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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초고령 사회는 베이비부머에게 달렸다”
-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와 저출산 속도에 지속가능하지 못한 사회로 변하고 있다. 인구 구조가 크게 변화함에 따라 나타나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언론과 전문가들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다들 지적만 할 뿐 뚜렷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는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만난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대한민국의 초고령 사회를 베이비부머가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정년 연장론과 계속 고용에 대한 논의는 시대적으로 필수불가결하다. 베이비부머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액티브하게 활동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이들에 대한 일자리 정책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문화·의료 정책을 맞물려 제시하면 인구 구조 변화로 발생하는 많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1955년부터 1974년까지 베이비붐 세대 베이비부머는 원칙적으로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세대(1차)를 말한다.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인구 감소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에서 계획적으로 출산을 장려하면서 많은 이들이 태어난 시기다. 1964년부터 출생자가 너무 많다는 의견에 정부에서 가족계획을 강하게 내세워 출산율이 잠시 감소한다. 1964년부터 1967년까지다. 흔히 낀 세대라고 부른다. 이어 1968년부터 1974년까지 다시 2차 베이비붐 세대가 만들어진다. 여기서는 베이비부머를 1955년부터 1974년까지 20년 동안 태어난 세대를 기준으로 한다. 마강래 교수는 “인구 구조를 보면 거대 인구 덩어리다. 1차만 보면 안 된다. 2차도 거대하다. 이 인구 덩어리를 토대로 학술과 정책적인 고민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년을 함께 봐야 올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의견이다. 1955년생은 베이비부머의 맏형으로 지난해부터 65세 이상 고령인구에 편입됐다. 베이비부머는 각 연령별 인구가 60~80만 명으로 총 1700만 명에 달한다. 지난해부터 20년 동안 매해 60~80만 명이 고령인구에 편입된다는 얘기다. 이러면 한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이 발생한다. 매년 60만 명 이상이 국민연금을 최대로 받기 시작하는데, 2018년 국민연금공단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2057년이면 국민연금이 바닥나기 때문이다. 마강래 교수는 “평균 수명이 짧던 과거 기준으로 65세 이상을 복지의 대상으로 잘못 진단해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며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베이비부머는 80세까지 활동할 수 있다. 이들이 10년 이상 더 일을 할 수 있다면 국민연금 고갈, 경제활동 인구 감소, 부동산 가격 상승까지, 한국 사회가 직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해결책으로 내세운 전략은 도시의 베이비부머가 가고 싶은 지역이나 지방으로 귀향하는 것이다. “베이비부머가 수도권에 800~900만 명 있고, 수도권에서 태어나지 않은 다른 지역 출신이 440만 명”이라며 “이들 중 60% 이상이 고향으로 가거나 수도권을 떠나고 싶다고 밝혔다.” 440만 명 중 10~20%만 귀향을 해도 임팩트가 엄청나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10%인 44만 명이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하면 이들이 소유하거나 거주하던 주택이 매매와 전월세로 나온다. 부부가 겹치는 경우를 고려해도 최소 20만 호 이상이 시중에 나온다. 마강래 교수는 “현재 매매와 전월세 시장에서 이보다 빠르고 효과가 큰 정책은 없다”고 설명했다. “가장 부자이면서 가난한 세대” 그런데 현실은 60%는커녕 몇 퍼센트의 베이비부머도 귀향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살 만한 곳을 찾지 못해서다, 귀향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일자리인데, 베이비부머에게 맞는 일을 지방에서 찾기 어려워서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모이는 이유도 일자리 때문인데, 지방에서 베이비부머가 할 만한 일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베이비부머는 주택 등으로 재산이 가장 많은 세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은퇴한 베이비부머에게 일자리가 필요한 걸까. 마강래 교수는 “가장 부자이면서 가난한 세대다.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이라고 평가했다. 베이비부머가 상대적으로 재산은 많은 편이지만 대부분 깔고 앉아 있다 보니 가난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베이비부머는 과거에 샌드위치 세대로 불렸다. 부모를 모시고, 자식도 챙겨야 했다. 그런데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임금과 부동산이 크게 올라 부를 축적한 세대가 됐다. 시간이 흘러보니 요즘 청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았던 것으로 나오지만 당시에는 매우 힘들었던 세대다. 실제로도 베이비부머가 여유롭지는 못하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마강래 교수에 따르면 은퇴 후 부부 기준 필요한 생활비가 월 240만 원, 최소 생활비가 176만 원이다.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은퇴 후 부부 생활비 현황을 살펴보면 상위 그룹은 135만7000원, 중위 그룹은 98만1000원, 하위 그룹은 79만3000원으로 확인됐다(최상위 5%, 최하위 5% 제외 시). 이처럼 은퇴한 부부들은 필요한 생활비는커녕 최소 생활비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자산이 가장 많다는 베이비붐 세대도 일이 없으면 생활이 어려워질 만큼 일자리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청년 일자리도 부족하다는데 이들까지 고려할 수 있을까. 마강래 교수는 “베이비부머에게 필요한 일자리는 기존 일자리와 다르다”며 “은퇴 후에도 일을 하고 싶다는 분들은 많지만 기존처럼 많이 받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베이비부머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는 풀타임 일자리가 아니고, 중소기업에서 일주일에 2~3일 정도 일하고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월급을 받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조건이면 베이비부머가 국민연금과 연계해 부족한 노후자금을 충당하고,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며 즐겁게 생활할 수 있다.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주 4일 근무가 보편화되고 있다. 베이비부머가 주 3일 근무한다면 업무효율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모습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경력과 역량에 비해 요구하는 임금 수준도 매우 낮아, 중소기업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일석이조를 기대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 귀향은 도시와 지방의 상생 전략 부동산이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베이비부머에게 주택연금은 매우 유용한 제도다. 하지만 주택연금을 받으면 실거주를 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귀향을 선택할 수 없다. 또 일정 금액 이상의 주택은 연금을 받을 수도 없다. 그는 “실거주하지 않아도 역모기지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중소도시 지역으로의 귀농이나 귀향이라는 조건을 걸어 도시 주택을 임대할 수 있게 하면, 현재 발생하는 도시의 부족한 임대 시장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제안했다. 마강래 교수는 여기에 정부가 보완 정책을 제시하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역의 중소기업 밀집단지에 타운하우스를 만들어 원하면 30년 동안 거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렇게 하면 해당 지역으로 갈 사람들이 줄을 설 것”이라고 확신을 갖고 말했다. 이와 유사한 임대주택 공급 방식은 실제로도 구현된 바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폐교 직전의 학교를 살리려고 함양에서 주택 12호를 지어 학부모들에게 제공했더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은퇴하면 처음에는 등산에 골프에 바쁜 일정을 보낸다. 하지만 몇 주만 지나면 매일 쉬는 것이 고통으로 다가온다. 베이비부머가 귀향을 해 타운하우스에 살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마강래 교수에 따르면 우선 한 달에 15만 원 정도의 적은 비용으로 거주비를 해결한다. 그리고 거주지 주변 일자리에서 주 2~3일 일하고 150만 원 정도를 받는다. 거주와 일자리, 생활비가 모두 해결된다. 연금 수급도 늦출 수 있어 연금 고갈 시점도 연장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타운하우스에는 공감하며 함께할 수 있는 비슷한 연령대의 친구도 많다. 또 지역에는 인구가 늘어 중소기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 이에 따라 지자체는 문화체육시설 등을 지원하고,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지역 대학과 연계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가 대학에서 교육을 받으면 다른 직종으로 바꾸기도 쉽고, 중소기업도 원하는 인력을 공급받기가 쉬워진다. 마강래 교수는 “이렇게 하면 베이비부머가 도시에서 젊은이들과 일자리 경쟁을 하지 않아 서로에게 이익”이라며 “정부와 지자체가 제대로 준비한다면 도시와 지역, 시니어와 청년이 상생하며 ‘윈윈’하는 모습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노인 복지 측면에서 후진국에 속한다. 마강래 교수는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 앞으로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만큼 복지 지출도 빠르게 증가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현재처럼 수혜의 대상에게 복지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으로는 나아질 수 없다. 대신 복지 비용을 노인들이 활발하게 일하고 생활하면서 삶의 질을 높여갈 수 있도록 보조하는 비용으로 생각하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강래 교수는 정부 및 지자체 관계자들과 함께 베이비부머와 도시 정책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베이비부머의 귀향을 통해 도시 주택 문제도 해결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며 지역 경제와 연금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의 제안처럼 베이비부머가 하루 빨리 귀향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2021-09-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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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 불안에 ‘부업’ 뛰는 60세 이상 20만명 훌쩍 넘어
