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만나 호감이나 사랑을 느끼고 가정을 이루기로 결심한 후, 혼인신고를 하면 법률적으로 부부가 된다. 결혼식 같은 행사는 혼인 성립의 법률적 요건이 아니다.
[민법]
제812조(혼인의 성립)
①혼인은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정한 바에 의하여 신고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②전항의 신고는 당사자 쌍방과 성년자인 증인 2인의 연서한 서면으로 하여야 한다.
혼인 당사자가 시청, 군청, 구청 등 관할 관청에 가서 신고하고 수리되면 혼인의 효력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개입하지 않는다. 혼인의 해소 절차와 크게 다른 점이다.
혼인의 해소
혼인관계는 이혼, 혼인의 무효, 취소로 해소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녹녹지 않다.
가장 간단한 해소 형태는 미성년자 자녀가 없는 혼인 당사자가 협의로 이혼하는 경우다. 이 경우만 하더라도 부부는 가정법원 협의이혼의사확인 신청을 하고, 기일 지정을 기다려 법원의 사법보좌관(예전에는 판사가 담당했다) 앞에서 그 협의이혼 의사를 확인받아야 한다. 이혼 의사가 합치되지 않으면 재판상 이혼 청구, 즉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혼인의 무효, 취소도 법원의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처럼 혼인의 해소 과정에는 법원이 개입해서 그 요건이 성립되는지 살핀다. 혼인신고는 상대적으로 쉽지만, 해소는 어렵다. 혼인으로 형성된 가정의 현 상황, 법적 상태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일 것이다.
이혼하는 당사자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대방 배우자는 밉지만, 그 사이에 태어난 자녀는 너무도 소중해서 건강한 이혼을 하고 자녀가 자라는 데 아무 탈 없기만을 바라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러한 당사자조차 가능하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내면의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속아서 결혼했다. 이 사람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한탄은 이혼을 고려 중인 사람이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현재 없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혼인이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 민법은 마련해두고 있다. 혼인의 무효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민법]
제815조(혼인의 무효) 혼인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
1.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
2. 혼인이 제809조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한 때
3. 당사자 간에 직계인척관계(直系姻戚關係)가 있거나 있었던 때
4. 당사자 간에 양부모계의 직계혈족관계가 있었던 때
혼인의 무효
혼인의 무효는 혼인 성립 이전 단계에서 성립 요건의 흠결로 인해 혼인이 유효하게 성립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혼인의 취소는 혼인의 성립 과정에 어떠한 흠결이 있을 때 그 혼인의 효력을 장래를 향하여 소멸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처음부터 효력이 없는 혼인의 무효와 구별된다.
혼인이 무효가 되는 경우는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민법 제815조 제1호)와 당사자 간이 근친인 때(민법 제815조 제2 내지 4호)로 나눌 수 있다.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란 어떤 경우일까. 혼인의 합의란 당사자 사이에 부부관계로 인정되는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할 의사 및 법률상 유효한 혼인을 성립케 할 의사의 합치를 말한다.
혼인신고에 관한 형식적인 의사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질적인 혼인 의사가 없었다면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실무상 이 문제는 주로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의 혼인에서 피고가 처음부터 혼인할 의사 없이 단지 한국에 입국할 목적으로 형식적으로 혼인신고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원고가 혼인 무효를 구하는 사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혼인 의사는 혼인신고서가 수리될 때까지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혼인신고서 작성 후 제출 전에 한쪽이 혼인 의사를 철회했다면 혼인은 무효다.대법원 1983. 12. 27. 선고 83므28 판결) 또한 혼인식을 거행하고 사실혼관계에 있었으나 일방이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사이에 혼인신고가 이루어졌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혼인은 무효다.(대법원 1996. 6. 28. 선고 94므1089 판결)
혼인의 무효는 꼭 소송을 제기해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상 혼인 무효의 소를 제기함으써 이를 확인받는 절차를 거친다. 당사자, 법정대리인 또는 4촌 이내의 친족은 언제든지 혼인 무효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다만 이들은 별도의 소명이 없더라도 혼인 무효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그 외의 사람도 법률상 이익이 있다면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소를 제기할 때는 배우자가 상대방이 된다. 제3자가 제기할 때는 부부를 상대방으로 하고, 부부 중 일방이 사망한 때는 생존자를 상대방으로 한다. 상대방이 될 자가 사망한 때는 검사를 상대방으로 소를 제기할 수 있다.
