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드라마 ‘전원일기’가 전형적으로 보여주던 대가족 시대. 그 후 핵가족 시대를 지나, ‘나 혼자 산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조차 방영된 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이처럼 가족 관념을 비롯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나 인구구조 같은 여러 사회·환경적 변화 등에 따라 가족의 모습은 달라져왔다.
‘아들 못 낳으면 죄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아선호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남아선호사상이 확연히 쇠퇴했다. 이는 헌법재판소 결정문에도 명시된 내용이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2월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임부 등에게 고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의료법 규정에 대해 위헌을 선언하면서, 그 근거 중 하나로 통계로써 실증되는 남아선호사상의 쇠퇴를 들었다. 또한 저출산·고령화를 맞이하고 있고, 혼인 적령기가 올라가고 있으며, 혼인신고 수는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가족과 관련된 변화는 가족제도를 뒷받침하는 법률에서도 나타난다. 아들과 딸의 상속분을 동일하게 개정했던 1990년 민법 개정이나, 동성동본 금혼 폐지·호주제 폐지 등에 관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민법 개정, 최근의 이른바 ‘구하라법’ 통과로 인한 2024년 9월 20일자 민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가족법(민법 중 친족, 상속편을 일컫는다)은 꾸준히 개정돼왔다. 1960년부터 시행된 우리 민법에서 가장 많이 개정된 부분, 즉 사회 변화에 가장 자주 대응해온 분야는 놀랍게도 가족법이다. 가족제도의 변화와 관련한 여러 이슈는 아래와 같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근친혼과 혼인무효 사유
헌법재판소는 비교적 최근인 2022년 10월 근친혼의 금지 범위에 관한 민법 제809조 제1항 및 그 규정 위반을 혼인무효 사유로 하는 민법 제815조 제2호에 대해 판단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8촌 이내의 혈족 사이에 혼인을 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민법 제809조 제1항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한편 민법 제809조 제1항을 위반한 경우 혼인무효라는 내용의 민법 제815조 제2호에 대해서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2024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8촌 이내 혈족 사이에 법률상 혼인을 금지한 것은 적절하다고 보았다. ① 근친혼이 이루어질 경우 종래 형성되어 계속된 가까운 혈족 사이의 신분관계를 변경시키게 되므로 가까운 혈족 구성원의 역할과 지위에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② 인류 문화에서 보편적으로 금기시되는 근친상간은 근친혼 당사자나 그로부터 출생한 자녀들이 가까운 혈족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신뢰와 애정에 기초한 사적 유대 및 협력관계를 갖기 어렵게 하여 가까운 혈족의 해체를 초래할 수 있다. ③ 그 결과 보호와 부양에서 배제되는 구성원이 발생할 수 있는 등 가족제도의 기능이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금혼 규정에 어긋나는 혼인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보는 규정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혼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았다. ① 이미 근친혼이 이루어져 당사자 사이에 부부간의 권리와 의무의 이행이 이루어지고 있고, 자녀를 출산하거나 가족 내 신뢰와 협력에 대한 기대가 발생하였다고 볼 사정이 있는 때에도 일률적으로 그 효력을 소급하여 상실시킨다면, 가족제도의 기능 유지라는 입법 목적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② 가까운 혈족 사이의 신분관계 등에 현저한 혼란을 초래하고 가족제도의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에 한정하여 근친혼을 무효로 하고, 그 해당 여부가 명백하지 않다면 혼인 취소를 통해 장래를 향하여 혼인을 해소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가족의 기능을 보호할 수 있다.
이후 법무부는 2024년 2월 신중한 검토 및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서 개정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아직 위 규정에 대한 개정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다.
유류분 제도
헌법재판소는 2024년 상반기 유류분 제도에 대한 광범위한 심리를 거쳐 여러 쟁점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그 결과 형제자매의 유류분권을 규정한 민법 제1112조 제4호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한편 유류분 상실 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민법 제1112조 제1호부터 제3호와 기여분에 관한 민법 제1008조의2를 준용하는 규정을 두지 않은 민법 제1118조에 대해서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2025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유류분 제도란 피상속인이 증여 또는 유증으로 자유롭게 재산을 처분하는 것을 제한하여 일정 범위의 상속인에게 법정 상속분 중 일정 비율(현행법상 직계비속과 배우자는 상속분의 1/2, 직계존속은 1/3)에 해당하는 재산이 귀속되도록 보장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그에 따라 유류분을 초과한 사전 증여재산 등은 민법이 정한 산정 방식에 따라 유류분 권리자에게 일정 부분 반환되어야만 한다. 유류분 제도는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 보상, 상속재산에 대한 공정한 분배와 가족생활의 안정 등을 목적으로 한다.