- 직장에서 밀려난 65세 이상 인구가 소득 불안에 시달리며 여전히 취업시장에 남아 단기 임시직인 아르바이트 같은 ‘부업’에 뛰어들고 있다. 2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분석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60대 이상 '부업자'는 사상 처음으로 20만 명을 넘어섰다. 부업자는 '주된 일 외에 다른 부업을 한 적이 있었던 사람'인데 전체 부업자 56만3000명 가운데 60세 이상 부업자가 22만2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대가 14만 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문재인정부 들어 60세 이상 부업자는 2017년 13만3000명, 2018년 16만5000명, 2019년 18만 명, 2020년 17만9000명(모두 6월 기준) 등 대체로 증가 추세를 이어오다 올 들어 폭증해 20만 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해부터 1955년생 70만 명을 시작으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본격적으로 정년퇴직에 내몰리고 있는 현상과 일맥상통한다는 분석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부업을 하는 사람들의 현황과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과 근로시간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부업 비중이 높았다. 직장에서 밀려난 65세 이상 연령층이 소득 불안에 시달리며, 취업시장에서 단기 임시직 알바 자리까지 전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2021년 5월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갈수록 더 많은 고령층이 재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55~79세 인구 1476만6000명 가운데 앞으로도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68.1%(1005만9000명)로 지난해 조사보다 0.7%포인트 늘었다. 이는 지금 일을 하고 있으면서 장래에도 일하기를 원하거나 지금은 일이 없지만 앞으로는 일하고 싶다고 희망한 사람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고령층 인구가 매년 늘어나면서 생산연령인구와 단시간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우리나라 내국인 인구 5013만3000명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처음으로 800만명을 돌파하며 전체 인구의 16.4%를 차지했다. 1년 전 비중 15.5%보다 0.9%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2030년이 되기 전에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 2021-08-0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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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사자도 헷갈리는 베이비붐 세대 기준…생물학에 사회ㆍ역사 혼합 때문
-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하면서 고령화 사회가 가속화되고, 최근 이들에 의해 소비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는 전망 등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신문이나 방송 등 보도를 살펴보면 미디어마다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기준을 다르게 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베이비붐 세대에 속한 어르신들도 자신이 해당 세대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도대체 베이비붐 세대는 언제부터 언제까지이며, 기준은 무엇일까?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베이비붐은 ‘출생률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어떤 시기의 공통된 사회적 경향을 이르는 말. 인구의 자연 증가율이 현저하게 높아지는 경우로, 대체로 전쟁이 끝난 후 또는 경제적이나 사회적으로 풍요롭고 안정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로 정의한다. 보통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부터 1965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베이비붐 세대로 정의한다. 기간은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독일의 금융그룹인 알리안츠 등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1946년에서 1964년까지,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1946년에서 1967년까지, 스웨덴은 1946년에서 1953년까지다. 일본은 1947년에서 1949년까지로 기간이 짧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이 끝난 1955년부터 베트남 전쟁 참전 전인 1963년까지를 베이비붐 세대라고 밝혔다. 이처럼 나라마다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보도할 때 어떤 나라와 관계된 베이비붐 세대 이야기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언제 태어난 사람들, 지금 나이가 몇 살까지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생물학적 출생자수와 조금 다른 베이비붐 세대 기준 이렇게 널리 알려진 기준이 있는데 왜 미디어마다 국내 베이비붐 세대에 대해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걸까? 그 이유는 실제 출생자수와 출산율이 해당 기간을 다른 기간과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아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는 학자나 관련 전문가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베이비붐 세대를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생물학적으로 출생자수가 기존보다 크게 늘어났을 때다. 김태헌 한국교원대 인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인구전개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의미’라는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베이비붐 기간을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과 달리 출생자수가 급증한 1960년과 1971년 두 시점을 중심으로 전후 각 10년씩 총 20년간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태헌 교수는 우리나라 베이비붐 시기를 1955년부터 1974년까지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다수는 세대는 단순히 생물학적 나이를 넘어 사회와 역사적 특성을 공유하는 묶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단순히 출생자수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최초로 세대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만하임에 따르면 세대에서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 세대’가 아닌 ‘사회와 역사적 세대’다. 만하임은 비슷한 시기에 출생한 사람들은 같은 문화와 역사 경험을 통해 연대감을 가지며, 같은 세대는 생물학적 특성 뿐 아니라 생각이나 행위, 감정 등 상식을 판단하는데 필요한 표준 기준인 준거틀을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세대라는 특성을 고려해 생물학적 특성보다 사회와 역사적 특성을 고려해 우리나라에서 베이비붐 세대를 1955년부터 1963년으로 규정한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이에 해당하는 연령대는 군사독재 시절과 민주화 투쟁, 급격한 경제성장을 경험했다. 또 1997년 외환위기 때 갑작스런 실직을 경험하며 경제적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이 같은 맥락에서 베이비붐 세대를 크게 3차까지 나눠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즉 앞에서 언급한 기간의 세대를 1차 베이비붐 세대라고 규정하고, 1968년부터 1974년까지를 2차 베이비붐 세대, 1979년에서 1992년까지를 3차 베이비붐 세대라고 규정한다. 108만명으로 가장 많은 인구수 기록한 1960년생 왜 이렇게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얼마나 타당성을 갖고 있을까? 실제 데이터를 토대로 주요 연도별 출생자수를 확인해본다. 이 기사에서는 통계청이 공식적으로 1970년 이후 자료만 제공하고 있어, 세계은행 등에서 얻은 자료를 종합해 정리한 위키백과 ‘대한민국 인구’ 자료를 토대로 분석했다. 대한민국 연도별 출생자수와 사망자수 1955년 출생자수를 보면 90만8134명이다. 1954년 83만9293명과 비교하면 출생자수가 8.2% 늘어 1925년부터 1955년까지 봤을 때 1946년을 제외하고 가장 크게 오른 시점이다. 하지만 1000명당 출생자수를 뜻하는 조출생률은 42.9명으로 가장 높은 시점이었던 1956년과 1960년의 43.2명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1955년 이후 계속 올라 1960년에 108만535명으로 최고 출생자수를 기록했다. 1960년생은 2021년 5월 25일 기준으로 만 60-61세에 해당한다. 1961년부터 조금씩 줄기 시작해 1965년에 99만6052명까지 줄었다. 다시 1966년에 103만245명으로 오르기 시작해 1968년 104만3321명, 1969년 104만4943명으로 역대 3번째 출생자수를 기록한 뒤 다시 하락세로 전환했다. 1959년부터 1971년까지 1965년을 제외한 12년 동안은 출생자수가 모두 100만명을 넘어섰다. 1979년은 출생자수가 86만2669명으로 1978년 75만728명에 비해 14.9%나 늘어 역대 2번째로 전년도에 비해 가장 높은 비율로 오른 시점이다. 이후 1981년 86만7409명까지 출생자수가 늘다가 1987년에 62만3831명까지 줄어든다. 다시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오른 뒤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조금의 변동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크게 하락하는 추세가 이어졌다. 이와 같이 연도별 출생자수를 보면 앞에서 제시한 3가지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의견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베이비붐 세대인 1955년부터 1963년까지는 출생자수를 다른 년도와 구분 짓기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김태헌 교수가 주장한 20년 동안은 출생자수를 이용해 구분하기가 쉽다. 1955년에 처음으로 90만명을 넘어 1974년까지 90만명 대를 유지해 출생자수 90만명 이상을 기준으로 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기간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역사에서 출생자수가 90만명을 넘은 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베이비붐 세대, 3가지 의견 다양하게 쓰여 그렇다면 베이비붐 세대는 언제부터 어디까지를 봐야 할까? 다양한 보고서나 연구논문 등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1955년부터 1963년까지 9년간을 뜻한다. 2021년 5월 24일 기준으로 보면 만 57세(생일이 지나지 않은 1963년생)부터 66세(생일이 지난 1955년생)에 해당하는 분들이다. 따라서 특별한 언급이 없다면 베이비붐 세대는 이 기간에 태어난 사람들을 말한다고 보면 된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생물학적 특성보다 사회와 역사적인 환경을 함께 경험하고 공감하는 동질 세대라는 특성이 더 크다는 의미다. 하지만 학자와 미디어에 따라서 베이비붐 세대를 더 확장해서 보기도 한다. 기존 기간을 1차 베이비붐 세대로 보고, 그 이후에도 비슷한 출생자수와 비슷한 사회와 역사적 세대 특성을 나타낸 1968년부터 1974년까지(만 46세~53세)를 2차 베이비붐 세대로 보는 의견이 있다. 학계나 미디어에서도 널리 인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1979년에서 1992년까지를 3차 베이비붐 세대로 보는 의견은 아직 소수로 자주 언급되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최근에 출생자수를 중심으로 구분하기 쉽게 제안한 1955년부터 1974년까지(만 46세~66세) 20년간을 보는 의견이다. 최근에 나온 주장이지만 2차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할 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구분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많은 인구수에 의미를 두고 미래를 전망하거나 분석할 때는 이 기준을 주로 활용하는 편이다.
