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퇴자협회(AARP)는 영화 ‘기생충’,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 등을 일컬으며 세계 시장 속 한국 문화의 인기와 성공에 대해 언급했다. 아울러 ‘어른들을 위한 TV’(TV for Grownups) 코너에 아래의 한국 작품 10선을 소개했다. 해당 작품들은 넥플리스 또는 애플TV 스트리밍 서비스로 시청 가능하다.
[1] 오징어 게임(Squid Game)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이들이 목숨을 걸고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한국 시니어들이 어린 시절 했을 법한 구슬치기, 설탕뽑기, 줄다리기 등을 게임의 소재로 삼아 해외에서도 패러디를 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2] 응답하라 1988(Reply 1988)
1988년 서울 쌍문동을 배경으로 다섯 명의 친구와 가족들의 일화를 그린 가슴 따뜻한 코미디 물로, 한국 중장년들의 추억을 회상케 한다. 미국 드라마 ‘원더 이어스’, ‘골드버그’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선호한다면 추천한다.
[3] 스카이 캐슬(Sky Castle)
공개 당시 한국 케이블 TV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으로, 한국 상류층의 교육열과 물질주의 세계를 묘사한다. 자녀를 최고의 명문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부당한 전략을 이용하는 등 물불 가리지 않는 부모들의 행태를 풍자한다.
[4] 파친코(Pachinko)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꼽힌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거대한 가족 서사를 그린다. 영화 ‘미나리’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이 출연해 기대를 모았다. 고국을 떠나 생존과 번영을 꿈꾸는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삶을 비춘다.
[5] 사랑의 불시착(Crash Landing on You)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중장년에게 추천하는 드라마다.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2세 사업가 윤세리(손예진 분)와,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북한의 특급 장교 리정혁(현빈 분)의 로맨스를 다룬다.
[6] 킹덤(Kingdom)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한국 드라마로, 시즌 3까지 이어오며 양질의 한국산 좀비물로 손꼽히고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불가사의한 역병과 싸워야하는 세자 이창(주지훈 분)과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려는 잠재적 음모 등을 다룬 정치 좀비 스릴러다.
[7] 사이코지만 괜찮아(It’s Okay to Not Be Okay)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처럼 어두운 주제를 다룬 기발한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볼 만하다.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 문강태(김수현 분)와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가진 인기 동화 작가 고문영(서예지 분) 등 각자의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이 정서적 치유를 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8] 빈센조(Vincenzo)
드라마 ‘베터 콜 사울’과 같은 법률 장르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조직에서 배신당한 뒤 한국으로 오게 된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송중기 분)가 또 한국의 베테랑 변호사(전여빈 분)와 함께 악당들을 일망타진하는 이야기다.
[9] 슬기로운 의사생활(Hospital Playlist)
‘그레이 아나토미’나 ‘댓 씽 유 두’ 같은 장르를 좋아하는 이라면 재미있게 볼 만한 의학, 밴드 소재 결합 드라마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가슴 뭉클한 감동 스토리와 더불어 1999년 의대 입학 동기인 주인공들이 직접 연주하는 밴드 음악까지 감상할 수 있다.
[10] 푸른 바다의 전설(The Legend of the Blue Sea)
한국 최초의 야담집인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 전설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수백 년에 걸쳐 평행하게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멸종직전인 지구상 마지막 인어 심청(전지현 분)과 멘사 출신 천재 사기꾼 허준재(이민호 분)의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을 그린다.
평생교육법에서 정의하는 ‘평생교육’이란 학교 정규 교육과정을 제외한 직업능력 향상교육, 인문교양교육, 문화예술교육, 시민참여교육 등 성인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범위가 넓다 보니 운영 주체, 학력 인정 여부 등에 따라 과정도 여러 가지가 있다. 너무 많은 과정이 있어 어떤 과정을 수강해야 할지, 원하는 과정이 있지만 어느 기관에서 교육받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시니어들을 위해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빅데이터에 기반한 평생교육 과정을 추천한다.
평생교육은 정규 과정 외 인문과학, 자연과학, IT 등 분야도 다양하고 운영하는 기관도 많다. 배우고자 해도 어떤 과정을 수강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수 있다. 시니어들의 일반적인 관심사를 찾기 위해 네이버 데이터랩의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했다. 다른 포털에서도 특정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 해당 검색어의 검색량은 확인할 수 있었으나 연령대별로 많이 검색하는 키워드를 추출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검색된 키워드들을 확인할 수 있는 네이버 데이터랩 ‘쇼핑인사이트’를 이용했다. 카테고리는 쇼핑 관련 데이터 중에서 평생교육 수요를 찾을 수 있는 ‘여가/생활편의’ 분야의 ‘예체능레슨’과 ‘자기계발취미레슨’으로 설정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2021년 11월 11일까지 약 1년간 50세 이상 남녀 이용자가 검색한 키워드를 추출했다. 집단별로는 연령 기준으로 50대와 60세 이상, 성별 기준으로는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 검색어를 비교했다. 정리하자면 ‘예체능-50대’, ‘예체능-60세 이상’, ‘예체능-남성’, ‘예체능-여성’, ‘자기계발-50대’, ‘자기계발-60세 이상’, ‘자기계발-남성’, ‘자기계발-여성’까지 8개 클러스터로 구성했다. 이후 각 클러스터에서 나온 상위 20개 검색어에서 키워드를 추출했다. 예를 들어 ‘골프레슨’, ‘골프원포인트레슨’, ‘골프필드레슨’을 ‘골프’라는 키워드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다만 추출된 키워드가 시니어 집단 모두의 관심사를 반영한 것은 아니다. 네이버 데이터랩은 특정 검색어가 몇 번 검색됐는지에 대한 통계가 아니라 클릭이 발생한 검색어의 클릭량을 제공한다. 설정한 기간 동안 포털 ‘여가/생활편의’ 분야에서 검색 서비스를 이용한 남성 유저가 35%, 여성 유저가 65%으로 다소 편향돼 있고, 50대와 60세 이상 포털 이용자가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또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천한 평생교육 기관 강의들은 매 학기 꾸준히 개설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개설 여부, 모집 요건 등을 기관 홈페이지에서 미리 확인해야 한다.
예체능 분야 골프 인기
검색어를 분석한 결과 연령대별로는 관심사에 큰 차이가 없었고,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어느 정도 관심사 차이가 있었다. 먼저 ‘예체능-50대’ 클러스터에서는 상위 20개 검색어 중 골프 관련 검색어가 9개로 가장 많았다. 다음에는 서핑 관련 검색어가 3개, 요가/필라테스와 댄스가 각각 2개, 헬스, 프리다이빙, 패러글라이딩, 테니스가 각각 1개씩이었다. ‘예체능-60세 이상’ 클러스터도 이와 비슷했다. 골프 관련 검색어가 7개였고 헬스, 요가/필라테스, 서핑, 스키 관련 키워드가 각각 2개씩이었다. 프리다이빙, 하프, 댄스, 스킨스쿠버, 테니스 관련 키워드가 각각 1개씩 있었다.
‘예체능-남성’에서는 골프 관련 검색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골프 12개, 서핑 3개 외에는 헬스, 요가/필라테스, 프리다이빙, 스키, 패러글라이딩 관련 검색어가 각각 1개씩 있었다. ‘예체능-여성’의 결과를 보면 골프 관련 키워드 수가 적어진다. 골프 관련 키워드와 요가/필라테스 관련 키워드가 4개로 같았다. 다음에는 댄스 3개, 헬스와 서핑이 각각 2개, 프리다이빙, 스키, 테니스, 하프, 홈트레이닝 키워드가 각각 1개씩이었다. 남성의 관심사가 골프에 몰려 있는 반면 여성 집단은 상대적으로 관심사가 다양했다.
이 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먼저 소개할 과정은 골프 관련 과정이다. ‘골프레슨’, ‘골프레슨비용’, ‘골프필드레슨’ 등 골프는 예체능레슨 카테고리에서 세대와 남녀를 불문하고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사설 골프레슨은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하는 골프레슨보다 비싼 편이므로 가격을 고려한다면 평생교육 골프 과정을 수강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용인예술과학대학교 평생교육원의 골프 과정을 들 수 있다. 실내연습장에서 스크린 골프로 진행되고 강습 시간이 아니더라도 평일에는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다. 따라서 골프를 막 접하는 초심자가 듣기에 좋다. 골프에 좀 더 진심이라면 전문가 과정을 밟을 수도 있다. 수많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한 용인대학교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에는 골프 전문가·지도자 양성 과정이 있다. 수도권이 아니더라도 한림대, 울산과학대 등 각 지역 대학 평생교육원에도 골프 강좌가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골프 다음으로 가장 많이 나온 검색어는 요가/필라테스다. 관련 강의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기관은 동국대학교다. 동국대 부설 미래융합교육원에서는 요가 지도자 과정과 필라테스 지도자 과정을 각각 운영한다. 주 2~3회 운영하며, 수강료는 어떤 강의 코스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비싼 편이다. 가장 싼 코스도 170만 원을 호가한다. 수강료가 비싼 지도자 과정인 만큼 취미나 다이어트로 즐기기보단 지도자 자격을 취득해 재취업하고자 하는 이들이 수강할 만한 과정이다.
자기계발, 영어·자녀교육에 관심
자기계발 관련 클러스터에서는 시니어의 관심사뿐 아니라 자녀교육 관련 검색어도 많이 클릭됐다. ‘어린이화상영어’ 같은 검색어는 엄밀히 따지면 시니어의 관심사를 반영한 것은 아니므로 교육기관, 교육과정 추천에 고려하지 않았다. 다만 성인의 영어공부 수요도 있음을 고려해 명확히 자녀교육에만 해당하는 검색은 ‘자녀교육’으로, 영어공부 관련 검색어는 ‘영어’로 분류했다. ‘영어’ 다음으로는 유명 강사들의 경영학, 경제학, 재무관리 강의가 많이 검색됐다. 포털사이트 검색 결과 해당 과목은 공통적으로 공기업 취업 준비를 위한 과목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을 ‘공공기관 취업’ 항목으로 분류했다.
‘자기계발-50대’ 분석 결과 영어 관련 검색어가 9개, 공공기관 취업 관련이 4개, 심리/상담이 2개, 터프팅이 1개였다. 그 외에는 자녀교육 관련 검색어가 3개 있었고, ‘강의’라는 검색어가 1개 있었다. ‘자기계발-60세 이상’ 클러스터도 이와 유사하게 영어 관련 검색어 7개, 공공기관 취업 관련 4개, 자녀교육 관련 검색어가 3개였다. 그 외에는 게임, 터프팅 등 검색어가 있었다.
‘자기계발-남성’에서는 영어 관련 검색어 8개, 자녀교육 5개, 공공기관 취업 4개 등이었다. 특이하게도 게임 관련 검색어가 1개 있었다. ‘자기계발-여성’에서도 자녀교육과 영어가 각각 6개와 5개로 많았다. 다음 공공기관 취업 4개, 심리/상담 2개 순이었다. ‘자기계발-여성’에서는 메이크업, 점토, 난타, 터프팅 등 남성과 비교해 다양한 취미가 나왔다.
키워드가 가장 많이 나온 영어를 다루는 대표적인 평생교육 기관으로 YBM 원격평생교육원이 있다. YBM은 토익(TOEIC) 시험 주관사로, 오랫동안 영어교육을 해온 곳이다. 또 학점은행제 공식 원격교육훈련기관으로 지정돼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기관이다. 영어 관련 검색어 중에서 영어회화에 대한 수요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학문이 아니라 말하기를 배우고 싶다면 서울시 평생학습포털과 같은 곳을 참고하면 된다. 기초적이고 자주 쓰이는 표현 위주로 교육과정이 짜여 있다. 강의 영상이 길지 않고 한 강좌 내 수강할 영상 수도 많지 않으므로 가볍게 영어를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이밖에도 전국 각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 등 많은 기관이 영어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니 ‘학점은행제 정보공시’ 사이트에서 원하는 과목을 검색하고 본인에게 맞는 강의를 선택해 수강하면 된다.
‘영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클릭한 것은 ‘공공기관 취업’ 관련 검색어들이다. 하지만 공공기관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경영학, 경제학, 재무관리는 평생교육 기관에서 제공하는 학문적 성격과 다를 수 있으므로 다음으로 많이 나온 ‘심리/상담’ 관련 교육을 소개한다. 학점은행제 정보공시 사이트에 따르면 고려대, 가천대, 서강대 부설 평생교육원 등 많은 기관에서 심리학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세부 분류에 따라 상담심리, 긍정심리, 노년심리 등 다양하므로 각 과정을 운영하는 기관 사이트를 방문해 본인에게 맞는 과정을 고르면 된다.
