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정치·사회 뉴스와 SNS, 유튜브 등 자극적인 콘텐츠들은 시종일관 현대인을 괴롭힌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행까지 피로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에 많은 사람에게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잠시 쉬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 추세다.
이처럼 코로나19 이후 중장년층의 ‘코로나 블루’가 심화되고 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한다.
삼성생명 인생금융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중노년기 불안심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불안 빈도를 물어보는 질문에서 ‘자주 또는 항상 불안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가 21.9%로 가장 높았다. 이어 50대 19.5%, 60대 이상 10.8% 순이었다. 불안심리를 촉발시키는 요인으로는 ‘노후 생활에 대한 걱정·미래에 대한 불확실성(20.1%)’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인한 감염 우려(19.2%)’, ‘일자리 상실에 대한 염려(8.7%)’가 뒤를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사람들에게 힘과 활력을 주는 ‘힐링’을 위한 한 방법으로 ‘멍 때리는’ 행위가 인기를 얻고 있다. 모닥불을 바라보는 ‘불멍’, 물을 바라보는 ‘물멍’, 숲을 바라보는 ‘숲멍’ 등 아무 생각 없이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의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런 흐름은 공중파 방송까지 사로 잡았다. 공중파 EBS는 지난해 9월부터 매주 월~목요일 밤 ‘가만히 10분, 멍TV’를 방영한다. 초승달·폭포·연못 속 물고기 같은 자연, 맥반석 김·호떡 굽기 등 요리, 괘종시계·인형뽑기·턴테이블 등 일상의 흔한 소음이나 모습을 아무런 설명이나 장면 전환 없이 있는 그대로 쭉 보여준다.
여러 유튜브 채널들도 일상 소음을 담아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ASMR 영상을 우후죽순 업로드하고 있다. 머리 감기, 빗질하기, 귀 파주기, 마사지, 목욕하기, 화장품 바르기, 장난감 가지고 놀기 등 영상 종류도 다양해졌다.
최근 배우 이상이는 예능 프로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물고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뽐내며 직접 집 안에 거대한 어항을 설치한 후 수족관을 찾아가 반려어를 사고, 수초수조를 만드는 등 물멍의 기초 작업 과정을 자세히 보여줬다. 그는 “반려어와 수족관을 하루 2시간씩 그냥 쳐다본다”고 말했다. 물멍을 통해 마음이 정화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이런 ‘멍 때리기’가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멍 때리기로 심장박동수가 안정화하고 뇌에도 휴식을 취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물체를 보면 호흡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명상 효과 같은 것이 나타날 수 있다”며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하나의 반(反)작용으로 멍 때리기가 유행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다만 멍 때리며 휴식을 취한다고 직면한 문제가 사라지진 않는 만큼, 이를 도피처로 삼지 말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과 멍 때리는 시간의 밸런스를 잘 맞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골에 내려가 민박집이나 펜션을 운영하는 이가 많지만 뜻대로 순항하는 사례가 드물다. 이를 모르지 않았던 이정형(60, 희양산토담펜션 대표) 씨는 불운한 운명이 도래한 걸 깨달은 사람처럼 심오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기어이 펜션을 짓겠다고 기세를 돋우는 남편 강인구(66) 씨를 보기 좋게 꺾을 묘한 수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형 씨는 실패했다. 그녀가 아는 인구 씨는 좀 과장하자면 지구인 77억여 명 가운데 가장 끔찍한 옹고집쟁이. 결국은 남편이 이겼다. 정형 씨는 실의와 불안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잉, 이게 웬일? 펜션 사업이 썩 순조롭게 돌아가는 게 아닌가.
정형 씨가 반기를 든 건 펜션 문제에서만은 아니었다. 인구 씨가 귀농을 제안했을 때부터 열렬한 반대운동에 나섰으니까. “혼자 내려가시옵소서!” 처음엔 그리 심드렁히 답하는 걸로 기선 제압을 도모했다. 하지만 애당초 한 번 먹은 뜻을 쉬 굽힐 남편이 아니었다. 지구별에 존재하는 동종 옹고집들의 빛나는 자존심이 걸려 있다는 투로, 인구 씨는 불퇴전의 고집을 부려 마침내 아내를 대동하고 귀농을 실현하는 혁혁한 전과(戰果)를 거두었다. 포성이 지축을 흔드는 전쟁은 아닐망정, 나름 지능적이고 조직적인 전략이 아니고선 승리할 수 없는 게 부부싸움이다. 인구 씨는 그간 축적한 투쟁 자산 혹은 고집의 막강 위세를 총동원해 성공, 어쩌면 가족사에 길이 남을 치적(?)을 세운 건지도 모른다.
물론 인구 씨 입장에선 누구에게나 지지받기 어려운 서푼짜리 생고집을 부린 게 아니었다. 어엿한 합리에 기반을 두고 귀농을 선창했으니까. 반평생 근무했던 주방기구회사에서 은퇴한 그는 ‘어서 오라!’ 속삭이는 시골의 유혹을 물리칠 길이 없었다. 은퇴자의 쓸쓸한 삶의 오후를 견디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편의점 삼각김밥과 저지방우유를 사들고 서울의 여기저기 공원이나 야산을 배회하다 해 저물면 털레털레 귀가하는 나날들. 그는 자신의 모습이 늙은 거북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럽고 한심했으며, 마침내 영혼까지를 다한 고뇌와 모색을 하다 고향으로의 귀농을 발상했던 것이다. 외로이 홀로 계신 고향집의 노모님도 모시고, 놀려둔 농토로 일감을 만들고, 아내와 둘이 전원의 낭만도 즐기고, 이래저래 귀농보다 더 현실적이고 진취적인 노후 대책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니, 여기엔 아무런 오류가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아내 정형 씨는 왜 귀농에 반기를 번쩍 들었나. 보나마나 생고생할 게 빤해서였다. 날마다 풀이나 뽑다가 손가락 관절염에 걸릴 테고,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는 재미도 어쩌다 한두 번이지 허구한 날 올려다보자면 뒷목만 뻐근할 테고, 마트나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대신 죄 지은 것 없이 시골집에 얽매이는 옥살이를 해야 할 게 아닌가. 게다가 모기나 파리 따위 해충은 또 어떻고? 최악의 경우, 집 안으로 스며든 뱀이 소파에 똬리를 틀고 앉아 TV 시청을 하는 엽기적 정경을 목도할 수도 있는 게 시골생활이다. 이래저래 정형 씨는 귀농하자는 소리를 듣는 순간 오만정이 떨어졌던가보다.
“남편에겐 어머님을 모실 수 있는 낙향이자 귀농이라는 좋은 뜻에 의한 결심이었겠지만 나는 절대적으로 반대를 했다. 그러나 도저히 이길 수 없더라. 결국은 꾹 참고 져줬다. 이런 내가 시골생활 대비 차원에서 준비한 건 운전면허증을 따둔 거 하나였다. 운전을 할 줄 알아야 답답할 때 바람이라도 쏘일 수 있을 거라서.”
사생결단의 각오로 펜션 사업 반대
정형 씨 내외가 여기 문경시 가은읍 산골로 귀농한 건 2016년 초. 내려오자마자 남편은 벼농사를 시작하더란다. 벼농사에 덤벼든 속도보다 더 신속하게 착수한 건 펜션 짓기였다. “우리 펜션이나 해보더라고!” 그렇게 툭 던져놓고 산 아래 논의 일부를 터로 다져 건축에 나섰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초고속 질주였다. 이쯤이면 인구 씨의 특기가 고집부리기 맞나? 그게 아니라, 가령 필요하다면 뒷산도 헤딩으로 부수고 나설 슈퍼 울트라급(級) 박력의 보유자라 봐야 하지 않을까. 여하튼 파랗게 질린 정형 씨는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금 투쟁 전선에 나섰다.