2024년 4월 헌법재판소는 형제자매의 유류분권을 인정하고 있는 민법 제1112조 제4호를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나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등이 거의 인정되지 않음에도 형제자매에게 유류분권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이유다.
다음으로 민법 제1112조에서 유류분 상실 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피상속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의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한다는 해석이다. 그리고 피상속인을 오랜 기간 부양하거나 상속재산 형성에 기여한 기여 상속인이 그 보답으로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의 일부를 증여받더라도 비기여 상속인의 유류분 반환 청구에 응하여 위 증여재산을 반환해야 하는 상황은 부당하고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불합리한 부분들은 피상속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므로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보았다.
한편 유류분 제도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다수 의견으로 위헌성을 지적한 위와 같은 부분 외에도 여러 개정 논의가 있다. 예컨대 ① 유류분 반환의 원칙적인 방법을 원물 반환(원래의 물건 자체로 반환)이 아니라 가액배상(금전으로 배상)으로 하는 것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원물 반환을 원칙으로 함으로써 상당 기간 온전하게 사용하던 주거용 또는 사업용 자산이 일부 분할되어야 한다거나, 유류분 재판 이후 공유물 분할을 다시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유류분 반환 대상인 부동산이 많으면 복잡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필자가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관여한 사건 중에는 유류분 반환으로 30개 넘는 부동산별로 제각기 다른 지분(예컨대 A 부동산에 대해서는
27,624,612/675,444,000 지분, B 부동산에 대해서는 1,172,967 /28,680,000 지분 등)을 반환하라고 판결한 사건도 있다.
유류분 반환으로 인한 지분 공유 상태는 복잡한 법률관계를 초래할뿐더러 공유물 분할 등 후속 분쟁을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② 그 외에도 공익단체에 증여한 경우나 가업승계를 위해 가업 지분을 증여한 경우에도 일률적으로 유류분 반환 대상이 되는 것은 피상속인의 정당한 의사나 공익에 반하므로 이에 대한 개선이 있어야 한다는 논의도 있고, ③ 피상속인의 유연한 상속 계획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외국과 같이 유류분의 사전 포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 등도 있다.
친족상도례 제도
친족상도례 제도란 친족 사이의 재산범죄에 대해 친족이라는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 형사처벌을 할 수 있게 하는 등 특별취급을 하는 제도다. 형법에서 다루고 있긴 하지만, 가족과 많은 연관이 있는 제도다. 유명 연예인의 가족 간 재산범죄 사건에서 종종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6월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 친족, 동거 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 벌어진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도록 정한 형법 제328조 제1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했다. 헌법재판소는 가정 내부의 문제에 대해 국가형벌권이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정책적 고려와 함께 가정의 평온이 형사처벌로 인해 깨지는 것을 막으려는 친족상도례의 규정 취지는 수긍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현행 형법과 같이 넓은 범위의 친족 간 관계의 특성은 일반화하기 어려움에도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 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이 된다고 보았다. 가족과 친족 사회 내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가족 구성원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이런 이유로 현행 형법 규정은 입법 재량을 명백히 일탈했고, 형사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다가올 가족제도 변화의 바탕
앞서 본 것처럼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라 친족상도례 제도, 유류분 제도 중 유류분 상실 사유와 기여분 고려에 관한 내용 등은 개정 입법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헌법재판소 결정의 일련의 흐름은 종래 가족 간 도덕의 영역에 맡겨둔 부분을 이제는 법의 영역에서 뚜렷하게 해결하게 하려는 움직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즉 그동안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유명한 법언(法諺)과 같이 국가가 가족 간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최소화했지만,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개정 입법이 어느 정도까지 어떤 방식으로 가족 간 분쟁에 관여할 것인지는, 국민의 법 감정과 사회적인 공감대를 토대로 정해져야 할 문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모든 국민이 가지는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안정되고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가정생활을 영위할 권리(건강가정기본법 제4조)”가 우선 고려되어야 함은 물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