그런데 심리학에 대한 과학적 탐구나 상담사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치유가 필요해 ‘심리/상담’ 관련 검색어를 입력한 이들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가천대 평생교육원 춤 테라피, 한국교통대 평생교육원 아로마테라피 등을 추천한다.
영화표를 받아든 김 씨는 빠른 말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표를 사려는 오십대 여자 셋이 보였다. 카드를 꺼내고 지갑을 뒤적이며 네가 사네, 내가 내네 하면서 부산을 떨고 있었다. ‘웬 젊은이들이’ 김 씨는 여자들을 보자 이 공간의 냄새가 달라지고 자신의 연령대가 내려가는 착각이 들었다. 십여 년 전이었다면 영역을 침범당한 느낌이 들고 혹여 영감들 가슴에 바람이 들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을 했을 수도 있다.
김 씨는 요건 몰랐지 하는 기분으로 중년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 사람당 삼천 원이고, 쿠폰에 도장을 다 받으면 나중에 공짜로 한 편 더 볼 수 있다우.”
김 씨는 일곱 개의 도장이 찍힌 쿠폰을 내밀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참 고우시네요.”
“호호, 이제 뭐…… 오 년 전이면 모를까.”
김 씨는 좋아서 입을 다물 줄 모르며 볼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어르신’이란 호칭 대신에 ‘할머니’라고 불렀다면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른이건 아이건 왜 호칭에 민감한지. ‘할머니, 할아버지’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인데 사람의 심리가 요상하여 ‘나이가 들어’ 라는 앞의 말에 신경 쓰기보다는 ‘늙은 사람’이란 뒤의 말에 민감해진다. 앞에 붙여진 ‘나이가 들어’라는 다섯 글자에는 사람들 제각각의 얼마나 많은 의미와 사연이 담겨 있던가? 김 씨는 아등바등하지 않고 탐욕스럽거나 심술궂지 않게 나이 들기를 원하면서도 할머니란 호칭이 꺼려지는 자신이 우습다고 느껴졌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뜨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김 씨는 요의가 느껴지지 않는데도 화장실을 다녀왔다. 간 김에 거울 한 번 들여다보고 하나뿐인 꽃분홍 립스틱으로 입술도 덧칠하고 나왔다.
상영관으로 들어가려는데 좀 전에 만난 여자들이 상영 시간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공책만 한 인쇄물은 멀리서 보기엔 힘들었다. 노년층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마련된 영화관이다 보니 상영작 포스터도 없고 상영관은 하나뿐이고 테이블이 세 개 놓인 대기실 한쪽엔 천 원짜리 믹스 커피를 파는 간이매점이 고작이었다. 그 중 한 여자가 안경을 고쳐 쓰며 용지에 코가 닿도록 얼굴을 내밀었고 김 씨는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몇 년 전에 노안 수술을 한 김 씨 눈엔 웬만한 글씨는 잘 보이고 고가의 보청기 덕분에 청력도 좋지만, 좋아서 오히려 불편할 때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웬만한 것은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라고 시력과 청력이 나빠지는 것이라지만,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린다는 이유로 젊은이들로부터 괄시받고 싶진 않았다. 오메가 쓰리와 은행잎 제제를 매일 챙겨 먹고 영어 공부도 30분씩 했다. 휴대폰을 켜면 바로 영어 단어 앱이 떴고, 건강 보조 식품 챙겨 먹는 시간도 휴대폰의 알람이 꼬박꼬박 알려주었다. 치매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한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휴대폰을 소유하게 되었을 땐 신인류의 일원이 된 것처럼 기뻤다. 설레는 김 씨를 위해 처음에는 휴대폰 사용법을 부드러운 말씨로 설명해 주던 아들이 반복적으로 물었더니 나중엔 짜증을 냈다. 아들의 구박을 감수한 덕분에 이젠 인터넷을 통한 물건 구입과 영화 예매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다. 한때는 지인들이 보내주는 동영상이며 좋은 글귀를 친구들한테 퍼 나르기도 했으나 글대로 실천도 못하면서 누군가에게 읽으라고 강요하듯 보내는 일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부터는 그만두었다. 망측한 사진을 받고 놀라서 휴대폰을 던져버린 적은 있지만, 적어도 김 씨가 자식한테 잘못 전달하는 실수를 저지르진 않았다. 하지만 새벽에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노인들 사이에 떠다니는 가짜 뉴스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대로 믿고 흥분하기도 했다. 태극기 부대에 참석한 경험도 있는데 정치적 신념이 확실해서라기보다는 군중 심리와 함께 이 나이에도 정치에 관심이 있는 깨인 노인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지금 상영할 건 이거예요.”
김 씨가 손가락으로 용지를 짚으며 말하기가 무섭게 일행 중 한 명이 톡 튀어들었다.
“아닌데…… 요거네요.”
김 씨 얼굴이 붉어졌다.
“나 좀 봐, 참.”
계면쩍은 김 씨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사람들이 들고나느라 문 주변이 번잡했다. 상영관 입구로 밀려나는 와중에도 김 씨는 오지랖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안으로 들어간 김 씨는 실내 전체를 훑어보다가 특정 위치에 잠시 시선을 던지곤 미소를 지었다. 등받이를 손으로 잡으며 자신이 선호하는 G7 자리를 향해 한 계단씩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뉴스에서 G7이란 단어를 가끔 들어서 익숙한 탓도 있고 근사해 보이기도 해서 그 자리를 고집하는 김 씨를 위해 카운터에서는 표를 따로 빼서 보관해두곤 했다.
전에 발을 헛디뎌서 계단을 구른 영감이 있었다. 김 씨는 그 장면을 보고 눈을 돌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남들도 내가 넘어지면 자신을 보는 것처럼 민망해하겠지.’
G7 바로 앞자리엔 박 씨가 앉아 있었다. 김 씨는 박 씨를 실버 영화 카페 모임에서 알게 되었다. 소위 M.C커플이다. 산행을 같이 다니는 연인들도 M.C커플이라고 부르고 콜라텍에서 만난 인연들은 C.C커플로, 복지관에서 만난 연인들은 B.C커플로 불린다. 박 씨는 말수가 적었지만 영화 얘기만 나오면 술술 말을 잘 이어갔다. 놀라울 정도로 웬만한 영화 제목과 주인공 이름들을 기억하는 편이었다. 김 씨는 영화 얘기를 들을수록 박 씨의 매력에 빠져들었는데 젊어서부터 영화는 혼자 본다는 말 때문에 그가 더욱 근사해 보이는지도 몰랐다.
김 씨는 알은 체를 하지 않고 자리에 앉으면서 부러 큰 소리로 음, 음 거리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박 씨가 뒤를 돌아보며 고개만 까딱했다. 김 씨는 답례를 하면서도 입이 무거운 박 씨가 야속했다. ‘어서 오시게, 라고 한마디 하면 입술이 부르트나.’ 김 씨는 입을 샐쭉거렸다.
아직 영화 상영 전이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김 씨가 고개를 돌렸다. 통로 건너편에서 자리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서 있는 여자는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고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는 노인은 굳이 빈자리도 많은데 여기에 앉아야겠냐며 버텼다. ‘저러니까 젊은이들이 질색하지.’ 김 씨는 중얼댔고 주변 사람들도 웅성거렸다. 여자는 투덜거리며 뒷자리로 갔고, 카운터에 말해서 쫓아내세요, 란 누군가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소란을 잠재우듯 실내가 어두워지자마자 광고 없이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 제목과 함께 1936년 작품이란 숫자가 떴다.
“어머, 이상하다. 2008년에 만든 줄 알았는데.”
“게다가 흑백이야. 웬 구닥다리?”
“86년 전 영화네. 우리 아버지가 저 때 태어나셨거든.”
“말도 안 돼. 같은 제목의 영화가 또 있었나? 그냥 갈까? 냄새도 퀴퀴하고……”
김 씨가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자 여자들의 수다가 잦아들었다. 좀 전에 보았던 일행들이 막 들어와 앉은 참이다. 오래전 같았으면 따끔하게 한마디 했을 김 씨였다. ‘니들도 실수할 때가 있지.’ 김 씨는 미소를 지었다.
화면이 바뀌었고, 여자들은 다시 조잘대기 시작했다.
“미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래. 그냥 보자.”
“그래, 감독도 유명한 사람이네.”
“쉬, 쉬.”
영화의 첫 장면은 미국의 어느 대저택의 거실이었다. 보석으로 치장한 젊어 보이는 여자가 등장했다. 김 씨 눈에는 여주인공의 나이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 얼굴 구분도 힘들지만, 나이 추측도 쉽지 않았다. 사람들의 실제 나이는 김 씨가 추측한 숫자에 10 정도를 더해야 했다. 여주인공은 파티장도 아닌데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김 씨 평생에 입어본 적은 고사하고 사진에서만 보았던 옷이다. 부러우면서도 이런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게 놀라웠다. 뒤이어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가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이어졌다. 남자는 거실로 들어와서 여자를 꼭 안아주었다. 종일 남편을 기다리느라 수고했다고.
김 씨는 정해진 팔자란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김 씨 남편은 며칠씩 집을 비우다 돌아와도 첫마디가 개밥 줬어? 였다. 김 씨는 아내가 아니라 밥솥이었고 세탁기였고 청소기였다.
외국 영화를 볼 때 김 씨는 긴장이 되었다. 자막이 서 너 줄일 땐 마지막 문장의 꼬리를 놓치기도 하고 사람의 이름을 읽는 중에 화면이 넘어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은 왜 그리 이름이 길고 호칭 방법도 가지가지인지.
여주인공은 남자의 뺨에 입술을 비벼대고 손바닥으로 가슴을 더듬었다. 김 씨의 눈에 남자는 아버지뻘로 보였지만 여자의 행동이나 자막으로 미루어보아서는 남편 같았다.
‘아니, 저런 도둑놈이 있나, 곱빼기 띠동갑도 넘겠네.’ 예나 지금이나 지팡이 토막을 가운데 달고 다니는 인간들이 젊은이를 밝히는 건 변함없지만, 김 씨가 보기에도 못생기고 잘생긴 걸 떠나서 싱싱하다는 점만으로도 모두 예뻐 보였다. 심지어 다섯 살 아래인 여자도 김 씨 눈엔 젊어 보였다. 흥분했던 김 씨는 이내 인정 모드로 태도를 바꾸었다.
변덕을 부리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여자 주인공을 보면서 김 씨는 혀를 찼다. ‘젊고 얼굴 반반하면 저렇다니까.’ 김 씨는 며느리를 떠올렸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인데 아무리 예쁘게 봐주려 해도 콕 박힌 미운털이 빠지지 않는 애였다. 좀 산다는 집에서 자란 며느리는 액세서리 수집이 취미였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시댁에 올 때마다 몸에 치장하고 있는 액세서리가 바뀌었다. 눈썰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금방 알아볼 정도로 색상이며 디자인이 확확 달라졌다. 며느리를 떠보느라 나도 네가 한 것 좀 차 보자, 고 했더니 어머, 사람들이 웃어요, 라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며느리가 미워 보이는 이유가 말을 얄밉게 하는 탓도 있지만 자신의 삐딱한 시선도 섞여 있다는 걸 김 씨는 안다.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자기 돈으로 갖고 싶은 걸 사는 행위를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주인공과 비교해 보니 며느리가 그다지 변덕 부리는 애도 아니고, 딱히 지 남편이건 시댁에 못 하는 편도 아니었다. 김 씨는 며느리의 미운털이 다름 아닌 질투라는 생각에 새삼 부끄러웠다. 그것도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며느리는 여자의 촉으로 벌써 눈치 챘을 게다. ‘앞으로 며느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스크린의 영상이 유럽을 항해하는 크루즈 내부로 바뀌었다. 은퇴한 남편이 아내와 긴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한국 여자들은 보리죽 한 숟갈도 자식 입에 넣어주느라 배곯고 쪼그라져 있을 때 서양 여자들은 양장을 빼입고 삐딱 구두 신고 파티에 가거나 세계 일주를 했다니. 여자의 일생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날에도 김 씨는 고작 빌려 입은 단색의 한복에 면사포만 쓰고 혼례를 치렀다. 김 씨는 자신보다 먼저 태어난 서양 여자들에 비해 고루하게 살았다.
육지와 바다를 오가면서 장기 여행을 하는 사이에 여주인공은 서 너 명의 남자들과 사랑 행각에 빠졌다. 여자는 쉽게 남자를 만나서 사랑했다가 헤어지길 반복했다. ‘지 멋대로군, 착한 남편이 딱하네, 결혼 전에 많은 여자를 만나보지.’ 흥분지수가 높아진 김 씨는 자세를 바꾸다가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하긴, 선봐서 한 달 만에 식을 올린 나는 어떻고.’ 그러고 보니 그런 도박이 없었다. 어처구니없는 결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어이없는 일들이 다반사였는데 죄다 그러려니로 통했다. 어쩜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이 몇 십 년 후엔 또 이상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김 씨가 젊어서 여주인공처럼 했다면 돌팔매질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김 씨가 영화에 집중할 만하면 뒤에서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것을 엿듣는 재미가 있었다. 뒷좌석의 한 여자가 또 말을 꺼냈다.