가사소송 하면 흔히 조정을 떠올린다. 그러나 혼인 무효의 소는 조정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부부가 합심하여 이 결혼은 무효라고 외쳐도, 법원은 직권으로 사실조사 및 필요한 증거조사를 하여 무효 사유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한편 혼인신고는 당사자 쌍방과 성년자인 증인이 연서한 서면으로 해야 하지만, 신고 자체는 당사자 일방이 하더라도 가능하기 때문에 혼인 무효 소송에서는 상대방이 원고의 동의 없이 임의로 원고 명의의 혼인신고서를 작성한 다음 일방적으로 신고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신고자가 사문서위조죄나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이 있으면 원고의 주장을 인정할 유력한 증거자료가 될 것이다.
‘이혼’과 ‘혼인 무효’의 관계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해소되었다면 그 전의 혼인관계는 이미 과거의 일이 된다.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기도 바쁠 텐데, 이미 지나간 혼인관계가 무효인지 확인할 실익이 있을까.
과거 대법원은 ‘단순히 여자인 청구인이 혼인하였다가 이혼한 것처럼 호적상 기재되어 있어 불명예스럽다는 사유는 청구인의 현재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이혼신고로써 해소된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은 과거의 법률관계에 대한 확인이어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결하기도 했다.(대법원 1984. 2. 28. 선고 82므67 판결 등)
이와 관련해 최근 대법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위 과거 판결을 변경했다.
사례
- 혼인신고를 하여 법률상 부부였던 원·피고는 이혼조정이 성립함에 따라 이혼신고를 마쳤음. 원고는 혼인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 강박 상태에서 혼인에 관한 실질적 합의 없이 이 사건 혼인신고를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혼인 무효 확인을 구함.
- 원심은 혼인 무효 확인을 구하는 주위적 청구에 대하여는 ‘혼인관계가 이미 이혼신고로 해소되었다면 위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은 과거의 법률관계 확인으로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1984. 2. 28. 선고 82므67 판결을 인용하면서 원고와 피고 사이에 이미 이혼신고가 이루어졌고, 이 사건에서 원고의 현재 법률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어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 → 원고, 대법원에 상고
[대법원 2024. 5. 23. 선고 2020므15896 판결]
위 사안에서 대법원은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이미 해소되었더라도, 과거의 법률관계인 혼인관계 자체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편이 관련된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일 수 있으므로, 혼인관계가 이미 해소된 이후라고 하더라도 혼인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며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원고의 손을 들어 주었다.
대법원이 이와 같이 판결한 이유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효인 혼인과 이혼은 법적 효과가 다르다.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혼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척이거나 인척이었던 사람과의 혼인금지 규정(민법 제809조 제2항)이나 친족 사이에 발생한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 규정(형법 제328조 제1항 등)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반면 혼인관계가 이혼으로 해소되었더라도 그 효력은 장래에 대해서만 발생하므로 이혼 전에 혼인을 전제로 발생한 법률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예를 들어 이혼 전에 부부의 일방이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제3자와 법률행위를 한 경우 다른 일방은 이혼한 이후에도 그 채무에 대하여 연대책임을 부담할 수 있지만(민법 제832조), 혼인 무효 판결이 확정되면 제3자는 다른 배우자를 상대로 일상 가사 채무에 대한 연대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혼 이후에도 혼인관계가 무효임을 확인할 이익은 엄연히 존재한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회한에 대한 심리적 보상도 무시할 수 없다. 당사자의 실질적인 권리 구제에 한 걸음 다가간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다만 혼인 무효 소송을 함부로 제기할 것은 아니다. 실무상 혼인 무효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당사자 사이에 명시적인 혼인의 합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당사자가 사실혼관계에 있는 등 일정한 경우 그 혼인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비록 사실혼관계에 있는 당사자 일방이 혼인신고를 한 경우에도 상대방에게 혼인 의사가 결여되었다면 그 혼인은 무효다. 그러나 상대방의 혼인 의사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혼인의 관행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사실혼관계를 형성시킨 상대방의 행위에 기초하여 그 혼인 의사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으므로 이와 반대되는 사정, 즉 혼인 의사를 명백히 철회하였다거나 당사자 사이에 사실혼관계를 해소하기로 합의하였다는 등의 사정이 인정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혼인을 무효라고 할 수 없다고 대법원은 판결하기도 하였다.(대법원 2000. 4. 11. 선고 99므1329 판결 등).
