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는 스틸 이미지가 흘러넘치고 여기저기서 사진 전시회가 열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직업상 사진에 대해 여러 질문을 받곤 합니다. 그중 저를 당황스럽게 하는 어려운 질문이 있습니다.
“좋은 사진이란 어떤 것입니까?”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강 답하기 어려운 구체적인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단순 명료한 질문을 받았을 땐 정신이 멍해집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공개된 장소일 경우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긴장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됩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대답할 시간을 이미 놓쳤다고 깨달았다면 그때라도 정신을 차리고 신속히 대답해야 합니다. 이럴 때 저는 평상시에 생각했던 답이 무의식중에 나옵니다.
“가족사진입니다.”
의외의 대답에 분위기마저 썰렁합니다. 그래서 굳이 설명을 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그동안 찍어왔던 가족들은 참 좋은 사진 소재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전시회의 작품보다 감동이 살아 있고 또한 눈에 잘 보입니다. 진정한 눈물과 웃음이 가족사진에는 잘 녹아 있습니다. 그런 진솔한 내용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구체적이고 절절한 장면을 꾸밈없이 가족이란 하나의 공통분모로 모아놓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진에는 분야가 많습니다. 그중 한 분야로 좋은 사진을 설명하기에 가족 앨범은 참 좋은 사진 장르입니다.
그렇게 가족사진을 제가 자신 있게 좋은 사진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할 수 있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습니다. 얼마 전 보게 된, 오빠를 바라보는 한 어린이의 표정 때문입니다.
세상의 얘기는 대부분 어른들의 입장에서 표현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서 세상을 이끌어가는 다른 방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무엇을 결정하고 영향을 미치기 전에 아가의 표정이 먼저 어른의 마음을 이끄는 주체가 되어 말없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어른을 쳐다보고 천진하게 웃는 아가가 짓는 표정은 정말 대단한 힘을 발휘합니다. 거기에는 모든 질서가 녹아 있습니다. 아기의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세 살 위의 개구쟁이 오빠도 꼼짝 못합니다. 아가의 표정 하나로 모든 질서가 세워집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선생!’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의 뜻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가 이 가족사진으로 깨우쳤습니다. 어른들을 말없이 교육시키는 아가의 얼굴입니다.
내가 잘 아는 아이입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네 살과 다섯 살인 오빠를 둔 한 살 반인 여자 아기가 이 사진의 주인공입니다. 아직 말도 못하고 잘 걷지도 못한 막내아이를 만나고 몽골로 돌아온 지 한 달이 되어 받은 사진입니다. 그 사이 막내둥이는 자기 맘대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걷는 재미를 알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 아이가 네 살배기 작은 오빠를 바라보는 눈길입니다. 작은 오빠도 그런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18개월배기 동생의 시도 때도 없는 무조건적인 참견에 꼼짝 못합니다.
선생은 무언가 귀한 가르침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내게 선생님은 나이 지긋한 분이었고 반듯한 어른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구체적인 선생을 이 사진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5월은 어린이와 가정의 달입니다. 지금까지 어른이 어린이를 위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권위와 베푸는 입장으로 생각했던 내 선입견이 바뀐 5월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어린이에게 어른이 배워야 하는 우러나는 아름다운 가치를 어른들과 나누고 싶은 5월입니다. 가치는 가만히 두어도 드러납니다. 어른에게 어린이의 이미지가 그렇습니다.
함철훈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Gems of Central Asia’,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Quando il Vento incontra l’Acqua’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대상 수상. 저서로 ‘보이지 않는 손’, ‘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 등이 있다.
4월을 맞으며 파블로프의 반응처럼 맴도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저뿐이 아닐 것입니다.
“사월은 잔인한 달!”
이 단순한 문구로 T.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는 시작됩니다. 그러나 엘리엇은 지혜롭게도 이 문장을 시작하기 전에 슬쩍 전체를 이끌어갈 두 구절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깔아놓습니다. 그의 의도대로 그 장치는 보이지 않게 잘 작동합니다. 하나는 수백 년을 살고 있는 무녀의 독백이고, 다른 하나는 에즈라 파운드입니다.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요.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하고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그리고 그는 곧이어 본격적으로 시가 시작되기 바로 전에, 그의 선생님 뒤에 숨습니다.
“나의 존경하는 선생님 에즈라 파운드에게 이 시를 바칩니다!”
얼마나 영리한지요? 아니면 바로 그 선생님이 기진한 제자를 또 다른 시로 감싸주었는지? 저는 독자이니 아무래도 좋습니다.
총 5장으로 나뉘어 구성된 이 장편서사시의 제1장은 ‘죽은 자의 매장(The Burial of the Dead)’으로 시작됩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한창 멋 부릴 나이에 이 시를 만난 저는 첫 문장부터 긴장하며 오랫동안 난해한 문장들과 씨름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혼자 웃음이 나옵니다. 우선 너무 생소한 고유명사 밑에 깔린 고전, 그리고 숨겨진 신화를 찾아보느라 표를 만들었습니다. 본문보다 훨씬 더 긴 표에 또 꼬리를 이리저리 달아야 했습니다. 당시는 전자정보는 말할 것도 없고, 복사기도 없던 때라 도서관에서 일일이 사전으로 시작해 연결된 내용을 인덱스카드에 한 자 한 자 적어, 이리저리 붙이고 떼면서 생각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지난 3월호 칼럼과 이번 4월호는 이어집니다. 거기선 몽골 평원에서 인문이란 아름다운 무늬가 푸른 하늘로 경쾌하게 피어오르는 생명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우리 인간끼리의 사랑을 넘어 가축을 아끼는 몽골 유목민의 평범함이 제게는 큰 울림이었습니다. 그 후에 이어지는 본격적인 이야기로 이어가고 싶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 4월호에는 세상을 흔들어놓은 서양 시인의 봄비로 시작되는 4월의 황무지 이야기입니다. 물론 몽골이란 특별한 지역에서 생각하는 4월은 좀 다를 것입니다.
