역 피해주민에게는 최대 1년간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를 제외시키고, 6개월까지 연체금을 징수하지 않는다.
산불피해로 인해 주택 또는 건물에서 생활하기 곤란하게 되었거나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재민 중 중위소득 75%인 가구에게는 긴급지원이 우선적으로 주어진다. 지원 대상 소득 기준은 중위소득 75%로, 4인 가구 기준 384만 원이다.
재산 기준은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대도시는 2억4100만 원, 중소도시 1억5200만 원, 농어촌의 경우 1억3000만 원 이하다. 금융재산은 600만 원 이하여야 하며, 주거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800만 원 이하의 금융재산을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영남권·강원권 트라우마센터 두 곳을 중심으로 광역·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와 함께 이재민들이 심리 지원에 나선다. ‘마음 안심버스’를 운행해 이재민들의 정신건강 평가, 스트레스 측정 및 재난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임시거주시설로 활용하는 식이다.
이외에도 복지부는 임시거주시설 내의 이재민 중 긴급지원 대상이 아닌 이들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연계할 예정이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피해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즉각적인 조치로 경북·강원 산불 피해주민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산불 피해를 입은 납세자들에게 종합소득세, 부가가치세, 법인세 등의 신고·납부기한을 최대 9개월까지 연장한다. 울진·삼척에 위치한 중소기업은 납부 유예 기간을 최대 2년까지 늘려준다. 현재 체납액이 있는 경우에도 압류된 부동산 등의 매각을 보류하는 등 최장 1년까지 강제징수 집행을 유예한다.
산불 피해로 사업상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납세자의 경우 연말까지 세무조사를 실시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 세무조사가 사전통지 됐거나 진행 중이라면 납세자의 신청 여부에 따라 연기 혹은 중지를 결정한다.
국토교통부는 산불 피해 이재민들에게 산하 기관 연수시설을 임시주거시설로 제공한다. 또한 울진·삼척의 이재민들은 공공임대주택 공가 및 전세임대주택을 최초 2년간 임대료를 50% 감면받아 거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주택이 소실되거나 일부 파손된 경우에는 행정안전부의 재난지원금과 별도로 주택도시기금을 통해 재해주택 복구자금 융자를 지원한다.
이외에도 농림축산식품부는 산불로 피해를 입은 농업인들에게 농기계를 무상으로 수리하거나 볍씨, 씨감자, 육묘·묘목 등을 공급할 예정이다. 이재민 구호용 정부 양곡 무상 공급, 농축산경영자금 상환 연기 및 이자 면제와 함께 비닐하우스 등 농업시설을 복구하는 데에 필요한 자금도 지원한다.
최근 넷플릭스의 웹드라마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와 tvN의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 등을 통해 유품 정리사라는 직업이 재조명되면서, 유품 정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사망 단계 진입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쏟아지는 유품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후 정리만큼이나 생전 정리 역시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출생사망통계 결과를 살펴보면 지난 10년간 국내 사망자 수는 지속해서 늘어났다. 2010년에는 25만여 명이었던 사망자 수는 2020년 30만여 명으로 19.4% 증가했다. 많게는 800만 명 정도로 집계되는 베이비붐 세대의 사망으로 인해 본격적인 인구변동이 이뤄지면, 이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의 사망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유품을 어떻게 정리하느냐는 것. 현재 우리 사회에서 유품은 유족에 의해 정리되지 않으면 청소 업자 등을 통해 치워진다. 업자들은 중고 판매나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들을 보물찾기처럼 선별한 후 나머지는 쓰레기와 함께 처리한다.
이런 방식의 경우 판매를 목적으로 선별이 이뤄지다 보니 대형 가전 등 ‘돈 되는’ 물건들 위주로 재활용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고, 판매가 만만치 않은 소형 가전이나 생활용품은 상태와 상관없이 버려지기 마련이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냉장고, 세탁기, TV 등 대형 가전제품의 재활용은 관련법이 정한 의무량을 웃돌 정도로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통신사무기기나 소형기기의 경우 달성량이 의무량에 못 미치고 있는 상태다. 생전 정리를 통한 재활용이 아쉬운 이유다.