“이번엔 사생결단을 하고 반대를 했다. 펜션은 무슨? 기어이 저지하고 말리라! 꽤나 독을 품었던 거다. 그러나 또 졌다. 원통하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웃음)”
펜션을 왜 반대했지? 잘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잘될 거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나? 아무리 날고뛰더라도 자리 잡히기까진 고전할 게 분명해보였던 거다. 게다가 자금 사정도 변변치 않았거든. 건축비 외에 운영비도 많이 들어갈 텐데, 그러고 나면 밥은 뭐로 먹고? 근심과 불안이 아주 많았다.”
부군의 펜션 사업 착수가 충동적인 건 아니었겠지?
“나 몰래 충분히 구상해온 것 같았다. 건축의 초벌 설계까지 직접 해서 설계사무소에 맡긴 걸 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펜션에 꽂혔다는 걸 알겠더라. 남편이 뭐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인 건 분명하다. 무슨 일을 해서든 가족들 밥은 굶기지 않을 남자다.”
봄에 펜션 건축을 시작해 여름에 오픈했다지? 일사천리로 진도를 뺐구나.
“양가 형제들이 많이 도와줘 일이 순조로웠다. 남편이 건축을 주도하는 사이에 나는 부지 곳곳에 꽃을 부지런히 심었다. 꽃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전에 아파트에 살면서는 꽃에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귀농해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라곤 개울에 나가 다슬기를 줍거나 꽃을 심는 방법밖엔 없었거든.”
드디어 펜션을 오픈한 뒤엔 어땠나? 손님이 얼마나 오던가?
“처음엔 지인들만 간간이 왔다. 그러다가 차츰 문경 지역을 여행하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주말에 좀 들어오더라. 이듬해 3, 4월에도 비슷한 추세였다. 5, 6월엔 거의 찾는 이가 없어 객실이 늘 비었다. 그런데 7월 말쯤부터 2주 동안은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방 여덟 개가 다 찼다. 아하, 이게 성수기라는 거구나! 여름 한철 장사로 1년을 먹고사는 게 펜션이라는 얘기가 실감으로 다가오더군. 이후 손님이 꾸준히 늘어 초기의 불안감에서 성큼 벗어날 수 있었다. 상당히 빠른 성장 속도로 자리가 잡혀나간 셈이다.”
예상보다 빠르게, 기대보다 흡족하게 안도할 만한 상황이 펼쳐졌다는 얘기다. 매우 따분한 날들이 오래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많았으나 정반대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는 걸 보며 정형 씨는 비로소 재미와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처음의 격렬했던 반대 시위의 기억을 내심 멋쩍어하면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 비수기를 제외하고는 무자비한 불황에 진저리를 칠 일이 없었다는 게 아닌가. 펜션 개업 만 4년이 지난 현재, 해마다 점증한 손님의 수효로 이미 궤도에 올라섰다. 재방(再訪) 비율은 무려 90%. 한 번 찾아왔던 고객 대부분이 다시금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탄탄한 단골층을 형성했으니 귀농 성공사례라 쳐도 무방하겠다.
고객들 위해 심은 배추 500포기
이와 같은 일련의 성취는 거저 굴러들어온 행운의 산물이 아니다. 비결이 무엇일까. 우선 정형 씨네 펜션이 들어앉은 자리의 경관부터가 빼어나다. 낮에는 물론 달빛 부서지는 오밤중에도 장엄한 암봉을 허옇게 드러내는 명산 희양산이 지척에 있어 상서로운 느낌을 주는 곳이다. 반딧불과 가재가 서식하는 맑은 개울이 펜션 앞을 흐르니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물에 들어가 놀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사방에서 넘실거리는 야산들이 주는 싱그러움과 적당한 적막감 역시 도시에 지친 나그네들의 마음을 보듬어준다.
그러나 이 모든 수려한 자연 경관보다 펜션의 쾌조에 더욱 기여한 건 정형 씨 부부의 노력과 수완이다. 인간사의 인과(因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그들은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 붓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엔 막막했다. 그저 청결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객실 청소를 비롯한 미화 작업에 만전을 기했다. 특히 내가 꽃을 많이 심었다. 부지가 넓은 편이라 꽃밭, 꽃길 외에 텃밭 공간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 유용했다. 거기에 온갖 야채를 심기 시작한 건 손님들과 나누어 먹기 위해서였다.”
일종의 마케팅 전략으로?
“그저 우리 집을 찾아준 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뜻으로 고객들에게 야채를 나누기 시작했다. 지내놓고 보니 그 소소한 선의의 표시가 고객의 환심을 자연스럽게 유발하는 효과를 나타냈다는 걸 알겠더라. 누구나 필요한 만큼 야채를 채취해 가져가도록 했다. 아침이면 방방마다 옥수수나 감자를 쪄 돌리기도 했다. 얼마 전엔 배추 500포기를 심었다. 모두 손님들을 위한 물량이다.”
이 펜션은 작은 놀이동산 같은 구색을 갖추었다. 왜 이렇게 꾸몄지?
“영업을 시작하고 얼마쯤 지나 고객층의 경향에 특징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어린 자녀를 대동한 30, 40대 부부들이 주로 투숙했으니까. 그래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공간과 시설을 보강했다. 작은 수영장을 만드는 식으로. 텃밭 체험에도 아이들은 신나했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장치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아이들에게 안성맞춤의 공간으로 입소문이 난 모양이다. 도시의 한정된 공간으로부터 아이들을 해방해 한때나마 자연 속에 풀어놓고 싶은 젊은 부모들. 정형 씨는 그들의 니즈에 적극 부응했으며, 그게 펜션의 안정세를 북돋운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면 줄수록, 마음을 쓰면 쓸수록 돌아오는 것도 많은 게 인간관계다. 그러다 보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잘나가던 영업집들이 도중에 망가지는 게 그 욕심 때문이지 않던가.
“초심을 유지하게 위해 자제한다. 돈 냄새 풍기지 않는 영업집을 지향하면서. 우리 부부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일이 고되지만 그저 즐기자. 무리할 거 없다, 그냥 먹고사는 정도에서 만족하자!’ 지금 무난하다고 앞으로도 잘될 거라 방심하지도 않는다.”
어려운 점도 많을 테지?
“좋은 접객을 위해서는 친밀감을 자아내는 대화의 기술이 필요했는데 내겐 그게 쉽지 않았다. 서비스가 지나쳐 오히려 손님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 아닐지 고민도 많이 했다. 컴맹이었던 내가 뒤늦게 블로그를 배워 펜션 이야기를 올리는 일도 만만치 않아 진땀을 뺐다.”
시골에 내려와 펜션을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펜션 사업이란 게 쉽지 않다. 이곳 주변의 펜션들 대부분이 부진하거나 사실상 휴업 상태에 놓여 있다. 권장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는 땅을 가지고 있어 비교적 수월했지만 투자비도 많이 들고 부대비용도 수시로 발생해 고난에 빠질 수 있다. 오직 돈벌이를 목적으로 뛰어들 경우에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당신은 처음엔 귀농을 결사반대했다. 이젠 귀농에 호의적일까?
“내가 귀농으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마음의 여유다. 도시에서와 달리 느긋하고 편안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으로 좀은 변했거든. 그러나 여자의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시골이 도시보다 좋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손발 걷어붙이고 진흙탕에도 뛰어들어야 하는 게 귀농생활이다.”