여기 몽골에선 정말 다른 나라에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4월이면 아직 오지 않은 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 시인은 겨울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앙망하는 봄의 햇살도, 꽁꽁 언 대지를 녹이고 깨우는 봄비도 잔인하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봄과 겨울을 잉태한 시간과 공간 그 자체마저 하나하나 드러내 기대할 것이 없다고 조목조목 발가벗겨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 시를 읽다 보면 숨을 쉴 때마다 시인의 표현대로 가는 재가 끝없이 허파로 들어오는 공포를 체험하게 됩니다. 더구나 그 재는 내 몸을 두꺼비 집처럼 뒤덮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자도 시간이란 절망의 무섭고 처량한 모양으로 길게 바뀌어 우리들을 제압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도 메아리 없는 독백으로 바뀌고, 별들의 질서도 어느새 혼돈일 뿐입니다. 또 그가 인용한 다른 서양 시인의 지옥보다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단계인 연옥과 천국을 볼 수 있다는 간접적 희망도 무참히 포기시켜버리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많은 황·무·지를 보게 하지만 남자도 여자도 다 겪은 눈먼 노인 테이레시아스의 영안(靈眼) 앞에서 전 아예 길을 잃었습니다. 꼭 붙잡고 있던 마지막 도피처인 상상(想像)도 무너트립니다. 비를 거느린 천둥의 말과 큰 희망인 또 한 사람의 빛마저!
주라! 해도 숫자를 헤아리고 있는 나.
공감하라! 해도 경계를 지우고 있는 나.
자제하라! 해도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있는 나.
그래도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해변 기슭에 앉아 시인은 낚시질을 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립니다.
“내가 앉아 있는 주변 땅이라도 깨끗이 해야 하지 않을까?”
거미줄에 맺힌 아침이슬처럼 그의 독백은 위태롭지만 영롱합니다. 그 시인이 땅에 묻힌 지 반세기, 시를 발표한 지 한 세기가 다 되었습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어 있던 땅과 나무들을 녹이는 햇살과 봄비를 잔인하다고 선언한 이후 세상은 그 시인의 바람과는 달리 정말 황무지가 되는가! 했습니다. 그래도 봄이면 여전히 햇살과 봄비는 세상을 감싸 안고, 그가 잠든 땅을 녹이고, 잠든 나무를 깨웁니다. 그리고 단단한 가지를 뚫고 목련은 피었습니다. 또 그토록 그 시인이 듣고 싶어 했던 물소리는 아직 그 혼탁함과는 상관없이, 어디서나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다른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함철훈(咸喆勳) >>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Gems of Central Asia’,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Quando il Vento incontra l’Acqua’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대상 수상. 저서로 ‘보이지 않는 손’, ‘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 등이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 세미나실에서 ‘생각의 깊이 사진으로 더하다’라는 제목으로 달을 넘기며 강의한 내용이 ‘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이란 책으로 출간되었다. 나는 출판사에서 제안한 인문학이란 단어에 손사래를 쳤다. 솔직히 부담스런 제목이었다. 그런데 몽골에서 다시 인문학을 꺼내 들 일이 생겼다. 아직 추운 몽골 봄 평원에서 인문이란 단어가 푸른 하늘로 경쾌하게 피어났다.
사진기를 들고 며칠째 몽골의 부자를 따라다녔다. 국어사전에 정의된 부자란 재물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요즘 재물의 척도는 물론 돈이다. 그러나 내가 만난 몽골 부자는 양과 약대를 많이 치고 있는 사람이며, 몽골 정부로부터 ‘새끼 잘 키우는 목자 상’을 받은 사람이다. 난 이 부자를 만나기 위해 우리에게 길을 안내한 마을 공무원과 경찰까지도 애를 먹였다. 몽골 거부라는 그의 권위 때문이 아니라 떠돌아다녀야 하는 그의 일 때문에 그들을 찾기가 참 힘들었다.
어렵게 그들을 만난 후 내게는 부자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 유목민에게는 자기가 키우는 생명의 수를 늘리는 것이 목표이지만 돌보는 가축이 많아질수록 생활은 고단하고 삶은 바빠진다. 유목민이란 시장에서 사료를 사다 먹이는 목축업자가 아니라, 자기 가축을 위해 날마다 신선한 목초와 물을 찾아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목자가 거느리는 가축의 수가 늘수록 다른 이웃 유목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더 먼 변두리 지역으로 떠돌아다녀야 한다. 그래서 내가 만난 몽골 유목민 부자는 아주 단출한 집 한 채만 갖고 있었고, 살림살이에도 사치가 없었다. 좋은 옷을 입고 누구에게 자신의 부를 뽐낼 일도 없다. 몽골 유목민의 삶을 지켜보는 것은 부자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일깨우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른 봄, 마침 가축들이 새끼를 낳을 때였다. 그의 가족들은 벌판 여기저기에 낳은 새끼들을 가죽 부대에 담아오기 바빴다. 목자가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갓 태어난 새끼들은 늑대에게 잡혀 먹히고, 추위와 바람에 얼어 죽기 때문에 목자의 식구들은 말과 오토바이를 이용해 생명과 시간을 최대한 아꼈다.