가족관계에 대한 시각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1980년대 대법원 판결이 바뀌는 데 40년 넘게 걸렸다는 것만 보더라도, 삶에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 역시 진리다.
올해부터 혼인공제제도가 신설됐다. 자녀의 결혼 전후로 증여가 이루어지는 경우 최대 1억 원까지 추가 공제해준다. 인륜지대사인 결혼의 특성과 혼인 장려 등을 감안해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이다. 이처럼 결혼이나 이혼 등 혼인 생활과 관련해 종종 발생하는 세금 이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결혼 축의금이나 혼수용품은 증여세 부과 대상이 될까? 축의금은 말 그대로 축하의 뜻을 전하기 위한 것이고, 선물로서의 성격이 있다. 혼수용품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상속세 및 증여세법과 같은 법 시행령은 사회 통념상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축의금이나 혼수용품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 축의금에 대해 세금 신고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 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만 축의금이나 혼수용품이 지나치게 고가라면 증여세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축의금 중 결혼 당사자(신랑, 신부)와의 친분에 기초한 부분이 아닌 몫은 혼주인 부모에게 귀속된다고 본다. 따라서 부모에게 귀속되는 축의금을 부모가 자녀에게 무상으로 준다면 이것은 부모의 자산을 자녀에게 준 것이 되어, 증여세 과세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결혼과 세금
올해 신설된 혼인공제제도에 따르면, 직계존속으로부터 혼인신고일 전후 2년 이내에 증여받는 경우에는 기존의 증여재산 공제(직계존속으로부터 증여받는 경우 10년간 5000만 원)와 별개로 1억 원을 증여세 과세가액에서 공제한다. 자녀가 결혼할 때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제도를 잘 활용하면 세금을 아끼면서 자녀를 도와줄 수 있다. 공제한도액 1억 원은 직계존속 전부에 대한 액수이니, 직계존속별로 각각 1억 원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만약 각자 주택을 1채씩 소유한 두 사람이 결혼해서 1세대가 된다면(경제력이 상당하거나 재혼의 경우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1세대 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를 위해 혼인 전에 급히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결혼을 미루어야 할까? 무언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1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1주택을 보유한 다른 사람과 혼인함으로써 일시적으로 1세대 2주택이 되는 경우, 혼인일로부터 5년 이내에 먼저 양도하는 주택은 1세대 1주택 비과세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양도하는 주택에 대해 다른 비과세 요건(보유 기간, 거주 기간 등)은 갖추어야 한다.
혼인 생활 중 부부간 재산 이동
case 01
남편이 2006년 3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약 2년 8개월간 35회에 걸쳐 자기앞수표 입금이나 계좌이체 방법으로 전업주부인 부인의 계좌에 13억 원가량을 입금했다. 세무서는 2012년 5월 남편이 부인에게 증여했다는 이유로 세금을 부과했다.