- 2021-05-2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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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사회통합돌봄, 구체적인 재원 마련 시급
- 지난 12월 15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2005년에 출범하여 저출산 및 고령화의 심화를 대비하기 위한 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있다. 실제로 사회를 지탱할 젊은이는 줄어들고, 사회로부터 지원이 필요한 노인은 증가하는 추세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이 2016년 이후 더욱 하락하여 2019년 기준 0.92명까지 떨어졌다. 합계출산율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임기의 여성에게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일컫는다. 이러한 평균적 수치와 더불어 출생아 수는 2019년 기준 30만 명대로 급감했다. 이와 함께 베이비붐 1세대인 1955년생이 올해부터 노인 인구로 편입된다. 2025년이 되면 고령화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어떤 대비를 하고 있을까?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은퇴 가구 조사에 가구주가 은퇴한 경우는 18.5%였고, 실제 은퇴 연령은 63세였다. 가구주와 배우자의 생활비 충당 정도가 여유 있는 가구는 8.7%로 전년 대비 1.5%P 감소했고, 부족한 가구는 40.6%이며, 매우 부족한 가구는 18.8%로 전년 대비 2.9%P 감소했다. 대체로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반면에 수명은 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생명표’ 따르면 2019년 기준 기대수명 83.3세다. 물론 기대수명처럼 산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63세 은퇴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 통계를 기준으로 하면 적어도 은퇴 이후 20년의 삶이 남은 것이다. 20년은 성인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같다. 따라서 노후를 잘 보내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 혼자 준비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국가적 지원이나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다면 어렵다. 정부에서 발표한 4차 기본계획은 건강하고 능동적인 고령사회 구축을 위해서 세 가지 분야에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소득 분야에서는 생계 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고, 노인 일자리를 확충할 예정이다. 보건 분야에서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을 확산하고, 장기요양 재가 서비스를 늘린다. 한편 주거환경 개선을 위하여 고령자 복지주택 등을 공급하고 고령자 보호구역을 확대한다. 4차 기본계획에서 제시한 방안은 일정 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생계 급여 지급 시 부양 의무자 기준을 폐지함으로써 약 15만 가구의 저소득 노인이 신규로 생계 급여를 받는다. 또한 기초연금 30만 원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40%에서 70%로 확대해서 혜택을 누리는 노인이 늘어난다. 건강인센티브제를 통해 건강 고위험자의 건강개선 노력에 따라 연간 일정액의 건강 포인트를 지급한다. 2023년에는 치매 가족 상담 수가도 도입한다. ◆ 재원은 모호...아직은 걸음마 단계 앞서 발표된 기본계획에 따르면 2022년까지 ‘지역사회통합돌봄법’ 제정을 통해 지역사회통합돌봄을 2025년까지 전국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지역사회통합 돌봄’이란 노인 장기요양 시설에 돌봄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나 지역사회의 지원을 통해 돌봄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는 노인 장기요양 시설에서 발생하는 학대나 코로나19로 인한 집단감염 등 노인 장기요양 시설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노인에게 삶의 자립권과 스스로 요양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가 될 수 있다. 사실 이런 흐름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실제로 영국에서 지역사회통합 돌봄, 이른바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가 도입된 이유는 시설 내에서의 학대나 열악한 환경 때문이었다. ‘탈시설’로 인한 커뮤니티 케어 도입은 우리나라의 현 상황과 비슷하다. 지역사회통합돌봄은 돌봄 서비스의 공급 주체가 ‘시설’에서 ‘지역’으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지자체의 역할이 커진다. 하지만 지자체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서 돌봄 서비스의 질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지난 11월 국회에서 정춘숙 의원 등 11명 의원이 지역사회통합돌봄법을 발의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담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전용호 교수는“지역사회통합돌봄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지역별로 재정 자립도가 다르다. 특정 도시의 경우 지금도 노인 복지 예산이 활발히 운영되지만, 예산이 적어서 상대적으로 잘 운용하지 못하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자립도에 따라 예산을 배분하거나 국가가 나서서 지자체에 적극적으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재원 마련의 모호성도 지적된다. 제출된 법안 제24조에서 중앙행정기관과 지자체의 비용 지원 및 부담을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만 할 뿐, 그 재원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보다 앞서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을 시작했던 일본도 비슷한 문제가 생겼다. 일본은 2005년 ‘개호보험법’을 개정하여 지역포괄지원센터 설립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중심으로 지역 밀착형 서비스 제공을 위한 지역포괄케어시스템 구축했다. 올해 한국사회복지연구회에서 발간된 ‘고령사회 지역통합 서비스의 지속가능성과 과제:일본의 경험과 한국의 방향’에 따르면 15년 앞서 시스템을 구축한 일본에서도 돌봄 서비스의 접근성이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 간의 편차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보장위원회 산하 커뮤니티케어 전문위원회 홍선미 위원장은“지역사회통합돌봄은 국가가 돌봄 플래너로서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을 보살피기 위한 정책이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 구체적인 재원을 섣불리 정할 수 없다. 다만 지역적 편차를 줄이기 위한 재원에 관해서 지자체 및 관련 기관과 충분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 2020-12-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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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적인 노후 위한, 똑똑한 연금 활용법
- 올해부터 1955~1963년에 출생한 베이비부머(57~65세)의 은퇴가 시작됐다.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 격인 1955년생이 올해 노년의 문으로 들어섰다. 롯데멤버스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앞으로 매년 80만 명 이상의 베이비부머가 은퇴 인구로 편입될 전망이다. 은퇴 이후는 수입보다 지출이 늘어나는 시기다. 퇴직 이후 수입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연금을 제외한 수익원이 모두 사라진다. 결국 연금으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명한 연금 활용법은 무엇일까. 은행권에서는 예·적금을 활용한 안정된 노후생활을 추천한다. ◇수명이 늘어나는 상품 올해는 은퇴 분위기가 더 안 좋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아직 퇴직이 이른 베이비붐 세대까지 은퇴의 길로 몰아세웠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올 2~5월에 비자발적 실업을 당한 55~64세 인구는 26만800명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4만4500명보다 11만6300명(80.5%)이나 늘었다. 비자발적 실업은 직장의 휴·폐업, 조기 퇴직, 정리 해고, 기간제근로 만료, 취업 실패, 사업 준비 등 사유로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둔 경우다. 