부지런히 새 생명을 거두고, 종일 그런 어미들을 배부르게 먹이기 위해 그나마 나은 초장을 찾아다니다 날이 저물어 양과 염소를 몰고 돌아온 몽골 부자 바뜨비앙의 얼굴에는 오늘도 지친 기색이 없다. 어린 생명이 가여워 이처럼 그들을 하루하루 돌보다 보니 어느 날 번성해 떼를 이루었단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는 일이 보람 있고 재미있어 매 순간이 행복하고, 우러나 하는 일이기에 자유롭다고 한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바뜨비앙의 아이들은 어린 양과 염소들을 한 마리씩 들어보고 어미가 기다리고 있을 우리 방향으로 던져준다. 새끼들에게 들볶이지 않고 잠을 잘 잔 어미들이 젖을 줄 시간이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엔 그 녀석이 그 녀석 같은 어린 양과 염소들의 어미를 분별하는 아이들의 눈썰미가 감탄스러울 뿐이다.
학교에서 배운 인문학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우스’에서 시작한다. 그 얘기 중 전쟁을 마치고 귀향길에 하데스로 내려간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었던 전우 아킬레스에게 반가운 인사를 하자 대답하는 말의 의미가 심장하다.
“죽음에 대해 내게 그럴싸하게 위로하지 마시오, 내가 여기서 죽은 자들을 지배하고 있지만, 차라리 재산도, 이름도 없는 사람 밑에서 품이라도 팔며 살고 싶소!”
죽음의 위력에 굴복해 살고 있는 당시 사람들을 일깨우는 호메로스의 위대함이 그 말에 있다. 사고의 전환을 선언하는 서양의 첫 서사시는 그렇게 열린다. 결국 생명! 특히 인생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것에서 인문학은 방향을 잡는다.
몽골에서 가장 약대와 양이 많다는 몽골 부자의 아이들은 막상 사설학원에 갈 시간도, 부자 부모의 돈을 쓸 시간도 없다.
저만치 떨어져 막 태어난 양과 염소를 돌보면서 바뜨비앙 부부가 아이들에게 외친다.
“누가 어미인지 잘 모르겠거든 아빠 엄마에게 물어봐라!”
아직 추운 중앙아시아 너른 봄 평원에서 사람의 무늬[人文]가 푸른 하늘을 채우고 있다.
함철훈(咸喆勳) >>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Gems of Central Asia',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Quando il Vento incontra l’Acqua'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대상 수상. 저서로 '보이지 않는 손', '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 등이 있다.
사진 촬영을 명령받을 때가 있다. 내 스스로 정한 곳이 아니라, 소속된 조직으로부터 다녀와야 하는 지역과 대상이 정해질 때다. 프놈펜에서 메콩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보트 길이 주어졌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보호해줄 수 없습니다.”
그동안 함께 지냈던 유엔 요원들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채 나를 떠나보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멈추면 절대 안 됩니다. 만약 보트 엔진이 꺼지면 침입자로 오인받아 게릴라들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나를 태운 보트는 두 대의 엔진을 가동하면서 만약을 위해 중간중간 연료를 채워 넣어야 했다. 막무가내인 엔진 소음도 투명한 긴장을 깨진 못했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물이 얕아지더니 구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심한 진동이 일었다. 프놈펜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 반쯤 지났을 때다. 보트가 바닥을 긁고 있었다. 좁고 얕아진 물길에서 배의 프로펠러는 물이 아니라 모래를 밀어내며 탱크처럼 움직였다. 한동안을 그렇게 가면서도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제야 유엔 요원이 들려준 주의사항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우리가 엔진을 멈추는 게 아니라 엔진이 멈추지 않기를 바라야 했다.
마침내 그 고비를 넘기자 거대한 호수가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목적지에 닿은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톤네샵 호수는 장관이었다. 두 시간 동안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소음으로 피곤해진 귀가 놀랐다. 고요함. 너무 조용해도 반응하는 것을 보면 귀도 상대적인 감각기관인가보다. 어디 귀뿐인가. 눈과 코가 열렸다. 피부도 긴장해 소름이 돋았다. 호수의 엄청난 크기와 고요 앞에서 나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 메콩 강을 거슬러 올라오며 내가 느낀 긴장감과는 아무 상관없이 평화로운 기운으로 가득했다. 극적인 반전이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다. 오감을 되찾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에 내가 보여주고 싶은 사진은 나에게 주어진 다큐멘터리 취재 사진이 아니다. 거기 살고 있는 순박한 사람들을 감싸고 안아주는 구름과 하늘빛이다. 부드러운 메시지는 긴박한 현장 고발 사진보다 더 강했다. 거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물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을 난 거기서 알았다. 눈에 보이는 평화와 낭만과는 다른 현실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바람과 물 그리고 구름들로부터 위로받고 있었다. 호수 위로 바람이 불자 새들이 날았고, 사람들은 곧 있을 비바람에 대처하기 위해 지붕으로 올라갔다. 여자아이 둘이 아버지를 따라 지붕에 올라가 노는 모습이 뷰파인더에 잡혔다. 아이들은 지는 해를 배경으로 팔을 들어올렸다. 아이들의 겨드랑이 사이로 조금 더 빨라진 호수의 바람이 지나갔다. 바람과 노는 아이들. 이들이 과연 어른들의 싸움에 휘둘리는 아이들인가? 불안으로 가득한 이 땅에서 누가 그들에게 평화를 가르쳤을까?