위 사례에서 대법원은 2015년 9월 ‘부부 사이에서 일방 배우자 명의의 예금이 인출돼 상대방 배우자 명의의 예금계좌로 입금되는 경우에는 증여 외에도 단순한 공동생활의 편의, 일방 배우자 자금의 위탁 관리, 가족을 위한 생활비 지급 등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으므로, 예금 인출 및 입금 사실이 밝혀졌다는 사정만으로는 배우자에게 증여되었다는 과세 요건 사실이 추정된다고 할 수 없다’라며 증여세 부과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요즘 젊은 부부 사이에서는 각자 자신의 소득과 재산을 관리하면서 공통되는 생활비만 갹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은 부부가 경제적 공동체로서 공동생활 중에 형성한 재산을 명의에 관계없이 같이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위 판결은 이러한 부부 생활의 실상을 반영한 셈이다.
다만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부부 사이에 양도한 재산은 양도한 때에 배우자에게 증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외관상 양도의 형식을 빌려 증여가 아닌 것처럼 위장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부부 사이에서 양도가 있으면 해당 양도가 증여가 아니라는 점(대가를 받고 양도한 것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증빙할 필요가 있다. 법원의 결정으로 경매 절차에 따라 처분된 경우, 공매되거나 파산선고로 인해 처분된 경우, 증권시장을 통해 유가증권이 처분된 경우 역시 위 증여추정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한편 배우자에 대한 증여재산 공제액은 10년 기간 내에 6억 원이라는 점도 알아두면 유용하다.
이혼·사별과 세금
협의나 재판을 통해 이혼하면 위자료, 재산분할 문제가 통상 수반된다. 이혼 시 위자료란 혼인 생활의 파탄에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가 상대방 배우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이다. 따라서 위자료 지급은 유상으로 대가를 지급하는 것(채무를 변제하는 것)이니 증여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위자료를 지급받는 사람이 증여세를 부담하지 않는다. 다만 부동산 등 양도소득세, 취득세 과세 대상인 재산을 위자료 명목으로 넘겨줄 경우 유책 배우자는 위자료 채무를 대물변제(유상 양도)한 것이 되어 양도소득세를, 그 재산을 넘겨받는 배우자는 취득세를 부담하게 된다.
이혼 시 재산분할은 부부가 혼인 생활 동안 서로 협력하여 형성한 재산을 청산·분배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배우자 일방이 다른 배우자에게 재산을 넘겨준다고 하여 이를 매매·교환 등과 같은 양도나 무상의 재산 이전인 증여로 보는 것은 재산분할의 실질적 의미와는 동떨어진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재산분할에 대해서는 부부 쌍방에게 양도소득세나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다만 부동산 등 취득세 과세 대상인 재산을 재산분할 명목으로 넘겨받으면 취득세를 납부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도 저율의 특례세율이 적용된다.) 일방 배우자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는 경우, 즉 사별의 경우에는 배우자를 비롯한 상속인들에게 상속세가 부과되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혼인 생활 동안 함께 노력하여 재산을 형성했는데 일방 배우자가 사망했다고 하여, 남겨진 배우자에게 거액의 상속세를 부과한다면 법 감정에 어긋날 수 있다. 더구나 이혼과 사별이 세금 측면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면, 세법이 이혼을 권하는 꼴이 될 수도 있어 불합리할 수 있다. 이에 우리 법은 배우자 간 상속이 세대 간 이전이 아니라 수평적 이전이라는 특성을 감안하여, 배우자 상속공제제도를 두고 있다. 배우자 상속공제제도의 취지는 관계 법령에 따른 금액(최소 5억 원, 최대 30억 원)을 상속세 과세가액에서 공제함으로써 남겨진 배우자의 상속재산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고 생활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case 02
원고는 1982년 5월 망인과 혼인신고를 한 후 약 30년간 혼인 생활을 해왔다. 혼인 당시 망인은 전처와 사이에서 낳은 5명의 자녀가 있었고, 원고와 망인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2011년 3월 원고(당시 만 62세)는 망인(당시 만 82세)과 전처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과의 상속재산 분쟁을 피하고자 망인을 상대로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를 했다. 참고로 당시 망인의 재산은 100억 원이 넘었는데, 원고가 망인을 대신해 약 10년간 망인의 병원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재산 증식에 상당히 이바지한 상황이었다. 2011년 4월 ‘원고와 망인은 이혼하되, 망인이 원고에게 재산분할로 현금 10억 원을 지급하고 액면금 40억 원의 약속어음금 청구 채권을 양도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되어 그에 따라 현금 지급 등이 모두 이행되었다. 그런데 원고는 이혼 후에도 망인이 사망할 때까지 망인의 수발을 들고 재산을 관리하면서 망인과 함께 종전과 같은 주소지에서 동거했다. 망인은 이혼 후 약 7개월이 경과한 2011년 12월 지병으로 사망했다. 망인의 상속인들은 2012년 6월 원고와 위 분할재산을 상속인 및 상속재산에서 제외하고 상속세를 신고했다. 이에 대해 세무서는 원고가 망인의 사망 직전 가장이혼을 하고 재산분할 명목으로 재산을 증여받은 것으로 보아 36억 원의 증여세를 부과했다.