저출산·고령화로 전년보다 56~65세 인구가 증가한 영향도 있지만, 해당 연령의 증가율이 1.7% 수준인 걸 보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기대 수명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런 은퇴 흐름은 골치 아픈 걱정거리를 낳기도 한다. 만약 노후 대책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미래가 고독해질 수 있다. 청장년층이라면 코로나19가 지나간 뒤 일자리 회복을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시니어는 취업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 이른바 100세 시대가 시작되면 은퇴 후 적어도 30~40년의 노후생활을 보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니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은행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건 다행스런 일이다. 은행들은 안정적인 노후소득과 지출관리에 집중한 시니어 금융상품을 추천하고 있다. 특히 연금을 활용한 예·적금이나 통장은 불확실한 노후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고 소개한다. ◇공적연금 수령 전까지 ‘예금’으로 KB국민은행은 은퇴 후 공적연금 수령 전 소득 공백기를 지원하는 가교형 예금상품 ‘KB골든라이프연금우대예금’을 추천했다. 이 상품은 연 0.75~0.95%의 이율을 제공한다. 신규가입 후 3개월 안에 연금수령실적이 있으면 연 0.10%포인트의 이율이 더해지고, 또 같은 기간에 가족 2명 이상이 등록하면 연 0.10%포인트가 추가된다. 계약기간은 1~10년이고, 저축금액은 1000만 원 이상이다. 하나은행은 거래 실적에 따라 금리가 오르는 ‘주거래 정기예금’을 소개했다. 이 상품은 급여, 4대 연금, 아파트관리비, 카드가맹점입금, 하나카드결제, 기타 자동이체 등 거래실적 별로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금리는 최고 1.15%로, 가입기간은 1년, 가입금액은 100만~5000만 원이다. 우리은행은 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은퇴 전·후 50대 이상 고객의 노후 준비와 연금수령 고객의 자산관리를 위해 ‘시니어플러스 우리예금’을 선보였다. 이 상품의 즉시연금형과 회전형 상품은 연 0.55~0.95%를 제공한다. 즉시연금은 1년 예치 후 최장 4년까지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NH농협은행은 은퇴 이후의 삶을 위한 ‘NH All100플랜 연금예금’을 추천했다. 이 상품은 최장 10년까지 거치할 수 있고, 30년까지 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예금이다. 기본금리는 1년 이상~2년 미만 거치 시 1.10%, 2년 이상~3년 미만 1.20%, 3년 이상 1.25%가 제공된다. 이외에도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0.50%까지 우대금리를 준다. 가입금액은 300만 원 이상, 1인당 10억 원으로 제한된다. ◇좀 더 높은 금리 원하면 ‘적금’으로 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원한다면, 적금을 고려해 볼 만하다. KB국민은행은 연금이체와 재예치 실적에 따라 우대이율을 제공하는 ‘KB골든라이프연금우대적금’을 소개했다. 이 상품은 연 1.05~1.25%의 이율을 제공하고, 신규일로부터 3개월이 경과하는 날이 속한 달까지 연금수령실적이 있으면 1년간 연 0.2%0포인트를 준다. 또 자동재예치를 신청하면 1년 단위로 연 0.10%포인트를 제공한다. 1년 단위로 4회까지 자동재예치할 수 있다. 이 상품은 회차별 1만 원 이상, 매월 300만 원 이하를 자유적립할 수 있다. 하나은행은 든든한 노후를 꿈꾸는 고객을 위한 ‘연금하나 월복리 적금’을 내세웠다. 연금 이체 실적 하나로 높은 우대금리가 적용되고, 월복리에 이자에 이자를 더 주는 목돈 마련 상품이다. 긴급자금이 필요할 때 찾을 수 있고, 적금 만기도 자동관리되는 연금수급고객 전용 상품이다. 금리는 최대 2.70%(3년, 스마트폰뱅킹 가입 또는 만기 재예치 시)이다. 가입기간은 1년, 2년, 3년 중 선택할 수 있고, 분기당 1만~150만 원 한도로 적립이 가능하다. 우리은행은 ‘시니어플러스 우리적금’을 추천했다. 시니어플러스 우리적금은 즉시연금형의 경우 연 1.05~1.45%의 이율을 주고, 3년 납입 후 2년간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증여우대형도 연 1.05~1.45%로 이율이 동일하지만, 만기자금을 직계비속(손·자녀)에게 이체 시 우대금리가 제공된다. NH농협은행은 ‘NH All100플랜 적금’을 소개했다. 이 상품의 계약기간은 최장 20년이고, 계좌별 초입금 10만 원 이상, 매입금 1만 원 이상이다. 한도는 1인당 매월 500만 원, 총 납입액 10억 원 이내다. 기본금리는 신규 또는 적립 시 1.25%, 자동재예치 1년차 1.30%, 자동재예치 2년차 이상 1.35%를 준다. 이외에도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0.50%까지 우대금리가 제공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초저금리 시대가 이어지고, 시장의 불확실성이 부각되면서 베이비붐 세대의 관심이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노후 금융상품으로 향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은 각종 연금과 목돈을 활용하는 시니어 금융상품을 꾸준히 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 2020-07-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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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 후에도 만족하는 사람들의 특성
-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의 맏형격인 1955년생들이 노령인구(만 65세)로 편입되기 시작하는 올해, 주된 일자리 퇴직 후 느끼는 삶의 만족도를 조사한 책이 나왔다. 한국고용정보원(원장 나영돈)은 6월 2일, ‘베이비부머의 주된 일자리 퇴직 후 경력경로 및 경력발달 이해를 위한 질적 종단 연구(6차년도)’ 보고서를 발간했다. 2014년부터 6차에 걸친 그간의 조사들은, 중장년층의 안정적인 노후 설계와 사회 패러다임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 향상을 위한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 이번 연구는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후 생산직 일자리로 재취업한 42명의 베이비부머를 표본으로 선정한 후 지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간의 심층 인터뷰 결과와 변화를 분석했다. 또 사례 분석을 통해 인생 후반기의 삶을 위한 요소들을 밝히고 만족스런 삶의 공통된 특징들을 제시했다. 보고서의 사례들 사례자 A(62세) 씨는 대기업에서 26년 근무하고 임원으로 퇴직한 후, 공사 현장 쇠파이프 운반, 대형마트 상하차를 거쳐 공공기관 시설보안직으로 재취업했다. 그는 “정년퇴임 후, 처음에는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회사라는 온실을 잊고 근로의 가치를 신성하게 보기 시작했다”며 “생활철학을 바꾼 뒤 일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고 밝혔다. B(59세) 씨는 반도체 제조업 회사인 대기업에서 30년간 회계 관련 업무를 담당하며 해외법인 CFO로 근무하다 두 차례 임원 승진에서 밀려난 뒤 퇴직했다. 이후 2015년부터 혼자 스몰비어 호프집을 창업해 4년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꼭 돈이 많아야 행복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돈은 기본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만 벌면 된다고 마음먹으면서 좀 편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투자신탁회사와 증권사에서 총무·영업직 등을 거쳐 퇴직한 C(62세) 씨는 자격증을 취득해 6년째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퇴직했을 때 자녀들은 아직 독립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얼마 동안은 그토록 버틴 회사에서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나와 허탈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이후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돈 욕심도 내려놓고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가장의 역할을 다 하려고 노력하면서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며 “아들이 ‘아빠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문자도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퇴직 후에도 만족하는 사람들의 특성 보고서는,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후에도 만족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겪은 공통된 경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퇴직에 따른 심리‧정서‧관계‧경제적 위기를 겪는다. 2. 변화에 대한 적극적 수용을 통해 과거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다. 3. 현 상황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고 경제적 필요를 충족하면서 자신을 위한 삶을 지향한다. 4. 위의 과정을 통해 가정과 사회에서 존재감을 회복한다.