비 내린 다음 날 하늘은 맑았고 호수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다시 무더운 오후가 되자 그 얕은 평화 위에 빗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서너 명의 아이들은 벌써 연잎 하나를 꺾어 머리 위에 썼다. 물에 들락거리느라 벌거벗은 아이들은, 젖는다는 기준으로 보면 연잎 우산을 쓰나 안 쓰나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이것은 아이들의 유희다. 세상의 아이콘이다. 자연과 함께 노는 아이들의 방식이다.
톤네샵이 준 선물. 사진을 찍을수록 나의 카메라가 그 선물을 담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더라도 아이들에게서 바람과 비와 나무의 소리를 빼앗고 그 대용물로 장난감과 전자게임기를 건네준 사람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이 얼마나 큰 차이인지, 웃는 웃음 지키기와 빼앗긴 웃음 뒤에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몇 배의 돈이 드는지 나는 사진으로 전해야 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 난감해 있는 내게, 연어 빛으로 물들어가는 톤네샵 구름이 보이지 않는 위로의 손이 되었다.
함철훈(咸喆勳) >>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Gems of Central Asia',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Quando il Vento incontra l’Acqua'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대상 수상. 저서로 '보이지 않는 손', '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 등이 있다.
지난 호에 이어 또 꽃 타령이다. 해가 새로 바뀌었는데도 꽃 얘기를 멈추기가 쉽지 않다. 아내에게 배운 삶의 현장에서 꽃이 내 생각을 바꾼 한 예다.
아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꽃을 사왔다. 채 일주일이 못 가는 꽃을 사고 또 사는 아내가 신기했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도,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어느 도시에서든 아내는 좋은 꽃시장을 잘도 찾아냈다. 어떤 때는 그곳이 농부들의 시장이기도 했고, 꽃이 귀한 몽골에선 들에 나가 에델바이스를 모아오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힘든 일을 겪을 때도, 눈앞의 근심이 클 때도, 꽃 한 다발 안으면 그때만은 아내의 얼굴에서 걱정이 사라졌다. 지나고 보니 아내는 힘들 때일수록 꽃을 더 가까이했다. 덕분에 나도 시나브로 꽃을 자주 대하게 되었다.
그렇게 끊이지 않는 아내의 꽃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나는 다른 세상을 발견했다.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던 꽃을 찍기 시작하면서 특별히 접사 렌즈로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 아내가 꽃을 집에 유별나게 들여놓지 않았다면, 또는 내가 사진을 하지 않았다면, 나에게 꽃을 찬찬히 관찰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꽃을 보면서 감동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 사진에 그렇게 꽃의 색이 스며들었다.
렌즈를 통해 아내가 매주 바꿔 담는 꽃을 보면서 나는 차츰 마음이 움직였다. 탐라수국과 로단테를 만나고 나서는 내 눈과 생각이 결정적으로 바뀌었다. 어떤 꽃이 더 아름답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꽃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만을 위해 존재하는 색과 형태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맨눈으로 보면 꽃은 익숙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다양한 렌즈를 통해 더 가까이 꽃을 보면, 익숙한 꽃이 추상의 피사체로 바뀌는 현장도 보게 된다. 꽃은 왜 이리 연약한 모습이며, 반투명한 꽃잎은 어찌 이리 오묘한 색을 갖고 있는가? 관찰이 깊어질수록 생각도 더해지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각각의 꽃은 그 아름다움으로 이 세상에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꽃뿐만이 아니다. 만물도 모두 각자 존재 이유를 갖고 있으며, 또한 서로 다른 모양과 색을 갖고 있다. 통찰력이 생기고 추상의 세계가 열리면, 이윽고 꽃을 통해 사람도 보인다. 이쯤에서 박완서의 소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오만가지 화초 중에서 으뜸가는 화초는 인화초(人花草)라던가?”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람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는 말이다. 인화초는 특히 해맑은 웃음을 짓는 아기들을 비유할 때 많이 쓰인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 보호해주고 돌봐줘야 하는 존재이지만, 그 미소만으로 모든 고생이 치유되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마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속에 나오는 왕자와 장미처럼 말이다.
최근에는 나도 종종 꽃을 산다. 우러나서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빚을 갚는 마음으로 사는 경우가 더 많은 걸 보니 여성의 본능적인 꽃 사랑, 생명 사랑에 다다르려면 그 거리는 아직 멀었다. 아내가 평생 꽃을 산 것은 꽃 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스스로에게 선물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처음 해보는 아내 역할, 며느리 역할, 엄마 역할을 잘해내어서, 그리고 이젠 시어미와 할미 역할을 잘해내는 자신이 기특해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스스로에게 주고 싶었단다. 오늘이라도 아내와 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 주일을 미리 축하하는 꽃을 선물해야겠다. 2018년 새해 새 달의 매혹적인 선물을 독자들에게도 전한다.