위 사례에서 대법원은 2017년 9월 ‘법률상의 부부관계를 해소하려는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이혼이 성립한 경우 그 이혼에 다른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당사자 간에 이혼 의사가 없다고 말할 수 없고, 이혼이 가장이혼으로서 무효가 되려면 누구나 납득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한다’라며 위 사안의 재산분할금은 증여세 부과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가장이혼이라는 판단을 내리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여준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재산분할에 관한 민법 규정의 취지에 반하여 상당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과대하고 상속세나 증여세 등 조세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여 그 실질이 증여라고 평가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상당한 부분을 초과하는 부분에만 증여세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라고도 덧붙였다. 즉 조세 회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과대한 몫의 재산분할은 예외적으로 증여세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백년해로할 반려자를 맞이하는 결혼이나, 혼인 생활의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이혼, 배우자의 사별만큼 인생에서 큰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러한 인생의 중대사와 관련하여 골치 아픈(?) 여러 세금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보면,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혼인 생활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세금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미리 알고 전문가와 상의하거나 관련 법률에 관심을 가진다면, 원만한 혼인 생활의 시작과 마무리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재중동포 여성 A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 한국에 와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 한국인 B를 만나 2001년 혼인했다. 하지만 이들은 12년이 지난 2013년 10월 협의이혼을 했다. A는 협의이혼 한 달 전에 ‘협의이혼하고 위자료를 포기하며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 이에 따라 남편 B가 모든 재산을 차지했다.
그런데 그 뒤 A는 B를 상대로 “내 아들을 B가 폭행해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위협을 당해 각서를 써 줄 수밖에 없었다”며 재산분할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B는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협의한 것 역시 재산분할에 관한 협의에 해당해 유효하다”고 주장하면서 A의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B를 상대로 한 A의 재산분할 청구는 인용될까.
재산분할 제도는 민법 제839조의 2에 규정된 것으로, 혼인생활 중 부부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실질적인 공동재산을 청산·분배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 청구권은 이혼이 성립한 때에 발생한다. 이혼 전에는 구체적으로 권리가 발생했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00. 2. 11. 선고 99므2049, 2056 참조)
따라서 재산분할 청구권이 구체적으로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재산분할 청구권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작성하는 경우 이는 ‘재산분할의 포기 약정’이 아니라 ‘재산분할 청구권의 사전 포기’에 해당하여 무효다.
단, 이혼이 임박한 시점에 재산분할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진지하게 논의하는 과정에서 ‘재산분할 청구권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작성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효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사례에서 대법원은 “두 사람이 협력해 형성한 재산액이나 쌍방의 기여도, 분할방법 등에 관해 진지한 논의가 있었다고 볼 자료가 없고, A에게 재산분할 청구권을 포기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볼 수 없다”며 “A가 비록 협의이혼에 합의하는 과정에서 재산분할 청구권을 포기하는 서면을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성질상 허용되지 않는 재산분할 청구권의 사전 포기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였다.