이왕지사 시작한 일, 죽이 될지 밥이 될지 몰라도 일단 최선을 다해 한번 가보자. 정형 씨는 그런 심정으로 진력했다.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고 진지하게 관여했다. 정형 씨 내외가 그간 쏟은 땀의 총량이 몇 톤에 달할지는 저 고매한 희양산 바위봉이 알려나. 그런데 정형 씨의 펜션이 궤도에 오른 가장 큰 비결은 스스로 선의를 끌어내는 힘에 있는 게 아닐까. 타인의 호의를 기대하기 이전에 나의 선의로 먼저 공기를 따뜻하게 데우는 능력의 진실. 이는 단지 펜션 운영에만 적용될 공리이랴. 타인을 찍어 누르고서야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미신마저 횡행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기법일 수 있다. 그나저나 정형 씨는 아직도 단단히 벼르고 있단다. 남편의 고질적인 옹고집을 단 한 번이라도 와지끈 무너뜨리기 위해.
“어휴, 단 20분만 같이 있어도 혈압이 오른다. 선의도 통하지 않더라. 남편 성질이 불이거든. 늘 내가 패하고 마는 거다. 언젠가는 한 번쯤 이기고 말겠다는 결의를 전혀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하하하.”
정형 씨가 주는 귀농 Tip
•무작정 내려왔다가 시행착오로 고통을 겪는 경우가 흔하다. 미리 귀농·귀촌 교육을 받는 등 충분한 사전 준비를 하자.
•마을과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거처를 마련하자. 그게 차라리 원주민들과 더 원만한 관계를 형성할 수 방법이다. 지나친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펜션을 구상한다면 무엇보다 위치 선정에 공을 들여야 한다. 일단은 경관이 좋은 곳이어야 승산이 있다.
•인근의 귀촌·귀농인들과 긴밀히 사귀자. 단 한 사람하고라도 우정을 나눌 경우 시골생활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크게 덜 수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당연히 여행 풍속도도 달라졌다. 여럿이 다니는 여행은 점차 사라지고 혼자 혹은 둘이 떠나기 좋은 한적한 드라이브 코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인적이 드문 곳, 적당한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하는 추세다. 그렇게 훌쩍 떠나 갑갑했던 마음을 풀어놓고 당일치기로 놀기 딱 좋은 곳이 있다. 바로 강화도다!
강화도령이 살았던 터전, 용흥궁
조선 25대 왕 철종(哲宗)이 강화도령이었던 시절에 지냈던 곳이다.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잠저(潛邸)라고 하는데, 당시 강화도령은 가족이 모반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14세 때 이곳 강화로 유배되었다. 원래는 보잘것없는 초가였으나 훗날 강화도령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 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집을 보수 단장해 용흥궁이라 불렀다. 사람이 살지 않아 좀 휑한 모습이지만 관리는 잘되어 있었다. 150년 된 고택의 안채와 사랑채, 별채, 마루, 작은 정원, 우물, 반질반질한 문고리를 보며 강화도령 이원범으로 살던 철종의 모습이 느껴져 짠했다. 14세부터 19세까지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기도 하며 평민으로 살았던 터전이다. 강화도령 이원범, 철종의 이야기가 깃든 용흥궁 담장에는 능소화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용흥궁은 강화 나들길 1코스다. 강화읍 관청리 441-0
한옥의 멋,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용흥궁 담 넘어 건너편 언덕에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성당의 외양이 독특하다. 얼핏 보면 성당 같지 않고 마치 절처럼 보인다. 바실리카 양식과 동양 불교 사찰 양식을 융합한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마당 한쪽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나무 보리수가 100년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찰의 범종처럼 생긴 종도 보인다. 분명 성당인데 절의 분위기가 더 느껴지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건물이다. 서로 다른 전통문화를 존중하고 함께하는 남다름을 본다.
성당 입구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며 마음을 가다듬어본다. 상사화가 바람에 흔들리는 마당엔 초대 주교 고요한 신부의 비석과 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비가 있다. 강화 시내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는 높은 언덕이다.
댓돌 위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면 목재로 이루어진 깔끔한 실내가 성스러움을 더한다. 동서양의 오묘한 분위기가 잘 조합된 실내다. 열린 창으로 자연의 풍경이 한가득 들어온다. 양 벽면에는 강화성당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진열돼 있다. 밖으로 나가면 뒤편으로 낮은 담장의 사제관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약탈당한 계단 난간 등 건축물의 일부가 복원된 모습도 볼 수 있다. 주변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성당이다. 강화읍 관청길 27번길 10
소창길’을 아시나요
용흥궁과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을 나와 내려오다 보면 길가에 서 있는 커다란 굴뚝이 보인다. 1960~70년대에 강화도 산업의 전성기를 주도했던 심도직물의 흔적이다. 직물 공장은 강화도 경제의 대표적 징표다. 강화도서관 옆으로 이화직물 터가 있고, 아기들 기저귓감으로 많이 쓰였던 친환경 직물 ‘소창’을 만들어내던 유명 직물 업체들이 터를 잡고 있다. 그래서 이 골목에 ‘소창길’ 코스가 새롭게 더해졌다. 강화 중앙시장 B동 3층에 위치한 ‘관광플랫폼’이 스토리워크 길 출발지다. 1960년대의 직물공장 전경과 소창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고 체험할 수 있는데 현재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한산하다. 가는 길에는 100년의 세월을 품은 낡은 건물에 자리 잡은 ‘낙원 떡집’이 있다. 순수한 떡 맛을 자랑한다. 질 좋은 강화 쌀에 첨가물은 소금 한 가지밖에 안 넣는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소박한 식사를 하고 싶으면 읍내 중심에 있는 50년 전통의 ‘강화국수’ 집으로 가면 된다. 강화도에 가면 알싸한 순무김치 맛도 봐야 한다.
※소창길 코스 중앙시장 관광플랫폼에서 출발해 심도직물 굴뚝 - 천주교 인천교구 강화성당 - 이화직물 터 - 금융상사 - 조양방직 - 동광직물 - 남화직물 - 상호직물 - 경도직물 - 소창체험관으로 이어진다. 2시간 정도 소요.
빈티지 감성 카페, 조양방직
과거의 방직 공장을 그대로 살려서 빈티지한 매력을 보여주는 레트로 감성 카페다. 조양방직은 1933년 홍 씨 형제가 민족자본으로 설립한 방직공장으로 한때 엄청난 전성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 시절의 흔적들이 빈티지한 멋으로 탈바꿈해 핫한 카페가 됐다. 그 옛날 우리의 언니와 누나들이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기계를 돌리던 시절을 상상하도록 자극한다. 강화읍 향나무길 5번길 12
평화로운 궁궐터, 고려궁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해온 우리 민족의 역사가 있는 곳. 고려 왕조가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38년간 머물렀던 궁궐의 터다(사적 제133호). 당시의 궁궐은 1270년 송도로 환도할 때 몽골의 압력으로 모두 허물어졌고 행궁과 장녕전, 만녕전, 외규장각 등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 지금은 강화 유수가 업무를 보던 동헌과 유수부의 경력이 업무를 봤던 이방청만 남아 있다. 푸른 잔디가 시원하게 깔린 자연 풍경이 평화롭기만 하다. 강화읍 강화대로 394
조용한 마음의 울림, 교동마을과 향교
느릿느릿 옛 시간을 즐기고 싶다면 시간이 멈춘 듯한 교동마을로 가볼 일이다. 예스럽고 정감 있는 마을을 둘러보다 보면 지치고 복잡했던 마음이 어느새 가라앉는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 강화읍에 위치한 강화 향교(고려 전기에 창건)와 우리나라 최초 향교인 교동 향교 방문도 빠뜨릴 수 없다. 강화나들길 1-18코스다. 강화군 교동남로 229-49
해안도로 따라 의미 있는 드라이브 코스, 덕진진
강화도에는 월곶진, 제물진, 용진진, 덕진진, 초지진의 5진(鎭)과 광성보, 선두보, 장곶보, 정포보, 인화보, 철곶보, 승천보의 7보(堡)를 합친 강화 12진보(鎭堡)가 있다. 그중 덕진진은 김포 덕포진과 더불어 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도 제1포대였다.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며 해안도로를 따라 볼 수 있는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전적 시설 풍경은 산책과 드라이브 코스로 의미 있다.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46
섬에서 즐기는 슬기로운 문화생활 ‘도솔미술관’, ‘해든뮤지엄’, ‘전원미술관’
최근 서울과 같은 대도시를 떠나 작품 전시를 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고즈넉한 강화 땅에서 감상하는 개성 있고 멋진 미술관. 언택트 여행으로 유유자적 멋진 시간을 누려보자.