일본의 경우 고령층이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물품을 정리해 나가는 생전 정리가 정착되는 단계에 있다. 이들은 이를 ‘종활’이라고 부르는데, 종활(終活, 슈카쓰)은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한 다양한 준비 활동을 뜻하는 일본 사회의 신조어다.
일본 최대의 중고거래 플랫폼인 메루카리가 지난 3월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이 기업을 통해 중고거래에 참여한 60대 이상 이용자 수는 전년도보다 1.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연평균 판매 물품의 수도 20대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이들은 지난 20일 일본의 ‘경로의 날’에 맞춰 고령자들이 중고거래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물품 세트를 무료로 배포하고, 고령자 대상의 온라인 교육도 진행했다. 늘어나는 고령 사용자의 입맛에 맞추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것과 비교하면 국내 플랫폼 업체들의 고령자 접근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인다.
국내에 유품 정리 서비스를 소개한 1세대인 키퍼스코리아의 김석중 대표는 “사망자 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에 반해, 우리 사회의 생전 정리 혹은 유품 정리에 관한 인식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유품 정리 업체가 수거한 가전제품이 이재민의 재기를 위해 기부됐던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생전 정리를 통해 물품이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돼 요긴하게 쓰일 수 있도록 제도나 관련 인프라의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세차를 하는 날, 세차장이 바로 집 옆이어서 차 몰고 가는 건 좀 뭐하다고 생각해 걸어갔다.
-강아지 털 밀기로 예약한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아 막 뛰어갔는데, 강아지를 안 데리고 왔더라.
최근 인터넷에서 읽은 건망증 사례다. 쯧쯧. 젊은 사람들인 걸로 보이는데, 벌써부터 그러니 참 안됐다.
다음은 교수의 건망증에 관한 유머. 기차를 기다리던 교수 세 명이 각자 딴생각을 하고 있다가 기차가 저만큼 떠나자 쫓아가 올라탔다. 동작이 굼뜬 교수는 타지 못했다. 지켜보던 사람이 “그래도 셋 중 둘이나 탔네”라고 놀리자 낙오된 교수가 “저 사람들은 날 배웅하러 왔던 거 같은데…”라고 했다.
교수들은 왜 잘 잊어버릴까. 교수유머는 수도 없이 많다. 독일 대학에서 교수자격을 취득한 분은 축하하는 사람들에게 “본인은 이제부터 시간을 못 지키더라도 용서와 이해를 받는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라고 해 다들 한바탕 웃었다고 한다.
근데 나는 교수도 아니면서 왜 자꾸 뭘 잊어버리는 거지? 차로 출퇴근하던 시절, 지하철 타고 몇 정거장 갔다가 회사 주차장으로 되돌아옴. 흐린 날, 검은 우산과 검은 쓰레기봉투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집을 나와 우산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지하철까지 감. 사람들이 자꾸 이상하게 쳐다봐 유턴, 쓰레기통 뒤져서 우산을 찾음.
최근에 자주 잊어버리는 건 마스크다. 난 마스크 버리기가 아까워 몇 개를 빨랫줄에 걸어놓고 나름대로 햇볕에 ‘소독’한 다음 번갈아 쓰고 있다. “마스크는 내 친구”(남양주시의 포스터)라는데, 외출할 때 집을 나섰다가 다시 들어가지 않은 날이 거의 없다. 들어갔다 나와 보니 이번엔 휴대폰이 없어 또 들어가고…. 며칠 전 밥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꽤 있더라.
그날 화제는 건망증(健忘症)이었다. 우선, 건망증에 왜 健(건강할 건) 자가 들어갈까. 잊어야 건강해진다는 뜻일까. 너무 많은 걸 기억하고 하나도 안 잊어버리면 정신건강상 오히려 해로우니 적당히 잊어야 한다는 뜻에서 만든 말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파우스트도 1부에서 저지른 악행과 잘못을 완전 망각한 뒤에야 2부에서 사람이 된다. 그럴듯했다. 어감상 일본인들이 만든 말 같다는 의심도 제기됐다.
