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는 왜 백자가 되는 꿈을 꾸었을까?

기사입력 2017-08-24 09:07 기사수정 2017-08-24 17:34

[함철훈의 사진 이야기]

(함철훈 사진가)
(함철훈 사진가)

울란바토르 남쪽 톨 강 자이슨 지역의 복두한산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전형적인 동양 문양의 작은 구름 몇 조각이 떠 있다. 그리고 며칠 전 몽골의 바이칼–홉스굴 호수가 보고 싶다는 손님들과 30시간 여 오가는 길 내내 다양한 구름과 비를 만났다. 다시 말해도 몽골의 하늘은 보면 볼수록, 거기 떠 있는 구름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 멋과 풍이 깊어진다. 지금 차창 너머로 보이는 구름도 한눈에 담지 못할 정도로 웅장하며, 그 깊이 또한 여러 층이다. 색과 채도마저 없는 무채색의 농담만으로도 저토록 다양한 깊이를 보일 만큼 듬직하고 깊숙하다.

새벽 해뜨기 전 울란바토르를 출발, 구불렁 고불랑 울퉁불퉁 홉스굴에 닿으니 밤이다. 배정된 게르에 짐을 풀고 동이 트는 아침을 맞았다. 밤에 가늠되지 않던 호수가 하늘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잘못 보았을까? 호수가 아니다. 하늘이다. 위와 아래로 막연히 갈라진 두 하늘이 하나다. 차이가 있다면 아래 하늘빛이 더 짙고 깊다. 그 두 하늘이 한동안 갈리며 열리더니 위아래의 경계가 흐려지듯 서서히 한 덩이가 된다. 게르에 누워도 천장이 하늘이고, 문을 열어도 하늘이다. 경상남도 크기라는 홉스굴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피부로 느껴진다. 호숫가에 닿으니 온통 하늘이고 구름이니 어찌 하늘과 구름의 에스프리를 얘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하늘과 구름에 빠지지 않으리오? 특별히, 보이는 아름다움으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사진가라면….

하늘 넓은 몽골에 산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구름 따라 흐르는 의식을 감당하기 어렵다. 차라리 나도 흐른다. 몽골국제대학교에서 사진 강의를 하면서 구름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몽골에 오기 전에도 내 사진 강의 목록에는 ‘구름은 언제나 완벽한 균형’, ‘구름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추상과 구름’, 그리고 ‘보들레르의 이방인’이 있었다.

내게 사진을 배운 아내는 미국에서 구름 사진만으로 개인전을 했다. 요즘 우리 부부의 몽골 생활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 창조주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위해 숨겨놓은 여러 장치 중 구름이 단연 최고다. 특별히 아름다움을 찾는 일을 제일로 하는 사람 예술가, 그중에서도 시각 예술가를 위한 최고의 교재는 구름이다. 아름다움에 빠져 아름다움을 탐닉했다는 보들레르는 자기의 부모나 친구… 세상 모든 것들과 비교하며 그의 시 ‘이방인(L′étranger)’에서 노래한다.


… 그래?

그럼 어디에 네 마음이 있니?

내가 사랑하는 것은 저 구름들이야


저 아름다운 구름을 흘러가는 저기 저 구름들을!

풍요로운 뭉게구름, 작은 구름덩이 보래구름, 빛이 닿아 투명해진 구름과 마구 색을 섞어버린 불꽃구름, 한 조각의 떠도는 구름, 쫓고 쫓기는 큰 짐승과 같은 구름, 숨 가쁘게 달려가 자취를 남기지 않는 구름, 밤하늘의 구름, 그림자 같은 구름….

꿈결 같은 청자구름 문양이 휘영청 달항아리 아우라로 떴다.


함철훈(咸喆勳)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대상 수상. 저서로 <보이지 않는 손>, <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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