도솔미술관은 초지진과 가깝고 고즈넉해서 좋은 사람과 조용히 산책할 겸 가보면 좋은 장소다. 강화 들판을 달려 소나무가 예스러움을 더해주는 작은 마을에 다다르면 단정한 한옥 갤러리가 눈에 들어온다. 총 4개의 전시관이 있는 도솔미술관은 야외전시관, 2개 층의 실내 전시장, 별관으로 나뉘어 있다.
뜰안채 야외전시장에서는 사진작가의 아프리카 바오밥나무 작품이 전시돼 있다. 실내로 들어가면 별관을 비롯해 2개 층으로 이루어진 전시장에서 매달 바뀌는 전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 창가에 걸터앉아 강화 들녘을 유유자적 내다보며 함께 온 사람과 조용조용 대화를 나누는 다정한 풍경이 아름답다. 강화군 길상면 길상로 210번길 52-71
해든뮤지엄은 갤러리로 걸어 들어가는 입구의 긴 경사면에서부터 설레게 된다.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건축물로 2013년 한국건축가협회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건축 베스트7’에 뽑히기도 했다. 실내 사진 촬영이 안 돼 아쉽지만 야외의 조각작품과 설치미술, 그리고 대형 미러가 볼 만하다. 정원의 휴식공간과 잘 어울리는 자연이 아름다운 곳. 강화군 길상면 장흥로 101번길 44
전원미술관은 강화도에서 출생한 한국화가 유광상 씨가 운영하는 갤러리다. 작가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작품과 일본 유학 시절에 그린 그림 등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다. 강화군 송해면 솔정리 561
이색적이고 따뜻한 ‘동네 책방’
강화군청 부근엔 볼거리가 많다. 강화성당과 용흥궁, 중앙시장, 궁터, 중앙시장 청년몰, 소창길…. 이곳들을 다 돌아본 뒤 한숨 돌리며 조용히 서점을 들러보는 건 어떨까. 소금빛 서점, 국자와 주걱, 책방 시점 등은 강화도 간 김에 누리는‘소확행’이다.
‘소금빛 서점’ 이 있는 고택 계단을 올라서면 대문 바로 앞 양옆으로 ‘그 여자 그릇 유림상회’와 ‘그 남자 책방 소금빛 서점’이 있다. 그 남자의 안목으로 고른 책들이 진열된 소금빛 서점은, 얼마 전 방영 종료된 SBS 드라마 ‘더킹: 영원의 군주’에서 배우 이민호가 책 읽는 장면을 찍은 장소로 더 알려졌다. 그 여자의 그릇 유림상회는 채색이 독특한 그릇 한 점쯤 갖고 싶게 하는 곳이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책과 그릇이 있는 감성 공간이다(서점과 그릇가게 앞의 대문을 열면 100년 고택 대명헌을 만난다. 김구 선생이 한동안 머물렀다는 운치 있는 한옥 숙박업소로 예약제로 운영된다).
강화읍 남문안길 7
‘국자와 주걱’은 한적한 마을의 한옥을 책방으로 꾸민 시골 책방 겸 북 스테이다. “작은 책방. 작고 불편함. 그러나 좋은 책. 따뜻한 밥상. 깨끗한 잠자리. 그리고 많은 정”이라는 책방 소개글이 다정하다. 책만 보러 갔다가 주인장의 푸근한 인심에 다시 찾는 곳이다. 큰 도로에서 마을길로 접어들어 꼬불거리는 좁은 길로 주춤주춤 운전해 들어가면 이 특별한 책방과 만난다. 강화군 양도면 강화남로 428번길 46-27
아름다운 일몰에 반하다, 장화리
강화도의 마지막 코스는 누가 뭐래도 일몰 풍광이 장관인 장화리다. 강화도 남부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강화 갯벌과 서해의 해넘이는 여행자들의 관심사다. 이곳에서의 일몰 시간은 아주 짧다. 찰나의 장화리 노을 앞에서 두근두근하면서도 경건한 시간을 맛보며 강화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다.
강화군 화도면 장화리
홀로이 보내는 시간이 흡족할 때가 있다. 세상의 소란함 따위는 남의 일인 양 고요히 혼자 놀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이 타의에 의한, 게다가 기약 없이 해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일상생활이 불편해지고 외출이나 대화가 막연해진다.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 또한 어쩔 수 없다. 이로 인한 피로도나 우울감이 증가할 만큼 비로소 사회적 관계의 필요를 실감하는 나날들이다.
그런데 30년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만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집콕' 할아버지가 있다. 그런 괴짜스러운 남편과 사는 아내 히데코가 함께 한다. 영화는 마치 그들을 따라다니며 촬영한 다큐인 듯 덤덤하고 담담하다. 에서 살아가는 잔잔한 이야기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초반엔 모리 부부의 인간극장인 줄 알았다. 일본 근대 화가 구마카이 모리카즈의 실존했던 노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특히 그의 아내 히데코와의 모습은 수채화처럼 담백하고 그저 따뜻하다.
30년 동안 정원을 벗어나지 않고 아내 히데코와 살아가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다. 모리는 언제나 한없이 숲에 앉아있거나 곤충들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정원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잠든 모리의 머리털의 숲(?)속으로 수북한 턱수염 숲 속으로 개미가 자연스럽게 기어 다닌다. 취재차 온 사람들이 정원 숲 속의 모리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대단하네요. 완전 신선이잖아요" 그 모습에 놀란다. "30년 동안 이 정원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으셨어. 요괴나 신선이 아니면 뭐겠어"
또 그 집 앞으로 건물을 짓기 위해 업자들이 설득하러 온다. "아파트 건설은 한참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히데코는 말한다. "하지만 해를 가릴 거란 말은 하지 않았잖아요. 여기엔 많은 나무와 벌레가 살고 있으니까요. 이 정원은 남편의 전부예요"
그 정원에는 노부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숲과 개미와 벌레, 도마뱀, 새소리, 햇빛, 바람, 풀과 나무, 작은 호수... 이 모든 것이 그들에겐 하나의 우주다. 수많은 생명체와 그 정원의 평화를 지키고 싶은 모리 부부의 마음과 자연주의 철학이 전해진다.
촬영 카메라를 정원에만 들이댔을 때는 가히 정글이었다. 인간의 손길로 다듬어진 정원과는 비교할 수 없다. 거칠지만 자연 그대로 그들만의 빽빽한 수풀이었다. 마지막 장면으로 하늘에서 촬영한 모리의 정원은 한 주택가의 작은 마당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들만의 우주라는 표현이 지당한 것은 모리 부부의 생명에 경외감을 갖는 시선과 마음이다.