“아직도 꽃 타령이냐?”
허물없는 친구들에게 자주 듣는 말입니다. 그 난감한 질문에 이젠 저도 어렵지 않게 되묻습니다.
“꽃이 뭔지 알아?”
사진을 하면서 누구 못지않게 꽃을 대할 기회가 많았기에 대답합니다.
꽃은 만날수록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겠습니다. 가까이 볼수록 감탄이 커집니다. 처음에는 그저 유명하고 낯익은 꽃에 눈이 갔습니다. 차츰 스쳐 지나며 보잘것없다고 치부했던 꽃들의 단순함과 섬세함에 놀라고, 독특함에 놀라고, 거리와 각도에 따라 새롭게 드러나는 면의 깊이가 선으로 모이고 응축되어 점점으로 흩어지듯 다시 이어짐에 놀랍니다.
하나일 때도 있지만 둘, 셋이 모여 다시 수십, 수백, 천으로 이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도 한 송이, 송이송이 여러 송이마다 다릅니다. 바람에 따라 흔들림이 또 그 군락의 아름다움에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조합으로 색이 빛을 만들어냅니다. 이번 홍콩 전시에서도 꽃 사진이 꽤 많았습니다. 홍콩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전시(風流 ‘Pung Ryu’ HK Ⅱ)라서 더 긴장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전시장(HONG KONG VISUAL ART CENTER)을 관리하는 직원으로부터 좋은 말을 꽤 많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관람객 수를 점검하는 직원은 ‘날이 갈수록 방문객이 늘어나 결국 천 명을 넘었다’고 자부심을 전해주었으며, 수석 큐레이터는 “작년에 이어 수준 높은 전시에 감동했다”며 “앞으로 계속 관계를 갖자”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좋은 일은 작품이 작년보다 더 많이 팔렸으며, 더 다양한 나라로 보내졌다는 것입니다.
이번 전시 초대 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습니다. 휘몰아치는 바람을 보았고, 모이고 흩어지는 물방울을 보았습니다. 기쁨을 보았고 각각의 색이 우렁차게 외치는 소리를 보았습니다. 말로 전달할 수 없는 그 모든 것, 빛과 소리와 향기를 우리는 사진에 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멈추어 있는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이 살아 움직였습니다. 평면인 사진 속에 공간이 스스로를 명확히 드러냈습니다. 과거에 찍은 사진 속에 현재가 흐르고 있었고, 그 안에 사진을 찍은 내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말로 설명을 해도 충분히 전달할 수 없어서 전시회를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느낀 놀라움을 이제 세상과 함께 나누려 합니다.
어느 때부터인지 꽃은 제게 더 이상 구상도 아니고 더더구나 정물도 아닙니다. 요즘 제게 꽃은 하늘의 아름다움과 비밀을 짐작해보는 단초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이건 꽃받침이고, 수술이며, 줄기이고, 턱이며, 영양분을 나르는 동물의 핏줄과 같은 맥이 그물 망사 같은 것도 있고, 서로 평행으로 나란한 것도 있어 그물맥과 나란히 맥으로 구분한다는 생물 시험의 답안지가 아직 기억나지만, 꽃마다 잎마다 왜 그런 오묘한 색을 띠고 있는지, 꽃을 보면 볼수록 점점 더 모르겠습니다.
꽃들마다 갖고 있는 서로 다른 선들의 부드러움과 반투명한 질감, 그리고 시시각각 바뀌는 색들의 변화를 카메라의 렌즈로 들여다보고 있는 그 자체가 경이입니다. 셔터를 누름으로 작품이 된다는 것마저 잊어버리게 됩니다.
꽃의 이름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카메라에 아름다움을 찾아 담겠다는 나의 욕심을 놓치고 창조주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 때입니다. 그때 꽃은 창조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이어주고 이끌어주는 질서이기도 하고, 혼돈임을 보여줍니다.
어느 꽃에서도 아름다움의 아르케를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성들은 어떻게 이런 과정 없이 꽃을 잘 알고 있는지 그게 제겐 신비입니다.
아내는 새로 이사 갈 집의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뷰(view),
둘째: 좋은 전망,
셋째: 뷰!
집에 대한 아내의 이러한 확고한 생각이 여기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갖게 했다. 이사를 결단하게 된 이유는 더 이상 이사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서울에서 몽골까지 산 넘고 바다 건너온 거리가 얼마인데 그 짐을 다시 싸야 하다니…. 나보다 아내의 부담이 훨씬 클 것이다. 그런데 집주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장 약한 곳을 건드린다. 게다가 계약할 때마다 매번 세를 올린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그렇지 않아도 낯선 외국생활 채 익기도 전에 좌초되겠다 싶어 ‘다시는 이사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마음잡고 결단했다. 더구나 서울과 비교해 몽골 생활이 갖고 있는 좋은 점은 멋진 풍광!
셋집이 아니라 아예 새로 분양하는 전망 좋은 곳을 큰맘 먹고 먼저 찾아보았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소위 말하는 로열층! 그런데 이게 무슨 계산법인가? 모든 층이 방향과 관계없이 오직 면적에 의해서만 단가가 설정되어 있지 않은가? 몽골은 참 이상한 나라다. 그렇게 우린 아내의 바람대로 전망 좋은 집을 얻게 되었다.