“안 봐도 비디오다. 나가자.”
“나갈까?”
“그래, 질 떨어진다.”
“아냐, 노벨상 받은 작품이라잖아, 뭔가 있을 거야.”
한 여자가 일행을 달랬다. 김 씨 뒤에서 들려오는 수다 소리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콜록거리는 소리, 가래 끓는 소리, 카톡 소리, 사부작사부작 사탕 껍질 벗기는 소리 따위가 영화 중반이 넘어가도록 줄지 않았다. 심지어 전화벨 소리도 울렸다. 늴리리아 늴리리…… 맨 앞줄에 있던, 환갑이 넘어 보이는 남자가 손에 쥔 휴대폰을 끊거나 벨소리를 줄일 생각은 안 하고 느그적 느그적 걸어 나갔다. 남자를 따라서 사람들 고개도 돌아갔다. “걷지 말고 좀 뛰요.” 영화 시작 전에 큰 소리로 면박을 주었던 동일한 목소리였다. 사람들이 키득거렸다. 속이 후련해진 김 씨는 중얼거렸다. ‘어여 가야 해, 어여.’
김 씨는 다시 영화에 몰두하면서 좀 전과는 다른 생각도 했다. ‘하기는, 한 번뿐인 인생인데 뭘 따져, 몸뚱이 아꼈다 뭐 하게, 못 노는 것들이 바보지.’ 여주인공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김 씨는 어느새 주인공 편이 되어있었다. 뭐랄까, 김 씨는 노년기로 접어들면서 양가적 감정이 늘어났다. 어떤 상황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 애매할 때가 있다. 편 가르는 행위가 불편해지면서 교집합 부분이 넓어지고 있다. 기억력은 물론 얼굴도, 몸도 전보다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그로 인해 생기는 서운한 감정과 소외감도 자주 들지만 다른 한편으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느긋해졌다고 할까. 듣는 이에 따라서는 이율배반적이라고 하겠지만, 신체 중에서 가장 불결하게 여기는 부위가 신성한 부분이자 최고의 성감대인 인간 자체가 모순덩어리 아닌가.
여주인공이 마지막으로 외도한 상대는 연하의 남자였다. 남자의 어머니가 아들의 상대를 이혼녀이고 연상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여 둘을 강제로 갈라놓는 장면이었다. ‘딱, 나구먼.’ 김 씨는 아들이 자신보다 연상인 여자를 데려왔던 적을 떠올렸다. ‘그렇게까지 반대할 것도 없었는데.’
허리가 꼬부라져도 연애 상대는 어릴수록 좋다는 영감들이 김 씨 눈에는 철없어 보였다. 박 씨 속을 떠보기 위해 왜 두 살 연상인 자신을 만나느냐고 물었더니, 같이 나이 들어가는 마당에 거기서 거기라고, 나이만 적다고 젊은 거고, 나이가 많다고 늙은 거냐고 반문하던 박 씨의 말이 떠올랐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젊은이들이 상대를 고를 때 이혼, 사별, 동거, 비혼 따위를 따지는 일이 별 의미가 없어보였고, 잘 생긴 사람보다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사람에게 호감이 갔다. 이는 박 씨가 끌린 이유이기도 한데 김 씨 눈엔 박 씨의 딱딱한 말투마저도 매력으로 느껴졌다.
영화는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역사물을 주로 보던 김 씨에게 로맨스 영화는 피로를 씻어주는 꿀물 같았다. 일부러 로맨스물을 외면해오던 김 씨의 마음을 열게 한 계기는 박 씨다. 로맨스를 주제로 한 영화 내용을 들려줄 때 소도둑처럼 생긴 박 씨의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사랑이 뭔지 제대로 아는 듯 보였다.
김 씨는 영화에 푹 빠져있었다. 남자 주인공이 본부인과 이혼을 하고 새로 만난 애인에게 돌아오는 장면이었다. 남자가 탄 보트가 애인이 사는 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김 씨는 다가올 장면을 앞질러 상상하면서 잘했다, 잘했어, 란 말을 연발했다. 한 사람과 애정도 없이 의무적으로 평생을 산다는 건 미련한 짓이지만, 남편이 살아있다면 아직도 그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은 명령하고 김 씨는 복종하고 따르는 식이었다. 김 씨는 담뱃재가 떨어지기 전에 재떨이를 남편의 턱밑에 갖다 대고, 남편이 밥을 먹는 내내 생선 가시만 발라야 했다. 남편은 다리에 깁스를 한 김 씨에게 2충에 올라가서 부채를 가져오라고 호통 친 적도 있었다.
혼자면 외롭기나 하지, 둘이면 외로우면서도 괴롭다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김 씨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도 하고 싶은 대로 채워가고 싶었다.
스크린 속의 여자가 남자에게 다가가서 안겼다. 남편과 사는 동안 포옹은 언감생심이었다. 지 기분 내키면 아무 때나 김 씨를 자빠뜨렸다.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손끝조차 스치지 않고도 20년을 더 살아냈다. 김 씨는 남편이 매일 만지는 문고리나 수저만도 못했다.
김 씨는 남자의 품이 얼마나 따뜻할지에 대해 상상했다. 어릴 적 포근한 엄마의 품이나 듬직한 아들의 품과는 다른 느낌일 게다. 박 씨의 품에 안겨 지난날을 위로받고 싶었다. 활활 타오르기 위해 이성을 만나는 젊은이들과는 달리, 같이 사그라들기 위해 상대를 만나고 싶었다. 반찬이 김치 하나일망정 마주 앉아 식사하고, 약 먹을 때 물이라도 떠다 주고, 피곤한 발을 얹고 잠들 수 있는 사이를 원했다. 노년의 로맨스를 망측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인간은 죽어야만 성애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박 씨가 꽃다발을 들고 걸어오는 상상을 했다. 저…… 순자 씨, 김 씨는 맘 가는 대로 달려가는 자신의 생각이 주책이라고 느꼈다. 거의 움직임이 없이 앉아 있는 박 씨의 뒤통수를 쳐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그가 고개를 홱 돌릴 것만 같았다. 머리숱이 인제의 자작나무숲처럼 듬성하지만 박 씨의 뒤태는 늘 정갈했다. ‘저 영감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나.’ 김 씨는 그뿐 아니라 영화관 내의 모든 노인들 감상평이 궁금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도 전에 뒷좌석의 여자들이 서둘러 일어났다.
“내용이 끝까지 예상을 벗어나질 않네.”
김 씨는 영화를 보면서 주변 사람을 떠올리고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연애 감정의 불씨를 키우는 계기도 되었건만 중년 여자들은 빤하다고 했다. 김 씨의 귀에는 이 영화를 끝까지 앉아서 보는 사람들 수준이 빤하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게, 사람들 일어나기 전에 얼른 가자.”
“예의 지키다가는 어느 세월에 나갈지 몰라.”
중년 여성 셋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김 씨가 영화의 여운을 즐길 겨를도 없이 불이 켜졌고 사람들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화면은 일어나는 사람들 때문에 거의 가려졌다. ‘모두 가스 불을 안 끄고 나와서 서둘러 가는 게지.’ 김 씨는 중얼거리며 박 씨가 일어날 때까지 애꿎은 가방만 뒤적거렸다. 박 씨가 일어나더니 김 씨를 보며 말했다.
“안 가요?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그러죠.”
김 씨는 순순히 박 씨의 뒤를 따라갔다. 문을 나서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1층으로 내려갈 때까지도 둘은 데면데면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서야 김 씨는 박 씨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아직도 사람 많은 곳에서 나란히 걷는 게 어색해요?”
박 씨가 타박하듯 답했다.
“뭘, 어색하긴.”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정류장이 있었지만 김 씨는 길이 들지 않은 구두 때문에 멀게 느껴졌다. 박 씨를 만날 때만 신는 검정 단화를 신고 있었다. 김 씨가 가지고 있는 두 켤레의 구두 중 동절기용이었다. 평소엔 운동화를 주로 신고, 화장도 하지 않았다.
박 씨는 김 씨를 재촉하지 않고 보조를 맞춰 걸었다. 김 씨가 영화 본 소감을 물었더니 박 씨는 그 당시엔 획기적인 일이었겠다고, 시대의 변화를 다시 한 번 실감한다고 답했다. 주인공에 관한 얘기 끝에 ‘나이 듦’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늙는 게 두렵지 않아요?”
김 씨가 박 씨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두려워해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공평하게 찾아오는 걸 그냥 받아들여야지 않겠소. 늙는 걸 두려워할 게 아니라 추하게 늙는 걸 경계해야지.”
김 씨는 늘 교과서적으로 말하는 박 씨가 야속하면서도 궁금해서 또 물었다.
“그럼 아름답게 늙는 게 뭔데요?”
“내가 정답도 아니고 뭘 묻소?”
“그래도 생각을 듣고 싶어요.”
“뭐 별거 있소? 그냥 다 덜어내는 거지. 감정도 덜어내고 그런 거 아니겠소?”
“덜어낸다는 말은 줄인다는 말과 어감이 다르네요. 뭔가 내가 덜 쓴 만큼 남이 쓸 기회를 주는 느낌이 드네요. 여하튼 자신이 가진 것이나 감정에 너무 휘둘리지 말자는 거지요,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노하지도 말자는 얘기죠, 태봉씨?”
김 씨가 슬쩍 박 씨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도 덜어내지 말아야 할 감정이 있지.”
김 씨가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이거요?”
박 씨는 5년 전 아내와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다. ‘아내와 아들이 죽기 전에 사랑한단 표현을 많이 해주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는 걸까.’ 겉으로는 담담해보이지만, 평온한 얼굴 아래 숨겨져 있을 부단한 노고에 대해 김 씨는 생각했다. 젊어서 한 성질 했다는데, 어떻게 변할 수 있었는지, 주름 하나하나에 새겨진 사연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버스는 금방 왔다. 박 씨가 손을 내밀어 김 씨 먼저 타라는 신호를 했다. 차에 오르는 김 씨는 뒤따라오는 박 씨에게 힘들어하는 동작을 들키지 않으려고 손잡이를 잡고 부지런히 발을 놀려서 계단을 다 올라왔으나 자신도 모르게 나온 에구, 소리로 허사가 되어버렸다.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나 질투의 감정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여전하지만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내부의 앞쪽 노약자 좌석은 젊은이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한 청년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지만 김 씨는 못 들은 척하고 뒤로 갔다. 둘은 맨 뒷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했고 속력이 나면서 덜컹대기 시작했다. 운전까지 과격한 탓에 엉덩이가 공중으로 떴다가 내려앉았다. 김 씨는 워메, 하면서 박 씨의 손을 잡았다. 꼬리뼈에 충격이 느껴졌다. 박 씨는 기사에게 소리쳤다.
“거 운전 좀 살살 하소.”
덕분에 둘은 착 달라붙게 되었고 김 씨가 손을 놓으려 하자 박 씨가 더 세게 쥐었다. 박 씨의 손이 야들야들하고 따뜻했다. 빼려던 손을 박 씨의 손에 맡긴 채 김 씨는 얼굴을 창으로 돌렸다.
박 씨가 물었다.
“뭐 볼 거 있소?”
“나뭇잎들이 제법 물들었네요.”
김 씨는 생각했다. 나뭇잎 색이 변하는 걸 앞으로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를.
“같이 좀 봅시다.”
박 씨가 고개를 돌리면서 김 씨의 머리카락에 뺨이 닿도록 얼굴을 바짝 내밀었다. 김 씨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도 박 씨의 행동에 의도가 있기를 바랐다.
네댓 정류장을 지나서 내릴 때가 된 두 사람은 출입문으로 걸어 나갔다. 박 씨가 왼쪽 기계에, 김 씨는 오른쪽 기계에 카드를 태그 한 후 출입구를 막은 채 서 있었다. 여학생이 박 씨와 손잡이를 잡고 있는 팔 사이로 손목을 내밀어 태그를 시도했다. 연이어서 실패한 학생을 보고 김 씨는 카드를 가운데로 대요, 라고 말했지만 학생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또 손목을 갖다 댔다. 기계음이 들렸고 그제야 김 씨는 학생 손목에 차고 있던 검은 물건이 요즘 광고에 나오는 뭐시기란 걸 알았다. ‘또 오지랖을.’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김 씨는 자신이 하루살이만도 못한 3초의 뇌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영화관으로 오던 버스 안의 상황이 떠올랐다. 김 씨의 앞좌석에 앉아 있는 청년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시선이 갔다. 큼직한 흰색 라벨이 옷의 바깥쪽에 붙어있었다. 김 씨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옷을 뒤집어 입었네요, 라고 속삭이듯 말했고 청년은 아, 이거요, 요즘 유행이에요, 라며 목 뒤의 라벨을 만지작거렸다.