- 2020-06-1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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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핏덩이 셋을 두고 전쟁터로 가신 아버지
- 6월은 호국충절의 달. 2020년 6월은 내게 특별한 달이 될 것 같다. 아버지를 호국원에 모실 수 있어서다. 아버지는 30년 전인 1990년 64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30년이 지나도록 우리 가족이 잊고 있었던 게 있다. 어린 시절 우리 형제들은 시골집 장롱 서랍을 뒤져 신기한 물건들을 가지고 놀곤 했다. 그 물건들 중 알록달록한 끈에 매달린 둥근 마패 같은 게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이사를 하면서 그 시절의 장롱은 버려졌고, 그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 장난감이 떠올랐다. 살아생전 아버지는 가끔 전쟁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신, 참 불행한 세대라고만 여겼다. 그러다 우연히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대한 기억이 났고, 그 물건이 혹시 아버지가 전쟁 때 받은 훈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렇다면 실체를 알아내 명예를 찾아드리는 게 옳다는 판단에 병무청에 문의를 했다. 병무청 보훈처로 몇 차례 문의한 결과 한참 만에 답변이 왔다. 오래되어 훈장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없지만 6·25 참전 용사가 확실하니 서류를 갖춰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아버지는 1927년생으로 1952년 7월 4일 입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6·25전쟁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발발됐고 1953년 정전협정이 이루어졌으니 전투에 참여한 것이 분명했다. 입대 기록을 상황을 살펴보다 기가 막혔다. 아버지는 모두 6남매를 두셨는데 당시에는 3형제가 있었다. 첫째가 네 살, 둘째가 두 살, 셋째는 아버지가 입대한 해인 1952년생이었다. 결국 핏덩이 같은 자식 셋을 두고 전쟁터로 나가신 것이다. 처자식을 두고 생사가 어찌될지 모르는 전쟁터로 떠나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만약 아버지가 안 계셨다면 어머니는 세 자녀를 혼자 키워내야 했을 것이다. 남편만 바라보고 시집와 아이 셋을 낳고 그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보냈으니 어머니 심정은 또 어떠하셨을까. 남편이 돌아오지 못했다면 어머니는 어떠한 인생을 사셨을까? 생각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버지가 그때 전사하셨다면 1955년생인 나는 태어나지도 못했다. 60여 년 전 기억의 퍼즐이 드디어 아버지의 명예를 찾아드리는 계기가 됐다. 2018년 9월, 국가는 아버지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유공자 증서를 수여했다. 그리고 괴산 호국원이 개원되어 2020년 6월 8일 호국원 안장이 승인됐다. 수십 년이 지났어도 국가는 그 공을 잊지 않았다. 처자식을 두고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 목숨을 내건 한 가장의 공로를 국가는 품어줬다. 아버지가 타계하신 지 벌써 30년이 지났다. 이제라도 명예를 지켜드리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올 6월은 내게 의미가 있다. 동작동 국립묘지, 대전 현충원, 이천·영천·임실 호국원에 이어 중부권에서 괴산 호국원이 개장됐다. 이제 아버지를 국가의 품인 호국원으로 이장해드린다. 평안히 잠드시길….
- 2020-06-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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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VIP '오팔세대'를 위하여!!
- 영롱한 광채를 뽐내는 ‘오팔’은 밝은 에너지를 가졌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하고 욕망을 풀어놓는 오팔의 의미를 보면 기운이 솟구친다. 기성세대보다 더 스스로를 가꾸고 자기계발과 취미활동에 적극적인 50~60대 시니어들과 닮았다. 그래서 이들을 ‘오팔세대’라 부르나보다. 사실 오팔세대의 오팔(OPAL)은 ‘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앞 글자를 딴 조어다. 동시에 베이비붐세대의 상징 ‘58년 개띠’의 오팔을 의미한다. 1980년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오팔세대는 이제 은퇴의 길을 걸으며 새로운 소비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시장은 오팔세대인 50~60대 시니어 고객 모시기에 집중한다. 2026년에는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시니어 비중이 커지는 만큼 기업들은 그들을 위한 서비스와 문화행사를 강화하며 고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저금리시대에 예대마진이 줄어들자 시니어에게 적합한 상품을 개발하며 이들의 자산관리와 똑똑한 소비를 도와 수익창출을 도모한다. 자연스레 최우수고객(VIP) 대열에 합류한 시니어들은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며 화려한 노후를 즐기고 있다. 백화점: 할인 혜택과 문화행사 강화 50~60대 시니어가 백화점 업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신세계백화점의 최근 3년 실적을 분석해보면 50~60대의 매출 비중은 30~40대보다 낮지만 고객단가는 가장 높다. 비싼 상품에도 지갑을 잘 여는 우수고객이란 의미다. 이들 중 연간 2000만 원 이상 소비하는 VIP 비중이 일반고객보다 8배가량 높아 백화점으로선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고객이다. 이렇다 보니 백화점이 시니어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도 풍성하다. VIP의 경우 등급별로 차등 적용된 할인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에선 각각 5~10%, 현대백화점은 5% 할인된 가격으로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아카데미 할인 혜택도 주어진다. 갤러리아백화점은 문화센터 정규강좌 50% 할인, 신세계백화점은 학기별 강좌 1개 30% 할인~무료 수강, 롯데백화점은 1개 강좌 20% 할인~2개 강좌 50% 할인, 현대백화점은 5% 할인 혜택을 준다. 뿐만 아니라 기념일 축하선물과 항공권 할인, 발레파킹, 무료주차 등이 VIP 등급별로 차등 제공된다. 시니어를 위한 문화행사와 이벤트 초청 서비스도 눈길을 끈다. 신세계백화점은 2011년부터 예술의전당과 제휴를 맺고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VIP 전용 문화공연 ‘신세계 클래식 페스티벌’을 연다. 그동안 서울시립교향악단,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피아니스트 조성진,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등 세계 유수의 클래식 대가가 이 무대에 올랐다. 현대백화점도 매년 VIP를 위한 문화강좌인 ‘더 스튜디오 클래스’를 열고 있다. 연 4000만 원 이상 구매한 ‘쟈스민 클럽’ 회원만 참여할 수 있다. 요리, 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강사로 나온다. 정치·사회·문화 등 각 분야 명사가 직접 추천한 책, 공기정화식물, 난, 꽃 등을 정기 배송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은행: 알짜 금융상품과 은퇴설계 지원 은퇴했거나 은퇴를 준비하는 고객을 위한 금융상품도 시니어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올해 1955년생이 65세로 고령자가 되고 1960년생 은퇴자도 대거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은행들이 시니어 특화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어 꼼꼼히 들여다볼 만하다. KB국민은행은 KB골든라이프 ‘열두번의 행복’ 시리즈를 추천했다. 이 상품은 매월 찾아오는 월급날의 행복을 은퇴 후에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분할지급식 투자상품으로 ‘낮은 위험, 높은 수익’을 추구한다. 현재 펀드와 신탁상품이 있다. KEB하나은행은 ‘행복 노하우 연금예금’을 소개했다. 안정적인 노후자금을 확보하고 매달 수령하는 원리금을 생활자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돈이 많이 필요할 때는 많게, 그렇지 않을 때는 적게, 이자만 필요할 때는 이자만 수령할 수 있다. 노후설계에 대한 실질적인 어드바이스가 필요하면 각 은행의 시니어 혜택 플랫폼을 이용해보자. 신한은행은 ‘신한 미래설계’로 고객의 은퇴를 지원한다. 금융 서비스와 함께 비금융 서비스도 제공한다.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은퇴설계전문가(ARPS) 등 금융 관련 전문자격을 보유한 645명의 미래설계 컨설턴트를 전국 영업점에 배치해 고객의 은퇴 이후 현금흐름을 분석하고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한다. 