궁금해 찾아보니 당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시가 나왔다. 그의 ‘偶作寄郞之’(우작기낭지, 우연히 지어 낭지에게 주다)라는 작품의 맨 끝에 “老來多健忘(노래다건망, 나이 먹으니 더 잊기를 잘하나) 唯不忘相思(유불망상사, 오직 그리움만은 잊히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이 경우의 健은 ‘매우, 몹시, 잘, ~에 뛰어남’이라는 뜻이다. 건송(健訟, 하찮은 일에 송사 걸기를 좋아함), 건설(健舌, 뛰어난 말재주), 건필(健筆, 글씨를 잘 씀), 이런 말이 같은 용법이다.
한자가 재미있고도 어려운 것은 한 글자가 다양하고도 상반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굴원(屈原, BC 343?~BC 278?)이 남긴 ‘離騷經’(이소경)의 경우, 離는 떼어놓다, 가르다, 벗어나다, 피하다라는 뜻 외에 걸리다, 당하다, 만나다라는 뜻이 있다. 심지어 결혼하다라는 뜻도 있으니 오늘날의 이혼(離婚)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그러니까 離騷는 근심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걱정거리를 만났다, 우환(憂患)에 걸렸다는 뜻이다.
이 경우의 離는 나중에 罹(병, 근심, 재앙 따위에 걸릴 이)로 바꿔 쓰게 됐다. 이환(罹患) 이재민(罹災民)이 그런 경우인데, 국회 부의장까지 했던 어떤 국회의원이 정부의 수재대책을 따지면서 이재민을 나재민으로 읽어 망신을 한 일이 있다. ‘罹’(걸릴 이)를 ‘羅’(벌릴 나)로 본 탓이다. 息(식)도 참 묘한 글자다. 생존하다, 번식하다, 살다라는 뜻과 상반되게 그치다, 그만두다, 망하다라는 뜻이 있다. 이거 참, 어디 가서 남들 앞에 아는 체하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자료를 좀 더 찾아보니 건망증을 알기 쉽게 ‘새는 술잔’에 비유한 사람들이 있었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시에 “온갖 근심 한데 모여 속이 오글오글 타고[百憂幷集似焦釜] 만사는 잘도 잊어버려 새는 술잔 같네[萬事健忘如漏巵]”라는 표현이 있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시에도 “가난하여 배부름 꾀한 것 때때로 우스워라[貧謀一飽時還笑] 세상 인정 잘 잊는 건 새는 술잔 같다오[世態健忘如漏巵]”라고 한 대목이 있다. 누가 누구 표현을 베낀 걸까. 아니면 그냥 그 시대의 일반적인 표현이었나? 동시대의 인물인 두 분은 그리 살갑지 않아 서로의 문장을 별로 인정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김종직에게 넘겨주지 않으려고 서거정이 대제학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는 말도 있더라.
새는 술잔, 즉 누치(漏巵)는 ‘회남자’(淮南子) 범론훈(氾論訓)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지금 낙숫물 방울도 충분히 항아리를 채워 넘치게 할 수 있지만, 강하의 큰물도 새는 술잔은 채울 수 없나니,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은 것이다[今夫霤水足以溢壺榼 而江河不能實漏巵 故人心猶是也].” 원래 뜻은 이렇게 주량이 많은 것, 절약하지 않고 헤피 쓰는 걸 경계하는 말이었는데, 후대에 내려와 건망증으로 연결된 것 같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새는 술잔’은 정말 치명적인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을 거다.
그런데, 이렇게 전고를 찾고 문자 공부를 한다고 해서 건망증이 치유되거나 해소될까. 오히려 잊어버려야 할 것만 더 쌓아두는 게 아닐까. 전에 읽었던 책을 간혹 뒤지다 보면 내가 같은 걸 여기저기에 써둔 메모가 발견된다. 잊어버리고 또 적어두고, 잊어버리고 또 적어놓은 탓이다. 건망(健忘)은 결국 다망(多忘)이다. 그러니 오늘은 여기서 그만.