박 씨 앞을 지나쳐서 쏜살같이 내리는 여학생의 귀에 무선 이어폰이 꽂혀있었다. 두 사람도 손잡이를 잡고 발 앞을 살피면서 내렸다. 여학생이 내리는 속도의 다섯 배는 족히 걸렸다. 내리기가 무섭게 문이 닫히기도 전에 버스는 출발했다. 왠지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니들도 답답하지. 당사자는 오죽하겠냐.’ 김 씨는 버스 기사가 야속했으나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갑자기 한 줄기의 센 바람이 지나갔다. 나뭇잎이 몇 점 떨어졌다. 김 씨가 옷깃을 여미자 박 씨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풀었다. 목에 걸어주려고 박 씨가 손을 뻗자 김 씨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런 맛에 데이트하는 거 아니요?”
“그게 아니라……”
김 씨는 머플러를 목에 늘어뜨린 채 눈을 내리떴다.
“갑시다, 순자씨.”
박 씨가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김 씨는 뒤따라가며 웃음이 나왔고, 목덜미가 자꾸 간지러웠다. 박 씨가 몇 미터도 안 가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골목으로 들어갔다. 코너의 편의점을 끼고 꺾어 들어서자마자 생선구이집이 보였다. 김 씨는 갈치구이가 먹고 싶다고 박 씨에게 지나가듯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입구부터 고소한 생선 굽는 냄새가 폴폴 풍겼다. 홀에는 사람들이 왁자지껄했다. 김 씨는 음식 맛을 보기도 전에 행복감에 폭 빠졌다. 빈자리는 입구 근처밖에 없었다. 박 씨는 김 씨에게 안쪽 자리에 앉도록 권하고 물도 따라주었다. 수저도 놓아주려고 하자 김 씨가 손을 저으며 막았다.
“아, 제가 하지요.”
“선심을 쓰면 좀 받으세요.”
박 씨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황송해서 그렇죠.”
대접받는 게 어색한 김 씨가 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남자는 주고 싶고 여자는 받고 싶은 게 연애의 재미 아닙니까?”
“그래도 받기만 하는 건 좀 그래요.”
직원이 주문을 받아 가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메뉴라고 해봐야 갈치구이와 갈치조림 두 가지였다. 정갈한 밥상이 차려질 때까지 김 씨는 머플러를 만지작거리다 박 씨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태봉씨, 여긴 자주 오셨던 곳인가요?”
“오긴 누가 와요.”
박 씨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깐 미안했어요. 받는 게 익숙하지가 않아서요.”
“그렇다면 할 말이 없지만……”
박 씨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막상 잘 안 되네요.”
둘이 대화하는 사이에 기름이 차르르 흐르는 갈치구이가 나왔다. 박 씨는 왼손으로 갈치 토막을 잡고 오른손에 든 젓가락으로 잔가시가 있는 양쪽 끝을 바깥으로 당겼다. 가운데 뼈 위에 숟가락을 밀어 넣으면서 살을 들어 올렸다. 살덩어리가 부서지지 않고 네모로 분리되었다. 김 씨는 능숙한 손놀림을 신기한 듯 쳐다보면서 박 씨가 발라 준 생선살을 수없이 먹었을 과거의 여인에 대해 생각했다. 밥 먹을 생각은 안 하고 손만 쳐다보고 있자 박 씨가 한마디 했다.
“가시 바르는 거 처음 봅니까? 밥 좀 떠보세요, 순자 씨.”
김 씨는 얼떨결에 수저로 밥을 떴다. 박 씨가 뽀얀 쌀밥 위에 생선살을 얹었다. 김 씨가 당황하여 수저를 빼려다가 주춤했다.
“또 그러시네.”
“남의 밥에 반찬을 얹어주기만 하고 받아먹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럽니다.”
말하는 도중에 삼십여 년 전 한정식 식당에서 며느리를 처음 만났던 때가 불쑥 떠오를 게 뭐람, 시어머니 가까이에 있는 음식에 젓가락을 댈 엄두도 못 내는 며느리를 위해 아들이 갈비 한 점을 옮겨 주던 모습이 박 씨의 행동을 보자 떠올랐다. 그때의 섭섭함이 지금에서야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박 씨가 김 씨의 표정을 살폈다.
“지금 감동 먹은 거요?”
“네. 제대로 먹었지요.”
“밥도 많이 먹어요, 순자 씨.”
김 씨는 사람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박 씨의 자상함과 배려는 몸에 밴 습관 같았다. 또한 세상의 소란함과 서두름으로부터 흔들림이 적어 보였다. 팔십 가까이 살아온 눈으로 알아볼 수 있다.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남편은 김 씨를 백 번도 더 울렸다.
김 씨는 밥을 먹는 중간에 국이나 물을 자주 마셨고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 당황했다. 그리 맵지도 않은 도라지 초무침을 먹으면서 기침도 더러 했다. 박 씨가 김 씨에게 티슈를 내밀기도 하고 직원에게 따뜻한 물도 달라고 했다. 김 씨는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따뜻한 물로 입가심을 했다. 여태껏 먹어본 밥 중에 제일 달았다. 박 씨는 김 씨를 보며 흐뭇해했다. 데이트다운 데이트가 네 번째인 김 씨의 눈에 박 씨의 모든 점이 좋아 보였다. 김 씨는 나중에 콩깍지가 벗어지더라도 절대 실망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이 들어서 이성을 만날 때는 다른 건 다 맘에 안 들어도 한 가지 맘에 드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김 씨는 박 씨와 헤어져서 집에 돌아왔다. 김 씨는 박 씨가 자신의 어깨에 오도카니 앉아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를 손으로 문질러보았다. 웃음이 났다. 옷도 벗지 않고 며느리에게 전화부터 했다.
“너 좋아하는 약식하고 식혜 해 놓을 테니 내일 와서 가져가거라.”
“꺄악.”
김 씨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괴성 때문에 고막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렇게 좋아하다니, 김 씨는 자신이 얼마나 박한 시어머니인가를 생각하다가 바빠서 글피에 갈게요, 라고 이어진 며느리의 말 때문에 좋다는 건지 아닌지 헷갈렸다. 한마디 하려다가 말았다. 전화를 끊고 개운치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니 시어머니 행세, 연장자 행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자기 입으로 박 씨에게 되물었던 말이 생각났다.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노하지도 말자. 며느리도 나름의 스케줄이 있는 건데.
박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엔 상념에 잠기게 된다. 김 씨는 아무리 잘 살았어도 마무리가 부실하면 인생 전체가 망가지는 느낌이 들고 잘 못살아왔어도 끝이 좋으면 지나온 생이 보상받는 느낌이리라. 인생 마무리를 아름답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그 간절함의 가운데 박 씨가 있었다. 왜냐하면 김 씨의 이름을 불러 준 사람은 박 씨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있긴 있었다. 내과, 정형외과, 통증의학과 간호사들이 불러 주는 이름은 달갑지 않았다.
* 영화 제목은 ‘공작부인’이며, 원제는 남자 주인공 이름인 ‘Dorthworth’다.
•수상소감 - 우수상 단편소설 박상희
“저의 허당끼가 소설을 쓰는 모티프가 되기도”
나이가 지천명을 넘어가면서 아직 오지 않은 시절에 대한 호기심과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자세를 고민하면서 써 놓았던 몇 편의 소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이번 공모전의 주제와 어울리는 한 편을 골라서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저의 허당끼로 인해 소재를 얻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꼼꼼하지 못해서 영화감독이나 제작년도를 확인하지 않고 영화관에 간 실수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8년에 만들어진 「공작부인」을 보고 싶었는데 그만 1936년에 제작된, 같은 타이틀의 다른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한 편의 소설을 썼고, 수상까지 하게 되어 기쁩니다. 저의 허당끼는 소설을 쓰는데 모티프가 되기도 합니다.
기존의 저명한 작가들은 글 쓰는 작업을 습관처럼 매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따라해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던 터에 선배가 제안을 해왔습니다. 하루에 단편 소설 한 편을 읽든가, 필사를 하든가, 소설 한 장 분량을 쓰든가, 써 놓은 소설을 수정하든가, 매일 이 네 가지 중, 한 가지라도 해내기로. 지키지 못할 경우는 밥을 사기로 했습니다. 올해 초부터 선배는 하루도 빠짐없이 약속을 지켜왔는데 저는 밥 사러 몇 번을 선배 동네로 가야했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사의 밑그림이나 순서를 고려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 안에 쓰는데 만 급급했습니다. 부모님 댁을 방문하거나 여행을 가면서도 노트북을 들고 갔습니다. 그날의 날씨나 기분에 따라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소설의 중간 토막부터 써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구성을 해놓고 소설을 써나가는 방식이 바람직하지만 소설의 줄거리, 캐릭터, 작가의도가 정해질 때까지 기다리다보면 소설은 시작도 못 한 상태에서 두세 달이 그냥 가버리기도 합니다. 지금은 첫 문장을 쓰다가, 중간 중간에 몇 줄씩 쓰기도 하고 결론의 한 문장부터 쓰기도 하는 등 규칙 없이 쓰고 있습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안 쓰는 것보다는 나은 듯해서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제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소설을 놓아버릴까 말까 고민을 반복할 때도 선배는 꾸준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이제는 하루라도 소설과 관계된 읽기나 쓰기나 수정을 하지 않고 지나가면 꺼림칙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선배와의 다짐이 이제 효과를 발휘하는 듯합니다. 목표를 거창하게 잡으면 얼마 가기도 전에 지쳐버리지만, 실천할 수 있을 정도로만 정하니 꾸역꾸역 앞을 향해 나가기는 합니다. 다이어트 할 때 일주일에 1킬로그램 또는 한 달에 4킬로그램 감량을 목표로 하지 않고, 매일 200그램씩 빼겠다는 덜 부담스러운 목표를 설정하는 것과 같은 저만의 방식입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그래도 글이 안 써지면 딴 짓을 합니다. 제 취향이 아닌 영화도 보고, 딸을 앞세워 젊은이들이 모이는 라이브 카페에 가기도 하고, 부모님과 조카들까지 모아 놓고 마음 알아채기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막힌 골목이나 민예품이 전시되어 있는 재미있는 장소를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펜션 주인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기절할 각오하고 패러글라이딩에 도전도 해봤습니다.
TV를 보거나 버스타고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휴대폰에 단어 나열식으로 메모를 하거나 사진을 찍어놓습니다. 기록 당시에는 이해되었던 내용들을 한참 후에 찾아보면 어떤 의도로 저장해 두었는지 암호 해독 수준이 되기도 하고, 메모해 둔 제 글씨체를 읽을 수 없는 어이없는 경우도 생깁니다.
글을 쓰면서 세상을 의심하고 낯설게 보는 점이 가장 어렵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여태껏 보편타당하다고 여겼던 점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글이 쓸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지만,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수상으로 인해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젊은 영웅들이 배를 타고 세계의 동쪽 끝까지 가서 황금양털을 찾아오는 설화가 있다. 바로 ‘아르고호 이야기’다. 이아손 원정대는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황금양털을 찾는 모험을 한다. 마침내 그들이 도착한 곳은 흑해 연안에 접한 고대 조지아의 첫 번째 국가 ‘콜키스’(Kolkhis)였다. 그곳에서 원정대는 이아손에게 반한 ‘메데아’(Medea)의 도움을 받아 황금양털을 가지고 그리스로 돌아간다. 조지아가 신화의 땅으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다.
흑해의 진주 바투미의 핫 플레이스
흑해의 석양이 아름다운 고급 휴양도시 바투미는 조지아의 여름 수도라고 부를 만하다. 여름철이면 주변국에서 온 많은 사람이 휴가를 보낸 후 돌아간다. 그렇다 보니 현대식 건물과 유럽 양식의 건축물과 집들이 뒤섞여 있다. 관점에 따라 난개발로 볼 수도 있고, 신구(新舊)의 조화로 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조지아에서 가장 복잡한 거리이면서 현대화된 도시라는 점이다.
바투미는 ‘불러바드(Boulevard) 해변’과 유럽광장이 중심인 ‘구시가’로 나눠 둘러보는 게 좋다. 다양한 공원과 테마파크가 모여 있는 불러바드 해변에서 여름철에만 영업을 하는 ‘선셋 레스토랑’이 있다. 음식뿐 아니라 조지아의 화려한 전통 무용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불러바드 해변에서는 뮤직 페스티벌 등 크고 작은 축제가 매일 밤 열린다. 해변을 걸으며 이곳 분위기에 푹 빠져보는 시간만으로도 행복하다. 미학적 감동을 넘어 잠들어 있는 나를 깨워주는 해방의 공간에 온 듯한 자유가 느껴진다.