미래설계센터에서는 부부은퇴교실, 미래설계캠프 등 다양한 은퇴교육 프로그램이 열린다. 우리은행은 서울 신촌점과 명동점에 ‘우리 시니어 플러스 센터’를 열고 공간 대여와 맞춤형 금융정보 공유강좌, 은퇴설계교육 등을 진행한다. 자산관리와 연금 관련 세미나도 열린다. 이와 함께 시니어 맞춤 온라인 금융과 비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니어고객 전용 ‘시니어 플러스 홈페이지’도 운영 중이다. 카드: 똑똑한 소비 돕는 풍성한 혜택 시니어를 위한 똑똑한 카드 상품도 챙겨보자. KB국민카드는 ‘KB골든대로 체크카드’를 추천했다. KB골든대로 체크카드는 50~60대 고객의 생애주기에 특화된 업종 이용 시 결제금액의 5%가 포인트로 적립되는 중장년층 맞춤형 상품이다. 이 카드는 전월 이용 실적이 30만 원 이상이면 △병원, 약국 등 건강 관련 업종 △대형마트, 주유소 등 생활밀착 업종 △골프, 사우나 등 여가 업종 △생명·손해보험 등 보험료 결제 시 월 최대 2만 점까지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 신한카드의 시니어 계층을 위한 ‘신한미래설계카드’도 주목할 만하다. 이 카드의 주력 서비스는 의료비 할인 혜택이다. 병원·약국은 물론 동물병원에서 월 최대 1만 원까지 결제액의 5%를 할인해준다. 생활비 할인 혜택도 돋보인다. 4대 주유소에서 ℓ당 60원(월 최대 30만 원), 3대 대형마트에서 5%(월 최대 1만 원), 대중교통과 택시 이용 시 5%를 할인해준다. VIP를 위한 프리미엄급 카드도 시니어의 현명한 소비를 돕는다. 롯데카드는 최근 프리미엄 라인업을 확장하며 ‘엘클래스 L60’을 선보였다. ‘프리미엄의 깊이를 경험하다’라는 콘셉트를 가진 엘클래스 L60은 공항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롯데호텔과 롯데면세점의 VIP 멤버십 혜택을 제공한다. KB국민카드의 탠텀은 해외여행을 할 때 사용하기 좋다. 페닌슐라 등 해외 유명호텔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객실 등급도 올려준다. 공항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항공 마일리지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신한카드도 ‘더 베스트’, ‘더 클래식’ 시리즈를 내놓았다. 여행과 레저,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다른 프리미엄 카드보다 쉽게 바우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호텔·문화: 포인트 적립과 클래식 향연 호텔 회원으로 등록한 시니어라면 할인된 가격이나 포인트를 적립하며 객실을 이용할 수 있다. 신라호텔은 객실 이용금액의 1~3%, 식음료 이용금액의 최대 1%가 적립된다. 또한 객실 업그레이드 서비스(연간 최대 5회)와 무료 세탁 서비스도 회원등급별로 적용해 지원한다. 롯데호텔은 객실 이용금액에 따라 3~6%의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이 포인트는 롯데호텔앤리조트 객실, 식음업장을 비롯해 롯데면세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세탁 서비스 10~20% 할인, 식음료 5~10% 할인, 객실 업그레이드, 1박 무료숙박권 등의 혜택도 회원등급별로 제공한다. 풍요로운 문화생활도 시니어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예술의전당의 노블회원(70세 이상·무료가입)이라면 공연 40% 이상 할인, 무대리허설 관람, 음악감상강좌 30% 할인, 월간 ‘노블N’ 발송 등의 혜택이 따라온다. 유료회원일 경우에는 공연·전시 5~40% 할인(최대 5매), 선예매 서비스, 음악회 초청, 아카데미 수강료 5% 할인, 제휴매장 및 우대 서비스 등이 제공된다. 세종문화회관의 회원은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과 무대 위의 몸짓, 오래된 명화의 감동을 저렴한 가격으로 만날 수 있다. 연회비는 5만~10만 원으로 공연당 4~6매를 최대 5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세종예술아카데미 할인과 공연 프로그램북 등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다만 현재는 유료회원가입이 제한된 상태. 향후 개선된 서비스를 다시 제공할 예정이다.
- 2020-01-2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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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는 꿈에도 없었는데, 운명이란 게 있는 듯해요”
- 1955년생, 베이비붐 세대로서 1978년에 데뷔해 올해로 예순다섯 살. 그러나 이치현의 모습에서 그 세월을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 1980년대를 휘어잡던 순간의 ‘이치현과 벗님들’ 리더 이치현이 세월을 뛰어넘어 그대로 내 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여전한 젊음과 변치 않은 감미로운 목소리,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더 성숙하고 테크니컬해진 그의 라이브를 보면 시간을 거꾸로 먹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다. 심지어 신곡을 준비하면서 내년부터는 ‘전투를 치르듯’ 전국 라이브 투어를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그를 만나 그의 음악과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얘기를 나눠봤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밴드로 올해로 벌써 41년째 롱런 중인 이치현과 벗님들은 흔히 ‘한국의 비지스’라 불린다. ‘당신만이’, ‘사랑의 슬픔’, ‘다 가기 전에’, ‘집시여인’ 등의 히트곡들은 이국적이면서도 세련된 밴드 사운드의 진가를 보여주는 곡들이며 여전히 애청되고 애창되는, 시대를 초월한 명곡들이다. 이치현과 벗님들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치현에게는 여전한 젊음과 특유의 우수가 있었다. 그 말을 듣자 그는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수에 젖었다기보다 ‘이 일이 내가 맞는 건가,(웃음) 어쩌다 이렇게 됐지?’ 하며 생각이 많아서 그런 표정이 나오는 거죠.” 반쯤은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그는 사실 가수가 될 꿈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만든 명곡들과 그의 감미로운 음색을 생각하면 의외의 얘기였다. 어쩌다 가수가 된 기타리스트 “내가 음악을 시작한 것은 순전히 산타나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연주자가 활동하기가 어렵잖아요? 더구나 유명하지도 않았으니 누구에게 곡을 줄 수도 없었고. 그럼 어쩔 수 없이 내가 불러야지.(웃음)” 산타나는 1960년대부터 활동한 라틴 록 기타리스트의 전설이다. 사실 잘 살펴보면 이치현이 그에게 영향을 받은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탁월한 기타리스트로서 여전한 실력을 유지하고 있는 점, 대표 히트곡 ‘집시여인’, 그리고 그의 최근 라이브에서 들려주는 노래들이 라틴 스타일로 더욱 세련되게 편곡됐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라틴 록과 밴드 사운드에 기반을 뒀지만 그가 한 가지 장르만 했던 것은 아니다. 팝 발라드에서부터 신스 팝, 로큰롤까지 다양한 음악적 접근을 해왔다. 그룹사운드를 하면 한 장르를 계속 파야 하지만, 그보다는 음악적 변화를 시대에 따라 맞춰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음악 그만둘까’ 싶었던 순간들 그렇게 대중가요 가수이지만 밴드 사운드에 기반하고 있는 그가 끊임없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밴드를 뚝심 있게 이끌어간다는 것은 외국처럼 장수하는 밴드가 없다는 점을 봐서도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위기는 자기 자신과의 갈등에서 와요. 경제적인 위기는 능숙해요. 워낙 바닥을 치며 올라갔고 무명생활도 오래해서.(웃음) 가장 힘든 게 ‘내 스타일의 음악을 계속해야 하나? 그만둘까?’ 하면서 내 음악에 한계를 느낄 때죠.” 그가 자신의 음악에 한계를 느끼는 것은 시대적인 문제와도 결부된다. 라이브 밴드를 추구하는 음악인들이 설 자리가 많이 사라졌고 가요계의 주류도 밴드 사운드를 유지하기에는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변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얼마 전 7080세대에게 논란이 됐던 KBS의 ‘콘서트 7080’ 폐지 건이 그렇다. 그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콘서트 7080’이 폐지된 데는 물론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죠. 7080시절 음악했던 사람들을 막상 찾아보면 지금 음악을 안 하는 사람들이 더 많거든. 새 앨범을 내지 않고 ‘추억팔기’만을 하는 가수들이 출연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시청률이 떨어지게 됐고요. 음악은 추억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어야 하고 뮤지션은 신곡 활동도 꾸준히 병행해야 하잖아요.” 지나친 쏠림 현상 안타까워 요즘 사회나 기업체들을 보면 7080세대가 주류가 됐다. 