해마다 피어나는 손톱만 한 꽃도 늘 새롭고 감탄스럽다. 개미의 왼쪽 두 번째 다리가 먼저 움직인다는 걸 발견하는 관심이 있다. 온종일 그 숲에 잠겨 지나다가 움트는 새싹에게 "여태 자라고 있었나" 느릿하게 걸어가는 고양이에게 "이보게나" 부르고, 나풀거리는 나비에게 "어디서 날아오셨나"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넨다.
그런 언어만 쓰며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세상살이란 것이 절대로 그런 언어로만 살 수 없게 만들어져 있는데 모리의 정원에서는 가능하다. 믿을 수 없지만 그들만의 우주인 작은 수풀에 사는 모리 부부에게는 일상의 언어였다. 누구에게나 불가능한 언어였고 일상이지만 99분 동안 힐링은 가능하다. 그리고 모리의 정원에서는 '집콕'이 누워서 떡먹기보다 쉬운 것이었다.
퇴직 후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하여 재취업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만난다. 학원에도 다니고 해설서나 문제집을 사서 독학으로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너무 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시험을 치면 불합격하는 사람이 많다. 나이 많아 외우고 응용하는데 애를 먹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한다. 노후준비는 하루라도 빨리하면 할수록 좋다는 말과 같이 공부도 젊어서 해야 양질의 성과를 빠르게 얻을 수 있다.
인터넷으로 재취업에 유망한 자격증을 검색해보면 상위에 전기기사 자격증이 랭크되어있다. 평소 성격이 꼼꼼하고 기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기기사 자격 취득을 권한다. 자동차운전면허가 있는 사람만이 자동차운전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전기도 위험해서 전기 관련 자격증이 있는 사람에게만 전기 설비를 관리할 수 있도록 법으로 허용해준다.
전기 설비가 일정 용량 이상이 되면 의무적으로 전기기사를 고용해야 한다. 빌딩, 아파트, 공장 등 전기기사를 직접 고용해야 하는 하는 곳이 많다. 전기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재취업이 수월하고 보수도 괜찮게 받는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전기기사 자격증이 인기 있는 자격증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이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한다. 문제는 퇴직 후 또는 퇴직이 임박해서 너무 늦게 도전하기 때문에 자격증 취득이 어렵다는 데 있다.
복잡한 전철 안에서 옆에 앉은 나이 지긋한 분이 무슨 문제집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호기심으로 무슨 공부를 하나하고 곁눈질해보니 ‘전기산업기사’ 수험서다.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볼펜으로 밑 줄 친 곳이 여기저기고 손때가 묻은 책이 너덜너덜하다. 나이 들면 기억력이 감퇴되어 젊었을 때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 반복해서 학습을 해야 한다. 필자도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지금껏 이 일을 하고 있기에 전기계 선배로서 측은한 마음도 들고 무언가 용기를 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공부하는데 어렵지 않으세요?’ 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 보았다. 예기치 않은 질문이었는지 ‘왜 그런 걸 물어봐.’하는 경계의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예 저도 전기 일을 하고 있는데 전기 문제집으로 공부를 하는 걸 보고 반가워서요.’ 전기인이라는 내 말에 아군 같은 동질감을 느꼈는지 경계심이 풀어지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였다. 돌아오는 대답이 ‘아 예! 나이 들어 혼자 공부하니 어렵네요.’
전기는 수학을 응용하여 계산하는 문제가 많다. 미적분도 필요하고 삼각함수도 알아야 한다. 학교를 졸업한 지 수 십 년을 흘러 다시 수학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다. ‘젊어서부터 전기 일을 해 오셨어요? 하고 묻자 ’아니에요. 저 공무원 했어요. 아직은 젊은데 집에서 놀기도 뭣하고 전기 자격증을 따면 취업하기가 쉽다고 해서 도전해보는 거예요.’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재취업을 위해 공부하는 분이다. ‘어때요! 공부해보니 할 만해요?’ ‘어려워요. 머리가 녹슬어서 그런지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려요.’ ‘나이 들면 힘들지요 반복해서 자꾸 하는 수밖에 없어요. 기왕 시작한 것 열심히 하셔서 자격증을 꼭 따세요. 그런데 전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으니 실무에 종사할 때는 위험하니 아주 조심해야 됩니다.’
수명 100세 시대를 살려면 새로운 직업을 두세 번 경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취업을 위해 꼭 전기기사자격증을 취득할 필요는 없지만 의무 고용 제도가 있는 자격증이 좋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자격증 취득을 마음먹었다면 하루라도 빨리 준비해서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의무 고용 제도가 취업에 유리하다고만 생각할게 아니라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의무 고용 제도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동차 운전이 위험하기 때문에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만이 운전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 운전면허를 처음 취득하면 운전경험이 없어 서툴고 사고의 위험성도 높기 때문에 운전 영업에 바로 뛰어들 수 없고 운전 경력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전기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도 전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기 때문에 전문 기술자 밑에서 트레이닝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도 자격증 취득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코로나19가 행동반경을 많이 좁히고 있다. 소일거리가 마땅치 않은 은퇴자들에겐 더 지루한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기자는 뒤늦게 배운 사진 취미로 카메라를 가지고 무료하지 않게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낸다.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취미를 만들어둔 것이 잘한 일 중에 하나란 생각을 하게 했다. 사진 취미가 왜 혼자 놀기에 좋을까?
첫째, 카메라를 가지고 놀기에 혼자서도 덜 심심하다
마라톤, 도보 등 맨손으로 하는 취미도 있으나 도구를 가지고 놀면 당연히 덜 심심하기 마련.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온종일 놀 듯 하루종일 즐길 수 있다.
둘째, 같은 장소, 같은 피사체를 놓고도 다양한 촬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각, 즉 앵글에 따라 또는 시간에 따라 한 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촬영할 수 있다. 사진 소재 또한 주변에 널려 있어 카메라만 손에 쥐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셋째, 촬영자가 사진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어 시간이 잘 간다
카메라에는 “타이머”란 기능이 있어서 촬영자 스스로가 사진 속의 인물로 등장할 수 있다. 단순한 사진 속의 인물로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장면의 주인공으로 시선을 끌 수 있다. 언덕에서 뛰어내리는, 하늘을 나는 듯한 모습의 사진을 만들 수 있다. 타이머를 10초로 설정한 스마트폰 카메라를 삼각대에 설치하고 구도를 정한 후 적정한 위치에서 높이 뛰어오르기 또는 뛰어내리기를 하면 사진 속의 인물로 찍힌다. 타이머 설정 시간에 맞추기가 쉽지 않아 여러 번을 반복해야 한다. 아래의 사진은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만들어졌다. 이런 힘든 과정을 통하여 근력도 키울 수 있다. 동영상 촬영도 혼자 시간 보내기에 아주 좋은 사진의 한 방법이다.
넷째, 여행과 걷기 운동을 겸할 수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여러 곳을 다녀야 하기에 걷기와 여행은 기본이다.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꿩 먹고 알 먹는 형국의 취미활동이다.
다섯째,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돈이 되는 취미로 전환할 수 있다
예전과 달리 카메라를 별도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놀랄 정도로 발전했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현재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충분하다. 취미활동을 위한 별도의 장비 구매 비용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전문가 수준이 되면 용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사진을 배우려는 층이 많아져 강사로 나설 수 있고 작품 출품 등 상금 획득의 기회도 많다. 사진기자로도 활동할 수 있다.
이처럼 사진은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할 수도 있지만, 혼자서 잘 놀 수 있는 취미활동이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100세 장수 시대의 여가활동으로도 필요하지만,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환경에서 지루하지 않게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로 활용될 수 있다.
