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는 스틸 이미지가 흘러넘치고 여기저기서 사진 전시회가 열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직업상 사진에 대해 여러 질문을 받곤 합니다. 그중 저를 당황스럽게 하는 어려운 질문이 있습니다.
“좋은 사진이란 어떤 것입니까?”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강 답하기 어려운 구체적인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단순 명료한 질문을 받았을 땐 정신이 멍해집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공개된 장소일 경우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긴장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됩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대답할 시간을 이미 놓쳤다고 깨달았다면 그때라도 정신을 차리고 신속히 대답해야 합니다. 이럴 때 저는 평상시에 생각했던 답이 무의식중에 나옵니다.
“가족사진입니다.”
의외의 대답에 분위기마저 썰렁합니다. 그래서 굳이 설명을 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그동안 찍어왔던 가족들은 참 좋은 사진 소재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전시회의 작품보다 감동이 살아 있고 또한 눈에 잘 보입니다. 진정한 눈물과 웃음이 가족사진에는 잘 녹아 있습니다. 그런 진솔한 내용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구체적이고 절절한 장면을 꾸밈없이 가족이란 하나의 공통분모로 모아놓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진에는 분야가 많습니다. 그중 한 분야로 좋은 사진을 설명하기에 가족 앨범은 참 좋은 사진 장르입니다.
그렇게 가족사진을 제가 자신 있게 좋은 사진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할 수 있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습니다. 얼마 전 보게 된, 오빠를 바라보는 한 어린이의 표정 때문입니다.
세상의 얘기는 대부분 어른들의 입장에서 표현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서 세상을 이끌어가는 다른 방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무엇을 결정하고 영향을 미치기 전에 아가의 표정이 먼저 어른의 마음을 이끄는 주체가 되어 말없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어른을 쳐다보고 천진하게 웃는 아가가 짓는 표정은 정말 대단한 힘을 발휘합니다. 거기에는 모든 질서가 녹아 있습니다. 아기의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세 살 위의 개구쟁이 오빠도 꼼짝 못합니다. 아가의 표정 하나로 모든 질서가 세워집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선생!’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의 뜻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가 이 가족사진으로 깨우쳤습니다. 어른들을 말없이 교육시키는 아가의 얼굴입니다.
내가 잘 아는 아이입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네 살과 다섯 살인 오빠를 둔 한 살 반인 여자 아기가 이 사진의 주인공입니다. 아직 말도 못하고 잘 걷지도 못한 막내아이를 만나고 몽골로 돌아온 지 한 달이 되어 받은 사진입니다. 그 사이 막내둥이는 자기 맘대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걷는 재미를 알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 아이가 네 살배기 작은 오빠를 바라보는 눈길입니다. 작은 오빠도 그런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18개월배기 동생의 시도 때도 없는 무조건적인 참견에 꼼짝 못합니다.
선생은 무언가 귀한 가르침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내게 선생님은 나이 지긋한 분이었고 반듯한 어른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구체적인 선생을 이 사진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5월은 어린이와 가정의 달입니다. 지금까지 어른이 어린이를 위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권위와 베푸는 입장으로 생각했던 내 선입견이 바뀐 5월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어린이에게 어른이 배워야 하는 우러나는 아름다운 가치를 어른들과 나누고 싶은 5월입니다. 가치는 가만히 두어도 드러납니다. 어른에게 어린이의 이미지가 그렇습니다.
함철훈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Gems of Central Asia’,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Quando il Vento incontra l’Acqua’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대상 수상. 저서로 ‘보이지 않는 손’, ‘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