일대 변신을 예고하듯 서울시 용산구 곳곳은 공사가 한창이다.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과 발맞춰 개발 사업 진행 또한 한창이다. 한강대교 북단 쪽 큰 도로변에서는 옛 모습을 도무지 찾아보기 힘들 정도. 더 헐리고 사라지기 전에 용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강신영 동년기자와 함께 추억의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좁다란 골목으로 들어서니 웃음꽃 피는 옛이야기가 살아 있었다. 늦은 밤,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과의 만남은 추억 놀이의 하이라이트였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교, 한강초등학교
용산은 역사적으로 참 다양한 의미와 사건이 중첩되는 곳이다. 과거 서울의 행정 중심지와 가까우면서도 한강 이남과 이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역할을 다했다. 근·현대 부자들은 용산에 부촌을 형성하며 모여 살기 시작했다. 미군이 이 일대에 들어와 있던 60여 년 동안 자연스럽게 작은 지구촌 같은 분위기를 풍기게 됐다. 강신영 동년기자는 초등학교 입학 전 부모님을 따라 충청북도 영동에서 서울 용산으로 이주했다. 결혼 후에는 용산시장 근처에서 살다가 강남으로 옮겨갔다.
“한강초등학교가 내 모교예요. 삼각지에 용산초등학교가 있었어요. 원래는 거기에 입학했는데 2학년 1학기 때 한강초등학교가 생기면서 용산초등학교 10개 학급을 나누어서 한강초등학교에 보냈어요. 여기 판자촌이 되게 많았거든요. 동부이촌동과 서부이촌동 양쪽에요. 예전에 이쪽에 홍수가 많았는데 이재민이 생기면 학교 운동장에 수용했었어요.”
강신영 동년기자의 어릴 적 추억이 좀 남아 있을까 싶어서 향했던 한강초등학교. 2000년대 중반 학교를 재건축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학교가 들어서 있었다. 물난리에 몰려왔던 운동장도 뛰어놀고 공부하던 교실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부유했던 용산 시절, 생각만 해도 신난다
“네, 그랬어요. 우리 집이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 다음으로 부자였어요, 진짜로. 왜 잘살았냐. 용산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는데 강남이고 동서울이고 남부터미널이고 생기기 전에는 용산시외버스터미널이 가장 컸어요. 그곳에서 장사를 아주 크게 했어요.”
용산 시외버스터미널은 1972년부터 1989년까지 경기 남부와 충청도, 경상남북도에 120개 노선, 631대 버스들이 들락거리던 서울의 중심 버스터미널이었다. 하루 평균 2만7000여 명이 이용하면서 일대 교통 체증이 증가하자, 당초 계획했던 1992년 이전을 앞당겨 1989년 강남 일대로 터미널을 옮겼다.
“지방으로 가려면 좌우지간 용산에서 버스를 타야 했어요. 터미널 앞에 상점이
5개가 있었는데 그중 우리 집이 3개 점포를 운영 했어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구멍가게였지만 명절이 되면 물건이 없어서 못 팔았어요. 진열장에 올려놓기가 무섭게 다 사가지고 갔어요.”
용산터미널 앞에서 성공을 거둔 후 서울역에 또 다른 터미널이 생긴다 하여 주류업으로 업종을 전환해 또 크게 성공을 했다.
“아버지가 그 뒤 주류 도매업을 하셨어요. 트럭이 80여 대나 됐죠. 가업은 둘째 형님이 이어받았어요.”
용산의 추억이 많은 이유는 돈을 많이 번 것도 의미 있지만 어려웠던 시절의 풋풋한 이야깃거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참… 다 그렇게 살았으니까. 잘살았다고 말했지만 아주 뭐 비까번쩍한 집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그 옛날 프로레슬링하고 권투 중계를 하면 우리 집에 동네 사람이고 친구들이고 와서 텔레비전을 시청했어요.”
오래전 우리 집이 남아 있다
강신영 동년기자가 살던 집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궁금했다. 공사로 정신없는 용산 중심지를 벗어나 한강대교 북단 서울의 몇 안 되는 ‘땡땡거리’ 중 하나인 백빈건널목으로 향했다. 1960~1970년대 정취가 남아 있는 용산의 뒷골목은 마치 드라마 세트장처럼 시대의 한 페이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이 집 저 집을 찾는가 싶더니 강신영 동년기자는 옛집을 찾아내고 활짝 웃는다.