위 사례에서 A가 B에게 ‘협의이혼하고 위자료를 포기하며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하여 주었으나, 재산분할을 포기하는 내용은 재산분할 청구권의 사전 포기에 해당하여 무효이므로, A는 B를 상대로 재산분할 청구가 가능하다.
재산분할 청구권의 포기가 항상 무효가 아님을 주의하여야 한다. 즉 이혼이 임박한 시점에서 재산분할에 대한 진지한 논의 끝에 작성된 재산분할 포기 의사표시는 유효하다. 재산분할 청구권의 포기 각서가 유효하려면 세 가지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 즉, 이혼이 임박한 시점에 진지하게 논의된 과정에서 작성되어야 하고 그 내용이 합리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B씨는 이혼한 전남편 사이에 아들 C씨를 두고 있었다. A씨를 만나 교제하다가 청혼을 받아들여 혼인하였다. A씨는 B씨와의 혼인 중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 일부와 새로 매입한 부동산을 B씨 명의로 명의신탁을 했다. 그럴 정도로 겉으론 사이가 좋아 보였으나 사실 이들의 혼인 생활은 원만하지 못했다. A씨는 B씨에 대한 불만이 많아 자주 심하게 다투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다툼 끝에 B씨를 살해하였다. B씨 명의의 재산은 모두 B씨의 아들 C씨에게 상속됐다. A씨는 B씨에게 명의신탁한 재산을 찾으려고 C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A씨의 청구는 인용될까. A씨는 B씨의 배우자이지만 B씨를 살해한 사람이어서 민법 1004조 1호에 따라 상속인이 될 수 없다.
위 사례의 쟁점은 혼인 중에 이루어진 부부 사이의 명의신탁약정이 일방의 배우자가 사망하여 부부관계가 해소된 경우에도 유효한지 여부다. 즉 일반적으로 명의신탁을 받은 사람이 사망하면 그 명의신탁관계는 재산상속인과의 사이에 그대로 존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부부 사이의 명의신탁에서도 동일하게 볼 것인가가 문제된다고 할 수 있다.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실명법’이라 한다.)에 의하면 부동산 명의신탁 약정은 기본적으로 무효이나 위 법률 제8조에서 예외 사유를 두고 있고, 위 법률 제8조 제2호는 ‘배우자 명의로 부동산에 관한 물권을 등기한 경우’로서 조세포탈, 강제집행의 면탈 또는 법령상 제한의 회피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부부 사이의 명의신탁약정 및 그 약정에 기하여 행해진 물권변동을 유효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대법원은 ①문언(文言)상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명의신탁 등기의 성립 시점에 부부관계가 존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을 뿐 부부관계의 존속을 그 효력요건으로 삼지 아니하고, ②일단 유효한 것으로 인정된 부부간 명의신탁에 대하여 그 후 배우자 일방의 사망으로 부부관계가 해소되었음을 이유로 이를 다시 무효화하는 별도의 규정이 존재하지 아니하는 점, ③유효한 부부간 명의신탁의 경우 부부관계가 해소된 이후에 이를 그대로 유효한다고 인정하더라도 부동산실명법의 입법취지가 훼손될 위험성이 크지 아니한 점을 근거로 부부간의 명의신탁이 일단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었다면 그 후 배우자 일방의 사망으로 부부관계가 해소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명의신탁 약정은 사망한 배우자의 다른 상속인과의 관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게 존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3. 1. 24. 선고 2011다99489 판결)
위와 같은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B씨의 사망으로 인하여 C씨가 B씨 명의의 부동산을 모두 상속한 경우 C씨는 A씨와의 관계에서는 B씨의 지위를 이어받아 명의수탁자의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즉 A씨는 B씨의 상속인인 C씨에게 B씨와의 명의신탁 약정을 근거로 A씨 자신의 부동산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단 이번 사례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부부 사이의 명의신탁 약정이 유효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부부간 명의신탁이 무효라고 한다면 다른 법리적 접근이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살다가 사망에 이르게 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는데 법률적으로 사람의 사망은 상속의 문제를 남긴다.