해변 옆 힐튼호텔 20층 ‘스카이라운지’는 전망을 즐길 수 있는 바투미의 숨겨진 명소다. 시시각각 다르게 물드는 바다와 하늘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수평선을 향해 기울어가는 붉은 태양을 배경으로 나뭇잎 떨어지듯 활강하는 패러글라이딩과 오렌지색 바다 위로 검은 물살을 남기며 가로지르는 배를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클라리넷의 선율이 감미롭게 들려온다. 흑해가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거대한 공간이 되는 시간이다.
무슬림을 상징하는 남자 ‘알리’와 조지아 정교회를 상징하는 여자 ‘니노’의 이야기를 담은 두 조형물 ‘알리&니노’는 저녁 7시가 되면 조금씩 움직이며 서로 아슬아슬하게 만나지만 키스도 못하고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며 다시 멀어진다. 안타깝고 가슴 저리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한 이 작품도 바투미를 상징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운 좋게도 행복한 기운이 느껴지는 마을에 들를 때가 있다. 바투미 구시가지가 그런 곳. 마치 동화 속 마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메데아 동상’이 있는 유럽광장을 중심으로 천문 시계탑, 황금빛 공연 예술극장, 황금 포세이돈 동상, 신화 속 마녀 사이렌의 조형물, 꽃 장식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들이 모여 “이곳이 신화의 땅“이라고 속삭인다. 기꺼이 길을 잃고 한 집 한 집 들어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다.
‘보르조미’ 광천수는 신의 선물
조지아 중부지방에 있는 보르조미 국립공원은 유럽 최대 규모의 공원이다. 침엽수와 활엽수의 광활한 원시림으로 이루어져 있어 몸에 좋은 피톤치드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조지아 사람들은 자녀가 천식을 앓으면 이곳에 데려와 요양을 시킨다. 뇌전증을 앓았던 차이콥스키도 이곳에서 치유하며 음악적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보르조미 시내에 그의 동상이 있다.
이 공원에서 조지아 3대 상품 중 하나인 ‘보르조미 생수’가 생산된다. 한국에서도 수입했던 보르조미 광천수는 자연 탄산 미네랄워터가 빙하로 덮여 있다가 여과되어 내려오는 물이다. 제정 러시아 시절 이곳에 주둔해 있던 러시아 군대 지휘관이 광천수를 마시고 위장병이 나은 후 휴양지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 후 러시아 왕족과 귀족들도 이 물을 들여와 마셨다고 한다. 1894년에는 광천수를 병에 담기 위한 공장까지 생겼다. “신은 아제르바이잔에게는 원유를, 조지아에게는 물을 선물했다”는 말이 있다. 1000년을 마셔도 마르지 않을 물이 보르조미에 있기 때문이다.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린 후 광천수를 마셔봤다. 쇳물 냄새에 짭조름한 맛이었다.
고즈넉하고 쓸쓸한 그리움의 도시 ‘쿠타이시’
조지아를 여행하다 보면 교회가 참 많이 보인다. AD 337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할 정도로 조지아 사람들의 삶에는 종교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교회도 많다. ‘쿠타이시’(Kutaisi)에 있는 ‘바그라티 대성당’(Bagrati Cathedral) 역시 의미 있는 교회 중 하나다. 조지아 역사상 최초의 통일 왕국을 이룩한 후 그 상징으로 지었다고 한다. 웅장한 규모와 녹색 지붕이 인상적인 이 성당은 조지아 건축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기원전부터 도시로 형성된 쿠타이시는 고대부터 조지아 역대 왕국의 수도였다. 현재도 교통, 행정의 중심도시 역할을 한다. 교회 앞마당에서 내려다본 쿠타이시의 해질녘 시가지는 지나온 굴곡의 시간을 대변하듯 고즈넉하면서도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물들어갔다.
조지아의 경찰은 1등 신랑감
조지아에서 유리로 만들어진 가장 멋진 건물은 무조건 경찰서로 보면 된다. 경찰서 건물이 이토록 환하고 밝고, 멋진 데는 이유가 있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후 집권한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은 경찰 개혁을 추진했다. 2004년 부패의 화신이었던 경찰 수장과 3만 명의 경찰을 일시에 해고한 뒤 새 경찰을 모집해 완벽한 물갈이를 했다. 뇌물을 받지 못하게 하려고 급여도 20배 이상 인상했다. 또 모든 경찰 활동을 밖에서 볼 수 있도록 건물을 투명한 유리로 만들었다. 당시의 개혁은 한계와 어두운 측면도 있었지만, 일선 경찰들은 크게 변했다. 이때부터 조지아에서 경찰은 1등 신랑감이 됐다.
요즘 조지아 청소년들은 ‘케이팝’(K-pop)에 열광하고 있다. 탈레비에서 있던 일이다. 일몰을 감상하기 위해 공원으로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세 명의 소녀가 “안녕하세요?” 하면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반갑고 신기해서 30여 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소녀들은 케이팝이 너무 좋아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고리’(Gori)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케이팝 때문에 전공을 아예 ‘동양 언어’로 선택하려 한다는 ‘타마르’(Tamar)도 우리를 반겨줬다. 한국인을 직접 만나 정말 기쁘다며 한국 드라마와 노래에 대한 꽤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준비한 김밥과 라면으로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그녀는 자신의 친구를 숙소로 불렀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기타를 치며 케이팝과 ‘술리코’(Suliko)를 비롯한 조지아 노래를 부르며 작은 콘서트를 열어줬다.
고리의 광장에서 만난 스탈린타마르를 만났던 ‘고리’는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고향이기도 하다. 시청 광장에 아직도 그의 동상이 있다. 사진과 유물을 모아놓은 박물관과 생가, 그가 사용했다는 전용열차를 전시해놓은 공원도 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역사의 패륜아라는 생각에 그곳을 둘러보는 동안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바람의 나라 아르메니아로 가는 길
바르지아에서 출발해 11번 도로를 타고 아르메니아 제2의 도시 ‘규므리’(Gyumri)로 향했다. 1번 도로를 이용할 것을 주로 추천하지만, 이동거리 때문에 11번 도로를 선택했다. 염려했던 것보다 도로 상태는 좋았다. 새롭게 포장된 구간도 많았다. 오히려 차량이 별로 없어 한갓지고 더 좋았다.
국경을 넘자 고원지대 특유의 초원이 펼쳐졌다. 초원의 풀밭을 쓸며 지나가는 바람의 출렁임이 보였다. 누런 벌판으로 여름날 오후의 햇볕이 쏟아졌다. 눈이 부셨다. 그대로 서서 두 눈을 감고 두 팔을 한껏 벌렸다. 바람이 담아 오는 오래된 전설을 듣고 싶었다. 부드러운 저음색의 목관악기 소리가 끊이지 않고 바람에 실려 왔다. 한이, 처연함이, 소망이 스며 있는 소리였다. 바람은 손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며 빠져나갔다. 노아의 이야기와 격조 높은 아르메니아의 문화와 검소한 신앙이 남아 있는 곳으로.
◇조지아 중서부 지역에서 꼭 가봐야 할 곳◇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의 ‘고대 동굴도시’
기원전 10세기경에 만들어진 고대 동굴도시다. 바위를 깎아 공동 집회장소, 궁전, 와인 저장고, 감옥 등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태양신을 섬기는 종교도시였는데 기독교인들이 이주해오면서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11세기에는 실크로드의 거점으로 인구가 2만여 명까지 늘어날 정도로 커졌지만 13세기에 몽골 침입으로 폐허가 됐다.
아할치헤(Akhaltsikhe)의 ‘라바티’(Rabati) 성’
13세기에 세워진 도시다. 조지아어로 ‘새로운 요새’라는 의미를 지닌다.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할 때 구시가지에 있던 ‘라바티 성’은 폐허가 됐다. 2011년 복원을 시작해 새로 문을 열면서 조지아의 유명 관광지로 변신했다.
바르지아(Vardzia)의 ‘동굴도시’
쿠라 강변의 ‘에루쉐티’(Erusheti) 산비탈에 동굴을 파서 만든 도시다. 12세기에 몽골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짓기 시작해 타마르 여왕 때 완공됐다. 서쪽과 동쪽에 각각 6개의 수도원과 여왕 타마르의 방, 접견실, 회의실, 대장간 등 300여 개의 방과 25개의 와인 저장실로 이루어진 군사요새다. 한때는 5만 명을 수용할 만큼 큰 규모였다. 중세 때는 수도원으로 사용됐다.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새로운 도전을 즐긴다, 인생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자기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한다.” 중장년을 위한 자기계발서 ‘비바 그레이’의 저자 홍동수(64) 씨가 말하는 액티브 시니어의 공통점이다. 패러글라이딩, 암벽등반, 스쿠버다이빙, 승마, 요트 등 거의 모든 레포츠를 섭렵한 그에게 ‘젊음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지 물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 “나이를 느껴본 적이 없다. 고로 나는 매 순간이 젊다.”
도움말 홍동수 ‘비바 그레이’ 저자
홍동수 씨와 같은 중장년을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라 부른다. 본래 이 말은 미국 시카고대학교 교수인 버니스 뉴가튼이 처음 사용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소비패턴이 가족 중심에서 여가, 자기계발 등 자기 중심으로 변화한 것에 착안한 용어다. 한국에서도 여가와 취미, 소비를 즐기며 사회생활에도 적극적인 50~60대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줄곧 쓰인다. 액티브 시니어의 경우 과거 노인층과는 확실히 구분되며, 육체뿐 아니라 경제적, 정신적 측면에서도 혈기왕성한 성향을 띤다.
‘액티브’(활동적인)라는 의미처럼, 이들은 건강한 신체를 바탕으로 청년 시절보다 더 활발한 여가와 취미를 즐기고 있다. 홍동수 씨는 “레포츠 동호회에서도 직장생활로 바쁜 젊은 세대보다 시간 여유가 있는 시니어들이 반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활동이 그들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무엇일까? 첫째, 삶의 행복과 심리적 안정을 준다. 둘째,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해 친밀감과 유대감을 갖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며 사회적 혜택을 얻는다. 셋째, 신체적 여가활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가 뭐래도 즐거워한다.
액티브 어덜트, 더할 나위 없이 놀자!
국내 최초 설악산 대청봉 패러글라이딩 및 샌드 요트 제작, 에베레스트 원정, 초경량 항공기 면허, 스쿠버다이빙 자격 취득, 그룹사운드 INDKY의 베이시스트 등등. 액티브 시니어 홍동수 씨의 활동 이력이다. 젊은이조차 엄두를 못 내는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그는 “오히려 나이가 들면 더 쉽게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앞서 말한 경제적, 시간적 여유 덕분이다. 중요한 것은 나이나 신체가 아닌 마음가짐. 물론 취향의 차이는 있다. 시니어 레포츠 전문가인 그에게 사람들은 ‘어떤 액티비티를 즐겨야 좋을지’ 자주 묻는다. 이에 그는 ‘에니어그램’(Enneagram, 성격유형검사)을 기반으로 추천 종목을 정리해뒀다. 온라인이나 앱을 통해 ‘에니어그램’을 검색하면 손쉽게 자신의 유형을 파악할 수 있다.
다음 궁금증, 바로 ‘비용이 얼마나 드느냐’는 것. 장비의 경우 대부분 대여가 가능하고, 동호회 등을 통해 중고로도 구매할 수 있다. 활동보다는 고가의 장비 수집이 취미인 이들도 있어, 그야말로 자기 나름이다. 홍동수 씨는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마련한 공식(?)을 내놓았다. ‘장비 구입비는 한 달 생활비 정도, 활동비(이용료, 입장료 등 하루 경비)는 하루 생활비 정도’로 계산하라는 것. 그의 경우 장비 구입비는 300만 원 선, 활동비는 하루 10만 원 선으로 보고 있다. 금액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지는 않는가? 홍동수 씨는 말한다. “레포츠는 돈보다는 열정과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최근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각종 레포츠 모임이 주춤한 상태다. 그는 이때를 틈타 준비해둘 것이 있다고 조언한다.
“나이를 떠나 레포츠를 즐기려면 어느 정도 근력이 필요합니다. 집에서라도 조금씩 운동하며 기초 체력을 키우길 바랍니다. 건강하고 능력 있는 우리 시니어가 ‘잘 노는 사람’까지 된다면, 드디어 완벽한 인생을 누리는 첫 세대가 아닐까요?”