이치현과 같은 시대의 가수들이 각광받는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스트롯’의 성공으로 트로트가 7080세대의 음악적 대세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 물결이 너무 거세다 보니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라이브 밴드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현실에 그는 더욱 힘들어하고 있었다.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근본적인 차원, 음악적 현실에 대한 고통이었다. “시대의 변화이겠지만, 요즘 가수들은 거의 탤런트가 돼야 해요. 사람들에게 어필해야 하고. 난 그러고 싶진 않거든요. 내 음악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꾸준히 하고 싶은 거니까요. 그래서 억지로 비즈니스를 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러다 보니 이 모양이지.(웃음)” 변화된 음악 현실에 방황도 깊어졌다. 그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2년간 계속 방황했다. “작년 가을과 겨울 사이 미국을 네 번 왔다 갔다 했어요. 한국에 있기 싫어서 미국에서 공연하려고요. 환경이 안 변하면 내가 못 살겠기에. 곡은 안 써지니 밤마다 괴롭고…. 내가 해야 할 음악의 장르를 못 잡는 거예요. 안 그랬거든요.” 소극장 투어로 팬 저변을 넓히다 그래도 그는 마침내 결론을 냈다. ‘좋은 경치를 봤다고 좋은 곡이 나오는 건 아니다’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내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2016년에 내놓은 정규 앨범 14집 이후 오랜만에 싱글 앨범을 제대로 준비해 선보일 계획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도전에 나섰다. 바로 소극장 공연 투어다. “한 해가 끝날 때 되면 ‘올해 잘 보냈나?’ 싶죠. 나이가 드니 비보도 많이 듣게 되고, 시간도 확 가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버킷리스트는 아니더라도 머릿속에 있는 걸 실행하자고 결심했어요. 그게 내년 3월부터 시작할 전국 소극장 공연이죠. 깨질 때도 있고 힘든 상황도 있겠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부딪쳐볼 거예요.” 그는 이미 1984년부터 5~6년간 무려 1000회가 넘는 소극장 공연을 가진 바 있다. 즉, 소극장 무대의 맛과 즐거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사실 그래서 작년에는 그런 소극장 무대를 다시 한 번 부활시킨 적도 있다. “관객들이 예전에는 학생들이었는데 이젠 다들 어른이 되어 주차장이 없어서 힘들어했는데(웃음) 공연은 꽉 차서 끝났어요. 그분들이 말하길 불편해도 시간이 지나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더라고요. 소극장에서 얼굴 표정을 다 읽고 땀 흘리고 그러는 걸 보면서 함께 공연하는 거니까요.” 음악은 밥 먹고 숨 쉬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본 그의 성정에 대해 생각해보면 짐작 가능하겠지만, 그는 앞으로 나와서 ‘나대는’ 성격이 전혀 아니다. 자신의 성향과 다르게 행동하는 걸 너무 싫어하는 쪽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성향이 남아 있기에, 그의 젊은 시절은 지금보다 더했을 수밖에 없다. “가수는 꿈에도 없었는데, 운명이란 게 있는 듯해요. 제게 음악은 밥 먹고 숨 쉬는 것처럼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었어요. 원래 남 앞에 못 서는 성격인데도 한 거니까요. 그래서 1984년에 4집 앨범 녹음하며 방송을 접고 대학로에 들어갔죠.” 그의 소극장 공연은 대박이 났다. 그리고 가수로서의 즐거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가 인간적으로 변화하게 된 계기였다. “물론 여대생들 앞에서 1000회를 공연한다는 게,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런데 그때 성격이 변했어요. 대화하는 법을 억지로 힘들게 익힌 거예요. 지금도 저는 제가 봐도 어색해요. 그래서 방송 녹화한 게 있으면 가족들하고 안 보죠. 나 혼자만 보면서 반성할 게 뭐 있나, 왜 저랬을까 합니다. 그게 본 성격인 거 같아요.” 무대와 객석은 구분되는 게 품격 그는 프로답게 자신이 대중음악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자각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인터뷰 내내 계속해서 ‘음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말한 것과도 관련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느리긴 해도 끊임없이 자신을 대중과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 노정이 어쩌면 이치현이 지속적으로 발전한 근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저는 좀 까다로워서 무대 같지 않으면 안 올라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후배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라이브 카페 같은 데서 공연하기도 했죠. 당연히 환경이 열악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좋아하고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 잘되는 걸 보니 거기서 매력이 느껴지더라고요. 대중과 마주하되 자신의 격만 안 떨어뜨리면 되겠다 생각한 거죠. 물론 무대와 객석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게 품격이니까요.” 칠순이 다가오는 나이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을 고민하며 밤잠을 설치는 그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역시 팬들이다. 그의 팬클럽은 회원 수 1500여 명이 가입한 ‘늘벗회’다. 1980년대부터 꾸준히 그를 지지해준, 역사가 깊은 탄탄한 팬들로 그의 공연에 항상 힘이 되어주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즐거움이자 위안 아닐까. 다시 태어나면 건축가가 될 것 음악이 운명이라는 말처럼, 그의 딸 둘도 음악과 관련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딸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지 목소리가 바뀌었다. “첫째 딸은 플루트를 해요. 스위스에서 유학하고 와서 올해 동창하고 결혼했죠. 결혼 안 시키려 했어요. 들어간 돈이 얼만데.(웃음) 사실 재밌게 살고 있어요. 둘째도 원래는 음악하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해서 음악심리학으로 바꿨어요. 작은애는 지 편한 대로 자유롭게 살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과 가족들 모두가 음악과 관련이 있지만, 정작 다시 태어나면 음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음악은 본인과의 싸움이 너무 심해요. 다시 태어나면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 건축가라니, 의외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그는 중학교에서 미술 관련 상을 휩쓴 기대주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예고에 진학하지 못해 미술인으로서의 꿈은 접혔다. 하지만 아직 미련이 남아서 지금도 외국에 나가면 건물의 건축 재료를 살펴보고 두들겨본다고 한다. “음악은 사람을 너무 좁게 만들어요. 물론 음악의 세계는 굉장히 넓죠. 그러나 음악인으로서의 삶은 좁아요. 음악 대신 빌딩 하나 지어보고 싶고 그렇죠.(웃음)” 아름다운 황혼의 시간을 기다린다 이치현의 가족들 중 음악과 관련이 없는 사람은 그의 아내다. 교육학과를 나온 아내는 도서관에서 살며 자녀들 교육에 평생 매달렸다. 요즘 그는 부쩍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아내에게 못해준 게 너무 많아요. 젊었을 때는 같이 못 놀아줬고 ‘여보, 여보’ 하며 살갑게 다가가는 성격도 못 되고…. 우리나라 부부들이 나이를 먹으면 각자 놀잖아요? 그런데 유럽에 가보면 서로 목도리를 해주며 손잡고 다니면서 카페에 앉아 다정하게 대화하는 흰머리의 노부부가 많아요. 그래서 저도 칠십부터는 같이 손잡고 다니면서 외롭지 않게 해줘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음악은 같은 감성을 함께 느끼는 것이라는 확고한 철학을 가진 그는 감성과 추억으로 버무리고 채워질 소극장 라이브를 준비하면서 벌써부터 신이 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거듭 아내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아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그리는 듯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우선 그가 도달해야 할 음악적 성공의 지지자로 응원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할 일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가 아내와 함께 만들게 될 아름다운 황혼을 기대한다. 그 희망이 오늘 이치현을 또 설레게 할 것이다.