우리 민법 제1005조에서 ‘상속인은 상속 개시된 때부터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를 승계한다’고 규정하여 상속이 재산상의 지위를 승계하는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사람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며 사망한 사람을 피상속인이라고 한다. 사람만이 피상속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피상속인의 사망 시에 피상속인의 재산을 승계하는 사람을 상속인이라 한다. 상속인이 되기 위해서는 피상속인의 사망 시에 생존해야 하거나 태아로 존재하고 있어야 하므로 피상속인보다 먼저 사망한 사람은 상속인이 되지 못한다. 상속이 개시된 때라 함은 사람이 사망한 때를 말하며, 상속의 대상이 되는 상속재산은 피상속인이 사망 당시에 가지고 있던 적극재산 및 소극재산(예를 들어 채무)이 포함된다.
우리 민법은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사람, 즉 상속인을 한정하고 있다. 즉 민법 제1000조 제1항에서는 1.피상속인의 직계비속(자녀·손자·손녀 등), 2.직계존속(부모, 조부모 등), 3.피상속인의 형제자매, 4.피상속인의 4촌 이내 방계혈족(삼촌, 고모, 외삼촌, 이모, 고종사촌, 이종사촌)으로, 제1003조에서 배우자를 그 상속인으로 하고 있다. 자녀의 경우 혼인 중의 자와 혼인 외의 자가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 동등하게 상속분이 인정된다.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한 법률상의 배우자를 말하며 사실혼 배우자의 경우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배우자는 그 직계비속과 동순위(1순위)로 공동상속인이 되고, 직계비속이 없는 경우 피상속인의 직계존속과 공동상속인이 되며, 피상속인의 직계비속도, 직계존속도 없는 경우에는 단독상속인이 된다.
배우자의 경우에는 다른 상속인과 달리 혼인의 무효, 취소로 인하여 여러 상황이 발생한다. 법률상의 배우자라 하더라도 사망한 배우자와 혼인이 무효로 되는 경우에는 상속권을 잃게 되지만, 부부 일방의 사망 후에 혼인이 취소된 경우에는 혼인취소의 효력이 소급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상속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대판 1996. 12. 23. 95다48308). 부부 일방이 이혼소송을 제기한 후 소송계속 중에 사망한 경우에는 소송은 종료되어 다른 일방의 배우자는 상속권을 갖는다. 사실상 이혼 중에 당사자 일방이 사망한 경우에도 판례는 다른 일방이 배우자로서 상속권이 있다고 본다(대판 1969. 7. 8. 69다427).
중혼의 경우, 예를 들어 ‘갑’이 ‘을’과 협의이혼한 후 ‘병’과 재혼하였는데, 나중에 ‘갑’과 ‘을’ 사이에 (협의)이혼 취소판결이 이루어져 ‘갑’과 ‘병’ 사이의 혼인이 중혼이 된 상태에서 ‘갑’이 사망한 경우 ‘을’과 ‘병’이 모두 배우자로서 상속권을 갖는 것으로 본다. ‘갑’과 ‘병’의 혼인이 취소되어도 소급효가 없으므로 ‘병’ 역시 배우자로서 상속권이 있다고 보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상속인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한정되며, 상속인이 없는 상태에서 특별연고자는 가정법원에 상속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의 분여를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1057조의 2). 특별연고자의 분여청구가 없거나 분여하고 남은 재산이 있을 때에는 그 재산은 국가에 귀속하게 된다(민법 제1058조).
양승동(梁勝童)
연세대 법대, 대학원졸. 사법연수원 32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역임. 현재 법무법인 지암 변호사, 양천사랑복지재단 고문변호사 겸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