홍동수 씨가 권하는 상황별 레포츠
◇ 은퇴 후 부부가 함께하려면 ‘산악자전거’
산악자전거가 일반 자전거보다 더 위험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의외로 안전하다. 우리나라는 산마다 임도(산간 도로)가 잘 조성돼 있다. 이 길은 등산로와 다르다. 사륜구동차도 다닐 수 있다. 아내도 산악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건강해졌다. 산악자전거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부부가 함께 전국일주도 가능하다.
◇ 럭셔리한 취미생활을 원한다면 ‘승마’
승마는 귀족 스포츠로 잘 알려져 있지만 말을 구입하지 않으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부유한 이들도 말을 소유한 경우가 극히 드물다. 다양한 승마 체험의 재미가 있는데, 말을 사면 자기 말밖에 탈 수 없고 유지비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또 정적이고 우아한 활동으로 여기기 쉬운데 의외로 격렬하고 체력소모도 심하니, 이 점 고려하자.
◇ 사색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할 땐 ‘패러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 중에 중장년이 꽤 많다. 하늘에 떠서 고요히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기 좋기 때문이다. 조절하기 나름이지만, 길게는 4~5시간도 공중에 떠 있다. 광활한 풍경을 바라보며 성찰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정적인 레포츠다. 잠깐 교육만 받으면 스스로 바람을 살피면서 안전하게 제어가 가능해 누구든 쉽게 배울 수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슈퍼리치들의 이야기. 재산이 ‘얼마’라는 이슈뿐만 아니라 현재의 그들을 있게 한 삶의 양식과 태도 등을 엿봄으로써 대중은 자극받고 때론 위로받는다. 그들이 끼치는 영향력은 비단 돈의 흐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우리가 마윈의 인터뷰, 빌 게이츠의 다큐멘터리, 스티브 잡스의 영화 등에 주목하는 이유다.
슈퍼리치, 최고에서 물러나 다시 출발점으로
“마윈, 왜 55세에 조기 은퇴를 결심했나요?” @2018 ‘다보스포럼’ 인터뷰
중국 최고 부자로 알려진 마윈은 작년 9월 55세 나이로 알리바바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쌓을 수 있었던 그가 조기 은퇴를 결심한 까닭은 무엇일까?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회사를 떠나지 못할 것 같아서요. 많은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회사에서 쉽게 나오지 못합니다. 은퇴 후 뭘 해야 할지 모르니까요. 이대로 55세를 넘기면 저 역시 익숙해진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겠죠. 미래를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대개 정년에 가까운 분들이 ‘회사가 날 못 떠난다, 이 조직이 날 안 놔준다’ 하지만 그건 너무 자만한 생각이에요. 사실은 당신이 회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일 테니까요.”
“억만장자 빌 게이츠의 제2인생 목표는?”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 빌 게이츠는 은퇴 후 아내 멜린다 게이츠와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방대한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새로운 문제들과 맞서며 또다시 자신의 한계를 시험 중인 그의 제2인생을 그린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빌 게이츠’(넷플릭스)에는 미래를 향한 그의 고민과 삶의 방향이 담겨 있다.
“살면서 이 세상에 중요한 게 뭔지 판단해야죠. 전 에너지 문제와 기후 변화를 해결하고 질병을 없애고 싶습니다. 효율적인 해결 방안을 찾고 신속하게 적용하는 게 중요해요.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요. 결국 무엇을 얻는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는지가 관건입니다.”
슈퍼리치, 슈퍼 스케일
“죽기 전에 화성에 도시를 건설한다고?” ” @TED 일론 머스크 인터뷰
영화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는 억만장자일 뿐만 아니라 천재적인 두뇌와 재능까지 겸비했다.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구를 넘어 ‘우주’를 상대로 사업을 펼친다. 그런 그의 목표는 ‘죽기 전 화성에 100만 명을 보내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단순히 이슈메이커에 그칠지, 영화처럼 히어로가 될지는 그의 손에 달린 듯하다.
“영감을 주고 끌리는 미래를 꿈꾸는 게 중요합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 사람을 살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살려고 하나요? 목적은 뭐죠? 영감을 주는 건요? 어떤 미래를 꿈꾸나요? 저에겐 만약 이 우주가 지구밖에 없다면, 미래에 우리가 다른 행성에서 살 수 있는 종족이 아니라면, 산다는 게 꽤 실망스러울 거 같아요.”
“순응하며 사는 삶은 너무 제한적이야!” @영화 ‘잡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잡스’. 청년 시절부터 엉뚱하면서도 대범했던 그는 주변으로부터 환영과 환멸을 받으며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산다. 영화 후반부에서 스티브 잡스는 ‘심플 디자인’, ‘심플 경영’ 등을 강조하며 세상을 변화시킨 자신의 심플한 아이디어를 들려준다.
“어른이 되면 세상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냥 순응하면서 맞춰 살라는 얘길 귀 따갑게 듣는데, 그건 너무 제한된 삶이죠. 굉장히 간단한 사실 하나가 삶의 시야를 넓혀줄 거예요. 그건 바로 당신보다 덜 똑똑한 사람들이 당신이 사용하는 삶의 모든 걸 만들어냈다는 거죠. 물론 당신도 바꿀 수 있어요. 당신이 직접 만든 걸 다른 사람이 사용하게 하는 겁니다. 삶이란 그저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며 당신의 자취를 남기는 거죠. 그 사실을 깨달으면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다 쓰지도 못하고 죽을 만큼의 재산
“내게 필요 없는 돈 99%는 기부하겠소” @2015년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
워런 버핏은 매년 버크셔해서웨이 연차보고서에 싣는 주주서한과 주주총회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직접 공유한다. 2016년부터는 주주총회가 인터넷으로 생중계돼 누구든 그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게 됐다. 다음은 2015년 주주총회 질의응답 내용이다.
“자녀들이 결코 놀고먹지는 못할 만큼만 재산을 물려준다고요?”
“맞습니다. 내 재산의 99%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상속 계획은 개인적인 일입니다만, 내가 소기업 하나만 소유하고 있다면 생각이 지금과 다를 것입니다. 재산을 어떻게 할지 궁리해보면 의외로 선택지가 많지 않습니다. 나는 더 필요한 것이 없으니, 금고에 넣어둔 주식증서 역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 증서가 아주 유용하겠지요? 나는 그저 아주 소박한 생활이 좋습니다.”
“부자면 뭐해, 금빛 감옥에 갇힌 신세인걸” @에세이 ‘1%의 우정’,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
명망 있는 가문의 백만장자 필립 포조 디 보르고는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된다. 돈이 많아도 마음껏 쓸 수 없었던 그는, 가진 거라곤 건강한 몸뿐인 무일푼 백수 ‘압델’을 간병인으로 들인다. 서로에 대한 편견을 뒤로하고 우정을 키워간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는 필립의 저서 ‘1%의 우정’과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으로 그려졌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와 행복에 대한 메시지로 대중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나로 말하자면 파리의 특급 호텔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벽들의 보호를 받는, 재산에 관한 한 적어도 궁핍함이라고는 모르는 특별한 종족에 속한다. 압델은 내 집을 ‘금빛 감옥’이라고 불렀다. 나를 둘러싼 높은 벽들로 인해 그 어떤 것도 내게 다가올 수 없으니(언터처블!) 감옥이 아니면 뭐냐는 것이었다.”
넘어져 부서져도 눈 덮인 산을 그리워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참아가며 설상 경사로를 질주했다. 수줍은 미소로 시작한 두 사람의 인터뷰는 시간이 갈수록 반전에 반전을 더했다. 사람은 이렇게도 살 수 있다! 겨울 놀이에 인생을 던진 두 남자를 만났다.
이들은 1994년 처음 만났다. 도봉산에 있는 한국등산학교에서. 전영래(55) 씨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임세훈(51세) 씨는 그곳에서 강사로 일하는 선배를 만나러 갔었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얼굴을 자주 보면서 살게 될지 몰랐다. 그러고 보니 체격도 비슷하고 뭔가 풍기는 느낌도 다르지 않다. 한국등산학교 강사 직함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 정작 본업은 따로 있다. 임세훈 씨는 음향 엔지니어, 전영래 씨는 건설업자다. 겨울 놀이에 빠져 산다는 이 두 남자의 시작은 모두 산(山)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암벽 등반한 임세훈 씨
“아버지가 군인이셨어요. 어머니께서 장교 부인들과 어울리셨는데 절에 자주 갔습니다. 저도 따라다녔어요. 대부분 절은 산에 있잖아요. 암벽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게 됐습니다. 기웃거리면서 ‘저게 뭐하는 것이냐’며 사람들에게 자꾸 물어보니까 알고 싶으면 직접 해보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암벽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이 되니까 선배들이 산에 간다면서 스키를 메고 가더라고요. 겨울 산행을 하려면 스키를 배워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알프스스키장에 가서 처음으로 스키를 접하게 됐습니다.”
요즘은 적설량이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 제법 눈이 많이 내렸다.
“중학교 때만 해도 산에 가면 보통 허리까지 눈이 왔어요. 눈을 그냥 등산화로 헤치고 밟아가며 산을 오르내렸습니다. 그걸 ‘러셀’이라고 하는데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뭔가 편안한 방법이 없을까 궁리했어요. 눈이 많이 내리는 유럽 지역의 사람들은 스키를 타고 다니더라고요. 러셀로 오르면 4~6시간 걸려 올라가는 산을 스키로는 2시간이나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어요. 시간도 단축되고 체력 소모도 없어요. 그때부터 산악스키에 빠져든 거죠.”
스키를 계속 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있었다. 눈 쌓인 겨울 산을 보는 게 좋았다.
“아무나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에요.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서 다 다르죠. 그 경치를 보고 싶어서 자꾸 올라갔습니다. 등산과 스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유럽 스키의 벽을 깨고 겨울을 찾아다니다
임세훈 씨는 스키를 좋아하는 것 이외에도 패러글라이딩도 하고 빙벽에도 오른다. 어린 시절 태권도 선수를 꿈꾸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곧바로 입대.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자마자 특전사로 차출됐다. 군에서 패러글라이딩 팀에 있었고 스키도 좀 타봤다. 7년 넘게 부사관으로 있다가 1991년 3월에 전역했다.
그가 찾아 들어간 곳은 역시나 스키장이었다. 스키장 패트롤(안전요원)로 들어가 일도 하고 원 없이 스키 슬로프를 질주했다.
“스키 시즌이 끝날 무렵 스키 강사와 패트롤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어요. 지금도 종종 이런 논란이 일어나는데 강사와 패트롤 중 누가 더 스키를 잘 타냐는 거였어요. 그때 마침 자리에 한국스키협회 이사장님이 계셨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선을 그어주셨습니다. ‘너희 시합해봐.’”
매력적인 경품도 걸렸다. 10명에게 스위스 스키장 연수를 보내준다고 했다. 스키장이 폐장할 때쯤 슬로프를 정리하고 스키대회처럼 기문을 설치하고 각각 10명씩 20명이 맞붙었다. 협회 이사장이 연수를 보내주기로 약속한 10명에는 강사 4명과 패트롤 6명. 그중에는 임세훈 씨도 있었다.
“스위스에 있는 체르마트 스키장으로 갔습니다. 처음에는 좋았죠.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한국에서 그래도 스키 좀 탄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연수 첫날 체르마트 스키장의 A급 패트롤과 최정상 슬로프인 블랙 다이아몬드 2급에서 같이 스키를 타고 내려왔는데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 중 가장 늦게 내려온 사람과 20분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저희 실력이 수준 이하라고 생각했는지 점점 슬로프 경사도가 낮아졌어요. 강사도 패트롤 A급에서 C급으로 내려갔습니다. 4일째 되는 날에는 아예 슬로프 근처에도 못 가고 평지에서 자세만 배웠습니다.”
8일간의 연수를 마친 뒤 임세훈 씨는 함께 갔던 협회 이사장과 친구들에게 돈을 빌렸다. 그렇게 돈을 끌어모아도 1000프랑(유로 가입 전 프랑스 화폐 단위)이 안 됐다. 한국에서 송금받을 방법도 알아냈다. 스위스 스키학교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갈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고요. 형편없더라고요. 제 실력이요. 한국스키협회 추천을 받아서 일단 스위스 국립스키학교에 등록했어요.”
입교 허락이 떨어지기는 했는데 그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돈도 없고 영어도 안 되니 학교 측에서 걱정했다.