“이 집이었어요. 한 10년 여기서 살았어요. 하숙도 했었는데 그대로네요.”
곧바로 기찻길과 연결된 집. 오래전에는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끔 얼굴을 마주치기도 했는데 상명여중 여학생과 눈이 마주쳐 설레었던 적도 있었다고.
“지금은 담장을 쳐놓았는데 여기가 다 무허가 집들이 있던 기찻길입니다. 바닥에 귀를 바짝 대면 기차가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어렸을 적에 기찻길 건널목 차단기를 내려주는 아저씨가 멋져 보여 장래희망으로 생각했다 혼난 적이 있다고 강신영 동년기자는 털어놨다.
“예전에 기차가 오면 차단기를 내려주는 일을 하는 분이 있었어요. 한 번 내릴 때마다 수당을 얼마 정도 받는다기에 나중에 크면 저 일을 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가 혼난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꿈을 크게 가지라는 뜻이셨습니다.”
현재 백빈건널목 철길은 경의중앙선과 경춘선 ITX청춘 열차와 화물열차가 지나가는 길목이 됐다.
“어렸을 적 골목 중앙통에 긴 의자를 놓고 지나가는 학생들 복장 검사도 하고 그랬어요. 제 눈에 불량하다 싶으면 얌전하게 하고 다니라고 주의도 주고 그랬어요(웃음).”
금융권 생활 20년, 돈 냄새를 누구보다 잘 맡는 사람이 있다. 퇴직 후 10년, 불운의 연속으로 실패에 쓴 맛을 본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NGO단체 (사)러브 월드에서 삶의 보람을 찾고 있는 박근배 사무국장이다.
그는 자신을 한때 ‘잘 나갔던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표했했다. 그러나 전혀 거만하거나 거북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본 경험도, 바닥에서 헤메던 경험도 있던 사람의 여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은행연합회에서의 20년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끼거나 후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시절이 내 삶에서 가장 화려한 날이라고 표현 할 뿐이다.
◇ 잃어버린 10년
지지리도 운이 없었다. 박씨의 퇴직 후 10년은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지난 10년 간 3차례의 사업에서 실패해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 탓이다.
2003년 은행연합회에서 나온 후 그가 도전한 첫 사업은 골프연습장. 골프마니아다운 야심찬 행보였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골프 프로 티칭 자격증까지 보유하고 있었지만, 경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골프 연습장은 얼마 되지 않아 폐업을 하게 된다. 씁쓸한 결과였다.
가장 운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두 번째 사업이다. 2007년 그가 시작한 것은 공교롭게도 수고기 수입 사업이었다. 소고기 수입 회사의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전국적으로 촛불시위가 확산됐다. 박씨에게는 악재였다. 대한민국 사람 그 누구도 수입 소고기에 눈을 돌리는 사람이 없었다. 2007년을 회상하며 말을 이어나가던 박씨의 얼굴에 허탈한 미소가 번졌다. 그 모습에 기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태국 골프투어회사 경영은 불운의 마침표였다. 그가 태국에서 골프투어회사를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태국은 반정부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시위는 과열양상을 보이나 싶더니 이윽고 유혈사태까지 벌어져 한국발 태국행 비행기는 파리만 날리게 됐다. 태국을 찾던 관광객들은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으로 발길을 돌렸다. 부푼 꿈을 안고 찾은 태국도 그에게 재기의 발판이 되지는 못했다.
그야말로 잃어버린 10년이었다. 은행연합회에 재직하면서 모은 돈도 모두 날려버렸다.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들이었다. 오직 신앙에 의존해 극복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수년이 흘렀다. 그때는 절망의 기운으로 몸서리쳤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값진 경험이 됐다.
“‘아 이게 하느님의 뜻인가’하고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러면서 깨달았죠. 나이가 들고 이 세상을 뜨면 가지고 가지도 못할 돈. 이것을 쫓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 주는 것? 얻는 것이 더 많은 NGO 활동
박씨에게 3번의 쓰디쓴 실패 경험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들어줬다. 그중에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자문도 있었다. 그 심오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지난해 필리핀에서 얻을 수 있었다. 그가 찾은 그곳의 여름은 태풍 하이옌 피해로 아수라장이었다. 특히 많은 사람이 얽히고설킨 집단 이재민 수용소는 처참함 그 자체였다.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다짐했다. 이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미래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말이다.