‘논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가. 빈둥빈둥하는 것도 노는 것이지만 바쁘게 노는 건 방향이 있고 의미가 있는 놀이일 것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처럼 인간은 먹고살기 위한 일 외에는 놀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놀이에서 예술 활동이나 스포츠 활동이 생겼다는 사실을 보면 논다는 게 단순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혼자서 놀아도 그 방식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내 경우 직장이 없어 노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아내를 도와 집안일을 하는 거야 누구나 할 테고 그런 일을 빼고 나면 취미생활이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는 삶의 영역을 노는 것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의 ‘집에서 혼자 놀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얼마 전 ‘힘들지만 즐거운 여름나기’라는 제목으로 전원생활의 빛과 어둠을 비교해 글을 썼다. 즐거운 것 중 하나로 매실주 담그는 얘기를 했는데 늦가을인 요즘, 애주가로서 그때 담근 매실주를 조금씩 마셔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열심히 골프를 치러 다녔다면 이런 맛을 즐기는 호사를 누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 친구가 은퇴 후 10년이 된 나이인데도 테니스를 열심히 치러 다닌다 해서 좀 부러웠다. 나는 젊은 시절 치다 이마를 다친 후 손에서 놨다. 하지만 코트 위의 검투사처럼 사각 틀 속에서 온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테니스의 매력은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 친구는 체력은 문제없는데 같이 칠 파트너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서글픈 현상이지만 어찌할 것인가. 골프나 테니스에 대한 나의 희미한 갈망은 텔레비전 중계로 풀곤 한다.
재미 들린 작은 농사
스포츠도 에너지를 소모하는 운동이지만 꽃과 나무들을 돌보는 데도 에너지를 많이 쓴다. 꽃나무들은 사올 때처럼 예쁘게 가만 있지 않는다. 보기 흉하게 자라지 않도록 가꿔줘야 한다. 그냥 놔두면 야생의 숲처럼 돼버린다. 하루 작정하고 나가 일하면 겉옷 속옷 할 것 없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린다. 일을 끝내고 샤워 후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면 그 즐거움이 스포츠 활동과 진배없다. 무언가를 생산했다는 보람까지 느끼면 쾌감이 더 오래간다.
꽃나무뿐만 아니라 40~50그루 규모의 블루베리 농사도 짓고 있다. 열매를 1년 내내 생으로 또는 가공해서 먹을 수 있어 좋다. 블루베리는 면역력 향상은 물론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소문이 나 있는데 눈을 좋게 해주는 효능도 크다. 실제로 연전에 돋보기를 맞춰 뭘 읽을 때마다 써보니 영 거추장스러워서 아예 빼닫이에 넣어놓고 있었는데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부터는 지금까지 돋보기 찾을 일이 없다. 한번은 쓰고 다니는 근시 안경이 맞지 않아 안경점엘 갔는데 시력이 더 좋아졌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현상 아닌가.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다.
7년 전 블루베리 2년생, 그 어린것을 심어놓고 밤낮으로 물 주며 돌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키가 2m를 넘는다. 커갈수록 일은 더 많다. 잡초 뽑고 오래된 가지 베어내고 더 이상 크지 않도록 긴 가지는 잘라주고, 누운 가지는 지지목을 대주기도 한다. 품종별로 익는 시기가 달라 열매 따기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또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집어서 따야 한다. 수확 시기가 되면 우리 부부의 블루베리 열매 따기 걱정이 시작된다. 내가 “좀 덜 따고 놔두면 어때? 떨어져서 개미가 먹으면 안 될 일이 있나?”하며 늑장을 부리면, 아내는 “1년 내내 먹을 블루베리잼은 어떻게 만들죠? 그렇게 좋아하는 작은애한테는 뭘 보내주죠?” 한다. 블루베리 농사는 벌써 9년째에 접어들었다. 돈 생기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는 일이다. 가족들과 나누고 지인들에게도 한 번씩 맛보게 하려면 고생스러워도 해야 한다. 사는 게 그런 것 아닌가. 작은 농사를 지어도 이렇게 배우는 게 많다.
스포츠와 농사를 비교한다는 건 좀 웃기는 일이다. 그렇지만 여럿이 하는 스포츠에 비해 농사는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집중을 하다 보면 나름대로 지혜도 는다.
명품 매실주 담그기
매실주 담그는 재미에도 푹 빠졌다. 애주가로서 담금 매실주를 조금씩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매실로 주로 우메보시를 만들어 먹는데, 우리처럼 청매를 쓰는 게 아니라 다 익은 황매를 이용한다. 익은 열매는 나무 밑에 보자기를 낮게 매달아놓고 가지를 털면 잘 떨어진다. 우리 부부는 그런 준비까지 할 여유가 없어서 그냥 긴 대나무 장대로 털어낸 뒤 주워서 모으는 방식으로 수확을 한다. 그렇게 두어 시간 몰입해 작업을 하고 나면 만족감이 든다. 큰 플라스틱 용기에 쌓이는 굵고 누런 매실이 얼마나 듬직해보이던지. 수확 후에는 세척하고 말리는 데 하루를 다 써야 한다. 다음 날에는 큰 유리 용기에 담금용 소주를 붓고 매실주를 담근다. 매실을 저울에 재서 일정량을 쏟아 넣고 거기에 맞춰 소주를 부으면 된다. 자그마치 큰 용기 두개, 작은 용기 한 개. 세 용기에 채워놓고 나면 뿌듯하다. 이런 상태로 5년은 숙성해야 마실 만한 명품 매실주가 된다. 좋다. 5년을 기다려보자 하면서 작업을 마쳤다. 흐뭇한 마음으로.
독서와 음악 감상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지내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항간의 말은 맞다. 알면서도 못하는 건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 또한 맞다. 학교 다닐 때 취미를 기록해 써낼 때가 있었는데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쉽게 피아노, 바이올린, 축구, 노래하기 등을 써넣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독서, 음악 감상 같은 걸 취미라고 기록했다. 커가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취미가 없으면 그때마다 독서 아니면 음악 감상이 등장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독서를 취미로 할 만큼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음악을 즐기는 사람도 흔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음악을 좋아하는 걸 큰 다행으로 여긴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노래방을 찾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우리 생활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부분은 실로 엄청나다. 전국노래자랑, 복면가왕, 히든싱어,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케이팝스타, 위대한 탄생, 미스트롯, 미트터트롯 등 텔레비전 프로그램만 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노래와 음악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요즘 프로그램만 꼽아봐서 그 정도이지 노래와 함께하는 것들을 다 열거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민족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클래식 듣기를 좋아해 지금도 집에 들어오면 일단 오디오나 텔레비전 음악 채널을 틀어놓는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음악을 듣고 있다. 고교 시절, 서울에 올라와 지내는데 어느 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선율을 듣게 됐고 푹 빠져버렸다. 그렇게 ‘대단한 경험’을 하고 나서부터 나는 클래식 음악만 들려오면 귀를 기울이곤 했다. 좋은 오디오와 LP 음반을 많이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어 종종 그 집에 가서 감상을 하거나 빌려와 들어보기도 하면서 음악 감상 취미를 길러왔다.
매혹적인 나만의 ‘소리’에 취하다
20여 년 전 비엔나에서 근무할 때 덴마크 산 뱅앤올룹슨(Bang&Olufsen, B&O)을 제법 비싸게 사서 듣고 다녔다. 그 후 여기저기 옮겨 다닐 때도 늘 잊지 않고 챙겼다. 지금도 제주 집에 놓고 수시로 음악을 듣는다. 나는 한 번씩 서울에 가면 교보문고에 들러 음악 시디를 아낌없이 사온다. 아내는 이 기기에 ‘남편 장난감 1호’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생일 때 선물로 받은 노트북, 소니 카메라는 2호쯤 될 것이다. 어쨌든 이 음향기기는 딱 한 번 고장이 나서 회로를 교체하는 등 수리를 한 적 있지만 아직까지 처음의 성능을 잃지 않고 있다. 무얼 더 바랄까.