“한국어로 된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사전을 스위스 현지에서 샀습니다. 스스로 교재를 번역해서라도 이해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죠. 어차피 내용의 80%는 전문용어이니까요. 제가 영어를 못하니까 강사들이 배려를 많이 해줬습니다. 학교에서는 아르바이트를 알선해주고 브랜드 협찬도 연결해주셨어요. 2년 공부하고 스위스에서 스키 레벨3을 땄습니다. 개인 강습을 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학업을 마친 후 스키 전문 브랜드의 데몬스트레이터(최고 스키 지도자) 팀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스키도 열심히 탔고, 동양인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월급 받으면서 세계의 유명 스키장을 돌아다녔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그렇게 지내다가 겨울에는 국내에 들어와서 스키도 타고 제가 하던 음향 일도 했습니다. 겨울만 찾아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1년 6개월 동안 스키의 재미에 빠져 살았다. 브랜드 홍보차 유럽의 한 스키장에서 모굴스키를 타다가 앞서 타던 사람이 넘어진 것을 보고 피하려다 엉덩이뼈가 부서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미칠 만한 이유가 있었네요. 우물 안 개구리는 자존심 때문에 싫었습니다. 돌아와서는 스키와 등산을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재작년에는 남극에도 다녀왔습니다. 스키는 노는 날 탔죠.(웃음)”
2014년, 한국은 남극 대륙 본토인 테라노바 만에 두 번째 기지인 ‘장보고 과학기지’를 건설했다. 임세훈 씨는 이곳에서 연구하는 박사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안전요원으로 파견된 것. 크레바스를 건너는 방법을 알려주고 블리자드가 부는 극한 상황을 해결하는 등 더 원활하게 연구에 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돌아왔다.
“사실상 백수입니다. 그래도 군에서 연금도 나오고요. 남극 안전요원으로 활동도 했고, 동호회 형식의 스키 교실, 등산학교 등에서 강연도 합니다. 봉사에 가깝지만 교통비 정도는 주십니다. 풍요롭지는 않아도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에게 스키와 등산은 생활이자 직업입니다.”
신장 투석하면서 해외로 스키 타러 다닌 전영래 씨
“매년 스키장 시즌권 판매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샀어요. 구입하고 나면 누구랑 갈까 생각해요. 혼자 가면 재미없잖아요. 마음 맞는 사람하고 가야 하니까 함께 스키 탈 친구들 목록을 정리합니다. 젊었을 때는 스키 시즌 내내 스키장에서 살았습니다.”
중학교 때 산악인이던 삼촌을 따라서 이 산 저 산 따라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과 친해졌다. 암벽등반을 하는 삼촌의 모습을 보면서 산에 대한 열망이 강해져 고등학교 때 산악부에 들어가 활동했다. 그것도 성에 안 차서 결국 교복을 입고 성인들 틈 사이에서 산행하면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산에서 학교에 다녔어요. 성북동 살았는데 우이동에 선배가 하는 산장이 있었어요. 책가방 거기다 가져다 놓고 등반하고 자고 아침에 학교 가고 또 등반하고. 그러다 산악스키에 빠지게 됐어요. 형들이랑 있으면 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눈이 많은 유럽 지역의 사람들은 걸음마를 할 때부터 스키를 탄다고요. 그리고 스키를 타야 산을 오르내리는 게 쉽고 빠르다고 했어요. 1985년도에 스키를 시작했습니다. 산을 제대로 타려면 스키도 타야 했어요.”
지금처럼 스키장이 많을 때가 아니라 선배들이 차를 몰고 스키장에 갈 때 따라갔다. 스키 타는 시간보다 선배들 밥 챙기는 시간이 더 길었다고. 그런데 정작 산악스키의 매력 포인트는 알고 있어도 산악스키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해외여행 자율화 이전이라 정보도 풍부하지 않았다. 혹여 누군가 외국에 나가서 배워오면 그게 정확한 정보라고 믿을 때였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조금씩 알게 된 정도였다.
스키장 가려고 사표 낸 건설사 직원
“직장생활할 때는 퇴근과 동시에 스키장으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회사가 방배동 쪽이어서 용인 양지에 있는 스키장을 이용했죠. 다리 근육 강화를 위해 4~5년 동안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쇼트트랙을 했어요. 이상화 선수를 배출한 은석초등학교의 빙상부원이었습니다. 성북동에서 목동, 방배동으로 출근했다가 양지로 이어지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생활에 피로를 느껴 사표 던지고 나왔습니다.(웃음)”
1997년 직장을 그만둔 그는 회사의 대표가 되면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보다 자신의 일정에 맞춰서 등반하고 스키장가는 일에 더 몰두했다. 정말 원 없이 갔다. 4일, 5일 정도는 스키장에서 혼자 지낸 적도 있다.
“아침에 스케이트장, 저녁에 스키장. 몇 년 하다 보니까 슬로프를 타는 게 재미가 없더라고요. 산악스키처럼 좀 색다르게 즐기고 싶었습니다. 2003년에 강원도지사배 강원 산악스키대회가 열렸어요. 그때 출전했습니다. 산악스키대회 장면을 영상으로만 접하다가 실제로 참가하려니 많이 떨렸습니다. 산악용 스키가 원래는 따로 있어요. 가지고 있는 게 없어서 엄홍길 선배에게 빌렸습니다. 스키장의 곤돌라가 돌기 전인 새벽 5시쯤에 대회를 시작해서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끝냈어요. 그런데 몇몇 사람들이 아주 신기하게 보더군요.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게 아니라 올라가니까요.”
이렇게 신나게 살던 전영래 씨의 인생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2005년 고산에 다녀온 뒤로 신장이 망가졌다. 7년 동안을 자가 투석해야 했다. 성격상 집에서 쉴 수 없었던 전영래 씨는 투석에 필요한 장비와 약을 가지고 다니면서 악착같이 스키를 탔다.
“제가 좀 외향적이에요. 신장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어요. 몸이 안 좋아도 삿포로나 나가노에 가는 사람들이 있으면 함께 갔어요. 그리고 제가 가지고 다니는 약이 꽤 무거운데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각자 짐에 나누어 넣고 다녔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투석하고 열심히 스키 타고, 돌아와서 남들 한잔씩 할 때, 자기 전에도 투석하고 그랬어요.”
스키 타고 등반하는 일을 멈추지 않은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현실을 잊고 싶어서.
신장을 이식받은 후에는 그동안 가지 못했던 유럽의 스키장을 다닌다고 했다.
“2012년에 투석기를 꽂고 운전까지 해가면서 새벽에 스키장에 가고 있는데 일산 백병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저와 조직이 일치하는 뇌사자가 있으니 수술받으려면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오후에 가면 안 되겠냐’고 하자 아내가 옆에서 듣고는 ‘이 사람이 미쳤나!’ 그러더라고요. 바로 차를 돌려서 병원으로 갔죠. 투석할 때는 어디든 3시간 이내로 다녀야 했습니다. 아무래도 환자니까 장시간 비행도 쉽지 않죠. 신장 이식하고 6개월 후에 바로 프랑스의 샤모니몽블랑으로 날아갔습니다.”
매년 못 가면 한 번, 기본 두 번은 해외 스키장으로 나간다. 산 다니고 스키 타는 사람들의 건배사에 ‘백두산’이라는 게 있다고 했다.
“100세까지 두 발로 산에 가자. 저도 그런 마음입니다. 민폐 끼치지 않을 때까지 스키도 타고 산에 오르고 싶습니다.”
겨울 스포츠 즐기는 Tip
1 시즌권은 8월부터 준비한다. 홈페이지를 꾸준히 확인하기 싫으면 애플리케이션 알람 신청을 해놓으면 된다.
2 부상 없이 스키를 안전하게 오래 타고 싶으면 다운힐(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기술)은 최소한 정식 자격을 갖춘 곳에서 강습을 받아야 한다.
3 레벨에 맞는 강사에게 강습받기를 권한다. 기초지식이 없는 사람이 최고급 지식을 가르치는 데몬스트레이터에게 교육을 받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그들은 스키의 가장 기초적인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스키스쿨에서 최소한 3회 이상 교육을 받으면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4 시니어에게 산악스키를 권한다. 산릉선을 스키를 신고 돌면서 경치도 보고 운동도 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스키를 타고 올라갔다가, 스키로 내려오기 어려우면 짊어지고 내려와도 된다. 산악스키용 부츠는 등산화와 비슷해 신고 내려올 수 있다. 완만한 경사를 임도 따라서 산행하듯이 스키를 신고 걸으면 된다. 크게 힘들지 않다.
•크레바스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
•블리자드 쌓인 눈이 강풍에 휘날려 일어나는 눈보라.
•러셀 등산에서 선두가 깊은 눈을 헤치고 나아가며 길을 뚫는 방법.
피서를 떠나고픈 8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 영화 '봉오동 전투'
개봉 8월 7일 출연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등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첫 대규모 승리를 쟁취한 1920년 봉오동 전투 실화를 최초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 하나의 뜻으로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웠던 독립군들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 영화 '김복동'
일정 8월 8일 내레이션 한지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올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투쟁했던 27년의 여정을 그렸다. 그녀가 자신의 지난 고통을 드러내면서 되찾으려 했던 삶과 희망의 씨앗, 소녀상의 의미 등에 대해 들려준다.
◇ 영월 동강 뗏목축제
일정 8월 8~11일 장소 강원도 영월군 영월동강둔치 일원
남한강 상류 주민들의 생활수단이자 교통수단으로 숱한 애환을 간직한 뗏목을 테마로 23회째 개최되는 행사다. 천혜의 자연 동강의 아름다움을 만끽함과 동시에 문화 탐방, 래프팅,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 뮤지컬 '시라노'
일정 8월 10일~10월 13일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독설의 대가이자 난폭한 검객, 그러나 사랑하는 이 앞에서만큼은 순수한 낭만을 지닌 한 남자 ‘시라노’의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 매력 넘치는 주인공의 유려한 화술에 아름다운 선율이 더해지며 특유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클래식 '정명훈&원 코리아 오케스트라'
일정 8월 18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과 그가 이끄는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 협주곡 23번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연주한다. ‘하나 되는 코리아’라는 비전을 관객과 공유하며 ‘비창’으로 분단의 아픔을 위로할 예정이다.
◇연극 '오만과 편견'
일정 8월 27일~10월 20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원작으로, 고전 특유의 매력에 유쾌함을 더했다. 성별과 연령, 직업 등 각기 다른 21명의 캐릭터를 단 두 명의 배우가 소화한다. 역할마다 달라지는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와 의상, 소품의 변화가 극의 관전 포인트다.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knbae24@hanmail.net)
산업구조와 사회 상황의 변모, 가족에 대한 인식 변화, 이혼·비혼 증가 등 사회, 경제, 문화적 요인으로 혼자 사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최근 발표한 ‘2016년 9월 주민등록 인구 통계 현황’에 따르면 전체 2121만4428세대 중에서 1인가구가 738만8906세대(34.8%)로 가장 많다. 2인가구는 452만1792세대(21.3%)로 그 뒤를 이었고, 4인가구 397만1333세대(18.7%), 3인가구 391만8335세대(18.5%) 순이었다.
1인가구의 증가세는 최근 들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린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건강하고 행복한 솔로 생활에 대한 교육이나 정보 부재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사는 연예인들이 방송을 통해 1인가구 생활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트렌드를 제공하고 솔로 생활 풍속도를 보여줘 눈길을 끌고 있다.
연예인 역시 이혼, 비혼, 사별, 직업적인 특성 등의 이유로 1인가구가 많이 늘었다. 방송사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앞다퉈 혼자 사는 연예인, 특히 중·장년 연예인 1인가구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MBC의 , SBS의 , , 채널A의 등의 프로그램은 혼자 사는 연예인의 생활을 통해 1인가구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식주와 생활 전반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트렌드를 전달하고 있다.
1인가구 시청자들은 혼자 사는 연예인의 생활과 정보를 접하면서 실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는 방송인 전현무, 개그우먼 이국주 등 혼자 사는 유명인의 솔로 생활과 풍속도를 통해 혼자 사는 사람들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의식주와 인간관계 형성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요령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의 출연자 중 이혼 후 혼자 지내면서 1인가구 생활을 하는 중견 탤런트 김용건(70)은 많은 시청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김용건은 의식주를 비롯한 기본 생활에서부터 취미, 사교활동, 문화생활, 건강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의상 구입에서부터 착용 방법에 이르기까지 패션감각이 뛰어난 패션니스타로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장·노년의 건강관리에 영향을 주는 음식 구매와 식사 잘하는 요령까지 알려준다. 또 행복한 장·노년 솔로 생활의 필수요소인 드라이브, 패러글라이딩, 록페스티벌 관람을 비롯한 취미생활과 지인들과의 정기적인 모임 등 사교활동과 인간관계 유지법 등도 제공한다.