지금도 눈앞에 펼쳐진 멋진 산을 배경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구름! 시시각각 넓은 하늘을 가득 채우는 빛의 향연에 감동하고 있다. 그렇게 창문 넘어 변하는 풍광에 얼마 전 홍콩 출장에서 촬영한 사진이 겹쳐진다. 사람들이 대부분 잠든 시간. 홍콩 타이쿠싱 뒷산 마운틴 버틀러에 제자들과 함께 올랐다. 산이 높아지고 경사가 가팔라질수록 건물들이 깊은 어둠 속에 쭈삣 드러났다. 인공 불빛의 디테일이 선명하다. 산을 오르는 목적 자체가 사진 촬영을 위한 것이다 보니, 보이는 것들을 사진기의 눈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우리들이 마치 거대한 사진기 안으로 조금씩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잠시 멈춰 먼 야경을 맨눈으로 내려다보니 얼마 전 문체·외통·지경부와 중앙일보 주최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초대전을 준비할 때, 전시할 공간을 의논하기 위해 관계자들과 만났을 때와 흡사하다. 박물관 직원이 컨트롤 타워와 워키토키로 교신을 하며 예정된 전시장 문의 암호와 스위치를 조작하니 둔탁하게 느껴질 만큼 커다랗고 두꺼운 쇠문이 서서히 올라가며 공간이 열렸다. 바로 그때 지금과 같이 우리들이 커다란 사진기 앞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내등을 켜기 전 가물한 전시장의 크기가 가늠되지 않았다. 막상 문턱을 넘어 들어서니, 조금 전에 커다랗고 육중하게 보이던 문과 사람들이 갑자기 작게 느껴졌다. 방 끝이 보이지 않는 막연한 사각형 공간이 더욱 사진기 안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우리가 거인국의 사진기 안으로 들어와 두리번거리고 있는 듯하다’라는 신드바드의 얘기를 아내에게 했다. 그때 전시의 큐레이팅을 맡게 된 아내는 전시장 입구를 바늘구멍으로, 작품 설치를 맺힌 상으로, 전시장 밖에서 우리가 촬영해온 중앙아시아 나라들의 풍광을 서브제로 구성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홍콩의 야경이 그때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걸린 작품의 오브제 같았고, 산을 오를수록 작품 앞에서 눈을 떼지 않고 뒤로 물러서며 원근감의 각도를 확인하고 있는 듯했다.
사진은 그렇게 빈 공간에서 시작된다. 그 어둠상자에 만들어진 빛의 통로를 이용해 원하는 이미지가 잘 드러나도록 거리를 맞추고 또한 빛의 양을 조절한다. 그리고 셔터스피드와 조리개 값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이 섞이고 호환된다. 그런 이론의 변수를 잠시 내려놓으면 사진의 힘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발휘된다. 사실 사진기라고 불리는 ‘카메라’의 어원은 ‘비어 있는 방’이다.
사진기에 맺히는 영상과 산 위에서 촬영한 홍콩의 야경, 지금 내 집의 창을 통해 보고 있는 구름, 그리고 용산전시장의 중앙아시아의 풍광들이 서로 엇갈려 겹쳐진다. 한쪽은 일정한 비율로 축소되었고, 다른 편은 빛을 모으고 모아 작은 점을 통과시켜 얻은 좌우상하가 바뀐 이미지들이다. 하나는 창을 통해 보이는 세상이고 다른 하나는 사진기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 둘이 마치 같은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에 소실점을 통과했나 안 했나의 차이가 엄연하다.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밝은 곳의 축소된 세상이라면, 사진은 렌즈로 수렴시킨 점을 통과시켜 어두운 사진기 안에 거꾸로 맺힌 필름에 담아낸 상인 것이다.
함철훈(咸喆勳) >>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대상 수상. 저서로 , 등이 있다.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이사 가는 것과 삶의 터전을 아예 다른 나라로 옮기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 트렁크에 짐을 꾸려 잠시 출장을 간다든가,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경우는 돌아올 집과 살림살이를 놔두고 그야말로 다녀온다는 의미이지만, 아내와 함께 전혀 생소한 이국땅으로의 이주는 확실히 다르다. 집도 가구도, 집안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던 물건과 날마다 타고 다니던 자동차마저 정리한다는 뜻이다. 주위 사람들과 작별인사도 나누어야 한다. 무엇보다 날마다 밟고 다니던 땅과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던 하늘과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공기와 작별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살 깊게 몸을 의탁했던 집도 정리하고, 지인들에게 나누어줄 가구와 컨테이너에 실어 보낼 살림살이를 구분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몽골국제대학교에서 일하며 살기 위해 그나마 익숙해진 고국을 떠났다.
그렇게 고국을 떠나 몽골에서 몇 년을 지내며 나의 자세도 바뀌었다. 잠시 이국적인 환경을 겪다가 내 나라와 내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우리의 몸과 마음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돌아가는 세상을 이방인으로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로 바뀌려는 움직임이 느껴진 것이다. 그런데 바뀌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고, 생각과 몸도 적응해야 할 매체와 환경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 부부에겐 하늘이고 빛인가보다.