박씨는 다짐을 실천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 활동 범위 또한 국내·외를 넘나들었다. 국내에서도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족들이 한국어 교육과 건강 검진까지 받을 수 있는 토털 케어 센터가 바로 그것이다. 자원 봉사의 현장에서 봉사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활기를 찾고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볼 때 덩달아서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NGO 활동의 매력이라고 그는 얘기한다.
박씨가 NGO 활동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베푸는 것만으로 보람을 느꼈다면 결코 이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봉사와 온정이 전해지는 현장에서 삶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것. 살아가는 힘과 원동력을 얻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박씨가 손을 놓지 않는 이유다. 자신의 힘을 보태고자 날아간 필리핀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보탠 힘보다, 더 많은 힘을 얻어 돌아왔다고 말한다.
“동남아 봉사활동을 가면 오히려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항상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어야 감사할 줄 알았던 저였는데 그것이 행복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남아 사람들의 순수한 모습과 넉넉하진 않아도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모습. 이것을 보면서 진짜 행복함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배우게 됐습니다.”
◇ 영혼이 즐거워야 인생이 행복하죠
“제가 러브 월드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저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는 거예요. 이것으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저뿐만이 아니라는 것이죠. 또 나로 인해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은 후에는 영혼이 즐거워집니다. 이게 바로 행복한 인생인가 봅니다.”
박씨는 행복은 영혼의 즐거움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에게 돈은 이제 전혀 보람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적어도 금융권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쌓여가는 통장의 잔액이 보람의 척도이자 행복의 척도였지만 말이다.
그가 영혼을 즐겁게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NGO 활동. 삶의 보람을 찾은 덕분인지 몇 년 전까지 실패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인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밝고 패기가 넘친다.
그가 보람 있는 인생 후반전을 살고자 하는 신중년들에게 하는 조언이 있다.
첫째, 자신을 위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 동안 가정을 위해 너무 많은 부담을 짊어지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보람된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그에게는 NGO 활동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있다.
둘째, 예전의 지위나 기억들을 내려놓는 것이다. 퇴직 이 후는 그야말로 인생 후반전이자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잘 나갔던’ 때를 기억하며 상대방이 그때의 지위로 생각해주고, 행동해 주길 바란다면 보람 있는 일을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거란 것이다.
인생 후반전을 행복하게 살고 있는 박씨. 그가 러브월드 활동을 하면서 생긴 철학이 있다. 항상 가슴과 머리에 새겨 놓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은 오로지 육신뿐. 보람 있는 삶을 살아 멋진 이름 남겨놓고 가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요즘처럼 어려워진 사업 환경에 기업들이 사회공헌에 넉넉한 인심을 쏟아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금융그룹은 꾸준히 사회공헌 사업을 확대하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업 이익에 대한 나눔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일상적 활동이 돼야 한다는 기업 모토가 투영된 결과다. 임영록 회장이 강조하는 ‘시우(時雨)금융’의 정신이다.
임 회장의 뜻에 맞춰 KB금융 임직원들은 △재해 발생 시 신속한 지원을 돕는 ‘신속드림봉사단’ △재능을 기부하는 ‘재능드림봉사단’ △핵심 테마별 1200여개 봉사단을 아우르는 ‘KB스타 드림봉사단’에 모두 가입돼 있다.