- 2019-12-1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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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란 자신을 찾아가는 천직 여행”
- 인생을 2모작도 아닌 5모작까지 치르고 지금은 6모작을 준비 중이라는 사람, ‘N잡러’ 장필규 행복 제1연구소 소장은 1955년생으로 정확히 베이비붐 시대의 한복판에서 태어난 100% 베이비부머다. 그는 요즘 프리워커로서 고용노동부 내공강사, 노사발전재단 전문강사, 경기도 6차산업 현장 코칭 컨설턴트, 인천농촌융복합 현장코칭 전문위원 등 다섯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그야말로 정년이라는 단어가 의미 없는 삶을 영위하는 셈. 장차 6모작을 넘어 9모작까지 완성하는 게 꿈이라는 그가 말하는 인생 후반기의 삶과 잡(job)에 대한 철학을 들어봤다. “제 인생의 4모작은 50플러스재단 컨설턴트였고, 5모작은 N잡러로 활동하는 지금이죠. 이제 6모작을 준비하고 있어요. 시니어에게 일은 새로움과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여행하듯이 즐거움을 찾는 거지요.” ‘N잡러’ 장필규 씨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일하고 있다. 현재 그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 노사발전재단, 지방자치단체의 컨설턴트와 전문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9모작을 최종 목표를 두고 6모작을 준비하기 위해 직업상담사,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고 있다. “환갑을 넘어 케어를 받아야 할 사람이 사회복지사 공부를 한다고 집사람이 잔소리를 하네요.(웃음) 그런데 저와 같은 나이대에도 취약 계층이 있을 거예요. 제 연배의 장애인이나 소외 계층을 위한 삶을 살고 싶은 거죠. 예전에 거창에서 일할 때 요양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나도 머지않아 그분들과 같은 입장이 될 텐데 이야기 들어주고 도와주니 즐겁더라고요.” 퇴직 없는 삶 위한 평생현역 꿈꿨으나… 그의 이름에는 베풀 장(張), 도울 필(弼)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다. 어쩌면 그의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줄 때 베풀고 도와주라는 의미로 새긴 게 아닐까. 현재 그의 모습은 이미 숙명처럼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건국대학교 축산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81년 두산그룹 계열사인 배합사료 회사 두산곡산에 취직하면서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한강의 기적’이 펼쳐지던 시기였고 그의 삶 또한 대기업 직장인으로서 안정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그도 사회적 환경에 따른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그에게 던져진 자리는 두산종합식품 식품사업 부문의 김치공장 관리부장. 고민을 했지만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김치공장으로 간 그는 관리부장, 공장장을 거치며 10여 년간 김치 제조의 일선에서 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회사 주인이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두산이 식품사업 부문 전체가 대상에 매각될 때 그는 6년 후배가 상사로 승진하는 것을 보게 된다. 더는 버틸 수 없었던 그는 대상 소속으로 2년 정도를 더 지내다 2008년 4월에 퇴직한다. 끊임없는 도전, N잡러로 거듭나다 54세의 나이, 인생 1막이었던 대기업 직장인으로서의 27년은 끝이 났다. 삶에 대한 허무감과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고통이 동시에 밀려왔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치주염 수술을 여섯 번이나 받아야 했던 그는 수술 후 재취업을 도와주는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 찾아가는 것으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이력서 작성법, 면접 스킬 등을 교육받은 그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농업 최고경영자 경영대학원 과정에 합격한 뒤 몇 번의 테스트까지 통과하며 마침내 울진농수산물유통농업회사법인 대표로 취임했다. 그러나 그토록 고생하며 올라간 자리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결국 대표 자리를 그만둔 그는 마침 일본 회사와 울진군의 합작 회사인 울진로하스코리아에서 대표 제안을 해와 CEO로서 3년을 지냈다. “인생 2막의 과정은 지방에서 CEO로 일을 하며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면서 재무 문제도 해결되고 가족관계는 물론 건강도 좋아졌죠.” 울진로하스코리아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는 2012년 말부터 일자리희망센터를 찾고 취업박람회에 꾸준히 참석하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마침내 농촌진흥청에서 마케팅 전문위원으로 인생 3막을 펼쳤다. 이곳에서 5년간 근무하며 농가 500곳을 대상으로 한 컨설팅을 진행했다. 이어 서울시 50플러스재단, 노사발전재단, 고용노동부 등지에서 강사 및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4막의 장을 펼쳤고 진정한 N잡러가 되었다. 수입 적더라도 즐거움 주는 천직 찾아야 “이제 베이비부머들은 잡(job)이 아니라 워크(work)를 해야 해요. 워크는 천직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천직을 찾아야 오래 즐겁게 할 수 있으니까요.” 그에게 시니어 구직자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묻자 제2인생에서는 일이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일이 놀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지난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이해가 가는 말이다. 수입은 적더라도 길게 오래할 수 있는 천직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하는 그가 N잡러로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 나이에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하나의 직업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적어도 세 개 내지 다섯 개는 가지고 있어야 과거 연봉의 절반 정도가 되죠. 특히 시니어는 공부를 위한 비용이나 손주들 용돈, 네트워크 유지비 등 지출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가 또 강조하는 것은 사고의 유연성, 관계의 유연성이다. “적을 만들면 안 됩니다. 제 주위를 보면 어떤 사람과는 케미가 맞지 않다고 안 만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물론 그건 취향이기에 좋다 나쁘다 판단을 내릴 순 없죠. 다만 기왕이면 유연성을 갖고 적을 만들지 말아야 평화롭고 품위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습니다.” 열린 마음, 유연함으로 세상 대하기 그런데 삶의 부침들을 겪으면서도 마음의 유연성을 갖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에게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걸까? “어느 접점에 있든 열린 마음을 실천하는 겁니다. 역지사지라고 하죠.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불편한 일이 많아져요.” 인터뷰를 하면서 보니 그는 도전적이라기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런 성품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쟁취해온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결과도 그의 열린 마음 덕분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다. “박사학위를 가진 시니어도 일에 대한 욕망이 뜨거워요. 그런데 한국인은 디테일에 약해요. 그래서 매뉴얼이 있어도 막상 긴박한 상황이 되면 제대로 써먹지 못합니다. 습관화가 안 된 게 문제입니다. 그걸 극복하려면 계속 반복하고 고치고 훈련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는 구직을 하려면 ‘어떻게’에 관한 디테일한 액션 플랜을 짜서 지속적인 연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테스트에 통과하며 자신의 자리를 잡은 그이기에 신뢰가 갔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천직을 찾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는 그도 구직자 입장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구직자들을 상담하는 입장이 되었다는 게 삶의 아이러니처럼 느껴진다. 양쪽을 다 경험해본 그에게 두 입장에 대해 물어봤다. “구직을 지원하는 정부 기관들은 고객 니즈에 맞게 세분화, 효율화되고 향상되어야 해요. 그런데 그런 시도가 진행되다가도 중간중간 끊기더라고요. 그게 아쉽죠. 그리고 구직자들의 입장을 보면, 그래도 구직을 위해 오는 사람들은 열정이 있는 거예요. 흔히 퇴직하면 ‘또 직장생활을 해야 해?’, ‘날 찾아주는 데는 없어’ 하며 의욕이 없는 경우가 많죠. 목표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퇴직하는 순간 놔버리는 거예요. 물론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그건 자신에게나 가족에게나 무책임한 거죠. 그런 심리를 어떻게 끌어주느냐가 관건이라고 봐요.” 그는 은퇴자 혹은 퇴직자들이 자기진단을 해보고 자신에게 어떤 일이 적합한지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그렇게 자신을 파악하고 일을 찾다 보면 현실의 갭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그걸 인내하는 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인 중에 20년 동안 독일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말하길 ‘결론은 나를 찾게 되더라’ 하더군요. 나를 찾는 노력을 하고 준비하면 일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서 주위의 긍정적인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한 방법이겠죠.” 욕심의 분모 줄이면 행복이 찾아온다 자신이 이 사회에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할 때 더욱 의욕이 생기는 사람이 있다. 그는 100세 김형석 교수가 자신의 건강 비결로 ‘평생 손에서 일을 놓지 않은 것’이라고 한 말을 다시 전한다. “사람은 일이 있어야 삶을 유지할 수 있어요. ‘60~65세가 자신의 황금기였다’는 김형석 교수님 말에 공감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N잡러 장필규 소장은 자신의 행복을 충분히 누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행복론을 소욕지족(少欲知足)에 비유했다. 행복해지려면 욕심의 분모를 줄여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욕심의 분모를 자꾸 키우면 내려놓기가 안 되는 사람이에요. 100분의 60과 60분의 60을 비교해보세요. 후자는 60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죠. 이렇듯 분모를 줄이면 60분의 60이 1이 되듯 가벼워집니다. ‘1’과 ‘일’처럼 디테일하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 때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결국 ‘1’과 ‘일’처럼 은퇴 후 행복하게 살게 해줄 수 있는 놀이와도 같은 것이죠.” 노후에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면 많고 적음을 떠나 돈과 건강, 관계, 여가 등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강조하는 그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의식하지 않고 여행하듯 사는 게 진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담대하고, 여유롭고 자유로웠다.
- 2019-08-26 09:56