김용건은 “시대와 상황이 변해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혼자 살아도 행복하고 즐겁게 생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가족이 함께 살 때보다 혼자 살면서부터 패션에서 식사까지 더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 혼자여서 외롭다는 생각보다는 혼자여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동안 못해본 것을 해보며 생활한다. 긍정적인 생각이 행복한 1인가구 생활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예능인 김국진(51), 가수 강수지(49) 커플의 오작교 역할을 해 관심을 모은 SBS 은 중·장년 솔로 연예인들이 여행 등을 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마음에 맞는 친구를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혼자 생활하는 중·장년과 노년층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인간관계 단절에서 초래되는 외로움이다. 이 외로움을 여행과 이성 혹은 동성 친구와의 교제를 통해 잘 극복하고 즐거운 1인 솔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바로 이다. 김동규(51), 이연수(46), 김광규(49), 김완선(47), 김도균(52), 김국진, 강수지 등 이혼을 했거나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아 혼자 사는 중·장년 연예인들은 제주, 강원 등 전국 각지를 여행하며 서로 마음을 나눈다. 또한 솔로 생활의 어려움이나 외부의 시선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더 즐거운 1인가구 생활의 해법을 찾아가는 모습도 보여준다. 김완선 등 솔로 생활을 하는 연예인들은 결혼하지 않더라도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등을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에 출연하면서 연인이 된 김국진-강수지 커플은 “이혼 후 혼자 사는 생활을 오래 해왔다. 을 통해 서로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게 됐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라도 연애나 교제 등을 통해 이성 친구를 만나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외로움 극복은 물론이고 행복과 즐거움, 건강함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동성 혹은 이성과의 교제 외에 혼자 사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극복하거나 가족이라는 연대감을 느끼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바로 반려견 등 동물 키우기다. 주병진(57)은 종편 채널A의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개를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생활의 변화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병진은 방송에서 “애완견을 키우고 함께 생활하면서 내 삶이 달라졌다. 식사하는 것부터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까지 좋은 방향으로 변화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애완견 등 동물을 키우면 삶과 1인가구 생활이 더 행복해질 것임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JTBC의 , tvN의 등 쿡방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김국진 등 혼자 사는 일부 연예인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1인가구 생활에서 가장 소홀히 하기 쉬운 식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건강 증진을 위한 요리법을 터득한다. 김국진은 “혼자 살면서 요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요리 만들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요리법을 배웠다. 혼자 사는 사람들도 요리법을 배우면 여러 가지 요리를 하며 건강을 챙기는 식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건모(48) 박수홍(46) 등 혼자 사는 중년 연예인의 생활과 이를 바라보는 어머니들의 심경을 듣는 프로그램도 있다. 바로 SBS에서 방송하는 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심경,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솔로 연예인들의 심경과 결혼 적령기를 넘기고도 솔로 생활을 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경 사이에 적지 않은 갈등과 오해가 존재하는 것이 보인다.
1인가구 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부모 등 가족들이 오해나 편견, 고정관념이 많아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토로한다. 솔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혼자 살면 외롭다거나 불행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가족들 때문에 갈등을 겪기도 한다는 1인가구 생활자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다. 박수홍은 “부모들은 자식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야 행복하고 혼자 살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가족과 가족 형태에 대한 생각과 인식도 많이 바뀌고 혼자 생활해도 결혼한 사람 못지않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1인가구로 혼자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이들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연예인들의 솔로 생활을 보면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0월 14일부터 11월 11일까지 서울역 1·4호선 환승 통로에서 서울역 일대의 역사를 그린 만화가 김광성(金光星·62)의 그림이 전시된다. 그의 그림을 보면 ‘참 따뜻하다, 정겹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수묵담채로 그려진 한국적인 특유의 색감도 그렇거니와 세밀하게 그려진 인물과 풍경들에서 오래전에 볼 수 있었던 서울의 옛 질감이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주제와 소재들로 밀도 높은 작품세계를 꾸준히 확장하고 있는 김 작가의 그림은 파리 크리스티 옥션에서 거래될 정도로 그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그의 삶과 일에 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두 번째 만남인지라 준비해간 질문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인사동 통인가게 2층 찻집에서 내준 발효 생강차가 채 식기도 전이었다. “대표작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앞으론 뭘 그리고 싶은가요?” 이런 질문은 ‘김광성’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아니, 이런 진부한 질문들을 의미 없이 던지는 것은 그의 안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는 데 걸림돌만 될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노트북을 덮었다.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광성 작가는 올해 62세다. 만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다소 늦은 36세 때였다. 당시 인기 만화잡지였던 이 그 전까지 대기업 직장인, 가게 사장님으로 살았던 그를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했다. 이후 26년간 펜을 놓지 않은 그는 자신의 경력이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 그와 비슷한 또래의 만화가들은 대부분 30년 경력을 넘겼을 테니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와 또래이면서 활동하는 만화가가 적은 현실에서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그의 존재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30대 후반에 도전하게 된 만화가의 삶
“학생 때 만화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명랑만화에서부터 극화만화까지 만화란 만화는 다 좋아했죠. 살던 데가 부산 외곽 시골이었는데 만화방이 생긴 게 행운이었다고나 할까.”
김 작가의 아버지는 남사당 사물놀이 꼭두쇠였다. 아버지는 농기구를 예술적으로 만들고 돗자리나 가마니도 전부 손으로 만들곤 했다. 그 끼를 물려받은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림을 그리다 사회에 나와서 십 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죠. 학창시절 때 그림을 그리면 아버지께 혼쭐이 났어요. ‘그림 그리지 마라, 빌어처먹는다’라는 말씀이셨죠(웃음). 그래서 그림을 접어야 했어요.”
그러나 인연이라는 것은 의외로 끈질기다. 회사를 가니 유화반이 있었고, 그는 거기서 유화를 배우게 된다.
“회사 다닌 지 십 년째가 되니 사회 영향을 받아 회사에 변화가 생겼어요. 마침 저도 십 년 다녔으면 지긋지긋하게 했다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죠. 1986년에 아시안게임이 있었고 1988년에 올림픽이 있었죠. 그때 곳곳에서 무허가 건물들이 들어섰는데 어머니가 ‘넌 그림 실력이 있으니 간판집이나 해라’ 하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도 괜찮겠다 싶어서 가게를 차려서 2년 동안 쏠쏠하니 재밌게 일했어요.”
간판집 사장으로 일하던 그는 그동안 전혀 접하지 못했던 만화를 을 통해 우연히 보게 됐다. 당시 만화계에는 신인들이 올라오던 시절이었고 여러 가지 실험적인 시도들도 이어지고 있었다.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그걸 가져와서 보는데, 만화 보느라 간판 제작일이 잘 안 됐어요(웃음).”
처음에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 재료를 사서 허영만, 이현세 등 기성작가들의 작품을 베껴봤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시장이 굉장히 활발했어요. 내가 거기에 끼어들면 색다른 작가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 를 그렸죠. 그게 반응이 좀 좋았고, 그러면서 만화가로서의 삶이 시작됐어요.”
만화는 농사와 같다
이후 30여 년 가까이 만화가 생활을 했다. 이제 중견 만화가이자 인정받는 작가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는 ‘만화는 농사다’라고 말한다.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농사를 지었어요. 만화도 농사처럼 뭔가 다져지고 공부하고 비축이 된 상태에서 나온다는 의미죠. 그림도 기초가 되어 있어야 표현을 하잖아요. 만화는 머리에서 먼저 그려야 해요. 머리에서 먼저 안 그려지면 아무것도 안 돼요. 그러기 위해선 머리에서 그릴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이 쌓여야 하죠.”
김 작가는 우리만화연대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우리만화연대는 만화인들의 모임으로 이론적으로 만화계 저변을 단단하게 다듬는 걸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만화에 대한 분석과 만화계가 처한 상황에 대한 해법 등을 제시하는 활동은 김 작가의 성향과 공명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요즘 바라보는 만화계는 어떤 모습일까?
“그나마 우리 만화계에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있어서 다른 예술 분야보다는 형편이 좀 좋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수년 전부터 만화에 대한 효용가치가 달라졌어요. 만화가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인식하게 된 거죠. 요즘은 어디를 가더라도 만화가에 대한 대접이 과거에 비해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문제는 이제 신인, 기성 할 것 없이 양질의 작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거죠. 잘나가는 작가들은 에이플러스 주고 싶을 정도로 잘해요. 그런데 그런 작가들은 한정되어 있거든요. 그 외의 친구들은 많이 분발해야 하는데, 최근 웹툰 업체들이 많이 생겼어요. 이 업체들은 작품을 달라고 성화죠. 그렇게 되면 작품성이 좀 떨어져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돼요. 작가들이 좀 더 자신의 개성을 살린 작품들을 발표하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죠.”
나이를 거꾸로 먹을 수밖에 없는 일
김 작가는 만화를 그릴 때, 그 안에서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감동받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잘 풀려나갈 때 느끼는 감동은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일 것이다.
“대개 새벽 두세 시에 잠자리에 드는데, 그때 창문을 열고 밖을 보면 참 뿌듯해요. 화가를 꿈꿨던 시절도 있었는데, ‘다시 태어나도 만화가 할 건가요?’라고 누가 물으면 그러고 싶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싶어요. 직업적으로도 매력이 있고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며 즐거워하면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나도 한 역할을 하고 있구나 느끼게 되고 동시에 조심도 하게 됩니다. 또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내 작품에 대해서는 스스로 평을 못 하잖아요. 그런데 시인 고은 선생의 글을 읽고 ‘맛이 있다’고 하는 것처럼 제 만화를 보고 맛이 있다고 하니 최고의 칭찬이죠.”
그는 아직도 자신이 청춘이라고 말한다. 그저 말로만 청춘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여전히 어린이 만화 제작 요청을 받는 활발한 현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일하면서 그는 나이를 계속 ‘거꾸로’ 먹는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지 않으면 그릴 수가 없으니까요. 우리 만화가는 동방신기도 알아야 하고 걸그룹도 알아야 하고 아이들의 언어도 알아야 해요. 그러다 보니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애니메이션도 수시로 보게 되죠.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작품을 보게 될 수밖에 없거든요.”
“도태? 난 도태되고 싶어”
김 작가가 오랜 세월 만화계에서 일하면서 가져야 했던 작가적 태도가 궁금해졌다. 그것은 어찌 보면 그가 계속해서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원동력일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만화가 우월하다거나 대단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활동하는 게 필요하니까, 직업일 뿐이니까 한 거죠. 직업이라고 말하면 한쪽에서 뭐라 할 수도 있겠지만요(웃음). 그런데 요즘 사회학자들이 인생에 대해서 많이 걱정하잖아요. 사람들이 소위 새로운 무언가에 몰입해서 휩쓸려 다니는 게 보이니까요. 이건 개개인의 문제여서 스스로 뭔가를 깨닫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죠. 사람들이 좀 더 진지하게 감성이나 비전, 사유를 접하면 사유하고 감성이나 비전을 가지면 좋겠어요.”
그는 자신이 겪은 반(反)문명론자로서의 사연(?)을 하나 소개했다.
“어떤 젊은이가 내게 핸드폰을 줬어요. 그런데 복잡해서 도대체 어떻게 써야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내가 짜증을 내니까 그 젊은이가 ‘선생님, 그거 안 하면 도태됩니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도태? 도태시켜. 난 도태되고 싶어’라고 말했죠(웃음). 뭔가 새로운 게 나오면 다 그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몰라도 된다고 봐요.”
‘역시 아날로그적 도구로 한국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백다운 발언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김 작가는 SNS 등 인터넷 활용은 물론 포토샵까지 다룰 줄 안다. 심지어 권당 200페이지짜리인 전 10권을 모두 포토샵으로 컬러링 작업까지 한 디지털 능력자다. 제대로 반(反)문명론자가 되려면 문명에 대해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어야 가능한 것일까.
틈만 나면 놀러 다니고 싶은 나이
100세 시대라는 말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김 작가의 미래는 앞으로 적어도 30년은 남은 셈이다.
“요즘은 틈만 나면 놀러가려고 해요. 원래는 놀지 않고 일만 했던 사람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돼요. 돈도 안 되는 걸 밤새면서 왜 그렇게 했나 싶고요.”
아직도 일의 연속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김 작가에게는 현재진행형인 얘기일 수 있다.
“참 족쇄를 풀 수가 없죠.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의무 같은 게 생겼어요. 그런데 의무가 무게를 가지면 참 골치가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2년 동안은 일 안 한다고 도망 다녔어요. 나중에 박재동 작가가 잡으러 왔어요(웃음).”
김 작가에게는 버킷리스트가 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같은 동네에 사는 비구니 스님과 함께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려고 제주도에 가서 스킨스쿠버를 하고 유명산 밑에 가서 패러글라이딩도 해봤다.
“스킨스쿠버를 하면 세상이 확 차단돼요. 거기가 천국이에요. 물고기들이 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스님이 다음에는 바이크 면허 따서 할리데이비슨 타자고 하더라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