2만5000여명의 직원은 1인 1봉사활동에 참여해 지난 한 해 동안 총 34만 시간의 지역밀착형 봉사활동을 펼쳤다. 올해도 KB금융 임직원 모두가 1인당 10시간 이상의 자원봉사를 목표로 ‘전 직원이 국민 속으로’라는 사회공헌 특명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KB금융은 사회공헌 활동의 핵심 테마를 청소년과 노인복지로 삼았다. 우선 청소년들에게 보다 체계적인 경제·금융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전·현직 임직원, 대학생으로 구성된 700여명의 강사단을 발족했다. 이들은 32종의 표준교육 콘텐츠를 별도로 개발해 학습교재, 체험교재, 강사지도서로 활용한다. 연간 1000회 이상 전국 초·중·고와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지난해까지 13만3000여명의 어린이가 혜택을 받았다. 그동안 교육 대상을 청소년에 초점을 맞췄지만 앞으로는 보이스피싱 사기에 취약한 노년층과 제2의 인생 설계가 시급한 군 전역 장병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KB금융은 밀착된 금융교육 제공을 위해 ‘KB스타 경제·금융 캠프’도 실시하고 있다. 방문·초청·온라인 등으로 축적된 경제·금융 교육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난해 신설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참가 학생들은 1박2일 동안 놀이(Fun), 협동심(Team-work), 경제이론(Econo) 등의 테마로 구성된 놀이, 뮤지컬, 게임에 참여해 딱딱한 경제·금융 이론을 재미있게 습득한다.
KB금융은 어르신들의 주거환경 개선작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최근 KB금융은 거동이 불편한 저소득층 어르신 가구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협력단체인 ‘함께하는 사랑밭’에 어르신 주거환경 개선사업 후원금 6억5000만원을 전달했다.
이 후원금은 전국 200여 거동 불편 어르신 가구의 주택 개·보수에 쓰일 예정이다. 어르신 주거환경 개선사업은 오는 11월까지 화장실·좌식세면대 설치, 바닥 미끄럼 방지, 경사로·안전대 설치, 주방 개·보수 등 어르신들의 활동 제약 해소를 위한 맞춤형 공사로 진행된다.
저소득층과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도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KB금융은 최근 지역사회 소외계층 지원을 위한 이웃사랑 성금 50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겨울철 생활이 어려운 독거노인 등 소외지역의 에너지 빈곤층에 연탄 40만장을 전달하는 ‘사랑의 연탄 나눔’ 사업도 펼쳤다. 지난해 10월에는 거동이 불편한 취약계층의 이동 편의를 돕고, 복지 서비스 향상을 위해 장애인용 휠체어리프트차 5대, 승합차 22대, 승용차 24대 등을 전국 사회복지시설 51곳에 전달했다.
사회와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군(MIU: Man In Uniform) 자녀를 대상으로 한 특화된 장학금 지원 사업도 펼치고 있다. 소방, 해양경찰 가족 자녀 등으로 매년 그 대상을 넓혀 가고 있다.
안면기형 청소년에게도 KB금융의 도움은 희망이 됐다. KB금융이 안면기형으로 인해 사회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사)얼굴성형정보연구소에 이동 진료차량과 의료지원 후원금을 전달했다.
올 초 폭설로 큰 피해를 입은 강원 지역을 찾아 제설작업을 비롯한 피해복구 지원 활동도 펼쳤다. 주말을 이용해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일대 폭설 피해지역을 찾아 고립지역 제설작업, 비닐하우스 제설작업 등의 피해 복구에 동참했으며 시름에 빠진 주민들을 위로했다.
다른 기업에서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두지 않는 환경보호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임 회장을 비롯한 계열사 임직원들은 지난해 온실가스 감축과 푸른숲 조성을 위해 인천경제자유구역 일대에 1만1000여 그루의 나무를 심는 ‘KB 탄소중립의 숲’ 조성 행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일상생활에서 배출하는 탄소량에 상응하는 만큼의 나무를 심는 행사로 전 세계적 기후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 밖에도 KB금융은 △해외 빈곤아동 자전거 지원 사업 일환으로 캄보디아·베트남 자전거 전달 △독거어르신 여름용품 전달 및 보행 불편 어르신 보행보조기(실버카) 전달 △대한적십자사에 이재민 지원 긴급구호키트 전달 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앞으로 KB금융은 기존의 사회공헌 활동을 꾸준히 유지·발전시켜 나가는 한편 그룹 내 봉사단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선순환 네트워크를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둘 방침이다.
KB금융 관계자는 “기업들은 점점 더 극명해지고 있는 사회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며 “KB금융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금융그룹으로 성장해 온 만큼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