요즘 잠에서 깨어나 무슨 생각이 들기 전, 창을 통해 보이는 하늘빛으로 날마다 행복하다. 사람이 태어나 세상과 만나는 첫 충격이 빛이라 했던가? 그렇게 만난 빛으로 날마다 하루를 시작하는 게 나의 일상이다. 하루의 모든 계획에 앞서 내 눈에 들어와 펼쳐지는 하늘에 감동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아내도 그 하늘을 보고 있었다. 몽골에서 우리 부부는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침대에서 보이는 하늘 때문이다.
내친김에 더 추워지기 전 풍성한 몽골의 숲에 들어가자고 했다. 거기서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빛과 공기에 흠뻑 젖고 싶었다. 개울 옆에 자리를 깔고 텐트도 쳤다. 그래봐야 집에서 15분 거리도 안 되는 마을 뒷산이다. 청명한 공기 속에 새소리와 개울 물소리가 구별 없이 어울리며 섞인다.
아내는 따뜻한 물과 좋아하는 작가 폴 오스터와 김연수의 책을 안고 왔다. 푹신하고 부드럽게 바닥에 깔아놓은 작은 텐트 안에서 그 책들을 아끼며 보고 또 보고 있다. 충분히 행복한 얼굴이다. 이럴 땐 방해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난 아내와 떨어져 낮은 구릉에 오른다. 아직 울창한 숲과 풀들 사이로 에델바이스가 지천이다. 돌바기 손녀 ‘셀라’를 얘기하기 좋은 꽃이다. 그 꽃에는 셀라의 웃음소리, 새근거리는 숨소리, 그럴 때마다 맡아지는 젖내와 말랑한 살이 연상되는 솜털이 소복하다. 그런데 작년에 비해 키가 작다. 에델바이스뿐 아니라 풀들이 모두 여위었다. 평년에 비해 비가 많이 왔는데도 초원이 풍성하지 않다. 몽골 초원의 풍성함은 전체 강수량보다 비가 온 시기에 좌우된다. 엄밀히 나담(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매년 7월에 열리는 몽골 최대의 민속 축제이자 스포츠 축제)을 기준으로 나뉜다. 즉 7월 전에 오는 비라야 몽골을 풍성하게 하고 그 후 8월과 9월의 비는 오히려 수확에 방해가 된다. 나담 후에는 촉촉한 초원에 해가 쨍쨍하게 비춰줘야 모든 곡물이 익기 때문이다. 그 시기가 어그러져 강수량이 많았음에도 올해 밀 값이 벌써 올랐다.
흐르는 개울물을 먹으려고 쌍봉낙타와 말이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모습은 마치 손녀의 사랑을 받으려는 우리 부부의 모습과 같다. 낙타와 말도 한껏 숲에 안긴다.
훌쩍! 놀란 새가 푸드덕 솟아오른다. 곧 닥칠 겨울을 준비하던 새는 혼자 놀라 부산하다.
더 추워지기 전에 몇 번 더 와야겠다.
함철훈(咸喆勳)>>
사진가· 몽골국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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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대상 수상. 저서로 , 등이 있다.
울란바토르 남쪽 톨 강 자이슨 지역의 복두한산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전형적인 동양 문양의 작은 구름 몇 조각이 떠 있다. 그리고 며칠 전 몽골의 바이칼–홉스굴 호수가 보고 싶다는 손님들과 30시간 여 오가는 길 내내 다양한 구름과 비를 만났다. 다시 말해도 몽골의 하늘은 보면 볼수록, 거기 떠 있는 구름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 멋과 풍이 깊어진다. 지금 차창 너머로 보이는 구름도 한눈에 담지 못할 정도로 웅장하며, 그 깊이 또한 여러 층이다. 색과 채도마저 없는 무채색의 농담만으로도 저토록 다양한 깊이를 보일 만큼 듬직하고 깊숙하다.
새벽 해뜨기 전 울란바토르를 출발, 구불렁 고불랑 울퉁불퉁 홉스굴에 닿으니 밤이다. 배정된 게르에 짐을 풀고 동이 트는 아침을 맞았다. 밤에 가늠되지 않던 호수가 하늘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잘못 보았을까? 호수가 아니다. 하늘이다. 위와 아래로 막연히 갈라진 두 하늘이 하나다. 차이가 있다면 아래 하늘빛이 더 짙고 깊다. 그 두 하늘이 한동안 갈리며 열리더니 위아래의 경계가 흐려지듯 서서히 한 덩이가 된다. 게르에 누워도 천장이 하늘이고, 문을 열어도 하늘이다. 경상남도 크기라는 홉스굴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피부로 느껴진다. 호숫가에 닿으니 온통 하늘이고 구름이니 어찌 하늘과 구름의 에스프리를 얘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하늘과 구름에 빠지지 않으리오? 특별히, 보이는 아름다움으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사진가라면….
하늘 넓은 몽골에 산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구름 따라 흐르는 의식을 감당하기 어렵다. 차라리 나도 흐른다. 몽골국제대학교에서 사진 강의를 하면서 구름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몽골에 오기 전에도 내 사진 강의 목록에는 ‘구름은 언제나 완벽한 균형’, ‘구름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추상과 구름’, 그리고 ‘보들레르의 이방인’이 있었다.