내가 듣는 음악, 우리가 듣는 음악은 정말 다양하다. 나는 클래식은 말할 것도 없고 각국의 대중음악을 다 좋아한다. 샹송, 팝송, 칸초네, 칸시온, 컨트리, 탱고, 파두 등등. 라디오 방송 중 클래식 다음으로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KBS클래식FM의 ‘세상의 모든 음악’이다. 세상의 모든 음악 속에는 세상의 모든 삶이 녹아들어 있다. 감상하다 보면 그 사람들과 교류하는 느낌이다. 적어도 그런 감성으로 모든 음악을 듣고 즐기고 이해한다. 스페인 음악을 듣다 보면 ‘코라존(Corazon)’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번역하면 Heart, 즉 마음, 사랑, 애인이다. 노래를 듣다가 이 가사가 나오면 시공을 초월해 사랑에 빠진 남녀가 상상된다.
클래식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니 이렇다 저렇다 하기는 좀 그렇지만 고전음악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삶의 기본을 생각하게 해주는 느낌이 든다. 대중음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의 감정을 고양된 형태로 표현해주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많은 천재 작곡가들이 온 정열을 바쳐 만든 음악을, 최고의 기예를 뽐내는 천재 연주가들이 빚어내니, 그 소리는 바꿔 말하면 천상의 소리에 지상의 양식이요 품격인 것이다. 그러니 음악에 빠졌다는 건 엄청난 경험이자 행복이라 할 수 있다.
하우스 콘서트를 열다
아마추어일 뿐인 음악 애호가로서 크게 한 번 객기(客氣)를 부린 일이 있다. 부모님을 통해 알게 된 재영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 황이 한국에 요양차 한두 달 머무르는 기회에 남산 언저리에 있는 우리 집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연 것이다. 런던에서 연주활동을 하는 그는 7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바이올린을 배웠고 9세 때 신동으로 등장한 젊은 음악가다. 고교 시절에는 공부를 너무 잘해 케임브리지대학교와 왕립음악원에서 입학 허가를 받고 전자를 선택했다. 1688년에 제작된 과르네리우스의 악기로 연주하는데 그 소리가 형용할 수 없이 좋았다. 그는 나흐트무지크(Nachtmusik)란 이름으로 그날 여섯 곡을 선사했다. 좁은 집이었지만 여남은 명이 참가해 나름 성황을 이뤘다. 처음 해본 하우스 콘서트치고 성공이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제주와 서울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어보고 싶다. 음악 애호가가 많을수록 세상이 평화로워진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순진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클래식 음악의 본질이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주 가는 이태원에 루체(LUCE)라는 시니어 아마추어 성악가 모임이 있어 이따금 그들의 연주를 듣는다. 모두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음악의 힘이다.
글 쓰면서 혼자 놀기
집에서 혼자 놀기 중 내 시간을 가장 많이 쓰는 건 글쓰기다. 이젠 취미가 됐다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글을 써서 어디 기고를 하면 원고료도 나오니 돈 써가며 하는 취미가 아니라 시간도 잘 보내면서 돈도 생기는 취미다. 글 써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은 일이라서 어떨 때는 지겹다고 한다. 나는 다르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정기 필진으로 참가하고 있는데 한 달에 한두 번꼴로 글을 쓴다. 주제와 형식이 자유롭다. 단, 원고료는 없어 일종의 재능 봉사라 할 수 있겠다.
글이라는 건 아무 때나 써지지 않는다. 글 한 편 쓰기 위해 평소에 늘 글감을 생각하면서 지낸다. 이게 또한 재미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면 어떤 글이 나올까, 그 공연은 어떤 글감이 될까, 저 활동을 하면 어떤 글로 이어질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니 심심치 않다. 글을 발표하면 주변 친구들과 지인, 동창, 각종 단체에도 보내는데 갖가지 독후감을 보고 듣는 재미도 있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자유를 느낀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쓰지는 않는다. 잘 쓰고 싶은 욕심에 나름의 원칙을 갖고 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은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한다. 첫째, 읽는 사람이 재미를 느껴야 한다. 둘째, 많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나는 일로서든 취미로서든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겠지만 이 두 가지 기준에 충실할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한순간 한순간이 좋은 글을 만들기 위한 생각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혼자 놀아야 할 때가 많아진다. 어떻게 혼자 잘 놀 것인가?
스마트폰이 혼자 놀기에 딱 맞는 도구라는 생각이다. 단순한 게임에서부터 취미생활 그리고 자아실현 도구로까지 사용 가능한 손 안의 컴퓨터다. 그러나 시니어들의 활용도는 50%에도 못 미치는 것 같다. 일상을 더 스마트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다양한 활용법을 익혀 두면 좋지 않을까?
우선 취미관련 앱을 사용해보자. 카메라와 사진편집, 그림 그리기가 있다. 사진의 대중화로 남녀노소 구분 없이 즐긴다. 스마트폰마다 기본으로 설치된 카메라 앱을 비롯하여 다양한 기능을 가진 것도 많다. ‘라인카메라’도 시니어들이 사용하기 좋은 카메라 앱이다.사진 편집기 ‘스냅시드’도 권한다. 그림그리기 ‘크레용’도 취미를 살리면서 시간 보내기에 아주 좋다.
일상을 더 편리하게 하는 앱도 이용해보자. 국민연금공단에서 제공하는 건강관리 앱(건강IN)은 건강에 관한 정보를 기본으로 하고 현재 자기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 약국, 응급실을 알 수 있게 도와준다. 자신의 검진 결과와 진료 및 투약정보도 알 수 있다. 또 일상을 편리하게 하는 ‘마트 앱’이 있다. 집에서 손쉽게 장보기를 할 수 있다.
일상을 즐겁게 해주는 앱도 활용해볼 만하다. 대표적인 것이 노래방이다. 평범한 일상을 즐겁게 해주는데 노래만큼 좋은 것도 없다. 집에서 혼자서 즐길 수 있다. “애브리싱”이 그런 종류로, 진짜 노래방에 있는 듯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굳어가는 뇌를 말랑말랑하게 하여 치매 예방을 할 수 있는 ‘가로세로 낱말찾기’, ‘단어찾기의 왕’, 블록게임 ‘애니팡’도 있다.
세상과 소통하는 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다.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 그리고 인스타그램 등이다.
스마트폰의 기능 중에서 시니어에 꼭 필요한 앱을 배워 활용하면 일상이 확 달라지고 하루가 짧게만 느껴질 것이다. 혼자 놀기에 이보다 더 좋은 도구도 없다. 늘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 그 활용도를 높여 보자.
작년 연말 ‘브라보 마이 라이프’ 행사에서 운 좋게 행운의 1등 경품에 당첨이 되었다. 경품은 고속터미널 근처 고급 호텔의 하루 숙식권이었다. 50만 원에 상당하는 경품이라고 했다. 경품 1등이라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무대에서 노래 한 곡 하라는 주문까지 받아 ‘빗속의 여인’을 불렀다.