내게 사진을 배운 아내는 미국에서 구름 사진만으로 개인전을 했다. 요즘 우리 부부의 몽골 생활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 창조주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위해 숨겨놓은 여러 장치 중 구름이 단연 최고다. 특별히 아름다움을 찾는 일을 제일로 하는 사람 예술가, 그중에서도 시각 예술가를 위한 최고의 교재는 구름이다. 아름다움에 빠져 아름다움을 탐닉했다는 보들레르는 자기의 부모나 친구… 세상 모든 것들과 비교하며 그의 시 ‘이방인(L′étranger)’에서 노래한다.
… 그래?
그럼 어디에 네 마음이 있니?
내가 사랑하는 것은 저 구름들이야
저 아름다운 구름을 흘러가는 저기 저 구름들을!
풍요로운 뭉게구름, 작은 구름덩이 보래구름, 빛이 닿아 투명해진 구름과 마구 색을 섞어버린 불꽃구름, 한 조각의 떠도는 구름, 쫓고 쫓기는 큰 짐승과 같은 구름, 숨 가쁘게 달려가 자취를 남기지 않는 구름, 밤하늘의 구름, 그림자 같은 구름….
꿈결 같은 청자구름 문양이 휘영청 달항아리 아우라로 떴다.
함철훈(咸喆勳)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대상 수상. 저서로 , 등이 있다.
몽골 하늘은 끝 간 데 없이 둥글다. 난 몽골에 와서야 하늘이 둥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그냥 하늘이겠거니 하며 지나쳤다가 고개를 대강 한 바퀴 돌려봤다. 그런데 하늘은 그렇게 성의 없이 볼 대상이 아니었기에, 맘먹고 목에 힘을 줘 360도를 확인해보고 어지럼증에 초원 한복판에 등을 대고 누웠다. 이렇게 편히 하늘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펼쳐진 하늘에 구름! 아무리 봐도 멋지다. 보고 또 봐도 다시 보고 싶다. 이와 다른 구름에 대한 기억이 내겐 있다.
오래전 구름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살았기 때문이다. 처음 그곳에 가는 날 후배는 배웅을 나왔다가 굳이 버스를 함께 탔다. 마장동에서 탄 시외버스는 일동, 이동을 거쳐 화천, 화지리를 지나 다목리 종점에 이르렀고, 버스에서 내려 후배랑 헤어져 대성산을 오를 때까지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그렇게 구름 속에서 비를 맞으며 한 시간 넘게 걷다보니 안개와 구름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구름에서 안개로 다시 안개에서 구름으로 자리 바뀜을 몇 차례 혼돈하다 보면 언뜻언뜻 푸른 하늘이 스친다. 이내 그 하늘이 눈에 꽉 차며, 내 턱과 코 아래에서 흩어지며 휘날리는 구름이 보인다. 차츰 조금 더 멀리 멀리 시야가 트이고, 운해라는 말이 꼭 어울리는 구름바다를 뚫고 솟아난 봉우리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여기저기 보이는 거기부턴 다른 세상이다. 하늘빛이 다르고 해가 다르다. 마시는 공기의 밀도도 다르다. 내 발이 딛고 있는 능선만이 가늘게 이어진다. 저긴 아직 비가 내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뽀송뽀송한 날숨과 들숨이 다르게 거긴 지금 내 옷처럼 눅눅할 것이다.
며칠째 구름과 하늘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 바람의 변화와 물의 균형을 보여줬다. 그런 구름과 하늘의 조화에 내 생각과 기준이 흔들린다. 그리고 구름이 바람과 물임을 알게 되었다. 자기의 형태에 머무르지 않는 물과 바람의 조화가 새삼스럽다. 그런 구름에 비교해 표현할 말을 지금도 못 찾겠다. 그러던 날 아침, 바람소리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오성산이 보이는 북쪽에 가득한 구름이 내가 앉아 있는 능선을 경계로 남쪽 계곡을 타고 수십여 길이나 쏟아진다. 흩어져 내리던 구름이 주먹만 하게 손바닥만큼 저 아래 모이는 게 보인다. 소리까지 내며 쏟아지는 구름의 위세가 차츰 커진다. 구름이 만들어내는 폭포의 줄기도 이내 굵어진다. 손바닥만 하던 구름이 꾸역꾸역 모여 두 손을 가리고 몸을 가리고 마을을 가리고, 구름으로 차는 데 거의 반나절이 걸렸는데도 난 시장기를 느끼지 않았다.
세상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다니는 일이 직업인 사진가는 소문난 곳을 많이 방문하게 된다. 그렇게 특별한 사람과 문화가 있는 풍광을 사진기에 담기 위해 다닌 행로를 따라가 보니 세계 전도가 그려진 지 오래다. 그리고 이제 하늘이 보인다. 목적을 위해 여기저기 바쁘게 다닐 때도 수시로 하늘에 감동했지만 스쳐 지나가는 배경일 뿐이었다. 이제는 하늘과 구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 구름이 무엇을 닮아서 신기해하고 좋아했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그러나 이젠 무엇을 닮지 않아도 그냥 구름이 좋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어떤 극적인 색을 띠지 않아도 구름만으로 충분히 좋다.
그래서 최순우 선생님의 말이 번득 이해가 되었다.
모든 청자는 백자가 되고 싶은 꿈을 꾸었다.
>>함철훈(咸喆勳)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대상 수상. 저서로 ,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