2인용에 금년 3월 말일까지가 유효기간이다. 알아보니 오후 3시 이후에 체크인해서 3시간 동안 클럽에서 칵테일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1박 후 아침 식사까지 제공한다고 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하고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연말에는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저녁 식사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밖에서 하거나 호텔 레스토랑에서 별도 비용을 지불한 뒤 해야 한다. 클럽도 여러 명이 갈 경우 2명 초과 인원에 대해서는 추가 요금을 내야 하고 자리가 없으면 입장이 거부될 수도 있다고 했다. 항공사 마일리지를 막상 사용하려면 걸리는 문제들과 비슷했다.
이럴 경우 1순위로 생각할 수 있는 게 여자 친구와의 멋진 하룻밤이다. 단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하이네의 ‘노래들’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묻지요.
오늘은 내 사랑이 찾아오려나?
저녁이면 나는 쓰러져 한탄하지요.
오늘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고.
위의 시처럼 불행하게도 여자 친구와의 멋진 하룻밤 꿈은 물거품처럼 희미하게 사라져갔다. 같이 술 마실 수 있는 상대야 구할 수 있지만, 배우자가 있는 사람들이 1박은 무리라서 결국 혼자 자는 것도 생각해봤다. 그러나 술 취해 잠들고 나면 아침. 한창때 해외 출장 다니던 시절, 고급 호텔을 이용했을 때 그랬다. 그처럼 실속 없고 허망한 일은 없다.
책 ‘혼자 놀기’에서 읽은 대목도 계속 맴돌았다. 저자가 얹혀살던 언니네 집에 언니의 남자 친구가 자고 간다 해서 친구네 집에 가서 하루 자고 올 요량으로 집을 나왔으나 가지 못하고 동네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제대로 힐링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읽을 때는 공감했으나 막상 내가 실행하려니 좋은 생각 같지 않았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아쉽지만, 남자끼리 가서 실컷 술이나 마시다가 오자는 사람도 있었다. 애인이 있는 후배가 저녁은 자기가 살 테니 숙박권을 넘기라는 제의도 있었으나 내키지 않아 거절했다.
경품권을 손에 쥐고 나서 꿈만 100일 정도 꿨다. 결국 마음대로 안 되고 시간만 가자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었다. 이래저래 유효기간이 다가왔고 일주일 전 예약을 감안하면 더 이상 내가 사용하기에는 무리였다. 아프리카 여행 일정이 원래대로 진행됐다면 남은 시간은 더 촉박했다. 그래서 그동안 바빠 얼굴도 자주 못 보던 딸에게 전화를 했다.
딸은 숙박권을 아들 부부에게 넘기자고 했다. 결혼기념일도 다가오는데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일단 만나야 하니 겸사겸사 식사나 같이하자고 했다. 결국 경품권을 넘겨주기 위해 아들딸과의 단출한 식사자리가 마련되었다. 딸 그리고 아들 부부가 네 살 된 딸과 같이 왔다. 그런데 아들이 마음만 받겠다며 딸에게 티켓을 넘겼다. 딸은 최근 인사이동으로 헤어진 단짝 여자 친구와 같이 1박을 하겠다고 했다. 아파트도 공동명의로 같이 산 막역한 사이다. 밤새 할 말도 많고 특별한 이벤트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오늘의 식사비용도 그래서 반반 내기로 했단다. 아들딸을 만나 앞으로 이런 일이 없더라도 자주 만나자고 약속했다. 모두 경품권 덕분이다. 내게 좋은 상대가 생기면 현금을 내고서라도 호텔 1박 힐링을 염두에 두겠다는 생각도 이번에 얻은 소득이다. 화이트데이 다음 날 딸로부터 신나는 하룻밤이었다며 감사의 문자를 받았다.
모임이 있는 날은 늘 그랬던 것처럼 저녁 술자리가 끝나고 가는 곳이 정해져 있다. 저녁 자리까지는 의무에 속한다. 식사 겸 술 한잔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의례적 행사가 끝나야 비로소 옵션이 풀리는 셈이다. 집에 일찍 갈 사람은 가고 각자 흩어진다. 뜻이 맞는 몇몇 친구들은 한잔 더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다. 맥줏집을 찾기도 하고 요즘은 실내 스크린 골프장을 찾기도 하는데 주로 가는 곳은 당구장이다. 그런데 나는 당구를 배우지 못했다. 학창 시절에는 축구와 농구를 좋아해 틈만 나면 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반면 당구는 한때 불량 학생들이나 동네 건달들이나 하는 운동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담배 연기 뿌옇고 신문지에 덮인 자장면 그릇이 놓여 있는 곳, 그것이 당구장에 대한 내 첫 인상이었다.
그래서 직장 다니면서도 당구가 끌리지 않았다. 당구 치러 가자고 하면 볼일 있다고 아예 빠져버렸다. 가끔 어쩔 수 없이 따라가도 신문을 보거나 커피 한잔 하면서 무료하게 기다렸다. 그러면 짝이 안 맞는다고 당구 좀 배우라고 야단들이었다. 나이 들어서도 친구들과 놀기에 좋은 운동이라면서 주변에서 강력히 권했다. 몇 번을 거절하다 ‘그럼 한번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집에 오는 길에 근처 당구장에 등록했다. 어떤 운동이든 기초를 배울 때가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당구는 용어 자체가 대부분 일본어였다. 오시(밀어치기), 하끼(끌어치기), 비껴치기(비켜치기), 삐루(회전), 겐세이(방해) 등 외래어 일색이었다. 어쨌든 시원시원하게 진도를 나가면 좋겠는데 며칠 동안은 공도 안 주고 자세만 가르쳤다. 안 쓰던 근육을 써야 했고 자세도 불편했다.
얼마 후 겨우 공을 만지게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큐대를 다마(공)에 대고 몇 번 어르듯하다 그대로 밀어쳐야 하는데 몸이 흐트러지며 공이 계속 비켜나갔다. 남들이 치는 것을 보면 별거 아니고 쉬워 보였는데 실제 해보니 전혀 달랐다. 정확한 계산도 있어야 하고 판단력도 필요했다. 그냥 대충해서 되는 운동이 아니었다. 맞은 공이 정확히 각을 이루어 다른 공을 맞힐 때는 신기하기까지 했다. 예술이라 할 정도로 멋있었다. 그러나 초보인 내게는 따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마는 핑핑 돌며 실수를 반복했다. 내 평생 구기운동을 이렇게 재미없게 해본 적이 없었다. 테니스를 할 때도 열심히 했고 재미도 있었다. 축구, 농구, 탁구 등도 그랬는데 당구에는 영 소질이 없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당구를 그만뒀다. 좀 더 인내했다면 지금쯤은 친구들과 당구장에서 어울렸을 테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더 배우지 않기로 한 데에는 코치의 영향이 컸다. 그는 초보인 내게 칭찬보다는 질책을 많이 했다. 가뜩이나 억지로 배우러 왔는데 그런 소리가 듣기 싫었다. 못 쳐도 살살 달래가며 칭찬을 해줬더라면 그냥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한두 번 가르쳐주다가 다른 일을 하거나 의자에 앉아 졸다가 이따금 와서는 잔소리만 하고 갔다. 물론 당구는 가르쳐준 대로 혼자 열심히 익혀야 하는 운동이 맞다. 그러나 초보에게는 적절한 칭찬이 있어야 한다.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그 후 바쁜 일이 있어 한두 번 빠지게 됐고 이내 가기가 싫어졌다. 결국 등록한 날짜도 남았는데 큐대를 놓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움이 남는다. 잘하지 못해도 조금이라도 칭찬을 해줬다면 아마 그 말에 속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때의 기분은 이랬다.
‘내 돈 주고 내가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지?’
당구를 배울 때도 손님이 별로 없었지만, 그 후 지나가는 길에 올려다본 간판은 바뀌어 있었다. 당구장 간판이 아닌 노래방 간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